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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한구- ‘숨쉬는 바다’

경북매일이 7월부터 시민광장 코너를 개설합니다.독자들의 일상 속 소소한 경험담과 재미있는 이야기, 나만의 레시피, 지역의 숨은 명소, 지역의 과거와 현재, 지역의 풍경과 사람, 반려동물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글과 사진을 매주 화요일 신문에 게재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면 200자 원고지 0.5매∼최대 5매 이내 분량의 글과 관련 사진(JPG파일)을 이메일(kbm24@kbmaeil.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에겐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경북매일신문 편집국 시민광장 담당자(054-289-5002)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한다는 것은 생성과 동시에 소멸을 의미한다. 그러한 반복들은 지형을 변화시키고 공간을 장소화하기도 한다.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초적 자연일지라도 같은 모습을 두 번 보여 주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이 닿는 자연은 그 변화의 속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의 작업들은 이렇게 지속적인 시간의 변화 속에서, 내가 만나는 자연에 대한 탐색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화하고 있는 자연의 본질을 묻는, 그러니까 자연을 거울삼아 내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반추해보는 일종의 성찰이기도 하다. 포항 앞바다가 그렇고 내연산 청하골이 그랬다. 내가 나고 자란 포항의 앞바다는 이미 오래전의 자연 그 자체는 아니다. 바다와 더불어 숨을 쉬고 바다에 의지해 생존을 해결하던 공존 생명체의 지위를 잃은지 오래다. 우리의 산업화와 더불어였다. 그 자리는 철의 도시라는 배경으로, 도시의 확장과 함께 소비의 대상으로 이미 장소화 되었다. 요즘은 자연의 색에서 인공의 색으로 또 기억의 공간에서 욕망의 장소로,변화의 속도가 도시의 변화 속도를 오히려 견인한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나에게는 추억과 사색의 공간이다. 자연의 색에 대한 감성을 열어주고 자연을 정신적으로 인지하는 감각을 가르쳐 주는, 생명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칼로스(kalos)이다./사진작가

2020-07-06

안채현-‘더 그리운 그런 날’

나에게 2012년 봄은 특별했다. 보물 하나 내어주고 보물 두개를 얻은 슬프고도 기쁜 봄이었다.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비를 좋아했다.나비로 다시 태어나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나비를 좋아하게 만든 듯하다.나의 엄마는 곧 태어날 첫 손주를 고대하며 힘을 내 보겠노라고 암과의 힘든 싸움에서 8개월을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칠흙같은 어두운 밤 우리의 곁을 조용히 떠나버리셨다. 그 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도 당신을 잊지 않겠노라 매일 당신을 기억하겠노라 약속했더랬다.2020년 봄, 지금의 난 세 아이의 엄마, 내조 잘하는 아내로 평범하고도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라’라는 당연한 말의 뜻을 그때는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왠일인가? 엄마와의 행복했던 추억들만 기억날 줄 알았는데 왜 투정부리고 화내고 짜증부렸던 일들만 기억이 나는지…. 엄마의 웃던 얼굴을 떠올리고 싶은데 늘 힘들어하던 엄마의 얼굴만 기억나는지…. 어딘가 여전히 남아있는 엄마 사랑속에 나의 부족함이 뒤섞인 탓일터. 이제 그 기억마저도 조금씩 조금씩 잃어가니 정말 안타깝다.오늘 아침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등원길에 신이나 앞서가던 아이가 길가 주인 모를 화분의 꽃을 보더니 뒤돌아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거기엔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앉아있었고, 아마도 나비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꼬맹이가 급하게 찾은 깜짝 선물인 듯했다. 아이는 뿌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고 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엄지척을 날려주고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꽃 위에 날개를 세우고 있는 하얀 나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오늘 더욱 그대가 보고싶네요….’/포항시 북구 삼호로 391

