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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망초꽃 여름

김병래시조시인여름 들녘에 개망초꽃이 지천이다. 누가 뭐래도 여름은 개망초꽃의 계절이다. 아무도 개망초꽃을 피해서 여름을 건너갈 수는 없다. 이 땅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고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 것 같지만, 개망초는 사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 한다. 그 시기도 구한말쯤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마치 서양문물이 그렇듯 지금은 한반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번성한 풀이다.개망초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망초란 풀이 따로 있다. 망초도 개망초 못지않게 흔한 풀지만 좁쌀처럼 자잘한 꽃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통은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면 급이 좀 낮은 걸로 치지만 개망초꽃은 예외다. 망초나 개망초의 이름에 망(亡)자가 들어간 력에는 귀화해서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와 겹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란 원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후에 우리나라의 부흥과 함께 왕성한 번식력으로 널리 퍼졌으니 이제는 망초가 아니라 흥초로 불러도 되겠다.개망초꽃은 흔하디흔한 꽃이다. 지천(至賤)이란 말이 그렇듯 흔히들 흔한 것은 천한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착각이고 오류다.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공기지만 없으면 단 5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듯, 흔한 것이 값나가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값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도 된다. 개망초는 옥토든 박토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기름진 땅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는 왜소하게 자라지만 환경이나 조건을 불평을 하거나 비관하는 기색이 없다. 소박한 꽃이지만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크고 화려한 꽃들에 비교해서 조금도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흔해빠진 들꽃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거나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우울해하는 건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다. 물론 개망초란 불명예스러운 이름 따위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개망초꽃을 닮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탐욕과 위선과 비겁과 사악함이 없이 진실하고 소탈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하나라도 무의미한 사물이 있을까마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것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공부도 좋고 몸의 건강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시시각각 전개되는 대자연의 현상에서 삶의 에너지와 지혜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기본이라는 생각이다.내일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지 75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분명 온 국민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축할 일이다.

2020-08-13

길고 긴 장마

1984년 여름 끝에 춘천 하고도 중도라는 섬으로 2학기 개강 앞두고 엠티를 갔다. 같은 과 1학년 학생들끼리 친목을 다져 보자고 선배도, 지도교수도 없는 모험을 감행한 것. 저녁에서 밤까지 재밌게들 놀았고 밤 깊어지자 좁은 농가 주택 둘에 각기 나누어 쪽잠들을 청했다. 그런데, 새벽 여섯 시도 안 된 참에 벼락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 밖에 나가보니 우리 한편이 자던 집 옆 마당이 물에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일은 그때부터. 밤새 비가 너무 내려 소양감댐 수문을 열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북한강 한가운데 있는 이 섬이 물에 잠기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를 구조하러 온다는 헬리콥터를 목빼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헬리콥터가 날아와 헬리콥터를 타고 문도 안 닫은 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데 아래를 보니 과연 물바다라 할 만했다.그게 바로 엊그제 일 같다. 요즘 기나긴 장마 생각에 옛일이 새로웠다.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강북강변도로. 서울에서 이 도로는 모든 혈액 순환의 중추 역할을 한다. 이 강북강변도로가 불어난 한강 물로 곳곳에 도로가 통제 되면서 동맥경화 현상을 보였다. 평소 일곱 시 반쯤 출근하는 사람이 열한 시 반이 되어도 출근을 마치지 못했더라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장마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임진강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북한에서 황강 댐이라는 것을 남측에 통보도 하지 않고 수문 개방을 한 게 그렇잖아도 큰 피해를 더 키웠다는 것이다. 임진강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분들이 집도 잃고 농사도 망치고, 그나마 군인들까지 나서 복구를 하던 판에 또 비가 퍼부어 모든 수고를 수포로 돌아게 했단다.비는 또 정치에서도 논란을 부추겼다.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내리고 강물이 대범람을 하여 주변 가옥과 농토를 집어삼켜 버리자 4대강 치수 사업 때 해당 안 된 곳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낙동강이 범람하고 여러 지천들이 흘러넘쳐 피해를 키우자 4대강 곳곳에 설치한 보가 오히려 홍수 피해를 키운다고들 했다.강뿐 아니라 유난히 잦은 산사태는 태양광 발전에 엮여 설왕설래를 낳았다. 산에 태양광 집적 시설을 얼마나 세웠는지 알 수 없지만 원자력 대신 태양광을 선택한 정부 정책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2013년에 장마가 그렇게 길었었다는데 올해는 더 길어 장장 오십 일을 넘어가리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비가 지긋지긋하다는 말들이 나올 지경, 물난리처럼 마음 심란하고 지치는 일이 또 있을까. 집 잃고 농사 망친 분들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 가눌 수 없다. 난리에 목숨까지 잃은 분들도 여럿이다. 싸우지들 말고 매몰된 새끼를 찾던 어미 개의 마음으로 슬픈 이웃들을 돌봐야 할 때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8-13

김부겸 “영남이 문제”…상황 이해하지만 아쉽다

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 나서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의 이상한 발언이 논란이다. 김 전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호남과 달리 보수당이라면 무조건 지지하는 영남이 문제”라고 발언했다. 어떻게든 호남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그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온당치 않다. 그를 믿어준 영남 유권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자 균형감각을 크게 상실한 언사다. 김 전 의원은 인터뷰에서 “내가 타파하려는 지역주의는 동서(영·호남) 갈등이 아니다. 영남의 정치성향이 문제”라며 “영남은 보수당이 무슨 짓을 해도 ‘묻지마 지지’한다. 그러면 그 정당은 시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일정 부분 옳다고 해도 4·15 총선 이후 국회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당하고 있는 제1야당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쉬이 할 말은 아니다.김 전 의원은 또 “(반면) 호남은 20대 총선 때 민주당을 거의 다 낙선시키고 국민의당을 뽑았다”며 “민주당에 예속돼 있지 않다. 언제라도 마음에 안 들면 응징한다”고 굳이 다 지나간 선거결과를 소환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영남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20대 총선에서 대구 유권자들이 그를 뽑아준 기억은 대체 어디로 달아난 건지 알 수가 없다.그의 황당한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총선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구 민심도 이런 부분에선 통합당을 꾸짖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구에서 무려 39.3%의 득표율을 기록한 그가 통합당의 지지율이 평균 4%에 그친 호남의 ‘악마적 주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김부겸의 발언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호남과는 달리”라고 한 대목이다. 21대 총선에서 호남의 표심에서는 최소한의 ‘균형’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나. ‘합리적 진보’의 대명사로 정치적 신망을 키워온 김부겸이 민주당 당원들의 표심이 화급해서인지, 4·15 총선 낙선이 아직도 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균형감각을 영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2020-08-13

병사의 월급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주는 병사의 월급은 일반 기업의 월급제와는 개념이 다르다. 일한 대가에 대한 보상보다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감의 개념이 앞선다.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 의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월급은 국가가 형편대로 주어도 된다는 것이 병사 월급에 대한 통상적 생각이다. 병사들도 이런 생각에 별다른 이의가 없다. 그래서 과거 병사 월급이라고는 담배 몇 갑이나 자장면 몇 그릇 사먹을 정도가 고작이다.한 자료에 따르면 병장 기준의 월급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70년도 900원, 1980년도 3천900원, 1990년도 9천400원, 2000년도 1만3천700원, 2010년 9만7천500원이다. 올해 병장 월급은 54만원 정도라 한다. 세월이 흘러 병사 월급도 많이 인상됐지만 아직은 월급이라 하기에는 작은 금액이다.최근 국방부가 국방 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2025년에는 병장 월급 100만원 시대를 연다고 밝혔다. 향후 5년간 78%를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병사의 월급이 올라 반갑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방의무 수행자에게 봉급생활자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과 “군대를 복지기관 정도로 여기는 것 아니냐” “포퓰리즘적 발상” 등등이다.현재 우리나라 군 사병이 받는 월급이 적정한지는 기준을 잡기가 어려워 판단이 쉽지 않다. 징병제가 실시되고 경제력 등에서 우리와 비슷한 이스라엘의 병사가 50만 원 정도 받고 있다고 하니 참고는 된다.국방부의 계획대로라면 인건비 비용이 1조원이 더 소요된다. 병사월급 인상이 국방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예측이 쉽지 않다. 그러나 군에서는 전투력 증강이 최고의 가치라는 점을 잊고 예산을 짜서는 안 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8-13

포항에 의대 유치 시동, 성과를 기대한다

경북도와 포항시가 포항 의과대학 유치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지역의료계와 경제계, 학계 등 분야별로 35명의 위원을 구성하고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강덕 포항시장, 김무환 포스텍총장이 공동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지역의 숙원사업인 의과대학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이제 시작한 것이다. 지난 12일 포항시청에서 추진위 출범식이 열리던 날 때마침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코로나 현황 파악차 포항을 방문 중이어서 포항지역의 의대유치 열기를 직접 확인했다. 박 장관은 “의대 정원 확대시책에 대한 의견을 현재 수렴 중이니 포항시가 모범이 될만한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도 했다고 한다.포항시는 포스텍에 연구중심 의과대학 유치를 위해 지난해 7월 타당성 용역을 실시하는 등 그간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시는 내년도 상반기 중에는 교육부에 의과대학 설립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한다.경북지역은 전국에서 의료여건이 가장 취약한 곳이다.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가 1.4명으로 17개 시도 가운데 16위다. 인구 10만명당 의대정원 수도 1.85명으로 전국 14위다. 경북지역 의대정원은 동국대 경주캠퍼스의 49명이 다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해 발생하는 치료가능 사망률도 17위다. 응급의료시설까지 평균 접근거리는 20.14km로 15위다.포항지역에 의과대학을 설립하려는 것은 전국 최고의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이 있는데다 방사광가속기와 생명공학연구센터와 같은 RD 연구기관이 많아 연구중심 의과대학 설립이 적합하기 때문이다.특히 포항에 바이오연구단지를 조성할 계획인 한미약품이 의과대학부속병원 설립에 관심을 보여 현실성 있는 대안이 되는 것도 유치 당위성을 높이고 있다.경북은 전국에 42개나 되는 상급종합병원이 단 한군데도 없다. 군위, 영양, 고령, 성주, 봉화에는 아기를 받을 산부인과도 없다. 이런 지역간 의료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의과대학 신설과 의료인력의 증원이 가장 좋다.마침 정부도 지역간 의료격차 해소 등을 위해 1광역단체 1의과대학을 의료 인력양성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제 막 시동을 건 포항지역 의대 유치 노력이 지역민의 염원을 담아 꼭 성공하길 기대한다.

