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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 근본 해결책도 뒤따라야

경주 월성원자력발전 사용 후 핵연료 임시저장 시설인 맥스터의 추가 건설에 대해 지역주민의 81.4%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대구경북 전력의 22%를 담당하는 월성원전 2∼4호기는 셧다운 위기를 면하고 가동이 이어질 수 있게 됐다.그러나 이번 결정과정을 보면 핵연료 처리문제에 대한 정부의 근원적 해결책이 없으면 또다시 이런 문제가 재발될 수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갖게 한다. 현재 한울원전은 2030년, 고리원전은 2031년, 한빛원전은 2029년에 핵연료 저장시설이 각각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때 가서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원전가동의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용 후 핵연료 처리도 부지매입과 영구시설 건립 등을 감안하면 3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칫하면 원전가동을 중단해야 할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국내 전력수급의 문제는 물론이요,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문제다.이번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에 대한 주민의 찬성 의견은 그런 점에서 매우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특히 3주간의 숙의 학습기간을 거치면서 원전 안전에 대한 주민의 이해와 신뢰가 커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민들은 1차 조사에서 58.6%, 2차 조사에서 80%의 찬성을 보였다가 이번에는 81.4%의 높은 찬성률을 보인 것이다.동시에 이번 주민의견 조사 결과가 소모적인 탈원전 시비에 경종을 주었다는 것도 우리는 하나의 교훈으로 보아야 한다. 정부의 조급한 탈원전 정책의 속도를 조정하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자연보호라는 탈원전의 근본 취지는 모르는 바가 아니나 원전의 안전성을 도외시하고 국가적 실익을 놓치는 무모한 정책은 과감하게 수정도 해야한다는 것이다.문재인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처리를 위해 박근혜 정부 시절 내놓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을 백지화 했다. 그러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월성원전처럼 임시방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탈원전을 둘러싼 주민 갈등과 행정력 낭비 등 소모적인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월성원전의 맥스터 건설에 대한 주민 의견을 계기로 원전에 대한 정부 정책의 방향설정이 바로 잡혔으면 한다. 원전폐기물 처리장없이 원전해체 산업의 육성도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2020-07-26

국가의 침묵

‘침묵의 세계’ 저자인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은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는 공백상태가 아니며 그 이상의 의미가 존재 한다”고 했다. 침묵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 현상이자 존재의 실체라는 설명이다. 그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 침묵이라는 제3자가 있으며 그 침묵은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상대에게 전한다고 말했다.말하지 않는 침묵도 언어이며 언어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로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본업이 의사였던 작가는 침묵의 가치와 침묵의 존재론적 성격 등을 나름의 이론으로 규명했지만 침묵의 중요성은 이미 고전을 통해 충분히 인식돼 왔다.서양의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이 대표적이다. 동양에서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다. 세 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라는 것이다. 말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지만 침묵만큼 말의 절제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불교에서는 묵언수행이란 것이 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참선을 하는 것으로 말을 함으로써 짓는 죄업을 스스로 정화하고자 하는 수행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했다. 착한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복덕을 짓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말을 절제하며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다.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말할 기회가 늘어나고 말을 잘해야 출세 길도 열린다. 침묵을 덕목으로 알고 침묵만 열심히 하다가는 되레 손해를 볼지 모르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독설가가 설치고 유언비어나 감언이설이 판을 친다.박원순 성추행 의혹에 대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국가는 정책에 불리한 경우에도 대답을 해야 한다. 침묵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가나 대통령의 침묵은 국민의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26

장관이 버럭대고 째려보고…‘주객전도’의 국회

국회 대정부질문이 야릇하게 돌아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민을 대표해서 질의에 나선 국회의원을 향해 호통을 치고 째려본다. 그런가 하면 여당의 초선 의원은 대정부질문은 안 하고 야당 성토에만 열중하다가 같은 당 부의장에게 주의를 받기도 한다. ‘검찰 장악’의 음모에만 충실한 법무장관이 대의기관마저 무시하는 행태는 이 나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일탈이 눈 뜨고 못 볼 지경에 이르렀다. 장관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당 대표 시절 권력자 행세에 중독돼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대정부질문에 응하는 모습이 오만하기 짝이 없다. 질문을 받아치고 거꾸로 묻다가 질문자인 통합당 곽상도 의원이 “들어가세요”라고 해도 퇴장하지 않고 계속 쏘아보는 장면은 그가 국회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곽 의원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추 장관에게 ‘내 목표는 강남에 빌딩 사는 것’이라고 말한 정경심 교수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추 장관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 보도 맹신주의자냐”고 쏘아붙였다. 이에 곽 의원이 “그럼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서 하는 말도 다 의심해야 하느냐”고 하자 추 장관은 “저한테 시비 걸려고 질문하는 거냐”고 되받아쳤다.미래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우리는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법무부 장관을 봤다”며 “정의와 공정을 내세웠던 대통령은 그 정의와 공정을 무너뜨리는 장관에 결단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역시 페이스북에서 추 장관에 대해 “과거 수사지휘권을 없애자고 주장했던 분”이라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사지휘권을 남용했다”며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했다.국회는 지금 다수는 소수를 배려하고, 소수는 터무니없는 투쟁을 삼가는 선진 민주주의를 고대하는 국민의 소망에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그 연장 선상에서 국민의 대표를 사뭇 하찮게 여기는 듣도 보도 못한 법무부 장관의 횡포는 용납돼서는 안 된다. 아무리 권력이 차고 넘쳐도 이건 아니다.

2020-07-26

그대, 안녕하신가

최미경동화작가지금 이 순간에도 이젤 앞에서 붓을 들고 있는 그대와 지금 이 순간에도 노트북 앞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그대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본을 쥐고 여러 톤의 감정으로 대사를 뱉어내고 있을 그대여.재료비를 벌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배달을 하고 있는 그대와 공연에 올릴 안무를 구상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손님이 고른 메뉴를 적고 있을 그대와 악기를 사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전전하고 있을 그대여.그대, 젊은 예술가여. 안녕하신가.그림 그만둘까 합니다. 애들 분유 값도 못 버는데 가장은 무슨 가장인가요…. 무대에 서는 일은 나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아직 어머니 용돈 한번 제대로 드린 적 없어요. 이런 제가 무대에서 관객에게 박수받을 자격이 있나요…. 한 문장에 얼마씩 쳐주면 글 쓰겠어요. 그런데 쓰면 뭐하나요. 아무리 열심히 써 대도 발표할 지면 하나 마땅한 곳이 없는데요…. 좋은 작품요? 아니요, 잘 팔리는 작품이 필요해요. 내 작업요? 내 예술관이요? 아니요, 잘 팔아주는 루트가 필요해요. 그래야 작품 팔아서 재료비라도 벌죠….지금 당장 그만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이 불운한 시대를 버티고 있는 그대, 젊은 예술가여.그대의 작업과 삶을 잇는 전선(電線)은 튼튼한가, 그대 삶과 작업 전선(前線)에 전력을 밀어 넣어줄 동력은 충분한가.이렇게 안부를 전하는 나는, 안녕한가. 사는 일에 급급해 쓰는 일은 뒤로 미룬다는 핑계를 아직 입에 달고 사는가. 좀 더 나이 들면 좀 더 안정되면 그때 쓸 수 있겠지, 라는 믿지 못할 약속에 아직 기대고 있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순간순간 나를 설득하며 아직 견디는가. 그래서 정작 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그대, 나여. 나, 그대여.이 전선(戰線)에서 오늘 우리가 안녕하길 바라는 건 가혹한 희망인가, 정직한 절망인가. 점점 누추해지는 그대 인생의 봇짐을 단지 그대 한 사람의 잘못으로 내칠 것인가. 아니면 그대와 나, 우리의 봇짐을 모두 풀어내 하나의 목소리를 낼 것인가.그대여, 그대 예술가여!하나의 목소리로 날을 세우자. 한 사람의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수 있지만 열 명, 백 명, 천 명의 목소리는 허공을 뚫는 피뢰침이 될 수 있다. 지역의 예술 환경에 대해 지역작가로서 받는 예술복지에 대해 작품을 판매하는 지역 판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자.숨지 말고 나와서 귀를 열고 눈을 뜨자. 곪은 것은 터뜨리고 해진 것은 기우고 싸워야 할 때는 맞서자. 그렇게 그대의 빵과 그대의 영혼이 예술 전선(電線)으로 튼튼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그대의 작품활동이 그대 가족과 같이 나눌 빵이 될 수 있도록. 그대 전선(前線)에서 예술은 하나의 삶이 되도록.그대 젊은 예술가여. 우리 이제 안녕, 하자. 우리가 이제 안녕, 해야 할 때이다.