2020-07-06

그것은 필연적인 나와의 조우… 경주 보리사(菩提寺)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에 보리사가 있다. 불국사 말사로 헌강왕 12년(886년)에 창건된 절로 남산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삼국사기에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서 깊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폐사로 남아 있던 절을 1911년 비구니 박덕념 스님이 중창하면서 지금에 이른다.수없이 화랑교를 지나다니면서도 산림환경연구원 뒤쪽 미륵골에 보리사가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접시꽃이 예쁘게 핀 작은 마을을 지날 때까지 보리사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 왕대밭에 싸인 너른 주차장, 키 큰 적송들 품에 정갈하고 아담한 사찰 하나 앉아 있다.“보리사, 이름부터 참 예쁘다.”다행히 친구가 좋아한다. 소나무 아래를 걸으며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주제도 없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마음을 전한다. 그저 그런 나의 일상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새로운 기법에 열정을 쏟으며 재미를 붙이고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며 살아가는 친구가 오늘따라 더 젊고 아름다워 보인다.부처님 계신 수미산을 오를 때면 무언가에 집착하고 서두르던 일상들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아서 좋다. 고만고만한 날들이 모두 감사할 뿐이다. 오늘은 친구가 여유를 가지고 멋진 영감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보리사로 향하는 우리의 걸음은 느리지만 소소한 것들로 행복하다.깊은 역사에 비해 젊고 현대적인 당우들. 하지만 고도(古都)의 도시 경주에 어울리는 경관과 품격이 느껴진다. 대웅전의 반듯한 이마와 단아한 탑과 석등, 범종각과 요사채, 소나무에 둘러싸인 석불좌상까지 어느 하나 허술함 없는 짜임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친구가 나보다 먼저 합장 반배한다.우리는 대웅전에 들르는 것을 잊고 정성스럽게 꾸며진 화단에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원에는 누군가의 노고가 먼저 읽혀진다. 군데군데 수국이 주존불처럼 넉넉하게 자리를 잡으면 크고 작은 꽃들이 협시보살처럼 조화롭게 어울려 유월의 마지막은 한껏 풍요롭다. 주지 스님은 어떤 분일까?절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하지만 생동감이 느껴진다. 덩굴을 뻗어 올라가는 호박꽃도 이곳에서는 어엿한 화초로 손색이 없다. 아침저녁 예불소리 듣고 자라는 꽃들의 맑은 낯빛이 탐스럽다. 무리 속에서 저마다 가치를 드러내는 저 구김 없는 자존감들! 서로의 향기에 어깨를 기대며 살아가는 꽃의 세계에도 부처님 말씀이 숨어 있다.잘 생긴 소나무 숲 아래 보물 제 136호 보리사 석불좌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대좌와 광배(光背)를 모두 갖춘 완전한 불상으로 보존 상태나 조각기법이 남산에 있는 불상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는다. 주존불의 수인이 항마촉지인이라 석가모니불로 볼 수도 있고, 뒤편에 동쪽의 부처인 약사불을 배치한 것으로 보아 앞은 서쪽의 부처인 아미타불로 보는 견해도 있다.천년을 견뎌온 불상은 어떤 아픔이나 회한의 흔적도 없이 연화좌대 위에 안정감 있게 앉아 있다. 인고의 시간들을 굳건하게 승화시킨 석불의 자비로운 미소 앞에서 누구나 두 손 모을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합장 삼배로 화답한다.조낭희수필가뒤늦게 대웅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요사채의 화려한 유리문이 붙든다. 거울처럼 반사가 심한 유리문에는 유월의 마지막 풍경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담겨 있었다. 그 광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드는 순간 사진을 찍지 마라는 호통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굳게 닫혀진 반사유리에는 푸른 잔디만 눈부시다. 요사채를 향해 얼떨결에 두 손 모으며 사죄했지만 반사유리가 주는 묘한 구조적인 관계에서 나는 폭력성을 느끼고 말았다.무안함과 동시에 불쾌감이 인다. 잠깐 문을 열고 훈계하였다면 훨씬 인간적인 따뜻함이 묻어났을 텐데.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저토록 꽃을 사랑하고 절을 정성스럽게 꾸민 주지 스님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절이 가진 정갈한 이미지와 경관이 싸늘하게 멀어져간다. 문턱 높은 절 앞에서 마음이 무겁다.깨달음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보리사, 대웅전 법당은 부처님 계신 불단도 화려하다. 절의 재정 상태가 넉넉해 보인다. 원고료 중 일부를 불전으로 내오던 나름의 원칙이 잠시 흔들린다. 이토록 유치하고 조잔해지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가? 탁하고 분별심 가득한, 너덜해진 마음 앞에서 잠시 참담하다.바람 한 점 없는 법당에서 백팔 배를 시작한다. 촉촉하게 몸이 젖어 올수록 마음은 평온해져 온다. 작은 바람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마음, 여전히 갈 길이 먼 나와의 조우는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법당을 나서는데 보리사의 경관은 첫 인상 그대로 정갈하고 아름답다.요사채를 피해 돌아서 나오며 연화좌대에 앉아 있는 불상을 향해 두 손 모은다. 아무도 없지만 여전히 미소 짓고 있으리라. 궂은 날에도 흔들림 없이 지을 참다운 미소를.

