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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저작권료는 저작자의 목숨줄

유영희 작가 강의에 사용할 작품을 찾기 위해 여러 책을 찾아본다. 그중에는 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있다. 학창 시절에 배운 작품도 다시 발견하고, 새로운 작품도 많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교과서나 참고서에서 만나면 오직 시험공부의 대상이라는 생각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이 들어 다시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성인을 위한 글쓰기 강의에서 교과서 작품을 인용하는 이유다. 중고생 참고도서도 본다. 그런데 몇 년 전 청소년 참고서에 실린 글의 저자 P 씨를 만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니 그는 자기 작품이 사용된 줄 전혀 몰랐다며 깜짝 놀란다. 그 참고서를 낸 출판사는 내로라하는 국어교육계 교사들이 편집진으로 참여하는 곳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며 함께 통탄하고 안타까워했다. P 씨가 그 출판사에 저작권료 요청을 하지 않겠다고 바로 마음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 미리 알려만 줬으면 저작권료를 안 받는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갑자기 이 기억이 소환된 것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품이 교과서에 11곳 사용되었음에도 저작권료를 한 푼도 못 받았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었기 때문이다. 비단 한강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저작권료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특이한 저작권료 지급 방식 때문이다. 저작권법 제25조 1, 2에 따르면, 공개된 저작물은 초중고등학교를 위한 교과용 도서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출판사는 저작권료를 작가에게 직접 지불하지 않고 저작권법 제25조 6에 따라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문저협)에 지급하면 문저협에서 작가에게 지급한다. 왜 이런 방식을 채택했는지 궁금해서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를 검색해보니, 저작자 권리보호 및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으로서 2000년에 설립되어 문학예술 저작물의 저작(재산)권리를 신탁받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는 국정 한 가지이지만,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검정, 인정으로 구분되어 발행하고 고등학교 교과서만 해도 11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교과서에서 자기 작품이 교과서에 실렸을 것을 생각하고 조사할 작가는 없을 것이다. 작가들은 자기 작품이 교과서에 실렸는지 모르고 있으니, 알아서 청구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문저협이 작가에게 적극적으로 통보하지 않으니,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문저협이 저작권료를 중간에서 착복하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이번에 한강의 작품에 저작권료가 문제되자 문저협은 “한강 작가의 연락처를 몰라서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급하지 않은 저작권료가 104억 원이나 된다니, 지급받지 못한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문저협은 저작자의 생계와 직결되는 저작권료를 제대로 지급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는 것이 더 책임 있는 태도이다. 작품을 사용하는 출판사가 작가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있겠고, 문저협이 저작자 명단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겠다. 저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우리 문화 발전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2024-10-20

쓰기의 기술, 삶의 기술

유영희 작가 시를 전공한 선생님에게서 글쓰기를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시 쓰기를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동안 몰랐던 시적 표현의 압축미와 비유에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철학이 전공이다 보니, 논리를 강조하는 글을 써왔고 글쓰기 강의에서도 주로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묘사로 정확한 의미 전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시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를 들면, “엄마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세탁대에서 빨래를 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오랫동안 손을 물에 담가 비누 거품을 많이 낸 다음 옷의 물기를 짜 줄에 널었다. 그러고는 집게로 고정했다. 무슨 옷이나 그렇게 차례대로 빨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파울랴베르 박사댁의 빨래를 맡아 했던 것이다.” 같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강조했다. 반면, “글이 어려운 만큼 글을 사랑하게 된다. 춤이 힘든 만큼 춤을 사랑하게 된다. 피아노가 두려운 만큼 피아노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아노가 두려운 것이다.”와 같은 글을 모범으로 삼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감성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부정적으로 본 이유는 이런 방식이 개인을 닫힌 존재로 남게 하고 의사소통에도 방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어교육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이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와 표현주의적 글쓰기를 두고 논란이 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의 글쓰기가 의사소통에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이수명 시인이 쓴 산문집 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글이 움직이다가 형체를 이루거나 시처럼 이미지가 형성되려고 하면, 돌아나와 느슨한 호흡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글쓰기가 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맞는데, 몇 마디의 언어, 몇 줄의 글에 내가, 하루가 의탁한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보면, 작가와 깊게 맞닿는 느낌이 든다. 지난 10일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한국을 흔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자 바로 한강 작품에 실린 시적 표현들이 기사로 올라왔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나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흰’)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런 표현은 곱씹어야 하기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고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시간은 걸리지만, 이런 글은 삶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더 감동적으로 전달해준다. 이런 시적 표현은 평소 작가의 깊은 문제의식과 절실함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거친 말, 거친 글은 물론이고, 평평하고 밋밋한 글쓰기도 결국은 삶에 대한 얄팍한 태도에서 나온다. 그런 글쓰기로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없다. 쓰기와 살기는 하나다.