2020-07-26

시간 살리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죽일까요?, 살릴까요?” 청부살인업자의 말이 아니다. 머리손질을 하면서 부풀릴지, 눌러 놓을지 손님에게 물어보는 미용사들이 잘 쓰는 말이다. 다른 장소에서 이런 대화를 엿듣게 된다면 ‘혹시 살인을….’하고 한 번 더 대화자들을 살펴봤을 것이다.오랫동안 직업인으로서 죽이는 사람들을 상대했던 것 같다. 남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범에서부터 남의 재물을 죽이는 강도나 사기꾼은 죽이는 일을 하는 자들이다.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죽이는 일보다는 살리는 일이 많은 것이 좋다. 그래서 경제 살리기, 4대강 살리기 같은 말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담게 되는 것이다. 킬링타임이라고 한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거나 짬이 나는 시간을 때우는 것을 말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시간 죽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 있다. 엘리베이터 탑승시간이다. 거주하는 아파트, 회사, 식당 등 어디를 가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무료하고 어색한 시간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간을 죽이는 일이 만만치 않다.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그 시간을 잘 죽이지 못한다. 벽에 붙은 거울을 보거나 광고물에 눈길을 주거나 층계표시 등을 멀뚱히 바라보게 된다.낯선 장소의 엘리베이터는 그렇다 쳐도 언제부턴가 아파트 같은 동 엘리베이터 시간 죽이기도 마찬가지가 된 것 같다. 이웃집 밥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내는 정답던 우리 이웃들의 모습들이 아파트 생활에 뺏긴 지 오래다. 같은 동 통로에 거주하는 사람조차도 서로 알고 지내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세상이 팍팍할수록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아쉽고 안타깝다. 얼마 전 이사를 하고 이웃집에 인사를 해야겠다고 떡을 좀 장만하려는데 주변에서 말렸다. 요즘 그런 일은 이웃이 싫어할 수 있다고 했다. 이웃에 일종의 신고식 같은 미풍양속인데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같은 통로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게 된다. 시간 죽이기가 시작된다. 여성 동승자라도 탑승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혹시나 제3자가 없는 좁은 공간에서 예기치 않은 오해를 살까싶어 벽면으로 몸을 돌리고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꼭 긴 채 고슴도치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게 된다. 물끄러미 천장을 보거나 감시하는 폐쇄회로를 힐끔힐끔 보다가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면 동승자의 레이저 눈빛이 뒤통수를 치는 것 같다. 몇 년을 살아도 누구인지 모르고 살게 되는 경우도 많다.며칠 전 엘리베이터 안 시간 살리는 법을 배우게 됐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녀석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안녕하세요?”라고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했다. “어으응, 안녕” 누구인지를 몰라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았다. 녀석의 선(先)인사와 몇 호에 사느냐, 몇 학년이냐 등 등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목적 층에 도착했다. 평소 지루하게 느껴졌던 엘리베이터 안 시간 죽이기는 없었다. 죽어가는 이웃 간 정 나누기도 간단한 인사하나로 해결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환한 웃음과 함께 다정한 인사로 엘리베이터 안 시간 살리기를 했으면 좋겠다. “좋은 아침입니다!”

2020-07-26

때묻지 않은 청정영양의 명품 숲, 영양 자작나무 숲!!

오도창 영양군수자작나무는 새하얀 몸체에 녹색의 푸른 잎이 살랑거리는 이국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는 나무다. 나무를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탄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나무의 몸체가 희고 얇게 잘 벗겨져서 예전에 종이 대용으로 많이 사용되어져 왔고 기름기가 많아서 불도 잘 붙는 나무여서 정말 다재다능한 나무라 할 수 있다.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깊은 산자락에는 온통 새하얀 자작나무들로 빼곡하다. 내륙지방에서 보기 드문 축구장 40여 개의 면적보다 넓은 규모의 자작나무 숲 단지다. 영양 자작나무 숲은 지난 1993년에 약 30ha의 면적으로 조성되어 30년 가까이 무럭무럭 자라온 결과 지난달 산림청으로부터 국유림 명품 숲으로 선정되는 성과도 있었다.영양의 자작나무는 인제 자작나무 숲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줄기 굵기 또한 60cm가 넘으며 어느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고 청정공간에서 자란 티가 많이 난다. 자작나무 숲은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없어 자연 고스란히 지켜져 오고 있다. 그야말로 30여년 동안 사람의 손길을 벗어나 오롯이 자연 그대로 자라난 자작나무들은 뽀얀 속살 같은 하얀 껍질을 고스란히 간직해 눈이 시릴 정도다.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지친 심신의 피로를 그대로 풀어 낼만하다.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속칭 아는 사람만 안다는 베일에 싸인 곳이다. 최근 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이 자작나무 숲은 우리나라 최고의 산림 휴양지로 가꿔질 계획인데 벌써부터 웰니스 산림관광지, 언택트 여행지 등 다양한 수식어기 붙기 시작했다. 생태경관이 매우 우수해 올해 남부지방산림청 영덕국유림관리소에서 지역특화사업으로 자작나무 숲길 2km 신규 조성을 시작으로 점차 주변 숲을 정비해 기존 검마산과 백암산 등산로, 신선계곡 탐방로 등을 연계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 영양 가볼 만한 곳뿐만 아니라 경북에서도 손꼽히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우리 군만의 차별화된 고유자원이다. 우리 군 고유의 관광자원으로 개발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산림청과 경상북도와 긴밀히 협의를 통해 지난해 11월에 ‘영양 자작나무 숲 권역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영양 자작나무 숲 권역 활성화’를 위한 기관 간 역할과 임무를 분담해서 남부지방산림청은 영양 자작나무 숲을 산림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숲길 조성하고 경북도는 인근관광지 연계방안과 산림관광 활성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영양군은 진입도로와 주차장 등 편의시설 조성과 접근성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산림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국유림을 산림관광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지역주민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등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 간 소통체계를 강화해 상생협력하기 위한 사업이다.영양 자작나무 숲은 ‘영양 자작나무 숲 힐링허브 조성사업’이라는 타이틀로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2020년 지역수요 맞춤지원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이 공모 사업은 최대 20억원의 국비를 포함해 사업비 28억원을 확보해 자작나무 숲 힐링센터, 자작나무 숲 체험원, 에코로드 전기차 운영기반 조성 등이 포함된다. 아울러 우리군은 안내동 신축 예산 4억원, 주차장 부지매입 9억원 확보했으며 현재 종합개발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죽파리 마을회관에서 약4.7km, 도보로 1시간, 차량으로 15분이 소요된다. 숲 입구까지는 임도로 아직 정비가 되지않아 향후 임도 확ㆍ포장, 주차장 설치 등 숲길 조성 사업을 완료해 숲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할 계획이다.이밖에도 주변 관광자원인 국제밤하늘보호공원, 본신리 금강송 생태 경영림과 연계해 국내 최대 산림휴양자원으로 키워 연간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 지역관광 명소로 만들 생각이다.영양 자작나무 숲은 지역을 대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넘어서 대한미국을 대표하는 산림휴양 관광 거점으로 조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2020-07-26

고디국

비님이 오신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눈도 비도 ‘오시네’하며 대접했다. 내 고향에서는 여름 비 오는 날에는 골부리를 주우러 갔다. 맑은 날에는 해거름에 나오기 시작하는 터라 밤에 심지에 불을 켜서 잡아야 하지만 하늘이 흐린 오늘 같은 날엔 낮부터 골부리도 마실을 나온다. 친구들과 비를 맞으며 물이 무릎까지 오는 마을 앞 냇가로 가서 돌을 들춰가며 잡았더랬다.경상도라도 안동에서는 골부리라 하고 포항 가까운 지역에서는 고디라 한다. 충청도는 올갱이, 강원도에서는 달팽이라 부르는 지역도 있고 전라도는 대사리, 표준말은 다슬기라 한다. 부르는 이름이 많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다.여름에 들어서면서 포항 오천장이 서는 날이면 늘 고디국을 사러 갔다. 특별히 맛있게 끓여서 파는 곳이 있어서 꼭 들렀다. 들깨와 푸성귀를 넣고 끓인다며 별다른 레시피가 없다는 사장님의 말이지만 우리 가족 모두 그 집 고디국의 팬이다.충청도가 고향인 친구가 자랑삼아 올갱이국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줬다. 5월에 고추를 심고나면 중순부터 모내기를 하고나면 소농들은 고추 따기 전까지 크게 할 일이 없어져서 6∼7월은 올갱이를 줍는 시기였단다. 냇가 중에도 햇빛이 뜨듯이 잘 받는 그런 곳에 씨알이 굵은 올갱이가 산다. 물은 너무 깊지도 않아 천렵하기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 곳의 호박돌(아이들도 들춰 볼만한 수박보다 작은 크기의 돌)에 특히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서 그런 돌을 넘기면 올갱이들이 많이 붙어 있다. 손으로 건들기만 해도 떨어져서 잡기 쉽다. 큰 양파망과 세숫대야 하나씩 들고 간다. 물에 엎드려 양파망에 주워 담은 올갱이를 집까지 살려오려면 대야에 담아 와야 하기 때문이다.온가족이 나들이하듯 밥도 싸서 갔단다. 도시락이래야 맨밥을 주먹만 하게 뭉치고 열무김치와 고추장만 싸서 갔다. 줍다 지치면 나와서 새참 먹다 멱도 감으며 추스르다 양파망 가득 올갱이가 차면 돌아왔단다. 해감한 올갱이는 낡은 옷가지를 함께 넣어 바락바락 문질러서 윤이 나게 씻었다. 채반에 물기를 빼면 안테나 달린 얼굴을 빠끔히 내민다. 아는 맛은 항상 미안함을 누르고 솥에 넣고 삶아졌다.온 식구가 둘러앉아 바느질하던 바늘을 소독해서 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눈이 침침해 안 보인다고 물러앉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졸음과 싸우다 쓰러졌는데도 아침이면 엄마가 만든 올갱이국이 상위에 올랐다. 별 양념없이 된장만 풀어서 집에 있는 푸성귀로 슬렁슬렁 끓인 국이지만 식구들에게는 여름내 보양식이었고, 아버지에게는 특별히 시원한 해장국이었다. 냉장고가 없으니 세끼정도 먹을만치만 끓였고 또 며칠 뒤 나가서 잡아오는 식으로 여름내 올갱이국을 먹었다고 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다슬기에 대하여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는 식품이라 하였다. 초록을 띠는 엽록소에는 식물 10배의 클로로필이 있다. 간에 좋고 눈을 밝게 한다니 만병통치이다.김순희 수필가포항에서는 고디를 삶은 물에다가 들깨국물을 넣고 특히 정구지(부추)를 많이 넣는다. 음력 정월부터 구월까지 김치를 담서 우리네 밥상을 채워준다 하는 정구지와 밭에서 나는 배추시래기·양파줄기·파 등을 더 넣고 끓이다가 고디 살을 넣으면 국이 완성된다. 여름철에 보리밥과 함께 겻들이면 더욱 별미이다.먼저 내온 버섯무침을 맛보며/ 올갱이 잘 줍던 평복이 누나 영숙이 누나,/ 푸근하던 웃음과 눈매 떠오르고, 올갱이 줍던 그 희고 통통하던 종아리들 생각나고,/ 저녁상 물린 뒤 삶은 올갱이 옷핀으로 빼먹던 생각 나고/ 이빨로 올갱이 꽁지 뚝 땐 다음 단번에 쪽 빨아 먹던 형님들 생각나고/ 나도 따라 해보다가 이 아파 쩔쩔매던 생각도 나다가/ ‘영동에서’ 일부(김사인)영양군 청기면에서는 골부리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영양으로 달려가 종아리 걷고 골부리 잡는 체험을 해볼 작정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도 불러서 말이다.