2020-08-13

널뛰는 지지율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더블스코어 차이를 보이던 미래통합당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치다가 마침내 역전되고 말았다.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8월10일~12일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집계 결과 통합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1.9%p 상승한 36.5%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1.7%p 내린 33.4%였으며, 두 당의 지지도 격차는 3.1%p로 나타났다. 통합당 지지도는 역대 최고치로, 통합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추월한 건 창당 이래 처음이다. 특히 4·15총선에서 민주당이 ‘싹쓸이’한 서울에서 통합당(39.8%)이 민주당(32.6%)을 오차범위를 넘어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결과는 일단 정부·여당의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와 부동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다 크고 작은 악재가 잇따르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 지지도가 떨어진 결과다.여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부동산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당의 입법독주도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수차례 부동산문제 해결을 자신했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아파트값이 폭등을 거듭한 것이나 청와대와 민주당, 정부의 이중적 행태도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다주택자를 투기수요로 규정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부동산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들은 집을 팔지 않고 미적거리다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청와대와 민주당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해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이나 박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지내면 안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59만명을 넘었지만 강행한 것 역시 무리수였다. 박 시장 사태는 민주당을 강하게 지지했던 20·30대 여성들이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그렇다해도 여야의 지지율 역전은 반사이익의 성격이 짙다. 통합당의 선전덕분이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일까. 통합당 역시 탄핵 정국 이후 첫 지지율 역전이란 희소식에도 마냥 기뻐하긴 면목이 없어보인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3일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 등 약 300명과 함께 전북 남원 금지면 수해지원 봉사활동에 나선 자리에서 “우리가 노력한 만큼 국민이 알아준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며 “결산 국회나 정기국회 때 법안이든 예산이든 국민이 아쉬워하고 필요한 것은 여당보다 더 정교하게 잘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라고 다짐했다. 다만 통합당이 새 강령에 5·18 민주화운동을 삽입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사과 의지를 내비치는 등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들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렇다해도 통합당은 새롭게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에 실망하고 있는 국민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는 파격적인 정책이나 스토리를 한시바삐 마련해 제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게 야당으로서, 공당으로서 해야할 일이다.

2020-08-13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집니다. 물난리로 전국이 혼란스럽습니다. 7월 장마, 8월 무더위라는 기상 패턴이 무색할 정도로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위험 수위를 넘은 물길은 아량을 모릅니다. 교각을 삼키고 제방을 무너뜨리더니, 순식간에 들판의 경계를 없애고 집들을 고립시킵니다.그나마 이곳은 장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습니다. 점심 약속을 위해 길을 나섭니다. 비 그친 하늘이 가을날을 앞당겨 놓은 것 같습니다. 좀 전까지 떠올린 ‘위험수위’에 대한 단상이 지워질 정도로 산뜻한 풍광입니다. 갓길에 차를 세워 가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빛을 맘껏 담는 여유도 부려봅니다.주유소에 들릅니다. 세차 먼저 하고 주유해도 되나요? 잠깐 갠 날씨 덕에 목소리 톤이 눈치 없이 높았나봅니다. 기름 넣어도 세차 할인은 안 됩니다. 심드렁한 직원의 대답에는 ‘나 귀찮으니 건드리지 마시오’하는 기색이 묻어납니다. 고객에게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을 터이니 그 정도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청명해졌다지만 여전한 고습도 날씨 앞에서 한결같은 친절 모드를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다음이 문젭니다. 단 몇 초 사이, 차창문을 닫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직원은 냅다 차에다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전 제스처도 경고도 없는 돌발행동입니다. 쌓인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고객에게 푸는 모양입니다. 급히 창문을 올려 물세례는 면했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사소한 지점에서 손상 받는 거니까요. 무시당한 게 분명한데 화를 내기엔 미묘한 순간이랄까요.세차기가 돌아가는 동안 크게 쉼 호흡을 합니다. 이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번 되뇝니다. 십 음절로 된 그 말을 되풀이하다보면 달아오른 얼굴빛이 가라앉고 벌렁거리던 심장도 누그러집니다. 마법의 주문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찾는 일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을 건너야 할 때 활용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점심 장소인 일식집에 도착합니다. 위로 둥근 손잡이가 달린 육수 냄비를 양손에 든 점원이 테이블로 다가옵니다. 얼마나 조심성 없게 들고 오는지 뜨거운 국물이 넘치는 게 다 보입니다. 어이쿠, 어이쿠 조심하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가까이 앉은 제게 육수를 쏟고 맙니다. 뜨거운 물기가 스치자 놀란 개구리처럼 몸이 절로 솟구칩니다.국물이 원피스 허리춤을 타고 허벅지로 흘러내립니다. 일행들도 놀라 휴지와 행주를 들고 모여듭니다. 한데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점원은 남 일 보듯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가 끝입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난다는 듯 테이블 세팅에만 손길을 놀립니다. 맘에 없더라도 미안함이나 겸연쩍음 정도의 액션을 취하는 게 당연한 순서일 텐데 그럴 기미조차 없습니다. 애써 무시하는 품새에서 무례함만 도드라집니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운함을 내비치거나 클레임을 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달라질 마음이 없는 자 앞에서 정당한 한 말씀보다 나쁜 충고는 없습니다.차라리 주인이 그렇게 응대했다면 속 시원히 뭔가를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스트레스만 많을 ‘을’을 상대해봤자 찜찜함만 남겠지요. 어찌할 수 없는 소심함으로 소탈한 척(실은 허탈하게) 웃었을 뿐입니다. 속절없이 예의 무궁화꽃송이만 피웁니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그렇게 가라앉히다보니 덴 피부의 열감도 숙지고 속도 편안해집니다. 주유소 직원이든, 일식집 점원이든 그들이 보기에 상대가 긴장할 만한 대상이었다면 그토록 투박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위압적인 느낌을 주거나 사회적 지위가 검증된 이들 앞이었다면 한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을 테고, 손님 입장에서 불쾌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았겠지요. 혹여 실수로 그런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금세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함을 표현했겠지요.김살로메소설가큰 것 앞에 작아지고 작은 것 앞에 커지며, 큰 것에 분노하는 일보다 작은 일에 흥분하기 쉬운 게 인간입니다. 들고 일어설 때는 물러나고, 물러서도 좋을 때 일어나는 게 인간의 속성이구요. 삶은 달콤함 못지않은 위험수위의 연속입니다. 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위험수위 근처에 다다른 을의 스트레스가 갑에게 맞닿기보다 엇비슷한 다른 을에게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씁쓸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작은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을 다칩니다. 그것이 곧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습하고 연습하는 이유가 될 테지만요.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스스로 하는 무궁화꽃 술래놀이의 필요충분조건은 누가 뭐래도 작고 사소한 세계에 한합니다. 사무치도록 화가 쌓인 경우, 이를 테면 그것이 갑을 향한 것이라면 정공법을 택해야겠지요. 그땐 맞서고 부딪치는 일만이 온당할까요. 날씨 탓이든 상황 탓이든 이 세상 모든 을들이 스트레스 덜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위가 낮아지듯 무궁화꽃 주문을 되뇌는 날도 줄어들겠지요.

