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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테마거리에서

등록일 2021-07-28 20:14 게재일 2021-07-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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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순수필가
양태순 수필가

입구에 녹색으로 된 숫자 ‘1’위에 힘차게 달리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삶이 일등이라는 의미인지 조깅하는 사람을 연상시킨다(원제 ‘세계로 미래로’). 왼쪽에는 방문자를 흐뭇한 미소로 반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승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가 족두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오른쪽에는 송도 송림테마거리 지도와 주요시설, 이용수칙이 있다.

거리 탐색을 나선 탐정마냥 꼼꼼히 살핀다. 거리에는 조형물이 여럿이다. 대부분은 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여름’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가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었고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 본 곳에는 달팽이가 있다. 손바닥에 올려둔 달팽이의 더듬이가 생생하다. 관찰하고 있는지 심심해서 같이 놀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 그 밖에 날아오르는 풍선, 사랑 등의 조형물이 있어 동심을 자극하고 굳어가는 어른들의 감성에 부드러운 터치를 가하기도 한다. 또한 시원한 물이 개울을 굽이지며 흐르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분수와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살린 것은 야경을 고려한 배치가 아닐까 싶다.

숲으로 눈을 돌린다. 싱그럽게 품어주는 초록의 잎들이 내 눈을 맑게 한다. 나무 아래로 산책로가 있고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가 많다. 천천히 걷는 길 주위에 공중걷기, 등·허리 지압운동, 양팔줄당기기 등의 운동기구들이 많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도 숲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수다 삼매경이 한창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강의 척도로 허리인치 기준을 적어놓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거리에 치매에 관한 표지판이 많아 새로웠다. 표지판에 3권 즐길 것이라 해놓고 일주일에 3번 이상 걷기, 생선과 채소 골고루 먹기, 부지런히 읽고 쓰기라 적혀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반가운 발견이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니 일석이조다. 또 치매예방운동법, 치매예방다짐길, 추억회상길이 있다.

나는 치매예방다짐길을 신발 벗고 천천히 걸었다. 삐죽한 돌이 빼곡하게 있는 길이 있고 징검돌 모양, 철길 모양으로 된 곳도 있어 발바닥 자극이 되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발바닥이 화끈거릴 즈음 넓적한 돌이 기다리고 조금 더 걸으면 꽃인 듯 공룡 발자국 같은 돌이 예쁘게 수놓아져 있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새소리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높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낮게 깔려 울리는 소리는 편안함을 준다.

벽화마을에 들어섰다. 늘 먼데 있는 벽화거리를 찾아다닌 내가 부끄럽다. 어느 곳 벽화나 공통점은 그 시절의 건물과 생활모습을 담아낸다. 이곳 벽화도 웃음이 많고 수박 한 쪽을 나누어 먹던 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수수한 이웃들을 표현했다. 바다가 곁에 있으니 고래와 모래사장, 수영하는 모습이 태반이다.

그 골목길에서 내 눈을 반짝이게 하는 것을 만났다. 연도 별 송도 해수욕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걸어둔 것이다. 1975년 송도해수욕장 사진 앞에서 내 모습을 찾느라 눈이 빠질 뻔 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처음 구경하는 해수욕장에 마냥 신이 났던 그 날이 생각났다.

초등학생 때였다. 언니와 함께 찾은 해수욕장은 말문이 막혔다. 모래사장에는 사람들이 복닥거렸고 한눈을 팔면 길을 잃고 사람을 잃었다. 검은색 튜브를 빌려 수영복 대신 러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신나게 물놀이 하다 나올 때면 비 맞은 생쥐꼴이었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물속을 들락거렸다. 솔숲 그늘을 놓쳐서 볕 아래서 흰밥과 수박을 먹었지만 세상 행복한 날이었다.

송림테마거리에서 어린 나를 만났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분수 앞에서 팔짝팔짝 뛰고 해수욕장에서 나만의 즐거움에 빠졌던 그 때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그 모습을 되새기는 시간은 아련을 넘어 아릿하다. 순간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즐겼던 날들의 소중한 기억들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창고 한 귀퉁이에서 낡아가는 일기장의 내용을 되살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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