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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날아라, 부화하는 날들이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30일이나 31일씩 들어 있는 달력 한 장이 서른 개 들이 계란 한 판을 연상시켜서이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도 부화를 기다리는 유정란 열두 판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언젠가는 날마다 갈아 끼워야 하는 365일치 배터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유정란이란 상상이 훨씬 더 유정(有情)하고 생기롭지 않은가. 하루에 한 알씩 부화를 기다리는 365일이 주어졌다는 생각은, 그냥 상상일 뿐이지만 삶을 한층 설레고 새롭게 한다. 모든 씨앗이 그러하듯 유정란은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발현을 꿈꾸는 가능태이다. 우리의 삶도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일 때 가장 의미 있고 벅찬 감동이 있지 않겠는가? 개미 챗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인 일상이지만 이렇듯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하루하루가 부화고 탄생인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시시각각 새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삶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이 어느 날 새벽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붉은 해가 웅장한 자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많은 날, 해돋이를 보았건만 저 해는 지난날의 해가 아니다! 오늘 완전히 새로운 해가 뜨는구나.” 함께 정사(政事)를 논하던 신하 이윤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매일 새로운 해가 뜨기에 저 해는 만물을 기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왕은 놀라 신하에게 되물었다. “진정, 그렇구려! 그렇다면 짐은 어찌해야 저 해와 같이 만백성을 기를 수 있는가?” 이윤이 대답했다. “사람이 매일 새롭고자 한다면 책을 보는 것입니다. 매일 책을 보고, 매일 생각하며, 매일 현자(賢者)와 의논한다면 왕께서는 저 태양처럼 새롭고 매일 새로우며 또 날마다 새로울 것입니다.” 이 말에 왕은 크게 기뻐하여 그 충언(忠言)을 잊지 않으려고 구리세숫대야에 새기도록 했으며, 매일 세수할 때마다 되새겼다고 한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즉, 진실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새로워야 하고 또 새로워야 한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30조 개 안팎인데, 그 중의 대부분은 80일 가량이면 새 것으로 교체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하지만 노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간다. 하지만 늙어가는 과정이라고 새로움이 없는 게 아니다. 수백 년 된 고목에도 새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듯,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나 나날이 새로운 것이다. 시국이 하도 혼란하고 위태로워 해가 바뀌어도 도무지 새해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그럴수록 우리의 모든 날들이 부화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도록 각오를 다질 일이다.

2025-01-02

광화문 연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국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이 갖춰져야 한다. 1945년 8월 미국에 의해 해방이 되었지만, 38도선 이남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어서 일제에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1948년 5월 10일 유엔의 감시 하에 남한 지역에서 총선거가 시행되어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고, 동년 7월 17일 제헌헌법이 제정·공포되었으며, 7월 20일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국토, 국민, 주권은 물론 국회와 헌법과 정부를 두루 갖춘 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 해방공간에서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한 좌익운동가들과 동조하는 세력의 강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이란 인물의 투철한 반공정신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관철시킨 대업이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북녘을 장악한 김일성 일당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에 휘말리고 말았다.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의 신속한 개입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그때 없어졌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미국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수만 명의 꽃다운 목숨들을 희생한 것은 크나큰 빚이 아닐 수 없다. 6·25전쟁 후로도 김일성 일족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끊임없이 도발과 공작을 자행해왔다. 더구나 남한에도 김일성 일족을 추종·동조하는 무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을 견제하는 것이 곧 국가의 정체성과 안위를 유지하는 길이었고,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건국 70여 년 만에 세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기적을 이룬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자유민주주의국가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급기야는 체제전복의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공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들, 좌파 정권하에서 좌경화 된 세대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종북 좌파들에 대한 경각심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종북 주사파가 이끄는 좌파집단은 다른 나라의 좌파정당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북한의 사주를 받는 간첩들이 곳곳에 침투하여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암약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이 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운집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종교인들도 있지만 대개가 노년 세대다. 그들은 헐벗고 굶주리며 보릿고개를 넘어온 세대이고, 독일의 광산이나 열사의 중동, 베트남 전쟁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룬 세대이다. 그래서 마침내 풍족한 세상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게 뭐겠는가. 다만 이런 나라를 전복하려는 세력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마지막 소망이고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나가 목청껏 충정가를 부른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처럼 기꺼이 죽으리라.”

2024-12-26

광풍의 계절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복합지형인데다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바람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봄날 남쪽에서 불어오는 온화한 바람은 만물을 소생케 하고 여름엔 열풍이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쯤 천지를 뒤흔드는 태풍이 불기도 하고 겨울의 삭풍은 온 땅을 동토로 만들어 버린다. 오랜 세월 농경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그런 바람은 우리의 삶과 정서에 깊숙이 배어들어 민족적 기질이 되고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말에는 바람에 빗댄 말들이 많다. 신바람에서부터 한 때 유행하던 춤바람, 치맛바람이 있는가 하면, 바람맞다, 바람 넣다, 바람 타다, 바람 들다, 바람 잡다 등 여러 의미로도 쓰인다. 그 중에서도 신바람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질과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표현을 넘어 한민족의 공동체적이고 역동적인 성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상생활, 일, 놀이, 축제 등에서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이를 통해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는 낙관적인 태도를 내포하기도 한다. 매스컴이 발달된 현대에는 바람이 ‘여론’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각종 언론이 주도하는 여론은 때로 강력한 바람이 되어 사회나 국가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특히 모바일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론의 바람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거나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진광풍이 전역을 휩쓸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바람이다. 바람이 불면 대부분 민초들은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눕기 마련이다. 그래야 꺾이거나 뿌리 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바람에 합세하기도 한다. 그것은 거대한 세력의 일원이라는 뿌듯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정치적 바람은 항상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센 맞바람에 부딪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바람은 공기가 이동하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따뜻한 공기는 가벼워져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는 무거워져 하강하는데, 이로 인해 고기압 지역과 저기압 지역이 형성된다. 공기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바람이 발생하는데, 기압의 차이가 클수록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기간 바람이 불고 나면 차츰 기압차가 줄어들어 바람이 멎기 마련이다. 정치적 바람은 자연현상과는 달리 저절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고기압권을 형성해서 맞바람을 쳐야 기세를 꺾고 막을 수가 있다. 비상계엄 선포를 빌미로 재빨리 고기압권을 형성한 왼쪽바람이 일시에 전국을 강타한 것이 작금의 사태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오른쪽 세력도 만만치가 않다. 양대 바람이 서로 부딪쳐 일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이 어느 편에 더 많이 가담하는가에 따라 바람의 향방이 달라지고 그 결과는 선거에서 나타난다.

