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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金 ‘미안하다’ 한 마디에 안보 내팽개친 민주당

북한이 우리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 소각된 사건에 대해 사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시신 수습에 나선 우리 군의 NLL 남측 활동을 협박하고 나섰다. 더 심각한 것은 김정은의 ‘미안하다’ 사과 한마디에 청와대와 집권당이 격노한 민심과 국가안보를 내팽개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 대북규탄결의안 채택을 먼저 제안한 민주당은 결의안도 미적대고, 본회의 긴급현안질의도 거부하는 태도로 표변했다. 시신소각을 확인했다는 우리 군이 뭘 찾겠다고 대대적으로 수색 중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나마나 우리가 제의한 공동조사에 대해선 묵묵부답인 북한이 27일 자신들이 해상에서 피해자의 시신을 수색하는 우리 군을 향해 ‘영해를 침범한다’고 경고하는 일은 더 어이없는 일이다.기막힌 노릇은 북한 김정은의 ‘미안하다’는 사과 전통문 한마디에 청와대와 집권당, 여권이 분노하고 있는 민심을 외면하고 그 말마디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려는 정략에만 골몰한다는 점이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얼음장 밑에서 강물이 흐르는 것 같은 변화”라고 했고 통일부 장관은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번 쓴 것은 전례 없다”고 감격했다.정말 야릇한 일은 사건 발생 직후 “국회의 단호한 입장과 결의를 세계에 알리겠다”면서 ‘원포인트’ 본회의까지 제안했던 민주당이 “상황을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급선회한 대목이다. 민주당은 나아가 야권이 요구하는 국회 본회의 긴급현안질의도 “이미 국방위와 외통위에서 했는데 본회의에서 다시 하기는 어렵다”고 거부 의사를 밝혀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변덕마저 드러내고 있다.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사살되고 불태워진 사건을 놓고,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말하는 여권은 지금 제정신인가.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28일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은 국민 생명 보호책임이 있다’는 얘기를 누누이 해 왔다”면서 “직접 언론에 나와 분명한 입장을 밝혀줄 것을 정식 요청한다”고 요구했다. “우리는 늘 얻어맞다가 밥만 주면 꼬리 흔드는 X개인가”라는 네티즌의 글이 부끄럽게 와 닿는다.

2020-09-28

무상(無常)은 무상(無常)이 아니다

김현욱 시인작년 초, 동병상련(同病相憐)했던 정 많은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38세. 이름도 생소한 소장암. 병원 입원 세 달 만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황망히 눈을 감았다.병문안을 갔다가 피골이 상접한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파 병실 밖에서 울먹거렸다. 발인(發靷) 때, 운구(運柩)에 참여해 착하고 따뜻했던 지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지켜보았다.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새는 죽을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그 하는 말이 착하다.’ 열 살 외동딸에게 지인이 남긴 마지막 유언은 분명 슬프고 착한 것이리라.인생무상(無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무상(無常)은 덧없음, 허무함을 뜻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뜻이다. ‘주역(周易)’을 ‘역경(易經)’이라고도 하는데, 영어로 ‘Book of Changes’로 변역한다. 변화의 원리가 담긴 책이다. 무상(無常)은 변화에 가깝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니까, 괴롭다.붓다는 괴로움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 싫어하는 것(사람)과 만나는 일, 좋아하는 것(사람)과 헤어지는 일,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은 일반적인 괴로움이다. 둘째, 영원하지 않은 것은 모두 괴로움이다. 셋째, 조건 지워진 것은 모두 괴로움이다.”붓다는 영원하지 않은 것, 변하는 것을 모두 괴로움이라고 설했다. 내 몸과 마음은 순간순간 변한다. 내 마음대로 어찌 할 수 없다. 이것이 무아(無我)이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라는 뜻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은 영원하지 않고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에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이고 고(苦)인 것이다.붓다는 괴로움의 원인으로 ‘오온(五蘊)에 대한 집착’,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진리로 ‘욕망의 완전한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길의 진리로 ‘팔정도(八正道)’를 설했다.붓다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과 8가지 소멸의 길을 제시했다. ‘장부경’에서 붓다는 수행 방법에 의심이 많은 수밧다에게 위빠사나 수행의 중요성을 설했다.“내 나이 29세에 출가하여 5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나의 가르침인 사념처 위빠사나를 수행하지 않고서 구경각 아라한과에 도달한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네. 위빠사나의 실천법인 팔정도(八正道)가 있는 한 아라한들은 계속 출현하고 승가는 끊임없이 발전하리라.”아침저녁으로 또는 틈날 때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꾸준히 하고 있다. 누가 명상이 뭐냐고 물으면,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 자기 스스로를 보는 것, 이라고 답한다. 죄를 참 많이 지었다. 그렇게 통탄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날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있다.몇 년 전에 아이를 위해서 했던 일이 얽히고설킨 인과(因果)가 되어 나에게 돌아온 것을 관찰명상을 통해 알아차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야 할 길이 참 멀다.

2020-09-27

춤추는 이벤트 풍선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한참 전 일이다. 동네 귀퉁이 작은 빵가게를 개업하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동네 자영업의 어려움과 단기 폐업을 많이 들었기에 ‘잘 돼야 될텐데’라는 막연한 걱정을 하며 물끄러미 쳐다봤다. 네 출발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네 자영업은 잔뜩 기대로 시작하여 낭패를 경험하고 초라하게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가게의 인지도를 빨리 높여야 한다는 조바심 탓인지 개업식은 꽤 거창하게 벌리는 경우가 있다. 축하화환을 가게 앞에 진열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벤트 회사에 의뢰하여 치어걸 같은 차림을 한 여성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가게 앞에서 춤을 추거나 홍보성 멘트를 큰소리로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개업사실을 알린다. 사람모양의 풍선이 흥겹게 춤을 춘다. 인형풍선이 이벤트에 동원되어 흔들거린다.불어넣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는 인형 풍선을 보고 있노라니 반평생 보낸 공직생활의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깊은 연민이 밀려왔다. 경찰직을 평생업으로 삼고 살아오면서 여러 형태의 정부를 겪었다. 정부의 성향과 최고 통치권자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직업공무원으로서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것 같다. 공무원은 특정이념이나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적인 중립이라는 헌법가치에 충실해야하는 규범적 의무감이 있다. 인형풍선처럼 뒤에서 바람을 불어넣는대로 춤을 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료제를 주창한 막스 웨버는 ‘공직자는 영혼이 없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가치중립적으로 정부의 업무를 충실히 이행해야한다고 이해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그 정부의 국정 기조에 맞춘다는 인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은 앞세우지 않아야 기계적인 도구로서 관료제의 기본 취지에 맞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효율적 관료제를 위한 지침이었을 것이다.언제부턴가 ‘영혼이 없다’는 말은 비난의 말로 통용되고 있다. 아무 생각이나 개념없는 행동에 대한 비아냥섞인 말로 변질되었다. 뚜렷한 주관과 의식 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혼이 없는 공직자’, 과연 이벤트 인형풍선 같은 것일까? 국정을 수행하는 통치권자의 정책들은 오른손이 달린 곳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 넣으면 오른손이 춤을 추고 왼쪽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 넣으면 왼손이 춤을 추는 그런 행태가 될 수 있다. 이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춘 공직자를 영혼이 없는 공직자라고 몰아세울 수만 있는 것일까? 공직자의 영혼, 공직을 맡는 동안 주권자인 국민에게 위탁해 둔 것은 아닐까? 국민은 자신들이 선택한 정부에 공직자의 영혼을 재위탁하여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닐까? 공직을 끝마치는 날 자신들의 영혼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아전인수식 해석일까?맡긴 영혼을 찾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낡고 헤진 구멍으로 바람이 새나가서 용도 폐기된 인형풍선이 된 것 같다. 맑은 기운으로 빈 영혼을 다시 찰지게 채우고 싶다. 지금부터 내 영혼의 장단에 맞춰 신바람나게 춤을 추고 싶다. 바람따라 춤추는 이 땅의 많은 이벤트 인형풍선들이여 힘내시라!