2020-07-26

일본의 고투(Go To) 캠페인을 보면서

최근 일본이 들썩이고 있다.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8월 상순경부터 실시하려던 ‘~하러 가기(Go To) 캠페인(이하 ‘캠페인’)’을 오히려 지난 22일부터 앞당겨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번 캠페인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회복 대책의 일환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정됐던 도쿄올림픽의 연기와 국내 감염자 증가로 큰 타격을 입은 여행, 운수, 숙박 및 이벤트 관련 업종에 대한 수요 환기가 주요 목적이다.이 캠페인은 크게 ‘여행 가기(go to travel)’, ‘먹으러 가기(go to eat)’, ‘(행사나 축제 등) 이벤트 가기(go to event)’의 세 사업으로 구성된다.처음에는 이 세 사업을 동시 추진하려 했으나 여러 문제가 얽히고 여행업계의 요청도 있어 ‘여행가기’부터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 캠페인을 통해 일본 국내 유동인구의 흐름을 만들어 관광, 운수업, 음식업, 이벤트업, 엔터테인먼트업 등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피폐해진 각 지역의 경제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의도다.8월 상순께부터 시행 예정이던 이 캠페인을 앞당긴 것도 올림픽 연기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 정부는 올해만 한시적으로 도쿄올림픽 개막에 맞춰 7월 23일부터 이어지는 4일 연휴를 만들었다. 7월 셋째 주 월요일(7월 20일)인 ‘바다의 날’을 올해만 7월 23일로 옮긴 다음 1964년 도쿄올림픽 개막일(10월 10일)을 기념해 제정된 ‘체육의 날’(10월 둘째 주 월요일)도 올해 올림픽 개막일(7월 24일)로 옮기며 ‘스포츠의 날’로 이름까지 바꿨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이 연기되면서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 연휴만 남았다. 7월 24일 개막됐을 도쿄올림픽 개막일을 포함한 연휴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국내 여행수요를 활용할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일본 정부도 이번 캠페인의 여행비보조 대상 지역에서 도쿄를 긴급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를 제외하는 결정 직전까지 1주일 동안 도쿄의 누적 확진자가 무려 1천216명으로 치솟아 전국 각 지자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일본 정부가 이번 캠페인을 위해 마련한 추경예산은 1조6천794억 엔(원화 환산 약 18조7천253억 원 상당)에 달한다. 그중 약 1조1천억 엔은 여행금액의 최대 절반 상당액을 지원하는 ‘여행 가기’에, 나머지 예산은 여행지 음식점 식사비의 20% 상당액을 지원하는 ‘먹으러 가기’와 각종 이벤트 등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비용의 20%를 지원하는 ‘이벤트 가기’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여행가기’를 제외한 두 개 사업은 민간 위탁기관을 공모(또는 공모 예정)하여 시행할 예정이다. 당장은 22일부터 출발하는 국내 여행객에게 여행비용 반액을 지원하는 사업부터 예산이 집행될 예정이다. 1인당 1박 2만 엔을 상한(당일치기 여행은 최대 1만 엔)으로 지원액의 70%는 여행 대금 할인에, 30%는 여행지에서 지역 특산품이나 선물 구입 등 여행 동안에만 사용 가능한 ‘지역공통상품권’으로 충당된다. 지역공통 상품권은 준비 기간이 필요하여 9월 이후에나 지급할 수 있어 그때까지는 여행 대금 할인 지원금 혜택만 받을 수 있다. 이번 캠페인에는 1인당 숙박횟수나 이용횟수에 제한이 없다. 한편 JR동일본도 이러한 분위기에 맞추어 8월 20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모든 방면에서 출발하는 신칸센과 일부 특급열차에 대해 인터넷 예매가격의 50%를 할인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 캠페인에 대한 대국민 설문 조사 결과 이 캠페인에 대한 인지도는 응답자의 29.1%에 불과했다. 그만큼 정부 정책의 결정과 시행이 빨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용을 설명한 후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7.5%에 달했다. 하반기에 여러 번 여행을 생각한다는 응답도 78.6%였으며 최대 절반을 지원받는다면 평소 하지 못했던 고급호텔 등을 이용하는 호화여행을 하고 싶다는 답변도 많았다. 이용횟수가 무제한이고 장기체류형 여행자에게 반액을 지원해준다는 이 캠페인에 대해 일본인들의 국내 여행수요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문제는 지금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고 감염경로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 이번 캠페인이 오히려 감염자의 전국 확산을 부채질할 위험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벌써 도쿄에 거주하는 시민 중에는 일단 도쿄를 벗어난 외곽에서 출발해 도쿄를 거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여행계획을 세워 우회적으로 이 캠페인의 혜택을 보겠다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캠페인 지원대상 지역에서 도쿄가 제외됐다고 도쿄 거주민이 얌전하게 도쿄 내에서만 머물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이에 대해 일본 정부도 무대책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이 캠페인에 참가하려는 숙박사업자에게는 접수 데스크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숙박객 전원에게 체온을 검사토록 하며, 목욕탕이나 식당 등 공용시설에서는 입장 인원과 이용시간을 제한하며, 뷔페식당의 식사는 원칙적으로 개별제공하도록 하는 감염확산 방지대책을 의무화하였다. 당연,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업소는 숙박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22일부터 앞당겨 시행하게 되면서 숙박업소 등에서는 자신들이 지원대상 업소인지를 묻는 고객들에게 확실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혼란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도쿄에서 발착하는 여행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침만으로 각 지역으로 감염이 확대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정부가 너무 낙관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비난하거나, 도쿄시민들 일부는 모두가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는데 도쿄 거주민에게만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여행횟수나 숙박일수에 제한이 없어 선착순형태로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만 캠페인이 유효할 가능성도 크다. 어쩌면 뒤늦게 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이 무리하게 호화로운 장기체류 여행에 나섰다가 예산 부족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일본만이 아니라 각국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사실 정책의 효과는 조기에 증명할 수도 없다. 그러하기에 정책입안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어떠한 정책도 최우선 기준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록 다운’된 것도 결국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절대 명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캠페인은 경제에 좀 더 무게감을 둔 느낌이다. 사실 스페인이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적극적으로 록다운에 나서지 않은 것도 경제를 우선한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경제도 역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였다.경북도나 포항시 등 지자체들도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일본의 실험적인 캠페인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 생명,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절대 명제만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어떠한 것을 ‘~하자’라며 내모는 정책이 아니라 ‘~어떨까?’를 물어보면서 비록 느리더라도 모두가 안전한 정책을 우선하였으면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26

앞으로도 외국으로 떠날 수 있을까?

드디어 트럼프가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 앞에 섰다고 한다. 마스크 쓰는 짓을 왜 하느냐는 듯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확 바뀌어 마스크 쓰는 게 애국이라고 했다나? 매일 코로나 감염자가 6,7만을 헤아리니 끔찍한 미국의 현실이건만 정작 트럼프를 움직인 것은 이 엄청난 감염 급증보다 지지율의 추락과 대통령 선거 패배 위기감일 것이다.일본에서도 코로나 감염자가 하루 6백 명을 넘어서고 있다. 오늘도 그렇고 이렇게 된지 벌써 며칠 되었다. 그동안 아베 마스크에, 재난 지원금 교부 문제에 무능력과 부패의 극치를 보이던 아베가 이번에는 밑도 끝도 없이 ‘GO TO’라나 뭐라나, 국내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절반씩 지원한다고 해서 또 한 번 ‘사고’를 친 모양이다.한편으로 유럽 각국도 비록 잦아드는 추세라고는 해도 결코 안전한 나라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국의 코로나 치사율을 보니 많은 나라들이 10퍼센트를 훨씬 넘는 비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엄청난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인도나 그 옆 나라 파키스탄, 감염자 수 5위인가로 올라선 남아프리카 공화국, 코로나 시대에 종신 대통령제로의 개헌 행사를 치른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각료들 여러 명이 코로나에 감염된 브라질 등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들이 고도의 위험 상태에 노출되어 있다.그러고 보면 지금까지는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해야겠다. 1987년의 민주항쟁,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세계를 향해 활짝 열렸고, 검열이나 사전 교육 없이도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1996,7년의 국가부도와 IMF 체제로의 편입은 개방화, 세계화를 더욱 가속시켰다. 비록 경제는 신자유주의 세계체제 속으로 깊숙이 끌려들어갔으나 한국은 여러 노력과 행운으로 용케 지금의 사회적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올해의 코로나 팬데믹까지 30년 동안 한국인들은 부지런히 외국으로 나갔고 세계여행과 에세이 쓰기가 시대적 코드가 되었다. 세계 어느 곳도 한국인들 없는 곳이 없었고, 일본이나 베트남은 한국인들이 없으면 지역 경제가 잘 안 돌아간다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앞으로도 과연 외국으로, 먼 도시나 사막을 찾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풍토병 같은 것도 아닌 바이러스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그 지역들의 부실한 의료 체제를 믿고, 18세기의 모험 같은 외국행을 감행할 수 있을까? 열린 세계에서 닫힌 세계로 급변하는 세계, 한국인들은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어서 백신이 개발되기를 기다려야 할 형편, 안으로 침잠하는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할 때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07-23

