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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을은 오는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처서 지난 들녘에 가을빛이 어린다. 일제히 벼가 패고 빨갛게 고추가 익어간다. 호박도 누런 배를 드러내고 이따금 메뚜기가 날기도 한다. 한낮은 여전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저녁에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계절이 바뀌는 자연현상이 우리 삶을 한결 수월케 한다. 엄동설한도 때가 되면 물러가고 삼복더위도 때가 되면 지나가는 자연의 섭리가 내면화 되어, 고난과 역경에도 쉽사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내성을 갖게 된다.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그것이 가을을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엔 겨울을, 겨울엔 봄을, 봄에는 여름을 설레는 기대로 맞게 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여름의 불볕더위가 가을을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춘하추동은 얼마나 생동적인 순환인가. 이 여름의 막바지에서 누군들 황금빛 들판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손짓하는 가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지 않을 것인가.유감스럽게도 인간사회의 계절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지난 정권 동안 줄곧 불어대던 북서풍이 아직도 다 가시지를 않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민심의 풍향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계절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법부의 수장이 아직 계절의 변화를 막고 있고, 방송계도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 가는 추세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은 소강상태이나 머지않아 바람의 방향도 북서풍에서 남동풍으로 바뀔 것이다.공산사회를 흔히들 동토(凍土)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얼어붙은 땅이라는 말이다. 그 종주국 소련과 중국에는 해빙의 바람이 불어 어느 정도 눈이 녹고 얼음이 갈라지는 계절의 변화가 있었다. 북한만이 유일하게 동토를 유지하고 있다. 그 냉동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돈과 인력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불어오는 북풍에 남한의 일부까지 냉해를 입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하지만 요즘은 정보화 시대라 북한에도 다양한 경로로 바람이 새어들고 있다고 한다. 냉동고에 구멍이 뚫리면 얼음이 녹을 수밖에 없듯이 머지않아 김정은 일당이 쌓아놓은 빙벽도 결국은 녹아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북서풍은 멎을 것이고 남한에도 온전한 계절이 올 것이다. 북서풍이란 물론 북한과 중국의 영향을 말하는 것이고 반대로 남동풍이란 자유진영의 바람을 일컫는 것이다. 최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도 바로 그 남동풍이 될 것이다.여름이 막바지에 다다랐듯 좌파들의 몰락도 머지않은 것 같다. 좌파정당 대표가 열 가지도 넘는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서 좌파정권 때 임명한 대법원장의 임기도 끝나가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공영방송국 이사진까지 개편되면 명실상부 다른 계절이 될 것이다. 아니 하나가 더 남았다. 내년 총선에서 자유우파가 과반수를 확보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법 개정이 가능한 의석을 얻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북서풍이 겨울을 몰아오고 남동풍이 봄을 데려오듯 민심의 향방에 국운이 달렸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불어가는 바람인가.

2023-08-24

전라도 시인 정재학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이름난 시인들 중에는 전라도 출신이 많다. 한국 현대시단의 거목으로 꼽히는 서정주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이고, 여러 번 노벨상 후보로 올랐던 고은 시인은 전북 옥구군,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던 김지하 시인은 전남 목포가 고향이다. 그 아래로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군,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의 풍자시로 주목을 받은 황지우 시인은 전남 해남군, 농촌시의 일가를 이룬 고재종 시인은 전남 담양군,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해진 박노해 시인은 전남 함평 출신으로, 모두가 한국 시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시인들이다.요즘 ‘전라도 시인 정재학’이란 이름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걸 더러 보게 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말고는 출신지가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는 시인이 없었는데, 굳이 ‘전라도 시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프로필에 따르면, 정재학 시인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전라도 지역을 전전하며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가 가졌던 ‘전교조추방시민연합 공동대표’라는 직함은 그의 교직생활이 평탄치 못했음을 짐작케 한다. 사실 그는 문학 쪽보다는 보수우파 논객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해온 모양이다.전라도에서 태어나 살면서 전교조추방운동을 하고 보수우파 논객으로 활동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터이다. 편지 형식으로 쓴 어떤 글에서 그는 그 고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전교조의 해악을 알던 2002년부터, 이 길에 들어서서 싸워왔고, 그리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여생(餘生)을 아내에게 부탁하고 있네. 고소만 무려 20여 차례. 매일 대문 앞에 우체통에 검찰청, 법원에서 날아오는 붉은 줄 쳐진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은 내 심정을 알 것이네.”그는 무엇 때문에 자청해서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것일까. 누구 못지않게 조국과 전라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들과 제자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전라도가 종북좌파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그 해악이 전 국민에 미치는 걸 두고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발소 아저씨도, 국밥집 아주머니도, 국밥집에서 만나는 지인들도’, ‘국회의원부터 자치단체 기초의원까지 모조리’ 좌파정당 일색인, ‘저울의 평형을 상실한 채, 한쪽으로 기울어진 논리와 주장으로 살아가는 곳’ ‘정치이념의 일방통행만이 허용된 곳’에서 자유우파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다.전라도가 좌경화된 주된 원인은 ‘멸시와 천대’에 대한 뿌리 깊은 원한과 분노라는 것이 정재학 시인의 진단이다. 그 피해의식과 적개심을 파고든 것이 바로 종북좌파세력이라는 것이다. 통일보다 더 크고 간절하고 시급한 소원이 국민통합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빨갱이들을 호남민중과 분리시켜야한다’는 주장이다. ‘전라도 내에 기생하는 북한추종세력들은 전라도 자유우파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전라도 출신 자유우파를 결집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쪼록 많은 전라도 출신들의 적극적 호응을 기대한다.