2020-09-27

이제는 ‘환울릉(Ulleung Rim)’ 시대다

동해(East Sea) 명칭에 대한 한일 간 외교전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본해(Japan Sea 또는 Sea of Japan)로 표기되고 있던 동해의 명칭을 최소한 일본해와 나란히 병행 표시되도록 국제외교무대에서 첨예한 각축전을 벌여왔다. 한반도 동쪽의 해역, 동해가 국제기구가 발행하는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되기 시작한 것은 1928년부터다.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가 그해 발간한 각국 해도에서 해양의 명칭과 경계의 기준이 되는 ‘대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Special Publication No. 23), 초판’에서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한 때문이다. 초판 발행 당시는 일제강점기였기에 한반도와 일본 본토 사이의 해역명칭을 IHO가 일본해로 표기한 것에 대해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었다.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제3판(1953년)이 발행될 때는 6·25전쟁이 겨우 휴전되어 초토화된 국토재건에 여념이 없었던 때였기에 동해 명칭에 신경 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대한민국이 비록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1991년 9월 국제연합(UN)에 가입한 이후부터다. UN 동시 가입을 이루었던 남북한은 이듬해 개최된 제6회 국제연합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하였다. 적어도 동해에 관한 한 남북한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이후 정부는 물론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 (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등 뜻있는 민간단체들까지 가세한 한일 간 외교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1999년 시점에는 세계의 주요기관, 지도제작회사, 출판사 등이 발간하는 세계 지도에서 동해/일본해로 해역을 병행 표시하고 있던 비율은 불과 3%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2년 시점에는 세계 지도 가운데 동해를 일본해와 나란히 표기한 지도 비율이 30% 수준까지 높아졌다.일본도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각국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여 동해로 단독 표기하거나 일본해와 동해를 함께 표기할 것을 결정할 때마다 정치, 경제, 외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박하며 원상복구를 종용하였다. 일본 외교부 등 중앙정부, 지자체 등은 물론 미쓰이물산전략연구소 등 대기업 산하 민간연구소들도 연구보고서 등에 교묘하게 지도를 넣으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2014년 10월 도쿄 무사시노시(武藏野市) 시립중학교에서 일본해(동해)로 병행 표기한 지도가 배포한 사회과목 교재에 실린 적이 있었다. 당시 도쿄도와 무사시노시교육위원회는 전례가 없고, 학습지도요령의 취지에 어긋난 부적절한 교재라며 학교 측에 바로잡으라고 강요하였다. 이에 따라 지도가 들어간 교재는 다시 교체되었고 담당 교사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2017년 8월에는 니가타현 묘코시(新潟770C妙高市)가 발행한 한국어판 관광안내책자(17쪽 지도부분)에 동해로 표기된 것을 발견하자 이미 인쇄된 5천 부를 전량 회수하여 폐기하고 일본해로 수정한 책자를 재인쇄한 사례도 있다.이처럼 한일 양국이 수십 년에 걸쳐 동해에 대한 명칭과 표기에 대한 외교전쟁의 최종 결과는 오는 11월경 어떤 형태로건 결착을 보게 될 것 같다. 최근 IHO 사무국장은 현행 제3판(1953년 간행) 개정과 관련하여 ‘바다를 고유의 숫자로 식별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한국과 일본에 제안하였다고 밝혔다. 디지털화 시대에는 문자로 된 이름보다도 숫자가 지리정보시스템의 활용에도 유용하기 때문에 모든 바다 해역에 고유 숫자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 경우에는 동해도 일본해도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안건은 IHO 가맹국에 이미 회람된 상태이며 11월 총회에서 대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안(제4판)이 의결될 예정인데 가맹국들의 의견도 대체로 긍정적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가 일본과 동해 명칭을 둘러싼 외교전쟁을 치르는 동안 국내 각계에서는 해양과 ‘환동해(East Sea Rim)’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반도에서 동해안을 접하고 있는 강원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을 중심으로 ‘환동해’, ‘환동해경제권’이라는 말은 일반화된 지 오래다. 환동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행정조직, 주요 금융기관의 지역본부, 학계나 주요 단체가 개최하는 주요 포럼이나 국제심포지엄 등에 이르기까지 ‘환동해’라는 용어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본에서는 ‘환일본해’지만.이와 같은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그동안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환동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더욱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오는 11월 IHO 총회 결과 사무국의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 바다와 해양에 대한 명칭이 문자가 아닌 숫자로 표기될 것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결과를 아직 모르는 상태이고, 어쩌면 숫자로 표기되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미래에는 동해와 일본해 모두 사용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동해에 대해 우리나라, 경북도, 포항이나 울릉군이 주도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높아진 것만은 틀림없다. 러시아(극동연방 관구), 중국(동북 3성), 북한(동해안), 우리나라(동해안)와 일본(서해안) 전역에 접하는 해양의 중심에 유일한 한국령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울릉지역이다. 우리는 바로 이 울릉군이 북동아시아의 해양 중심지에 있다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금까지 이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지금부터 마련해 나가야만 한다. 국제 사회에서 그 어떤 지역이나 국가라고 하더라도 명칭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동의 명칭은 ‘환동해’도 ‘환일본해’도 아닌 ‘환울릉’이다. 울릉군을 중심축으로 삼은 주변 해역과 주변 경제블록을 논의할 때 그 어느 국가라고 하더라도 이 명칭에 대해서만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울릉군은 한반도 가장 동쪽 국경 최전선에 있고 동해 해역의 유일한 거점이기에 미래 환울릉경제권시대의 중심지로 부상할 전망은 밝다. 당장 단체, 포럼 등이 사용하는 ‘환동해’ 명칭을 ‘환울릉’으로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해가 숫자로 표기된다면 앞으로 국제행사에서 ‘환동해’는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환울릉’이라는 용어를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울릉군은 그저 경북도 23개 시군 중 하나가 아니다. 동해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대표하는 ‘국제적 도서’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특별군’으로 승격시켜 우리나라의 미래 ‘환울릉’시대의 거점으로 손색이 없도록 지금 추진 중인 공항, 항만시설도 국제수준으로 격상시켜 확충, 정비해 나가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미래 해양강국을 지향한다면 미래의 해양영토, 해양주권의 교두보인 울릉지역에 대한 전략부터 새로 구상해야만 할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27

2차 공공기관 대구 유치에 만반의 준비를

대구시가 2차 공공기관 유치 대구 범시민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부가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과 연계해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지역 재배치가 적정 시기에 가시화될 것을 예상한 선제 대응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상공단체 등 민관공동의 위원 20여명으로 구성했다. 범시민 추진위는 향후 대구에 적합한 공공기관 유치를 위한 전략 수립과 유치기관 선정 등에 중추적 역할을 한다. 2차 공공기관 유치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라고 하지만 이미 부산을 비롯한 전국 다수의 광역단체도 이미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어 사실상 지자체간 경쟁이 불붙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2차 공공기관 지방 분산배치는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할 국가 과제다. 국가적으로는 지역간 불균형 해소지만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중차대한 산업 유치나 다름없다. 지역과 연관된 어떤 기관을 지역에 유치하느냐에 따라 지역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1차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아직은 미미한 성과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2차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전체적 효과를 가속화 할 수 있는 전기가 된다는 점에서 광역단체마다 기대가 크다.지난 7월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대통령에게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청사진을 보고하면서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왔다. 하지만 아직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추진일정이 불투명하다. 그러나 적정시기에 논의가 본격화 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이런 점에서 대구시의 추진위 출범은 당연하다. 추진위는 사즉생의 각오로 공공기관 유치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정치적 입지가 불리한 지역사정도 고려해 전방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대구시가 최우선 목표로 한 중소기업 전담은행인 IBK기업은행 유치는 중소기업 도시인 대구가 유치해야 할 당위성도 명분도 있다. 중소기업은행 유치의 효과성을 볼 때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대상이다. 2차 공공기관 유치는 지자체간 목숨 건 싸움이나 다름없다. 도시의 생존에 관한 선택이기에 조금의 양보도 안 된다. 정부가 지역산업과의 연관성,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안배도 하겠지만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설득하는 노력도 과소평가돼선 안 된다. 추진위의 분발을 기대한다.

2020-09-27

‘미스터 트롯’ 방식

민영방송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미스터 트롯’은 신개념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를 통한 철저한 공개 검증과정과 서바이블을 겸한 불꽃 튀는 출연자의 경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시청률을 이끌어 냈다.1만5천여 명의 도전자가 참가한 이 오디션 프로그램은 본선 진출자 101명의 경쟁과정이 방송에 그대로 중계되었다. 매번 탈락자가 발생하고 승자의 다음 기회 진출, 또다시 반복되는 경쟁과정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미스터 트롯’ 경연방식이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것은 이와 같은 공개 오디션을 배경으로 제공한 풍부한 볼거리에 있었다. 종래의 오디션과는 달리 출연자 한 사람의 재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참가자간 팀워크를 평가하고 팀 플레이를 통한 개인별 역량도 평가에 반영함으로써 흥미 요소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단순히 트롯이라는 음악의 한 장르에 머물지 않았다.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재능이 겨누면서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 스타의 대중성은 자연스럽게 수직 상승한 것이다.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미스터 트롯’의 경연 방식에 정치권이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힘은 각종 선거에 나설 공직후보자 결정 방법을 민영방송에서 대성공을 거둔 공개 오디션 방식을 본보기로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미스터 트롯’ 방식이다.철저한 공개 검증이 핵심이므로 기존 공천 방법에 익숙한 기성 정치인에게는 불리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향후 선거에서 필승을 노려야 하는 야당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방식도 선택지가 된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의 믿음이 밑바탕이다. 정당이 믿음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그 어떤 방식도 성공하기가 어렵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9-27

‘종전’ 너머 ‘철수’가 보인다

안재휘논설위원유엔연설에서 세계를 향해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지지를 호소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우리 공무원의 피격화형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다. 화상 연설형식으로 이뤄진 유엔연설 이전에 의문의 실종사건으로 사라진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이 저격 살해된 뒤 끔찍하게도 기름에 불태워진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공무원 피격사건 때문에 분노하는 여론에 묻혀 있지만,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지지 호소는 매우 심각한 논쟁거리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면서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유엔연설 출발점은 지난 6월 15일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정의당 등 범여권 의원 173명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국회에 발의한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일 것이다.연설문 작성과정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청와대 참모들의 일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최종결심했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종전선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군철수’ 주장의 빌미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그게 아니어도 걸핏하면 ‘미군철수’를 부르대는 반미분자들의 목소리가 그악해질 게 뻔하다. 전쟁이 끝났는데 미군이 이 나라에 남아 있을 이유가 뭐냐는 논리는 어리석은 민심을 파고들기에 안성맞춤이다.주한미군·유엔군·한미연합사 사령관을 겸했던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비무장지대 북쪽에 배치돼 서울과 남한의 북쪽 지역 도시들을 위협하는 북한의 대포와 미사일 역량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 전 사령관은 “해당 조건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종전선언을 절대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종전선언→유엔사 해체→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이 노리는 긴 세월 불변의 적화통일 도식이다. 그 사실을 모를 턱이 없는 여권이 이런 불장난을 계속하는 것은 그 심중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북한의 비핵화→종전선언→평화협정’이란 항구적 평화체제 공식의 포기를 뜻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위태롭다.문재인 정권의 ‘종전선언’ 카드는 집권 내내 공을 들여온 대북정책이 꼬여서 도무지 매듭이 풀리지 않은 답답함에서 나온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토라진 김정은을 돌려세워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싶은 그 뜻을 오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북한의 선의에만 집착하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현실성부터 떨어진다. 1970년대 이래 판문점 선언 전까지 우리는 북한과 총 655회 당국자 회담을 했고, 그 결과 7·4 남북공동 선언 등 총 245건의 성명·선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중 단 한 건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다.

2020-09-27

기절초풍할 유시민의 ‘김정은 계몽군주’ 칭송

서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 의해 사살화형 처리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데 청와대는 물론 범여권의 대응 방식과 발언이 비판을 부른다. 청와대는 느닷없이 얼마 전 남북 정상이 주고받은 친서를 공개하고, 여권에서는 북한이 보낸 사과 전통문 한 장에 감탄해 김정은 칭송까지 내놓는 등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고 있다. 특히나, 이 판에 김정은을 일러 ‘계몽군주’라니, 기절초풍할 노릇 아닌가. 이번 사건에 대해 청와대와 군 당국은 물론 여권 인사들의 대처방식은 많은 의문을 낳는다. 우선 청와대의 대응부터 이상하다. 대통령에 보고한 시점이 언제냐는 의혹을 놓고 정치논쟁까지 불거지고 있다. 청와대는 첩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고를 늦췄다고 설명하지만, 유엔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느라고 그러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살 만한 여지가 다분하다. 최소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친서를 낭독하는 모습은 청와대가 도대체 누구 편인지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었다. 친서를 즉시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북한이 궁지에 몰릴 상황이 벌어지니 그때서야 왜 그걸 써먹는지도 수상쩍은 일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난데없이 김정은 친서를 들고나와 이번 사태 무마를 시도한다면 국민의 더 큰 공분을 자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는 북한의 통지문을 발표한 뒤 여권의 태도가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재단이 공식 유튜브 채널로 진행한 10·4 남북정상선언 13주년 기념행사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 소식이 전해지자 유시민 이사장은 “희소식”이라며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 같다”고 언급했다. “당신 가족이 이런 죽음을 맞이했어도 계몽군주라 말한텐가” 등등의 네티즌들 비판이 봇물을 이룬다. 진보진영에서는 이 비극을 ‘기회’로 여기는 모양인데, 이래서는 안 된다. 지금은 우리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화형을 당한 엄중한 상황이다.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그 어떤 논점이동의 왜곡도 국민모독이다.

