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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주의 변신은 무죄

등록일 2021-07-05 18:29 게재일 2021-07-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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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며칠 전 둘째딸 결혼식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안경을 쓰기 시작한 후로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 때까지 안경을 쓰지 않고 사진을 찍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안경 안 쓴 처음 사진은 당연히 30여 년 전 결혼식 때다. 그런데 이번이 더 특별한 것은 속눈썹까지 붙였다는 점이다.

큰딸 때는 스몰웨딩이라 평소처럼 니트에 바지를 입고 안경도 당연히 썼기에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연핑크 치마에 아이보리 저고리를 입고 속눈썹까지 붙인 풀메이크업, 거기에 짧은 머리를 올림머리처럼 부풀린 모습은 도대체가 다른 사람 같다. 아마 이 사진작가를 알지 못했다면, 이런저런 하객의 칭찬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신디 셔면, 그녀는 화가로 시작했으나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아티스트다. 신디 셔먼의 모델은 자기 자신뿐이다. 자기만 찍는다. 그런데 찍는 방식이 독특하다. 미리 설명을 듣지 않으면 한 사람이라고 알 수 없을 만큼 분장이 강하다. ‘버스 라이더스’라는 작품은 버스에 탄 여러 여성 승객을 찍었는데, 사실은 다 신디 셔먼이 분장한 것이다. ‘무제 - 영화 스틸’ 연작은 실제 배우와 똑같이 분장했기 때문에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 정도지만 그 역시 모두 신디 셔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인물 중에서 신디 셔먼은 누구인가 묻는 것은 어리석을 것이다. 모든 작품 속에 신디 셔먼이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신디 셔먼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의 작품을 평론가들의 해석은 분분한데, 그런 해석과는 상관없이 내게는 섣불리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모든 작품의 제목이 ‘무제’이다.

이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까지 화장하기를 한사코 부끄러워하고 안경 벗을 시도를 해본 적도 없으며 다양한 모양의 신발을 신어볼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감명 깊게 읽은 헤닝 멘켈의 소설 ‘이탈리아 구두’에는 주인공 외과 의사 벨린이 신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딱 맞는 이탈리아 구두를 신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춘기 때부터 끊이지 않았던,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정체성 확인이라는 절대불변의 ‘딱 맞음’을 찾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딱 맞는 정체성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신디 셔먼 같은 시도 한번 하지 않은 채 결정한 ‘딱 맞음’은 가짜일 가능성이 많다. 나에 대해 고정관념을 만들고 그에 갇혀 살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인 양 생각하고 그것이 내게 딱 맞음이라고 착각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신디 셔먼의 분장은 딱 맞음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80세가 되었을 때 더 편안하고 멋진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그동안 피해왔던 화장도 해보고 다양한 옷도 입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의 힘은 강하다. 한복에 풀메이크업한 내 모습이 나 같지 않다는 생각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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