2023-08-17

노인을 멸시하는 좌파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는 상고시대부터 경로효친(敬老孝親)의 전통이 있었다. 단군신화나 지석묘 등에 반영된 조상숭배사상을 엿볼 수가 있고, 유교의 효(孝)사상이 유입된 삼국시대부터는 세속오계(世俗五戒)와 같은 체계적인 실천덕목으로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특히나 조선시대에는 효사상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었다. 그래서 전래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칭송과 함께 유교적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나라로 불렸다.경로효친은 우리 민족이 농경사회로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윤리체계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이란 의식이 바탕이 된 사상일 터이다. 친인척이 아닌데도 노인들을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로 호칭하고, 부모 뻘의 연세이면 아버지 어머니로, 비슷한 연배들 간에는 언니 오빠 형으로 부르는 언어습관에도 그런 피붙이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까지 한 집에서 살던 가족형태가 소위 핵가족으로 분화되어 가족관계의 붕괴와 함께 연장자에 대한 권위나 존경심도 희박해져 갔다. 더구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오늘날에는 노인들은 시대에 뒤처진 구닥다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수천 년 이어온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의 경험과 경륜이 삶의 지혜이고 능력이었지만, 지금은 가전제품 하나 작동하는 것도 일일이 손자들에게 물어야 하는 처지이니 무엇으로 권위를 찾겠는가.얼마 전에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장이란 이가 노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청년들과의 좌담회 자리에서 “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하게 해야 한다”는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한 것이다. 같은 당 양이원영이란 의원도 “지금 투표하는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오래 살아있을 청년과 아이들이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들었고, 윤형중 혁신위원회 대변인도 양이 의원의 주장을 두고 “발언의 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한 그런 글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두둔하고 나섰다.그들의 발언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노인세대를 멸시하는 패륜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야당을 비롯한 좌파들이 노인을 비하하고 멸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년층에 우파들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좌파 정치인들은 젊은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인비하를 서슴지 않는 것이고, 그런 선동에 물들어 좌경화된 젊은이들은 ‘꼰대’니 ‘틀딱’이니 하면서 노인들을 멸시하고 혐오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치적 이득이나 표를 모으기 위해서는 패륜쯤은 아랑곳없다는 것이 좌파들의 인성인 것 같다.권력을 위해서 친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한 북한의 김정은을 추종하는 주사파들을 위시한 좌파들에겐 이념이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는 인륜이나 법질서쯤은 짓밟아도 된다는 걸 보여준다. 그럴수록 노인세대가 더욱 분발하여 국가와 미래를 위한 마지막 충정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수호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2023-08-10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다. 호박잎이 축축 늘어지고 뿌리가 얕은 풀들은 말라간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척박한 땅의 풀들부터 말라 죽고 말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열악한 생활환경의 사람들이 기상이변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이 여름에도 에어컨이 없는 골방에서 더위를 견디고 있는 노약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여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런 희망의 이정표이기나 한 듯 저만치 입추와 말복이 다가오고 있다.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희망의 밧줄처럼 붙잡게 되는 말 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이 있다. 유대인들의 신앙교육서인 ‘미드라시’에 나오는 이야기가 어원이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다 내가 전쟁에 이겨서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새겨 넣을 마땅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것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좋은 상황에서도 교만하지 않을 경구로 삼은 다윗왕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주로 역경에 처한 사람들이 위안으로 삼는 말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많이 나아졌는데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비관하고 좌절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스스로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절망적 상황도 또한 지나갈 것이란 말이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될까.얼마 전에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던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교사의 꿈을 이루었을 터인데, 불과 두 해도 되지 않아 목숨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박할 압박과 고통이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교육 현장에, 시간이 흐른다고 지나갈 일회성이 아닌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병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어떤 상황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게 마련이라는 의미로는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도 있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이 말은 과학적 진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양자물리학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은 비었다(空)고 한다. 물질의 기본요소인 원자의 경우 알갱이의 존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규명이다. 그것은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상통하는 말이다. 존재의 주체인 나(我)라고 내세울 본질이 없다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세상에 고정불변이란 없다는 말이고, 절망이든 고통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절망의 굴레를 벗고 죽음을 받아들일 여지는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한 보다 깊고 넒은 통찰력과 굳센 삶의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2023-08-03

기상이변과 치산치수(治山治水)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전국 곳곳에 엄청난 폭우의 피해가 잇달았다.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이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사전대비가 부실한 탓도 없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각종 재난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선진국 여부를 가름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자고로 현명한 지도자들은 치산치수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았다. 중국 전설상의 우왕이 태평성대를 이룬 군주로 칭송받는 것도 치산치수를 잘 해서였다. 조선 말기까지 우리나라의 치산치수는 아주 열악한 형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정조 임금도 “며칠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고,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아도 가뭄이 되는데, 이 모두가 산에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탄식을 했을까.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대규모 조림사업과 하천개수사업은 그나마 계획적인 치산치수사업의 시작이었다. 해방 후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와 사방사업은 오늘의 대한민국 근간이 되는 또 하나의 치적이었다. 1970년대 이전의 헐벗은 민둥산을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은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지금의 산들을 보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을 터이다.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정책에 버금가는 치수정책이었다. 그 사업이 원만히 이루어져 지천의 정비까지 완성이 되었더라면 가뭄과 홍수의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4대강사업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기간사업이었지만 처음부터 반대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김영삼·김대중을 비롯한 야권인사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우면서 방해를 했던 것 못지않은 저항이 있었다. 그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을 밀어붙인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은 치적으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당시의 야권과 환경단체 등 좌파들은 나라를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난리를 쳤고, 그런 선동에 넘어간 대다수 국민들도 4대강사업이 국고만 낭비한 무모한 사업인 줄로 알았다.문재인 정권은 5년 동안 나라의 근간을 허무는데만 골몰하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는 것도 모자라 원전이나 4대강보 같은 중대한 국가 기간산업과 시설까지 파괴하려고 온갖 구실을 만들어 냈다.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을 조작하고 그 자료까지 폐기한 사실은 감사원의 감사를 통해 밝혀진 바다. 4대강보 해체를 위한 음모도 다르지 않았다. 평가 위원회를 구성할 때부터 해체를 반대하는 인사들을 배제 하고 평가 내용을 조작하는 짓을 저질렀다. “아무 생각 없는 국민들이 들었을 때 ‘그게 말이 되’라고 생각 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이유이고 논리였다.거듭하는 말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치산과 이명박 대통령의 치수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튼실하게 하는 역사적인 업적이었다. 아직도 그걸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노무현의 봉하마을은 성지가 되고 문재인의 양산 책방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데, 청개천 복원과 4대강사업이라는 치적을 남긴 이명박의 기념관이 있는 포항 덕실마을은 한산하기만 하다.