2024-12-18

역사의 한 페이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죽마고우들 몇 명이 모처럼 고향에서 만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6·25전쟁 중에 태어나서 7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실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혁신적이고 역동적이었다. 그 드라마틱한 세월을 각계각처에서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 세대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대한 감회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칠십여 성상을 지나는 동안 우리 고장도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도록 많이 변했다.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에 걸친 우리의 ‘국민학교’ 시절은 조선말기와 일제시대, 6·25를 거친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였다. 점심 도시락을 못 가져가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고, 미국이 원조한 강냉이가루로 찐 시루떡을 하나씩 받는 날은 그나마 허기를 면할 수가 있었다.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도 더러 있던 시절이었다. 1960∼70년대에 들어서는 혼·분식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쌀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보리쌀이나 좁쌀을 섞은 밥이나 국수, 수제비 같은 밀가루 음식을 적극 권장하는 정책이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무미일(無米日)로 정하고 식당에서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할 수 없게 했는데, 단속요원이 불시에 단속을 했고, 무미일을 위반한 가게를 신고한 사람에게는 5000원이라는 거액의 포상금까지 주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5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상당한 거금이었다. 가정에서 쌀로 술을 빚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열의 대상이었다. 식량부족을 해소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한 산아제한을 실시하기도 했다. 구호도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나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에서 ‘무턱대고 놓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로 격해졌다. 불임수술을 적극 권장하고 셋째 출산부터는 불이익을 주는 등 다분히 강압적이었다. 출산장려를 위해 매년 수십조 원을 쏟아 붓는 요즘에 비한다면 금석지감이란 말로는 모자랄 판이다. 1963년 제3공화국수립 후 공업국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미국 등에서 식량을 대량 수입하여 양곡부족을 해결하였다. 중·장기적으로 통일벼 등 벼품종개량과 비료·농약의 공급확대 등으로 식량증산에 매진한 결과 농민의 소득증대와 생활환경 개선이 진전되었고, 그에 따라 보릿고개도 쌀부족 현상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무엇보다도 ‘농촌사회에 팽배되어 있었던 봉쇄성, 숙명론적 체념성, 그리고 지역지향성 등을 극히 단기간 내에 전국적인 규모로 타파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국제적으로도 높이 평가되는 새마을운동이 가난퇴치와 함께 농민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젊은이들도 알아야 제대로 된 현실인식을 할 수 있을 터이다. 풍전등화로 위태로운 정국 앞에서 돌아다보는 역사의 한 페이지다.

2024-12-05

상식이 실종된 사회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특정 사회나 문화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지식이나 가치관을 상식(常識)이라 한다. 이는 개인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이해와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바람직한 상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먼저 각 사회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소속집단 내에서의 합의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공동체의식도 함양해야 한다. 물론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상식의 양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식이 실종된 사회라는 우려가 높다. 특히 정치인들의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행태는 사회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온갖 가짜뉴스와 감언이설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선동하여 확증편향에 빠진 맹신적 추종자들이 정치적 팬덤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곧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이념대립과 진영논리가 상식을 파괴하고 법치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편향된 논리는 법조계,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예술계 등 각 분야를 잠식해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막힌 사회를 만들고 있다.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고위층이나 지식층 인사들의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언행이 사회전반에 가치관의 전도와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판에 난무하는 적반하장, 내로남불, 후안무치는 이제 버젓이 상식인 양 횡행하고, 사회정의와 질서의 보루인 사법부도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재판절차와 판결로 양식 있는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법학교수였던 자가 법을 무시하는 언행을 예사로 하고, 성직자란 자들의 최소한의 도의도 갖추지 못한 행태도 비일비재한 사회현상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상식의 혼란과 위기가 오는 것은, 지나친 개인주의와 정치·사회적 분열로 공통된 가치와 규범을 약화시키는 경우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잘못된 정보가 상식처럼 퍼져서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를 원인으로 들 수 있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적 행동과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으로 상식의 기반이 되는 신뢰와 공감을 훼손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위해서는, 우선 교육과정을 통해 공감능력과 도덕적 판단력을 기르는 학습을 강화해야 하고, 법과 제도를 통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상식이 작동할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환경과 허위 정보에 대한 강력한 대응도 필요하고, 지역 단위에서 공동체의식을 키우고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국민 각자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상식을 가질 때 보다 밝고 안정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바로 서고, 언론과 종교가 제 구실을 하며, 법치가 확립 되어야 한다. 그런 선순환의 회로가 잘 작동해야 선진사회로 간다.