다시 불붙은 행정수도 논란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더불어민주당이 행정수도 완성이 필요하다며 국회와 청와대,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제기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며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의 대대적인 세종시 이전이 필요하다며 행정수도 완성을 제안했다.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것은 천도(遷都)라 해서 예로부터 나라의 중대사로 여겨져왔다. 천도의 이유는 흔히 세가지로 나뉜다. 첫째 외적의 침입, 둘째 국가발전이나 정치적 목적, 셋째 자연재해다. 근현대 들어서는 외적 침략보다는 국가 균형발전을 주된 목적으로 천도를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 노무현 정부 때에 국가 균형발전을 근거로 천도를 시도했으나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사실상 무산됐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내려진 위헌결정 이유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은 불문헌법이며, 수도이전은 헌법개정 사안인데 국회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사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은 나라안에 극심한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구 수도에 오랫동안 터전을 내린 기득권층이나 일반 백성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제기된 여당발 ‘행정수도 완성’주장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호의적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대표는 “부동산 투기대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나온 국면전환용 주장”이라고 비판했지만 미래통합당 4선 중진인 정진석 의원이 행정수도 완성에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을 비롯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여론조사를 통한 과학적 접근을 강조하며 찬성입장을 밝혔다. 여당에서는 대선주자인 이낙연 의원이나 이제명 경기지사, 당대표 선거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 최고위원을 지낸 김두관 의원 등이 전폭적인 지지입장을 밝힌 상태다. 김 원내대표는 23일 행정수도 위헌 논란에 대해 “시대가 변하고 국민적 합의가 달라지면 헌재 판결도 바뀔 수 있다”고 했다. 행정수도 이전논란으로 야기될 후폭풍에 대해서까지 상당부분 논의가 진전된 듯 보인다.정략적 차원에서 출발했다해도 수도권집중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행정수도 완성주장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미래통합당도 여당의 주장이라고 무작정 반대만 할 게 아니다. 수도권의 인구집중을 막고, 지역균형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행정수도 이전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대책 국면전환용이든, 길거리 국장 퇴치용이든 나라발전에 보탬이 된다면 못할 게 없다. 행정수도 완성제안이 찬반논란으로 흐른다면 여당의 국면전환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게 아닌가. 그럴 바에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예단한 여당의 페이스를 흩뜨리기 위해서라도 야당이 행정수도 완성제안을 전격 동의하는 암도진창(暗渡陳倉)의 계를 실행하면 어떨까.

2020-07-23

검찰을 ‘쭉정이’ 만들려는 검경수사권 시행령안

윤곽을 드러낸 청와대의 검경수사권 시행령안 초안의 내용이 경악할 수준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난주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보낸 검찰청법 개정안 시행령 잠정안(초안)에는 검사의 수사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로 대폭 제한하고, 중대 사건의 경우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수사할 수 있도록 하는 끔찍한 내용이 담겼다. 잠정안의 내용에는 ‘검찰 장악’을 끊임없이 획책해온 권부의 흉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잠정안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를 4급 이상 공직자·3천만 원 이상 뇌물 사건·마약 밀수 범죄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범위 밖의 5급 이하 공직자 범죄·3천만 원 미만 뇌물죄·마약 소지죄 등은 경찰이 수사하라는 것이다. 3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면 검찰의 수사 범위는 더 좁아진다. 간단히 말해서 검찰은 졸지에 ‘쭉정이’ 조직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대목은 시행령에 ‘검찰이 수사할 대상’으로 적혀 있지 않은 사건 중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하거나 국민 다수의 피해가 발생하는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려고 할 때는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부분이다. 잠정안은 우선 상위법인 검찰청법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다.지난 2월 개정된 검찰청법 4조(검사의 직무)는 검찰의 수사 범위에 대해 ‘부패 범죄·경제 범죄·공직자 범죄·선거 범죄·방위사업 범죄·대형 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 등에 대해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대상·직급에는 별도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무엇보다도 사실상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를 총지휘하도록 하는 것은 검찰개혁의 핵심인 ‘정치적 중립성’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조치로서 심각하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과 일부 친여 국회의원의 검찰총장 능욕 행패만 보더라도 정치인 국무위원이 검찰수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큰일 날 일이다. 이 야만시대로의 퇴보를 막아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막을 힘이 마땅치 않다. 브레이크 없는 전차가 돼버린 권력의 무한 질주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2020-07-23

포항지진에 뿔난 포항민심…정부는 듣고 있나

포항지진에 대한 정부의 인식에 포항시민들이 단단히 화났다. 최근 포항지진 발생의 직접 원인으로 밝혀진 포항지열발전소 시추기를 매각하는 과정에 보인 정부의 방관적 태도에 불만이 있던 주민들이 시행령 개정안에 주민 의견이 반영되지 않자 이번에는 거리로 뛰쳐나왔다.지난 22일 포항시 흥해읍에서는 주민 1천여 명이 모여 ‘포항촉발지진 특별법시행령 개정 시민의견 반영 촉구시민궐기대회’를 열었다. 참석한 주민들은 “포항지진은 정부의 잘못으로 벌어진 인재인데도 이제와서 포항시민을 난민 취급한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특히 특별법 시행령에 명시된 피해 부분에 대해 배·보상이 아닌 피해 지원금으로 표기해 정부는 책임에서 빠져 버렸다고 비난했다.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매우 소극적이며 늑장 대응을 해왔다.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만 2년의 시간이 걸렸다. 정부는 일찍이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촉발지진으로 결론 났음에도 단 한번도 공식적 사과를 않았다.최근에는 촉발지진의 유일한 증거물인 시추기가 헐값에 처분되는데도 대응 조치도 않아 포항시민의 분노를 샀다. 9월부터 시행될 시행령안의 보상 문구를 배·보상이 아닌 피해 지원금으로 한 것도 포항지진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주민들은 이를 두고 “정부는 책임에서 빠지고 보상은 적당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한다.포항시민들은 촉발지진으로 인해 엄청난 심적 물적 피해를 겪었다. 아직 임시 보호소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있다. 포항지역의 집값이 떨어지고 관광객이 찾지 않아 시중의 경기는 바닥을 헤맸다. 포항시민의 다수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 것이다.지난해 3월 정부조사단은 “포항지진은 진앙지 인근에 있는 지열발전소의 물주입 과정에서 일어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했다. 지열발전소는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곳이다. 엄격히 따져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포항지진에 대해 정부는 좀 더 전향적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정부가 책임을 지고 실질적인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의 항의는 계속될 것이다. 현재 위자료 소송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3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수용 의지만이 문제를 원만히 풀 수 있을 것이다.

2020-07-23

군사력

러시아의 군사전문가는 미국의 군사력을 “중국의 9∼11배”라고 했다. 프랑스의 군사전문가는 “핵을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군사력의 54%를 미국이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세계 모든 나라의 군사력을 합쳐도 미국의 군사력을 당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무기 생산국이자 보유국이다.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B-1B 랜서 폭격기는 김정은이 가장 두려하는 전략 전투기라고 한다.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이 있다. 저고도 초음속 비행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격기이기 때문이다. 사거리 1천km의 공대지 미사일 24발이 탑재 가능하고 제주도 상공에서 북한지역 폭격도 가능한 비행기다.최근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발표한 2020년 기준 국가별 군사력 순위에서 미국은 1위로 평가됐다. 한국은 전체 138개국 가운데 6위다. 군사력 평가는 단순히 병력과 화력만 보는 것은 아니다. 병력과 화력 등 물리적 전투력 외에도 첩보전에 필요한 정보력, 군수지원을 위한 경제력, 외교력 등 전쟁을 수행할 종합적인 국가의 힘을 판단 한 것이다.우리나라는 군사력에 있어 세계의 상위권이다. 군사 강국으로 분류될 수 있다. 반면에 북한은 지난해 18위에서 25위로 추락했다. 북한의 경제사정과 유관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군사력 평가가 핵무기 수와 핵무기 수행력 평가는 빠져 단순히 우리가 북한보다 군사력에서 무조건 앞선다고 말하기는 곤란한 점도 있다.남북 평화 외교를 외쳐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과의 군사력 격차가 벌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안보력을 더 굳건히 해야 할 때다. 국가의 기본적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자산을 보호하는데 있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7-23

우주여행

김병래시조시인지구의 공전속도에다 태양의 공전속도를 합하면 초속 250km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는 음속(音速)의 700배가 넘는다. 총알의 속도가 소총의 경우 초속 0.6~1km 정도라니 지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우주공간을 날아가고 있는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총알보다도 수백 배나 빠른 행성을 타고 광대무변의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팔십 년을 산다고 하면 대략 6천300억km를 여행하는 것인데, 도무지 가늠조차 안 되는 이런 엄청난 사실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사는 것이다.“…. 총알의 수백 배나 쾌속으로 날아서/ 소실점 까마득하게 사라져 가는 지구// 광대무변 우주의 티끌에 불과한 것을/ 무엇이 그리도 대단하고 절박해서/ 폭약을 몸에 두르고 자폭도 서슴지 않는가// 막히고 닫힌 세상 답답하고 울적할 땐/ 밤하늘 별을 보며 우주여행을 떠나자// 음속의 수백 배 빠른 지구호 우주선 타고” - 졸시 ‘우주여행’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당연히 비행기나 여객선을 타보지도 않았고, 유람선을 타고 가까운 섬에도 가본 적이 없다. 글로벌시대에 골동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것은 아마도 시시각각 우주여행을 하기 때문인가 보다. 전에는 외국에 대한 궁금증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상세하게 다 보여주니 그것도 해결이 되었다. 하기야 칸트나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는 여행을 거의 하지 않고도 방대한 철학체계를 완성하였다지 않는가. 일찍이 우주의 이치를 꿰뚫은 노자 역시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리에 이웃나라가 있어도 구태여 갈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 과연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안다’ 할 것이다.얼마 전에 지구본을 하나 구입했다. 큰 수박덩어리 만한 지구 모형 한쪽 귀퉁이에 한반도는 손톱 만하게 붙어있다. 그 동남쪽의 한 지점에 앉아서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며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동시에 멀리 성층권으로 나가서 이 세상을 조감(鳥瞰)하는 전지적시점이 된다. 당장 코를 박고 있는 사회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광대무변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나는 그 속을 쾌속으로 날아가는 우주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우주의 일부이므로 마음을 열면 세상을 직관하고 통찰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너무 거창해서 황당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우주의 티끌인 동시에 우리 모두가 우주적 존재라는 인식은 에고(ego)의 질곡으로부터 마음을 열어주는 단초가 된다. 대자연과 소통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도 그런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평생을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다는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들이 내세우고 지향했던 대의명분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혜안과 통찰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총알보다도 수백 배나 빠른 속도로 미지의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2020-07-23