2023-07-27

난세의 영웅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국(政局)이 몹시 혼란하다. 난무하는 유언비어와 괴담에 부화뇌동하는 무리가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 국가의 흥망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만 혈안이 된 정치꾼들이 온갖 음모와 협잡으로 국민들을 선동하여 적개심과 분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숱한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야당 대표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 반정부투쟁에 영혼을 판 종북좌파들이 퍼뜨리는 악의에 찬 괴담과 루머는 극심한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대한민국 국민들이 괴담이나 유언비어에 취약한 까닭은 뿌리가 깊다. 조선말기의 가렴주구와 일제 식민통치의 억압과 굴욕, 좌·우 이념투쟁과 동족상잔의 전쟁 등으로 누적되고 잠재된 불신과 적의가 작은 충동에도 기폭제가 되어 쉽사리 폭발하는 것이다. 온 나라를 불안과 공포의 광란으로 들끓게 했던 광우병 괴담과 사드전자파 괴담, 요즘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꼬투리만 있으면 전염병처럼 괴담이 퍼져 온 나라가 들끓는다. 나라가 이렇게 흉흉해진 것은 극심한 좌·우의 대결 때문이다. 동족을 살상하는 전쟁을 일으키고 아직도 적화통일을 노리는 북한의 세습체제가 상존하는 한, 종북주사파들이 주축이 된 좌파들과 자유우파는 공존할 수가 없다. 북한의 세습체제에 동조하는 좌파집단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우파정권을 타도와 탄핵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한 타협이나 공조의 여지는 없는 것이다.좌파 정권 5년 동안 그들은 국익이나 민생에는 아랑곳없이 우파를 말살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좌파들의 세상 만들기에만 전념했다. 그러다보니 내세울 만한 공적은커녕 곳곳에 파괴와 파탄이 속출하고 제 잇속 챙기려는 부정과 비리가 만연했다. 그들의 전략은 오로지 루머와 괴담을 퍼뜨려 혼란과 공포분위기를 조장해서 무능과 비리를 호도하고 국고를 거덜내는 포퓰리즘으로 민심이반을 막는 거였다. 그런 실상을 낱낱이 밝혀 민심을 바로잡는 것이 그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우선 과제이다.세계 최빈국에서 십위권 경제대국에 올라선 것을 두고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그 기적은 물론 저절로 굴러온 것이 아니라 혁신적 비전과 의지와 노력의 결과다. 척박하고 혼란한 처지를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이룩한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의지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이 그러하고, 피폐하고 지리멸렬해진 민심을 다잡아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도 영웅이었다. 그 분들이 영웅인 까닭은 북한의 김일성과 비교해보면 극명해진다. 주민들을 굶겨 죽이는데도 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김일성 일족에 비한다면 영웅 칭호로도 오히려 부족한 것이다.대한민국은 지금 궁지에 몰린 좌파들의 극렬한 저항과 난동으로 난국에 처해 있다. 그들에 맞서 기대 이상으로 고군분투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난국을 타개하고 또다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이은 영웅으로 역사에 자리매김 할 것이다.

2023-07-20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시조문학회 동인들이 경북 청도로 문학기행을 갔다. 청도는 시조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조문단에 명망이 있는 이호우·이영도 오누이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유명 시조시인들의 시비(詩碑)를 세워 시조공원도 조성해 놓은 데다 현재 시조문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민병도 시인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한 때문이다.청도 출신 이영도 시인에 대해서는 좀 각별한 기억이 있다. 사춘기 시절에 읽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에서 받은 인상이 그것이다. 1967년, 당시 문단의 중견인 유치환 시인이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연인이었던 이영도 시인은 그간에 받은 연서의 일부를 추려 책으로 내었다. 그 서간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문단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20여 년 동안 무려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일찍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이영도 시인에 비해 유치환 시인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이 세간에 물의를 빚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해서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맺는 유치환 시인의 연가는 연애감성에 눈뜰 무렵의 사춘기 소년에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이었다. 뒤를 잇는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도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한갓 스캔들에 머물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 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유치환이 세상을 뜨고 난 후에 쓴 ‘탑 3’이란 제목의 이 시는 그들의 사랑을 누구도 섣불리 흠집을 내지 못하도록 단단한 돌로 굳혀 놓았다.내가 남자이고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유치환 시인보다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에 더 마음이 갔다. 물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마음에 새겨졌던 여인상이어서 노년에 접어든 지금도 그의 시조를 읽으면 왠지 모를 아픔 같은 것이 일곤 한다. 누가 그랬던가, 그리움이 다 소진 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철학자 김형석 선생이 98세의 나이에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번의 청도기행은 그런 그리움의 일단을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였다.이영도 시인의 연시(戀詩)는 일세를 풍미했던 황진이 시조의 계보를 잇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 환경과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격조 있는 여성성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칫 세간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릴 스캔들의 주인공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남다른 여성상으로 우뚝 세운 것은 시의 힘이었다. 시가 있었기에 세인들의 비난과 폄훼의 시선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소리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같은 나의 정(情)” - 이영도 시조‘황혼에 서서’의 일부다.

