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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은 어디에 속해야 하나?

등록일 2025-08-31 17:49 게재일 2025-09-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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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굵직굵직한 사건이 재판에 회부될 때마다 온 국민의 관심도 재판부에 쏠린다. 대통령 파면에서부터 사연 많은 형사 사건까지 어떤 판결이든 국민 여론이 나뉜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무섭기는 하지만 그 와중에도 SNS에서는 법관만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만큼 법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법관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세상이 쉬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로봇이 수술하는 세상이 왔어도 여전히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판결을 인공지능에 전적으로 위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도라도 보완해야 한다.

헌법에서는 입법권에 대해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41조 ①국회는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라 하고, 행정권에 대해서는 ‘제66조 ④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ㆍ평등ㆍ직접ㆍ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법권은 다르다. ‘제101조 ①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로 되어 있어 ‘법관으로 구성된’ 일곱 글자가 도드라져 있다. 국회와 정부는 선출직으로 구성되는 데 비해, 법관은 선출직이 아니므로 굳이 ‘법관으로 구성된’을 덧붙인 것이다. 여기서 법관의 전문성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소수의 법관에게 판결의 전권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미국의 경우,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고 되어 있어 시민이 의무적으로 평결에 참여한다.

1957년에 나온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고전 영화다. 가난한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었는데 유죄 판결이 확실하다. 그러나 12명의 배심원이 열띤 토론 끝에 ‘죄 없음’이라고 판결한다. 미국 배심재판에서는 판사가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배심원들’이라는 국민참여재판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역시 가난한 가정의 아들이 엄마를 죽였다는 혐의로 피소되어 유죄가 확정적이었지만 배심원들의 토론으로 만장일치로 ‘죄 없음’을 선언하고 재판장이 이를 받아들인다. 다만, 영화에서는 재판장이 배심원 의견을 따랐지만, 우리나라는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따를 의무가 없다. 두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배심원들이 자기 판결이 가져올 결과의 엄중함을 의식하고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법관만이 평결의 권리를 가질 때 그들만의 리그가 될 가능성이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고, 권력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소수의 법조 권력에 의해 판결이 좌우되지 않도록 배심원 제도를 두는 것이다. 배심원 방식과는 다르지만, 독일, 일본 등도 시민이 재판에 큰 비중으로 참여한다. 이제 우리 헌법에서도 법원에서 ‘법관으로 구성된’이라는 일곱 글자를 삭제하여 사법권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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