2020-08-12

밤바다 산책

윤영대수필가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불빛은 호미곶인지 떠 있는 배들인지 정답게 다가오고, 수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바다와 거리두기를 하는지 구름 마스크를 쓰고 하늘 높이 떠 있다.넓은 모래밭에는 젊은이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책길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의 걸음들이 모두 가볍고 길가에 앉아 서로 속삭이거나 혼자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해변의 낭만이다.사람들과 섞여서 천천히 걷다가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마르고 푹신한 느낌이 좋다. 아예 신고 간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아스팔트 길에 잊어버린 발바닥의 촉감을 찾아준다. 내친김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히 밀려오는 밤바다의 물결 소리가 종일 TV 소리에 지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두 발에 전해오는 차가움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바닷물에 세족(洗足)을 하니 생각난다. 8월 4일은 음력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유둣날)이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폭포수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친척들과 떡이나 전을 먹으며 유두잔치를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병이 없다는 신라 때 명절인데 잊혀져가는 옛 풍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산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라 ‘잘 됐구나’ 하며, 오늘 저녁 유둣날의 기분에 한껏 젖어보았다.바닷물에 발 담그고 돌아서서 해변 야경을 보니 알파벳과 외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어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요즘 해외여행이 발 묶여버린 마음에 언젠가 가봤던 기억의 어느 외국 해변 풍경을 그리며 그곳에 와있노라고 상상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모래밭에는 매년 만들어 놓는 모래 작품들도 볼거리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이름난 건축물 조각상 앞에서 흐르는 불빛 따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 또한 행복해 보인다. 발의 모래를 털고 다시 길로 올라오면 즐비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포항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 밤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해변 끝에서 높고 좁다란 방파제에 올라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걸어 가본다. 빨간 등대 불이 깜빡이는 어둠의 배경은 7, 80년대 형산강의 기적을 만든 포스코, 옛날 그 힘찬 용광로의 불꽃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옛 함성을 반추하듯 초대형 전광판의 글자가 길게 늘어져 지나간다. 나는 그 전광판에 새기고 싶다. ‘포항의 영광을 되찾자.’ 그리고 등대 벽에 낙서한 연인들의 마음을 읽으며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고깃배의 만선을 빌어본다.돌아오는 길, 200여 그루의 곰솔 숲 앞을 걸으면 풀잎 지붕의 둥근 테이블마다 바닷바람을 쐬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흥겹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금지된 버스킹 무대에는 할머니 몇 분이 손주들 재롱을 즐길 뿐이다. 모래밭에 줄지은 천막은 비어있는 듯하지만 길가 술집과 커피숍은 그래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실내 금연이라 밖에 모여 피워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그들이 버린 꽁초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얀 애벌레처럼 밤길에 나뒹구는 광경은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밤 산책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일대 누각에 올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변의 불빛을 가르며 내 달리는 제트보트의 날렵한 질주를 눈에 담고 집에 돌아와 폭포수처럼 틀어놓은 샤워기로 젖은 땀을 씻고 유둣날의 복을 빌어본다. 남은 말복에 더위 먹지 말기를…. 지난 7일이 입추(立秋),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2020-08-12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나한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워서 답례하고 싶어 불러내지만,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지만,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죄송합니다.이 세상 떠나신 후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어떤 분은 말합니다.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는 ‘눈물’과 ‘웃음’이라고 합니다.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웃음에는 건강이 담겨있다고 합니다.당신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스위치가 있는데 오직 자신이 직접 켜고 끌 수 있는 행복 스위치입니다.지금 내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모르게 그 스위치를 꺼 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소망은 쫓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그런 속박은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행복은 누가 만들어줄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의 마음속 행복 스위치를 다시 켜보세요. 밝고 환한 행복이 켜집니다.잡은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픕니다.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픕니다.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픕니다.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이제라도 모두 다 내려놓으세요.전부 다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편안하게 사세요.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모두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 땐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그럴 땐 자신에게 칭찬의 한마디를 해주세요.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고생했네! 힘들었지!” “이만하면 열심히 안 살았나? 그래 참 잘하고 있다.” 소소한 한마디가 그 어떤 힘보다 강하게 되어있습니다.

2020-08-12

서울만 바라보라는 말이냐

장규열 한동대 교수워싱턴으로만 달려가지 않는다. 도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런던만 살 곳이라 여기지 않는다. 파리에만 모두 몰리지도 않는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도권과 지역 중소도시가 함께 어우러지며 나라를 이룬다. 미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도시들은 거의 워싱턴이 아니다. 일본에 가면서 도쿄만 생각나는가. 런던도 파리도 수도의 역할을 훌륭하게 하면서 크고작은 다른 도시와 지역들을 외면하지 않는다.우리 서울은 독특하다. 그래서 ‘특별시’일까. 나라 면적의 10퍼센트 남짓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4퍼센트가 산다. 국가경제활동의 70퍼센트가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게 아닌가. 부동산정책으로 몸살을 앓는다는데, 지방도시의 국민들은 이게 누구 이야기인가 싶다. 출신은 하나같이 지방 어느 곳이었지만 현역 정부 고위인사들은 거의 서울에 집 한 채쯤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출신만 지역인 셈이 아닌가. 국회의원들의 ‘지역대표성’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쏟아지는 부동산정책은 누가 보아도 ‘수도권부동산정책’이 아닌가.서울과 수도권, 물론 중요하다. 나라를 대표해야 하고 경제의 중심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라의 정책이 수도권만 배려하거나 국민의 시선이 서울로만 향하고 있다면 문제가 아닌가. 지역을 대표하는 이들이 수도권만 지향하는 정책입안 태도를 수정해야 하며, 서울로만 향하는 관심은 지역민들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인구를 분산시키는 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역에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여건조성에 힘써야 한다.지역은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지역이 발전하기 위하여 지역 스스로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역발전을 도모하면서 중앙정부의 도움에만 기대는 접근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중앙의 지원이 주도하는 지역발전은 특색없고 획일화된 결과를 빚어낼 뿐이다. 지역이 스스로 품격을 올리고 지역브랜딩을 강화하며 고유문화를 발굴하여 일으킬 때, 지역민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외부의 관심도 일어나지 않을까.청년들에게 물으면 지역에 ‘일자리와 문화’가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미래를 열어갈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 공부하고 서울로 떠나버린다면 지방대학의 존재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역마다 다른 모양을 가졌을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일자리와 문화가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발견하면 중앙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관심은 저절로 꿈틀거리지 않을까. 밖으로부터의 지원과 투자도 내적으로 만들어낸 동력에 따라 유도될 터이다.부동산정책뿐일까. 정책수립과 입안이 거의 모두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중앙이 중요한 만큼 지방도 소중하다는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불균형적이며 왜곡된 발전 양상을 벗어날 길이 없다. 지역이 가지는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지 않고는, 균형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할 방법이 없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다양하고 풍성하며 역동적인 삶을 구가할 수 있을 때, 나라다운 나라도 구현되지 않을까.

2020-08-12

구성의 오류

구성의 오류는 부분적 성립의 원리를 전체적 성립으로 확대 추론함에 따라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개별적인 것을 합한 것이 전체의 모습과 다를 수 있는 것, 혹은 한 사람, 한 사람은 영리하고 똑똑한데, 여러 사람이 모인 군중은 어리석을 수 있다는 논리도 여기에 해당한다.구성의 오류를 개별 경제적 관점에서 볼 경우, 절약은 미덕이 될 수 있으나 국가 전체적 관점에서는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절약의 역설’이 대표적이다. 개인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부유해질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만 하면 총수요가 감소해 사회 전체의 부가 오히려 줄어든다. 저축을 위해 소비를 억제해야 하고, 줄어든 소비로 인해 생산된 상품은 팔리지 않고 재고로 쌓인다. 이는 총수요 감소로 이어져 국민소득이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소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절약만 하고 쓸 줄 모르면 친척도 배반한다’는 속담은 구성의 오류를 경계하면서 생산과 소비 균형이 경제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라는사실을 웅변한다.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시장의 특성상 개인의 합리적인 행동(자산증식을 위한 주택구매)이 전체로는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부동산 가격폭등)를 가져와 시장 불안정성을 높이는 일종의 ‘구성의 오류’가 발생한다”면서 부동산가격 폭등이 구성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말해 논란이다.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공급을 늘려달라는 시장의 지적에 “공급은 충분한데, (가격폭등은) 투기세력 때문”이라며 규제대책만을 23차례 남발한 정부가 이제와서 구성의 오류 탓을 늘어놓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처사가 아닌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2

통합당 새 강령 방향 ‘신선’…민심 깊이 담아내길

윤곽을 드러낸 미래통합당 새 강령의 토대가 될 ‘10대 정책’의 내용이 일단 신선하다. 심층 검토가 더 필요한 대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동안 민심이반의 원인이 됐던 맹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깊은 고민의 결과가 잘 담겨 있다고 본다.‘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구체적으로 다듬고 확정하는 과정에서 구태의연한 가치관이 다시 개입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공상이 발동하는 일을 잘 막아서 민심을 더 깊이 담아내길 기대한다.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산하 정강정책특별위원회가 11일 발표한 정책에는 과거 자유한국당이 지향했던 반공·성장주의 등 이념 색채를 희석하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두루 인정하고 양성평등과 노동존중 등을 당의 정신으로 내세워 중도보수 실용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쇄신책이 담겨 있다. 정책은 기회의 공정, 미래 경제혁신, 경제민주화 및 사회적 양극화 해소, 노동, 정부·정치개혁, 사법개혁, 환경, 복지, 양성평등, 외교·안보 등 핵심 정책 분야가 망라됐다.구체적으로 ‘기초의회와 광역의회의 통폐합’, ‘KBS 사장 대통령 임명권 폐지’, ‘법관 사직 후 즉시 출마 금지’, ‘시도지사와 교육감 러닝메이트 제도’, ‘권력형 범죄 공소시효 폐지’ 등을 포함해 모두 30여 개의 주요 정책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정강정책특위는 전날 끝장토론을 거쳐 ‘청와대 민정·인사수석실 폐지’, ‘기본소득’, ‘피선거권 만 18세 이하 하향’ 등의 내용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새로운 정강 정책이 확정되려면 비대위 의결과 상임전국위원회 및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순차적으로 거쳐야 한다. 당명 개정 등과 맞물려 작업이 이뤄지는 만큼 일부 변동될 가능성도 있다. 국회 권력을 비롯해 3부 권력을 장악한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일방통행이 폭증하고 있는 시점에 제1야당 미래통합당의 혁신은 국민적 관심사다. 수구꼴통의 이미지에 갇혀서 도무지 민심을 돌려세우지 못해온 통합당이 민심을 정직하게 담아내어 환골탈태하는 일은 중대한 시대적 사명이다.민심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 감동적인 이정표에 잘 담아내기를 기대한다.

