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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저임금은 정말 최저임금이다

유영희 작가 60세가 넘은 지인이 남편 퇴직 후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작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노인 한 분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던 차에 맞벌이 부부의 유치원생 자녀 한 명을 아침, 저녁 두 시간씩 등·하원시켜주게 되어 다행히 월 200만 원 정도 수입이 되었다고 한다. 노인과 유치원생의 시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략 시간당 1만3000원이니, 2024년도 최저임금 9860원보다 높다. 일이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된 것이다.그런데 지난 2월 서울시 국민의힘 소속 윤기섭 등 38명의 시의원이 노인들의 구직이 어렵다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노인 채용이 가능하도록 하자며 ‘최저임금법 적용 제의의 인가 기준 및 범위를 노인층에게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정부 측에 발의했다. 3월에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필리핀 등 외국인 돌봄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그 말이 있기 하루 전,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주최한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사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요구는 올해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1986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때 최저임금법 제4조1항에서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경영계는 업종별 차등 임금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들의 요구는 특정 업종은 최저임금보다 더 낮게 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경영계의 집요한 요구가 있지만, 지난 7월 2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차등안을 부결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어느 기사를 보니, 작년 148개의 2차 업종 중 상반기 시급 공고가 500건 이상 등록된 업종 93개 중 ‘베이비시터·가사도우미’ 업종의 공고 평균 시급이 2만9천 원 정도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일이 그만큼 힘들고 그래서 인력난도 심하다는 뜻이다. 요양보호사는 국가 공인 파출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을 호소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간병과 육아와 같은 돌봄 노동에 외국인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보다 더 적게 주자는 것은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11호(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에 나오는 출신국에 근거한 차별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도 한국에서 한국의 물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노인에 대해 최저임금을 낮게 적용하자는 주장 역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나이를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법하다.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은 저소득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최소한의 임금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인건비로 인한 소상공인의 경영난 해법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

2024-07-14

‘우천 시’보다 중요한 것

유영희 작가 오랜만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대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강의할 기관에 이력서를 보내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쓴 경학 연구 논문 제목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니, 한글로 써도 충분히 알아볼 만한 내용이므로 그냥 보냈다. 나는 유교 사상을 전공했지만, 한자를 노출시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자 없이 한자어만 쓰면 일상에서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지난주에 여러 매체에서 인용된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에도 한자어가 있다.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우천 시, 금하다, 섭취·급여·일괄 같은 단어를 가정통신문에 쓰면 학부모들이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댓글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고 한다. 여러 주요 언론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 그 어린이집 교사의 문해력 한탄에 동조하였다.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어린이집 교사가 경력 9년 차라고 하니, 마흔 살이 안 되었을 텐데 그런 단어를 능숙하게 통신문에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언어 습관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에 ‘비가 오면’,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제공’이라고 쓰면 격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조선 시대의 어휘나 표현법은 소멸했고, 21세기에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한다.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로서 2018년도에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공중파에서 퀴즈 문제로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기성세대가 언어 순화 운동을 벌인다고 해도 이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관공서에서나 쓰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보다 실정에 맞게 소통하기 좋은 한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꿀팁 5가지가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라, 모르는 어휘는 검색해라, 긴 호흡으로 읽는 독서를 많이 해서 글과 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라,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라, ‘한글 또박또박’이라는 맞춤형 웹 기반 학습프로그램을 활용하라고 한다.그러나 ‘한글 또박또박’은 한글을 모르는 초등 저학년 대상 프로그램이라 사회적 문해력 저하 해결책은 아니다. 또 글과 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어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니, 긴 호흡의 책을 권장하는 것도 넌센스다.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할 수 없다. 이렇게 체계 없는 정책으로는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다고 독후감 경시대회를 열지만, 평소 지도는 해주지 않으니 사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구호 말고 글쓰기 교육처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2024-07-07

디지털 교과서로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유영희 작가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번은 진정한 교사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학습이 문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못 보고 못 듣고 말하지 못하는 헬렌 켈러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게 도왔다. 물론 현대 사회의 대중 교육 상황에서 개인 교사 설리번의 교육을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진짜 학습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런데 내년부터 종이 교과서 대신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한다. 시행 첫해에는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부터 시작하여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국어, 사회, 과학, 기술가정 등의 과목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작년 8월에 나온 AI 디지털 교과서 가이드라인을 보니, ‘500만 명의 학생에게 500만 개의 교과서’를 제공한다는 구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500만 개의 교과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학습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다.코로나 팬데믹 때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낮아졌다는 보고가 많지만, AI 디지털 교과서는 온라인 수업과는 성격이 달라서 섣불리 비교할 수는 없다. 온라인 수업은 종이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소통 채널만 온라인으로 한 것인데 비해, AI 디지털 교과서는 개인별 맞춤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습자의 수준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제공해주는 교과서 자체는 모두 디지털 기기를 통해 공급된다. 그러니 개인별 맞춤 수업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학습 도구만으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게다가 장시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눈도 나빠진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3시간 18분이라고 한다. 잠자는 시간,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면 활동 시간 10시간 중 1/3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셈이다. 디지털 기기에 집중하면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서 눈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니, 디지털 교과서로 수업하면 청소년 눈 건강이 악화될 것은 뻔하다. 게다가 작년에 스웨덴은 디지털 도구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는 유명 의과대학의 연구 결과 발표에 힘입어 디지털 교과서에서 종이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뉴스를 보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더 염려스럽다.사정이 이러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우려하는 국민청원이 있었다. 지난 6월 2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는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 30일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자는 전면적인 디지털 교과서 사용이 서면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보다 객관적, 과학적으로 더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 맞는지 검증하자고 요구헸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부디 국회 교육위원회는 청원자의 바람대로 디지털 교과서가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엄밀하게 검증해주기 바란다.