2020-07-06

고통과 영광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서

전달되지 않은 화해와 용서는 유효한가. 70년의 세월 동안 온 몸에 새겨진 상처와 정신적 고통들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노쇄한 영화감독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의 매니저와 주치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32년 전 시사회에서 단 한 번 보았던 그의 영화를 다시 볼 기회를 가지면서 주연배우의 연기에 대해 그때와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된다.그 평가에서 시작해 오늘날 그를 만들었던 변곡점들을 되새긴다. 그 변곡점들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들은 강렬하고 찬란했으며, 괴로웠으며 아팠던 것들이었다. 모두 ‘어디에서’ 왔는가에서 시작해 ‘어떻게’ 왔는가를 말한다.파편적으로 그의 과거와 조우하면서 그 기억들이 주는 양면성을 탐색한다. 바로 영화의 제목인 ‘고통’과 ‘영광’이다. 기억이 순차적으로 오지 않듯이 예고없이 치고 들어오는 회상들은 어떻게 왔는가, 즉 어떤 환경에서 떠올려졌는가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진다.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고통과 영광이 층위를 만들고 쌓아올려진 층위의 결과물로 오늘의 내가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로 이야기하는 자전적 일대기가 되는 것이다.영화 속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며 영화 밖에서 영화를 끌어 온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전작들이 탄생하게 됐던 이유를 만나게 되고, 그 이유가 되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다. 삶은 어떻게 영화가 됐고, 영화는 어떻게 삶이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영화 밖에서 들고나던 기억은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상처가 영광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그 과정 속에서 묶여있던 과거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새롭게 작별을 고한다. 날카로웠던 집착은 무뎌지고 다듬어져 더이상 ‘상처’가 되지 못한다. 그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파격과 수다는 이처럼 부드러워지고 깊어진 것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눈빛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영화 속 영화감독인 살바도르는 어린 시절 신학교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유명한 영화 감독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게 되면서 지리를 알게 됐고,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게 되면서 해부학을 배웠다고 말한다. 영화를 통해 시야를 넓히게 됐으며, 영화를 통해 눈빛이 깊어지는 과정을 겪게 됐다.인생의 넓고 깊음이 오롯이 영화에서 기인했음을 읊고 있으며, 그 영화를 이뤘던 요소들이 그의 과거에서 시작되어 의미를 달리하며 재해석되고 새롭게 빛깔을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죽음을 향해가는 삶에 대한 과거의 작별이 아니라, 중단되지 않는 삶에 있어서 과거의 기억들이 ‘재배치’되는 과정에 대한 영화다. 유효하지 않던 화해와 용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직면하게 되면서 재배치 된다. 화해와 용서는 재배치를 통해 유효성을 획득하고, 고통과 영광은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다시 출몰하여 재배치되느냐의 문제가 된다. 70년의 세월 동안 새겨진 상처와 고통, 그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되어지던 영광은 시기와 자리를 바꿔가며 재평가되어 지고 있다. 영화 안과 밖을 넘나들던 이야기들은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허물고, 살바도르로 분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오늘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감독의 회고록이 아니라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담은 영화가 된다.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탄성과 함께 깨닫게 된다. 영화의 안과 밖,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관계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관계 맺었음을. 삶은 취하고 버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배치하느냐의 문제인 것. 극단의 고통과 영광이 자리를 바꿔 앉을 수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영화 ‘페인 앤 글로리’는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20-07-06