2024-11-28

정치판의 지각변동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 정치판은 상충하는 양대 지각판으로 형성되어 있다. 집권여당을 포함하는 자유우파가 한쪽 판이고 야당과 좌파들이 다른 쪽 판을 이루고 있다. 상당히 견고해 보이던 양쪽 판에 최근 들어 균열이 생기며 일대 지각변동이 발생할 조심을 보인다. 지난 15일, 이재명 더블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형이 선고되자 야권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만 확정되어도 국회의원직과 당 대표직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 대선보조금 434억 원도 반환해야 한다. 그리고 벌금형인 경우 향후 5년, 징역형일 경우 10년 동안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더구나 며칠 후에 열릴 위증교사혐의에 대한 1심 공판에서도 유죄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해서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은 이제 끝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장동, 위례신도시, 백현동의 개발비리혐의에다 성남FC 불법후원금, 불법대북송금, 법인카드 유용, 공무원을 사적으로 부리는 등 각종 직권남용혐의가 줄줄이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탄탄하게 뭉쳐있던 야당의 정치인들이 갈팡질팡 흔들릴 수밖에 없을 터이다. 여당과 자유우파 쪽에서도 상당한 균열과 혼란이 일고 있다. 한동훈이란 이름과 한동훈 대표의 가족들과 같은 이름으로 당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한 게시글들이 일파만파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하여 배우자(진은정), 모친(허수옥), 장인(진형구), 장모(최영옥), 딸(한지윤)과 같은 이름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비방·음해하고 한동훈을 찬양하는 글이 1000여 건이나 올라있다고 한다. 실명인증을 해야 당원게시판에 글을 쓸 수가 있다고 하니 그들이 한동훈 대표의 가족이 맞는지는 간단하게 확인이 될 일이다. 여섯 명 모두가 한 대표 일가족과 동명이인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다. 본인들이 직접 글을 쓴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그들의 명의로 당원 가입을 하고 게시 글을 작성했다는 얘기가 된다. 당원게시판에 1호 당원인 대통령과 영부인을 원색적인 막말로 비방·모욕하는 글로 도배한 것이 당대표와 그 가족들이라면 이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여론조작 등의 법적문제 이전에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열하고 사악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글을 올린 것과 문제가 불거지자 한꺼번에 사라지는 등 조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시판 관리자가 사실 여부를 밝히는 대신 게시글을 삭제하거나 검색을 할 수 없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짓을 하는 것도 의구심을 더 키운다, 경찰에서 수사를 착수할 것이라고 하니 조만간 진상이 밝혀질 것이다. 큰 지각변동이 있은 후에는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지는 게 자연현상이다. 정치판의 지각변동도 지금까지의 혼란과 부패의 지형을 뒤집고 사필귀정이라는 안정된 지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24-11-21

윤석열 대통령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어려서 백 환짜리 지폐에 그려진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을 본 후로 12명의 대통령을 더 거쳤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의 윤보선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고. 18년간이나 통치한 박정희 대통령은 흑백텔레비전 뉴스로 자주 보았다. 박 대통령 서거 후 권한대행을 거쳐 7개월 남짓 재임했던 최규하 대통령도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끝으로 소위 군사정권은 종식되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문민정부가 이어졌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주로 좌파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은 우파진영이 밀어서 대통령이 되었다. 지난 대통령들은 모두 결말이 좋지 않았다.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은 중도 하야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의 총탄에 서거했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후 감옥살이를 했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식들의 비리 문제로 임기 말년이 순조롭지 못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긴 했으나 수사를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중에 탄핵을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검찰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10일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동안 나름으로 국정에 전념해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무엇보다 큰 업적은 심각하게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잡은 노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정권이 다시 좌파 쪽으로 넘어가서 지금쯤 대한민국은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안보를 공고히 한 일이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한미일 공조가 그것이다. 한미연합 훈련을 재개하는 등 해이해진 군의 기강을 바로잡은 것도, 북의 도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도 행여 헛된 망상을 갖지 못하게 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이 망쳐놓은 원전생태계를 서둘러 복원한 것도 결코 적지 않은 업적이다. 그로 인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이 엄청난 국익창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국격을 높인 외교역량도 손꼽을 만하다.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란 조롱을 받으며 국제적 망신을 샀던 문재인 대통령과는 달리 당당하고 품격 있는 외교를 펼쳤다. 그 덕에 방상산업을 비롯해 조선이나 건설 같은 분야의 세계시장 진출에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한 게 없다는 국민이 70%이상이라고 한다. 임기 초부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야당·좌파의 악의적인 선동과 음해공작이 그만큼 먹혀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좌파무리들은 주말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의 위반이 있거나 권한을 남용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민들을 선동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게 저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코앞에 닥친 각종 사법리스크를 모면할 계기를 만들어 보려는 것인 줄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대다수 국민들의 각성이 있을 것이다.