2024-06-30

늘봄교실 확대가 저출생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유영희 작가 2024년 한국의 출생률이 0.68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3대가 지나면 인구가 소멸할 것이라고도 한다. 어느 보고서를 보니, 2023년 남한의 0-4세 아이 비율이 북한의 절반이라고 한다. 북한의 0-4세는 1천763만 명이고 남한의 0-4세는 1천611만 명이라 숫자는 비슷하지만, 남한 인구가 북한의 두 배이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지난 6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이미 신설하기로 한 ‘저출생대응기획부’의 이름을 ‘인구전략기획부’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출산 장려 정책으로 쪼이기 댄스 장려나 정관 복원 수술비 지원들이 비웃음을 샀고, 여자의 발달이 빠르니 결혼 적령기에 남녀가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학생을 1년 일찍 입학시키는 방법을 언급한 재정포럼 5월호의 연구 논문 역시 조롱을 받은 상황이라 이번에는 효과적인 정책이 나올까 기대했지만, 19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전혀 기대에 못 미친다.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 기피와 저출생의 가장 큰 이유는 주거 불안과 경력 단절 걱정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만이 답이라는 연구도 많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보면,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 보장이 안 된 상태에서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신혼부부를 빚더미에 올려놓거나 그림의 떡인 발상일 뿐이고, 주택을 보유한 남녀가 결혼하면 세금 깎아주는 기간을 늘린다는 정책은 청년 대다수가 무주택자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빈부 격차만 심화시킬 수 있는 대책이다. 학·석·박사 과정 통합하여 일찍 사회에 나가게 한다는 방안도 어처구니 없지만, 늘봄교실 보육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늘린다는 정책은 무자비하기까지 하다.지금까지 초등생이 이용하는 돌봄교실은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 앞으로는 오후 8시까지 맡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늘봄 정책이 나왔을 때도 부모와 자식이 ‘늘못봄’이 되는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한술 더 떠서 초등 1, 2학년생을, 점차 6학년까지 오후 8시까지 교실에서 지내게 한다는 정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의문이다.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서만 지내면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될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늘봄교실에 오후 8시까지 맡기면서 마음 편할 부모도 없을 것이다. 이번 저출생 대책 어디에도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실에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아이는 부모가 늘 대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 부모 역시 그런 시간이 확보되어야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한국의 인구밀도가 높아서 저출생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지금의 출생률 저하 속도는 한국 사회의 위기다.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보호하면서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 제안이 시급하다.

2024-06-23

최강의 노년을 위해

유영희 작가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건강하게 나이들기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나 역시 조만간 고령자가 될 처지라 인지 건강과 신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다. 그런와중에 운 좋게도 며칠 전 내가 사는 지역의 아파트 단지 주민을 위해 ‘치매 예방을 위한 행복 글쓰기’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참석자 중에 7, 80대도 있다고 하니, 그동안 강의와는 완전히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행복한 경험을 회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을 찾아 붙이고 사진 옆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종이 앨범을 준비했다.처음에는 동요 ‘과수원길’을 부르고 가사 중 마음에 와닿는 단어를 골라 앨범에 써보라고 했다. 단어를 쓴 소감을 물으니, 아는 가사인데도 글로 쓰니 새롭고 설렌다고 한다. 아카시아꽃이나 과수원에 얽힌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느 참석자가 부모님이 과수원 농장을 크게 했는데 큰오빠가 과수원을 날려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시집 가야 했다며 깔깔 웃는다. 아픈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그것도 행복한 글이 되었다.다음으로 자유 연상 글쓰기를 했다. 기차 사진을 보고 바로 떠오르는 단어 5개를 쓴 후 그 단어를 활용하여 문장을 만들었다. 그러자 어느 참석자가 엄마와 기차 타고 여행 갔던 생각이 난다면서 어머니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싼다. 그렇게 묻어두었던 감정을 드러내니 이웃들이 따듯한 시선을 보낸다. 강의실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다.임영웅의 노래 ‘바램’은 노년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바람을 노래한 것이다. 이 노래를 선택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바람’은 무엇인지 써보자고 하니, 어느 참석자가 죽는 날까지 두 다리로 걷다가 편안히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 끝내 울먹인다.자신의 정서와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무래도 삶의 굴곡을 겪은 연배이기도 하고 공감하는 이웃이 있어서 글쓰기 수업에 정서적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두 동대표에게 한마디 하기를 청하니, 동대표는 오랫동안 참석자들과 이웃으로 살아왔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이야기를 나누어준 분들에게 감동했다고 깊이 감사 인사를 했다.건강하게 살다가 죽고 싶은 바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재일 한국인 정치학자 강상중은 2009년 발간한 ‘고민하는 힘’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면서 ‘늙어서 최강이 되라’고 한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노년의 힘은 ‘교란하기’에 있으니,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해보자고 한다. 나는 여기에 글쓰기를 추천한다.글쓰기가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고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나 역시 이번 행복 글쓰기 강의를 통해 최강의 노년을 위한 글쓰기가 더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글쓰기라면 금상첨화다.