참을 수 없는 분노의 가벼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최근 어느 시민 단체에서 구청의 부조리를 비판한 성명서를 보며 오만한 태도에 화가 났다. 며칠 전에는 양심을 찾으라고 모 재벌 총수를 비판하는 어느 종교 단체의 성명서가 훈장님 훈계처럼 느껴져 실소가 나왔다. 그러면서도 이런 분개는 비겁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몰려온다. 그러노라니 문득 김수영의 시가 떠오른다. 김수영은 그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에는 아무 말 못하고 기름덩어리 갈비탕에만 분개하는 자신이 옹졸하다며 작디작은 자신을 자책했다.구청의 부조리나 재벌의 편법에 얼마나 분개했나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지금의 분노는 김수영이 옹졸하다고 했던 그 감정과 비슷하다. 큰일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것을 비판하는 성명서는 오만한 훈계라며 분개하다니, 옹졸하고 비겁하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오는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름덩어리 갈비에 분개하는 것은 왜 떳떳한지 못한지, 성명서를 비판하는 것은 왜 정당하지 못한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은 그저 화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데로 생각이 미친다.화와 분노는 다르다. 틱 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에서 강조했듯이 화는 조절해야 할 감정인데 비해, ‘분노하라’,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분노는 일으켜야 할 감정이다. 화는 정당하지 못하고 미숙한 감정이고, 분노는 정당하고 성숙한 감정이다. 성명서를 보며 일어나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화라서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그런데 문제는 김수영의 옹졸한 분개나 요즘 일어나는 감정이 화인지 분노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언론을 탄압하는 권력도 부당하지만 기름덩어리 갈비탕을 주는 음식점 주인도 옳지는 않다. 구청이나 재벌에게 문제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시민 단체나 종교 단체도 잘못할 수 있다.그렇다면 화와 분노를 잘못한 대상이 작으냐 크냐로 구분하는 것은 이상하다. 분노는 적절한 감정이고 화는 부적절한 감정이라면, 잘못한 대상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느냐로 옹졸한지 아닌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적절하게 표현했느냐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중용’에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절도에 맞게 표현되는 것이 조화”라는 말이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 자체는 잘잘못이 없다. 절도에 맞느냐 안 맞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권력의 부당함에 분개하더라도 적절함을 넘어서면 좋은 비판이 되기 어렵다. 작은 일에 분개하더라도 적절하게 분개한다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김수영은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는 일이 작다고 한탄했지만, 그런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작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는 분노해야 할 일이다. 분노의 대상이 크냐 작으냐보다 그 분노가 적절한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적절하게 분노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떳떳하고 용기 있는 일이다.