2023-07-13

바람을 쐬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여름 들판을 바람이 달려간다. 초록 물결을 일으키는 저 투명 강아지들. 칠월의 열기를 휘젓고 벼들을 춤추게 하는 바람의 유희로 들판 가득 생기가 넘친다. 이 들판에 부는 바람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방향과 계절에 따라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 등이 있고, 세기와 온도와 느낌에 따라 미풍, 강풍, 태풍, 돌풍이 있는가 하면 실바람, 남실바람, 산들바람, 건들바람, 소소리바람, 삭풍 등도 있다. 그 하나하나의 바람에도 또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는 것이니 우리의 감관에 와 닿는 바람의 느낌을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다.자연의 바람 말고도 우리 삶에는 여러 가지 바람이 있다. 멀리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류(風流)가 있고, 현대사회를 풍미하는 여러 종류의 바람도 있다. 춤바람, 치맛바람이 물의를 일으키던 때도 있었고 황금만능, 출세지향, 한탕주의 바람은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풍류는 민족 고유의 정서와 지혜를 내포한 ‘현묘지도(玄妙之道)’라는 근원을 가지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양반계급의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음악을 뜻하는 의미로 축소되었다가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한 말이 되었다. 하지만 한류(韓流)라는 새로운 바람이 일어 세계를 휩쓸고 있으니 그 역시 풍류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것이다.“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고 일찍이 서정주 시인이 노래했듯이 우리 삶에서 바람을 빼면 그야말로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신바람이란 말이 그렇듯 바람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고 활력인 것이다.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폴 발레리의 유명한 시구도 그런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바람과 삶의 바람은 둘이 아니다. 자연의 바람이 가이아(Gaia)의 숨결이자 생태계의 호흡이라면 인간사회의 바람 역시 그 일환일 터이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행위가 바람일진대 기왕이면 신선하고 훈훈한 바람이면 좋을 것이다.들판을 가로지른 고가 철로 그늘에 웃통을 벗고 앉아 바람을 쐰다.‘바람을 쐰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불어오는 바람을 몸에 맞다’와 ‘기분 전환을 위하여 바깥이나 딴 곳을 거닐거나 다니다’가 그것이다. 나는 지금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땅 위에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이 수시로 바람을 쐰다. 그것은 곧 활력을 충전하는 일이다.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바람과 친밀하게 살아온 것 같다. 사계절이 뚜렷한데다 삼면이 바다이고 지형도 다채로워서 바람의 스펙트럼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말에는 ‘바람’이나 ‘風’자가 들어간 말이 많고, 감성의 결과 폭도 그만큼 세세하고 풍성하다. 고인 물은 썩는 것처럼 공기도 환기가 안 되면 혼탁해진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는 창을 열어야 하고, 바람을 쐬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음습하고 혼탁한 세상은 침체할 수밖에 없고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새바람에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 산과 들과 바다로 나가 바람을 쐬어야 한다.

2023-07-06

괴담 정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국방부와 환경부는 지난 21일 성주 사드기지 환경영향평가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와 한국전자파협회의 실측자료를 관계전문기관과 전문가들이 종합 검토한 결과 측정 최댓값이 인체보호기준의 0.189%에 불과해 인체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일부 불신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로써 2017년부터 논란이 되었던 사드전자파 괴담은 일단락이 되었다.사드(THAAD)는 높은 고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방어체계이다. 날로 위협을 더해가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북한이 좋아하지 않는 건 당연하지만 중국이 나서서 협박하고 위해를 가하는 것은 명백히 내정간섭이고 국권침해다.더구나 국내의 좌파 정치인들과 단체들이 온갖 괴담을 퍼뜨리며 반대 선동을 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사드기지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인체와 농작물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는 괴담을 퍼뜨리는 것은 그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자유우파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전략이었다.괴담이 얼마나 정치적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 광우병 괴담이었다. 1993년 12월에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에서 한국은 쇠고기시장 완전 개방을 2001년부터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2001년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하였는데, 2003년 12월 24일 미국에서 최초로 광우병이 발생함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등의 수입이 금지되었다. 그 후 우여곡절을 거친 뒤 소고기 수입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광우병에 대한 온갖 괴담이 난무하고 오해와 불신과 불안감이 증폭되어갔다. 오죽하면 여자 연예인 하나는 미국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말까지 했을까.근자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온갖 사법적 리스크로 곤경에 처한 야당의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사활을 건 자구책으로 오염수 괴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방류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생선 값이 하락하고 횟집의 매상이 줄어드는 등 수산업 종사자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해도 해류를 따라 태평양을 돌면서 희석되어 우리나라 근해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견해다.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검증하는 국제적 방류규정에 적합한 것이라면 우리가 반대한다고 강제로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우리 정부가 할 일은 일본이 오염수처리를 엄정하게 이행하도록 촉구하고 IAEA의 모니터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다.괴담을 퍼뜨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 정치적 선전선동이 잘 먹혀든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괴담에 부화뇌동하는 민심을 몰아서 대세를 장악하는 것이 최상의 프로파간다전략인 것이다. 나라와 국민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난국을 모면하고 대세를 뒤집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괴담을 퍼뜨리는 자들에게는 무관심이 가장 좋은 응징이다. 미국산 소고기와 성주 참외처럼 우리 해산물도 마음 놓고 먹어주는 게 괴담 정치를 방지하는데 일조를 하는 일이다.