2024-06-16

상식과 절차를 지키는 정부를 원한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지자체에서 공모한 독서동아리 활동비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뇌과학책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서관에서 30만 원을 받아 뇌과학 박사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었다. 전문가 역량에 비해 강사료를 너무 적게 드려서 민망하던 차에 올해는 지자체에서 5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기에 신청한 것이다.두 달이 지난 4월 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택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서관에서 집행하는 30만 원은 사서가 처리해주었는데,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동아리 대표가 보탬e이라는 사이트에 사업 내용을 다 등록하고 영수증 처리 내용도 올리고 세금까지 직접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올해부터 등록 방식이 더 복잡해졌다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두 번이나 공무원을 찾아가서 해결했다. 집행 방식은 더 복잡해서 결국 담당자가 동아리 대표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예산 변경은 반드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너무 번거로워서 내년에는 지원 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행정 기관에 믿음이 갔다.그런데 정부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 세금 최소 5000억 원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 업체 선정에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와의 계약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액트지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한다. 문제는 액트지오는 2017년에 설립한 후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으며, 대표의 거주지를 회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이다. 50만 원 지원금 사업에도 집행하기 석 달 전에 공고하고 서류 내고 두 달 동안 심사를 거쳐서 합격자를 발표했다. 관공서에서 시설 공사를 계약해도 4억 원이 넘으면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청난 세금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에 경쟁 입찰은 했는지,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깜깜이다.액트지오가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지역은, 이미 세계적인 석유개발 회사 우드사이드가 15여 년간 조사하고 시추까지 하고서도 미래가치 가능성이 없다고 작년 3월에 철수한 곳이다. 그런데 우드사이드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액트지오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했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드사이드 철수 후 나왔다는 한국석유공사의 추가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정부는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서가 모두 기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부는 경쟁 입찰 과정과 액트지오 전문성이 세계 최고라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세금 쓰는 상식적 절차다.

2024-06-09

친족상도례를 보완하자

유영희 작가 가정의 달, 5월이 지났다. 가정의 달은 UN에서 정한 ‘세계 가정의 날’에 영향을 받아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 관련 기념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정의 달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가족 간에 화목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녀들도 많다. 5월이 되면 여지없이 부모의 착취와 학대로 고통받는 자녀들 이야기가 기사에 오른다. 올해 기사에도 딸을 여러 번 신용불량자를 만든 부모가 사위에게도 재산 피해를 주려 하자 인연을 끊고 싶다는 사연이 있었다. 나 역시 모 대학에서 어느 수강생이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서 자주 결석하다가 끝내 학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친족상도례 때문에 부모를 처벌할 수 없고, 어렵게 절연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도 가족에게는 주소지와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가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이다. 친족상도례 때문이다.친족상도례는 고대 로마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관습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문화가 동양의 유교 문화에도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어도 아들이 고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맹자는 순임금이라면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도 숨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형법 제151조 2항에는 친족이나 동거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는 것은 형을 면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친족간 처벌 특례 규정’이다.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항에 의하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친족상도례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재산죄에 적용된다. 형제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고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관계는 동거하지 않아도 재산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방송인 박수홍의 아버지가 형이 한 횡령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2022년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친족상도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정신의학과 의사 이호선은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부부는 ‘하나’가 아니며,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권을 완전히 위임하지도 말고, 친족상도례도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내년 가정의 달에는 친족상도례로 고통받는 자녀들 기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024-06-02

문제는 바로 팩트야

유영희 작가 한 달 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시민팩트체커 활동을 권유하는 메일이었다. 알아보니, 한국팩트체커커뮤니티(Korean Factcheckers’ Commu nity·K.F.C.)라는 단체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미 2015년 미국에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IFCN)가 창설되어 국제적으로 많은 팩트체커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IFCN은 매년 글로벌 팩트(Global Fact)를 여는데, 작년에는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가 공동주관하여 한국에서 열렸다고 한다. 2014년 50명에서 시작했던 글로벌 팩트가 작년에는 대면 506명, 온라인 1,032명이 참여했다고 하니, 그만큼 팩트체크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는 증거일 것이다.K.F.C.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이 된다는 관례에 대해서도 팩트체크되어 있었다.역대 국회의장의 국회의원 당선 횟수를 보면, 6선 의원이 11번으로 가장 많았고, 초선 의원이 맡은 적도 4번 있다. 다수당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역임한 사례는 의회 역사를 통틀어서 6번이었다. 이런 검증 결과, 관례적으로 최다선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았다는 진술은 사실이 아니었다.이 사례를 보면서 나도 국회의장이 권력 서열 2위라는 우상호 의원의 말을 검증해보았다. 찾아보니, 권력 서열이라는 용어는 없고 의전 서열만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미 4년 전에 YTN에서 팩트체크해놓은 것이 있었다. 의전 서열은 관례로만 있을 뿐 문서화된 공식적 의전 서열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의문이 풀렸다.IFCN에서는 팩트체크를 할 때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준칙을 만들었는데, 첫째가 비정파성과 공정성이다.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한다. 둘째는 취재원을 밝혀야 하고, 셋째는 팩트체크하는 기관의 재정과 조직이 투명해야 한다. 넷째 검증 방법도 투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팩트체크는 한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정직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잘 수행하면 팩트체크 인증기관이 된다고 한다.팩트 인식의 중요성은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한스 로슬링 등의 저서 ‘팩트풀니스’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출제한 문제 13개가 있는데, 맞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나도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이렇게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느낌’과 ‘현실이 아닌 환상’에 근거하여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면서, 사실에 근거하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줄어든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정치 경제뿐 아니라 일반 사회 분야에서도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거짓 정보가 너무 많다. 한쪽 입장만 듣고 쉽게 격앙하지 말고,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양한 미디어를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거짓 정보에 휩쓸릴 가능성은 많이 줄어든다. 스트레스와 절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민의 팩트체크 활동은 정말 필요하다.

