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지자체에서 공모한 독서동아리 활동비 지원 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 뇌과학책 독서동아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서관에서 30만 원을 받아 뇌과학 박사를 초청해서 특강을 들었다. 전문가 역량에 비해 강사료를 너무 적게 드려서 민망하던 차에 올해는 지자체에서 5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기에 신청한 것이다.
두 달이 지난 4월 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채택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도서관에서 집행하는 30만 원은 사서가 처리해주었는데, 지자체 보조금 사업은 동아리 대표가 보탬e이라는 사이트에 사업 내용을 다 등록하고 영수증 처리 내용도 올리고 세금까지 직접 세무서에 납부해야 한다고 한다.
올해부터 등록 방식이 더 복잡해졌다며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게 알려주었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두 번이나 공무원을 찾아가서 해결했다. 집행 방식은 더 복잡해서 결국 담당자가 동아리 대표들을 소집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예산 변경은 반드시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러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너무 번거로워서 내년에는 지원 안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행정 기관에 믿음이 갔다.
그런데 정부에서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은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 세금 최소 5000억 원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 업체 선정에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경북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액트지오와의 계약이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액트지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한다. 문제는 액트지오는 2017년에 설립한 후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으며, 대표의 거주지를 회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영세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이 업체를 선정하는 절차이다. 50만 원 지원금 사업에도 집행하기 석 달 전에 공고하고 서류 내고 두 달 동안 심사를 거쳐서 합격자를 발표했다. 관공서에서 시설 공사를 계약해도 4억 원이 넘으면 경쟁 입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엄청난 세금이 드는 시추 사업 분석에 경쟁 입찰은 했는지, 누가 입찰에 참여했는지 깜깜이다.
액트지오가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지역은, 이미 세계적인 석유개발 회사 우드사이드가 15여 년간 조사하고 시추까지 하고서도 미래가치 가능성이 없다고 작년 3월에 철수한 곳이다. 그런데 우드사이드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액트지오를 경쟁 입찰 과정을 거쳐 선정했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드사이드 철수 후 나왔다는 한국석유공사의 추가 자료라는 것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
정부는 액트지오와 주고받은 공문서가 모두 기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의대 증원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도 없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정부는 경쟁 입찰 과정과 액트지오 전문성이 세계 최고라는 근거를 밝혀야 한다. 이것이 세금 쓰는 상식적 절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