2023-06-29

접시꽃 피는 유월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유월의 골목에 접시꽃이 피었다.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무척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이다. 중국이 원산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기르거나 자생해서 토종식물이나 다름이 없다. 야생화로 불리지도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어서 귀한 대접을 받는 화초도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좋아했다는 매(梅), 난(蘭), 국(菊)이나 연꽃, 모란 같은 품격(?) 있는 꽃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서민적인 꽃으로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마치 무슨 파수꾼인 양 담이 낮은 골목을 지키고 서 있는 꽃이다.촉규화, 덕두화, 접중화, 일일화, 단오금 등의 이름을 두고 언제부터 접시꽃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한자어와 친하지 않은 백성들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록달록 고운 색깔의 그 접시는 사발과 대접, 보시기, 종지 따위가 고작인 서민들의 밥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자나 백자와 같이 사대부들의 밥상에 올리기에도 격이 맞을 것 같지가 않다. 사대부들은 체면 때문에 감추고 백성들은 고된 삶에 억눌렸던 원초적인 정념 같은 꽃에다 빗댄 접시이니 어디엔들 맞겠는가?키가 크고 꽃대가 튼실한 접시꽃은 울타리나 담장을 따라 많이 심었다. 한번 심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번식을 하니 일일이 돌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관상용 꽃으로서의 역할은 더할 나위가 없다. 마을 골목에 피어 있는 접시꽃의 그 화사한 모습은 누구나 날마다 볼 수가 있어서 고달프고 팍팍한 일상에 한 줌 향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고나 할까. 이제는 뭐든지 숨기거나 억눌러 감추는 세상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누구든 형형색색의 접시를 일상의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다. 고매한 품격이나 야한 것을 따지는 세상도 아니다.시골마을 곳곳에 쌓인 저리도 고운 접시들이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보리밥 한 덩이에 된장 한 종지, 상추나 풋고추가 고작이었던 우리네 일상의 밥상 말고, 저 고운 접시의 용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 유월에는 저 알록달록한 접시에다 온갖 것을 담아보자. 잊혀 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 외면하고 하찮게 여긴 것들, 세월의 먼지를 털고 편견과 망집의 더께를 떼어내고 알뜰하게, 소꿉놀이처럼 담아보자. 그러라고 접시꽃이 피었다.오랜 세월 우리는 밥그릇 하나 챙기기에도 너무 벅찬 삶이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집기들도 뚫어지고 깨어지면 때우고 붙여 쓰는 형편에 곱고 예쁜 접시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이 각박하다고 마음까지 삭막한 것은 아니었다. 장독대 둘레에 채송화나 봉선화를 심을 줄 알았고 울타리나 사립문 옆에 접시꽃을 심기도 했다. 그래서 들며나며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마음 한 편에 작으나마 마르지 않는 정서의 샘을 간직할 수 있었다.먹고 살 만해진 지금도 밥그릇 때문에 울고 웃고 걸핏하면 부모형제도 저버리는 패륜의 시절에, 접시꽃이 피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인생을 담을 그릇이 어찌 밥그릇뿐이겠느냐고.

2023-06-15

국회의원 특권폐지 국민운동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特權)은 무려 18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보통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없는 특별한 권리가 국회의원들에게는 그렇게나 많이 필요한 까닭이 뭔가. 하물며 그 많은 특권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소위 ‘셀프특권’이라는 것에 어이가 없고 배신감마저 든다. 여야가 헐뜯고 싸우다가도 그 셀프특권을 위해서는 의기투합 한다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금전적 특혜만도 다 헤아리기에 숨이 찰 정도다. 1억5천5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비롯해서 연간 입법 활동비로 약 1억200만 원이 지원되는데다 차량 유류비 월 110만 원, 차량유지비 월 35만8천 원, 출장비 연 400만 원, 의원실 보좌직원 업무용 교통비 연 100만 원, 야근식대 연 770만여 원, 현지 출장비 연 91만여 원, 사무실 운영비 연 348만여 원, 소모품 519만여 원, 정책개발비 2천500여만 원, 정책홍보물비 연 1천200만여 원, 문자메시지 및 자료 발송료 1천230여만 원, 명절휴가비 800여만 원 등이다.지난 4월 16일에 발족한 ‘특권폐지운동본부’는 국회의원 전원에게 ‘특권폐지 질의서’를 발송하고 동의 여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질의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국회의원의 연봉이 1억5천500만 원인데, 이것을 도시근로자 평균임금(월 400만 원 정도)으로 하고,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2. ‘의원실 지원경비’라는 명목으로 정책개발비, 수당 등 다양한 이름의 의정활동 지원비가 1년에 1억200만 원인데, 이를 모두 폐지하고 입법활동 및 기타 의정활동에 필요한 경비는 필요시 국회사무처에 신청해서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데 동의하는가?3. 보좌진이 7명인데(인턴 2명 추가 채용가), 이들은 의정활동을 보좌하기보다 개인적인 비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고, 보좌진의 상당수는 사실상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재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선거기간에는 보좌진의 거의 전부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도 하지 않은 채 선거운동을 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불법 선거운동이다. 보좌진도 국가에서 봉급을 주는 공무원이어서 선거운동을 하는 자체가 불법이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사항은 국회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좌진을 3명으로 줄이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4.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에만 후원금을 1억5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밖의 후원금은 받을 수 없게 하며, 선거비용 환급은 없애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5. 국회의원에게 헌법상 부여된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오늘날 시대착오적인 규정일 뿐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보는데 동의하는가?이 질의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과 태도가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일 터이다. 아무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정상배를 위한 정치를 끝장내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이뤄야 할 때”라는 특권폐지운동본부 장기표 상임대표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3-06-01

역사와 진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歷史)란 말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와 그것을 토대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를 포함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물론 후자이다. 역사가들은 문서나 기록, 증언 같은 사료를 기반으로 사실을 추론하고 재구성하여 역사로 남기지만 그것에는 집필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정사(正史)로 인정된 역사라 할지라도 새로운 사료의 발견으로 뒤집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혼란과 격동의 역사였다. 육백 년을 이어온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의 식민통치, 해방과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쳐 4·19 혁명에다 5·16 군사정변, 5·18 광주사태 등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잇달았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좌·우로 편을 갈라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태라 어느 편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비록 사실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대립하고 있는 한 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만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분명 역사의 왜곡이고 오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올해로 5·18 광주사태는 43주년이 된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조문에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 정권은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5·18 광주사태를 일단락 지우려 했지만 불신과 반발의 여론도 적지가 않아서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으로 섣불리 속단하고 규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불행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어떤 언로도 강제로 봉쇄해서는 안 된다.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위헌의 소지가 있는 특별법은 폐지가 되어야 하고, 유공자들의 명단과 당시의 행적도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국민들로부터 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증하는 길이다. 한편으로는 무기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등의 폭력을 선동하고 주동한 자들을 색출하여 그 의도와 목적의 진의도 밝혀야 한다. 고정간첩과 같은 불순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지도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민주화란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지역이나 특정인들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해온 측면이 없지 않은 광주사태의 평가는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지역적, 정파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배제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오로지 객관적이고 엄정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론을 분열하는 의혹을 불식하고 광주사태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되는 길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학자 E.H.카의 말도 새겨볼 만하다.