2024-05-26

국회가 민주주의의 꽃이 되려면

유영희 작가 작년과 재작년 두 해에 걸쳐 내가 사는 지방 의회에 의정 감시단으로 활동했다. 다음 해 예산을 심의하는 자리였는데, 질문도 잘하고 대안도 제시하는 의원이 있는 반면, 예산 계획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질타만 하는 의원도 있었다. 의장의 태도도 회의 진행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의장이 균형을 잡아야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작은 지방 의회에서도 의장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국회의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의장의 자리는 말할 것도 없겠다. 매일 참석한 것은 아니지만 뜻깊은 경험이었다.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2대 1기 2년 임기를 수행할 국회의장 후보로 우원식 의원을 선출했다. 정식 국회의장 선출은 6월 초 국회 개원 후 이루어지므로 지금은 후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사실상 국회의장이 되는 셈이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선택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그런 와중에 투표 4일 전, 후보로 나선 정성호, 조정식 두 의원이 추미애로 단일화한다며 갑자기 사퇴하여 국민의 빈축을 샀다.그렇게 추미애 국회의장이 확실한 줄 알았는데 뜻밖에 우원식 의원이 후보로 선출되어 논란이 가중되었다. 이미 4월 29일 여론 조사에서도 추미애 국회의장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예상 밖의 결과에 추미애 강경 지지파들은 당심이 민심을 저버렸다며 탈당까지 하는 등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반대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하는 입장도 있다. 최다선 연장자가 국회의장을 맡았다는 관례를 금과옥조로 받든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통하기 어렵다는 말도 이들의 말은 맞다. 우원식도 5선이나 한 국회의원이고 나이는 추미애보다 한 살 많으니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추미애 의원의 강성 캐릭터 때문에, 팽팽한 여야 대치 상태의 현 정국을 잘 이끌어갈지 의문을 가진 사람도 많다.국회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협치 능력은 중요하다. 우원식 후보의 과거 행적을 보니, 2017년 당시 원내대표였을 때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를 인준하는 자리에 협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국민의힘 당색이었던 초록색 넥타이를 매자고 주문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다. 반면, 추미애 의원은, 6선이라고 해도 직전에 의원은 아니어서 불리한 점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는 등 예측하기 힘든 모습도 보여 불안하다는 평가도 일리가 있다.무엇보다 진행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중요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처음부터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중도 사퇴를 작정하고 출마한 사람도 있었다. 어느 당이라도 이런 행태를 더 이상 국민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같은 당 안에서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이 안 되었다고 탈당한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의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우원식 의원에게 기대해본다. 임기 동안 국회의장으로서 민주주의 원칙을 실천하기 바란다.

2024-05-19

분노가 오해 때문이라고요?

유영희 작가 포털에서 갑자기 ‘라인’ 매각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카카오톡처럼, 네이버에서 개발한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이다. 라인은 오래전 몇 번 써본 경험이 있어, 무슨 일인가 궁금증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살펴보았다. 잘 알지 못하던 사건이라도 인터넷을 검색하여 기사나 뉴스를 최소 10개 정도라도 찾아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알게 된다.이번 라인 사태는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게 네이버와 지분 관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분 관계 개선이란,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의 라인야후에게 매각하라는 뜻이다. 이미 2021년부터 일본 정부는 네이버의 보안 소홀 문제를 트집 잡고 있던 터였는데, 작년 8월과 11월에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유일한 한국인 이사였던 신중호 CPO를 이사에서 사퇴시켰는데, 문책이라는 의혹이 많다고 한다. 4월 29일 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총무성의 조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행정지도일 뿐이라며 정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닌 것처럼 선을 그었다.그러나 이 문제는 ‘라인 사태’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하여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분 뺏기로 보안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데다, 일본에서 선례를 남기면 다른 나라에서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 역시 지난 9일 조국혁신당의 이해민 홍보위원장이 급하게 했다는 기자 회견을 보니, 절반의 궁금증은 모두 걱정으로 변했다. 한국 외교부가 일본 총무성에 요청하기를, 라인야후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해라고 한국 언론에 전화라도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해라는 말을 들으니, 언젠가 정부는 잘하고 있는데 국민이 오해하고 있다던 기사가 생각나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이번 사태의 대응책을 찾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는 일본 총무성이 3월과 4월 연달아 행정지도를 했는데, 정부는 왜 5월 10일에서야 유감 입장을 내놓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라인 사태는 정말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이고, 그래서 네이버가 요청해야만 지원할 사안인가 하는 것이다.그동안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을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에 상당히 신경 썼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라인을 한국 기업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애매하게 지분을 50 대 50으로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네이버 입장문을 읽자니, 글자 하나하나 얼마나 신중한지 한눈에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요청을 기다린다는 것은 얄팍한 핑계이다.더 중요한 문제는, 라인 사태가 민간 기업 간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총무성에서 라인야후에 지분 관계 시정을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민간 차원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니 정부가 이것을 민간 기업 문제라고 나서지 않는 것은 책임 회피일 뿐이다. 술 나눠 마셨다고 친구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정부는 현실을 직시하고 똑바로 대응하기 바란다.