2024-11-14

들꽃 산책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들길은 꽃길이다. 철따라 온갖 풀꽃들이 피고 진다. 나는 날마다 그 꽃길을 걸어서 들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한다. 들길 산책은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풀꽃을 만나는 기쁨을 빼놓을 수 없다. 꽃들은 언제나 나를 반겨 활짝 웃는 모습이다. 몰려든 군중들의 환호를 받는 유명인사의 기분이 어떤지는 몰라도, 풀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들길을 걷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고장은 기온이 온화한 편이어서 겨울에도 피는 풀꽃이 더러 있다. 개쑥갓이나 봄까치꽃은 혹한이 닥치면 잠시 움츠렸다가 조금만 기온이 올라도 무작정 꽃을 피운다. 물론 양지바른 둑길 밑을 눈여겨봐야 겨우 보이는 작고 희미한 꽃이다, 제철에 무리지어 화사하게 필 때도 좋지만, 삭풍을 맞으며 명주실오리 같은 겨울햇살을 부여잡고 간신히 피어있는 풀꽃이 더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크고 화려한 꽃보다 초라하고 가냘픈 겨울 풀꽃이 더 감격적인 것은 나뿐일까. 봄날엔 민들레가 이 들녘의 주인공이고 여름에는 개망초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미국쑥부쟁이가 주종을 이룬다. 가을이 깊어 추수가 끝나가는 들길에는 뚱딴지꽃과 왕고들빼기꽃이 눈길을 끈다. 돼지감자로도 불리는 뚱딴지는 해바라기과로 토양이 좋으면 3m까지도 자란다. 꽃은 작지만 해바라기를 닮았다. 이름이 뚱딴지인 것은 엉뚱하게도 땅속 덩이줄기가 감자를 닮아서 붙여진 거란다. 야생으로 많이 자라지만 당뇨 등에 약효가 있다고 재배를 하기도 한다.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피어 있는 샛노란 꽃은 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왕고들빼기 꽃이 지금 한창인 것은 여름 내 수시로 뜯어먹었기 때문이다. 왕고들빼기는 식용으로 용도가 다양하다. 봄에는 뿌리째 뽑아서 겉절이나 김치를 담기도 하고, 여름에는 순을 잘라서 생으로 쌈을 싸먹거나 데쳐서 무치거나 비빔밥에 넣으면 쌉싸름한 맛이 산나물 못지 않다. 잎이 자란 순을 자르면 얼마 안 가서 더 많은 순이 돋아나서 여름 내내 거듭해서 뜯어먹을 수가 있다. 연노랑 왕고들빼기꽃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생기를 더해가는 쑥부쟁이에 비해 연약해 보이는데, 아기의 배냇저고리처럼 포근한 느낌을 준다. 물론 그밖에도 빼먹으면 섭섭해 할 들꽃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여뀌꽃이다. 꽃이 붉고 잎이 매운 여뀌를 엮어서 문설주에 매달아 두면 역귀(疫鬼)를 물리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여뀌는 종류가 많은데, 그 중에서 붉은털여뀌와 흰여뀌가 가장 꽃이 탐스럽고 곱다. 이른 봄의 한 때를 장식하는 광대나물꽃과 흐린 날과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 메꽃, 달개비꽃도 들길에서 반갑게 만나는 친구들이다. 가을이 깊었다. 또 한해가 기운다. 올해도 나는 꽃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언제나 들꽃들이 반겨주어서 내 삶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남은 가을은 쑥부쟁이가 동행을 할 것이고, 겨울이 오면 늦게 핀 개쑥갓의 배웅을 받으며 이 해를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또 봄까치꽃이 또 마중을 나올 것이고. 내 생을 마치는 날, 나는 꽃길을 걸어서 한세상 지나왔노라고 말 하리라.

2024-11-07

이성(理性)과 합리(合理)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인류사회가 지금 이만큼 유지되는 것은 이성과 합리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종교적 신념이나 예술적 감성도 삶을 보다 깊고 풍성하게 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인간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합리를 먼저 꼽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성과 합리는 철학과 심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문제 해결, 개인의 판단력, 나아가 사회적·정치적 결정에까지도 깊이 관여하는 개념들로,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고 선택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두 개념이 서로 얽히고 맞물려 있지만, 그 차이와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성이란 논리와 객관적 사고의 근원으로 인간의 사유 능력, 즉 생각하고 논리적 결론을 내리는 능력을 말한다. 이성적인 사고는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감정보다는 논리와 근거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목표를 향해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성적인 사고의 장점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연관되며, 진실을 찾으려는 진중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성만으로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심리적 욕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합리는, 이성적 사고와 조금 다르게 현실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이라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의미한다. 합리적 사고는 대개 비용, 시간, 에너지 등의 자원 제한이 있는 현실에서 실용성을 강조한다. 합리성의 장점은 현실에 근거하여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실용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윤리적 가치나 인간의 감정과 같은 요소들을 놓칠 수가 있다. 이성과 합리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이성은 큰 그림을 보고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이론을 제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합리는 그 이론을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제공한다. 따라서 두 개념은 개인의 의사결정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정책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정국이 지금 극도로 혼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성과 합리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마땅히 폐기처분 되어야 할 구시대의 잔재가 21세기 첨단국가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창궐하고 득세하는 것은 도무지 이성적이 아니다. 더구나 온갖 범죄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당 대표를 ‘방탄’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이성이나 양심까지 팽개친 무리들이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 부디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줄줄이 이어지는 재판의 결과가 신속하고 엄정하여 이 광란의 시국이 평정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2024-10-31

사실과 소설, 그리고 진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사실(fact)이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나 현재 진행 중인 일을 말한다. 객관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현상이나 사건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항상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편향된 저널리즘이 그렇듯,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라도 순서나 빈도수, 취사선택 등에 따라서 얼마든지 왜곡이나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구(fiction)라고 한다. 사실이 아닌,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란 뜻이다. 사실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도 캐릭터들의 구체적인 언행이나 사건의 디테일 등은 작가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가진 진실을 보다 절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실체적 진실에 배치되는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 한국문학의 체면을 살렸다. 세계 10위권의 국력과 문화·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여태껏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적잖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을 통해서 정치·사회·문화적 문제를 조명하거나 인간의 보편적 진실을 탐구한 점과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세계적인 공감을 얻거나 영향을 미친 성과 등을 감안해서 주어지는 상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에 손색이 없는 문학인들을 여럿 꼽을 수 있다. 다만 그동안은 국력이 약한데다 언어적 한계 때문에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통로가 제한되어 있었다. 한강이란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그의 작품세계나 언행에 대해서는 유감을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분히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최대 비극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이은 분단과 6·25전쟁이다. 동족상잔으로 수백만의 희생자를 낸 6·25전쟁은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이 일으킨 참극이었다. 그것을 남의 대리전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 살상의 원흉인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제주도 4·3사건이나 광주 5·18사태를 소재로 한 소설도 이념적인 편향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작가가 목격을 했거나 검증이 되지 않은 유언비어성 소문들을 집중 부각해서 증오와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식의 표현은 소설적 픽션을 넘어 사실과 진실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반정부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참사였고, 광주 5·18사태도 무장시위대와 진압군의 대치에서 벌어진 비극이었지 양민을 무차별 살육했다는 건 진실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의 작품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으로부터 반쪽이나마 나라를 지켜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걸핏하면 양민이나 학살하는 야만적인 나라로 인식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기아와 폭정에 허덕이고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이야말로 민족 최대 비극의 현주소다. 올바른 역사관과 인간애를 가진 작가라면 무엇보다 우선 그것에 남다른 관심과 아픔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24-10-24