코로나가 바꾼 풍경들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자가격리를 끝냈다. 해외를 다녀온 후 의무적으로 해야 할 14일간의 자가격리가 드디어 끝나 밖에 나와 오랜만에 햇빛을 볼 수가 있었다. 자가격리 생활이 형무소보다 못하다고들 한다. 운동도 할 수 없고 밖에 나갈 수 없는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4중으로 감시하고 보고 해야 한다. 스마트폰앱 일일 보고, 위치추적, 전화, 불시방문 등 숨쉬기 힘들 정도로 꼼짝을 못했다.출국 시 보았던 인천공항의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차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붐비던 인천공항의 주차장은 거의 차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어 있다. 수 천명의 탑승객이 붐비던 공항출국대도 사람 몇 명이 왔다 갔다 할 정도다. 지난 30여 년 수없이 많은 해외출장을 다녀왔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본다. 대학은 교무회의를 온라인으로 하기 시작했다. 수업도 온라인이나 동영상으로 진행되어 캠퍼스는 텅 비어 있다. 학생이 없는 캠퍼스 모습도 처음 보는 풍경이다.각종 학회나 회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주최해온 포럼도 금년 처음 온라인으로 진행하였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니까 자가격리 중에도 참여가 가능했고 참가자 수도 늘었고 모두들 자기 사무실에서 참여하니까 참 편하다는 느낌도 받았다.아이러니컬하게 일부 교수들은 불필요한 회의나 출장이 크게 줄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진행되는 행사의 형식도 많이 간소해졌다. 대부분 리셉션이나 행사만찬이 없어지거나 대폭 축소되었다. 그래서 캠퍼스도 사라지고 대면 강의도 사라지고 대학의 운영과 모습이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편리하긴 하지만 과연 캠퍼스가 사라지고 강의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어도 대학은 여전히 즐거운 곳이고 친구를 사귀고 교수와 교류하는 그런 인생의 멋진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전에 비하여 캠퍼스의 추억들이 삭막해져 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졸업앨범도 사라지는 추세이고 졸업식 전에 스승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은회도 없어지고 있다. 많은 대학 졸업식에는 대학원생만 자리에 앉고 학부 학생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사진만 찍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강의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된다면 대학생활은 개인주의적 사고만 배양하고 스승 학생의 관계는 더 삭막해 질 것이다. 학회나 포럼도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편하긴 하지만 같은 분야 교수들과 만나 나누는 대화와 리셉션 등에서 함께 누릴 수 있는 인간적인 대화의 시간이 없어졌다.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인류학자들의 예측도 있다고 한다.그러나 여전히 인간의 삶에서 물리적인 측면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이 함께 나오는 앨범, 캠퍼스에서 친구를 사귀고 함께 수업을 듣는 추억의 즐거움 같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학회, 포럼 등에 참가하여 동료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하는 그런 시간도 정말 소중한 것이다. 코로나가 가져온 삶의 변화가 인생을 삭막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0-07-23

최후의 만찬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을 찾기 위하여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성전 한구석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한 청년이 있어서 다빈치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와 흡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평화로운 모습과 자비로운 인상, 어디엔가 위엄이 있고 눈에는 빛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로 삼고 그 주위에 십이 사도들의 모습도 그리고 최후로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성서에서 예수를 배반한 사도로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일하게 유대땅 출신입니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18개 복음서에 기반을 둡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유다가 자주 나오지 않지만, 얼마 되지 않는 구절에서조차 유다는 헌금함에서 돈을 훔치는 도둑이며 사탄의 영향을 받는 악마입니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던 중 어느 날 술집에서 술에 만취한 청년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을 보니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기에 흡사한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눈에는 살기가 흐르고 얼굴 표정에는 욕심이 넘치고 있었으며 행동을 보니 꼭 돈에 미친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이 사람을 가룟 유다의 모델로 그려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았더니 놀랍게도 이 사람은 몇 년 전 성전에서 만난 그 기도하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빈치는 이 사람을 가룟 유다의 모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래서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과 가룟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숨겨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에게 누구나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가능성 중에 삶을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 어떤 역할을 하는 가에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른 아침 거울 앞에선 당신의 모습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두 얼굴로 살지마시고 항상 행복한 미소짓는 당신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미소가 이웃의 행복까지 지켜 줄 것입니다.

2020-07-22

아파트와 그린벨트

김규종 경북대 교수1959년 중앙산업이 지은 종암아파트를 필두로 마포, 동대문, 정동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1970∼80년대에는 대구와 부산 같은 대도시에도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 후로 아파트는 가정주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택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아파트 불패신화는 어언 반세기를 이어온 셈이다. 하지만 1970년 4월 8일 33명의 인명을 앗아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는 한국 아파트 역사에 악몽으로 남아 있다.정부는 서울의 평면적인 확산을 방지하고, 자연환경 보전과 안보상의 필요로 개발제한구역정책을 도입한다. 1971년 1월 19일 이른바 ‘그린벨트’ 제도 도입으로 정부가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린벨트는 1971년 7월 30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1977년 여천지역에 이르기까지 8차에 걸쳐 대도시, 도청소재지를 중심으로 전국 14개 도시에 설정된다.그린벨트는 19세기부터 영국과 도이칠란트, 프랑스 등에서 법제화가 시작되어 1950년대 이후 활용된 제도다. 반면에 1956년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하려던 일본은 1965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대거 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린벨트가 사라지는 참상을 겪는다. ‘규제완화’라는 명분으로 일본의 개발제한구역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한반도에도 진행될 조짐이 보여 우려스럽다.지난주 언론을 달궜던 사안 가운데 하나가 서울의 그린벨트 해제 논의였다. 민주당과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거론하면서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내곡동의 아파트와 토지 가격이 급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난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린벨트는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신도시 건설이니 200만 호 분양이니 하면서 숱한 아파트 건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110%를 훌쩍 넘는다. 무주택자보다는 주택소유자가 많은 게 현실이다. 문제는 아파트를 가지고 돈을 벌려는 개인과 투기세력이 나라 곳간과 세금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주 목적이 아니라면 아파트를 두 채 이상 소유하는 자에게는 중과세가 마땅하다. 증여와 상속 역시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정부가 최저임금 올려서 경제가 망했다고 울부짖던 자들이 종부세 인상에는 활활 분노한다. 어불성설이다.그린벨트 풀어서 공급을 충당하겠다는 청와대 정책실장의 무능과 부패와 타락을 비판해야 한다. 투기세력과 3천조의 유동자금, 1% 미만의 수신금리 때문에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건설한다 해도 수요는 충족되지 않는다.가장 손쉬운 돈벌이가 아파트인데 누가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다, 애 낳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해대는 기성세대는 정말로 대오각성해야 한다.그린벨트 풀어서 아파트 짓겠다는 발상은 젊은 세대를 담보로 기성세대가 최대한 짜내겠다는 행악질이다. 그런 참에 대통령이 나서서 그린벨트 해제 논의를 중단시킨 것은 시의적절하다. 이참에 국토부를 비롯한 주택정책 주무부서 수장과 정책실장 교체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2020-07-22

확실한 교육 방관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염소 뿔도 녹는다는 한 해의 가장 무더운 절기인 대서가 지나고 있다. 여름이 들기 전에 기상예보 기관들은 올해 여름이 기상관측 이래 최고로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직 여름이 다 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예보가 오보 수준이다.그런데 덥지 않은 여름을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이번 주 또한 마찬가지다. 7월 절반이 먹구름에 잠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7월을 우기의 달로 재정의해야 할 날도 멀지 않았다.시간의 빠르기와는 달리 아직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 국가가 정부 차원에서 경제 활동 재개를 독려하고 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력은 그런 정부의 의지보다 더 강하다. 바이러스와의 대결에서 지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아무리 과학과 의료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그런데 자존심 강한 인간들은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백신 타령만 하고 있다. 과연 백신이 인간을 모든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줄 수 있을까? 지자체와 정부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같은 내용의 안전 안내 문자를 매일 몇 통씩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보는 사람은 몇 없다. 거의 공해 수준으로 오는 문자 메시지는 분명 또 다른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 가지만, 지금과 같은 도를 넘는 안내는 짜증만 불러일으킨다.코로나19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것은 경제와 교육 분야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공급 충격과 소비 절벽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라는 뉴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세계 경제의 위기에 대해서는 모두를 잘 알 것이다. 그래도 발 빠른 경제학자들은 벌써 답을 제시하고 있다. 공통된 답은 적극적인 소비와 생산이다.경제는 이처럼 답이라도 있지만, 교육계에는 답이 없다. 한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미래 사회인을 양성하는 곳이 학교인데, 그 학교가 제 기능을 못 한 지 오래다. 코로나19 전후를 비교해 보면 이 나라 교육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희망 부재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던 희망이 아예 멸종되어버렸다. 그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온라인 수업 때문이다. 6월과 7월에 온라인 수업을 한 학교들이 선택한 수업 유형은 과제 중심형 온라인 수업이다. 4월과 5월에 그나마 5%라도 있던 쌍방향 수업은 거의 실종되었다.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을 철저한 교육 방관자로 만드는 것이다. 경제 활성화의 확실한 방법은 적극적인 소비와 공급이다. 이는 교육계에도 통용이 된다.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교육의 적극적인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이 교육의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가 되는 순간 분명 우리 교육은 입시 공화국에서 벗어나 훨씬 더 생산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특히 온라인 수업은, 학생들을 교육의 확실한 방관자로 만들어버렸다. 학생들이 등교 수업을 거부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2020-07-22