2024-10-13

해임할 결심 후

유영희 작가 이번 가을에는 뜻깊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서삼경 중 가장 처음 공부하는 경서인 ‘대학’을 원문으로 읽는 수업인데, 20대부터 60대가 함께하고 있다. 한문 고전을 처음 접하는 수강생도 있고, 격몽요결을 읽고 온 수강생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 뜯어보고 곱씹으며 의미를 발견하는 중이다. ‘대학’은 ‘예기’라는 중국 고대 문헌에 들어있는 짧은 정치 에세이이다. ‘예기’에는 ‘대학’과 ‘중용’을 포함하여 모두 49편의 글이 들어 있는데, 저자를 확실히 아는 작품은 별로 없다. 공자 제자인 증자가 ‘대학’을 썼다는 전통적인 주장도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지금은 작자 미상의 상태나 다름없다. 그러나 작자와 저술 연대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대학’의 저자는 ‘시경’이나 ‘서경’ 등 고대 문헌의 구절을 인용하고 나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시경에 나오는 “아아, 돌아가신 왕을 잊을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는 왜 사람들이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다. 여기서 ‘돌아가신 왕’은 주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문왕과 실제로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다. 군자(통치 계층에 있는 사람들)는 돌아가신 왕이 등용한 사람이 모두 현명하고, 가족과도 화목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하고, 소인(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왕의 복지 정책과 경제 정책이 좋아서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역사를 보면, 군자와 소인이 문왕과 무왕을 잊지 못하는 최종 이유는 상나라 주왕의 폭정에서 백성을 구했기 때문이다. 주왕의 이름은 제신인데, 폭군으로 악명이 높아 죽은 다음에 주(도리를 잃고 선을 해치는 사람)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주왕의 폭정이라면, 간신만 옆에 두고 예쁜 여자 달기에 빠져 정치를 소홀히 했다거나, 주지육림을 즐겼다는 주왕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주왕에 대한 전통적 평가였지만, 그보다는 상나라의 무리한 영토 확장 정책에 주변 제후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견해도 많다.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든 상나라의 무리한 정책이든 무왕에게는 상나라 정벌의 좋은 명분이 되었고, 후대에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은 것이다. 한편, 아무리 주왕이 타락했다고 해도 무왕의 상나라 정벌은 당시에도 백이숙제에게 비판받았고, 후대에도 두고두고 무왕의 정복 전쟁이 최선이었느냐는 논란이 이어졌는데, 이런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3년 전 60평생 처음 장만한 낡디낡은 작은 집 한 채로 주택조합에 가입했는데, 최근 조합 운영에 명백한 문제를 발견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해임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가 보류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중이다. 누구를 응징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잘 짓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여야 정치인 모두 국민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2024-10-06

정치인의 토론에서 무엇을 배울까

유영희 작가 지난 24일 1069회차 ‘100분 토론’ 주제는 “‘영부인 리스크’… 그 끝은?”이었다. 이번 방송에는 강승규,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 두 명과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패널로 나왔다. 토론은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의 진실, 명태균 수사 필요성,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기소, 특검법 통과, 마지막이 영부인 리스크 대처 방안이다. 사실 토론 방송을 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패널들의 비신사적인 토론 태도를 보면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각자의 입장을 밝히는 시간이라 그런지 차분하게 발언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난투 상황이 벌어졌다.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 씨의 텔레그램 소통이 공천 개입의 증거냐 아니냐 하는 대목에서 갑론을박이라고 할 수 없는 어지러운 입씨름이 벌어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기소 문제에서는 토론의 질이 더욱 떨어졌다. 특히 강승규 의원은 사실관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발언은 물론,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도 폈다. 예를 들면,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사건 관련은 결혼 전이었다고 한다든지, 주가 조작 사건에서 이익을 보았다고 해서 주가 조작을 직접 했다는 증거는 안 된다고 하는 식이다. 게다가 지난 추석에 직무 관련이 없으면 김건희 여사에게 3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고 국민권익위원회가 답변한 것을 두고 신장식 의원이 비판할 때 강승규 의원이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엉뚱하게 공작이라고 소리 지르며 흐름을 깬 것은 정말 큰 실수였다. 결국 사회자한테 발언권을 박탈하겠다는 경고를 받고서야 말을 줄였다. 이제 토론 막바지에 이르러 ‘영부인 리스크, 어떻게 대처할까?’에서 강승규, 홍석준 두 의원은 영부인 리스크 자체가 없다만 반복하고, 박태균 의원은 사죄하고 민생에 집중하라, 신장식 의원은 사람 가려서 등용하라고 한다. 국민의힘 두 의원의 불통도 답답하지만, 두 야당 의원은 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대안을 제시하는지 당황스러웠다. 대학생 토론을 지도하기도 했고,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토론대회 심사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토론의 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 그런 경력이 없더라도 토론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하고, 중간에 말을 끊거나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토론 주제가 잘못 정해졌기 때문이다. 토론은 본래 찬반으로 나눠질 수 있는 형식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 끝은?’이라는 말은 의미도 분명하지 않고 부정적 뉘앙스를 풍긴다. 무엇보다 찬반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처음부터 ‘영부인 리스크, 어떻게 대처할까?’로 했다면, 국민의힘 두 의원이 끝까지 리스크는 없다를 외치지 못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영부인의 행보는 리스크인가’로 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정치 토론을 보고 싶다.

2024-09-29

나 혼자 살 수도

유영희 작가 한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확실히 명절 풍속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민족 대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해서 며느리가 꼭 시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각자의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며칠 전, ‘가족×멜로’라는 특이한 제목의 드라마가 종영했다. 여기서 가족은 아빠 변무진, 엄마 금애연, 딸 미래, 아들 현재, 이렇게 네 명인데, 변무진이 잦은 사업 실패로 아내와 이혼한 후 죽은 줄 알았다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침 종영한 날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일요일이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금애연은 11년만에 나타난 변무진을 생각보다 빨리 수용하지만, 딸 미래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발자전거를 탈 무렵 아버지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자기 때문에 아빠가 야구 선수를 포기했다고 오해한 상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이 우여곡절 끝에 변무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도 흥미 있었지만, 변무진과 금애연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재결합하지 않는 결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일하던 엄마 금애연은 홈쇼핑 모델이 되어 수입이 늘자 가족에게 상의하지 않고 자동차를 장만한다. 50 넘은 여자가 누구의 도움 없이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설정이다. 보통 자동차는 남성성을 의미하는데, 금애연처럼 소극적으로 살던 여자가 자동차를 자신의 힘으로 장만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성 같은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앤소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에도 남편과 두 아들 뒷바라지하다 지친 엄마가 가출했다 돌아와서 한 일이 자동차를 손보는 것이었다. 딸 미래는 자신이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독립 가구가 된다. 비혼주의를 고수하지만 오래도록 연애하기로 한 남자친구는 있다. 네 명의 가족 아닌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살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 식사하는 것으로 가족의 멜로를 완성한다. 두 주인공이 다시 결혼으로 묶이지 않는 것은 각자 경제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금애연은 그동안 자신의 삶이 너무 의존적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혼자 사는 삶을 선택했고, 변무진은 그런 금애연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했기 때문이다. ‘가족×멜로’ 드라마의 변무진과 금애연의 선택은 새로운 가족 형태를 예고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마주 앉아 밥 먹는 부부 이상으로 사랑하고 신뢰도 회복했으니 재결합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부부가 되지 않고 따로 사니 말이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과 성격, 지향에 따라 어떤 가족 형태를 선택할 것이고, 그래서 가족의 형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영화감독 팀 버튼도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와 결혼 당시 가까운 거리에서 따로 살았고, 배우 오나라도 한 사람과 24년째 연애 중이라고 한다. 사회 제도에 구속되지 않고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 사회 변화를 체감한다.