지금의 시대정신(時代精神)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한 시대의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을 시대정신이라고 한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처음 사용한 말로, 그는 인류 역사의 어떤 시대이던 간에 그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았다. 각 시대마다 역사적 배경, 문화적 변동, 사회적 변화 등과 관련하여 그 시대를 지배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것이 철학,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표출된다는 것이다. 2024년 지금, 우리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라야 하는가? 일제강점기에는 나라의 독립이 시대정신이었고, 해방 이후 제5공화국까지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당면한 과제였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한국의 시대정신은 포용과 다양성, 기술혁신과 인간성의 조화, 지속가능한 환경, 사회적 정의, 글로벌 시민의식, 정치적 성숙과 같은 가치들을 바탕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치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정국의 정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은 도무지 정상이 아니다. 입법부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국정을 마비시키고 사법부를 위협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된 야권은 애초부터 타협이나 공조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문재인정권 적폐에 대한 수사로 궁지에 몰린 야권·좌파 세력들은 활로를 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성질 고약한 놈이 장기를 두다가 외통수에 몰리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장기판을 엎어버리는 것처럼, 지금 야권이 짜낸 사법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전략도 아예 국정의 판을 엎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조기에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을 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없다. 그래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약한 고리’로 보는 김건희 여사다. 문재인 정권 때부터 법무장관들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직에서 내쫓으려고 탈탈 털었던 것도 김 여사였다. 김 여사의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 여러 가지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연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물러설 야당이 아니다. 기왕에 판을 뒤엎기로 작정을 한 이상 무슨 짓이든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경제든 안보든 위기가 닥쳐 국정파탄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래야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이재명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안중에 나라와 국민 따위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교통질서를 위해서 교통법규의 준수가 필요하듯,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치가 바로 서야 한다. 검찰과 사법부가 제 기능을 다해서 사법정의가 실현되면 부화뇌동하는 민심도 안정과 상식을 회복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절실한 시대정신이다.

2024-10-17

좌경화 한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이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는 유엔의 감독 하에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이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고, 8월 15일에는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고 국제사회에서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해방 직후 남한은 국민의 70% 이상이 좌익 편이었다. 그러나 반공주의자 이승만의 지도력과 미군정의 지원으로 좌파들의 반발과 저항을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좌·우의 갈등과 대립은 상존했고, 북쪽 공산군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게 되었다. 반공이 국가 존립의 근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학습한 셈이었다. 박정희 군사혁명위원회도 ‘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것을 ‘혁명공약’으로 명시했다. 지금 60대 이상은 초등학생 때부터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이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누기 뭐라 해도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들과 손잡은 결과이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나라들 편에 선 북한이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을 보더라도 자명한 결론이다. 그런데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학교교육에서 반공이 사라졌다. 누가 반공이란 말을 꺼냈다가는 ‘지금이 어느 땐데 색깔타령이냐’는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노동운동 등을 명목으로 반정부 투쟁이 잦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친공·사회주의자들이나 종북·주사파들까지 고개를 쳐들고 일어났다. 좌파세력이 집권을 하고부터는 반공교육 대신 오히려 사회주의교육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대학 강단과 서클에서 이념학습을 하고, 전교조를 통해 초·중·고에도 좌파이념이 주입되었다. 교육계, 노동계, 문화예술계에 침투한 좌파 이념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주도적 경향이 되어버렸다. 민노총이 장악하고 있는 노동계는 물론 지식인과 문화·예술인 치고 좌파성향이 아닌 경우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경화 되어갔다. 나라가 심각하게 좌로 기울어져도 자각증상이 없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고, 좌파 범죄 집단이 국회를 장악하고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들어도 먼 산의 불구경이거나 오히려 극력 지지하는 국민들이 과반수인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한 짓을 보더라도, 정권이 다시 좌파들에게 넘어가면 회복불능으로 기울어져 대한민국은 결국 침몰하고 말 것이다. 다시금 반공교육, 반공의식의 고취가 절실한 까닭이다.

2024-10-10

전향과 변절

김병 래수필가·시조시인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늙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 출처가 명확하진 않지만 프랑스와 영·미권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유행한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과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사회주의와 같은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지기 쉽지만,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 안정, 현실적 제약, 사회적 경험 등을 통해 점점 더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적 신념을 고수하는 것은 현실인식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풍자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인정할 리는 없지만, 아직도 좌우의 대립이 극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젊어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던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게 마련이다. 한때 운동권이었다가 전향을 한 사람들은 순수한 정의감과 사회개혁 의지로 치열하게 활동을 하다가 공산주의의 실상이나 좌익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에 실망해서 과감하게 행로를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전향을 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운동권 활동 중에 방화, 살인, 강도 등 범죄행위를 했거나 북한에 약점이 잡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문재인 정권에 이르는 동안 소위 운동권 세력들이 기득권이 되어서 보이는 행태는 그들에게 민주화운동이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민주화였는지 아니면 사회주의·공산화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종북주사파들 중에는 북한으로부터 자금과 지령을 받은 상당수가 노동계,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등에 침투하여 사회를 혼란케 하고 국가 전복을 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얼마 전에 타계한 장기표 선생을 비롯해서 김지하 시인, 김문수 장관, 강철서신의 김영환 같은 분들은 전향을 한 후 열성적으로 좌파들의 불의와 비리를 폭로·비판하는 운동을 해왔다. ‘타는 목마름으로’나 ‘오적’같은 시를 써서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에 저항을 했던 김지하 시인은 운동권의 학생들의 연쇄분신 파동을 보고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며 질타를 했고,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김문수는 우파 정치인이 되어 좌파들과 싸우고 있다. ‘강철서신’이란 문건을 작성·배포해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퍼뜨리고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던 김영환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보고 북한의 실상에 실망해서 전향을 했다. 지금은 오로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소위 민주화운동 세력들은 좌파정권의 요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했을 때 그들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들이 한 때 젊은 혈기로 저항하고 투쟁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억압 받는 국민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진영논리와 정치적 야욕에 빠져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에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자들이다.

