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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과 투표용지

등록일 2026-03-05 17:23 게재일 2026-03-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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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라 변호사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정치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은 선거 날 투표권을 행사하며 비로소 강력한 정치적 의사를 발현한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그 한 표를 잘 행사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투표권이 있다는 것은 나라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뜻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우리 투표권자의 연령은 만 18세 이상이다. 요즘 선거 연령을 더 낮추자는 목소리가 있지만, 학생들에 대한 정치적 선동과 학교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과정은 정치에 대해 가르치는 일을 아예 손 놓아 버린 듯하다. 아이들이 올바른 정치적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조차 하지 않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지난 우리 역사에는 나라의 수호자 역할을 한 많은 청소년들이 있었다. 1960년 3·15 마산 시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이 얼굴에 박혀 순국한 김주열 열사의 나이는 17세였다. 그의 희생은 4·19 혁명의 촉발제가 되었고, 고등학생 다수가 시위에 참여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는 많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시위에 참여했다. 새벽 전남도청을 사수하며 죽어간 문재학, 안종필 열사는 16세 고등학생이었다. 일제강점기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는 16세였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 순국한 나이는 17세였다. 1950년에는 국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 포항여중에서 학도병들이 북한군과 교전하며 나라를 지켰다. 이 포항여중 전투로 대부분이 전사한 학도병 71명은 모두 17세, 18세의 청소년들이었다. 이렇듯 수많은 청소년들의 피와 희생 위에 독립한 나라에서 민주화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청소년은 나이가 어려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기에 미성숙하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청소년들은 더 용기 있게 나라를 지키고 목숨을 희생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의 성숙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위기의 시기에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빚을 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왜 지금이 평화로운 시기라고 해서 청소년을 정치적 미성년자로 그저 단정짓는 것인가. 선거권 연령을 낮춰 무조건 투표권을 쥐여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정치를 바로 알고 선동당하지 않으며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스스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과정에 관한 정치’를 가르치자는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정치를 ‘커서 하는 것’, ‘지금 너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취급한다면 오히려 성인이 되었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선동과 세뇌를 당하는 일을 초래할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의 뼈아픈 역사를 가진 독일은 아이들에 대한 정치 교육을 헌법적 사명으로 삼고 체계적으로 정치를 가르친다. 교실에서 정치 토론이 제도화되어 있고, 적극적인 비판과 토론을 통해 극단주의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내성을 길러 준다. 민주주의는 중립적 방관 속에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파괴적 선동과 극단주의에 대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정치 교육은 결국 민주주의를 지킨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로부터의 격리가 아니라, 총 대신 투표용지를 들 수 있게 하는 정치 교육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 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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