2024-05-12

핵개인 시대에 가족의 의미

유영희 작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을 거쳐, 21일에는 부부의 날로 마무리된다. 그 중간에는 스승의날까지 있다. 여기저기서 가족 모임을 한다고 분주하다. 자식이 결혼하면 아무리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분가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기념일이 있을 때면 모두 약속을 잡는다.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에 모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배우 전원주 씨가 금쪽상담소에 나와서 돈은 있어도 외로워서 자식과 살고 싶은데 어느 자식도 자신과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전원주 씨처럼 나이도 많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서운함에 많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나이 든 부모가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2022년 통계만 보아도 3세대 가구는 3% 정도뿐이다. 반면, 1인 가구는 34%를 넘었고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전원주 씨 사례 영상 댓글에도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는 의견이 거의 전부다.이렇게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 대해 송길영은 ‘시대예보’에서 핵개인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2세대 가구를 핵가족이라고 불렀다면, 1인으로 살아가는 시대는 핵개인 시대라면서, 사람들이 점점 똑똑해지고 오래 살게 되기 때문에 핵개인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인간의 적응력은 뛰어나니 이런 시대가 와도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아닌 위로도 곁들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핵개인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잘 적응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직장을 다니는 젊은이도 1인 가구의 고립감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연결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족 같은 강한 연결도 삶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인터넷에서 만나는 약한 연결도 사회적 소속감을 부여해주는 토대가 된다. 아즈마 히로키 역시 ‘약한 연결’이라는 책에서 전통 사회 가족 유대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만, 세계화라는 세상의 변화 앞에서 강한 연결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신, 약한 연결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인터넷도 검색을 잘하면 충분히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현실 공간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내 경우는, 어차피 5월에 생일이 있는 딸도 있어서 어버이날은 따로 신경 쓰지 말라고 진작에 다짐해두었다. 그 생일 기념도 일부는 온라인으로 한다. 유럽과 호주에 떨어져 사는 어떤 가족은 영상통화로 만난다고 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상황이 변하니 새로운 방식을 찾게 된다. 핵개인 사회에 적응하기를 강조하다가 자칫 고립되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사람에게는 약한 연결은 물론이고, 가족 관계 같은 강한 연결도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연결의 방식과 형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핵개인화되는 시대에서도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려면, 자신의 정서적 욕구를 잘 인식하고 가족이라는 강한 연결을 상황에 맞게 조화롭게 이어가야 한다.

2024-05-06

25만원의 얼굴

유영희 작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총선 기간에 발의한 전 국민 25만 원 지역 화폐 지급에 대해 논란이 많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개혁신당과 민노총,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사까지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고물가, 고금리 상황에서 실질소득을 보충할 필요가 있으며, 지역 화폐라서 실질적인 민생 회복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19 때 재난지원금 14조 원 이상을 풀었지만 전체 투입 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났을 뿐이고, 고소득 계층은 소비 변화의 폭도 크지 않았다고 하면서, 전 국민을 지원하는 방식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이런 논란을 보면서, 나에게 25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기에 주면 좋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단 1회만 주는 25만 원으로는 실질소득 증가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13조 원의 예산을 이렇게 써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미 작년 재정적자가 87조 원이라고 하니 더 걱정스럽다.그래서인지 13조 원으로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용혜인 의원의 보충 설명이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반대입장과 맞장토론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다가 인플레이션 공부까지 하게 된다.총 6부로 진행되는 EBS1의 ‘돈의 얼굴’ 중 지난주 방영된 3부 ‘돈이 떨어졌습니다’에서는 인플레이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영상에 나오는 어느 노동자는 월급이 80만 원일 때가 더 행복했다면서 지금은 월급이 두 배로 올랐지만 물가는 더 올라서 오히려 그때가 더 좋았다고 말한다.실제로 제작진은 M사 햄버거 가격 변동을 보여주며 인플레이션의 위력을 증명해준다. 1960년에는 45센트로 햄버거 한 개를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12분의 1조각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우리 삶이 팍팍해졌나 하는 의문도 든다. 이런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이 영상에 흥미로운 댓글이 달려 있다. ‘지금은 부모 세대보다 노동시간이 줄었고, 지난 50년간 명목 임금은 100배 이상 올랐으며, 공산품 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임금 상승 비율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아졌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주요 원인은 물가가 아니라 집값, 정확하게는 땅값인데, 서울의 강남 땅값은 3천 배 올랐다.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니라 욕망이 많아졌다.’ 실제로 2020년 동아일보에도 짜장면 50배, 돼지고기 133배 오를 때, 1인당 소득은 415배 늘었는데, 그래도 통장이 텅장 되는 이유는 집값과 소비 욕구 때문이라고 분석해놓은 기사가 있다.이런 자료를 보면, 25만 원이라는 지원금이 인플레이션 조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87조 원 재정적자 상황에서 13조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고, 매출 증대 효과가 미흡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 혹시나 돈을 풀어서 정부만 이득을 본다는 토마스 사전트 교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원금 방식은 더욱 신중해야 할 일이다.

2024-04-28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2주 전부터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에서 자살 예방 특강 영상을 릴레이로 올리고 있다.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를 필두로, 우울증을 앓는 아내를 7년간 돌본 최의종 작가, 뇌과학자 장동선과 김용 전 세계은행총재가 출연하여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 자살하고 싶은 사람을 돌보는 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다 조회수가 많지만, 최의종 작가 영상은 77만회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이다.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20년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홈페이지에 가면, 자살자의 연령별, 성별, 직군별 등 다각도로 분석된 통계를 볼 수 있다. 2022년 한국 자살률은 24.1%로 OECD 평균 10.7%의 두 배가 넘는 부동의 1위지만, 그나마 자살률이 감소하는 추세라 다행이기는 하다. 2012년 한국의 자살률 30.3%보다 6%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살률 감소는 세계적인 흐름이고, 2012년 한국과 비슷하게 30.1%였던 리투아니아가 10년 후 18.5%로 줄어든 것을 보면 마냥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 경제적 곤란, 치료가 어려운 질병 등 자살의 원인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한국이 이토록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살률을 낮추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긴급한 화두다.눈에 띄는 것은 연령별로 자살 원인이 다르다는 것인데, 고령층의 자살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질병이다.‘2020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과 ‘경제적 어려움’(23.0%)이라고 하는데, 의료비 지출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하는 큰 요소이다. 그러니 80대 이상이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리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이 117.9%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자살은 남은 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혼자 외롭게 고통스럽게 죽는 일이지만, 안락사는 가족의 합의를 얻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평화로운 죽음이다. 오남용의 여지는 제도적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에서는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를 가족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네덜란드는 삶의 질 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국민의 4%가 안락사로 죽음을 맞는다는데, 올해 1월에는 병을 앓던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최근에는 중증 치매 환자의 안락사도 허용했다고 한다.극단적인 저출생 현상과 함께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률은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이 얼마나 나쁜가를 보여준다. ‘세바시’ 영상처럼 우울증 치료도 중요하지만,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안락사 허용은 필요하다. 그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안락사는 자살이 아니다.

