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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부화하는 날들이여

등록일 2025-01-02 18:25 게재일 2025-01-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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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30일이나 31일씩 들어 있는 달력 한 장이 서른 개 들이 계란 한 판을 연상시켜서이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도 부화를 기다리는 유정란 열두 판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언젠가는 날마다 갈아 끼워야 하는 365일치 배터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정란이란 상상이 훨씬 더 유정(有情)하고 생기롭지 않은가.

하루에 한 알씩 부화를 기다리는 365일이 주어졌다는 생각은, 그냥 상상일 뿐이지만 삶을 한층 설레고 새롭게 한다. 모든 씨앗이 그러하듯 유정란은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발현을 꿈꾸는 가능태이다.

우리의 삶도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일 때 가장 의미 있고 벅찬 감동이 있지 않겠는가? 개미 챗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인 일상이지만 이렇듯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하루하루가 부화고 탄생인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시시각각 새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이 어느 날 새벽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붉은 해가 웅장한 자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많은 날, 해돋이를 보았건만 저 해는 지난날의 해가 아니다! 오늘 완전히 새로운 해가 뜨는구나.”

함께 정사(政事)를 논하던 신하 이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매일 새로운 해가 뜨기에 저 해는 만물을 기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왕은 놀라 신하에게 되물었다. “진정, 그렇구려! 그렇다면 짐은 어찌해야 저 해와 같이 만백성을 기를 수 있는가?”

이윤이 대답했다. “사람이 매일 새롭고자 한다면 책을 보는 것입니다. 매일 책을 보고, 매일 생각하며, 매일 현자(賢者)와 의논한다면 왕께서는 저 태양처럼 새롭고 매일 새로우며 또 날마다 새로울 것입니다.” 이 말에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 충언(忠言)을 잊지 않으려고 구리세숫대야에 새기도록 했으며, 매일 세수할 때마다 되새겼다고 한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즉, 진실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새로워야 하고 또 새로워야 한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30조 개 안팎인데, 그 중의 대부분은 80일 가량이면 새 것으로 교체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지만 노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하지만 늙어가는 과정이라고 새로움이 없는 게 아니다. 수백 년 된 고목에도 새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듯,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나 나날이 새로운 것이다.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로워 해가 바뀌어도 도무지 새해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그럴수록 우리의 모든 날들이 부화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도록 각오를 다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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