2020-09-27

경산의 새로운 미래, 경산지식산업지구

최영조경산시장경산지식산업지구는 사업 초기부터 지역민들의 관심사였다.하양읍 대학리와 와촌면 소월리 일원 382만 3천506㎡(116만 평)에 자리 잡은 경산지식산업지구는 면적도 넓지만, 지역산업을 이끌어 갈 신산업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사업비 9천984억원으로 조성되는 경산지식산업지구는 1단계 차세대 건설기계부품특화단지 조성과 2단계 의료기기 및 메디컬 신소재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1단계 사업은 현재 136개 기업과 7개 연구기관 등이 유치돼 분양률이 84%에 이르고 올 연말 준공되고 2단계 사업도 2022년 완공 목표다.경산지식산업지구가 2022년 완공되면 생산유발 2조 600억원에 부가가치 창출 8천800억원, 고용창출 1만 6천 명 등의 효과가 기대되고 경산은 산업단지 1천21만㎡(300만 평) 시대를 열어 경북의 첨단 산업단지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경산지식산업지구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아니라 주변과 어울린 지역균형발전에도 한몫하게 된다.하양과 와촌은 지역경제의 한 축이었으나 동떨어진 느낌이 강했다.경산지식산업지구 준공에 대구가톨릭대학 등 주변 4개 대학의 6만 명 대학생과 배후 주거지인 하양 서사지구 택지개발,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 연장과 하양~남산 간 국도 대체 우회도로가 개설되고 최근 MOU가 체결된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 아울렛이 입점하면 하양권역이 자족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지난달 대구·경북권역 최초로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 아울렛 조성을 위해 체결된 투자유치 양해각서는 자족도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17만 7천㎡(5만 3천 평) 부지에 200여 개의 국내외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2023년 오픈하면 직간접 2천여 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된다.경산지식산업지구에는 이미 차세대 건설기계 융복합센터 등 6개의 국책사업연구센터가 지난해부터 입주해 기업하기 좋은 도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시는 4차 산업혁명 선도도시를 표방하며 경산지식산업지구를 정책적으로 지원해 지난해 6개의 국책사업 연구센터들이 모두 준공되었다.경산지식산업지구 1단계 사업의 중추인 국책사업들을 잠시 살펴보면 차세대 건설기계부품 융복합센터는 시험평가센터와 성능·환경시험동, 종합 실차시험장으로 구성돼 건설기계 부품 및 완성품에 대한 성능 시험 등을 지원한다.차세대 건설기계부품설계지원센터는 굴착기와 지게차 등 건설기계부품 관련 기업에 대한 설계·해석 기술지원과 실차 표준시험 절차 개발 등 기술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메디컬 융합소재센터는 의료기기, 미세먼지 마스크 등 의약외품의 핵심부품소재에 대해 시험·인증을 지원하고 있으며, 메디컬 융합소재실용화센터도 의약품 화장품 등 메디컬 융합소재 제품의 인체 유해성 평가로 상용화 사업지원을 하고 있다.철도차량융합부품기술센터는 미래의 주력 교통수단인 철도차량 산업을 신성장 산업으로 집중육성하고자 철도차량부품에 대한 시험과 기술표준화를 지원하고 무선전력전송 기술센터는 휴대폰 무선충전 시험·인증 등 무선전력전송 관련 기업 지원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인 무선전력전송은 스마트폰, 전기차, 드론,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경산지식산업지구에는 기업입주 공간과 연구·생산시설, 산업단지 캠퍼스로 구성되는 ‘패션테크 융복합산업 생태계’도 조성해 미래 먹거리의 하나인 패션테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코로나 사태로 정책여건이 크게 바뀌었다.그러나 우리가 준비해온 4차 산업혁명은 비대면의 방향성에서 코로나와 공통된 요소가 있다. 코로나가 이를 본격화한 것이다.우리는 코로나 사태에서 오히려 기회를 찾고자 한다. 비대면 흐름에서는 사람의 이동이 최소화되며 직장과 주거의 근접이 강화된 자족도시 공간구조와 도보 접근이 가능한 자족형 근린생활권 조성이 중요해진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경산지식산업지구는 지역의 미래를 기대케 하는 경제활동과 산업활동에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중심에 설 것이다.

2020-09-27

행복의 조각보

내 행복의 중심엔 가족이 있다. 몇 해 전 남편과 해인사에 갔을 때였다. 가을이 왔다고 절 주변 담장 밑에는 애기단풍을 중심으로 많은 꽃이 피어 도란거리고 있었다. 꽃향기를 느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그곳의 많은 것 중에 내 눈에 뜨인 것은 엽서 꾸러미였다. 갖가지 꽃과 곤충, 풍경을 담은 엽서들도 있었지만 내가 고른 것은 전통 보자기 그림이었다. 엽서 속의 그림을 보니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가 떠올랐다. 그들이 혹시 우리나라 조각보의 문양들을 커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조각보는 쓰다 남은 천 조각을 이어서 만든 것이다. 자투리 천을 활용하는 생활 지혜의 소산이므로 주로 일반 서민층에서 널리 쓰였다.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는 조각보는 공을 들인 만큼 복을 불러들이고, 조각을 많이 이을수록 명이 길어진다고 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서 보관하거나 운반하는데 간편하게 쓰인다. 또한, 예절과 격식을 갖추는 의례용으로도 사용된다.보자기에 무언가를 싼다는 것은 복을 싸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복(福)이라고도 하고, 보(褓), 보자(褓子), 또는 지방에 따라 보재기, 포대기, 밥수건, 밥뿌재라고도 부른다. 보재기, 밥뿌재…, 참 정겹다.서로 다른 자투리들을 이어서 쓸모 있는 보자기를 만든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여 기쁘게 하고 슬프게도 한다. 엽서의 조각보 속에 내 삶이 보였다.오늘도 남편은 자정을 넘겨 집에 돌아왔다. 요즘 따라 술자리가 잦다. 제발 좀 쉬엄쉬엄 마시라고 했더니, 안 취했다며 시치미를 뗀다. 한술 더 떠 몸에 좋지 않은 술이라 빨리 마셔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뭐라고 대꾸할 사이도 없이 잠들어 버린다. 취하기만 하면 잠드는 것이 그의 술버릇이다. 집에 손님이 와 있어도 소파에 살짝 기대어 코를 골며 잠을 청한다. 시아버님 말씀이 재미있다. “야야, 얼매나 순하노. 잘 먹재 잘 자재. 키우기 그저 그만 아이가.”그 말에 나는 그만 웃을 수밖에 없다. 그 웃음 끝에 내 행복의 조각보는 또 한 뼘 넓어진다.김순희수필가나는 목욕 갈 때 친정엄마와 함께 간다. 엄마와 함께 가면 친정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큰동생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진급한 이야기, 작은동생이 새로 안마의자를 사준 것, 이모들의 소소한 다툼까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내 등을 밀어주신다. 꼼꼼하게 내 몸 구석구석 씻어주면서 살이 쪘으니 다이어트 하라고 하신다. 그 말이 잔소리 같기도 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다. 엄마와 함께 몸을 씻으면서 마음도 편히 쉬고 온다. 이 또한 내겐 행복이다,내 삶의 조각보에 또 다른 고운 무늬를 더해주는 사람은 친구이다. 늦은 오후에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다. 비도 오고, 외출하고 돌아와서 저녁밥 하기 싫은 걸 어찌 용케도 알았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 이름 친구! 친구는 또 다른 이름의 가족이다.지인이 유기묘를 데려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다기에 한 마리 데려와 키우기, 은규샘과 수목원 산책하기, 남편과 가까운 곳에 답사하기, 퀴즈프로 보면서 문제 맞히기, 두 문제 맞히고 옆에 앉은 아들에게 뻐기기…. 한 조각 한 조각 수명과 복을 기워 가는 조각보처럼 내 행복도 작은 기쁨과 사연들로 채워 가야겠다. 조각보는 쓰다 남은 천 조각으로 만들지만 내 행복의 조각보를 이어주는 것들은 소중한 삶 그 자체이다.돌아가신 어머님이 재봉틀로 박아 만든 밥뿌재가 하나 있다. 가족 누군가의 옷 자투리에서 나온 것들로 기운 것이다. 오래 사용하셔서 색이 바래 처음의 색깔을 다 잃었다. 어머님의 세월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서 더 좋다. 나도 어머니의 삶의 한 조각을 채운 맏며느리이니 이 조각보는 내가 간직해도 될 것이다. 고이 접어 서랍장에 넣었다.