2024-04-21

취리히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눈물을 쏟은 이유

유영희 작가 여행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도 많지 않아서 국내 여행도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며칠 전 멀고도 먼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딸이 취리히로 떠난 지 3년이 되도록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하면 아름다운 자연과 부자 나라라는 이미지만 있었는데, 직접 가보니 검색으로 깨닫기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이 사는 동네는 물론, 취리히 시내에서도 한두 명의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부모들이 정말 많았다. 알고 보니 스위스 출산율도 아주 높은 편은 아니어서 한동안 1.5를 유지하다가 2022년에는 1.3으로 내려갔다는데도, 정말 아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못지 않게 대중교통도 놀라웠다.취리히 시내는 모두 버스, 트롤리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는데, 출입문이 두 사람이 동시에 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거기에다 차가 정차할 때 튀어나오는 발판이 승강장과 수평이 되어 승차할 때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었다. 한국도 저상 버스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취리히의 모든 버스는 저상이었고 승강장과 발판 간격이 거의 맞붙을 만큼 좁아서 더욱 안전했다. 스위스 경계 내 기차도 같은 방식이었다.출입문이 충분히 넓은 데다 단차도 없고 틈도 없으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유아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버스를 탈 수 있다. 게다가 휠체어를 탄 사람이 승강장에 있으면 버스 기사가 내려서 휠체어가 타기 좋게 더 넓은 발판을 펼쳐주고 휠체어를 밀어준다.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에는 장애인 승차 가능 여부가 표시되는데 거의 모든 버스가 장애인 승차가 가능하다.한층 더 놀라운 것은 버스나 열차를 탈 때 매번 카드를 태그하지 않고 그냥 타고 내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료는 아니고, 여행객은 프리패스권을 사고, 취리히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정기권을 결제하거나 앱이나 정류장에서 구매하는데, 버스 안에 태그하는 기계가 없는 것이다. 아주 가끔 불시에 승차권을 검사는 하고, 걸리면 요금의 20배정도 벌금을 물린단다. 벌금이 무서워서인지 명예를 중시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스템이 취리히에서는 잘 운영된다고 한다. 이렇게 매번 카드를 태그하지 않는 편리함은 상상을 넘는다. 짐이 많거나 어린아이를 동반하거나 몸 균형을 잡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승하차 때 카드를 꺼내는 일은 정말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딸에게 스위스의 풍경보다 취리히 대중교통의 편리함에 감동받았다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장애도 없고, 나이가 들면서 승하차 불편감을 조금 느끼는 정도인데도 이 편리함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는데, 실제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지 사무쳐왔기 때문이다. 전장연 시위 때 그들의 불편에 더 공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들었다.며칠 전 22대 국회가 구성되었다. 물가는 물론이고, 더 많은 민생의 삶을 구석구석 세심하게 살피는 정책 입안에 여야 모두 마음을 모아 노력해주기 바란다.

2024-04-14

군자의 의리, 소인의 의리

유영희 작가 며칠 전, 국민의 미래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일러 정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가져온 사람을 차마 박절하게 끊지 못했다고 변명한 것을 옹호했다.또 마피아도 부인과 아이는 안 건드린다면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비판을 너무 심하다고 비난했다.이런 뉴스를 듣자니 중국 고대의 재상 관중이 생각난다. 관중은 관포지교라는 사자성어로도 유명한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이다. 제나라의 군주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포숙아가 모시던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들어와 환공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전에 관중은 자기가 모시던 규를 군주자리에 앉히려고 소백을 죽이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포숙아는 관중을 소백에게 추천했고 환공 역시 자신과의 사사로운 관계는 잊고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의 국력을 키웠다.이러한 관중의 처세에 대해 공자 제자들과 공자의 의견이 갈린다. ‘논어’헌문편에서, 자로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도 관중은 따라죽지 않았으니 어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자는 관중 덕분에 환공이 제후를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관중을 어질다고 평가한다. 자공 역시 자로 편을 들면서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를 따라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원수에게 충성했으니 어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자는 관중이 없었으면 한족은 모두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관중이 어질다고 옹호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개인 관계의 작은 도리에 연연하는 것은 필부의 의리이고, 백성을 위한 큰 의리를 실현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라고 부연한다. 이것을 군자의 의리와 소인의 의리라고 한다.한편, 군자와 소인의 차이에 ‘논어’ 위정편에서 군자는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이익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하고, 맹자 역시 어떻게 하면 이익을 키울 수 있느냐는 양혜왕의 질문에 군자는 이익이 아니라 의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맹자도 의리란 결국 군주가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의리와 이익이 서로 관계가 깊다고 보충한다.정은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교감이므로 정이 많다는 것은 자기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이건 대통령 부인이건 모두 공인 중의 공인이므로 사사로운 정보다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의와 공정에 힘써야 한다. 공직에 뜻을 두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출마한 인요한 선거대책 본부장이 정이 많은 것을 약점이라고 포장하면서 옹호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와 소인의 의리를 혼동한 처사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사사로운 관계를 무조건 끊어야 한다고 하기도 어렵고, 정이 많은 것을 나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다만, 사사로움을 확대하여 그 다정함을 누구를 위해서 사용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공직에 있거나 공직을 꿈꾸는 사람은 자신의 다정함과 즐거움을 얼마나 많은 사람과 나누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2024-04-07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유영희 작가 4월 10일, 22대 총선일이 열흘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구호를 내걸고 표심을 얻기에 분주하다. 어떤 이는 진작에 마음을 굳혔겠지만, 아직 표를 줄 정당과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도 많다. 처음부터 판세가 결정된 지역도 있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전지도 있다. 그러니 투표일까지 유권자는 두 눈 크게 뜨고, 두 귀 활짝 열고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주시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이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정당의 정책과 인물을 보고 자기 이익에 기반해서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투표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지배 집단이 지배 집단을 위해 투표하는 일이 종종 있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도 캔자스 등 낙후된 지역 주민들이 공화당에 표를 주는 현상에 주목했다.이런 현상에 대해 뉴욕대 심리학 교수 존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을 통해서 사람들 대다수는 현 상태를 옹호하고, 강화하고, 정당화하도록 동기화 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화되는 이유는 많고도 복잡하다. 그중에 내가 관심 있는 방식은 양가감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집단과 자기 집단에 대해서 모두 양가감정이 높다는 가설이 검증되었다. 양가감정이 높다는 뜻은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다 있다는 것이다.존 포스트가 보여준 여러 실험에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비난하면서도 선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이런 현상은 빈부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흑인과 백인, 명문대와 비명문대 등 사회적으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되는 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데에는 문화적인 고정 관념도 중요하게 작동한다고 한다. 존 포스트는, 찰스 디킨스가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크래칫 가족을 통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고정 관념을 만들었다면서 이런 고정 관념이 사회에 널리 퍼지면 약자인 당사자도 그것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 대다수 사람이 양가감정을 비롯한 인지부조화에 휘둘리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관성이 없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런 식의 양가감정에 지배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인터넷의 발달이 언제나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양가감정에서도 자유로워지고 교차검증을 통해 합리적인 사고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정책과 비전에 입각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왔다. 돌아오는 4월 10일에 그 능력을 발휘해보자.