2020-07-06

“3차 추경 대구패싱”… 특별재난지역 말 뿐인가

미래통합당 김승수 의원(대구 북을)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코로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대구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배려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냈다. 코로나 확진자의 64%가 대구경북에서 발생했고, 이곳은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음에도 예산 반영과정에서는 정책적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요지다.최근 영남권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두고 정부가 부산을 선택한 것을 보고 지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TK패싱이 도를 넘었다는 격앙된 여론이 많이 나왔다. 문 정부 들어 TK패싱이 한두번 아니었지만 감염병 발생의 노하우가 축적된 대구경북에 전문병원 설립을 외면한 것은 전문성보다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정부는 틈만 나면 한국의 K방역을 세계적 모델이라 자랑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감염병과 사투하며 K방역을 주도했던 TK지역에 대해선 칭찬도 배려도 모두 인색했다.대구시는 코로나 극복을 위해 열악한 재정에도 3천751억 원이라는 예산을 투입, 안전 방역망 구축에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예산 배정과정에는 이러한 노력에 대한 보상은 철저히 무시됐다. 코로나19 확산 당시 대구 코로나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지역의료인에 대한 위험수당 311억 원도 정부는 120억 원만 반영했다. 국가 파견 의료인력과 비교하면 엄연한 차별이다.대구시가 건의한 영남권 감염병전문병원 추가 설립에 따른 설계비 23억도 삭감했다. 인구밀도로 보아 영남권에 최소 2개 이상의 감염병전문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요청한 예산이 무산된 것이다.서대구 KTX역에서 대구국가산단을 잇는 대구산업철도의 설계비 99억 원 가운데 89억 원을 삭감한 것도 지역의 어려운 경제를 외면한 처사다. 정부는 1.2차 추경을 하면서 모두 24조 원의 예산을 늘렸으나 대구에는 고작 1조4천억 배정하는데 그친바 있다.정부의 3차 추경 예산안 처리를 두고 부실졸속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무려 35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추경안을 통과시켰으나 심의과정이 부실해 성과가 제대로 날지 걱정이라는 여론이다. 특히 아르바이트성 일자리 등 선심성 편성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어서 이번 대구에 대한 정부의 예산패싱이 더 억울하고 마음에 걸린다.

2020-07-06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한국형 발사체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등이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하는 탑재 중량 1천500kg, 길이 47.2m의 3단형 로켓으로, 1단은 75t급 액체엔진 4개, 2단은 1개, 3단은 7t급 액체엔진으로 구성된다.누리호는 2021년 발사를 목표로 하는데, 누리호에 들어갈 엔진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발사체는 2018년 11월 28일 오후 4시 발사됐다.연료는 발열량이 많은 수소 대신 케로신(등유)을 사용한다. 75t 엔진은 총 150회 이상의 연소 시험을 수행했고, 누적 시간도 1만5천초를 넘어섰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내년 2월 한국이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발사체가 우주로 날아오르게 된다.우주로 갈 수 있는 로켓은 한번에 만들어지지 않고, ‘체계개발모델(EM) → 인증모델(QM) → 비행모델(FM)’순으로 개발 단계를 밟는다.체계개발모델은 엔진 없이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수류시험’을 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다. 점검이 끝나면 엔진을 붙여 지상 연소시험과 발사대 시험까지 진행하는 인증모델을 만든다. 이후 비행용 엔진을 붙여 실제로 발사하는 비행모델을 만들게 된다. 누리호는 현재 1단 체계개발모델을 이용해 수류시험을 하고 있다. 이 작업이 8월까지 완료되면 1단 인증모델에 75톤 엔진 4개를 붙여 올해 하반기에 시험할 예정이다.누리호를 우주로 보낼 발사대에 대한 검증 시험도 준비중이다. 항우연은 지속적인 발사를 통해 신뢰도를 확보하고, 성능 개량을 이어 나가 2030년까지 830kg급 달 탐사선 발사 성능을 확보하는게 목표다.우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멀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20-07-06