2023-05-18

정보통신 야사(野史)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전화기는 물론 라디오도 없는 마을에서는 이웃 마을의 소식도 누가 와서 직접 전해주어야 알았다. 재 너머로 시집보낸 딸의 안부를 장날 그 마을에서 온 장꾼들에게 물었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자질구레한 여성용품을 파는 방물장수들이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 말고는 자연에서 보고 듣는 것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었다.시골 동네에도 라디오가 들어오면서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기계 상자 속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수시로 나라 안팎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더 신기한 것은 남인수나 고복수, 황금심 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좀 규모가 큰 면소재지 같은 곳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유선으로 중계하는 업자도 생겨났다. 라디오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달마다 약간의 돈을 내고 유선방송업자가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방송하는‘금주의 인기가요’를 들으며 가사를 받아 적기에 열중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미자, 최희준, 배호, 남진, 나훈아, 문주란이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다.1960년대부터 KBS, MBC 같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설되면서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한 것은 그야말로 인류사적인 사건이었다. 1972년 4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여로’를 보기 위해 국민 대다수가 그 시간에 모든 일정을 잠시 중단했다는 에피소드도 방송사에 남을 일이었다. 목소리로만 듣던 노래를 가수들이 직접 텔레비전에 나와서 부르는 걸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1981년부터는 컬러텔레비젼이 나와서 모든 것을 더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교환 전화가 다이얼 전화로 바뀌면서 공중전화도 생기고 전화기 보급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날 걸려 편지로나 전할 수 있었던 사연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이 되었다.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도 나와서 전화기를 떠나 있는 사람에게도 급한 용무가 있으면 신호를 보낼 수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드디어 휴대전화기가 출시되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2010년대에는 다기능의 스마트폰이 등장해 인터넷 검색과 금융거래, 사진기 등이 한손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실로 개벽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이제 노년에 접어든 우리세대는 위의 모든 과정을 몸소 겪어온 대한민국 정보통신사(史)의 산 증인들인 셈이다. 지금은 주로 동기회나 동호인, 종교단체 등의 단체카톡방에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까지 등장해서 무한정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니,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오싹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과는 천양지차의 금석지감이지만, 온갖 세상을 골고루 겪어본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달력을 보니 22일이 ‘정보통신의 날’이어서 잠시 지난 일들을 돌아보았다.

2023-04-20

지성인(知性人)의 사명과 역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바람직한 문명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성인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해박한 지식과 합리적인 사고,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지성인의 역할이다. 또한 지성인은 뛰어난 지식과 인격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과 발명을 창출하며, 예술과 문화, 철학 등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은 문명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가능케 하며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류의 진보를 촉진한다. 요즘 우리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반지성적 행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뒷골목 불량배들의 얘기가 아니라,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 있는 폐단을 말하는 것이다. 반지성이란 정략적 의도나 개인적인 감정, 불의한 이념을 쫓는 편견 등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지성적인 시각과 행동이 생산한 편견과 거짓정보는 언론과 인터넷매체 등을 통해 삽시간에 확산될 수 있다. 그로 인해 일반 국민들은 진상을 호도하게 되고 민심이 왜곡되는 것이다.반지성적 풍조의 발원지는 정치권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보니 합리성이나 진실성, 도덕성 따위를 무시한 거짓과 왜곡, 억지와 모함이 판을 치는 것이다. 거기에 각종 언론매체들이 선정적으로 가세해서 일반 국민들은 물론 청소년들까지 거짓과 천박함을 당연시 하게 되었다. 정치세력을 형성하는데 편 가르기 만큼 손쉽고 유용한 것이 없다. 이념이든 계층이든 젠더든 일단 편을 갈라서 저들끼리 싸우게 해 놓으면 절반은 거저먹는 게 정치세력이다. 그 한 쪽 편에 힘을 실어주고, 거기다 포퓰리즘과 선전선동으로 민심을 잡으면 집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공학적 계산이다.편 가르기 정치의 대표적인 수단이 ‘내로남불’이다. 무슨 짓이든 내가 하면 정의롭고 상대방이 하면 불의와 적폐라는 논리다. 이런 억지 주장을 관철하려면 당연히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아무리 비리와 거짓이 드러나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후안무치가 지지 세력을 공고히 하는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후안무치의 결정판은 적반하장이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는 것이다. 궁지에 몰리면 자신의 비리와 부정 혐의를 오히려 상대편에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수룩한 국민들에게 사건의 본질을 흐려 양비론 정도만 끌어내도 성공인 것이다. 패거리정치판의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 진영논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고, 진영논리의 추진력은 확증편향에서 나온다. 반지성적 풍조에 휩쓸려 천박해지고 황폐해진 민심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언론과 교육과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그 역시도 편이 갈리고, 부정과 비리를 공정하게 단죄해야 할 사법부조차도 진영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지성이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지성이 오히려 적폐로 몰린다. 무조건 자기 패거리를 지지하지 않으면 저주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지성의 역할이고 사명이다. 악조건일수록 오히려 더 분발하여 정의로운 언행으로 맞서야 한다. 건강한 사회와 국가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지성인의 역할이 절실한 현실이다.