2024-10-03

한가위를 앞두고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있다. 요즘도 더러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아마도 젊은이들은 이 말 속에 담긴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의식주가 너무 열악하던 시절의 사정을 먹을 것 입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의 아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6·25전쟁을 전후해서 태어난 우리 세대는 전화(戰禍)가 휩쓸고 간 초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꽁보리밥·나물죽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고, 끼니때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도 있었다. 하지만 궁핍한 살림에도 한가위 명절만은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마련을 하였다. 쌀밥과 떡, 생선, 과일을 먹을 수 있었고 새 옷이 아니면 양말이라도 새 것으로 신을 수 있었다. 국민소득이 1000불에도 못 미쳤고 100억 불 수출은 원대한 꿈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조로 아사(餓死)를 모면하고 국토 재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부국이 되었고 여섯 번째로 꼽히는 강대국이 되었다.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만도 한 둘이 아니다. 원전,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배터리, 전자제품 및 IT산업, 방위산업, K-문화콘텐츠산업 등 실로 기적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발전을 했다. 이제 한가위는 새 옷을 입고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기다려지는 명절이 아니다. 초등학교도 겨우 마치고 도시로 나가 공돌이 공순이가 되었던 우리 형제·누이들이 오랜만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귀향하는 그런 명절도 아니다. 흩어졌던 가족·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고 유대를 돈독히 하는 풍습도 차츰 희석이 되어간다. 대신 모처럼의 연휴를 해외여행의 기회로 삼는 일이 많아졌다. 연휴기간이 길었던 작년 추석에는 국외로 여행을 떠난 인구가 무려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의 뜻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겠다’는 김일성 일족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물론 당 간부들이나 평양시민들처럼 호의호식하는 부류가 없지 않겠지만, 대다수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을 탈북자들이 증언하고 있다. 같은 땅 같은 민족인데도 이렇게 극심한 격차가 벌어진 까닭은 그야말로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명한 현실을 두고도 종북·주사파 같은 자들이 아직도 날뛰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도 덜도 말고, 밥이야 떡이야 실컷 먹을 수 있는 한가위만 같기를 바랐던 세대는 여한이 없도록 소원성취를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의 반쪽인 북녘 동포들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도록 통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일성 일족의 세습왕조를 종식시키는 일에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피땀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와해하고 전복하려는 무리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용공·종북 세력들이다. 국민들의 각성과 의지로 이 난관 또한 돌파할 것으로 믿는다.

2024-09-12

여름 가고 가을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한낮에는 여전히 30℃를 넘는 폭염이다. 지난여름은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평균기온을 기록할 정도로 더위가 심해서 기상이변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 우리나라 정국(政局)이 그런 날씨를 많이 닮았다.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이 바뀐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좌파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국회를 교두보로 현정권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고 온갖 패악질로 정부 정책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 고유권한인 특검(특별검사제)과 탄핵 발의를 남발해서 정부기관을 마비시키고, 검찰과 사법부까지 협박하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저들의 당대표를 수사하는 검사들을 탄핵하고, 노조에 장악된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막기 위해서는 연거푸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를 사퇴시키더니 결국 이진숙 위원장을 탄핵소추 해놓고 있다.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어떻게 정부를 방해하고 위협하고 공격할 수 있는지를 철저하게 보여주는 세계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계절이든 역사든 거꾸로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연일 열대야를 이어가던 밤 기온은 이제 제법 선선해졌고, 들판에 나가보면 벼들이 벌써 고개를 숙이고 영글어 간다. 고추가 빨갛게 물들고 코스모스도 피기 시작한다. 정치권에도 늦게나마 계절이 바뀌고 있다. 사법부의 수장이 바뀌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지난 정권이 임명한 판사들도 하나씩 교체되고 있다. 하지만 방문진 신임이사 임명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인용 판결을 내린 것처럼 아직도 지난 계절의 잔재처럼 일부 남아서 사법체계를 어지럽히는 판사들이 없지는 않다. 지난 정권 비리의 수사를 막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원석 검찰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정치권의 범죄 수사가 한층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가 된다. 사실 문재인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전광석화처럼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박근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탈탈 털어서 사법처리했다. 그래 놓고 정작 자신은 온갖 의혹이 있음에도 2년이 넘도록 수사 한번 받지를 않다가 최근에 와서야 딸과 관련된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 문재인 정권의 비리와 범죄혐의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심대하다. 가장 심각한 적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들고 국방과 안보를 무력화한 것이다. 국정원과 군기무사의 기능을 축소·박탈하고 정기적인 군사훈련조차 폐기하는 등 주적인 북한에 대해 거의 무장해제를 한 수준이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해수부 직원 피살 방치 같은 반인권적인 작태에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생태계를 파괴하여 막대한 국익손실을 끼친 것, 울산시장선거 개입과 옛 사위의 이스타항공 취업 관련 뇌물수수 혐의도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다. 아무튼 시원한 가을바람이 후텁지근한 여름의 열기를 날려버리듯,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으로 지난 적폐를 일소하여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른 정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만치 가을이 와 있다.