2024-09-22

일제강점기 국적 논란을 끝내는 법

유영희 작가 내 책상 한쪽에는 ‘손바닥 헌법책’이 놓여있다. 딱 손바닥 크기인데, 손바닥보다는 얇다. 몇 년 전, 20권을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던 책이다. 너무 작아 책꽂이에 꽂으면 파묻혀서 책상 위에 놓아두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자주 들춰본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최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 논란을 보면서 다시 펼치게 되었다. 맨 앞에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나오고, 뒤를 이어 1948년에 공포한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전문과 1987년 개정한 대한민국 헌법이 차례로 나온다. 모두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한 달이 넘게 뉴스를 달구고 있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 논란은 지난 8월 6일 새로 임명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독립기념관장 면접에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답했는데, 10명의 후보자 가운데 최고점을 받았다. 그 때문에 각계 각층에서 김형석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당시 면접관도 비판하는 상태이다. 김형석의 뒤를 이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4일 KBS 라디오 ‘전격 시사’에 출연하여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평소 입장을 고수하는 발언을 하면서 지금은 건국절 논쟁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이다. 건국절은 나라를 세운 날이라는 의미인데, 이때 나라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의미한다. 이런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국적의 의미를 합의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국적이란 개인이 국가와 맺는 법적인 관계를 말한다. 개인이 특정 국가의 국적을 갖게 되면 그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일본 국적법을 조선에 적용하지 않았다. 만약 일본 헌법을 조선에도 적용하게 되면, 조선인에게 투표권도 주어야 하고 일본 국민으로서 보호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주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본 헌법을 적용받아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국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제국에 의해 강제로 주권을 침탈된 상태를 일본 국적이라고 할 수 없다.‘21세기 정치학대사전’에 의하면, 1871년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프랑크푸르트 조약에서부터 국적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국적자유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에 의하면, 국적은 강제로 부여할 수 없다. 주권이 없다는 것과 일본 국적이라는 말은 동의어가 아니다. 일본은 일본 국적법이 아니라 조선 총독부가 만든 제령으로 조선을 지배했다. ‘제령’은 일본 천황의 재가를 받는 명령이기는 하지만, 헌법은 아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제령 중 대표적인 것은 1912년에 제정한 ‘조선민사령’과 ‘조선형사령’이다. 일상에서 한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법령들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용어를 분명하게 쓰는 것이다. 지도층일수록 사회적으로 합의된 언어를 써야 한다. 그것은 건국절도 예외가 아니다. 1948년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었다.

2024-09-08

미래세대 환경권을 위한 첫걸음

유영희 작가 22년 쓴 작은 에어컨이 올해 이상이 왔다. 작년까지는 한여름 며칠 잠깐씩 틀었지만, 올여름은 너무 덥고 습해서 2주 이상 매일 켰더니 과부하가 왔나 보다. 에어컨 실외기 열기가 기온을 더 올릴 것이라는 걱정도 지구 역사상 최고라는 올해 무더위에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기후변화 앞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자책하던 중 한 신문 기사를 읽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여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는데, 그런 판결을 이끄는데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이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국제 선언으로 탄소제로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으나, 우리의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는 2030년까지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감축해야 한다고만 되어 있고,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청소년 19명이 이 조항에 대해 2020년에 헌법소원을 냈고, 2021년에는 시민기후소송, 2022년에는 ‘아기기후소송’, 그리고 2023년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 4년에 걸쳐 다양한 연령의 시민과 어린이가 헌법소원을 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판결 기사에 처음 눈길이 간 것은 ‘동생 사진 손에 쥐고 눈물 쏟은 초등생’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읽어 보니, 2년 전 아기기후소송을 냈던 서울 흑석초 6학년 한제아 어린이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기자가 한제아 어린이에게 2년 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질문하자, 어릴 때는 키가 작아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더 더웠는데, 그때보다 키가 많이 큰 지금도 여전히 덥다고 대답한다. 두 살짜리 사촌 동생은 키가 엄청 작아서 자기보다 더 더울 것이라며 마음 아팠다는 대답도 있다. 이날의 판결에 정말 적절한 대답이었다. 이 대답은 어린이다운 감수성을 보여주어서 인상 깊기도 했는데, 실제로 8월 14일 한 일간 신문에 실린 서울 보라매공원 특별 관측 결과를 보면, 아이 발밑은 ‘성인 키’ 기온보다 덥다고 한다. 특히 햇볕에 노출된 아스팔트 도로의 지면 온도는 지상 1.5m보다 11.2도나 높다니, 키가 작으면 확실히 더위를 더 느낄 것이다. 게다가 지면 가까이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도 많으니, 도시에 사는 어린이의 고통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에도 물어보니, 몸이 작으면 체적에 비해 체표면적이 더 크고 근육도 적어서 기온에 민감하다고 한다. 미래세대에 이런 걱정을 끼치니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린이의 야무진 활동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다만,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 운동이고,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우울증에 걸렸었다니, 한제아 어린이에게 밝고 즐겁게 활동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

