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노화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냥 나이만 들면 좋으련만, 수명이 늘어나면서 병원 신세 질 일도 많아지고 치매도 증가 추세다. 하루에도 한두 건, 많을 때는 네 건씩 배회중인 어르신 찾는 문자가 오고, 엄마도 파킨슨 병 합병증으로 치매를 오래 앓다가 돌아가셔서 치매는 특히 신경 쓰인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897만 명 중 치매 환자가 90만 명으로 추정 치매 유병률이 10%이다. 204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700만 명이 되는데 이 계산대로 하면 170만 명이 치매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런저런 질환으로 장기요양 등급을 받게 될 인구 추정치는 300만 명이라고 한다. 2040년이면 내 나이도 80세이니 치매에 걸리지 않거나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이런 환자를 관리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치매 환자도 고통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엄마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이면서도 삶이 고통스러워 15층에서 뛰어내리려고 베란다까지 나가셨던 적도 있다.
아무리 생명 연장술을 연구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현대 의료의 발달로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하기 어려운 상태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환자와 환자의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현대 의료 시스템은 환자가 아무리 고통 받아도 죽는 그 순간까지 치료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환자나 그 가족도 마찬가지다. ‘왜 나는 75세에 죽기를 바라는가’를 쓴 미국 의사 에스겔 임마누엘의 보고에 따르면, 미국 노인 5분의 1가량이 죽음의 마지막 달에 외과 수술을 받는다고 하니, 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인식을 바꾸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케이티 잉겔하트의 ‘죽음의 격’은 노년은 물론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나 불치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른 사람들이 어떻게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지 취재한 기록이다.
그가 어떤 죽음이 품격 있는 죽음인지에 대해서 직접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바로 괄약근 조절능력을 잃었을 때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아무리 훌륭한 의사도 죽음을 치료할 수는 없다. 죽음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나 자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 순간에 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노년을 상상하면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탐색하고,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마음의 준비도 꾸준히 해야 한다. 한 달 전부터 몸 상태를 기록하는 ‘몸 일기’를 매일 쓰고 있다. 2040년 80세를 맞는 어느 하루, 나의 몸을 상상하는 일기도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