2023-04-06

역사는 흐른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을 거슬러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다. 그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지금 우리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있다. 중국과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웃나라다. 중국과는 오랜 세월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종주국의 관계였고, 일본에게는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지금도 중국은 우리나라가 과거 속국이었음을 말하고, 일본은 침략과 수탈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약소국이 아니다. 지도자,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강력한 국제동맹, 강력한 군사력, 수출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도 못 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세게 굴지의 경제대국 일본의 선진기술을 베끼고 배우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드디어 일본을 따라잡고, 반도체산업과 휴대전화기 같은 일부 품목에서는 오히려 추월하는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아직도 전체적인 경제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산업이나 문화 전반에 걸쳐 당당하게 어깨를 견줄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은 지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을 공유하는 이웃 나라다.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지 20년 만인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2월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주권의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국교정상화가 실현되었다. 반대 진영의 극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면서 강행을 한 것은 우리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양국 간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도부터 1975년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은 농림·수산업·광고업·과학기술개발·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서비스 부문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미진하게 남아있던 앙금의 대부분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중에 오브치 게이조 총리와의 공동선언을 통하여 상당부분 해소가 되었다.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한 것이다. 역사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불구대천의 적국이었던 나라들도 필요에 따라서는 손을 잡는 게 역사다. 북중러 공조와 북핵의 위협 앞에 한미일의 공동대처는 당면한 필요조건이다.윤석열 대통령의 방한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다시금 정상화의 물꼬가 트였다. 더도 덜도 말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가치와 정신만 되살리면 서로의 국익에 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매국이니 굴욕외교니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퇴행일 뿐이다.

2023-03-23

철새는 떠나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고니와 청둥오리들이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날이 풀리자 겨우살이를 끝내고 귀로에 오른 모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의 경우 약 석 달에 걸쳐 북한과 중국 단동, 내몽골을 거쳐 러시아의 번식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국내에서 개발된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큰고니는 평균시속 51㎞ 정도로 약 923km를 비행하여 출발한 다음날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하천에 도착했다. 거기서 14일간 머물다가 다시 365km를 날아서 중국 내몽골자치구 퉁랴오 인근 습지에서 도착, 16일간 지낸 다음 다시 이동해서 내몽골자치구 후룬베이얼 습지와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호수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도착했다.9월 29일까지 예벤키스키군 습지에 머물던 큰고니는 다시 긴 여정을 시작해서 러시아 부랴티야 지역의 바이칼호 인근 습지와 내몽골자치구 퉁랴오에서 머물다 11월10일 주남저수지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난해 월동하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큰고니의 이동경로를 거리로 측정해보니 갈 때는 4천36㎞, 돌아올 때는 4천229㎞, 합해서 8천265㎞를 왕복한 것이었다.고니의 평균 수명이 30년쯤 된다고 하니, 20년 이상 이 들판을 찾아온 녀석들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아직도 회색빛이 남아 있는 어린 고니들 말고는 대부분 먼발치로 지나다니는 나를 알아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인간과 야생의 거리가 좁혀지는 건 아니다. 사계절을 함께 사는 참새나 까치 같은 텃새들도 사람을 경계하는데 하물며 철새들이겠는가. 나는 반려동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야생동물들과의 그런 긴장관계를 좁혀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하지만 겨울마다 찾아와 주는 그들이 반가운 마음은 누구 못지않을 것이다.매년 찾아오는 겨울 손님인 고니들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를 알게 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그들에 대한 이만한 정보라도 알아야 지나가는 객이 아니라 손님이 되는 게 아닌가. 여름에만 습지가 되는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 번식을 하지만 거기서 보내는 기간도 서너 달에 불과하다니 여기서 겨울을 나는 기간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사이를 오가는 동안 몇 군데 머무는 기간이 한 해의 절반가량이어서 그야말로 노마드의 생태를 가진 철새들이다. 텃새인 참새나 까치처럼 토박이인 나에게 시베리아 툰드라의 한 자락을 끌고 오는 그들의 등장은 삭막한 겨울을 한결 풍성하고 웅장하게 한다고 할까.나는 평생 이 고장의 붙박이로 살아왔지만, 고니와 청둥오리를 이웃으로 두어서 저 광활한 내몽골 초원과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마음의 영역이 넓어진 것 같다. 올 때는 시베리아의 겨울을 끌고 왔지만 갈 때는 한반도 동남쪽의 바다와 들녘의 봄기운을 끌고 가는 셈이다. 그 들녘을 날마다 지나가던 촌부에 대한 기억도 지금쯤은 중국 단둥의 어느 벌판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2023-03-09

인간과 인공지능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능(intelligence)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가 않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라 논리와 견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철학의 영역이었으나 지금은 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논리력, 이해력, 인과관계 파악 능력, 계획력,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지능을 구성한다고 본다. 신경과학이나 뇌과학에서의 지능에 대한 연구는 획기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 있다. 인간의 뇌를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컴퓨터로 가정한 연구가 그것이다.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지 않고도 약물, 수술, 유전자조작 등으로 지능향상은 물론 사회적 기능이나 행복감의 증진까지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인간의 지능을 인공적으로 구현한 컴퓨터 시스템을 인공지능(AI)이라 한다. 바야흐로 산업과 일상생활 모든 분야에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시대가 되었다. 지난해 11월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오픈AI가 출시한 챗GPT가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픈AI사는 블로그 게시글을 통해 “챗GPT가 대화 형식으로 추가적인 질문에 답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정확하지 않은 전제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부적절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화형 로봇을 챗봇(chatbot)이라 하는데, 지금까지 출시된 다른 AI챗봇에 비해 챗GPT가 주목 받는 이유는 기존의 챗봇과 기능적·기술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챗봇이 대화를 할 때마다 전후 맥락의 파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서 훨씬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인터넷과 SNS의 상용화로 일대 개벽을 맞은 인간사회가 챗GPT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고도화된 챗봇의 상용화는 무엇보다 인간 지능의 혁신을 가져올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지구상의 대다수 인간의 지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따라야 할 시점이다. 삶의 질이랄지 생활의 패턴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반려동물 대신 사람과 흡사한 반려챗봇이 등장하게 된다면 인간관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오지 않겠는가.챗GPT에게 챗GPT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양날의 칼’이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에는 분명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예측할 수 없듯이 그것이 인간에게 끼칠 영향의 범위도 미지수이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초인공지능의 출현이나 범죄에 악용될 우려, 인간성의 파괴 등으로 인류를 파멸시킬 흉기가 될 소지도 없지 않은 것이다.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 된다고 해도 우주 삼라만상은 그대로이고,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일부라는 생물학적인 조건까지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라든지 윤리의식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득보다 실이 더 클 것 같다.