내 이름은

김살로메. 제 필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름에 관심을 보입니다. 특이한 이름이네요,라며 호기심을 보이거나 세례명이죠,라고 눈치 빠르게 되묻곤 합니다. 호의적인 그들은 눈빛으로 ‘진짜 이름은 뭐예요?’라고 말합니다. 눈치껏 진짜 이름을 말하는 순간, 빵 터지는 웃음소리.세례를 받던 스무 살 즈음, ‘살로메’라는 세례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좋아하던 작가 루 살로메를 차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성녀 살로메와 루 살로메, 중의적 의미의 그 이름은 그렇게 제 곁으로 왔습니다. 세례명은 자연스레 필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치기 서린 시절의 선택이었지만 제법 마음에 들었습니다.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문단 원로분께서 필명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충고하셨습니다. 이름이 곧 사람인데,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악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나요. 루 살로메에 경도되었던 젊은 날이었기에 거기까지 살피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알았다고 해도 다른 이름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느낌의 이 필명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제 진짜 이름은 ‘김복남’입니다. 1960년대산 산골 이름 치고도 촌스러움이 더합니다. 그 시대 여자이름에 흔하게 붙는 ‘자’자 돌림이 상대적으로 세련되어 보일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이름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 두 곡이 놀림의 선전곡이 되곤 했습니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 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 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남자애들은 제 눈만 마주쳐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너무 싫었습니다. 당시 월간지인 ‘어깨동무’나 ‘새소년’ 같은 어린이 잡지를 펼치면 서울우유 광고가 나왔습니다. 단란한 네 식구가 식탁에 앉아 토스트에 흰 우유를 곁들여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도회지 사람들의 이런 아침 풍경을 꿈꾸던 저에게 꽁당보리밥 놀림곡은 현실을 깨우는 조리돌림 같은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 2탄이 장전되곤 했으니까요. ‘복남이네 어린아이 감기 걸렸네. 복남이네 어린아이 감기 걸렸네. 복남이네 어린아이 감기 걸렸네. 모두 다 찾아가서 위로합시다.’ 2절까지 무려 ‘복남이’이란 이름이 여섯 번이나 들어가는, 제게는 공포이자 폭력 같은 놀림이었지요. 확인 사살하듯 ‘콜록’ 또는 ‘에취’라는 감탄사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남자애들의 뒤통수라도 갈기고 싶었습니다.어른이 되었다고 이름에서 자유로워진 건 아닙니다. 분주한 한 모임에서였습니다. 무슨 이유로(아마는 좋은 이유였을 거예요!) 제 필명인 ‘김살로메’가 불렸습니다. 순간 제가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모른, 앞자리의 남자분 둘이 귀엣말을 했습니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들의 뒷모습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살로메 진짜 이름이 뭔지 알아?’, ‘알고 말고. 김복남!’ 이런 대화들이 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진 이야기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김봉남 선생에 관한 것이었을 테고, 어쩌면 ‘꽁당 보리밥’ 노래까지 들먹였을지도 모릅니다. 마주보며 키득거리기까지 했으니까요. 아무 잘못 없는 그들에게 욱,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 상상력의 범위가 너무 나간 것이지요. 저도 모르게 어린시절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 모양입니다.김살로메소설가철든 이후 제 이름을 불편해하거나 불명예스럽게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개명하기 좋은 요즘 세상, 얼른 법원으로 뛰어갔겠지요. 제 이름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본 적도 없고,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유머로 삼을 만큼 연륜도 생겼습니다. 자연인 김복남은 김복남이고, 쓰는 자로서 김살로메는 김살로메일 뿐이니까요.재미로 들른 철학관에서 제 이름이 좋지 않답니다. 앉은 자리에서 삼십 만원을 내고 개명할 이름을 받아 가랍니다. 물론 ‘그 돈으로 쇠고기나 사 묵지.’ 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습니다. 이름으로 인해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고 큰 소리 치면서도 필명을 쓰는 데는 소심하나마 변명이 있습니다. 이름에서 풍기는 뉘앙스만으로 제 연배를 가늠하는 걸 피하고 싶었습니다. 본명 그대로를 필명으로 삼을 경우, 첫 독자라도 제 연식(?)을 금세 눈치 챌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글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늙은 글로 읽힐 수 있습니다. 나이 따라 글이 늙는 건 당연한데 괜한 몽니를 부리는 것이지요. 미완의 글쟁이로서 가야 할 길이 먼 만큼, 제 이름이 지닌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아직은 스스로를 보호하고픈 마음이 있나 봅니다.어떤 이름이 스스로를 대변한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실명이냐, 필명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이름 다 스스로 보듬어야 할 제 이름일 뿐입니다. 이름자에 꽃잎을 달고 열매를 맺는 이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니까요. 새벽 창을 엽니다. 오늘도 스스로를 위한 발자국, 한 발 한 발 내딛어 봅니다.

2020-07-22

짜장면

윤순옥수필가한 끼 식사를 해결할 간단한 방법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배달음식만한 게 없다. 습관적으로 메뉴를 훑어보고 결국 짜장면을 주문한다. 짜장면은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문득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다.버스를 타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하루 왕복 두 번, 집 앞 신작로를 지나는 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한손을 밖으로 내밀어 차 옆구리를 탁탁 치고 ‘오라이’ 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출발했다. 차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친구들이 먹은 자랑, 본 자랑을 늘어놓으면 부러움에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마음만 실어 보낼 뿐이었다.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어머니는 사촌언니에게 물려받은 옷 보자기를 풀어 그중 작은 옷을 골라주며 입기를 재촉했다. 갑자기 왜 옷을 갈아입어라하는 것인지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외출 준비를 마친 아버지를 따라 나서라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다 아버지 뒤를 따랐다. 우리는 내리막을 지나 정류장에서 멈췄다. 정류장 앞에는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곳에서 담배를 팔았는데 그것 때문인가 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있는 시간이 불편해 멈춰 있기 보다는 차라리 걷는 게 나을 듯싶었다. 침묵의 시간이 한참 동안 흐르고 마을 어귀에 버스가 나타났다. 버스가 도착하자 아버지는 타라는 손짓을 했다. 얼떨결에 버스에 올랐다.아버지가 어렵고 무서웠다. 평소 말씀이 없으셨던 분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행동을 조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가 느껴져 신경을 써야했다. 아버지 머문 자리도 돌아서 다닐 정도였다. 궁금했지만 도저히 어딜 가는지 여쭈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네를 몇 개나 지났을까 색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친구들이 말했던 곳으로 짐작되는 말 탄 장군 동상이 보였다. 동상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길이 나 있었다. 상주읍내를 처음 본 나는 사방으로 난 길도, 우리 동네 집들과 다른 건물도, 오고가는 사람도 신기할 뿐이었다. 버스가 데려다 놓은 곳은 내가 본 가장 큰 세상이었다.그토록 원하던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갔는데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즈음 가난한 집 아이들을 식모로 보낸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친구 언니가 도시에 가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차를 타고 읍내까지 온 것을 보면 분명 큰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고 무서웠다.아버지 뒤에 바짝 붙었다. 아버지는 시장에 들러 몇 가지 물건을 샀다. 그리고 붉은 천이 바람에 너풀거리는 붉은 집으로 들어갔다. 벽지도 붉고 등도 붉은 집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짜장면’ 이라는 말에 불안함도 잠시 잊고 친구들이 먹었다는 음식을 상상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까만 것이 번들거렸다. 까만 음식이라더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 사이 아버지는 짜장면을 비벼서 내 앞으로 밀면서 말씀하셨다.“오늘 네 생일이지 많이 먹어라.”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디로 나를 보내려는 것 아닌가하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그날은 잊고 있던 내 생일이었다. 산골에서 생일은 덤덤하게 보내기 일쑤였고 운이 좋아 삶은 달걀이라도 먹는 날은 최고였다. 열한 살 생일은 특별했다. 처음으로 버스를 탔고 처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짜장면을 먹은 날이었다.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던 날, 마주 앉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때를 훌쩍 넘긴 시각이라 아버지 배도 쪼그라들었을 텐데, 배고픔도 잊고 자식만 먹이던 가난한 아버지를 헤아릴 수 없었다. 어른이라고 배고픔이 없었을까.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배고팠을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알끈한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짜장면 한 그릇은 두고두고 펼쳐 볼 선물 보따리요, 아버지를 향한 내 눈물 보따리다.

2020-07-22

증거인멸 의혹 커지는 시추기 철거, 정부가 막아라

포항지진 촉발의 직접 원인인 지열발전소 시추기 철거에 대한 반대 여론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포항지진의 책임소재와 배보상의 문제가 아직 매듭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진촉발의 원인으로 드러난 시추기 매각은 증거인멸과 같다는 것이 지역사회 반발 여론이다. 지진을 촉발한 직접 원인이 시추작업이라는 것은 이미 정부 조사에 의해 밝혀진바 있다.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제기된 문제와 각종 의혹을 밝히기 위해선 유일한 증거물인 시추기의 철거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지역시민단체 등의 주장이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 등도 시민단체 의견에 동의하며 시추기 철거를 막아줄 것을 산자부 등 관계기관에 요구하고 있다. 이 문제 대해선 정부가 먼저 나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순서다. 정부는 포항지열발전소 연구비에 184억 원을 투입했다. 시추기 임대비에만 68억여 원의 출연금을 넣고도 매각과 철거 과정에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방관자적 입장이다. 산자부가 나서든지 총리실 산하 포항지진진상조사위원회가 나서든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포항지진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확인된 일이다. 정부가 지원한 국가연구과제 수행 중에 발생한 것이기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추기 매각이 민간부문에서 이뤄져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하지만 증거보존의 차원에서 특별법을 근거로 하든지 정부가 나선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특히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된 몇 가지 의문점은 정부가 나서 책임도 묻고 진실도 밝혀야 한다. 이것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에 대한 정부의 의무기도 하다.104억 원에 사들인 시추기를 기업이 회생불능 상태에 들어섰다고 19억 원이란 헐값에 매각하는 것부터 의심스럽다. 서둘러 매각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예산을 증액해 놓고도 성능이 떨어지는 시추기를 사용한 것이나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것 등 감사원 지적에 대한 의혹도 정부가 나서 해명해야 한다.포항지진은 포항시민에게 역대급 피해를 입혔다. 발생 2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특별법에 의한 보상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포항지진의 유일한 증거가 될 시추기를 철거하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정부가 나서 철거를 막고 의혹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한다.

