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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가 피기까지는

등록일 2021-11-01 18:44 게재일 2021-11-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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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

겨울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봄꽃 이야기를 하려니 너무 성급해 보이기는 하지만, 한 달간 매일 500자를 쓰고 나니 문득 이른 봄에 피는 개나리가 생각난다. 개나리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눈을 준비하고 겨울을 지내고 꽃을 피운다. 개나리뿐 아니라 잎 없이 꽃 먼저 피는 봄꽃은 여름부터 꽃눈을 준비한다.

이렇게 긴 겨울을 지내고 꽃이 피는 것을 춘화 현상이라고 한다. 겨울이 가고 일정한 온도가 되면 꽃이 피는데, 온실에서 일찍 그 온도를 맞추어주어도 피지 않는다. 반드시 한두 달을 추위에서 견뎌야 꽃이 핀다.

눈치 빠른 독자는 개나리 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벌써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500자 쓰기를 겨울 추위에 비유하려고 한다는 것을. 실제로 춘화 현상을 검색하니 고구마 줄기 당기면 고구마가 줄줄이 따라나오는 것처럼 인내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가르침이 줄을 잇는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해서 인간의 가치를 설명하는 일은 별 감흥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오래전 무어나 흄 같은 철학자는 자연의 속성에서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진작에 비판했다. 겨울을 나야 꽃을 피우는 일부 꽃을 근거로 인간의 고통을 합리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춘화 현상은 이른 봄에 피는 꽃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춘화 원리를 밝힌 라이센코가 무엇을 했는지 알면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지 깨닫게 된다. 라이센코는 구 소련의 식물생리학자인데, 식물의 춘화 처리 원리를 확장하여 모든 생명 현상이 적절한 환경 조건에 의해 개량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도 이상적 인간형으로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겨울 추위 같은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유명한 김연아 선수도 어려서부터 눈에 띄게 재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혹독한 훈련을 거치지 않았다면 올림픽 금메달의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왼쪽 팔을 다 절단한 김나윤은 척추를 붙이는 2년간의 재활치료와 피나는 노력 끝에 일반부 피트니스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렇게까지 유명하고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더도 뭐라도 성과를 내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음카카오의 브런치에서 작가가 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정기적으로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이 작가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주 1회라도 꾸준히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훈련과 인내 후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을 춘화 현상에 비유하는 것을 식상하다고 손사레를 칠 일은 아니다. 이른 봄에 피는 귀여운 개나리도, 정겨운 진달래도, 아름다운 목련도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 여름부터 꽃눈을 준비하고 긴 겨울을 난 것처럼 우리의 삶도 꾸준한 단련이 있어야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 달간 매일 500자 쓰기는 겨울 추위처럼 5000자를 쓰기 위한 단련이 될 것이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도 고단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그런데 그 추위만큼은 자꾸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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