2024-09-01

선물이란 무엇인가

유영희 작가 몇 년 전 오래 알고 지낸 동료와 선물 문제로 멀어졌다. 동년배 세 여자가 가끔 만났는데,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그 일을 핑계로 밥을 여러 번 샀다. 그렇게 내가 밥을 산 날이면 디저트는 그 둘이 샀다. 그런데 내가 책을 출간했을 때 A가 책을 선물로 달라고 한다. 밥을 사면서 등가교환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서운한 마음에 끝내 책을 주지 않았다.그렇게 그 일은 넘어갔지만 얼마 안 있어 A가 취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연락하니 A는 취직 사실을 감추었다. 지나치게 주고받기를 의식하는 사람도 부담스럽지만, 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그 이후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이 사는 줄 알았던 내 몫의 디저트는 언제나 B가 냈다고 한다.이 일을 겪으면서 아무리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 해도 결국 모든 선물은 기브앤테이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친구 간에 대가 없는 선물이라도 그 안에는 돈독한 사회관계 형성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고, 등가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주고받기가 이루어지리는 기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도 그렇다. 유산을 줄 때는 암묵적인 봉양의 의무가 전제되어 있고,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봉양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회수하기도 한다.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고대 사회의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고 한다. ‘주는 의무’, ‘받는 의무’, ‘갚는 의무’가 그것인데, 이렇게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부의 재분배도 일어난다고 한다. 현대 사회의 선물이나 증여는, 고대 사회처럼 강한 의무가 동반되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선물을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다. 누구라도 어떤 선물을 받으면 경조사 부조금처럼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할 빚으로 느낀다.그런데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추석 명절 청탁금지법 바로 알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내용이 이상하다. 누구든지 친구, 친지 등 공직자가 아닌 사람에게 주는 명절 선물은 금액 제한 없이 얼마든지 줄 수 있고,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 원까지 선물해도 된다는 말이 처음에 나온다. 홍보물 순서를 보면 마치 선물을 장려하는 캠페인처럼 보인다. 뒤를 이어 직무와 관련된 사람에게는 5만 원까지, 농수산물이라면 15만 원까지 허용되는데, 명절 전후 30일 동안은 30만 원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아무래도 공직자가 하는 선물은 아니고, 민간인이 공직자에게 선물하는 경우에 해당할 텐데, 왜 친구나 친지에게 주는 선물 이야기를 맨 처음에 하는지 의아하다. 직무 관련 여부를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직무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 주는 100만 원어치 선물에는 대가성이 없다는 장담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민은 커피 한 잔, 국밥 한 그릇을 얻어먹어도 갚을 궁리를 하는데, 공직자들은 그런 선물을 받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이 궁금해진다.

2024-08-25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오 히로부미

유영희 작가 생협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 일본 생협 활동가들이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오 히로부미를 영웅으로 배웠는데 한국에 오니 그들이 한국 사람에게 천하의 원수라는 사실을 알고 문화 충격을 받았다면서 우리에게 사과했던 일이 있다. 올해는 부쩍 그때 일이 생각난다.79주년을 맞은 올해 광복절은, 이렇게 논란이 많은 광복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만 50회 외쳤을 뿐 일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8월 6일,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후손이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주로 맡았던 독립기념관장에 전혀 결이 다른 김형석 고신대 교수를 속전속결로 임명했다.김형석 신임 관장은 평소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통성을 부정하여 뉴라이트 친일 인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임용 면접 때는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들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 후 기자들 질문에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고 답변하여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는 대북지원금 5억을 통장 조작으로 횡령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사실도 있다.그런가 하면, 작년 12월에 나온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는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표시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달 초에 나온 수정본에서는 독도 표기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교재에 있었던 독립운동가 김좌진 홍범도 김구의 이름이 사라졌다. 국방부에서는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을 실어 광복군과 독립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정신적 토대임을 명확하게 기록했다고 해명했지만 군색하다. 지난 16일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전시회도 보훈부의 압박으로 취소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라고 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광복절에 맞추어 발간된 낙성대연구소 정안기의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테러리즘’을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이라고 정의하고 김구의 9건의 테러 중 테러리즘 있는 테러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1건일 뿐, 나머지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라고 하면서 김구가 개인적 재물 탐심과 보복,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테러를 이용했다고 비판한다.그런데 암만 봐도 이 주장에는 일관성이 부족하다. 제목의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즘 없는 테러리스트라는 의미일 텐데, 저자가 말하는 테러리스트의 원뜻은 테러리즘 있는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테러리즘은 크게 109개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중 폭력과 정치적 목적을 가진다는 특성은 대부분의 테러리즘 정의의 공통적 요소라고 한다. 그렇다면 폭력과 정치적 목적으로 김구를 비판하는 저자의 테러리즘 정의는 상당히 주관적이기도 하다.같은 행위라도 내 편이냐 남의 편이냐에 따라 평가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너는 누구 편이냐고 윽박지르며 묻는 79주년 광복절이 너무나 씁쓸하다.

2024-08-18

새 세대가 온다

유영희 작가 8월 11일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규모는 144명으로 지난 도쿄 올림픽 232명에 비해 90명 정도가 줄었다. 이런 100명대 선수단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8월 10일 당시 활, 총, 칼을 필두로 금메달 13개 등 29개 메달을 따서 7위에 이름을 올려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성적뿐 아니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사격의 김예지가 공기소총 1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고 나서 자신의 주종목 25m 경기를 앞두고 금메달을 자신했지만 예선에서 0점을 받아 출전하지 못하게 된 후 보여준 태도는 정말 참신했다. 그는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0점 한 번 받았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사격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라면서 다음을 기약한다고 차분하게 말한 것이다.탁구의 신유빈은 임종훈과 함께 뛴 혼합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중국의 천멍과의 단식 경기에서 0:3으로 졌다. 그럼에도 낙담하지 않고 상대가 너무 잘했다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하더니, 하야타와의 단식 경기에서 패하고도 승자를 안아주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그런 실력과 정신력과 체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잘 알기 때문에 더 배우겠다는 신유빈의 인터뷰는 새로운 올림픽 문화를 알리는 신호로 느껴진다. 이런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10일 열린 여자단체전에서 다시 동메달을 땄다.방향은 다르지만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역시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 스포츠 역사의 새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는 금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협회가 선수 보호에 소홀했다고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오랜 고민 끝에 가장 파급력이 큰 금메달 인터뷰 때 발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는 자기 나름의 판단과 전략으로 그 순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둘러싸고 두 가지 쟁점이 있는데, 하나는 안세영의 발언이 ‘사실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방법이 ‘적절한가’이다.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안세영도 다른 선수들에게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여기서 발언 타이밍 등 표현 방식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는 사실 여부를 중심으로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야 배드민턴이 발전할 것이다.태권도 경기에서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권도의 서건우가 16강전에서 오판으로 패하게 되자 오혜리 코치(36세)가 강력하게 항의하여 8강에 진출한 것이다. 결국 오 코치는 코트에 뛰어든 일로 세계태권도연맹(WT)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오 코치는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었다는 판단으로 한 행동이라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한 세대가 저물고 새 세대가 온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무리 큰 무대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어도 유머와 개성을 마음껏 표현하고 할 말은 하는 세대가 오고 있다. 기성세대는 두 팔 벌려 새 세대를 환영할 일이다.

