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전을 세 권 샀습니다. ‘국어 어원 사전’, ‘우리말 어감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입니다. 갑자기 웬 사전이냐고요? 고백하자면, 몇 달 전 책을 정리하면서 크고 두꺼운 국어사전을 없앴습니다. 그러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은 아직도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이 사전은 작지만 풀이가 아주 길고 예문까지 있어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전이라고 하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개성 있는 사전도 있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사전에 미친 두 남자를 취재한 NHK 다큐멘터리에 추가 자료를 덧붙인 책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전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야마다 다다오와 표제어가 145만 개나 되는 ‘산세이도 국어사전’의 겐보 히데토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도쿄대학 동기인 데다 ‘메이카이 국어사전’을 같이 편찬했지만, 그 후 교류를 끊고 각자 개성 넘치는 사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특히 눈이 가는 사전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입니다. ‘연애’를 예로 들면,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 풀이를 보니, 영화 ‘행복한 사전’이 생각납니다.
영화 ‘행복한 사전’의 주인공 마지메는 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하는데, 하숙집 주인 할머니의 손녀 가구야를 짝사랑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지메에게 사전 편집부 직원들은 ‘사랑’ 풀이를 맡깁니다. 드디어 마지메는 가구야에게 고백하면서 사랑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서 자나깨나 그 사람의 머리에서 안 떠나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몸부림치고 싶은 마음 상태, 성취하면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자기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는 딱 맞는 단어를 찾은 것이지요. 영화의 원작 소설 ‘배를 엮다’를 쓴 미우라 시온은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김무림의 ‘국어 어원 사전’을 펼쳐서 ‘사랑’을 찾아봅니다.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이라는 풀이 아래 어원이 나와 있습니다. 중세 국어의 ‘ㅅ·랑(ㅎ·다)’의 기본 의미는 ‘생각(하다)’였다고 합니다. ‘우리말 어감 사전’을 보니, 애인과 연인을 구분해줍니다. 애인은 구어체에, 연인은 문어체에 쓰고, 애인은 한 사람을 가리키지만 연인은 한 쌍을 가리킬 때도 많다는 것을 예문을 들어 설명해줍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에도 의미가 비슷한 단어들을 꾸러미로 묶어서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줍니다.
영화 ‘행복한 사전’에 ‘사전이란 말의 바다를 건너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말을 찾아주는 기적이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개성 있는 사전을 읽으며 기적을 자주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삶도 기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