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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이냐 팃포텟이냐

등록일 2025-02-16 19:51 게재일 2025-02-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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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며칠 전 여성 지인이 직장 상사가 갑질한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사무실 하나에 상사 1명과 직원 1명이 근무하는 아주 작은 직장이라 꼬투리 잡으며 사표를 내게 종용하는 상사 때문에 억울하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데에는 평소 직설적 성격의 지인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지 않을까 의심했으나 그 직장 상사가 자기 아내는 고분고분한데 당신은 왜 의견이 많으냐는 말을 들으니 해결책이 필요해보였다.

그러던 중 며칠 전 탄핵 심판정에서 대통령이 국회 기조 연설할 때 야당 의원들이 박수 안 쳐주고 악수도 거절했다고 불만을 말했다. 남의 말을 경청하라는 대화의 기술 측면에서 야당 의원들의 행동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야당 의원들에게 대통령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부적절해 보였다. 어떤 책에서는 거절도 예쁘게 해서 감정 상하지 않게 하라는데, 대통령의 요구가 부당할 때 야당이 예쁘게 거절하라는 것도 무리다.

사회에서는 힘 있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문제 삼는 상대의 태도만 문제 삼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아마도 전통적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유교 전통 중에는 ‘집안의 윤리를 그대로 사회에 적용하면 사회 윤리가 된다’는 사고가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로 백성이 군주에게 하는 충성하면 되고, 동생이 형을 공경하는 원리로 연장자를 공경하면 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면 된다고도 했으나 이것은 큰 주목을 못 받고, 상명하복의 사고만 부각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순종하기만 바라며 아랫사람의 도리만을 강조하게 되었다. 의무를 강조하는 칸트의 도덕철학 역시 상대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의 저자 김용규는 이런 태도를 반대한다. 현실에서는 분명히 상대를 해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도덕적인 행동만 고집한다면 세상은 나쁜 사람으로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용규는 부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팃포탯’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팃포탯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셈이다. 팃포탯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쉬의 균형이론에 기원을 둔 게임이론 전략인데, 처음에는 협력하더라도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해서 승리하라는 이론이다. 실제로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는 이 전략으로 게임 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내가 할 말은 참으라거나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자신의 무의식을 돌아보라는 식의 대화의 기술은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나 활용할 수 있을 뿐, 사회관계에서는 상대가 부당하다면 적절하게 응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부당한 행동을 할 때 옳은 쪽이 승리하기 위한 팃포탯이 무엇인지는 아직 답을 못 찾았지만, 지인에게는 휴가를 내서 쉬면서 거취를 생각해보고, 퇴사하더라도 상사의 부당함을 공론화할 것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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