2020-09-27

긁어 부스럼

부스럼은 피부에 나는 종기다. 종기라고 하지만 괴롭고 귀찮고, 더럽기도 한 고약한 병이다. 특히 옛날에는 더 그랬다. 많은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무서운 병이었다.뾰족하게 부어오른 작은 부스럼은 뾰루지, 목뒤 머리털이 난 가장 자리에 생기는 부스럼은 발찌, 풍열 때문에 볼 아래에 생기는 것은 볼거리라 부르는 등 종기는 생기는 부위마다 이름도 제각각이다.우리의 선조는 이런 종기가 생겨나지 않게 정월 대보름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럼을 깼다. 밤, 잣, 땅콩 같은 것을 까먹고 깍지를 버리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종기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혔으면 이런 풍습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현대의학이 발달한 요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이 있으니 그 옛날에야 종기와 같은 질병이 준 고초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려서 걱정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한다”는 말과 뜻이 통하는 속담이다. 사용하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사서 고생한다”는 우리말도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하는 법이고 잘하겠다고 했던 일이 어긋나 손해를 보는 일도 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은 어설프게 알아서 걱정거리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과 비슷하다.정부 정책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중해 신중해야 한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2만원의 통신비를 지급하려다 선별지급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유야 어쨌던 기대했던 일부 국민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사려 깊지 못한 정책을 밀다가 긁어 부스럼 낸 꼴이 됐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24

추석 체감경기 악화…서민 민생안정에 만전을

연초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영향으로 경제 전반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올 추석은 예년 어느 때보다 힘겹게 보내고 있다.추석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으나 추석대목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명절 같지 않은 분위기다.코로나로 비대면 경제활동이 강조되면서 대면 중심의 재래시장은 추석대목에도 설렁하기 짝이 없다. 상인들은 작년보다 70%나 매출이 줄었다며 한숨만 내쉰다.대구상의가 지역기업 362개 업체를 대상으로 2020년 추석경기 동향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87.9%가 “지난해 추석보다 체감경기가 악화됐다”고 답했다. “지난해와 비슷하다”고 응답한 업체는 10.2%에 그쳤다. 경기악화의 원인을 59.8%가 “내수부진”, 25.8%가 “수출 감소”를 들었다. 코로나19가 체감경기 악화에 미친 영향을 묻는 질문엔 “매우 끼쳤다”가 73.3%, “다소 끼쳤다”가 22.3%로 나타나 전체의 95.6%가 코로나19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대답했다.대구상의 조사가 아니더라도 시중의 경기가 나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곳곳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한해 내내 들리고 있다. 일년중 가장 넉넉하고 풍성해야 할 추석이 올해는 그렇지 않아 서민의 마음은 무겁다.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많은 가족이 올 추석에는 고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가족 만남의 명절 기쁨도 절반은 줄어들 전망이다.이런 가운데 물가는 다락같이 올랐다. 오랜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과일과 채소류의 값이 크게 올라 제수 준비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경총조사에 의하면 올해는 상여금을 지급하는 기업도 60%가 안 된다고 한다. 작년보다 5.4%가 줄어들었다. 그나마 지급액수를 줄인 업체가 11%나 늘었다고 한다. 서민가계의 어려움을 짐작케 할 대목이다.올해는 코로나로 가뜩이나 어렵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중소 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또 직장인 등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서민들은 줄어든 수입으로 생활조차 빠듯하다. 서민의 민생안정에 우리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명절은 작은 것도 나누고 찾아가 격려하는 미덕이 있다. 내 주변에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살펴 온정이 꽃피는 명절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2020-09-24

국회의원과 이해충돌방지법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공정성 논란이 뜨거운 여의도 정치판에 ‘이해충돌방지법’이란 이름의 폭탄이 터졌다. 이해충돌방지법은 당초 지난 2015년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핵심내용이었지만 당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통째로 삭제된 바 있다. 이 법안은 그 이후 19·20대 국회에서 잇따라 제출됐지만 무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미묘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건으로 공정성 논란에 시달리던 여당이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 관련 의혹 등을 계기로 이해충돌방지법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고, ‘박덕흠 의원’ 탈당사태로 면목없는 야당도 일단 이해충돌방지법 논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과연 이 법안이 무사히 통과될 수 있을까.동상이몽격으로 시작된 이해충돌방지법안이지만 법 제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된 상태인 이해충돌방지 법률안은 공직자의 이해충돌 상황을 예방·관리하기 위해 직무관련자가 사적 이해해관계자인 경우 신고·회피·기피, 고위공직자 및 채용업무 담당자의 가족채용 금지, 고위공직자 및 계약업무 담당자 본인 또는 그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 존·비속과 수의계약 체결 금지 등 8가지의 구체적인 행위기준들을 담고 있다.그러나 여야 정치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해충돌 법안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여당 지도부 일각에선 벌써 법안내용을 신중하게 다뤄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척과 기피제도와 관련해 국회직은 일반공직자와는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제척·회피제도 수위가 높아지면 판사·검사출신은 전문성이 있어도 국회법제사법위에서 활동하지 못할 수 있고, 의사출신 의원이 보건복지위를 피해야 하고, 기업인출신은 기재위를 비롯해 예산과 경제활동에 관련있는 대부분의 상임위에서 일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대기업 오너 출신인 정몽준 의원의 경우 7선을 거치면서도 국회의원 시절 내내 주로 외교통일위원회를 맡아 오가야했고, 산업통상자원위나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한번도 활동하지 못했다.야당도 마찬가지다. 이해충돌방지법은 특히 기업인 출신 국회의원의 행보를 크게 제한한다. 따라서 보수야당도 적극 찬성하기 어렵다. 이 법안이 제정되면 기업의 자유활동을 보장하는 야당이 스스로 기업인출신의 국회활동을 제한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국민의힘은 이해충돌 법안처리에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이해충돌 소지를 먼저 해결하라는 입장이다. 피감기관 장관·이사장 출신인 도종환·이개호·김성주 의원, 포털사이트 출신으로 ‘카카오문자’논란을 일으킨 윤영찬 의원의 이해충돌 소지를 먼저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해충돌방지법안의 오랜 표류에는 국회의원들과 정면으로 이해충돌하는 법안이란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2020-09-24

與, 공수처법 개정안 기습상정…흑심 드러내나

더불어민주당이 2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추천과 관련해 ‘야당 비토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했다. 여당의 날치기 행태는 제1야당 국민의힘이 그동안 반심을 써온 공수처 출범에 응할 의사를 밝힌 직후에 벌인 일이어서 그 저의가 의심된다. 지난해 입법과정에서 민주당이 누누이 강조해온 ‘독립성 약속’을 깨려는 의도에서 자행된 모종의 음모적 행태라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여야는 이날 오전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관련 법안 논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법사위 간사 겸 제1소위 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상정하겠다”고 느닷없이 제안한 뒤 거수 표결로 통과시켰다. 상정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을 포함해 총 7명으로 구성하는 공수처장 추천위를 여야 구분 없이 국회가 4명을 추천하는 것으로 바꾸는 내용이 핵심이다. 공수처 검사 자격요건을 ‘10년 이상 변호사’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국민의힘은 기자회견을 통해 “느닷없이 동의하는 분 손 들라고 해서 상정시켰다. 초등학생도 이렇게는 안 한다”고 맹비난했다.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공수처의 조속한 출범을 주문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현재 추천위원을 고르고 있다”고 공개하면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도 “후보 추천을 기다리는 동시에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법 절차대로 심의해갈 것”이라며 압박의 고삐를 풀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날 국회에서 여당의 기습상정이 감행된 것이다.국민의힘이 ‘태업’전략을 써온 것을 잘한 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꾸리려고 법 자체를 바꾸는 행태는 독립성을 보장하는 핵심장치를 제거하는 횡포로써 전혀 정당성이 없다. 공수처법을 소망하는 국민의 참뜻과도 정면 배치된다. 야당의 동의 없이 공수처를 장악하려는 그 어떤 흑심도 옳지 않다. 야당과 함께 가는 게 옳다.

2020-09-24

GM 사장의 일갈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최근 “한국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아무도 오려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한국GM 사장이 되면 곧바로 전과자가 된다”는 사실이 글로벌GM에도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조와 정부규제로 일하기 힘들고 이를 타개하는 과정에서 전과자가 된다는 것이다.귀족노조로 변질한 일부 노동조합들로 인해 기업들 특히 해외에서 들어온 기업들의 고충이 심하다. 적자인 회사가 그들의 인상 요구를 들어주면서 기업 이익을 유지하려면 결국 납품업체에 대한 비용 절감으로 충당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그 업체의 노동자의 급여에 타격으로 이어진다. 귀족 노조들이 그보다 더 열악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자본가에 항의한다면서 그 주체가 귀족노조로 대체된 우리 노동시장의 모습이다.정부규제도 마찬가지로 기업들을 어렵게 만든다. 국가 신인도와 한국 홍보에 공헌한 기업들이 각종 규제와 사법부의 압박으로 힘든 상황이다.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여야 대표를 만나 ‘공정경제 3법’추진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전한 지 하루 만에 정부가 또 다른 기업 규제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피해자에 대한 효율적 구제수단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합법적 협박’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기업을 옥죄는 법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보정권의 집권으로 한국을 대표하였던 기업들에 대한 냉소와 옥죄기는 심화될 전망이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둘러싼 2개 재판이 겹치게 되면서 삼성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초격차를 앞세워 투자 확대에 나섰지만 계속되는 오너리스크로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특히 경쟁사들이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위기 속의 기회’를 모색하며 투자에 속도를 높이고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삼성은 경영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질 위기에 처하게 돼 재계 안팎에서도 우려하는 모습이다.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이후 지금까지 검찰에 10차례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만 3번 받았다.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은 80차례 열렸고, 이중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총 70여 차례에 달했다. 요즘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업을 접고 싶다”고 넋두리를 한다. 기업을 키워놓고 보니 온갖 규제와 제재, 조사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기업인들은 “공장을 증설하기로 해도 한국에서는 아니다”라고 한다. 반기업 정서와 일부 극단적인 노조, 여기에 동조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제재에 기업들의 고통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카허 카젬 사장은 최근 회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올해 노조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또다시 빚어진다면, 한국 사업을 정말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그는 출국금지를 당했다. 이제 한국은 기업이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2020-09-24