2020-07-22

지역브랜딩

장규열한동대 교수소비생활이 반드시 이성적일까. 경제생활을 나름 이성적으로 운용하려 하지만, 일상의 소비경험을 돌아보면 비이성적 소비행태가 즐비하다. 지름신도 내리고 이미지에 흔들린다. 보통사람들의 소비생활을 분석하면, ‘계획구매’ 보다 ‘충동구매’가 오히려 더 많다는 보고도 있다. 물건의 품질과 사양을 살펴 사기도 하지만, 브랜드이미지에 더욱 끌리고 시중의 유행에 마음이 쓰인다. 소비자는 물건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던지는 이야기’를 사는 게 아닐까. 물건을 잘 팔려면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한다. 품질이 좋아도 마음을 끌지 못하면 마케팅에 성공할 수가 없다. 물건뿐일까. 사람도 장소도 브랜딩에 나서야 한다.지역브랜딩. 경주는 세계최고 수준의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다. 포항은 탁월한 경제산업적 배경을 품고 성장하고 있다. 더없이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도 생각보다 관심과 이목을 끌지 못한다. 상생과 협력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개념이 아닐까. 상품브랜딩에서도 협업과 파트너쉽을 통한 연계브랜딩이 더러 쓰인다. 경주의 문화이미지와 포항의 산업이미지를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접근하면 새로운 지역브랜딩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 터이다. 옛스러움과 현대적 이미지의 독특한 결합을 만들어 내고, 부드러운 느낌과 강인한 이미지를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어제와 오늘이 함께 숨쉬는 지역으로 만들어 새로운 내일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포항공항의 활성화를 시도하면서, 공항명을 ‘포항경주공항’으로 바꾸자는 구상이 들린다. 공항이름 개명을 넘어, 지역의 브랜딩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기획으로 펼쳐가기를 기대해 본다. 미래를 향한 적극적 구상에도 나섰으면 한다. 거의 인천국제공항을 사용하는 해외입국자들과 국제관광객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또 하나의 입국공항이 될 수는 없을까. 동남권신공항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관광’을 테마로 삼는 독특한 입국포인트(Entry Point)의 설정은 나라의 관광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경주에서 관광하고 소일하며 포항에서 숙박하고 소비하는 도시협업형 지역브랜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지역브랜딩의 성공여부는 내부소통에 달려있다. 지역주민에게 미리 충분히 알리고 이해를 다져야 한다. 두 도시가 서로에게 배려와 협력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경주가 가진 ‘이렇게 좋은데 왜 안될까’와 포항이 가진 ‘철강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쩌면 한꺼번에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와 산업을 잘 버무린 이야기도 만들어야 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부터 스토리와 이미지에 끌린 사람들이 몰려들게 해야한다. 이를 위한 글로벌역량 확충에도 집중해야 한다. 관광과 산업이 연결된 새로운 지역브랜드 이미지가 자리를 잡으면, 방문객이 찾을 뿐 아니라 ‘살고싶은 지역’으로서 인식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두 도시가 연합하여 지역상생의 신모델이 탄생하는 새 역사가 기대된다. 경주와 포항, 파이팅!

2020-07-22

밈(Meme) 문화

‘밈(Meme)문화는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재미있는 사진이나 영상 문화를 가리키는 말로,‘Internet Meme’을 줄인 말이다.생소한 단어인 밈은 1976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학술 용어로, 그리스어 ‘모방(Mimeme)’과 영어 ‘유전자(Gene)’를 합친 것이다.유전자가 복제기능을 통해 세대간에 전파되듯이 문화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자기복제적 특징을 가진 밈을 필요로 한다.즉, 밈이란 온라인상에서 공유되는 파급력을 가진 재미있는 짤(사진이나 그림), 영상, 유행어, 트렌드 등을 통칭하는 의미다.특히 채팅이나 UCC 활동을 할 때 쓰이는 필수요소를 밈이라 일컫게 되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널리 쓰였다. 국내에서 밈이란 개념이 소개된 것은 2020년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비의 ‘깡’ 유행이 소개되면서 부터다.비의 깡이 재조명받은 과정이나 1일 1깡, 시무 20조 등의 파생 드립은 밈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당사자인 비 본인이 직접 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비 이전에도 ‘탑골 지드래곤’가수 양준일, 배우 김영철의 ‘사딸라’(드라마 ‘야인시대’의 대사), 김응수의 ‘묻고 더불로 가’(영화 ‘타짜’대사)가 화제가 된 바 있다.밈 문화는 진화하고 있다. 콘텐츠를 복제하고 소비하는 단순한 차원에서 나아가 해석을 더해 재가공하는 식이다.최근 영화 ‘아저씨’와 ‘해바라기’의 유명 장면을 패러디한 롯데렌터카의 온라인 동영상 광고‘쉽빠(쉽고 빠르게)’ 역시 밈 문화의 산물이다. 바야흐로 광고시장도 밈문화가 대세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0-07-22

‘정권 편향’ 논란 KBS, 수신료 인상 염치없다

정권이 바뀔 적마다 ‘정권 편향’ 시비에 휩싸이는 이 나라 공영방송 KBS가 또다시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다. 정부·여당이 편파 방송국 KBS의 수신료 인상을 들먹이고 있어 논란이다. KBS는 최근 소위 ‘검언유착’이라고 작명된 이동재 채널A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과의 유착 이슈를 보도하면서 의도적으로 읽히는 악의적 오보를 내면서 ‘정언유착’을 의심받고 있다. 공영방송의 사명은 저버린 채 국민 주머니만 탐하는 KBS는 참으로 염치가 없다.KBS는 지난 18일 뉴스에서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4월 총선 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이 전 기자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총장에게 힘이 실린다는 등의 유시민 이사장 관련 취재 필요성을 언급했고, 한 검사장은 돕겠다는 의미의 말과 함께 독려성 언급도 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KBS는 보도 하루 만인 19일 오보를 인정했다. “기사 일부에서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단정적으로 표현된 점 사과드린다”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KBS 공영노조가 “정권의 나팔수, 굴욕적인 셀프 항복선언”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KBS 직원 87명은 22일 성명에서 “양승동 사장은 검언유착 오보방송을 국민들께 사과하고 책임자를 즉각 직무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KBS는 성추행 가해자인 서울시장 영결식은 톱기사로 다루면서도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 영결식은 14번째 순서로 보도했다. 작년엔 ‘조국수호 집회’에 헬기를 띄워 대대적으로 보도한 반면 ‘조국반대 집회’는 끝 순서로 뭉갰다. 친여 토크쇼 ‘오늘 밤 김제동’ 편성, 친여인사 한 마디에 조국 사태 취재팀 기자들 제외 등 KBS의 불공정 행태는 부지기수다.KBS가 세계적으로 공정성을 인정받는 공영방송이 되지 못하는 원인은 재정난이 아니다. 정권과 무관하게 공정성을 지켜갈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정권도 KBS도 안 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 시점에 KBS 수신료 인상은 안 된다. KBS와 정부·여당은 어림없는 시도를 중단해야 마땅할 것이다.

2020-07-22

살아남아야 한다

문가인참마음심리상담센터 원장요즘 내가 주변의 지인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만나서 반갑습니다’이다. 주변의 지인 중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리거나, 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때로는 방심하기도 하지만 뉴스에서 보았던 미국인의 시체들이 짐짝처럼 파묻히던 끔찍한 장면을 생각하면, 마스크 쓰기를 소홀히 하거나 위생관리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로 나뉘어진다고 한다. 1단계 생리적욕구, 2단계 안전의 욕구, 3단계 애정과 소속의 욕구, 4단계 존경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이다.지금의 이 시대는 2단계인 안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때이다. 심지어 1단계인 생리적 욕구도 위협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계까지 위협하면서 슈퍼에서 가장 잘 팔리는 품목이 라면이라고 하니, 누군가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먹고, 자는 등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일단 생명을 유지해야 하고, 생명을 유지했으면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잘 챙겨서 살아남아야 한다.심리학 분야에서 마시멜로 실험이라는 유명한 연구가 있다. 심리학자의 실험에서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면서 기다리면 좀 더 먹을 수 있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지 않고 과자를 먹어버린 아이와 먹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추적해보니, 기다리지 않고 과자를 먹어버린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저성취를 이루었다는 이야기이다. 즉, 인내심이란 성격요인이 성공과 실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지금은 버텨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절실한 욕구가 되었다.살아남았으면 직업을 얻고 사랑할 날이 올 것이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사랑하다보면, 자녀나 제자, 및 동시대인으로부터 존경받을 날도 올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에 와서 존재의 빛을 발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도 채워지는 그 날이 올 것이다.우리 모두 잘 살아남아서 이 생에서 존재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며 견뎌야 할까? 덜 먹고, 덜쓰고, 덜 버리자!필자는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는데 그 시골 냇가에는 검푸른 징거미와 살이 꽉찬 다슬기가 지천이었고, 산에는 다람쥐, 토끼 그리고 노루가 뛰어다녔다. 인간의 욕심과 편리함을 위해 그 냇가는 콘크리트로 뒤덮였고 그 산은 파헤쳐졌다.가끔식 도시에서 살면서 힘겹게 생각될 때 소망했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나는 요즘 베란다 텃밭을 가꾸며 매일 소망한다.나와 우리가 덜 먹고, 덜 쓰고, 덜 버리는 소박한 삶을 통하여,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마음껏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어 함박웃음 웃는 그날이 오기를. 그날까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2020-07-21