새 안보라인, ‘핵 폐기’ 가짜 쇼 집착 말아야

문재인 정권의 새 안보라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른바 서·지·영 라인이라고 불리는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 내정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 3인의 색깔은 하나같이 대북 유화론자들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꽉 막힌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를 진전시켜갈 극적 반전의 기회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과 진정성 없는 북한의 비핵화 이벤트에 계속 놀아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맞물린다. 서훈 내정자는 2018년 3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뒤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홍보해왔다. 박지원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 추진 과정에서 대북 채널 역할을 했었고, 이인영 후보자는 586 운동권 출신으로 ‘민족자주’를 줄곧 외쳐온 인사다. 그러나 이들 3인의 이력과 성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협상에서 활용하기에 따라서 커다란 장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상기해야 할 대목은 상황을 낙관한 나머지 저들의 전술 전략을 깊숙이 읽지 못하고 되치기를 당할 염려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진보 정권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애초부터 비핵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특성을 간과하면서부터 꼬였다. 복기해 보면, 김대중 대통령에서부터 비핵화 의지라곤 없는 북한과의 이벤트성 만남, 일방적 퍼주기 등을 통해 ‘보여주기식’ 관계 개선에 매달려 온 게 사실이다. 물론 남북이 자주, 폭넓게 만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북끼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타령은 ‘한미동맹 파괴’와 ‘주한미군 철수’의 기만적 구호다.안보라인이 앞장서서 ‘북한 비핵화’를 맹신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실책은 이제 안 된다. ‘핵 폐기’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선택할 개연성이 없는 신기루다. 저들은 ‘핵보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강국의 길을 모색하는 유일한 전략에 수십 년 꽁꽁 갇혀 있다. 정부가 허점투성이 ‘햇볕 정책’의 미련에 빠져 결정적 실패를 저지르지 않도록 온 국민의 투철한 감시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2020-07-06