2024-09-05

모함의 정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치판에서 정적(政敵)을 제거하는데 모함(謀陷)을 하는 것만큼 손쉬운 수단은 없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모함으로 정적을 제거한 예는 무수히 많을 것이고, 그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뀐 것도 부지기수일 터이다. 특히나 공산주의혁명처럼 일거에 정세를 장악하기 위해서 수많은 정적들을 한꺼번에 숙청할 때 가장 유효하게 쓰이는 것이 모함전략이다. 소련의 스탈린이나 중공의 마오쩌둥, 북한 김일성의 정략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모함을 하고 누명을 씌우면 해를 입지 않을 인물이 없다는 걸 역사가 잘 말해준다. 성인(聖人)으로 손꼽히는 소크라테스와 예수도 사실이 아닌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다. 소크라테스는 신성모독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받았고, 예수는 유대 당국에 의해 로마에 대한 반역의 주모자로 고소를 당해 십자가형을 받았다. 성웅으로 불리는 이순신도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을 당했고 프랑스를 구한 잔다르크도 마녀이자 역적으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파 세력들에 의해 모함의 정치가 판치고 있다. 그들은 오랜 학습과 경험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대세를 장악하는데 모함만큼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작은 꼬투리만 있어도 침소봉대하거나, 사실을 왜곡·조작하여 가짜뉴스로 만들어 내고, 자신의 죄를 적반하장으로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상당수 국민들은 ‘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며 휩쓸리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큰 모함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친일 반역자이자 독재자로 몰아간 것이다. 물론 그분들에게도 공과가 있겠지만, 과가 둘이면 공은 팔이라는 게 국내외 양식 있는 논자들의 평가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거나 적으로 간주하는 세력들이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활동하는 바람에 국민 대다수가 좌경화 되어 대한민국의 근간을 훼손하고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함의 정치가 판을 치는 나라가 위태롭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상식과 분별을 상실한 대다수 국민들이 모함과 조작과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온갖 반국가적이고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대거 국회에 몰려들어 나라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특히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세대가 전교조에 의한 좌편향 교육을 받고 잘못된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진 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노릇이 아니다. 그들이 가담한 사법부와 언론과 교육계가 국가의 기강을 흔들고 민심을 어지럽힌 과오는 이미 뿌리가 깊다. 결국 새로운 세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그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갖도록 교육 현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 전반에 창궐해 있는 몰상식과 비이성, 반지성, 비윤리, 불순한 사상이 청소년들에게 침윤되지 않도록 교육을 바로 잡는데 민의를 모으고 국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불순분자들이 교육현장을 오염시키는 걸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24-08-29

아직도 친일몰이, 피해망상인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해를 입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나 생각을 가지는 심리적 상태를 피해망상(被害妄想)이라 한다. 이는 정신질환의 주된 증상 중 하나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나타난다. 유전적 요인도 있고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뇌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유발될 수도 있다. 심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원인일 수도 있고 약물남용이나 신체적 질병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피해망상의 주요 증상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격, 감시, 음모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거나 속이거나 이용하려 한다고 믿는가 하면, 주변의 사소한 일에도 자신을 겨냥한 의도적인 공격이나 비난이 있다고 느껴서 과민반응을 한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CCTV를 설치하는 등 비정상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일제의 식민통치 기간 우리 민족이 직간접적으로 받은 고통과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나 일제에 대항해 싸우다 순국하신 분들과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옥살이를 하신 분들, 그 유족들의 원한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일제의 죄악상을 낱낱이 밝히고 항일투쟁을 하다 순국하셨거나 고초를 겪으신 분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와 보상도 마땅히 따라야 한다. 역사적 사건의 진상은 학자들이 철저히 규명할 일이고, 개별적이고 개인사적인 일들은 문학작품 등을 통해 조명되기도 했다.올해는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79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제 일제의 식민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80세 이상 되는 노인들 뿐이다. 그분들 중에는 아직도 상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분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방심하다가는 또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을 추월하는 단계에 이른 지금도 그런 우려를 하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그런데도 친공·좌파들은 아직도 일본에 극도의 피해의식을 가진 것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일제의 식민지라는 착각에 죽창이라도 들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좌파들의 친일몰이는 그런 피해망상이나 위기의식은 아닌 것 같다.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수시로 친일몰이를 꺼내드는 것은 궁지에 몰린 국면을 뒤집어 보려는 교활한 수작인 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프랑스와 독일이 지금 우방으로 지낸다고 침략전쟁의 과거를 잊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정책도 일제의 침탈을 망각하거나 용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좌파 정치인들이 당면한 사법리스크 방탄용으로 써먹는 친일몰이에 현혹되어 퇴행적 과거집착에 함몰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오로지 새로운 역사를 쓸 때다.

2024-08-22

비상시국(非常時局)을 넘어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지식이나 판단력을 상식(常識)이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상식이 성립하려면 물론 인권, 자유, 평등, 정의, 존엄성, 연대와 협력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고 비정상적인 사회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좌파 정치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보이고 있는 무법과 몰상식한 행태는 국기를 문란케 하고 나라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대규모 민중 시위로 정권을 무너뜨린 여세를 몰아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자유우파를 말살하는 정책을 서슴지 않았다. 압도적 다수의석을 확보해 입법부까지 장악한 것에 이어 공영방송과 사법부까지 손아귀에 넣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방향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몰아갔다. 아무리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고 경제를 파탄내고 안보를 포기해도 포퓰리즘과 선전·선동에 현혹된 국민들은 끝까지 지지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문재인 정권에 굴종하지 않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자유우파 후보로 나와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무엇보다 상대편 후보인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워낙 막중해서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차마 그것까지 싸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또다시 좌파 정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속출했다. 범죄 전과자들과 재판이나 수사를 받고 있는 범죄 혐의자들, 반국가적 용공분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도 비상시국이다. 문재인 좌파정권이 들어서고부터 법치와 상식이 무너진 비정상적인 나라가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그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와해시키고 친북·용공 사회주의로 몰아가려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신념과 결단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 이승만 대통령과 반공을 국시로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 독재자로 매도하기에 혈안이 된 것이다. 불과 0.73% 차이로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나라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작금의 비상시국을 타개하려면 우선 나라가 비상사태인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범죄자들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검찰을 때려잡겠다는, 법치가 무너지고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서 어찌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구현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검찰과 사법부가 물갈이를 해서 좌편향 판·검사들이 사법체계를 흔드는 불상사는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온갖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의 정상화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은 공영방송이 날조·왜곡·편파·조작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세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법치를 바로 세워 정치판 범법자들의 사법처리를 조속히 완결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면, 미래학자들과 예언가들이 전망한 대로 대한민국은 통일이 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나아갈 것이다.

