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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를 통해 본 신라의 조경과 경관

등록일 2021-07-05 19:27 게재일 2021-07-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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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건물지 배치도.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는 1974년 경주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연못 준설을 포함한 주변 정화사업을 시행하던 중 못 내에서 다량의 와전류와 함께 호안석축이 일부 확인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준설공사를 중지하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을 결성하여 1975년 3월 25일 본격적으로 발굴조사에 착수하였으며, 1976년 12월까지 총 2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총 면적 15,658㎡에 이르는 큰 연못과 그 안에 있는 3개의 섬, 연못 안으로 물이 출입하는 수구시설, 그리고 연못의 서편과 남편에 총 31동의 건물지가 조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후 1977년부터 3동의 건물을 포함한 건물지와 연못의 호안석축 복원 및 조경 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동궁과 월지에 조성된 연못은 어떻게 축조되었을까? 연못과 섬의 외곽에는 돌을 여러 층 쌓아 벽을 만들었는데, 이를 호안석축(湖岸石築)이라고 한다. 호안석축은 각 부분의 자연 지형과 용도를 고려하여 축조되었다. 연못의 동쪽과 북쪽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곡선으로 축조되었으며, 서쪽과 남쪽은 직선으로 축조되었다. 그중 직선으로 축조된 서안석축에서는 총 5동의 건물지가 석축과 연접하여 축조되었는데, 현재는 3동의 건물지(제 1·3·5건물지)가 복원되어 있다.

호안석축은 자연석과 가공석을 사용하여 쌓았으며, 각 부분마다 축조방식의 차이가 있다. 특히 물에 잠기는 부분과 물 위에 노출되는 부분의 축조방법을 달리하여 조경 효과를 주었다. 먼저 건물지와 연접해 있는 서쪽 호안은 연못의 물에 잠기는 부분은 자연석으로 면만 맞춰 쌓았으며, 수면 위에 노출되는 부분은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축조되었다. 다음으로 건물지와 연접해 있지 않은 서쪽 호안과 3개의 섬은 장방형의 가공석으로 축조하였고, 석축의 아랫부분에 굄돌을 배열하였다. 그 외의 부분은 물에 잠기는 부분은 가공석으로 쌓았으며, 수면 위에 노출되는 부분은 조경용으로 자연석을 드문드문 배열하였다.

또한 연못의 서쪽 호안석축은 이중으로 축조되었는데, 단이 낮은 아랫부분에는 화단을 설치하여 조경 효과를 주었다. 이 외에도 각 건물들의 축조 위치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연못의 서쪽 호안과 인접해 있는 건물들은 일렬로 축조되지 않고 각각 사선으로 축조되었다. 따라서 어떤 건물에서도 월지의 조망을 해치지 않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연못에는 외부의 물을 연못 안으로 공급하도록 하는 입수구(入水溝)와 연못 안에 있던 물을 다시 외부로 배출시키는 출수구(出水溝) 시설이 있다. 입수구는 동안석축과 남안석축이 만나는 지점에 있고, 출수구는 북안석축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월지의 외부에 있던 물이 입수구를 통해 연못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연석과 가공석으로 만들어진 수로와 석조유구, 그리고 작은 연못을 지나면서 불순물이나 토사가 걸러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정화된 물은 계단 모양으로 된 폭포시설을 거쳐 최종적으로 연못 안으로 들어간다. 이 때 입수구 근처에 있는 큰 섬으로 인해 폭포시설을 거쳐 거세진 물의 유압을 억제하여 완만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연못 안에 물이 가득 차면 출수구를 통해 연못 밖으로 물을 내보낼 수 있다. 2단으로 쌓은 장대석 중앙에 약 15cm의 구멍을 뚫어 나무로 만든 물마개를 꽂아 물의 양을 조절하였다. 또한 출수구를 통해 외부로 흘러 나가는 물의 위치를 고려하여 바닥에는 장대석을 깔았는데, 이는 바닥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출수구에 우진각형 지붕돌을 씌워 의장까지 고려하여 조경 효과를 주었다.

황지수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황지수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하지만 월지의 수구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많이 오거나 물이 장기적으로 고여 있어 녹조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연못의 배수 문제가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가 필요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당시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 잡지 직관조에 월지의 조경과 관리를 담당했던 부서로 추정되는 ‘월지악전(月池嶽典)’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관리 시스템이 갖춰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연못의 물은 월지 북쪽 기찻길이 있는 곳에 당시 신라의 인공천인 ‘발천(撥川)’을 통해 남천으로 흘러갔을 것으로 연구자들 간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월지와 그 주변이 개발되는 시기에 궁궐인 월성에서도 배수 시설이 없던 해자에 석축을 쌓아 정비했다는 점이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월지와 월성을 포함한 이 지역 전체의 배수체계도 계획적으로 정비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동궁과 월지의 경관 조경은 각 공간마다 의미를 부여하여 축조되었다. 특히 연못과 연못에 인접해 있는 건물지 및 섬의 축조 위치에 따라 개방성과 폐쇄성이 반복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막힘과 열림의 효과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동궁과 월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연못과 연못 주변의 건물지를 중심으로 둘러보는데, 연못이나 건물들의 축조 방식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관광한다면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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