2024-08-11

주택조합 앞에 멈춰 선 민주주의를 보며

유영희 작가 집에 대한 욕구는 식욕에 버금가는 인간의 생존 욕구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내 집 마련에 인생을 건다. 거주가구수에 비해 주택재고가 충분한지 판단하는 주택보급률로 보면, 서울 2022년 전국 기준으로 102.1%라고 하니, 전국적으로는 집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지표인 1000명당 주택수로 판단하면 그렇지 않다. 1000명당 주택수는 2022년 전국 기준으로 430.2호이다. 2020년의 418.2호에 비해서는 늘었지만, 2020년 OECD의 평균 주택 재고 462호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이런 실정이니 지역주택이니 소규모재건축이니 가로주택이니 하는 여러 주택조합이 설립되고 있다.나 또한 60이 넘어 생애 처음 산 집으로 주택조합에 가입하여 새 집이 지어질 날을 3년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올여름 임원 선출을 위한 총회 진행 과정에서 이상한 일을 목도하고 있다. 창립 때 선임된 임원들이 자기 이외의 다른 이사 유임을 찬성하는지 투표하여 전원 유임 결의를 한 후 후보자를 확정한 것이다. 총회에서 찬반 투표를 한다고는 하지만, 부결되면 총회를 다시 해야 하니 조합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찬성해야 하는 상황이라 통과 가능성은 거의 100%이다.기존 임원이 이렇게 진행하는 법적 근거는 2009년 대법원 판례인데, 이 판례는 추진위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애당초 추진위원회의 운영 규정은 조합의 정관과 달라서, 위원장만 주민총회 의결 사항이고 다른 임원은 추진위원회 단위에서 유임 결정을 할 수 있다. 주택조합 전문 변호사 김조영은 이런 규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추진위원회 존속 기간이 짧아 이런 판례가 나온 것 같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판례를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을 이미 창립된 조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조합 정관에는 임원 선임이 총회 의결 사항이고, 연임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조항은 임기 만료된 임원이 재입후보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이사회가 연임 후보를 확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관할 시의 표준선거관리규정 제3조에서는 연임도 선거라고 규정하고 있고, 선거 60일 전에 선관위를 구성하여 기존 임원도 모두 후보자 등록하게 되어 있다. 법무법인강산에서는 이 규정에 의거하여 기존 임원도 입후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임제를 채택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만 봐도 이 해석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선뜻 문제 제기하기가 어렵다. 조합원들이 절차의 적법성보다는 사업 진행의 효율성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절차의 합법성보다는 결과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이 주택조합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조직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소리 내지 못하고 소리 내지 못하게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사람이 위법을 저질렀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는 사회가 발전하지 못한다. 공정한 법질서가 자리잡게 하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2024-08-04

의도인가 팩트인가

유영희 작가 지난 7월 25일, 대통령의 두 번째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애당초 가결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는 하나, 지난 7월 11일 조사한 여론 조사 결과 특검을 찬성하는 비율이 69%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회의원들의 대표성을 의심하게 되는 결과였다. 그동안 여당은 줄곧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이 독점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반대해왔고 이것은 실제로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채상병 특검법’이라고 하는 법안의 정식 명칭은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인데, 이 안의 제3조 2항에는 ‘대통령은 제1항에 따른 요청서를 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1명의 특별검사를 임명하기 위한 후보자 추천을 ‘국회법’ 제33조에 따른 교섭단체 중 더불어민주당과 비교섭단체에 서면으로 의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3항과 4항도 이 연장선에 있다.이 외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는 몇 가지 더 있는데, 이에 대해 JTBC에서는 지난 12일 방송에서 여당의 거부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이 사실인지 8개 항목으로 나누어 팩트체크한 적이 있다. 지금 한동훈 대표가 제3자가 특검 추천하자는 주장과 관계 깊은 항목을 보면,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JTBC에서 팩트체크한 바에 의하면, 특별검사를 추천했던 주체는, 대한변호사협회가 특검을 추천한 사례 5회,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 4회, 정당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 4회였다. 여기서 정당이란 민주당이 아니라 야당을 말한다. 드루킹 특검 추천은 자유한국당이 야당일 때 한 것이다. JTBC는 이런 사례를 근거로, 이번 채상병 특검법에서 민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검증했다.여기서 특검 주체가 왜 달라지나 추론해보니, 주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정당이 특검을 추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사안에 여당을 배제하고 야당이 특검을 추천할 때는 여당이나 대통령이 관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서원이 야당에 자신의 국정농단 특검 때 야당에 추천권을 준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때 헌법재판소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 이유로 대통령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사정을 들고 있다.물론 과거 야당이 특검을 추천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번에도 민주당이 특검 추천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럼에도 이번 채상병 순직 사건의 책임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표결 과정에서 한동훈 대표가 제3자 추천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니, 한동훈 대표가 정말 특검을 추진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한동훈 대표는 특검을 찬성한다고 했으면, 야당이 탄핵을 전제로 특검법을 추진한다고 반대하기보다, 팩트에 입각한 진상규명에 진정성 있게 나서 주기 바란다.