2020-08-12

“포항지진 100% 구제” 청와대 해결 의지 보여야

정부가 입법 예고한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에 반발한 포항시민의 상경시위가 그저께 청와대 앞에서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포항지진 피해금액 지원 비율을 70%로 한정하고, 유형별로 지원 한도를 규정한데 대한 반발 시위였다. 포항시민이 지진피해 보상과 관련해 거리에 나선 것은 한두번이 아니었다. 포항지진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원인이었다. 정부사업 수행과정에서 촉발된 지진으로 밝혀졌음에도 정부는 공식적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피해보상을 둘러싼 특별법 제정도 2년이나 질질 끌면서 겨우 성사했으며 그 내용도 포항시민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했다.최근 산자부가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또 한번 포항시민을 실망시켰다. 정부사업에 의한 촉발지진인데도 피해구제는 70%만 하고 그나마 유형별로 지원한도를 제한한 것이다. 지난 6일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가 주민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것도 이런 독소조항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포항지진 특별법 제14조에는 피해구제 지원금에 대해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행령에는 피해금액 지원비율을 70%로 한정하고 유형별로 지원 한도를 제한한 것은 특별법 취지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그동안 정부가 포항지진과 관련해 취해온 과정은 소극적이며 무책임하다. 이런 측면에서 포항지진과 관련한 포항시민의 분노는 정부가 키워왔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호남에서 포항지진과 같은 지진이 일어났으면 이렇게 했겠느냐”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2017년 11월24일 포항지진 발생 9일 만에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 현장인 포항시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주민이 안심할 모든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진 발생 3년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나 피해 보상은 물론 특별법조차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일각에선 산자부가 지역주민 의견 수렴 없이 포항지진특별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피해구제는 또 다른 마찰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제는 청와대가 해결의지를 직접 보여줄 때다.

2020-08-12

2학기 준비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정말 난리도 이런 난리는 없다. 말 그대로 현대판 삼재(三災)다. 전염병, 장마, 폭염! 더 이상 또 무엇이 있을까? 자연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에게 무서운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제발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개발을 멈추라고! 하지만 인간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이번 삼재는 분명 인재(人災)다. 코로나19 사태만 보더라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이러스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오염시키고, 사람이 퍼트리고, 사람이 아파한다. 내 몸 안에서 바이러스를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 면역(免疫)이라는 말은 대결이라는 사람의 본능에서 나온 사람 중심 용어이다. 사람의 면역력은 어디까지 사람을 지킬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없다면 그들과 선의의 공생(共生)을 하면 어떨지!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허락이 아닌 바이러스의 허락이 먼저다.우리 생각은 우리 몸이 제일 잘 안다. 이는 우리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들도 우리 생각을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들을 괴멸하려고 하는데 생존 본능이 있는 한 그걸 알고도 그냥 당할 생명체는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더 발버둥 치는 것이며, 거기서 돌연변이와 같은 변종이 생긴다.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변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몸을 빌려 사는 자연은 우리와 대결할 생각이 없다. 말 그대로 자연주의는 공생주의다. 자연의 공생주의에 몽니를 부리는 것은 사람이다. 자연은 그것을 다 받아준다. 자연의 공생주의를 착각한 인간들만 더 파괴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자가 치료 능력이 있는 자연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사람과의 진정한 공생을! 사람의 모습을 보면 바이러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자연에 한 것처럼 똑같이 당할 수밖에 없다. 맞서려 하면 할수록 저항은 거세진다. 공생의 방법은 자연이 인간을 인정한 것처럼 우리도 바이러스를 인정하는 것이다.2학기 교육 계획을 세우고 있는 지금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생각한다. 온라인 개학은 더이상 교과 수업을 학교 안에서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온라인에는 학교보다 훨씬 더 알찬 교과 수업들이 많다. 굳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되는데, 학교는 왜 있는 걸까? 이젠 학교의 존재 의미를 단순히 교과 수업에 두는 시대는 끝났다. 빅 데이터 시대에 검색만 하면 누구나 자신이 부족한 과목의 내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이것은 학교의 기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학교는 앞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할까?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준 오류를 인정하고, 과감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고집불통 학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곧 시작할 2학기에 학교에는 새로운 것이 뭐가 있을까? 아이들의 순수한 미래를 학교가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 죄다. 그러기 위해 2학기 시작 전에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공생과 인정’을 위한 연수를 할 것을 제안한다.

2020-08-12

사학비리와 공영형 사립대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7월 14일 한국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 대표 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교육부 감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전 부총장의 딸과 연루된 대학원 입시비리를 비롯해 학사비리와 회계비리가 민낯을 제대로 드러냈다. 이른바 명문사학 연세대의 비리가 이 정도라면, 여타 사립대학은 어느 수준일까, 모골이 송연(悚然)할 지경이다. 이참에 한국의 고질적인 사립대학 문제를 심도 있게 성찰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은 대학교육을 내팽개침으로써 전국에 수많은 사립대학이 세워진다. 오늘날 대학생들의 80%가 사립대학에 재학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립대학의 원조라 불리는 미국의 두 배 수준이다. 국가는 사립학교법인 설립자가 사회에 재산을 환원한 것으로 생각하여 설립자에게 각종 세제 혜택과 사학 경영권을 보장했다. 하지만 설립자들은 대학을 이윤 창출의 도깨비방망이 혹은 화수분으로 생각하여 사학비리가 양산되었다.사학비리가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70년 장구한 세월 이어진 부패의 구조화와 조직화가 문제다. 사학비리는 역사화-체계화되어 가보나 훈장처럼 대물림되고 있다. 둘째로 2005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이 개정한 사립학교법을 2007년 한나라당(미래통합당)이 개악(改惡)함으로써 사학의 효율적인 관리가 매우 부실하다. 셋째로 사학의 이해당사자들이 정계, 관계, 재계, 언론계, 종교계 등에 포진하여 부정부패 카르텔을 전방위적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부정부패를 뿌리째 끊어내려면 국가가 주도하는 감사의 상설화가 절실하다. 그와 함께 사립대학을 건전하게 육성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학을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의적절한 방안이 공영형 사립대학이기 때문이다.공영형 사립대학이란 국가가 대학 운영비를 50% 이상 책임지는 대신에 이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여 반(半) 국립처럼 운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017년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계획’에 포함된 사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 대학서열 구도 완화, 지역균형발전 등을 위해 논의 중인 대안이기도 하다.그러나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 지났음에도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는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교육부가 요구한 812억 예산 전액을 기재부가, 2019년에는 87억 증액요구를 국회가 모두 삭감해버린 것이다. 올해는 교육부 주도로 상지대, 평택대, 조선대 등이 공영형 사립대학 연구에 돌입하였다. 기재부도 내년 예산안 확정 이전에 교육부와 예산편성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낭보(朗報)도 들려오고 있다. 3050클럽에 속한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위상과 미래기획을 위한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 도입은 국가균형발전과 부합하는 좋은 방안이 아닐 수 없다.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대처를 기대한다.