사자성어를 함부로 써서야

강희룡서예가사자성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기관장이나 기업의 CEO가 신년사나 축사를 할 때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자성어 사용은 내용을 강조함에 있어 유용하나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는 사자성어나 격언을 찾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추미애 법무장관이 올해 1월초 법무장관에 취임하면서 현재까지 검찰이나 검찰총장을 향해 분노가 섞인 감정으로 사자성어를 쏟아냈다. 첫째로 줄탁동시(5550啄同時)이다. 함께 행해지기에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역량을 파악하여 바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스승의 예리함을 비유한 말이다. 검찰개혁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고, 국민적 지지라며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검찰 안팎에서 줄탁동시가 이루어지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는 국민과 시대를 끌어들여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나 결국은 그 속에 그들의 성향에 맞는 검찰조직으로 바꾸어 그들의 부정이나 모순을 덮으려는 의도이기에 줄탁동시는 이 상황에 맞지 않는 인용이 부적절한 말이다.또한 총장에게 검찰이 파사현정 정신에 부합하고 있냐며 공개 석상에서 물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불교 삼론종의 중요한 근본교리 중 하나로 사악한 것을 깨부수면 바른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얽매는 마음을 없애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가르침에 따라 사악하고 간사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이다. 권력층 비리 수사 중인 검찰에게 장관 완장차고 거들먹거리는 허세로 인사학살을 단행한 자로서 일반인도 사용하지 않는 천박한 말을 서슴없이 국민 앞에 쏟아내는 사람이 인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검찰수사를 ‘공정과 정의에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어야 한다며 바르게 수사하여 공정한 결론을 내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라 했다. 천의무봉은 하늘의 옷에는 꿰맨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천상의 직녀가 지상의 곽한이라는 청년을 사랑해서 황제의 허락으로 밤마다 인간계에서 곽한을 만났을 때, 직녀의 옷에 바느질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직녀가 천상의 옷은 원래 바늘과 실로 바느질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즉 어떤 작품을 인위적 기교 없이 훌륭하게 제작했거나, 가식 없는 자연스런 상태를 일컫는다. 하나 멀쩡한 검찰조직을 같은 패거리로 채워 인위적으로 비틀어 놓은 상황에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공정이라 말하는 것이다. 검찰의 인사가 공정치 못한 상황에서 같은 편을 요직에 채우는 행태는 이미 정의와 공정은 사라지고 없기에 장관이 공정과 정의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수의 의견에서 시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의 겸청즉명(兼聽卽明) 역시 장관이 사용할 말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의 실정에서 알맞은 사자성어는 신생어인 ‘내로남불’ 뿐이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였다. 우리와 거의 비슷한 일본에서도 1954년 조선의옥(造船疑獄)사건에서 한차례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권이 몰락하는 원인이 됐다.

2020-07-21

줌(ZOOM)과 신독(愼獨)

이재현​​​​​​​동덕여대 교수코로나 전과 후의 세계가 달라졌다고 한다.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를 ‘Before Corona’와 ‘After Disease’로 바꿔놓기도 한다.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untact·비대면)가 일상이 되면서 올해 초만 해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줌(ZOOM)이라는 플랫폼이 학교와 기업, 더 나아가 사적인 작은 모임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나 역시 지난 학기에 학생들과의 소통과 원활한 피드백을 위하여 온라인 비대면 줌 수업을 진행했다.사실 줌 수업은 비대면 수업이라기보다는 간접적 면대면 수업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교수와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얼굴을 마주보며 연결된 가운데 수업을 하기 때문에 영어로 표현하자면 언택트(untact)보다는 온택트(ontact) 수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오프라인 대면 수업보다야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나름 장점도 있다. 나는 주로 연구실에서 컴퓨터, 웹카메라, 마이크, 스피커 등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학생들은 집이나 편한 곳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았다. 등하교에 소요되는 수고와 시간이 확 줄어들었고 어디서든 접속만 하면 참여할 수 있었기에 학기 후반으로 갈수록 간접적 면대면 줌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조금씩 높아졌다.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존재하는 미묘한 공간,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공간의 세계가 바야흐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그런데 온라인과 카메라로 연결된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정제된 몸가짐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온라인 실시간 수업이나 회의에서 카메라에 비춰지는 모습은 주로 얼굴을 중심으로 한 상반신이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 렌즈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곳은 몸이나 공간이나 모두 대충대충 꾸미고 흐트러지기 쉽다. ‘하의실종’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바지에 맨발로 수업이나 회의에 참가해도 자신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아무렴, 보이는 곳만 적당히 갖추고 꾸미면 만사형통이다. 학생도 교수도 그렇고, 부하직원도 상급자도 다르지 않다. 몸가짐이 이러할진대, 마음가짐이라고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은 유가(儒家) 수행의 핵심 개념이다. 퇴계 이황은 신독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 평생을 살았고, 백범 김구의 좌우명도 신독이었다고 한다. 2천5백 년 전 대학과 중용에서 유래한 신독이 새롭게 적용되고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홀로 배를 타고 나가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아 쪽배에 묶어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에 잡은 고기를 다 뜯긴다. 그런 데도 “마지막 놈이 얼마나 뜯어먹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배는 훨씬 가벼워졌어.”라고 자위하며 물어뜯긴 물고기의 아래쪽 부분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한다.그러나 우리는 반바지에 맨발도 괜찮지만 보이지 않는 아래쪽과 내면을 더 가다듬는 새로운 신독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2020-07-21

與의 ‘개헌·행정수도’… 국면전환용 이슈 남발

박병석 국회의장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잇따라 ‘개헌론’을 꺼내든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문제를 들고나오는 등 여권이 국면전환용 이슈를 남발하는 모양새다. 김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수도권 인구 유입’ 등을 이유로 들어 행정수도 이전 완성을 강조했다. 국민이 처한 참혹한 현실은 외면한 채 다분히 정략적인 발상으로 무책임한 이슈를 거듭 생산하는 행위는 결코 온당치 않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행정수도를 완성하는 것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부동산 문제 해결의 비법인 것처럼 강조했다. 그는 “(행정수도를 완성하면)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행정수도 완성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 혁신성장을 위한 대전제이자 필수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명분은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수도권 집중이 8년가량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정도에 그쳤다.국회와 청와대 이전방안이 일정 부분 수도권 인구분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맞다. 그러나 이 전제는 사람들이 국회나 청와대 옆에서 살고 싶어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가 확인돼야 한다. 수도권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은 많은 양질의 일자리와 우수한 교육기관 때문이다. 풍부한 문화예술 기회가 있다는 점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국회와 청와대 이전은 당장 불붙은 서울의 부동산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김태년 대표의 주장은 차기 대통령선거를 노린 포석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신행정수도 공약으로 선거에서 재미를 봤다”는 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했던 발언이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가 잇달아 ‘개헌론’에 불을 지핀 것도 마찬가지다. 쏟아지는 국민 원성을 돌리려는 정치전략과 다가오는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책략이다.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게 정치의 특성인 만큼 권력의지를 바탕으로 정치이슈를 만들고 논란을 촉발하는 것 자체를 그르다고 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질병 위협에 생활고까지 겹쳐 삶이 당장 고달파진 국민을 보살피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은 것이다.

2020-07-21

노인복지시설 재개… 감염병 예방 소홀함 없어야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된 노인복지관, 경로당, 노인교실 등 노인여가복지시설을 20일부터 운영을 허용함에 따라 시군별로 여건에 맞춰 복지시설 운영이 시작됐다.대구지역에서는 서구, 북구 등 일부지역에서는 이날부터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의 문을 열었다. 수성구, 달서구 등은 노인복지관만 개관했으며 나머지 구군은 프로그램 운영안을 마련한 뒤 부분적 개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내도 각 시군별로 형편에 맞게 운영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노인복지시설의 운영 재개에 따라 이 시설을 이용할 노인들이 가장 먼저 반색을 하고 있다. 5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노인시설이 문을 닫음으로써 갈 곳이 없어 우왕좌왕했던 동네 어르신들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은 없다. 농어촌지역을 통해 노인시설 재개를 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된 데다 혹서기를 앞두고 무더위 쉼터 운영이 필요해진 것도 문을 열게 된 배경이다.현재 국내 코로나19 상황은 비교적 안정세다.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두기 등 국민적 대응도 비교적 잘 이뤄지고 있다. 지금 시기에 노인복지시설의 운영을 재개하는 것은 적당해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무한정 복지시설을 묶어두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감염증에 취약한 다수의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특징을 고려해 각별한 방역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유념해야 한다.당국은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책임 관리자를 두고 상시 감염 상황 등을 체크해 나가야 한다. 식사시간이나 운영시간을 제한하고 이용자가 많을 경우에는 분산하는 등 관리지침을 정해 철저히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또 노인시설 이용자는 스스로 손 씻기나 마스크 착용과 생활 속 거리두기 지침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한 개인별 방역수칙 준수가 가장 중요하다. 각자가 방역수칙 준수에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이다.코로나19는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노인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 스스로가 방역 관리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한 곳이자 K방역의 중심지다. 노인복지시설이 운영에 들어가면서 우려되는 방역 문제에도 가장 모범적으로 이뤄지는 도시가 돼야 할 것이다.

2020-07-21

그린벨트

미국의 맨해튼 도시 한복판에 조성된 센트럴파크 공원을 두고 뉴욕의 허파라 부른다. 공원 자체는 인공적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규모가 워낙 커 뉴욕시민의 휴식처뿐 아니라 관광지로도 유명하다.그 규모가 모나코 국가의 면적보다 넓다. 1856년 조경가에 의해 설계될 때 설계 개념이 “도심에서 자연으로 최단시간 탈출”이다. 이곳에 50만 그루 이상 나무가 심겨져 있으니 도시숲으로서 기능은 대단한 것이다. 도시의 숲이 미세먼지를 줄이는 등 대기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가 도시숲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도시숲은 인구 증가와 산업의 발달로 발생하는 도시의 열섬현상을 줄여주고 도시환경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해준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돼 가고 있다.1950년대 영국에서 시작한 그린벨트는 자연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다. 우리나라도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1971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처음으로 그린벨트가 지정됐다. 당시 국토면적의 5.4%가 그린벨트로 묶였다.그러나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놓았지만 실제로는 개발금지에 가까워 국민의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빚어지는 도시환경의 파괴를 막고 난개발을 억제하는 데 필요한 조치라는 긍정적 평가도 많았다.정부가 최근 서울과 수도권지역의 집값 안정과 주택공급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라는 초강수를 뜨려다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의 중재로 없던 일로 끝나버렸지만 그린벨트에 대한 좀 더 신중한 인식이 필요했음을 보여주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60%가 그린벨트 해제를 반대한다고 한다. 정책 입안자들의 가벼움이 그린벨트 논란의 배경이 된 셈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0-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