2024-07-28

미래세대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유영희 작가 지난주 12주간 진행한 글쓰기 강의를 마치며 학습자들의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편집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삽화도 넣고 싶어져서 간단한 이미지는 무료 일러스트나 이미지를 구해 쉽게 넣었다. 그런데 제목이 ‘코’라는 두 소설의 독후감에 넣을 이미지가 영 마땅치 않았다. 일본 작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 ‘코’의 주인공 젠치 스님의 코는 턱까지 늘어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식사하기도 불편할 정도인데, 이렇게 코가 긴 얼굴 이미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고골의 ‘코’에 나오는 코 없는 남자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만드는 문집이 아무리 비매품이지만, 이미 출판되어 나온 이미지를 그냥 갖다 쓸 수 없어서 고심 끝에 인공지능의 힘을 빌렸다.나처럼 인공지능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람조차 이렇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은 그림이라도 그리는 상황이 되었다.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유명 가수 두 명이 짧게 한 소절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자 그들이 부르지 않은 파트를 인공지능으로 생성해서 마치 그들이 곡 전체를 다 부른 것 같은 영상이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들의 완곡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었다. 얼마 전에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이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일상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웃에 사는 경계선 지능 학생의 부모에게 알려주었더니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받았다. 실제로 어느 경계선 지능인은 챗지피티가 자신의 제2의 뇌라고 고백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그러나 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달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직업을 잃게 될 사람도 많고, 기술이 악용될 여지도 많다. 내가 인공지능으로 그린 이미지를 보고 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는 ‘선생님마저 이렇게 인공지능을 이용할 줄 몰랐다’며 불안해했다. 아차, 싶었다. 이렇게 사소한 상황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그이의 마음에 바로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정교해지고 있다. 결국 무료로 쓸 수 있는 간단한 코 일러스트를 골라서 대체했다. 목소리 역시 전화에 ‘여보세요’ 같은 한두 마디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로 목소리를 생성해서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다고 한다.이렇게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에는 양면이 있으니 어느 한 편을 들어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편리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도입은 신중하게 서서히 적용해야 한다. 몇 주 전, 내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사용한다는 정책에 우려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다. 지난 17일 뉴스에 나온 ‘AIDT 프로토타입’이라는 ‘AI 디지털교과서’의 교사 연수용 버전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2024-07-21

최저임금은 정말 최저임금이다

유영희 작가 60세가 넘은 지인이 남편 퇴직 후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작년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노인 한 분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던 차에 맞벌이 부부의 유치원생 자녀 한 명을 아침, 저녁 두 시간씩 등·하원시켜주게 되어 다행히 월 200만 원 정도 수입이 되었다고 한다. 노인과 유치원생의 시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략 시간당 1만3000원이니, 2024년도 최저임금 9860원보다 높다. 일이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된 것이다.그런데 지난 2월 서울시 국민의힘 소속 윤기섭 등 38명의 시의원이 노인들의 구직이 어렵다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으로도 노인 채용이 가능하도록 하자며 ‘최저임금법 적용 제의의 인가 기준 및 범위를 노인층에게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달라’고 정부 측에 발의했다. 3월에는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필리핀 등 외국인 돌봄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그 말이 있기 하루 전,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주최한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사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요구는 올해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1986년 최저임금제를 도입할 때 최저임금법 제4조1항에서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경영계는 업종별 차등 임금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들의 요구는 특정 업종은 최저임금보다 더 낮게 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경영계의 집요한 요구가 있지만, 지난 7월 2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차등안을 부결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어느 기사를 보니, 작년 148개의 2차 업종 중 상반기 시급 공고가 500건 이상 등록된 업종 93개 중 ‘베이비시터·가사도우미’ 업종의 공고 평균 시급이 2만9천 원 정도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일이 그만큼 힘들고 그래서 인력난도 심하다는 뜻이다. 요양보호사는 국가 공인 파출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고강도 노동에 저임금을 호소하고 있다.그런데 이런 간병과 육아와 같은 돌봄 노동에 외국인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보다 더 적게 주자는 것은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11호(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에 나오는 출신국에 근거한 차별 금지 조항을 어기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도 한국에서 한국의 물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노인에 대해 최저임금을 낮게 적용하자는 주장 역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서 나이를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법하다.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은 저소득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최소한의 임금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인건비로 인한 소상공인의 경영난 해법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

2024-07-14

‘우천 시’보다 중요한 것

유영희 작가 오랜만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대학’을 강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강의할 기관에 이력서를 보내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동안 쓴 경학 연구 논문 제목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하니, 한글로 써도 충분히 알아볼 만한 내용이므로 그냥 보냈다. 나는 유교 사상을 전공했지만, 한자를 노출시켜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한자 없이 한자어만 쓰면 일상에서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지난주에 여러 매체에서 인용된 학부모들의 문해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에도 한자어가 있다.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우천 시, 금하다, 섭취·급여·일괄 같은 단어를 가정통신문에 쓰면 학부모들이 이해를 못 하고 엉뚱한 질문을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자, 댓글에 금일을 금요일로 아는 사람도 있고, 중식을 중국 음식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경험담이 이어졌다고 한다. 여러 주요 언론에서도 이 글을 인용하면서 그 어린이집 교사의 문해력 한탄에 동조하였다.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어린이집 교사가 경력 9년 차라고 하니, 마흔 살이 안 되었을 텐데 그런 단어를 능숙하게 통신문에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언어 습관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공문에 ‘비가 오면’,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제공’이라고 쓰면 격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언어’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친다. 조선 시대의 어휘나 표현법은 소멸했고, 21세기에는 새로운 어휘가 탄생한다.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로서 2018년도에 만들어진 신조어인데, 공중파에서 퀴즈 문제로까지 등장했다. 아무리 기성세대가 언어 순화 운동을 벌인다고 해도 이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관공서에서나 쓰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보다 실정에 맞게 소통하기 좋은 한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문해력 향상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교육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해력 향상을 위한 꿀팁 5가지가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라, 모르는 어휘는 검색해라, 긴 호흡으로 읽는 독서를 많이 해서 글과 글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라,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라, ‘한글 또박또박’이라는 맞춤형 웹 기반 학습프로그램을 활용하라고 한다.그러나 ‘한글 또박또박’은 한글을 모르는 초등 저학년 대상 프로그램이라 사회적 문해력 저하 해결책은 아니다. 또 글과 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없어서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이니, 긴 호흡의 책을 권장하는 것도 넌센스다. 질문 자체를 못 하는데 다양한 관점으로 질문할 수 없다. 이렇게 체계 없는 정책으로는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다고 독후감 경시대회를 열지만, 평소 지도는 해주지 않으니 사교육으로 해결해야 한다.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구호 말고 글쓰기 교육처럼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2024-07-07