2020-08-12

익숙함과 새로움의 경계에서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다. ‘김희선 곱창밴드’로 시대를 풍미했던 헤어 스크런치가 다시 유행하고 배꼽티와 통 넓은 바지가 옷가게 여기저기에 걸려있다. 추억의 경양식 돈가스를 전면에 내세운 식당은 인테리어며 식기며 심지어 콜라병조차 이전에 생산되었던 모양을 고수한다. 음악은 또 어떤가.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혼성그룹 ‘싹쓰리’로 활동하고 있는 이효리, 유재석, 비는 90년대 느낌이 물씬 나는 청량한 노래를 발표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비트를 듣고 있노라면 코끝이 찡해진다. 눈을 감으면 새하얀 백사장과 파도가 일렁이는 어느 여름 바닷가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지? 사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추억은 내 추억이 아니다. 어쩌면 나는 그리움마저 답습해버린 세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나의 추억에는 멋이 없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휴대전화를 썼고 방과 후엔 컴퓨터 학원에 다녔으며 만화영화로 ‘스폰지밥’과 ‘파워 퍼프 걸’을 즐겨봤다. 이문세의 ‘붉은 노을’보다 빅뱅의 ‘붉은 노을’이, 산울림의 ‘너의 의미’보다 아이유의 노래가 익숙하다. 종로의 LP바에서 “아, 심신 최고였지”하는 선배의 넋두리를 들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미안해요. 난 이 노래 몰라요. 나 때는 동방신기가 최고였다고요.11학번의 문학도로 나는 꽤나 갈팡질팡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라는 자아와 문학도라는 자아가 만나 이상하리만치 비대한 자아가 탄생했는데, 그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 하는 사람’의 흉내를 냈다. 옆구리에 보들레르 시집을 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려 고뇌에 빠진 표정을 짓는 건 기본이었다. 윤동주와 기형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통기타에 김광석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남학생들도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문선’이란 것이 있었다. ‘바위처럼’이나 ‘가자, 노동해방’과 같은 노동요에 맞춰 정해진 율동을 하는 행위였다. 학교 축제가 되면 무대에 올라 사회에 저항하는 몸짓을 선보이는 것이 관습이었다. 나는 무려 문선장을 맡아 이마에 빨간 띠를 두르고 “마침내! 노동 해방!”을 부르짖었다. 문선을 가르쳐주던 선배들은 말했다. “질문은 허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해야만 한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그렇게 일렀다. “너희들은 이 명맥을 꼭 이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뭔 진 몰라도) 아주 큰 일이 날 것이다.”실제로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강제로 남아 빈 강의실에 모여 밤늦게까지 율동을 익혔으며 완벽한 ‘칼군무’를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나왔다. 시큼한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바위처럼’을 오백 번도 넘게 들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의 율동을 열심히 연습하던 친구가 운동화를 벗어 자신의 양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태민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은강아, 사실 나 샤월(샤이니 월드)이야. 태민이 최애야.” 그랬다. 그녀는 유재하도 김광석도 아닌 샤이니의 팬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내 모닝콜도 ‘누난 너무 예뻐’야.”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노동요에 맞춰 춤을 추고 있지? 무엇을 위하여? 어쩌면 과거의 선배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나, 너희 아직도 이거 해?나는 왜 “노동 해방”을 외치면서 “문선 해방”은 외치지 못했는가. 그야말로 구시대적 행위를 대학 시절 내내 고수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멋있어 보였다. 자신을 내던져서 정치적 열망을 부르짖는 행위는 내가 생각했던 진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문선을 연습하는 동안 나는 체제에 저항하며 대단한 일을 행한다는 자기애에 빠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유튜브 동영상 박제라는 끔찍한 벌을 받게 되었지만.돌이켜보면 그랬다. 가끔은 이전 세대를 지나왔던 이들을 질투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며 내 것이 아닌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내러티브를 살아보고 싶었다. “겪어보지도 못한 네가 뭘 아느냐”며 배제 당하는 일은 억울하지 않은가.뉴트로의 탄생엔 이런 맥락도 있을 것이다. 뉴트로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의 것을 새롭게 향유하는 현상을 말한다. 레트로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며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색다름과 신선함을 느낀다.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현재의 시선을 통해 전혀 색다른 종류의 질감을 가지게 된다. 미지의 문화를 직접 발굴해낸다는 일종의 고고학적 감수성과도 궤를 함께하게 되는데, 나는 이 강렬한 경험에 공감한다.나는 첫 번째 장편소설의 주인공을 50대 여성으로 설정했다. 1980년대를 청년 세대로 살아온 그녀를 표현해내는 것은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존재했던 시간이 내겐 불가해한 우주를 탐사하는 것과 같았다. 집필을 하며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은 부모님이다. 나는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정치적 열망이 가득했던 그때를. 사랑과 낭만이 흐르던 어느 밤을. 동시에 부모님 역시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의 문제와 나를 억압하는 시선에 관하여. 우리는 한곳에 모여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삶은 더 이상 상상의 영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야를 공유하면 확장된 세계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큰 세계를 알게 되는 일. 다양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일. 그것은 단순한 답습도 강요도 아니다. 함께 공존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다.어쩌면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의 일상을 신기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할머니 세대에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다녔다면서요? 분리수거도 운전도 직접 했다면서요? 완전 멋지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으이구 무지몽매한 어린 것들”하고 혀를 쯧쯧 차는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때의 나는 샤이니의 노래가 얼마나 좋았는가에 관한 연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말한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래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추억은 아름답다. 우리는 거꾸로 된 거름망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일상을 집어넣으면 무겁고 커다란 절망이 가장 먼저 빠져나가고 아픔이 점점 퇴색되어 고통은 지워지고 가볍고 빛나는 것들만 남게 된다. 그것을 아름다움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어쩌면 그리움은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생산품일지도 모른다.나의 여름은 현재진행형이다. 바지런히 살아가며 미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조악하게만 느껴지는 현실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테다. 얼마 전, 엄마와 함께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이효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그녀의 타투가 조금 무섭다고 했고 나는 너무나 간지난다고 했다. 엄마는 그녀가 핑클로 활동했을 때를 추억했고 나는 효리네 민박에 출연했던 모습에 대해 말했다.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며 자기 소신을 지키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라디오에서 싹쓰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효리가 40대라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다며 엄마는 작게 웃었다. 가사를 흥얼거리며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지. 그중 하나는 과거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일 거라고.

2020-08-11

궤변(詭辯)

궤변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훔쳐갔다. 관가에서 그를 붙잡아 왜 남의 소를 훔쳐갔냐며 신문을 했다. 그는 대답했다. “제가 길을 가다보니 길에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기에 그 노끈을 주워가지고 집으로 왔을 뿐입니다” 그는 소 끈에 묶인 소는 보지도 못했고 소를 훔친 의향이 전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이런 억지를 우리는 궤변이라 한다.궤변의 궤(詭)자는 말을 나타내는 언(言)과 위험하다는 위(危)가 합쳐진 글자다. ‘속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속임수가 있는 말이니 위험하다고 해석하면 글자 풀이를 잘한 해석이다. 사전에서도 궤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하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며 합리화시키는 것이다.’중국 춘추전국시대 궤변 사상가 공손룡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을 궤변의 명제로 삼았다. 여러 색깔을 내놓고 그 중 흰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흰색은 색이 아니므로 흰말은 말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논리의 비약이 분명하나 그의 궤변도 한 시대의 학파로 존재했다.고대 그리스에서도 소피스트라는 궤변가가 활약했다. 당시 철학자나 교사 등 지식집단이 나서 군중을 상대로 설교한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이 대가로 돈을 받고 출세욕에 사로잡혀 터무니없는 주장을 양산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소피스트는 부정적 집단으로 추락한다.요즘 우리사회가 논리보다 궤변과 주장이 더 앞서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발언을 보노라면 철학도 논리도 없고 소신도 없다. 목청만 높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궤변에 가까운 발언을 해놓고 정작 본인은 궤변인 줄조차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8-11

제가치국(齊家治國)이 필요한 때

이창훈경북도청본사 취재본부장삼국시대 제갈공명은 위나라를 정벌하고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전진기지인 기산으로 수차례 출병했다. 이 와중에 한번은 가장 좋은 호기를 포착해 연전연승하며 중원 진출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이때 본국에서 급히 귀국하라는 소환장이 날아왔다. 공명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머금은 채 퇴각한다. 본국에 와 일의 전말을 알아보니 방탕한 신하들이 어린 황제의 귀를 막고 공명이 전쟁에서 이기면 역심을 품을 것이라는 선동질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때 공명은 한탄했다. 병사들은 수 만리 먼 전쟁터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전투를 수행중인데 반해 주색에 찌들은 살찐 신하들이 나라를 망치는구나라고. 공명은 내부기강과 단합이 전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판단, 당분간 전쟁을 접고 내치에 접어들었다. 이후 몇 년 동안 국력을 다진 후 공명은 다시 기산으로 진출한다. 이 고사는 국가를 비롯해 크고 작은 조직, 심지어 가정 등에서 내치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고 있다.현재 경북도의 경우를 보면 최고 수장이 지역의 백년 미래를 결정하는 신공항에 매진하는 사이에 내부 기강이 상당히 흐트러지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또 조직원 간의 불협화음은 고위, 중하위직 등에서 골고루 일어나고 있어 조직 안정화가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구세대와 사고가 상당히 변화된 젊은 세대가 도청에 대거 진입하면서 이들 사이를 잘 조화시키는 여러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최근 도청 토론방에서 확인되지 않은 댓글이 난무, 피해자가 악플러를 고소하는 등 경찰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젊은 직원들이 확인되지 않은 일에 악플을 단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이고, 정확한 내용은 관계 당국의 조사 후 판가름 날 전망이다.이에 앞서 한 중간 간부급의 부적절한 처신이 올라와 댓글 수 십개가 달리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또 얼마 전에는 절도사건으로 공무원이 경찰수사도 받았다. 한 여직원이 소지품을 분실한 사건으로, 경찰 조사 결과 남자직원이 일부러 훔쳐 주변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올 초에는 인사와 관련, 지사를 겨냥한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 공개된 방에 올라오기도 했다. 또 다른 한 직원은 사업소에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켰으나 오히려 본청으로 발령받아 근무중이다.경북도에는 약 2천명의 직원이 북적이다 보니 크고 작은 문제는 항상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조직 내의 갈등 속에서 순기능적인 면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경북도내 조직분위기는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강 해이에 대해 감독 부서도 별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지사가 백년대계를 위해 매진하는 동안 조직에 문제가 생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직원들 사이에 반목과 질시가 길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의 몫이다.제갈공명의 고사가 보여주듯, 경북도도 내부 안정화와 더불어 분위기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불씨 하나가 마을 전체를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8-11

