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동료와 선물 문제로 멀어졌다. 동년배 세 여자가 가끔 만났는데,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핑계로 밥을 여러 번 샀다. 그렇게 내가 밥을 산 날이면 디저트는 그 둘이 샀다. 그런데 내가 책을 출간했을 때 A가 책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밥을 사면서 등가교환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에 끝내 책을 주지 않았다.그렇게 그 일은 넘어갔지만 얼마 안 있어 A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하니 A는 취직 사실을 감추었다. 지나치게 주고받기를 의식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그 이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사는 줄 알았던 내 몫의 디저트는 언제나 B가 냈다고 한다.이 일을 겪으면서 아무리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 해도 결국 모든 선물은 기브앤테이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친구 간에 대가 없는 선물이라도 그 안에는 돈독한 사회관계 형성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고, 등가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주고받기가 이루어지리는 기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도 그렇다. 유산을 줄 때는 암묵적인 봉양의 의무가 전제되어 있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봉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회수하기도 한다.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고대 사회의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고 한다. ‘주는 의무’, ‘받는 의무’, ‘갚는 의무’가 그것인데,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도 일어난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선물이나 증여는, 고대 사회처럼 강한 의무가 동반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선물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누구라도 어떤 선물을 받으면 경조사 부조금처럼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할 빚으로 느낀다.그런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추석 명절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내용이 이상하다. 누구든지 친구, 친지 등 공직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금액 제한 없이 얼마든지 줄 수 있고,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홍보물 순서를 보면 마치 선물을 장려하는 캠페인처럼 보인다. 뒤를 이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는 5만 원까지, 농수산물이라면 15만 원까지 허용되는데, 명절 전후 30일 동안은 30만 원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아무래도 공직자가 하는 선물은 아니고, 민간인이 공직자에게 선물하는 경우에 해당할 텐데, 왜 친구나 친지에게 주는 선물 이야기를 맨 처음에 하는지 의아하다. 직무 관련 여부를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직무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 주는 100만 원어치 선물에는 대가성이 없다는 장담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민은 커피 한 잔,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어도 갚을 궁리를 하는데, 공직자들은 그런 선물을 받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20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