2024-03-31

공허한 자유는 이제 그만

유영희 작가 지난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에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화상으로 열렸다. 미국에서 열린 1차 때부터 화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회의 환영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고 강조했다.그런데 같은 날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사퇴했다. 황상무 전 수석이 MBC 잘 들으라며 1988년 정부에 비판적 기사를 쓰다가 회칼 테러를 당한 기자 이야기를 농담거리 삼아 했기 때문이다.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사퇴는 했지만,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라는 자리에 있는 인물이 기자들 앞에 두고 정부를 비판한 기자가 테러 당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한다는 것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존중한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애당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그것뿐이 아니라 지난 1월과 2월에는 세 사람이 입틀막 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 보았다. 1월 18일 전북자치도 출범식에서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외치던 강성희 의원이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나갔고, 2월 16일에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던 졸업생이 입틀막 당하고 끌려 나갔으며, 2월 1일에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임현택 소아청소년과 회장이 필수 의료 의견을 전달하려다 역시 입틀막 당한 채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갔다.이런 시절이고 보니, 지난 3월 7일 발표된 브이뎀 보고서에서 한국이 0.6점을 받아 세계 179개 나라 중 47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를 보아도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브이뎀은 민주주의 다양성(Variety of Democracy)의 약자인데, 이 보고서는 스웨덴 예텐보리 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에서 발행하고 있다. 전 세계 4천200명 이상의 전문가가 민주주의 이슈와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어서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채점 기준은 선거·자유·참여·심의·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5가지 상위 원칙이다.이 기사를 보고 직접 브이뎀 보고서를 찾아보니, 2003년부터 2023년까지 자유민주주의 지수 변화가 극적인 나라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선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에 한국은 벨 형 탑 10에 포함되었는데, 2015년 0.6점에서 2018년 0.8점으로 13위로 올랐다가, 작년에는 0.73으로 28위더니 올해는 더 내려가서 2015년 점수로 회귀하여 47위를 기록하여 U자를 엎은 벨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특히 언론 자유가 눈에 띄게 위축되는 20개국에 포함되었다고 한다.1에 가까울수록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이고 0에 가까울수록 독재 국가다. 어떤 사람은 0.6도 높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 42개국 중에 꼴찌라는 점, 0,8을 기록한 시절이 있었는데 퇴보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유는 소수에 의해 자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도 아니다. 공허한 자유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