4대강·태양광, 정쟁 빼고 오직 ‘과학적’ 분석을

전 국민이 폭우로 인한 물난리로 유례를 찾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은 물난리 판을 들여다보며 4대강이 옳다-그르다, 태양광이 문제다-아니다 고약한 정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4대강 공사를 ‘절대 악’으로 몰아온 문재인 정권은 차제에 그 부정적 증거를 찾자고 대들 태세고, 야당은 태양광으로 인한 강산 훼손과 산사태 피해 문제를 부풀릴 기세다. 정권 입맛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확증편향 ‘과학’ 논란이 지겹고도 지겹다.4대강 사업을 소환한 건 미래통합당이다.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섬진강이 4대강 사업에서 빠진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통합당 정진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4대강 사업 후 지류·지천으로 사업을 확대했더라면 지금의 물난리를 좀 더 잘 방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썼다.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당 회의에서 “22조 원의 막대한 예산으로 추진한 사업이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사업이 아닌 한반도 대운하 사업 재추진을 위한 성격’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반박했다.태양광 발전시설도 홍수 피해와 관련하여 논란거리다.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에 이어 김미애 비대위원도 “탈원전의 반대급부로 산지 태양광시설이 급증하면서 전국의 산사태가 늘어났다”며 “안정성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산사태 1천400여 건 중 태양광시설 붕괴는 12곳뿐으로 1%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때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보가 홍수조절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증·분석할 기회”라며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지시했다. 이번엘랑은 제발 결론 다 정해놓고 외눈박이 얼치기 학자들 모아서 흉내만 내는 이상한 연구 말고, 진짜 과학자들이 모여서 4대강 뿐만 아니라 태양광시설까지도 제대로 된 조사연구 좀 해봤으면 좋겠다. 4대강이나 태양광시설 놓고 ‘과학’이 아닌 ‘이념’으로 패 나뉘어 온갖 곡학·궤변·편법·압력 다 동원하는 저질 패싸움일랑 이젠 좀 그만할 때 되지 않았나.

2020-08-11

기록적 장마 올해뿐일까…항구적 대책 있어야

긴 장마 때문에 전국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0일 현재 전국적으로 5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으며 이재민도 6천명 가까이 발생했다. 우면산 사태가 일어난 2011년 이후 최악이다. 이번 장맛비는 지난 6월 24일 발생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주에도 비가 계속 내릴 것으로 예고돼 있어 2013년 기록한 49일의 최장 장마 기록도 곧 깨질 전망이다.장마는 대륙의 차고 건조한 공기와 태평양의 무덥고 습한 공기가 맞부딪혀 생기는 현상이다. 최근 한반도에서 일어난 장마는 북쪽의 고온과 시베리아지방의 고온이 겹쳐 발생한 것으로 지구온난화 현상이 원인이라 한다. 올여름 북극에서는 우리나라 면적의 20배가 넘는 얼음이 녹았다고 한다. 지구온난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면서 올해처럼 역대급 장마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올해는 우리나라 장마기간 평균 강우량 356mm보다 3배나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 강원도 철원지방은 1천56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대구와 경북 곳곳에서도 300mm가 넘는 비가 단시간에 쏟아졌다.기상학자들은 아열대기후에 들어선 한반도는 여름철마다 언제든 시간당 1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질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특히 포항을 비롯 경북 동해안지방은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해마다 폭풍이 동반한 폭우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해 태풍 미탁으로 경북에서는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영덕은 2018년에 이어 연속 물 피해를 입었다.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지반이 약해져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일 전남 곡성에서는 마을 뒷산이 무너져 주택 5채와 주민 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는 산사태가 유난히 많아 희생도 컸다. 또 이번 장마는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물폭탄을 쏟아 붓는 바람에 저지대를 중심으로 주택침수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우리나라 하수관거는 시간당 50mm정도를 감당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처럼 단시간 폭우가 쏟아지면 저지대 상습침수지역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기상변화에 따른 피해대책도 달라져야 한다. 빗물 저류시설인 하수관거 개체와 대용량 펌프시설 설치 등 항구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2020-08-11

윤석열 총장 두드리면 커진다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 총장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법무장관과 검찰 총장이 다투는 모습은 드문 일이고 보기에 민망하다. 문재인 정부에도 결코 이롭지도 않다. 두 사람은 검찰 개혁에서부터 검찰의 인사문제, 조국 법무장관 가족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등 여러 현안에 부딪치고 있다. 추미애 장관은 이번 검찰 인사를 통해 완전한 친정 체제를 구축하였다. 채널A의 이동재 기자와 한동윤 검사장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도 서로 간 입장이 반대이다. 이 문제를 보는 시각도 여야가 다르고 그로 인해 여론도 분열되어 있다.지난주 윤 총장의 신임 검사들과의 첫 대면식 격려사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신임검사들 앞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의 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검찰은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진짜 자유민주주의’라고 강조하였다.이 같은 발언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설파한듯 보이지만 이를 해석 평가하는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신임 검사들과의 첫 대면식에서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본인은 한마디의 해명도 하지 않지만 정치권은 그 해석이 상반되고 있다.여권은 그의 발언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독재와 전체주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것이고, 심지어 신동근 의원은 ‘검찰 총장이 반정부 투쟁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사실 윤 총장은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여당을 향해 상투적으로 쓰는 독재라는 용어를 골라 사용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국회가 윤 총장 해임결의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의원은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고 비판하였다. 여권에서는 이럴 바엔 윤 총장이 사퇴하고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좋다고 비난하였다.이에 비해 미래통합당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윤 검찰총장의 최근의 발언이나 행보는 검찰 수장으로서 당연한 직무 수행이라고 그의 입장을 두둔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의 임명 수여식장에서 말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도 철저히 수사’한다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윤석열 총장은 전 황교안 대표의 대체재로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있다. 주호영 원내 대표까지 윤 총장의 발언은 문 정권의 일당 독주에 대한 실망의 표시이며 당연한 귀결이라고 그를 두둔하고 있다.그의 발언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사실상 신임 검사들에 대한 윤 총장의 격려 발언은 법치주의를 위한 교과서적인 발언일 수도 있고, 민감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여당이 그의 발언을 비판하고 압박하는 것은 적절치 않는 모양새다. 정부나 집권당의 과잉반응은 자가 모순이며, 총장을 때릴수록 그의 대중적 인기는 높아진다. 그 스스로 도 다음 달 초 장모의 사문서 위조사건 재판이 시작된다.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고 자인한 그는 스스로 검찰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2020-08-11

물난리가 남긴 것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팔팔 끓듯 더워야 할 팔월이 전국 곳곳의 물난리로 동동거리고 있다. 경기, 강원 북부와 대전, 충청지역에 물 폭탄 같은 수마(水魔)가 걷잡을 수 없는 침수와 산사태를 초래하더니, 주말엔 광주와 전남,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사정없이 양동이 물을 쏟아내며 범람의 혀를 날름대고 있다. 봄부터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쓸린 가슴인데, 난데없는 물난리로 또 한번 소용돌이치다니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지리멸렬한 장마와 기습 폭우에 여지없이 많은 손실과 인명피해까지 속출해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실종된 일상에 변덕의 계절을 지나는 것 같아 착잡하기만 하다.물은 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케 하는 자양분인데, 어떻게 물로 인해 갑작스런 변고가 생기고 막대한 수해를 가져오는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마냥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물이 어떻게 그처럼 돌변할 수가 있을까? 그러나 물도 자연의 한 산물이기에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나 섭리에 따라 변화하고 몸부림침은 그 나름의 속성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변의 정도나 빈도의 문제는 처해진 자연의 생태나 기후, 환경 등의 여건에 따라 다소 차이날 수도 있을 테지만….사람들은 예로부터 물의 이로움을 알았었기에 물을 통해 배우고 닮아가며 물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이를테면 깨끗한 물을 보고 내 마음을 맑게 하고(觀水淸心), 흐르는 물은 앞서려고 다투지도 않으니(流水不爭先),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불어 함께 흐르고 순리대로 살아가야 함을 추구했다. 또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처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는 것에 아낌이 없으면서 어떠한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그러나 세상의 이치나 자연의 섭리가 다 그렇듯이, 정도가 심하고 상태가 지나치면 해악과 폐해를 끼치기 마련이다. 지구촌 곳곳에 나타나는 예측불허의 기상이변도 어쩌면 산업화, 문명화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 난개발 등이 상당 부분 기인한 것임을 부인하진 못하리라. 인간 또한 과욕을 부리고 탐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신의 오욕과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됨을 숱하게 보아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알면서도 실천하고 경계하지 못하면 결국 자멸의 빌미만 자초할 뿐이다.그렇기에 우리는 기후나 생태변화 등 자연현상을 좀더 예의주시하고 천재와 인재에 대비한 방재시스템을 철저히 갖춰야 한다. 역사나 과학이 말해주듯이 재난 예방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지혜와 지식이 더해지고 기술과 경험이 쌓여져 안목과 대응력이 길러진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예측,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예방 점검과 선제적인 사전 조치, 신속하고 탄력적인 대응, 효율적인 복구체계 등 그 모든 것이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정교하게 호흡과 박자가 맞아야 한다. 특히 오판이나 남용에 의한 인재(人災)만큼은 냉철하게 예단하고 근절시켜야 한다.물을 잘 이용하고 산과 내를 잘 돌봐서(治山治水) 가뭄이나 홍수 따위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2020-08-11