바보 공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젊었을 때는 공부란 지식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학, 철학, 종교, 예술, 역사…. 각 분야를 총망라한 지식의 체계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지만 독서량이 늘어갈수록 인간도 우주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어서 지식의 거미줄로는 얽어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지식은 무지(無知)의 어둠을 밝혀줄 광명이 아니라, 오히려 속박과 질곡이 되어 무명에 갇히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인간의 모든 갈등과 분쟁은 무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무얼 안다는 것에서 야기된다는 걸 알았다. 모든 지식이란 부분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부분적인 지식이란 결국 편견일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편견은 독선과 아집을 불러오고, 독선과 아집은 걸핏하면 충돌해서 불화와 분쟁을 일으키게 마련인 것이다. 바둑의 초보자는 열심히 정석을 익히지만 어느 단계에 올라서는 그 정석을 버릴 줄도 알아야 진정한 고수가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식을 쌓는 공부를 했을지라도 나중의 공부는 그 지식을 넘어서는 것이라야 한다는 얘기다.고 김수환 추기경이 아주 단순하게 그린 얼굴 밑에‘바보야’라고 쓴 자화상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분이 평생을 바친 독서와 명상과 기도를 통해 마침내 도달한 것이 고작‘바보’였다니. 현자(賢者)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고, 대성(大成)은 모자란 것처럼 보이고, 대교(大巧)는 졸렬한 것처럼 보인다고 한 노자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늙어서의 공부는 어리석게 보이고 모자란 것처럼 보이고 졸렬해 보이는 공부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잘나고 똑똑해지는 공부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해져서 바보가 되는 공부라야 한다는 것이다.평생을 공부랍시고 해서 내가 얻은 것도 남다른 재주나 능력을 갖지는 못한 대신 빈털터리로 사는 것에 이골이 난 것이 고작이다. 결국 채우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였던 셈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어 죽음 앞에서도 별로 미련이 없을 터이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말년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버릴 것도 없으니 다만 허전할 뿐인가.많이 벗어난 얘기지만, 요새 우리나라 아이들의 공부는 지식의 탐구는커녕 출세를 위한 ‘스펙’이 목적인 것 같다. 그러니 부모들도 자식을 위한답시고 지위나 권세, 편법과 비리를 다 동원해서 자식들의 스펙 쌓기에 이바지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른바 ‘조국 사태’가 그 실상을 잘 보여주었다. 자신은 그럴 능력이 없어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자괴감이 들었다는 부모들도 있는데, 정말로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그들은 조국을 나무랄 여지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보모라면 ‘봐라, 나는 적어도 너희들을 저런 식으로 교육하지는 않았다’라고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해야 옳지 않은가.‘아빠가 조국이 아니어서 미안해’라거나,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어서 미안해’가 아니라, 적어도 그렇게는 살지 않은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부모라야 건강한 부모다. 그런 부모의 슬하에서 반듯한 자식이 나온다. 공부가 전혀 안 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2020-09-24

추석발 스미싱 주의보

올 추석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족과 지인 간 문자메시지나 메신저 등으로 안부 인사를 전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추석발 스미싱 주의보가 내렸다.안랩에 따르면 최근 아들·딸 등 가족 구성원을 사칭하거나 안부 인사로 위장한 메시지로 악성 앱 설치나 금융정보 탈취를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녀를 사칭한 문자 메시지로 개인정보와 금융정보, 문화상품권 구매 후 핀번호 등을 요구하거나 스마트폰 원격 조종 등 악성 앱 설치까지 유도하는 것. 가족이나 친지의 문자라도 문자메시지로 앱 설치를 유도하거나 금전거래를 요구할 경우,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스마트폰 전용 백신을 사용하는 게 좋다.고향 방문 대신 선물을 보내는 상황을 노리거나 사회적 이슈를 악용한 보안위협도 이어지고 있다. 해커가 택배 알림으로 위장한 스미싱 문자나 메일로 악성코드를 유포하거나 유명 국제 배송업체의 송장 확인 메일을 위장해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사례다. 심지어 정부가 소상공인 등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 대상자에게 문자메시지 안내를 보낸다고 예고하자‘2차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위장한 스미싱 문자메시지도 발견된다. 피해 예방을 위해선 출처가 불분명한 문자메시지 및 메일의 URL, 첨부파일은 실행을 하지 않는게 중요하다.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앱을 항상 최신으로 유지하고, PC와 스마트폰에 백신을 설치하는 등 보안 수칙을 실천해야 한다. 추석 연휴에는 PC나 스마트 기기로 영화, 게임, 인기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즐기는 사용자가 많아 이를 노린 해커들의 공격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코로나와 스미싱 위험을 피해 조용히 지내는게 좋겠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9-23

정치적 의사 표현, 다양한 ‘방역형 시위’ 개발을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가 입을 맞춘 듯 예정된 개천절 집회를 놓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반사회적 범죄”로 규정했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공권력 총동원”을 언급했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경찰의 명운을 걸고 원천 차단해달라”고 주문했다. 정권은 지금 이 나라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 대해 ‘코로나19’라는 역병을 만능 방패로 삼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다양한 ‘방역형 시위’를 개발할 필요가 대두된다. 10·3 개천절에 서울 시내 집회 신고 건수는 835건이다. 경찰은 이 중 10인 이상 신고한 75건 등 112건에 대해선 금지를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과 많은 시민단체들은 집회가 감염확산의 주범으로 몰릴 것을 우려해 호소해왔다. 민주화 이후 권력에 대한 민심을 표출하는 집회와 시위가 이토록 심하게 위축된 적은 없다.문 대통령이 말한 ‘반사회적 범죄’를 비롯한 정부·여당의 원천차단 의지는 그 집회가 방역수칙을 위반한다는 전제하에 정당성이 있다. 문 대통령이 집회를 하려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예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방역수칙, 거리 두기를 철저하게 준수하는 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억압할 명분은 추호도 존재하지 않는다.일부 보수 인사들이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집회를 제안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 “교통과 방역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의 권리”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여당 일각에서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그 시위는 그냥 차량 시위”라며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게 예측된다면 금지가 당연하다”고 말했다.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차가 몰리면 교통문제가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는 차원에서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표현 수단을 동반한 차량을 움직이면서 시위하는 방식을 원천적으로 막을 명분이나 법적 정당성은 없다. 숙명적인 코로나19 시대에 다양한 방법의 의사 표현 수단 개발이 절실해졌다. 민주주의는 국민 여론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한다.

2020-09-23

남자들에게만 맡겨둘 세상이 아니다

장규열한동대 교수‘세상은 남자들의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시몬느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남긴 말이다. 세상이 남자들의 관점으로만 해석되고 구성되며 운영되는 일을 꼬집었다. 세상이 그렇게 된 까닭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 어느 설명도 가당치 않다고 했다.미국작가 캐롤라인 페레즈(Caroline Perez)는 그의 책 ‘보이지않는 여성(Invisible Women)’에서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의 입안과 수립과정도 남성중심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 점령당했다고 했다.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통계치들도 ‘여성의 존재’를 간과하는 경우가 허다해 여성이 거기에 있었음조차 무시되곤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설계, 도시계획입안, 정책수립과정 등에 있어 여성의 시각이 누락되지 않아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최근 작고한 미연방대법관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가 남긴 일화가 있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그에게 기자가 물었다. ‘아홉명 정원 대법원에 여성대법관이 몇 명 앉아야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아홉명 전원’이라고 답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같은 질문을 뒤집어 ‘아홉명 전원이 남성이라면 같은 질문을 했겠느냐?’고 되묻는다. 남성이 지배하면 당연하고 여성이 들어서면 이상하다 여기는 생각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OECD는 노동임금수준의 성별 간 차이를 발표한다. 회원국들 평균 여성이 남성에 비해 13% 덜 받는다는데, 한국은 단연 그 격차가 추종을 불허하는 1위로 34%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존재가 되외시될 뿐 아니라 그 가치마저 저평가되고 있음이 아닌가. 남녀 간에 물리적으로 다른 것을 인정하더라도 인격과 인권 면에서 무시되고 소외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교회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주요교단 하나가 ‘여성이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고 한다. 성경 어느 곳에 남자만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적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이 저렇게 변했는데, 남자 목사들끼리 모여앉아 저런 결정을 하는 배포가 놀라울 뿐이다. 아니 세상이 변하기 전에 이미 당신들의 대표 선생이었던 바울 사도가 ‘남자와 여자가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선포하였던 일은 무시해도 되는가. 그런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어디로 흩어질 것인지 두렵지도 않은가.여성 가수 한 사람이 어렵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릴 적에 성폭행을 당했었노라고. 수많은 날들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지내왔음도 고백했다. 오늘도 폭력 앞에 무너지고 있을 다른 여성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세상에 자랑거리가 많아 보이는 나라에서 이 같은 야만이 아직도 존재한다니 경악할 따름이다.무시당하고 값싸게 취급되며 폭력까지 감내할 양이면, 우리의 누이들에게 이곳은 선진국일 수가 없다. 갈 길이 아직 먼 숙제들은 이제 여성만의 몫이 아니다. 그동안 누리면서도 몰랐거나 무심했던 남성들이 깨어날 차례가 아닌가. 인류의 나머지 절반이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소매를 걷어야 하지 않을까.

2020-09-23

요양병원까지 간 포항지역 코로나, 예사롭지 않아

포항세명기독병원 내 코로나19 연쇄 확진이 지역의 요양병원까지 번져 방역당국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포항시는 지난 20일 포항세명기독병원을 코호트 격리한데 이어 이번에는 확진자가 신규로 발생한 포항휴요양병원 5층 전체를 코호트 격리 조치했다.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 속에 경북 포항에서는 확진자가 되레 늘어나고, 의료진까지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해 시민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 특히 추석 연휴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신규 확진자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행여 대규모 감염의 불씨가 일어날까 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이달 들어 경북 포항과 경주 등 동해안 일부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발생한 코로나19는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이달 들어 이곳에서는 벌써 20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중에는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도 많다고 한다. 동해안 대표 관광도시인 두 곳에서 최근 발생한 코로나19는 추석연휴를 이용해 이곳을 찾을 또 다른 사람에게 매개가 될지 더 걱정거리다.그나마 포항세명기독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의 감염원이 서울에서 이곳을 병문안 온 아들인 것으로 늦게나마 밝혀져 다행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병문안 온 확진자가 방문 사실을 숨기면서 n차 감염이 연속 발생하고, 요양병원까지 코로나19가 전염된 것은 매우 우려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포항시가 방문 사실 등을 숨긴 아들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하나 한 사람의 비협조가 코로나를 얼마든지 확산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포항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코로나19의 감염경로 추적과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시바삐 연결고리를 찾아 근원적 해결점을 찾아야 시민들도 안심하고 추석을 보낼 수 있다. 다가오는 추석과 개천절 연휴는 국가적으로도 코로나 방역의 고비가 되는 시기다. 더군다나 독감백신의 유통과정상 문제로 대국민 접종 차질의 우려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비상한 마음을 가져야 할 때다.코로나19는 방역 강화만이 유일한 예방책이다. 당국의 빈틈없는 방역망 관리와 더불어 개개인의 방역수칙 준수가 으뜸책이다. 포항발 코로나 확산 저지에 모두가 총력을 쏟아내야 할 것이다.