2024-03-24

커밍아웃이 필요 없는 세상

유영희 작가 ‘삼국유사’에는 임금님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기 전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의 교훈은 권력자의 횡포로 읽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님 같은 권력자라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남들이 알까, 장인이 발설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권력자라도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하거나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이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혼자만 또는 아주 극소수만 알고 있다면, 그것을 지키는 데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정보가 알려졌을 때 자신이 심한 피해를 보게 된다면 그것을 말하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에너지는 몇 배 가중될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들도 있지만,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커밍아웃의 부담을 개인이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간다.치매 역시 너도나도 밝히기를 꺼리는 질환이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 환자가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대처 방법을 눈여겨보게 된다. 김웅철의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의 첫 장에는 스타벅스가 어떻게 치매와 만나는지 소개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은 물론, 치매 당사자와 간병인, 전문가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모여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 하면서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이것은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치매 정책 5개년 계획에 2025년까지 일본 전역에 치매 카페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세운 후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공공시설이나 빈 가게를 활용하다가 최근에는 스타벅스가 나서서 치매 카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쿄 근처 마치다 시에는 치매 카페를 의미하는 D-카페 푯말이 붙은 스타벅스가 8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령의 치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일상의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라고 한다.치매 카페에서도 이들을 특별히 따로 구분하지 않아서, 일반 손님과 자연스럽게 섞여 어울리니 주민들도 치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스타벅스는 이것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장소로 운영한다고 한다. 일본 상황을 잘 아는 지인에게 들으니, 일본에는 치매 환자들의 토론대회도 있다고 한다.2021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 85세 이상은 40%라고 하니, 더 이상 쉬쉬할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주변에는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누가 진단이라도 받는 날이면,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치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환자를 일상에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그들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당나귀 귀처럼 생긴 귀를 가지고 있어도 기꺼이 두건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2024-03-17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유영희 작가 어르신이라고 불릴 나이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요즘 어르신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존칭의 의미를 담았다고는 하나 실제 사용할 때는 사회적 약자한테만 쓰는 말처럼 들린다. ‘어르신’이라고 또박또박 발음해주면 그나마 그런 기분이 덜할 텐데, ‘어르신’을 ‘으르신’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부를 때는 대부분 톤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귀도 잘 안 들리는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가만히 보면, 나이별로 붙이는 이름의 형식이 다 다르다. 대략 초등학생까지는 어린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부터, 청년과 중장년까지는 시기를 나타내는‘년’으로 부르다가 65세 이상 노년은 갑자기 ‘어르신’으로 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어른’은 중장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기계적으로 볼 수는 없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용례에서처럼, ‘어른’은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여기서도 ‘어르신 김장하’라고 하지 않았다.그러니 ‘어르신’은 ‘어른’의 높임말이라기보다는 ‘늙은이’의 높임말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단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같은 ‘이’라도 ‘어린’에 붙으면 높임, ‘늙은’에 붙으면 하대처럼 보인다. 국어사전을 보면, ‘어린이’는 ‘어린 아이’를 높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젊은이’는 그나마 가치중립적으로 그저 젊은 나이대 사람으로 생각되는데, ‘늙은이’는 폄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늙은이’는 대부분 욕으로 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단어가 ‘어르신’일 것이다.애당초 어른이라는 명사에 어떻게 ‘시’를 붙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어 찾아보니 ‘어르신’의 어원은 16세기 ‘얼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얼운’은 동사 ‘어르’에 사동접미사 ‘우’와 관형사형 어미 ‘-ㄴ’이 붙은 것이고, ‘어르신’은 거기에 존칭을 의미하는 선어말어미 ‘시’를 붙인 것이란다. 그러고 보면, 어르신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고 족보가 있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어르신’이 ‘어른’보다 낮춤말 같이 느껴진다. ‘어르신’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 관계에서 마음을 담아 사용하는 존칭을 보통명사로 만들어서 존대의 의미를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르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존대의 마음을 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에다 우리 사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의 지위는 한없이 처량하다. 빈곤율 세계 1위는 말할 것도 없고, 65세만 넘으면 갈 곳이 없다. 호칭만 어르신이지, 그에 걸맞은 처지도 아니고 대우도 없다. 그저 호칭 인플레만 고공행진일 뿐이다. 이러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달가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어른’이 백번 낫다.공식적인 명칭에 존칭을 붙이는 해괴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좋게 보면, 긍정적 차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실속 없는 ‘긍정적’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긍정적 차별도 차별이다.

2024-03-10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의 출산 정책을 보며

유영희 작가 두 딸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출산을 하지 않았다. 더 미루다가는 임신이 안 될까 걱정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둘 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육아 부담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치러지는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출생률 높이기 정책에 눈길이 더 간다.통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이다. 2022년만 해도 0.78명이었는데 1년 사이에 더 훅 떨어진 것이다. 2005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시행했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결혼은커녕 연애도 포기한다고 하니, 출생률 높이기는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렇게 초저출산이 계속되는 것은 경제적 부담과 육아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옛날에는 더 가난해도 아이만 잘 낳았다는 ‘라떼 레퍼토리’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작년 12월에 발표된 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니, 한국 젊은이들의 형편이 얼마나 열악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2022년 현재 25∼39세 고용율을 보면, OECD 평균은 87.4%인데 우리나라는 75.3%이고, 그나마도 청년층 비정규직 비중이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하였다. 이런 물리적 조건을 보면, 우리나라 MZ세대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활비 우려와 재정 상황 불안도 45%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글로벌 MZ 세대의 불안도는 32%라고 한다. 반대로 재정에 대해 안정감을 느끼는 한국의 MZ세대는 31%이고 글로벌 평균은 42%이다. 우리나라 도시인구 집중도는 431.9로 OECD 평균 95.3의 4배가 넘고, 우리나라 여성 고용은 OECD평균 87.2%에 비해 매우 낮은 75.8%다. 게다가 OECD 육아 가능 기간과 이용률은 61.4인데, 우리나라는 10.3이다. 이러니 출산하는 사람이 신기할 지경이다.각계 전문가들이 진단한 초저출산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니, 각자 자기 전공에 치중하는 느낌이 든다. 육아 전문가는 아이가 소비재로 전락한 현상을 원인으로 들고, 인구학자는 대도시 집중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 안정이다. 고용이 안정되면, 주거 문제도 해결되고 육아 부담도 완화된다. 지방에서 고용이 창출된다면 인구도 분산된다.그런데 양당의 저출산 대책을 보면, 현금 지원성 대책이 많다. 여당은 10조원, 야당은 28조원의 예산을 잡고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며 만든 여당의 ‘늘봄’ 정책은 부모와 아이가 ‘늘못봄’ 정책이라며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고, 제1야당의 1억 대출 역시 미봉책이다. 도대체 그 1억을 10년 만에 어떻게 갚을 것인가? 그보다 세수 감소로 올해 각종 예산도 다 삭감한 마당에 이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법률적 부부에게만 지원하는 정책만으로는 출생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선진국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하려면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해주기 바란다.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