2024-08-15

별 볼 일 없는 세상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하늘나라 천제(天帝)의 손녀인 직녀는 길쌈을 잘 하고 부지런하였다. 그런데 은하수 건너편의 ‘하고(河鼓)’라는 목동(견우)과 혼인을 하고는 신혼의 즐거움에 빠져 맡은 일을 게을리 하였다. 그것을 알고 크게 노한 천제는 그들을 은하수 양편으로 갈라놓고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일에만 만남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은하수를 건널 수 없어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까마귀와 까치들이 몸으로 다리(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가 상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오는 칠석날의 유래다.이 설화의 발생 연대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후한(後漢) 때에 만들어진 효당산(孝堂山)의 석실 속에 있는 화상석(畵像石)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발견되고, ‘시경 (詩經)’의 시구에도 은하수와 직녀성, 견우성이 나온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진(晉)나라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광개토왕 18년에 축조된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고분 벽화에서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소를 끌고 가는 견우와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사’에 공민왕이 몽고인 왕후와 함께 안뜰에서 견우와 직녀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선사시대 유적인 암각화에도 별자리가 새겨진 걸 보면, 하늘의 별들이 옛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양에서는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지나는 경로를 12개의 별자리로 나눈 ‘황도 12궁’이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기원하여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점성술의 요소가 되었다. 중국에서도 예부터 천체를 3원 28수로 구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선사시대부터 천문현상에 관심을 가진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는 천문관측이 나라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는 것을 여러 시설과 기록으로 알 수 있다.인공의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별을 쳐다볼 일이 별로 없다. 간혹 밤하늘을 쳐다보아도 희미해진 별빛이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늘 별을 쳐다보며 살았다는 걸 실감하지 못 한다. 어쩌다 산간오지 같은 데 여행을 가서 밤하늘을 쳐다보게 되면 하늘에 저렇게 별이 많고 밝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 중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서 밤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한천공 열려있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에 대한 신비로움이 정서의 한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현대인들은 현란한 문명의 불빛을 선택한 대신 별빛을 잃어버렸다.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며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신비와 경이로움에 젖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잠이 드는 게 현실이다. 문명이 가져다 준 온갖 쾌락과 안락이 그야 말로 ‘별 볼 일 없는 삶’은 아닌가. 밤하늘의 은하수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을 앞두고 문득 해보는 생각이다.

2024-08-08

묵정밭 여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묵혀둔 논밭이 더러 보인다. 한 뼘의 땅도 놀리지 않던 시절과는 달리 농지에 대한 애착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물론 땅을 농토로 보는 것과 부동산으로 보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순수한 농지로서의 땅은 이제 효용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 옛날에는 논 열 마지기만 있어도 밥 굶을 걱정은 없었는데, 지금은 열 마지기(2000평) 쌀농사 지어봐야 순수익이 고작 378만원 정도라고 한다.대신 열 마지기 벼농사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못자리부터 추수까지 전 과정이 기계화 되어 사람 손이 직접 닿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대신 소득도 적어서 농사짓기를 달가워하지 않아 직불금이라는 것까지 주면서 장려를 하는 형편이다. 우리의 주식인 쌀의 재배가 자꾸 줄어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 나중에 식량난에 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지를 소유하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경작을 하지 않으면 강제매각 등의 벌칙이 가해진다.아무리 옥답이라도 한 해만 묵히면 길길이 풀들이 자란다. 바람에 날아온 풀씨, 물에 떠내려 온 씨앗 등이 제초제의 박멸이 없어 발아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풀씨 중에 가장 이동이 자유로운 것이 쑥, 망초, 민들레 같은 국화과 식물이다. 씨앗에 솜털이 붙어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다. 벼과 식물 중에도 억새나 갈대처럼 씨앗을 바람에 날리는 종이 있지만 묵혀둔 땅에는 쑥이나 망초가 선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에 떠내려 온 피나 둑새풀 씨앗이 논을 점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묵정밭의 식물 종은 다양한 생태계를 형성한다.내가 지나다니는 들길 가의 묵정밭은 벌써 여러 종의 풀들이 어우러져 있다. 쑥과 망초, 개망초, 명아주, 고들빼기, 민들레, 지칭개, 보리뺑이, 여뀌, 피, 미국쑥부쟁이, 토끼풀…. 눈에 띄는 대로 세어도 십여 종이 훨씬 넘는다. 묵정밭에서는 주종이 따로 없다. 모두가 잡초의 누명을 벗고 당당하게 제 이름으로 산다. 영토 경쟁을 하면서도 결국엔 무성한 풀밭을 이룬다. 가장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인 셈이다.인간의 손길을 벗어난 해방구인 풀의 공화국 앞에 가끔씩 발길이 머문다. 지금도 농부의 눈길로 보자면 마땅치 않겠지만 배고프던 시절에는 저렇게 묵혀둔 전답을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지청구를 했다. 당장 허기가 지면 멀리 내다볼 겨를이 없게 마련이지만, 지금은 배가 불러서 벼들이 잘 자란 논보다도 이렇게 묵혀둔 논에 더 눈길이 간다. 자연생태계니 환경보호니 하는 말들도 절대빈곤 앞에서는 무색해지는 것이다.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도 이 묵정밭 같으면 좋겠다. 각양각색의 풀들이 공존하지만 계절이라는 대의에 수렴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모습일 터이다. 통탄스럽게도 우리 국회는 전횡과 독단에다 횡포를 일삼는 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범법자들의 방탄을 위한 폭력배들의 소굴에 민생 따위가 안중에 있을 리 없다. 국민들의 자업자득이다.

2024-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