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민의힘이 혁신위원회를 꾸렸다. 서울 강서구 선거 패배 이후 내년 총선의 승기를 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12월 24일까지 60일간 활동하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뜻밖에도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장이 지명되었다.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가 1912년 한국에 선교 활동하러 와서 아버지도 군산에서 태어났고, 인요한 역시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라 스스로 순천 촌놈이라고 소개한다고 하니 토종 한국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할아버지가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점, 아버지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는 점들로 인요한 가족의 한국사랑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존 린튼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국적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한 공으로 2012년 정부로부터 순천 인 씨라는 성을 받고 특수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도 갖게 되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광주 시민군을 위해 통역도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니, 일반 국민의힘 기조와는 많이 다르다. 이번에도 인요한은 첫 대외 행선지를 광주로 정하고, 개인자격이지만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도 가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정도라면 진정한 통합을 위해 그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가 혁신위원장이 된 지 3일 만에 내놓은 12명의 혁신위원 명단을 보니, 여성이 7명으로 남성보다 1명 많고, 청년층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70년대생 3명을 제외하고라도, 80년대 4명, 90년대, 2000년대가 각 1명이다. 사업가로 이름을 올린 여성은 나이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아무래도 중장년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정치인 6명 외에 교수 2명, 의사 2명, 앵커, 학생회장, 사업가 등이라 전문 정치인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의문이 든다. 인요한 위원장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혼자서라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지난 행적이나 현재의 정치 이상이 아무리 통합 지향적이라고 해도 현실 정치에서 그 뜻이 관철되게 하려면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 추모식에 가는 이유에 대해 우리 모두 죄인이니 추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뭉뚱그리며 책임소재를 흐리고, 홍준표 이준석에 대한 대사면 제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떡하겠느냐는 질문에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하면 곤란하다. 혁신위원회의 권한 범위를 모르겠다면서 와이프와 아이만 남기고 바꾸겠다는 말을 어떻게 실천할지도 의문이다. 인요한은 박근혜 정부 때도 참여했지만 자기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자 후회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물러난다면 개인에게나 우리 사회에 손실이다.
누가 정권을 잡든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여러 의구심과 불안 요소를 잘 극복하고 평소 가진 통합의 지향을 잘 관철해서 국민의힘이 이념 논쟁 그만두고 민생 정치를 펼치는 데 기여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