며칠 전부터 KBS에서 편파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12일, 제26대 KBS 사장으로 취임한 박민은 임명된 지 하루만에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를 대폭 교체하고 프로그램도 개편하였다. 하차 당한 사람 중 뉴스에서 대표적으로 거론된 인물은 KBS 뉴스 9의 이소정과 주진우 라이브의 주진우이다. 2TV 시사토크 프로그램인 더 라이브는 아예 폐지되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조치라 당분간 예능 등 다른 프로그램을 송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다음 날 박민 사장은 과거 KBS에서 편파 방송을 했다며 사과하였다. 그가 편파보도라고 예시한 사례들은 한동훈 관련 ‘검언유착’ 오보, 고 장자연 씨 사건 관련 후원금을 모금하고 도피한 윤지오 씨 출연, ‘오세훈 시장 생태탕 의혹’ 관련 보도 등이다. 그가 직접 언급한 이 세 가지 사례는 모두 여당 또는 보수 언론에 불리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편파의 기준은 상대적이라 박민 사장의 행보 역시 편파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박민에 대한 기사에는 ‘이제 편파 방송 하겠다는 거지?’ 하는 댓글도 많이 보이고 시청료 거부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다.
누가 편파적이고 누가 공정한가를 객관적으로 결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중국 고대 춘추 전국 시대에도 백가가 다투는 혼란한 시기에 장자는 다툼을 해소하기 위해 제물론을 주장했다. 장자는 애당초 객관적 공정성은 불가능하다면서 모든 주장이 동등하다고 한다.
“내가 자네와 논쟁을 했다고 가정해보세. 자네가 나를 이긴다면, 자네가 옳고 내가 옳지 못한 것일까? 내가 자네를 이긴다면, 내가 옳고 자네가 옳지 못한 것일까?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한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가 둘 다 옳거나, 둘 다 그른 것일까? 만약 자네와 의견이 같은 사람더러 판단해 보라고 하면, 그는 이미 자네와 의견이 같은데,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그렇다고 나나 자네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해 달라고 한들, 어찌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겠나?”
나아가 장자는 모든 주장이 다 주관적이므로 나의 주장을 고집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장자의 말은 귀 기울일 만하기는 하나, 모든 주장에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의심한다’의 저자 보 로토는, 인간의 지각 능력은 근원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신경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나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본 것이 객관적 실재인지 의심하라. 멈추고 그냥 보라.’고 한다. ‘그냥 보기’ 위해서는 낯선 곳에 가보고, 평소 하던 것과 다르게 해봐야 한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것, 내가 싫어하는 것과 기꺼이 만나는 일이다.
절차와 협약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면 또 다른 편파 시비를 불러온다. 정말 편파를 시정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의심해야 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냥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편파를 줄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