포스트 홍콩이 싱가포르가 되듯이

그동안 시끄러웠던 홍콩이 마침내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지난 6월 3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전국인민대표회의(제13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0회 회의에서 출석한 162명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유지법(中華人民共和56FD香港特別行政533A56FD家安全維持法, 이하 홍콩안전법)’을 가결하였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49호 주석령에 서명한 직후 공표된 이 홍콩안전법은 7월 1일 0시부터 시행되었다. 무려 150여 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역사적인 1984년 영국과 중국간 합의 당시 반환 이후 최소 50년간은 기존의 사법, 금융, 경찰, 관세 제도를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1국 2제도’를 탄생시켰던 홍콩이었지만 1997년 7월 1일 반환일로부터 불과 23년 만에 그 약속이 깨어지면서 홍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유일한 홍콩 선출위원인 탄 야오쫑(譚耀宗)은 30일 회의 종료 직후 홍콩 공영방송(RTHK)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안전법에는 ‘사형’이 없다고 함으로써 종신형이 최고형임을 알렸지만 그때까지 금고 10년형이 최고로 알려지던 것보다는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된 모습이다. 법안은 홍콩에서 국가 분열이나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 협력하여 국가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핵심은 치안 유지를 담당할 ‘국가안전유지공서’의 신설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홍콩안전법이 조기에 성립된 것은 당장 오는 9월 6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를 대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홍콩특별행정구 구위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18개구 중 17개구를 차지하였으나 앞으로 이 홍콩안전법 조항을 악용 내지는 확대해석할 경우 범민주 진영 인사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출마자 심의과정에서 걸러져 아예 선거 참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홍콩안전법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 간 대립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 이 법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6월 29일 미국 정부는 기밀기술의 홍콩 수출을 억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미국은 1992년 ‘1국 2제도’를 전제로 홍콩에 관세·투자·무역 등에 대한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홍콩 정책법’(Hong Kong Policy Act)을 도입, 시행해 왔다. 하지만 이 법이 폐기될 경우 홍콩은 중국 본토와 같이 품목에 따라 대미수출에 최고 25%의 징벌 관세를 부담해야만 한다. 윌버 로스(Wilbur Louis Ross Jr.)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부여했던 특혜 규정이 중단”되었으며 “특별대우를 없애는 추가 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홍콩안전법으로 중국의 홍콩 지배가 강화될 경우 홍콩으로 수출되는 미국 기술이 중국군이나 국가안전부로 흘러 들어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홍콩에 관계되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 조치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자오 리지엔(趙立堅) 대변인은 6월 29일 정례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중국은 홍콩지구의 문제에서 악랄한 행동을 취한 미국인에게 비자발급을 제한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밝히며 맞섰다.이처럼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홍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특별한 지역으로 기억되었던 곳이다. 1842년 ‘난징조약’을 계기로 영국 총독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도시였지만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홍콩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54년 고 금사향이 발표하였던 히트곡 ‘홍콩아가씨’는 6·25전쟁으로 상처를 입었던 많은 국민의 가슴속 아픔을 감싸준 경쾌한 치유의 노래였다. 1960-70년대까지도 비교적 부유층 여성들에게 홍콩은 그야말로 선진 도시였고, 쇼핑의 천국이었으며, 새로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환상의 도시였다. 여성만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지금의 50대 남성들은 홍콩 영화의 전성기와 함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소룡의 당산대형, 정무문, 용쟁호투 등 무협 액션 영화를 필두로, 1980년대에는 성룡의 취권 등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홍콩느와르의 상징과도 같은 영웅본색 등 홍콩 영화가 국내 극장가를 휩쓸었다. 한때 홍콩은 우리나라와 대만, 싱가포르까지 합쳐 아시아의 4마리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우리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가게 된 것도 사실이다.한편 홍콩의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제44차 유엔 인권이사회의 화상 연설에서 “홍콩 안전법은 법을 위반한 극소수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며 홍콩 거주 압도적 다수의 생명과 재산, 기본권, 자유는 보호될 것”이라고 강조하였지만 이미 국제 금융 자본시장의 흐름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홍콩이 아시아의 국제 금융 허브로서 명성을 날린 것은 국제사회에서 영국령으로서 호주, 캐나다 등과 같은 선진국 지위를 부여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50년간은 현행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던 국제적 인식이 무너지면서 오랫동안 아시아지역 금융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던 홍콩의 지위가 동반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포스트 홍콩의 지위가 싱가포르로 옮겨지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지역 사업거점의 본부를 홍콩에 두고 있었던 구미기업들이 그 기능을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3일 발표한 설문 조사결과에서도 홍콩에서 사업 중인 미국기업 가운데 홍콩 안전법에 대해 어느 정도 우려가 30%, 매우 우려가 53.3%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의 30% 정도는 홍콩에서 자본이나 자산, 사업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한다고 답변하였다. 포스트 홍콩으로 싱가포르가 부상하는 데는 법인세율이 17%, 개인 소득세율이 최고 22%에 불과한 과세제도도 장점인 데다 중국어와 영어가 모두 능통한 사업환경 때문이다. 실제 6월 5일 싱가포르금융통화청(MAS)이 발표한 4월말 은행 비거주자의 예금 잔액은 전년 동월 대비 44%가 증가한 620억 싱가포르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는 1991년 이후 최대 증가액이다. 싱가포르 민간은행의 외화예금도 대폭 증가하였다. 자본 유입의 진원지는 아마도 홍콩일 것이다. 이러한 자금 흐름에는 미국 등 구미기업만이 아니라 그동안 중국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홍콩에 자본이나 자산을 두고 관리하고 있던 중국 부유층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개인금융 회사인 크레디 스위스, UBS 등은 물론 헤지펀드 등도 홍콩 안전법 성립을 계기로 지난 수 개월간 활동거점을 싱가포르로 옮기면서 인재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포스트 홍콩으로 싱가포르가 부상하게 된 것은 즉각적인 어떠한 정책을 내세우거나 시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평소에 그와 같은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항도 미래지향적으로 조기에 지진 특별법을 기반으로 지역의 재생, 복구, 재건에 힘써 새로운 정주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투자와 활동에 친화적이며, 외국인들이 큰 어려움이 없이 시내를 활보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기반을 꾸준히 정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어떠한 사건이, 어떠한 충격으로 인해 포스트 홍콩의 대안으로 싱가포르가 부상되는 것처럼, 포스트 주거지의 대안으로 포항이 급부상하더라도 큰 무리 없이 인구나 기업을 수용할 수 있도록./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05

