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과 재판을 이끌어가는 기본원리에 신속과 공정이 있다. 그중에서도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소송법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
그중 하나가 판사가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할 위험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재판의 결과는 판결이고, 판결은 전적으로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 법관의 몫이다. 법률과 양심에 의거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판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판결문을 쓰라는 것이 법관의 독립성 보장이다.
따라서 법관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사건 또는 당사자와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판사 개인 스스로도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애쓸 것이지만, 판사도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사소송에서 담당 판사가 원고의 혈족이라면, 형사소송에서 담당 판사가 기소된 사건의 피해자라면 아마 공정한 재판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고 판결의 신뢰성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소송법엔 법관에 대한 제척, 기피, 회피 제도가 있다. 제척 제도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당연히 그 법관이 그 재판에서 배척되는 것이다. 판사와 당사자가 일정한 친족 관계에 있을 때가 가장 대표적이다. 3심제의 심급 재판 보장을 위해 1심에서 판결을 내렸던 판사가 2심에 또 담당 판사가 되었을 때도 제척 사유다.
기피는 제척 사유 외에 불공정한 판결이 우려될 때 당사자 등이 신청하면 담당 법관을 이 재판에서 배제할지 말지를 상급 법원이 판단해 결정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기피 사유는 담당 판사와 소송 대리인인 변호사, 피고인의 변호인이 친족 관계에 있을 때이다. 어떻게 보면 당사자와 판사가 일정 관계에 있는 제척 사유보다 더 많을 수 있기에 이런 경우는 기피 신청을 해야 한다.
회피란 법관 스스로 기피 사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재판에서 물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역시 상급 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제척·기피·회피 제도는 공정한 재판의 보장을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를 재판 지연 목적에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일단 하고 있던 재판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재판 지연 목적이 분명한 경우 해당 재판부가 바로 기피 신청을 기각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것이 간이 기각이다.
내란 관련 혐의로 기소된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 심문에서 피고인이 반복해 네 차례 기피 신청을 냈지만 모두 기각되었다. 피고인은 헌법상 방어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재판부 전원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지만, 재판부는 재판 지연 목적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간이 기각한 것이다.
이처럼 재판을 할 때는 담당 판사와 당사자 또는 사건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 불공정한 사유가 발견될 경우 제척, 기피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제척 등 사유가 없는데도 일단 기피 신청을 해 보자는 태도는 재판 지연을 초래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내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만큼 상대방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국가의 적정한 재판권과 형벌권 행사의 공익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세라 변호사
△고려대 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졸업 △포항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