괴물이 된 진보, 그 위선과 오만

변창구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언이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위해 ‘독재라는 괴물’과 싸웠던 386진보가 권력을 잡더니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으니 말이다.괴물이 된 진보의 실체는 ‘위선과 오만의 덩어리’다.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해 놓고선 수사하니 검찰총장을 제거하려 안달이다. 통합을 말하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정의를 말하면서 불의를 옹호하며, 협치를 말하면서 독단을 일삼는 대통령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지식인의 앙가주망(engagement)을 주장했던 조국 전 법무장관은 수많은 특권과 반칙, 비리혐의로 재판 중에 있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추행혐의로 피소되자 자살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만 살아 있는 ‘입진보’이며 ‘위선의 끝판왕’이다. 오죽하면 최장집·한상진·진중권 같은 진보학자들이 진보정권의 위선과 오만을 비판하고, 진보가수 안치환까지 ‘진보의 아이러니(irony)’를 노래했겠는가?권력의 절제를 모르는 오만한 진보는 민주적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여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공수처는 진보의 권력유지를 위한 반대파 사찰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도 이미 중심을 잃고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는 형해화(形骸化)되고 사실상 전체주의적 독제체제가 되어가고 있다.야당을 공존과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적으로 인식하고, 여당 내부의 문제제기를 진보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외눈박이 진보꼴통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괴물이 된 인간,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이다.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으니 자연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권력이라는 마약’ 때문에 마음의 병이 들었으니 ‘인간의 자기분열성’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하지만 괴물은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괴물을 응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깨어 있는 민주시민들이다. 아무리 정치적 선전·선동에 능한 진보라고 할지라도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한국의 민주정치사는 위대한 시민들이 괴물이 된 권력과 끝없이 싸워온 투쟁의 역사이다. “나라가 니꺼냐”라고 외치고 있는 성난 민심이 마침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설 때, 괴물은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20-08-10

포항지역 관광 활성화 큰 그림 그려야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이라 일컫는다.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없어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이다. 관광산업을 통해 외화도 획득하고 문화교류와 국제친선, 지역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자치단체들이 문화관광산업에 주력하는 것은 이런 선점효과를 노려 지역산업의 부흥을 꿈꾸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포항시도 일찍부터 해양관광도시를 표방해 왔다. 환동해권의 중심도시로 성장하는데 관광산업은 필수적이다. 포항은 해양을 끼고 있으며 경주 역사문화도시와 절경의 동해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관광산업을 육성하기에 비교적 좋은 입지에 있다.그러나 현실은 관광의 불모지처럼 대접을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9년 전국 주요 관광지 방문객 순위에서 포항지역 주요 관광지는 단 한군데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경북의 가장 큰 대표 도시이면서도 외지인이 찾아올 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경북에서는 인구 3만의 영덕 강구항이 전국 10위권에 포함됐고 문경, 경주, 안동 등이 뒤를 이었다.포항의 연간 관광객은 400만 명 정도다. 경주(1천386만), 안동(835만), 영덕(576만)에 이어 네 번째다. 50만 명이 넘는 인구와 관광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관광지로서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포항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의 그림을 다시 그려져야 한다. 특히 지난해 영일만항을 기점으로 하는 국제크루즈선의 시범 운항을 계기로 포항지역의 관광산업 부흥의 전기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 포항은 공항과 KTX역, 국제물류항 등 사통팔달의 길이 열려 있는 곳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죽도시장의 먹거리와 포항운하, 포스코 야경, 호미곶 해안둘레길 등 관광자원도 부족함이 없다. 포항지진으로 침체된 분위기 타파하고 지역내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광업을 진작할 절묘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포항시가 준비 중인 ‘포항관광 활성화 마스터 플랜’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로 바뀌고 있는 비대면 문화에 맞는 관광산업 개발도 새로운 과제로 삼아야 한다. 특히 포항시만의 독자적이고 창의적 아이템 개발로 포항관광의 승부처를 찾아야 할 것이다.

2020-08-10

넛지효과

넛지(nudge)는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넛지’를‘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넛지란 말이 주목받은 것은 지난 4월 미국 뉴욕주에서 시작된 코로나 감염폭발세가 넉달이 지난 지금까지 진정되지 못하고 다른 주로 재확산한 배경에 마스크정책 실패가 있고, 이 정책의 실패가 넛지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넛지전략의 핵심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의 편향성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이다.미국사회에서 이처럼 제1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할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인데, 트럼프는 팬데믹 기간 내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다가 7월말에서야 뒤늦게 “마스크 착용이 애국”이라고 입장을 바꿔 마스크 정책 실패에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제2의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을 해야 할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반 마스크 행보를 취해 마스크 착용문제가 “민주당원이냐 공화당원이냐”를 가르는 정치적 낙인으로 변질됐다. 심지어 민주당 소속 주지사로 마스크 의무화를 역설했던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마스크 착용거부자들을 향해 “무모한(reckless)”, “무책임한(irresponsible)” 등의 부정적 단어를 남발하며 압박해 오히려 반발심을 키우는 바람에 부드러운 개입자 역할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넛지전략의 부재가 재앙을 키울 수 있다는 교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8-10

조국 發 ‘검찰, 탄핵 준비’설…또 작전 신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이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밑자락을 깔았다’는 끔찍한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은 놀라운 주장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혹여 조 전 장관의 발언이 ‘검-언 유착’ 소동 같은 또 다른 검찰 죽이기 작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그가 여권 핵심부와 맞닿아 있는 인물이라는 점과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하루빨리 진실이 명명백백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조 전 장관은 9일 새벽 SNS에 “작년 하반기 초입 검찰 수뇌부는 4·15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검찰조직이 나아갈 총 노선을 재설정했던 것으로 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성함’을 35회 적어놓은 울산 사건 공소장도 그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후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라고 언급했다.조 전 장관은 같은 날 오후에는 지난 2월 심재철 미래통합당 의원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라고 발언했다는 기사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같은 날 저녁에는 한 언론사가 보도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을 본 일부 법학자들의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인터뷰를 또 다른 근거로 SNS에 올렸다.조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하자마자 임명권자인 대통령 탄핵을 준비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반박이 나온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완전히 실성했다”며 “이 사람들 점점 미쳐간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진 전 교수는 “정권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을 질러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조국 전 장관의 검찰 혐오증은 심각해 보인다. 또다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소란이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발언의 진위를 낱낱이 밝혀 잘잘못을 조속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사상 유례없는 내우외환과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권력다툼에 피폐해진 민생은 도무지 안 보이는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2020-08-10

교육적인 벌(罰), 교육적이지 않은 벌(罰)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연예인의 육아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녀를 훈육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강아지를 거칠게 다루는 자녀의 행동을 교정하고자 그 연예인은 자녀의 팔을 아프게 때리면서 “이렇게 하면 좋아?”라고 물었다. 아마도 강아지의 입장을 자녀가 체험해 보도록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은, 즐기기 위해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역지사지를 가르친다는 측면에서 내용상 좋았으나 방법이 부적절해 보였기 때문이다.시대가 변했고 가치와 삶의 목표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부모에게 귀속된 존재로 여기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 자녀의 팔을 아프게 하며 훈육했던 그 연예인도 평소에는 자녀를 많이 사랑하고 아낀다.당시 훈육도 자녀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했던 훈육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만큼 본 지면에서 어떤 벌이 교육적이고 교육적이지 않은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우선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기준이 없고 일관성 없이 시행되는 벌이다. 부모의 기분에 따라 허용되는 행동의 범위가 달라져서 자녀가 부모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경우이다. 부모와 자녀가 민주적으로 의견을 모아 벌을 결정하고 일관성 있게 시행할 때 그 벌이 교육적이다. 자녀가 스스로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려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며, 예측가능하려면 일관성 있는 훈육이 필요하다. 또한 교육적이지 않은 벌은, 신체에 가해지는 벌이다. 체벌의 문제점은, 첫째 자녀가 체벌로 제압되면 폭력이 남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훗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둘째,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 체벌을 받는다면, 자녀는 대안이 되는 바람직한 행동을 배울 기회가 없다. 셋째, 신체적인 벌은 고통스럽게 때문에 자녀는 이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생긴다. 자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는 동기를 갖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가 체벌하기 보다는 행동의 결과를 자녀와 함께 평가하고 자녀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할지 결정하도록 대화로 이끌어야 한다.유치원 급식실에서 아이들끼리 부딪혀 한 아이가 울게 되었다. 충돌을 일으킨 아이가 우는 아이에게 “미안해” 하니 우는 아이는 엉엉 울면서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도 잘못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해야 하며, 사과 받은 상황에서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자녀들은 옳고 그른 행동을 알고 있으니 부모가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도 없이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만 해도 그 대화는 충분할 것이다.자녀 양육의 결과는 하루하루 노력과 인내심이 쌓여 얻어지므로 지금 당장 자녀에게서 변화를 볼 수 없더라도 먼 미래에 성숙한 성인이 될 것에 대한 기대를 놓지 말자.