쇠똥구리의 지혜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아주 오래전 일이다. 자료조사를 핑계로 학과 친구 몇몇과 여름맞이 시골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다들 시원한 수박을 우적우적 먹으며 평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쇠똥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똥을 굴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들 신기하다며 보는데 마침 마을 어른 한 분이 이게 참 대단한 거라며, 또 존경스럽다고까지 하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곤충 주제에 대단해 봤자지 거기에 무슨 존경까지는. 헌데, 그분 말씀의 요지가 이러하였다.오랫동안 소를 치면서 쇠똥구리를 지켜봐 왔는데, 글쎄, 꼭 자기가 짊어질 만큼만 소똥을 굴릴 뿐만 아니라, 그 굴린 똥 또한 단단하여 웬만해선 부서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잘 다진 똥 구슬을 땅속 둥지에다 옮기고 그 속에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니, 다른 벌레나 새들에게 잡아먹힐 일도 없다 했다. 즉 굴릴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굴릴 뿐 아니라, 그것을 또 잘 지키는 현명함마저 갖추었으니, 욕심쟁이 인간들보다야 백 배 낫지 않는가 했다. 듣고 보니, 그럴싸 싶어, 수박 먹다 말고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지나치게 욕심부리다 패가망신한 예는 우리 고전에 수도 없이 많다. 혹 하나 떼려다가 혹 하나 더 달고 온 혹부리 영감에서부터, 금도끼 가지려 꼼수 부리다 쇠도끼마저 잃어버린 욕심쟁이 나무꾼, 애꿎은 제비 다리 분질러 온갖 재화(災禍)를 받은 놀부 등 지나친 욕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우리 옛말에 ‘욕심 많은 놈, 참외 제쳐놓고 호박 고른다.’는 말이 있다. 또, 성경 야고보서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낫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는 말도 있다. 이는 모두 지나친 욕심이 제 살을 갉아먹음을 경계한 말이다. 바다의 해녀들은 한결같이, 욕심내지 말고 딱 자기 숨만큼만 있다 오곤 한다. 욕심부리는 순간, 물숨을 먹고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됨을 잘 아는 까닭이다. 해지기 전까지 걷는 만큼 모두 당신 소유의 땅이 되리라 하니, 과욕부리다 결국 지쳐 넘어져 자기 몸뚱이가 묻힐 만큼의 땅만 얻게 된 이야기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그럼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욕심쟁이들이 세상엔 참으로 많다. 욕심은 바로 절제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우유와 치즈 하나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였다. 그만큼 행복은 절제하고 자기 수준만큼 갖고 가진 만큼 열심히 지키는 데서 오는 법이다. 그런데 욕심 많은 사람은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한 줄 안다. 욕심이 많을수록 불행도 커지는 것을 모르는 까닭이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사람의 꾐에 넘어가지 않고, 죄짓는 사람 곁에 서지 않지만, 욕심쟁이들은 쉽게 악의 무리와 결탁되기 쉬운 법이다.한평생, 참으로 짧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인생, 뭐가 그렇게 욕심들이 많아 남의 것을 뺏으려 하고, 배 아파하고, 꼼수를 써서 이미 공정한 심사에 따라 결정 난 일을 무리수를 두어가며 뒤집어엎어선 자기 것 하나 더 챙기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 불쌍한 인생들, 더 늦기 전, 쇠똥구리의 지혜를 한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2020-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