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에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있다. 우리는 이 ‘작은 세계’를 통해 유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고,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도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작은 세계’는 보존과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우리에게 새롭게 밝혀진다. 쪽샘 유적에서 발굴된 1400년 전 유리구슬에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있다.
유리는 흔한 물질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유리가 권력자의 사치품이었다. 유리는 화려한 색상, 특유의 광택과 투명함을 띠며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구성이 약해 깨지기 쉽다. 인류가 유리를 처음 만든 건 약 4500년 전. 학계에선 지중해 지역에서 유리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유리가 한반도에 처음 출현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중국의 철기문화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가 되면 다양한 유리제품이 등장한다. 특히 유리구슬은 고대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리제품 중 하나다. 고대의 유리구슬은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 주로 장신구의 재료로 사용됐고, 이런 장신구는 권력자의 죽음과 함께 무덤에 매장됐다가 발굴이라는 학술적 행위를 통해 다시 빛을 보게 된다.
발굴된 유리구슬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매우 작은 기포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기포는 유리구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 단서다. 고대 유리구슬을 제작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였다. ①기다란 유리를 금속 봉에 스프링 형태로 감아서 제작하는 감은기법 ②넓은 판 형태의 유리를 금속 봉에 감아 열을 가한 후 양 끝 부분을 접합해 만드는 접은기법 ③유리 융액을 잡아당겨 유리 관을 만든 후 잘라서 제작하는 늘인기법 ④거푸집 중앙에 철심을 꽂은 후 작은 유리 조각을 넣고 가열하거나 유리 융액을 부어서 제작하는 주조기법 등이다.
고대의 유리는 당시 제작 기술의 한계와 유리 융액의 높은 점성으로 인해 기포가 외부로 방출되지 못하고 유리 내부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슬의 형태를 만들 때 사용되는 힘의 방향에 따라 기포의 배열이 다르다. 감은기법과 접은기법은 구슬을 꿸 수 있는 구멍의 방향과 교차하는 가로방향으로 기포가 배열되며, 늘인기법은 구멍의 방향과 평행하는 세로방향으로 기포가 배열된다. 그러나 유리 용액을 부어서 제작하는 주조기법은 기포의 방향성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쪽샘의 유리구슬은 어떤 방법으로 제작했을까? 발굴된 유리구슬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구멍의 방향과 평행하는 세로방향으로 기포가 길게 늘여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즉, 이 구슬은 늘인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늘인기법으로 제작한 유리구슬의 경우 한반도에서 관련한 부산물이 보고된 바가 없고 기술적인 난이도를 고려하였을 때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걸로 추측된다.
쪽샘의 유리구슬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디에서 제작했을까? 유리는 모래나 석영광물을 넣어 용융(融解·고체가 열에 의해 액체가 되는 현상) 과정을 거쳐 만든다. 석영광물을 녹이기 위해서는 1700도에 육박하는 고온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저런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 없었기에 용융온도를 낮추기 위해 융제(融劑·원물질의 녹는점보다 낮은 온도에서 융해하게 하는 물질)를 첨가한다. 융제를 첨가하면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구조가 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시 안정제를 첨가하고, 다양한 색상의 유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착색제를 더할 수 있다. 융제로 사용한 재료는 나트륨(Na), 칼륨(K), 납(Pb) 등이 있는데 첨가되는 재료에 따라 유리 종류가 구분된다. 나트륨을 사용하면 소다 유리, 칼륨을 사용하면 포타쉬 유리, 납을 사용하면 납 유리로 분류한다. 한편 안정제로 사용하는 재료는 칼슘(Ca), 알루미나(Al), 마그네슘(Mg) 등이 있다. 소다 유리 중 알루미나 함량이 높은 경우 고(高)알루미나 유리로 분류하며, 함량이 낮은 경우 광물의 탄산소다를 사용한 네트론 유리와 해양 식물의 재를 사용한 식물재 유리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첨가된 융제와 안정제의 성분을 통해 고대 유리의 제작지를 추정할 수 있다. 포타쉬 유리는 인도나 동남아시아산 초석이나 식물의 재가 원료다. 고(高)알루미나 유리는 아시아의 특징적인 조성으로 주로 남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네트론 유리는 지중해 지역의 원료로 제작했고, 식물재 유리는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원료로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쪽샘에서 발굴된 유리구슬은 감청색이 가장 많다. 그외 벽색, 청록색, 황색 등이 있다. 분석 결과 감청색 유리구슬은 초석을 사용한 포타쉬 유리와 소다 유리로 밝혀졌다. 많은 양을 차지하는 소다 유리는 고(高)알루미나 유리와 네트론 유리 계통이 확인됐다. 벽색과 청록색, 황색의 유리구슬은 대부분 고(高)알루미나 유리다.
아직 한반도에서 발굴된 고대 유리구슬의 유통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학계에선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된 유리구슬이 해양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됐다는 견해가 발표됐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유리구슬의 성분 조성이 인도나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 출토되는 유리구슬의 성분 조성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쪽샘 유적에서 발굴된 유리구슬 역시 아직까지 제작지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최근 연구 성과를 고려한다면 교역이나 교류를 통해 외국에서 유입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현재 쪽샘 지구에 대한 발굴이 진행 중이다. 출토된 유리구슬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쪽샘 유리구슬의 ‘작은 세계’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