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의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스무 명을 넘는다고 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말고는 매스컴을 많이 탈수록 좋다는 말도 있듯이, 그 중에는 별로 가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름이라도 알리려고 나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면면들을 보자 하니 나라와 국민을 위한 봉사보다는 권력욕에 눈먼 자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무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상당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릇된 생각이나 부족한 능력 때문에 나라를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에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래 지금까지 열두 번째 대통령을 겪고 있다. 10년 이상 장기집권한 대통령도 있고 과도기에 잠시 대통령 직을 맡았던 사람도 있다. 시대와 처지에 따라 대통령의 역할도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인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놓고 기반을 다진 두 대통령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했다는 생각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투철한 반공의식과 국제적 식견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공산주의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을 설득해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도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도 당시의 절대빈곤을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열악한 조건과 중구난방인 민심을 결집해서 나라의 경제적 기틀을 마련하는데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발휘했다. 공과가 엇갈리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두 대통령의 공로는 어떤 허물로도 다 가릴 수 없는 업적이었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상당수준 달성하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OECD 국가인 지금은 과연 어떤 대통령이 적당할까. 개혁이나 혁명을 외치기보다는 기왕의 성과를 잘 살리고 모자라거나 잘못된 분은 착실히 개선해 나가는 일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그에 걸맞은 선진국형 지도자가 요구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식의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지도자가 얼마나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지는 충분히 절감했다. 나라의 안정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한 상식과 품위 있는 인격의 소유자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덕목은 인재등용의 안목과 공정이다. 사심이나 편견에 사로잡힌 소위 ‘캠코드’ 인사가 민심을 갈라놓고 국정을 망치는 걸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각 분야마다 내편 네편 가리지 않고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재들을 등용해 소신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맡기고 지원해야 한다. 수석이나 보좌관들도 눈치나 보고 아첨하는 자들이 아니라 언제든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인물을 골라야 한다. 특히 민감한 문제나 나라의 명운이 걸린 사항은 외부 전문가들까지 초청해서 며칠이고 밤샘토론이라도 벌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세계정세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거시적인 안목도 갖추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마음을 열어 놓고 배울 자세가 된 사람이라야 한다. 다행히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 중에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국민들의 의식과 수준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