디지털 교과서로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유영희 작가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번은 진정한 교사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학습이 문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못 보고 못 듣고 말하지 못하는 헬렌 켈러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게 도왔다. 물론 현대 사회의 대중 교육 상황에서 개인 교사 설리번의 교육을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진짜 학습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런데 내년부터 종이 교과서 대신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한다. 시행 첫해에는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부터 시작하여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국어, 사회, 과학, 기술가정 등의 과목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작년 8월에 나온 AI 디지털 교과서 가이드라인을 보니, ‘500만 명의 학생에게 500만 개의 교과서’를 제공한다는 구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500만 개의 교과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학습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다.코로나 팬데믹 때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낮아졌다는 보고가 많지만, AI 디지털 교과서는 온라인 수업과는 성격이 달라서 섣불리 비교할 수는 없다. 온라인 수업은 종이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소통 채널만 온라인으로 한 것인데 비해, AI 디지털 교과서는 개인별 맞춤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습자의 수준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제공해주는 교과서 자체는 모두 디지털 기기를 통해 공급된다. 그러니 개인별 맞춤 수업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학습 도구만으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게다가 장시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눈도 나빠진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3시간 18분이라고 한다. 잠자는 시간,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면 활동 시간 10시간 중 1/3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셈이다. 디지털 기기에 집중하면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서 눈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니, 디지털 교과서로 수업하면 청소년 눈 건강이 악화될 것은 뻔하다. 게다가 작년에 스웨덴은 디지털 도구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는 유명 의과대학의 연구 결과 발표에 힘입어 디지털 교과서에서 종이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뉴스를 보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더 염려스럽다.사정이 이러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우려하는 국민청원이 있었다. 지난 6월 2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는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 30일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자는 전면적인 디지털 교과서 사용이 서면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보다 객관적, 과학적으로 더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 맞는지 검증하자고 요구헸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부디 국회 교육위원회는 청원자의 바람대로 디지털 교과서가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엄밀하게 검증해주기 바란다.

2024-06-30

늘봄교실 확대가 저출생 대책이어서는 안 된다

유영희 작가 2024년 한국의 출생률이 0.68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3대가 지나면 인구가 소멸할 것이라고도 한다. 어느 보고서를 보니, 2023년 남한의 0-4세 아이 비율이 북한의 절반이라고 한다. 북한의 0-4세는 1천763만 명이고 남한의 0-4세는 1천611만 명이라 숫자는 비슷하지만, 남한 인구가 북한의 두 배이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지난 6월 9일 윤석열 대통령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고, 이미 신설하기로 한 ‘저출생대응기획부’의 이름을 ‘인구전략기획부’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출산 장려 정책으로 쪼이기 댄스 장려나 정관 복원 수술비 지원들이 비웃음을 샀고, 여자의 발달이 빠르니 결혼 적령기에 남녀가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학생을 1년 일찍 입학시키는 방법을 언급한 재정포럼 5월호의 연구 논문 역시 조롱을 받은 상황이라 이번에는 효과적인 정책이 나올까 기대했지만, 19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전혀 기대에 못 미친다.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 기피와 저출생의 가장 큰 이유는 주거 불안과 경력 단절 걱정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만이 답이라는 연구도 많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정부 정책을 보면,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소득 보장이 안 된 상태에서 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신혼부부를 빚더미에 올려놓거나 그림의 떡인 발상일 뿐이고, 주택을 보유한 남녀가 결혼하면 세금 깎아주는 기간을 늘린다는 정책은 청년 대다수가 무주택자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빈부 격차만 심화시킬 수 있는 대책이다. 학·석·박사 과정 통합하여 일찍 사회에 나가게 한다는 방안도 어처구니 없지만, 늘봄교실 보육시간을 오후 8시까지로 늘린다는 정책은 무자비하기까지 하다.지금까지 초등생이 이용하는 돌봄교실은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가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 앞으로는 오후 8시까지 맡아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늘봄 정책이 나왔을 때도 부모와 자식이 ‘늘못봄’이 되는 정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한술 더 떠서 초등 1, 2학년생을, 점차 6학년까지 오후 8시까지 교실에서 지내게 한다는 정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의문이다. 저녁 늦게까지 교실에서만 지내면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각을 가질 수 있게 될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늘봄교실에 오후 8시까지 맡기면서 마음 편할 부모도 없을 것이다. 이번 저출생 대책 어디에도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교실에 보관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아이는 부모가 늘 대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 부모 역시 그런 시간이 확보되어야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한국의 인구밀도가 높아서 저출생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지금의 출생률 저하 속도는 한국 사회의 위기다. 부모가 자녀를 제대로 보호하면서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 제안이 시급하다.

