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걸레 대신 손쉽게 뽑아 쓰는 물휴지도 플라스틱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일회용 컵과 빨대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포장재 원료도 모두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후유증도 크게 남긴다.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입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이 사진을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1회용 플라스틱 용기만 따져봤을 때 충남대 장용철 교수팀이 그린피스와 공동연구한 결과를 보면, 2020년 1회용 플라스틱 용기 생산량은 87만 톤이었는데 이런 추세로 가면 2030년에는 647만 톤이 될 것이라고 한다. 2022년 발표한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2021년 한국의 플라스틱 총생산량은 대략 1천2백만 톤이다. 노현석 부산환경운동연합 활동가의 기자회견을 보니, 세계적으로 매년 4억 톤 이상의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데, 이중 약 9%만 재활용될 뿐이고, 1200만 톤 이상이 바다로 흘러간다고 한다.
플라스틱의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2022년 유엔 소속 국가들이 모여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결성했다. 작년까지 모두 4회에 걸쳐 플라스틱 생산량 줄이기 협약을 논의했고, 그 마지막 다섯 번째 회의가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고 있다. 이 회의에는 유엔 소속 170여 개국의 정부 대표단과 시민사회 단체들, 그리고 산업계가 참석하는데, 우리나라는 환경부, 외교부, 산업부, 해양수산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대표단을 구성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회의 성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는 크게 대립하는 쟁점은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폴리머’의 생산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국제 협약 우호국 연합’(HAC)에 속한 유럽과 한국은 폴리머 감축에 찬성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이 중심인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은 생산규제보다는 재활용과 폐기물 관리를 주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입장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감축을 주장하는 우호국에 속하면서도 사실은 산유국의 입장과 비슷하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획일적인 플라스틱 감축보다는 단계별 접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포괄적 방식으로 협의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강력한 협약을 주장한다. 플라스틱 감축을 구체적인 수치로 설정하고, 플라스틱 재사용을 체계화하며, 관련 산업 종사자와 지역사회가 피해 보지 않게 공정한 변화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면서 관련 산업 종사자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포괄적 협약에서 주장하듯이 단계적, 다각적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력한 협약에서 주장하듯 구체적인 단계도 수치로 설정하고 재사용도 강제해야 한다. 애매한 표현으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