2020-09-23

오리 날다

배문경수필가보문호수는 윤슬로 춤춘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바람이 분다. 멀리 떠가는 오리 배, 수면 아스라이 앉은 오리와 뭇 새들이 풍경을 이룬다. 乙자 모양의 오리가 수면을 치며 날아오를 때, 순간 담담하던 풍경이 소스라치듯 놀란다.새들의 군무를 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일몰 직후 노을 진 하늘 위로 떼 지어 날아오르던 새들은 가창오리였다. 그들의 비상과 선회는 한 폭의 점묘화를 이루며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 광경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단지 생존으로 다급한 힘겨운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은 두 날개가 추위와 굶주림을 넘어서 함께 어울려 펼쳐 놓은 것이었기에 더욱 숨 막힐 듯 아름답게 느껴졌다.하늘 한 쪽에 펼쳐진 거대한 그림을 보며 어느 순간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올라 자신을 드러낼 구도자의 춤을 떠올렸다.아버지는 집에서 오리를 키웠다. 친정집 뒤에는 큰 도랑이 있어 오리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오리솟대가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갈 때는 솟대의 오리도 날개 짓하는 것 같았다.오리들은 흰 깃털이 때가 묻어 늘 거무죽죽했다. 그 오리들 사이에 색깔부터 다른 청둥오리 몇 마리가 끼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청둥오리 알을 가져와 서너 개를 부화시켰다고 했다.어느 날, 약으로 쓴다며 오리를 사러온 사람에게 아버지는 두 날개를 끈으로 묶어 청둥오리를 넘겼다. 내 눈처럼 오리는 젖은 눈으로 퍼덕였다.청둥오리들은 가끔씩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야생으로 영 날아가 버릴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비탈진 언덕을 오르거나 뒤뚱대며 내려올 뿐이었다. 이미 퇴화된 날개는 어깨의 일부처럼 붙어있었다.어느 날, 아버지는 높은 장대를 설치해서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날개에 힘이 오른 청둥오리들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을까. 하지만 그 여름 태풍이 한번 휘몰아치자 냇가에 세워둔 아버지의 그물막도 장대가 넘어지면서 한쪽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물막을 수리하는 동안 초막에 갇혀 지내던 오리들이 다시 냇가로 나왔다. 지저분한 날개를 씻어 깨끗해졌을 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그 아주 짧은 순간, 내 기억은 눈부신 빛 속으로 흩어졌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몸을 위로 띄웠다. 그리고는 머리와 몸채가 평형이 되게 하고는 날개를 쭉 펼치자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신호를 서로 보내고 있었을까. 한 무리의 오리들이 하늘에 낫 모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솟대를 지나 그 무리를 향해 더 높이 날았다. 지상에 있던 흰 오리들이 꿱꿱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청둥오리는 날아오르다 잠시 공중에 멈춰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젖혔으나 위로만 날아올라 무리들에 섞여버렸다.낮잠은 달았고 오리들은 자맥질 중이었다. 나는 청둥오리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자유롭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오랫동안 나는 반복된 일상에 젖어있었다. 나 자신의 꿈은 내려놓은 채 가정에 모든 것을 붓는다고 자위했다.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러 나의 꿈을 돌이켜 본다. 한 때 영화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오는 나를 그려보았다. 밥벌이가 중요하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나는 꿈을 접어 넣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늙어죽는 것은 아닐까. 의문기호가 많아질 때, 나는 집에서 키웠던 청둥오리를 떠올린다. 그 많던 오리 중에 유일하게 울타리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던, 무리와 하나가 되어 훨훨 날아가던 오리.다시 보문호수에 바람이 불자 물결은 찰랑거린다. 언제 보아도 물 위의 오리는 수면 아래 물갈퀴 발을 열심히 움직인다. 오리 배는 여전히 묶여 있고, 에메랄드빛 하늘로 새들은 드높이 날아간다.

2020-09-23

아직 먼 길

이웃분이 이사를 합니다. 집수리까지 마쳤답니다. 한데 깔끔해진 집에, 문짝 내려앉고 손잡이 너덜거리는 장롱뿐 아니라 눈에 띄는 큼직한 세간이라면 허드레라도 다 싸들고 간답니다. 잘 수리된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 다들 눈이 동그래집니다. 몇 십 년 넘은 결혼 생활에 바꿔야 할 세간이 한 둘이겠습니까.시댁의 눈치 때문이랍니다. 시댁 식구들 집들이를 무사히(?) 끝낸 뒤에 새살림으로 교체할 거랍니다. 듣는 이들 모두 한숨을 쉽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손때 묻은 살림살이에 대한 애잔함 때문이 아니라, 잠깐 눈속임을 위해 덩치 큰 세간들을 이삿짐에 실어야 하다니요.이게 현실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물론 시댁과의 관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런 대부분의 집안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소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여성이라도, 시댁 문제에 닿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빚기도 합니다. 새 가구와 최신형 가전제품을 갖춘 집안을 둘러 본 시댁 식구들이 며느리의 헤픈 살림법을 못마땅해 할까봐 미리 방어하는 것이지요. 제 세간 늘린 것과는 반대로 시댁 챙기는 것을 소홀히 했다고 책망 들을까봐 알아서 한 수 접는 것이지요. 시댁에 도리는 다하지 못하면서 제 욕심만 차리는 며느리로 비칠까봐 최대한 소심 모드를 취하는 것이지요. 요모조모 살필 시댁과의 유무언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중의 노동과 비용이라는 비효율을 감수하는 것이지요.우리 현실은 여전히 ‘며느리의 도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위의 경우 시댁과 며느리 사이에는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만큼이나 먼 소통부재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남편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합니다. 시댁과 아내 사이를 조율할만한 근본적인 묘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수무책인 채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 마음도 편할 리는 없겠지요. 특별히 별나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시댁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며느리상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 집에서는 며느리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합니다. 며느리의 역할을 의무를 다하는 데로만 한정 짓고 싶어 합니다.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며느리의 도리를 미덕이나 지혜로 포장하고 추켜세우기를 좋아합니다. 도리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입니다. 그 말이 며느리에게 오면 ‘입장’도 왜곡되고 ‘바른길’도 변형 됩니다. ‘복종과 인내’ 같은 피동적인 의미로 덮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큰 죄 없는 며느리들에게 불필요한 자책감만 키우는 족쇄로 기능할 때가 많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며느리들, 나아가 여성들로 하여금 피해의식을 조장하는 일은 도처에 나타납니다. 어떤 모임에 신입 회원이 들어옵니다. 나름의 자기 의견을 개진합니다. 가부장적 사고의 틀에 갇힌 이들이 보면 그 모습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시집을 왔으면 시댁의 가풍에 따라야지. 시집온 첫날부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는 핀잔을 듣습니다. 아직도 이런 비유가 횡횡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과도한 자기표현을 하지 않을수록 ‘참한 여자’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무의식중에 세뇌하고 여성들은 세뇌 당합니다. 어디쯤에서 나서고 어디쯤에서 물러서야 하는지에 대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불필요한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아니, 시달리기를 이 사회가 은근히 강요합니다.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부자연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지키지 못하면 성격이 이상한 여자, 별난 여자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남성 중심적 사고들이 마련해놓은 ‘괜찮은 여자’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 사회는 뭉근히 여성들을 억압합니다. 여성들 스스로도 그 사고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질서는 가부장적 권위에 기댑니다. 혼사를 지낸 경우, 아들이 내 것이기 때문에 며느리도 응당 내 집안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가풍을 잇는다는 명목 하에 며느리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설교하려 듭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며느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시댁의 요구가 ‘전화 자주해라’ 라는 것이랍니다. 어떤 처가도 사위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처가도 사위의 도리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그런 의무가 더 할당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땅히 그러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진심에 의해서 몸과 마음은 움직입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의 것일 뿐이지요.추석이 다가옵니다. 오래된 장롱조차 버리지 못할 만큼 눈치 보는 며느리도, 전화 자주하라는 가르침에 소심해진 며느리도 시댁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먼 그 길,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그날들이 가까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0-09-23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을 보면서

김규종 경북대 교수지난 9월 16일 아베 신조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가 일본의 99대 총리로 취임한다. 그는 2014년부터 지난 9월까지 관방장관을 역임하면서 아베의 하수인 노릇을 한 인물이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 인사를 보면 전임 아베 정권의 인물 8명이 고스란히 유임되었다. 스가는 아베의 동생을 방위상에 임명함으로써 아베 정권의 기조를 강화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베가 지금까지 보인 반한정책 철회는 당분간 없을 듯하다. 일제 강점기 징용공 관련 대법원판결 불복과 위안부 문제 처리에서 문재인 정부는 원칙적인 입장을 천명해왔다. 하지만 자국에 유리한 결과를 고집한 일본 정부는 소재-부품-장비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강경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가는 이런 정책을 견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주조다.일본 내정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우려되는 바가 적잖다. 더욱이 일본은 중국과 함께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아닌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더라도 일본은 한반도의 명운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663년 백강 전투와 1592년 임진왜란, 1895년 을미사변,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는 모두 일본과 관련된 사건이다.올해는 일본 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된 지 75주년이다. 그동안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3050클럽에 가입하는 쾌거를 이뤘고, 1998년에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른바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위상이 날로 웅혼해지는 시점이다. 반면에 일본은 2010년 중국에 밀려 세계 경제순위 3위로 내려앉은 후 과거의 영화(榮華)를 추억으로 간직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패전국가에서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던 일본의 추락은 숱한 평가와 해석을 낳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일본의 정체(停滯)를 말하고 싶다. 일본 사회의 역동성이 약화하여 미래를 추동하거나 견인할 세력이 사라진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온전한 정권교체는 2009년 8월 30일 민주당이 자민당을 대신한 2년의 경험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말이 나와도 유구무언이다.어느 나라든 대안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라 부른다. 수권 능력을 갖춘 실력 있는 야당과 정부의 실정과 부패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존재가 나라의 명운을 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무력한 야당과 미약한 시민사회로 인해 미래를 열어나갈 구심력과 추동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이것을 깊이 성찰하고 사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강한 이웃이자 경쟁하는 국가로 재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선량하고 능력 있는 이웃이야말로 커다란 선물 아니겠는가?!

