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기준 2.2% 시청률로 시작한 12부작 드라마 ‘모.자.무.싸’가 5.3%로 종영했다. 이 드라마에서 내 주의를 끈 것은 감정워치의 빨간색 ‘알수없음’이다. 사람마다 공감하는 장면은 다르겠지만, 내게는 이 빨간색 ‘알수없음’이 드라마를 이해하는 열쇠처럼 보였다.
감정워치는 사람의 감정을 읽어주는 신제품인데, 긍정적인 감정에는 푸른색, 부정적인 감정에는 붉은색이 뜬다. 그중에서도 황동만과 변은아의 ‘알수없음’이 특히 눈에 띄었다. 다른 감정은 띄어쓰기가 되어 있는데, ‘알수없음’은 ‘알 수 없음’이 아니라 ‘알수없음’으로 뜨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마치 감정이 덩어리로 응고되어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서 해결 과제라는 느낌이 든다.
변은아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피가 났다. 코피가 날 때는 온몸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고 한다. 이렇게 감정에 몸이 반응하는 것을 신체화라고 한다. 신체화는 감정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변은아처럼 코피가 나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온몸이 따갑다거나 설사를 하기도 한다.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읽을 줄 알면 그 감정이 옅어지고 그러면 그 감정에 덜 휘둘린다고 한다. 신체화 반응도 줄어든다. 황동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모두 알게 되면 남아나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기존의 관계가 해체되고 나면, 새로운 관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감정워치의 ‘알수없음’ 상태다. 이 시계를 개발한 회사는 이름을 정확히 붙일 수 없는 20가지 정도의 마음 상태를 ‘알수없음’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의 해석을 기다리는 감정이다. 어쩌면 감정워치는 감정의 실체를 알려준다기보다 신체 반응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알수없음’은 해석이 꼭 필요한 아주 강한 신호일 뿐이다.
드라마에서는 같은 패턴을 보이는 사람들을 묶어서 상담해 준다. 황동만의 감정워치에도 ‘알수없음’이 뜨자 상담사는 변은아의 ‘알수없음’을 소개하며 그 의미를 질문한다. 황동만은 뜻밖에 ‘도와줘’라고 답한다. 변은아가 ‘자폭하고 싶은’이라고 표현한 것을 다르게 진술한 것인데, 이런 재진술은 황동만의 특기다.
같은 ‘알수없음’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파괴에서 연대의 언어로 바뀔 수 있다. ‘도와줘’가 공격은 아니지만, 적극적인 관계 맺기인 것은 맞다. 변은아는 황동만의 해석을 상담사에게서 전해 듣고 마음에 변화가 오고, 상사나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그 후 새로운 관계 맺기로 나아간다.
우리는 좋은 감정 상태이기를 바라지만, 푸른색이 뜨면 큰 관심이 없고 빨간색에 ‘알수없음’이 뜰 때 더 큰 주의를 기울인다. 황동만과 변은아는 ‘알수없음’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그 감정을 직면할 자신이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감정시계는 감정을 읽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마주할 힘을 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계가 용기를 주지는 못한다. 용기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얻어진다.
/유영희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