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극한 대결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간 나라의 장래가 위태로울 것이다. 극한 대결 정치에서 여야 어느 쪽도 양보할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어느 쪽이나 양보는 곧 굴욕이고 패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상생의 정치, 타협의 정치를 외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상대를 부정하는 대결의 정치를 지속하고 있다.
여야는 정치적 현안이나 정책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해법까지 투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정작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소외되고 정치는 여야의 정쟁 수단화된 지 오래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도 이제 3년이 채 남지 않았다. 집권 여당은 아직도 자신들의 실정을 지난 정부와 야당 탓으로 돌리고 있다. 야당은 압도적 의석을 토대로 대통령과 정부를 탄핵하려고 한다. 이런 극한 대결의 정치는 어느 한 쪽이 완전히 항복하거나 소멸되어야 끝날 수 있다. 극한 대결 정치의 책임은 여야에 반반씩 있다. 그 해법이 보이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시부터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치 않았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빌미로 야당을 범죄 집단 시 하였다. 지난 총선에서도 여당은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이·조 심판’을 전면에 걸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집권여당은 108:192로 패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집권여당은 아직도 반성은커녕 야당의 폭주와 횡포를 비난하고 있다.
총선 참패 후 간만에 여야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재명 대표의 선전포고식 발언과 윤 대통령의 특유의 주장과 설득이 독차지했다. 이후 여야의 협상은 단절되고 여야의 격돌정치는 더욱 강화되었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벌써 16회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거부한 인사를 대부분 장관으로 임명해 버렸다. 총선 후 여당 당선자 축하연에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테니 소신껏 일하라고 격려하였다. 이런 정황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타협의 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야당 역시 총선의 압승을 계기로 정부 압박 정치를 강행하고 있다. 야당은 정부 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넘는 공세적 정치를 펼치고 있다. 거야는 여야 간 조율도 되지 않은 ‘25만원 지원법’ 등 포퓰리즘적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고 있다. 여당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를 저지하려 하지만 역부족한 현실이다. 야당의 수적 우세는 인사 청문회 등 각종 위원회에서 엄청난 증인을 소환하고 증인에 대한 망신주기 등 불합리한 독주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야당의 강공 드라이브는 법률안의 일방적 통과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지나친 거부권 행사가 궁극적으로 대통령 탄핵의 명분을 쌓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야당의 집권 여당에 대한 강공만이 능사일까.
야당의 지나친 의회 독단과 독주가 야당 지지율 저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아직도 30%대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야당 선호도가 여당보다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한 대결의 정치는 결국 비생산적 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가장 손해를 보는 측은 여당도 야당도 아닌 주권자인 국민들이다. 극한 대결의 정치는 결국 팬덤 정치에 기반하고 있다. 팬덤 정치는 적대적 프레임 정치를 수단으로 활용한다. 여야는 친윤과 친명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팬덤 정치로 나갈 수밖에 없다. 야당은 선거전야의 수박논쟁에서 열혈 친명인 개딸들이 장악하고, 여당에서는 윤핵관에 이은 친윤들이 당권을 수직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해서라도 우세한 팬덤에 편입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소선거구제의 승자 독식의 제로섬게임은 여야의 프레임 정치를 더욱 부추긴다. 정치권의 대결이 언론, 시민 단체, 여론의 편 가르기로 이어지고 있다. 대결과 팬덤, 진영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결국 극한 대결 정치는 당내 민주주의를 가로 막을 뿐 아니라 강성 지지층만으로 생존하는 악순환 구도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극한 대결의 정치는 하루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현재로서는 빠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오기의 정치·격노의 정치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여전히 갈 데까지 간다면 국민들이 심판한다는 오기의 정치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여야 공히 상대를 비이성적인 악마 집단화하는 프레임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뫼비우스의 고리를 어디에서 먼저 풀 것인가. ‘미워도 다시 한 번’유행가처럼 여야 간의 진정한 대화부터 시도해야 한다. 집권 여당과 대통령부터 야당과의 진정한 대화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은 정파의 책임자가 아닌 국정의 총체적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실정의 책임을 야당에게 돌리는 것은 하수의 정치이며 구태의 정치이다.
대통령이 대선 공약인 ‘공정과 상식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만이 능사가 아니며 야당 역시 입법 독주만이 문제의 해법이 아니다. 김건희 여사를 포함한 권력주변의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 가야 한다. 여기에는 야당의 협력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