2020-09-23

이참에 수행평가를!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때로는 산안개의 배웅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아기단풍의 성장기를 파노라마로 감상하기도 하는 등 가을 잔치를 펼치는 자연과 하나 되는 길! 보통 출·퇴근길을 상상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체증이다. 꽉 막힌 길,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 오로지 도착을 위한 맹목적인 길! 하지만 필자에게 출·퇴근길은 다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고속도로라는 것을 제외하면, 필자는 매일 자연과 함께 출·퇴근한다.아무리 바쁘고 지친 날이라도 출퇴근길에서만큼은 필자는 자연의 변화에 여유를 찾는다. 그 변화가 곧 철이다. 철의 중요성을 아는 자연은 철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장마와 태풍 등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갑자기 커진 일교차에 자연의 경고를 잊었다.필자 또한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자연과 함께 한 시간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번 주는 다르다. 월요일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사연이 바로 글머리에 적은 말이다. 코로나 19는 명절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나왔다.“불효는 ‘옵’니다.” “올해 벌초하러 오면 내년에는 벌초 거리 된다.” “추석 연휴 가족, 이웃의 건강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합시다.”코로나 19가 바꿔 놓은 가로 펼침막 내용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고향 방문을 환영하는 글이 추석의 분위기를 한껏 더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고향에 오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 이러다 명절도 온라인 명절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고향길이 막히면서 휴가길이 열렸다. “황금연휴 일주일간 30만 명 몰리는 제주도” 전국 유명 여행지는 이미 예약이 마감될 정도라고 한다.이대로 가다간 온라인 명절이 아니라 명절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궤변이 넘치는 사회 특징 중 하나는 꼭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거나, 없어져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된다는 것이다.궤변 사회의 궤변 교육 중 하나가 수행평가이다. 코로나19 전에 교육 당국은 수행평가 반영비율을 50% 이상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수행평가는 이론에서나 존재하는 평가이지 현실에서는 실행 불가능한 평가이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사들의 평가 능력이다. 과연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학습 과정과 결과를 평가할 능력이 있을까?교육 당국은 과제형 수행평가는 안 된다고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수행평가는 과제형이다. 그런데 그 과제를 보면서 과제를 낸 교사는 수행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제형과 서술형 평가는 표준 답안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사가 제시한 표준 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얼마 전 “학생평가 반영비율 조정”이라는 공문이 왔다. 내용은 수행평가 비율을 50% 이상에서 20% 이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명절도 없어지는 이참에 교사 중심의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평가인 수행평가도 없애면 어떨까! 아니 없애자!

2020-09-23

접붙이기에 관하여

국문학을 하는 나로서는 늘 고민거리가 한국 현대라는 것이 어떻게 해서 ‘나타날’ 수 있었으냐 하는 것이다.요즘은 정치라는 것에 대한 관심도 꽤나 시들해져서 시간을 내서 평소 관심을 갖던 접붙이기, 접목이라는 것에 대해 더 찾아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접붙이기에 한국 현대의 형성 과정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한국 근대를 일본이 가져다주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주로 이식(transplantation)과 모방(imitation), 또는 복사(copy)에서 해답을 찾는다.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임화는 옛날에 순전한 이식이란 아프리카 원주민 사회 같은 곳에나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조차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순전한 이식이란 모래땅, 황무지에 파인애플을 옮겨다 심는 것 같은 것을 말하는데, 사회라는 것에 그런 순전한 이식이란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 하고 의심한다. 물론 이식과 모방, 복사는 새로운 문화 형성의 쉬운 방법이자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창조에는 반드시 ‘원래’의 것과 외래적인 것의 ‘접합’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한다.나는 대신에 접붙이기, ‘접목’이라는 식물학적 용어를 어떻게든 활성화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가지에 토마토도 접붙일 수 있고 벤자민에 귤도 접붙일 수 있고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블로그 같은 것을 보면 성경에 고욤나무의 비유가 나온다고도 한다. 그것은 오래된, 버리지 못하는 습성, 생각 등에 비유되며, 감나무와 접을 붙여야만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기에 사람아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이 접붙이기에서 접을 붙이는 나무를 ‘대목’, 붙여지는 것을 ‘접수’라고 한다. 그러니까 접붙이기의 원리를 잘 생각해 보면 이 식물세계의 진실이 인간의 문화 형성 과정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 ‘비유’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대목과 접수는 서로 접을 붙일 때 나무의 형성층이 서로 잘 맞아야 서로 다른 두 생명이 원만하게 이어져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맞아들이는 쪽만의 의지로도 아니요, 붙어드는 쪽의 의지만도 아닌, 양방, 서로의 ‘뜻’이 조화롭게 어울려야 풍성한 문화를 새롭게 이룰 수 있지 않을까?사회문화의 전환기에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방식에는 여러 차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식도, 복사도, 모방도 다 그 방법이지만 원리주의적 고수, ‘국수’가 아닌 다음에야 접을 잘 붙여 서로의 강점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앞으로 나도 한 번 서투른 농사꾼처럼 이 접붙이기의 묘미를 배워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이 식물 세계가 선사하는 인문학의, 문학의 이야기도 엿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9-23

풀을 내리며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추석이 가까워지면 으레 하게 되는 것이 벌초(伐草)다. 벌초란 조상의 묘에 자란 풀이나 나무를 베어내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일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의 성장이 거의 멈추기 때문에 추석 때의 성묘를 위해서 묘를 깔끔하게 미리 손질을 하게 된다. 일부 지역에선 벌초를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하고 제주도에서는 소분(掃墳)이라고도 한다. 또한 안동지방 등지에서는 ‘풀을 내리는 것’이라 하여 경건한 손길로 묘소를 다듬으며 정성을 다했다.우리나라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조상의 묘를 살피고 돌보는 일은 효행이자 후손들의 책무라 여겼다. 북망산천에 계시지만 조상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예우하였기에, 묘소가 함부로 방치되거나 흉해지지 않도록 후손된 도리로 해마다 깨끗하게 관리해왔다. 그래서 수년 간 벌초를 하지 않으면 자손이 없는 묘로 여기거나 또한 후손이 있음에도 벌초를 하지 않는 행위는 불효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풍속은 조상의 덕을 생각하여 제사에 정성을 다하고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나와 내 가족이 있고 자손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는 것도 모두 조상이라는 근원이 있고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하늘로 가는 능선/솔숲에 튼 둥지 있어/먼 산 큰 품에 안긴 안도의 칩거인가/생시의 도도한 말씀/석간수(石澗水)로 푸시네//반 평생 눈물 언덕/까만 동공 등불로/속절없는 이승길 버린 듯 가신 자리/한 움큼 익모초 줄기/서걱이며 손젓네/’ -拙시조 ‘풀을 내리며’ 중(1990)지난 주말, 올해도 어김없이 풀을 내리고 왔다. 연례행사처럼 한 해도 빠짐없이 그렇게 참여해온지 어언 35년여, 예전에는 주로 낫으로 힘겹게 벌초를 했었지만, 요즘은 거의 예초기라는 풀 베는 기계를 이용해 비교적 손쉽게 하는 편이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던 형제나 사촌들이 약속처럼 모여들어 공동으로 벌초작업을 벌이니 우애와 협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벌초 후 대부분이 추석 때의 성묘를 겸해 잔을 올리면서 조상을 추모하고 섬기는 마음을 모으기도 한다.그러나 시대가 변하니 벌초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바쁜 도시인들이 벌초할 시간과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대행업체에게 벌초를 맡기기도 한다.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예초기의 보급과 함께 벌초대행업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벌초를 하기 위해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힘겹게 작업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요즘같은 비대면 시기에는 고향 방문을 미루거나 직접 벌초를 포기하는 경향이 많아져 벌초대행이 예년에 비해 30~40% 급증하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고 한다.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해 벌초 풍경도, 명절 채비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맘때면 시골이나 도시 어귀에는 고향 방문을 반기는 현수막이 즐비했었는데, 오히려 귀성과 이동을 자제해달라는 글귀가 걸리니 묘한 느낌이 든다. 또한 온라인 성묘, 화상 차례 서비스 등의 생소한 성묘, 제례문화로 살가운 일가친척 간에도 틈과 거리가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2020-09-22

김종인의 좌 클릭 노선, 성공할 것인가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몇 달 전 미래통합당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지난 선거에 4연패한 야당은 궁여지책으로 그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김 위원장의 경력은 대학교수, 청와대 비서관, 장관, 국회의원 등 매우 화려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5선에 여야를 넘나들며 비대위원장과 선대 위원장을 맡았던 80대 고령의 그가 야당의 개혁의 선봉장이 되었다. 보수 야당은 그간 인명진 목사, 유석춘·김병준 교수 등 여러 명을 비대위원장으로 맡겼으나 당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다. 김종인의 좌 클릭 노선은 보수정당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것인가.김종인 위원장은 첫 회의에서 “진취적 정당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과거 수구 정당의 개혁을 위해 당의 노선을 중도 좌쪽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박근혜 탄핵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 광화문 태극기 집회와도 단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보수 야당의 비대위원장이면서도 스스로 ‘보수’라는 말을 싫어하고 있다. 또한 그 스스로 광주를 찾아 5·18 국립묘지에서 회개의 무릎을 꿇었다. 그는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북한과의 ‘화해 협력’을 강조하여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모두가 그의 좌 클릭 행보의 일환이다. 그는 미래통합당의 당명을 ‘국민의힘’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변경하였다.그의 좌 클릭 행보는 경제 정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김종인 위원장은 자신의 ‘경제 민주화’ 노선을 당의 정강 정책에 담았다. 그는 국민에게 일정 규모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국민 기본 소득’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복지 어젠다도 선점하면서 집권 여당의 ‘공정경제 3법’의 수용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당의 경제 노선이 재벌과 시장 중심에서 친 노동, 친 서민 정책으로 바뀌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당내의 반발도 상당하다.이러한 김종인 비대원장의 개혁노선을 보는 당내의 시각은 찬반으로 갈린다. 당내의 보수 강경파들은 이러한 그의 좌 클릭 행보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아직도 입당치 못한 홍준표 의원은 “좌파 2중대 흉내 내기를 개혁으로 포장해서는 좌파 정당의 위성정당이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장제원 의원은 “보수의 소중한 가치마저 부정하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주요 당직자들은 그의 당 개혁노선에 부분적으로 불만이 있지만 현재로선 묵인 수용하는 입장이다.김종인 비대위의 임기는 내년 3월로 잡혀 있다. 이 기간 내에 김종인 위원장의 당 개혁의 성공 여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그의 좌 클릭이 성공하려면 최소 몇 개의 관문은 통과해야 한다. 그 하나는 차기 당대표가 그의 노선을 따르는 인사가 선출되어야 한다. 김종인의 노선을 반대하는 당대표가 선출되면 그의 개혁노선은 수포로 돌아간다. 또한 내년 3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그의 개혁노선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 대선후보로 그의 노선을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 항간의 풍설대로 그가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당의 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관문이 아니다.