2020-08-10

사불삼거(四不三拒)의 공직자 윤리

강희룡 서예가조선 중기 학자이면서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은 남인의 핵심이자 남인이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립되었을 때는 청남의 영수로서 당시 정계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인물이다. 허목의 저서 ‘기언, 허미수자명(記言,許眉53DF自銘)’에 스스로 지은 묘비명이 올려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말은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네/ 부질없이 성현의 글 읽기만 좋아했지/ 내 허물은 하나도 바로잡지 못하였네/ 이에 돌에 새겨 후인을 경계하노라.’허목은 미수(米壽)를 누리기도 했거니와 글도 많이 남겼다. 미수 스스로도 내가 기언을 지어 스스로 반성하였는데 말이 많으면 유익할 것이 없으며,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고 하였다. 그중에 큰 것을 들면 자서(自序)가 2편이고 정사(政事)를 논한 것이 30편이니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미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자서로 자신의 일생을 정리했다. 이 자찬 묘비명은 자서를 축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았던 분이 고종(考終)을 앞에 두고 132자의 짧은 글로 자신의 일생을 관조한 것이다. 말이 행동을 덮지 못하고 행동은 말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미수의 자명은 행한 것은 말과 일치하지 못했고,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겸사이겠지만 한마디로 언행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물론 선현이라고 해서 언행일치가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게다. ‘군자는 말이 그 행실을 지나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공자의 말씀도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예전 같으면 생을 마감했을 나이에 다시 불혹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공무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 공복(公僕)이다. 이 말은 국가나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이다. 즉 국민의 일꾼으로 국민들의 편익을 위한 존재라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다른 어감을 주는 공무원과 공복의 차이는 책임감과 사명감일 것이다. 이 같은 차이는 존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또한 이런 마음가짐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결국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다면 어떤 권력과 권한 속에서도 중용을 잃지 않고 영욕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옛 관리들은 스스로 사불삼거(四不三拒)라는 불문율을 정하여 규율로 삼았다. 첫째, 재임 중에는 부업을 갖지 않는다. 둘째, 재임 중에는 집을 늘리지 않는다. 셋째, 재임 중에는 부동산을 취득하지 않는다. 넷째, 재임지의 특산물을 결코 취하거나 먹지 않는다. 다섯째, 윗사람의 부당한 청을 거절한다. 여섯째, 재임 중 경조사의 부조를 받지 않는다. 일곱, 어떤 답례도 받지 않는다. 이것의 실천이 공복의 참길이다. 지금 국민 앞에 편 갈라 갑질을 해대는 공직자들이 언행을 일치시키기 위해 살기를 다한다면 생의 마지막에 회한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래야 미수가 후인을 경계한 보람도 있을 것이다.

2020-08-10

뱀이 허물을 벗듯… 무주 안국사(安國寺)

붉은 치마를 두른 것처럼 단풍이 요란하다는 적상산(赤裳山),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한여름에 오른다. 물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있어 숲은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마음이 이토록 평온한 것을 보니 불이문은 벌써 지나쳤는지도 모른다.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양수발전소 댐을 지나도 산은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참을 올라서야 안국사 일주문을 만났지만 해발 1000m의 고지대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금산사의 말사인 안국사는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가 복지(卜地)인 적상산에 성을 쌓고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광해군 6년(1614년)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한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절을 증축하여 사고를 지키는 수직승의 기도처로 삼았다.그 뒤 영조 47년(1771년)에 법당을 다시 지어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안국사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1910년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해왔다. 1989년 적상산에 무주 양수발전소 건립이 결정되자 안국사가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옛날 호국사(護國寺)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긴 계단을 올라 누하진입식으로 청하루를 통과하자 제 모습을 드러내는 안국사는 뜻밖에 소박하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극락전이 법당문을 활짝 열고 불자를 맞느라 여념이 없고, 큰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성보박물관과 그 위로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인 천불전이 절의 품격을 더해 준다.나는 법당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며 학이 단청을 하였다는 설화를 찾아 극락전을 돌아본다.극락전을 지은 스님이 단청불사를 고심할 때, 하얀 도포를 입은 범상치 않은 노인이 나타나 단청을 해주겠다고 한다. 단청을 하는 백 일 동안 절대 들여다보지 말기를 당부했지만, 스님은 99일째 되던 날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막 안을 들여다본다. 그 때 노인은 보이지 않고 학이 입에 붓을 물고 단청을 하다 낌새를 채고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내소사의 대웅보전 단청 설화와 흡사해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극락전 뒤편 한쪽에는 하루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신비감을 실어준다. 재미로 그치던 설화가 오늘따라 묵직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호기심을 경계하는 숱한 신화들도 생각난다.불경의 육바라밀 중에는 인욕바라밀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며 참고 견디는 수행을 말한다. 바라밀은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법으로,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번뇌와 고통이 없는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뜻이다.보다 나은 인격을 갖추기 위해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다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 반성할 때가 많다. 몸을 절제하고 말을 삼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육바라밀은 개인의 인격 완성 단계를 넘어 이타(利他)를 향한 덕목이라 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비워내면 자연히 인욕이 된다고 하지만, 바른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으로 참된 인욕바라밀을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지장전 앞에서 사람들이 수런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풀밭 위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가부좌를 한 듯 적당히 몸을 접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경꾼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혐오스런 눈빛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참선이라도 하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람과 뱀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누군가 이 절에서 가끔 보았노라며 절 지킴이라고 말하자 그제야 하나 둘씩 자리를 뜬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붙박여 뱀의 눈빛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며 연민의 눈빛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와 나의 정체조차 묘연해지는 순간이다. 는개를 맞으면서도 뱀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만 경내를 적시고 또 적신다.조낭희수필가사람들이 빠져나간 조용한 극락전에서 뒤늦게 백팔 배를 한다. 법당 안에는 영조 4년(1728년)에 기우제를 지낼 때 조성한 보물 제 1267호인 괘불이 사진에 담겨 있지만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동쪽으로 괘불함이 드나들 수 있는 앙증맞은 문 하나가 눈에 띤다. 마치 세상을 빠져나가는 마지막 문을 연상시킨다. 오직 저 문이 아니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는, 생명의 문처럼 특별해 보인다. 그동안 법당문을 여닫는데 마음을 모으느라, 있어도 보이지 않던 문이었다.내 안에 존재하는 틀도 보인다. 그것은 안국사 돌 축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하고 무서운, 나의 의식과 에고가 빚어낸 프레임이다. 어떤 집착이나 사심 없이 대상을 대하려면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조금 전 보았던 뱀의 눈빛이 떠오르고 신비주의적인 진리를 상징하는 아프락사스도 생각난다. 그토록 몸을 오싹거리며 혐오하던 뱀도 상처가 생기거나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허물을 벗을 줄 안다.학문의 길은 쌓고 또 쌓아야 의미가 있지만, 진리의 길은 버리고 또 버리며 비우고 또 비워야 한다고 했다. 노자의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상이라는 미혹한 옷 하나 벗을 줄 아는 지혜가 그리운 날이다.

2020-08-10

두려움과 연민, 그리고 정화

인류가 가진 고전 중의 고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리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서사 예술 양식이었던 서사시와 비극에 대해 이론화한 최초의 것이자 최후의 것이라 할 만하다. 감히 최후의 것이라 과언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극을 접할 때 어떤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가 하는 것에 대해 아직 이것보다 더 나은 해명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룬 ‘서사시’, 그리고 이것에 대한 극적 발전 형태인 ‘비극’은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 배경으로 두고 만들어낸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실연된 극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시학’을 매개로 비극은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같은 극화된 이야기 양식과 연결된다.말하자면, 몇 천 년의 시간을 지나고도 인간이 즐기는 이야기의 형태는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갖는 특별함은 지금에 있어서도 어떤 배경 아래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치의 형식이나 ‘개연성’의 개념 등을 완성했다는 것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학’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비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려내는, 관객, 혹은 독자의 심리학의 영역을 최초로 연 사례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극은 그 끝까지 완결되어 있고 일정한 크기를 갖는 고귀한 행동의 재현”이며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에 따라 각기 다른 다양한 종류의 양념으로 맞을 낸 언어를 수단으로” 삼고, “비극의 재현은 이야기가 아닌 극의 등장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며 ‘연민(eleos)’과 ‘두려움(phobos)’을 재현함으로써 그러한 종류의 감정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실현한다.” 앞의 것들이 비극의 익숙한 형식적 규정이라면, 뒤의 것은 비극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경에 관한 것이다.우리는 책이나 영화를 볼 때, 그 속에 재현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을 해나가는 인물을 보면서 그 인물의 현재에 공감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에 있는 인물의 분노에 함께 화를 내고, 그 사람의 처지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종류의 ‘연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경험은 그저 밋밋한 활동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두려움’은 어떤 감정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나는 내가 보고 있는 인물에게 다가올 운명이 실제로 다가올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오이디푸스’에서 주인공에게 내려진 끔찍한 신탁, 즉 신의 예언이 실현될까봐 두려워하는,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신탁대로 해버렸음을 주인공이 알게 될까 하는 두려움은 관객을 비극이 그리는 긴장의 고개로 끌고 올라간다.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한 태도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위험 속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갈 때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긴장과 같다.극의 절정 부분에서 압축되어 터지기 직전의 긴장은 폭발하고, 관객에게는 감정적 해소가 찾아온다. 바로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두 연인의 오해를 지켜보던 관객의 마음속 긴장감이 터져버리는 순간, 악행과 복수의 고리로 연결된 두 사람이 결국 마지막 대립하는 순간, 운명의 장난으로 고생하다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순간, 관객은 터져 나오는 감정의 잔여물들이 범벅된 상태로 읽던 책을 마치거나 영화관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어쩌면 이야기를 향유하는 이같은 경험은 가장 인간다운 것이기에,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은 만큼 더 오래 계속될지도 모른다. 지금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홍익대 교수

202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