2024-06-23

최강의 노년을 위해

유영희 작가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건강하게 나이들기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나 역시 조만간 고령자가 될 처지라 인지 건강과 신체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하고 있다. 그런와중에 운 좋게도 며칠 전 내가 사는 지역의 아파트 단지 주민을 위해 ‘치매 예방을 위한 행복 글쓰기’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참석자 중에 7, 80대도 있다고 하니, 그동안 강의와는 완전히 다르게 준비해야 했다. 행복한 경험을 회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을 찾아 붙이고 사진 옆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종이 앨범을 준비했다.처음에는 동요 ‘과수원길’을 부르고 가사 중 마음에 와닿는 단어를 골라 앨범에 써보라고 했다. 단어를 쓴 소감을 물으니, 아는 가사인데도 글로 쓰니 새롭고 설렌다고 한다. 아카시아꽃이나 과수원에 얽힌 이야기를 나눌 때는 어느 참석자가 부모님이 과수원 농장을 크게 했는데 큰오빠가 과수원을 날려서 자기가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시집 가야 했다며 깔깔 웃는다. 아픈 시간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그것도 행복한 글이 되었다.다음으로 자유 연상 글쓰기를 했다. 기차 사진을 보고 바로 떠오르는 단어 5개를 쓴 후 그 단어를 활용하여 문장을 만들었다. 그러자 어느 참석자가 엄마와 기차 타고 여행 갔던 생각이 난다면서 어머니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감싼다. 그렇게 묻어두었던 감정을 드러내니 이웃들이 따듯한 시선을 보낸다. 강의실 공기가 달라지는 듯했다.임영웅의 노래 ‘바램’은 노년이 되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바람을 노래한 것이다. 이 노래를 선택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의 ‘바람’은 무엇인지 써보자고 하니, 어느 참석자가 죽는 날까지 두 다리로 걷다가 편안히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다가 끝내 울먹인다.자신의 정서와 깊이 만나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무래도 삶의 굴곡을 겪은 연배이기도 하고 공감하는 이웃이 있어서 글쓰기 수업에 정서적으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두 동대표에게 한마디 하기를 청하니, 동대표는 오랫동안 참석자들과 이웃으로 살아왔지만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이야기를 나누어준 분들에게 감동했다고 깊이 감사 인사를 했다.건강하게 살다가 죽고 싶은 바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재일 한국인 정치학자 강상중은 2009년 발간한 ‘고민하는 힘’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다양하게 고민하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면서 ‘늙어서 최강이 되라’고 한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노년의 힘은 ‘교란하기’에 있으니,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해보자고 한다. 나는 여기에 글쓰기를 추천한다.글쓰기가 스트레스를 완화해주고 마음의 힘을 키워준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나 역시 이번 행복 글쓰기 강의를 통해 최강의 노년을 위한 글쓰기가 더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글쓰기라면 금상첨화다.

2024-06-16

상식과 절차를 지키는 정부를 원한다

유영희 작가 지난 2월, 지자체에서 공모한 독서동아리 활동비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뇌과학책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서관에서 30만 원을 받아 뇌과학 박사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었다. 전문가 역량에 비해 강사료를 너무 적게 드려서 민망하던 차에 올해는 지자체에서 5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기에 신청한 것이다.두 달이 지난 4월 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택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서관에서 집행하는 30만 원은 사서가 처리해주었는데,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동아리 대표가 보탬e이라는 사이트에 사업 내용을 다 등록하고 영수증 처리 내용도 올리고 세금까지 직접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올해부터 등록 방식이 더 복잡해졌다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두 번이나 공무원을 찾아가서 해결했다. 집행 방식은 더 복잡해서 결국 담당자가 동아리 대표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예산 변경은 반드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너무 번거로워서 내년에는 지원 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행정 기관에 믿음이 갔다.그런데 정부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 세금 최소 5000억 원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 업체 선정에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와의 계약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액트지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한다. 문제는 액트지오는 2017년에 설립한 후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으며, 대표의 거주지를 회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이다. 50만 원 지원금 사업에도 집행하기 석 달 전에 공고하고 서류 내고 두 달 동안 심사를 거쳐서 합격자를 발표했다. 관공서에서 시설 공사를 계약해도 4억 원이 넘으면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청난 세금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에 경쟁 입찰은 했는지,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깜깜이다.액트지오가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지역은, 이미 세계적인 석유개발 회사 우드사이드가 15여 년간 조사하고 시추까지 하고서도 미래가치 가능성이 없다고 작년 3월에 철수한 곳이다. 그런데 우드사이드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액트지오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했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드사이드 철수 후 나왔다는 한국석유공사의 추가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정부는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서가 모두 기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부는 경쟁 입찰 과정과 액트지오 전문성이 세계 최고라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세금 쓰는 상식적 절차다.

2024-06-09

친족상도례를 보완하자

유영희 작가 가정의 달, 5월이 지났다. 가정의 달은 UN에서 정한 ‘세계 가정의 날’에 영향을 받아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 관련 기념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정의 달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가족 간에 화목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녀들도 많다. 5월이 되면 여지없이 부모의 착취와 학대로 고통받는 자녀들 이야기가 기사에 오른다. 올해 기사에도 딸을 여러 번 신용불량자를 만든 부모가 사위에게도 재산 피해를 주려 하자 인연을 끊고 싶다는 사연이 있었다. 나 역시 모 대학에서 어느 수강생이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서 자주 결석하다가 끝내 학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친족상도례 때문에 부모를 처벌할 수 없고, 어렵게 절연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도 가족에게는 주소지와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가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이다. 친족상도례 때문이다.친족상도례는 고대 로마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관습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문화가 동양의 유교 문화에도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어도 아들이 고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맹자는 순임금이라면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도 숨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형법 제151조 2항에는 친족이나 동거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는 것은 형을 면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친족간 처벌 특례 규정’이다.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항에 의하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친족상도례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재산죄에 적용된다. 형제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고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관계는 동거하지 않아도 재산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방송인 박수홍의 아버지가 형이 한 횡령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2022년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친족상도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정신의학과 의사 이호선은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부부는 ‘하나’가 아니며,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권을 완전히 위임하지도 말고, 친족상도례도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내년 가정의 달에는 친족상도례로 고통받는 자녀들 기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02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