2020-09-22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절실한 생략은

많은 이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19를 두고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겪고 있다. 사소한 일에도 자극을 받아 울컥하거나, 감흥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주 체하거나 소화가 되지 않는 몸의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수도권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던 때에는 내면의 침잠이 한꺼번에 부서지려는 듯 휘청였다. 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쫓기듯 들자 홈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고, 새로운 자격증 공부를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모두 집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었고, 쉽게 무료해졌다.‘쉼’은 어렵다. 그동안 열정이라는 이유로 욕심껏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데에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쉬고 싶단 이유로 하나씩 내려놓다 보면 결국 그간 쥐고 있던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마음 깊은 곳에 이고 진 짐들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방해를 받는다. 최근 유튜브를 보며 가벼운 요가 자세를 따라 하기 시작했지만 집중력이 모자라 빈번히 무너졌다.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도 문제였지만 습관처럼 따라오는 잡생각은 왜 이렇게 물리치기 어려운지. 유튜브 속 요가 선생님은 이마 위에 작은 점을 그려서, 그 점을 일정한 힘으로 응시하며 자세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 작은 점 하나도 그리기 어려워 시계를 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그러다 휴대폰을 쳐다보기 일쑤였다. 결국 적당한 쉼은 무엇이고, 어떻게 행해야 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다.티브이 속 ‘여름 방학’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두 배우는 아주 느릿느릿 여유를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은 시골 마을 속 오래된 집을 개조해 여행 같은 삶을 즐기는 이들은, 꼭 필요한 물건만을 그때그때 사서 쓰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life)’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것을 일컫는다.가장 적은 물건으로만 살아가는 것. 문장만 보면 쉬워 보이나 사실 주변을 잘 둘러보면, 내 몸 하나 존재하는 공간이 너무 많은 사물과 관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여름 방학’은 떠들썩한 움직임도, 큰 사건도, 반전도 없는, 오롯이 ‘먹고 자고 살아가는’ 잔잔한 일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접 시장이나 마트에 들려 식자재를 고르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든다. 많은 시간이 들여야 하는 일을 행하고, 졸음이 몰려올 땐 잠을 잔다. 이외에도 평소 배우고 싶었던 빵 만들기 기술을 익히거나 서핑을 배워 파도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동안 하루가 끝나면 그림으로 자신의 하루를 기록한다. 나무 책상에 앉아 색색의 연필을 들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더듬더듬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고, 고민 없이 지냈던 어느 평온한 나날을 자연스레 떠올려보게끔 한다.최근 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언택트(untact) 예능’을 택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은 시골 마을로 찾아가, 집에서 머무르는 시청자에게 실제로 여행을 하는 듯한 자연경관과 여유로움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실제로 여행을 하진 않지만 화면 속 느릿한 일상과 거대한 자연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바퀴 달린 집’은 커다란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유랑하며 자연 속에서 하루를 살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한적한 시골에서 물멍(물속에서 멍하니 넋을 놓거나), 불멍(불을 보며 멍하니 넋을 놓는) 등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게스트와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제한된 물을 쓰고 간소화된 물품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실현하고 싶은 현대인의 욕구를 대변해주는 듯, 그저 먹고 이야기하고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장면뿐인데도,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다시 미니멀 라이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쉼을 위해서는 마음 비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 안을 살폈고, 쌓인 어마어마한 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나에게 꼭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지만 가지고 싶은 것’, ‘폐기해야 할 것’이라 적은 3개의 상자를 나란히 두고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정말 내가 이걸 다 산 걸까? 싶었던 건, 책이었다. 일 년 전 이사를 하면서 많은 책을 처분했지만 아직도 집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을 쓸 때 필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소중한 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고른 책이었는데 등등. 한 가지의 물건 속에는 불명확한 목적, 그때의 기분이나 시간, 기억 같은 게 들어있어 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조금씩 비우니 보이는 게 있었다. 생각보다 입지 않는 옷이 많았고, 필요 없는 책은 끈으로 묶어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다. 현재 생활 습관에 맞춰 가구를 재배치하여 더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남은 옷은 몇 벌 되지 않아서 모두 옷걸이에 걸어두고, 양말과 수건은 색깔별로 잘 개켜 서랍 안에 세로로 줄 맞춰 넣었다. 쉽게 버릴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쉽게 버릴 수 없는 것 또한 있었다. 대학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기사문, 동아리 일지, 의미 있는 편지, 신춘문예 기간에 시를 보내고 받은 우체국 영수증 등 내게 많은 것을 안겨다 준 물건들이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래전에 받은 게 많아서 이미 프린트나 글씨가 벗겨진 것도 많았다. 좋은 노하우를 참고해 작은 크기의 종이는 속이 비닐로 된 파일 안에 집어넣어 정리하였고, 다소 크기가 큰 종이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A4 용지의 크기로 뽑아 파일 안에 넣었다. 많은 종이와 인쇄물이 한 권의 사진첩으로 정리되자 책장 속 딱 한 칸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필요한 자리에 알맞게 위치하는 것. 그 적당한 위치와 무게가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코로나19로 적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면서 충만을 누리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확산하고 있다. 집 안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을 비우고 나니, 소비습관이 조금씩 달라지고 대체 용품을 찾게 되었다. 이제 조금씩 실천하고 있지만,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물건을 고를 때 5년 정도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구매를 결정하게 되었다. 또 손수건을 사용하여 휴지 사용을 줄이거나, 장바구니 사용으로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던가, 식당에서 먹지 않는 반찬은 미리 말해두는 등 실천 가능한 습관을 생각해보고 있다.비워지는 물건의 이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들은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움직임을 실천하고 있었다.제로웨이스트는 일회용 포장재, 완충재 등의 사용을 줄이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사회 운동이다. 많은 클렌징 용품을 대체해 천연 비누를 쓰거나, 세제나 섬유유연제 대신 ‘소프넛’을 대체해 사용한다. 소프넛은 솝베리나무(soapberry·무환자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로 수질오염, 환경오염 없이 생분해되는 천연 계면활성제다.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또는 비닐봉지를 줄이기 위해 매립 후 90일 이내 물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생분해 봉지를 사용한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물티슈 또한 생분해 행주로 대체하고 플라스틱 빨대는 소독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스테인리스 빨대를 쓴다. 그간 행하던 습관들을 한 번에 고치기는 어렵다. 계산 후 영수증이나 플라스틱 빨대를 받지 않거나 텀블러 사용, 다회용 장바구니 사용, 생분해되는 대나무 칫솔을 쓰는 등의 작은 실천부터 해볼 수 있다.조금만 눈을 돌리면 불필요한 것을 구매하지 않고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생활을 채워 넣을 수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줄이면서, 아주 최소한의 물건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삶도 있다.비워낸다는 것은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환경을 위해 함께 상생하자는, 같이 살아가자는 건넴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온전히 마음에 꼭 드는 것으로만 채우고, 불필요한 것은 생략하는 법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다.세상은 시끄러우나 내 안의 고요는 비워둔 곳에서 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태도나 자세를 느린 시간 속에서 선명히 그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들을 반듯하게 지키며, 무해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

2020-09-22

언택트 추석

올 초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 언택트(Untact) 문화가 지금 우리시대를 주도한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더니 요즘 우리 사회는 모든 길이 언택트로 통한다. 가급적 사람을 만나지 않고 볼일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이다. 집콕이나 재택근무가 오히려 권장되고 있는 세상이다.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며, 식사 중에는 가급적 대화를 삼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시나 공연은 온라인으로 즐겨야하고 직접대면 회의는 화상으로 대체된다. 이러다가는 정녕 사람 만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사람은 본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는 모든 대면행위가 통제되고 비대면이 마치 선(善)인양 대접 받는다.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추석에는 언택트 문화가 우리의 명절 관습마저 바꿀 것 같다. 코로나 유행을 걱정한 정부는 “우리 조상도 역병이 돌 때는 제사를 모시지 않았다”며 이번 명절에는 가급적 이동을 말라고 조른다. 성묘는 온라인으로 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마음의 정성으로 대신하란다.한국교통연구원은 이번 추석에는 평년보다 30% 정도의 교통량 감소를 예측했다. 그만큼 고향을 찾는 자녀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부모인들 역병이 창궐한다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에 오길 바라지는 않는다.하지만 코로나19 창궐로 만들어진 언택트 문화가 가족의 만남을 막고 명절 분위기를 삭막하게 하니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악마 같은 코로나가 빨리 지구를 떠나 내년 명절에는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22

수능 첫 40만명대… 존폐 기로에 선 지역대학

12월 3일 시행되는 2021학년도 대학 수능시험의 지원자가 49만3천433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54만8천734명보다 무려 5만5천301명(10.1%)이 감소했다. 수능 응시자가 역대 처음으로 40만명대를 기록했다.2021학년도 대학 모집정원(4년제와 전문대 포함) 55만5천여명과 단순비교해도 응시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수능시험 결시율 11.7%를 올해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면 전국 대학 모집정원보다 무려 6만명 이상이 부족하다는 계산이다.대구경북지역 대학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학생의 서울소재 대학 응시로 지역대학의 사정은 더 나쁘다. 모집학생 수보다 응시자가 더 적어 인기학과 등을 제외하면 상당수 대학이 정원미달 사태를 맞을 전망이다.지역의 입시학원 조사에 따르면 2021학년도 지역 4년제 대학 예상 경쟁률은 0.81대 1로 지난해 0.91대 1보다 더 낮다. 1대 1 상황도 안 된다. 전문대학 포함 지역 전체 대학의 예상 경쟁률이 0.68대 1 정도로 예측된다고 하니 지역대학의 장래가 암울하다.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모집이 절대 부족할 것이란 예측은 그동안 해왔지만 예상이 이제는 현실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학령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응할 방법도 별로 없다. 지역대학은 이제부터 대학의 존폐를 걱정해야하는 사정에 다다른 것이다.지역대학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중앙 집중화 현상 때문에 수도권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불리하다. 학생모집을 위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수도권 대학과는 경쟁이 안 된다. 자연히 교육부의 대학평가도 나쁠 수밖에 없다. 이 상태로 가면 지방소재 대학만 고스란히 없어질 판이다.지역에 소재한 대학은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대학 본래 목적과 함께 지역대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지역사회의 지식집단으로서 지역 발전에 공헌함은 물론이며 경제적으로도 지역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지역대학의 정원미달 사태가 가져올 대학의 운영난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대학 스스로가 특화하거나 취업률을 높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겠지만 지역사회도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지역대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202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