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에는 뜻깊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서삼경 중 가장 처음 공부하는 경서인 ‘대학’을 원문으로 읽는 수업인데, 20대부터 60대가 함께하고 있다. 한문 고전을 처음 접하는 수강생도 있고, 격몽요결을 읽고 온 수강생도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 뜯어보고 곱씹으며 의미를 발견하는 중이다.
‘대학’은 ‘예기’라는 중국 고대 문헌에 들어있는 짧은 정치 에세이이다. ‘예기’에는 ‘대학’과 ‘중용’을 포함하여 모두 49편의 글이 들어 있는데, 저자를 확실히 아는 작품은 별로 없다. 공자 제자인 증자가 ‘대학’을 썼다는 전통적인 주장도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지금은 작자 미상의 상태나 다름없다. 그러나 작자와 저술 연대가 불확실하다고 해도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대학’의 저자는 ‘시경’이나 ‘서경’ 등 고대 문헌의 구절을 인용하고 나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시경에 나오는 “아아, 돌아가신 왕을 잊을 수 없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고는 왜 사람들이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식이다. 여기서 ‘돌아가신 왕’은 주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문왕과 실제로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다.
군자(통치 계층에 있는 사람들)는 돌아가신 왕이 등용한 사람이 모두 현명하고, 가족과도 화목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하고, 소인(자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돌아가신 왕의 복지 정책과 경제 정책이 좋아서 돌아가신 왕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역사를 보면, 군자와 소인이 문왕과 무왕을 잊지 못하는 최종 이유는 상나라 주왕의 폭정에서 백성을 구했기 때문이다. 주왕의 이름은 제신인데, 폭군으로 악명이 높아 죽은 다음에 주(도리를 잃고 선을 해치는 사람)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주왕의 폭정이라면, 간신만 옆에 두고 예쁜 여자 달기에 빠져 정치를 소홀히 했다거나, 주지육림을 즐겼다는 주왕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주왕에 대한 전통적 평가였지만, 그보다는 상나라의 무리한 영토 확장 정책에 주변 제후들이 반기를 들었다는 견해도 많다.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든 상나라의 무리한 정책이든 무왕에게는 상나라 정벌의 좋은 명분이 되었고, 후대에 훌륭한 왕으로 칭송받은 것이다.
한편, 아무리 주왕이 타락했다고 해도 무왕의 상나라 정벌은 당시에도 백이숙제에게 비판받았고, 후대에도 두고두고 무왕의 정복 전쟁이 최선이었느냐는 논란이 이어졌는데, 이런 질문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3년 전 60평생 처음 장만한 낡디낡은 작은 집 한 채로 주택조합에 가입했는데, 최근 조합 운영에 명백한 문제를 발견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해임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가 보류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중이다. 누구를 응징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평생 살 수 있는 집을 잘 짓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으로 우리나라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여야 정치인 모두 국민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