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보살이니 OO법사니 하는 무속인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린 지 오래되었다. 언젠가부터 무속인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명칭은 무당이다. 그러나 보살은 열반에 들었다가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세상에 다시 온 사람을 이르는 말이고, 법사는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승려 못지않게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지도자다. 반면 무속은 미신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에도 무당을 맹신하다가 딸까지 나락으로 보내는 인물이 나온다. 무당을 무속인이라고 바꿔 부르게 된 것도, 이들이 불교 용어를 차용해서 쓰는 것도 모두 무당에 대한 인식이 안 좋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무당을 가까이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이웃집 마당에서 내림굿하는 무당이 작두 타는 것을 본 적이 있고, 엄마의 병환이 2∼3년간 병원 치료에도 차도가 없을 때 이모의 권유로 동네 무당에게 굿을 부탁한 적도 있다. 엄마는 무속을 믿는 분이 아니었는데도 너무 답답하다 보니 이모의 권유를 수용하셨다. 방에서 하는 작은 기도 수준이었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차도가 없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킨슨병인데, 그동안 오진으로 치료를 잘못했던 것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무당은 대학 강의실에서 만난 만신 김금화였다. 내가 대학원 재학 당시 김용옥 교수가 학부 강의 시간에 초청했던 것인데, 문과대학에서 가장 큰 강의실이었는데도 서 있을 자리도 없이 꽉 찼던 기억이 난다. 그때 김금화 선생은 무당이란 개인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예방해주는 기능에 더해서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또렷하다. 2017년에 나온 김금화 선생 인터뷰 기사를 보니, 당시 87세에도 나라가 편안하고 평화통일을 이루고 전쟁 없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 기도드리고 있다고 한다. 학술적으로 무속과 관련하여 큰 업적은 남긴 유동식 교수는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에서 단군을 비롯한 주몽이나 혁거세와 같은 건국 인물이 모두 무당이라면서 하느님의 강림과 인간의 성화를 이룬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무당이 원래는 사회 공동체의 안녕을 도모했다는 뜻이다.
많은 무당이 신당에 모시는 인물은 바리공주다. 바리공주는 오구대왕에게 버림받았지만 불치병에 걸린 부모를 위해 서천에 가서 약수를 가져와서 부모를 살린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바리공주가 서천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지옥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영혼을 보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기 때문이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이승에 있을 때 벼슬아치의 착취를 못 이겨 도둑질 같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바리공주는 이승의 안락을 마다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저승으로 간 것이다.
공동체와 사회적 약자를 위하던 무속이 지금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권력자들이 무속에 기대어 국사를 결정한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노상원 집앞에 막걸리와 초들이 쌓인 사진까지 보니 참담하다. 홍익인간을 외치던 단군은 아니지만 김금화 같은 무당을 바라는 것도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