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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언어, 남편의 언어

등록일 2021-07-25 20:02 게재일 2021-07-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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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부부는 일심동체일까?’라는 글에서 나는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닌 ‘이심이체’인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부부가 정말로 ‘일심동체’가 되려면, 부부가 ‘이심이체’라는 현실을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부모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성격 또한 다르다. 남녀 차이로 그 특징이 달라지기도 한다. 물론 남녀 차이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많다.

오늘은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남녀 차이로 인한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수용해 더 나은 부부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므로, 남녀 차이 논란에 대한 이견을 뒤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하기 바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라는 말은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아내가 남편을 알고 남편이 아내를 안다면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부부관계가 위태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아내와 남편이 서로 상대방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부싸움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는 하루에 평균 6∼8천 단어의 말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8천∼1만개의 제스처, 표정, 머리 끄덕임 이외에 추가로 2∼3천개의 소리를 사용한다. 이렇게 볼 때 여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하루 평균 2만개 이상의 의사소통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남자는 하루 2∼4천개의 단어, 2∼3천개의 몸짓언어, 1∼2천개의 소리를 사용한다. 하루 평균 약 7천개의 의사소통 단어를 사용하기에 여자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어 사용의 차이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남편과 아내가 가정에서 만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남편은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이미 7천개의 의사소통 단어를 모두 소진하였으므로 더 이상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피곤한 남편은 1백년 동안 잠자는 숲속의 왕자가 되고 싶지만, 아내는 다르다. 아내가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이미 7천개의 의사소통 단어를 소진했다 하더라도 아직 1만3천개의 의사소통 단어를 소진해야 한다.

특히 아내가 전업 주부이고, 말을 충분히 할 환경이 아니라면, 소진해야 할 2만개에 가까운 의사소통 단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내도 지쳐 있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아내의 피곤이 남편보다 그 이상일 수 있다. 핵심은 남편은 침묵으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고, 아내는 남편과 달리 말을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자 한다는 것이다.

침묵을 원하는 남편은 아내의 수다가 귀찮고 아내는 말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이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침묵을 감당하지 못하고, 남편은 아내의 수다를 감당하지 못한다. 남편은 침묵을 금이라 생각하고, 아내는 생각나는 대로 길게 주절주절 말하는 것이 다정하고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침묵을 무관심이라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의 긴 말이 비효율적인 시간낭비라 생각한다.

또 아내가 걱정을 말한다면, 남편은 아내가 자신에게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초조해하고 자기 생각에 몰두한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문제 해결 방법을 일러주고 싶은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래도 아내에게 해결책을 찾아 주기 위해 아내의 말을 다 듣지 못하고 사실과 정보를 빠르게 알기 위해 급기야 아내의 말을 끊고 질문하고, 심지어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게 최악이다.

남편이 사실 확인을 위해 또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말을 끊는 것은 아내 입장에서는 공감해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아내를 무시하고 공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도 알아야 한다. 남편이 말을 끊는 것은 아내에게 가능한 한 빨리 해결책을 제시해주려는 남편의 어여쁜 마음이다.

남편은 아내가 말을 할 때, 끼어들어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경청하거나 공감하면 된다. 공감이 어려우면, 그냥 들어라. 언젠가는 끝이 난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면서 ‘으흠’ 하며 장단을 맞추면 더 좋다.

남편은 아내가 해결책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내가 말하는 것을 그냥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아내가 핵심만 짧게 말하지 않는 것은 남편이 이해하기 쉽도록 너무나 전후맥락을 자세하게 말해주려는 어여쁜 마음이다.

아내의 말이 길어지는 것은 그만큼 남편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아내의 사랑을 끊지 마라. 원수 된다.

그래도 눈치 없는 남편을 위해, 구체적인 사례와 지침을 드리려 한다. 아내가 “여보, 나 주름이 늘었어”라고 말할 때, 남편은 “피부과에 가라”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더 젊어 보이는데”라고 하면 된다. 아내가 여보 나 4㎏ 늘었어”라고 말할 때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지 말고, 헬스장에 가라”가 아니라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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