2023-02-23

봄이 오는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매섭게 몰아치던 한파도 입춘이 지나자 한결 누그러졌다. 살을 에는 삭풍에 죽은 듯 움츠렸던 개쑥갓과 봄까치꽃이 다시 생기를 띠고 어느새 꽃을 피웠다. 참 대단한 생명력이다. 흔히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나 동백의 고절을 칭송하지만 나는 이런 가냘픈 풀꽃 앞에서 더 숙연해진다. 아마도 태생이 워낙 흙수저라서 그런가 보다. 영하 십 몇 도의 혹한을 맨몸으로 견뎌온 저들에 비한다면 사람이 겪는 웬만한 고통과 좌절쯤은 엄살에 불과한 게 아닌가.북한을 일러 동토(凍土)라고도 한다. 폭정과 압제의 한파로 자유도 정의도 인권도 다 얼어붙은 땅이라는 뜻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도 해빙의 바람이 불어 두꺼웠던 얼음장이 갈라지고 다시 러시아가 되었지만, 북한은 오히려 얼음의 두께를 더 견고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얼음장 밑으로도 해빙이 기운이 스며들고 있다고 한다. 장마당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 간에는 암암리에 남한의 가요나 드라마 같은 자유세계의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다가오는 봄의 징조가 아니겠는가.좌파정권 5년 동안 남한에서도 북풍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대규모 촛불시위의 여파를 몰아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전 정권의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언론, 법원, 군과 국정원, 헌재와 선관위까지 좌파들 코드인사로 물갈이 하는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거나 감옥으로 갔다. 실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연상케 하는 폭거였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와 갈채를 받으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그러나 그들의 무능과 파렴치와 비리가 곳곳에서 불거지자 동조하던 국민들도 하나 둘 등을 돌리거나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호언장담하던 장기집권의 꿈은 깨어지고, 다시 우파세력이 정권을 잡자 생사를 건 냉전이 시작되었다. 자고로 좌·우의 대립에는 화합이나 협치가 불가능하디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피터지게 싸워서 어느 한 쪽이 득세를 하면 그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살벌한 냉전논리가 못 마땅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역사인 걸 어쩌랴.대선후보였던 이재명이 보결선거에 나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되면서 냉전의 양상은 점입가경이었다. 파렴치범 전과와 수많은 비리의 혐의·의혹으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을 당의 대표로 선출한 제일야당의 행보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당대표의 개인 비리에 대한 구속수사를 막으려고 당이 나서서 방탄 국회를 잇달아 소집하는 것도 모자라 엉뚱한 구실을 내세워 장외시위까지 벌였다. 일단은 배수진을 치고 총력 저항을 해보는 것이겠지만 그게 얼마나 국민들과 사법부에 먹혀들 것인가.때마침 조국일가의 입시부정 사건에 대한 공판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왔고, 노동계와 종교계 등에 침투해서 반국가 투쟁을 주도하던 간첩들도 검거되는 등 뒤집히고 헝클어진 국가기강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아직은 혼란한 냉전 정국이지만 머지않아 봄이 완연해질 거란 기대를 갖게 한다.

2023-02-09

계묘년 나라 운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매년 정초가 되면 흔히들 한 해의 운세를 알아본다. 옛날에는 주로 길거리 역술인들에게 복채를 내고 토정비결을 보았지만 요즘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각종 운세를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운세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매년 운세를 보는 사람은 그것이 매번 적중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운세가 좋다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나오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보통의 인심이다.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즉 4가지 간지(干支)에 근거해서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을 사주명리(四柱命理)라 한다.이는 세계가 6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는 원리에 의한 것인데, 그 과학적 근거나 주창한 사람에 대해서는 명확한 것이 없다. 중국의 복희씨(伏羲氏)가 기원전 2637년을 갑자년으로 정한 것이 시작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황제(黃帝)가 사관인 대요(大撓)에게 명령하여 갑자(甲子)를 지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사실이기보다 신화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아무튼 한무제가 태초력을 반포한 것이 60갑자의 역사적인 계기였다.유명 역술인들과 무속인들이 저마다 올해의 국운을 점치고 있지만 서로 주장이 달라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역리(易理)가 어떻든 나라의 운세는 결국 국민이 만든다. 같은 땅이고 같은 민족인데도 남북한의 운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을 보면, 국민들이 어떤 지도자와 체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로 운세가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국민이라면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남한과 북한이 왜 하나는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하나는 최하위 권의 빈국이 되었는지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올해의 국운도 물론 국민들의 판단과 의지에 달렸다. 대한민국 민심은 지금 크게 삼등분 되어 있다. 극심하게 대립하는 좌파와 우파가 있고 그 중간에 부동층(浮動層)이 있다. 내전에 가까운 좌·우의 대결에 부동층이 어느 쪽에 더 많이 가담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좌파가 이기면 북한의 세습체제를 따라 패망의 길로 가는 것이고, 우파가 승리하면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너무나 단순하고 단정적인 이런 판단과 논리를 비웃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식자층 사람들일수록 더 그럴 테지만, 진리는 소박하고 단순명료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아직은 한겨울이지만 대한민국 국정에 분명 봄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그동안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흔들고 법치를 파괴한 세력의 근원이 어디인지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세력에 휩쓸리고 동조했던 민심들도 조금씩 의구심을 갖는 것 같다. 좌파세력들이 세뇌하고 망가뜨린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비리와 거짓과 후안무치를 파헤치고 단죄하는 일이 우선인데, 불철주야 진상규명에 나선 검찰에 의해 머지않아 하나씩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정부가 책무를 다해야겠지만, 국민들도 힘을 모으고 보태는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파사현정이라는 대의가 역사의 주류가 되었을 때 국운에 청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2023-01-26

희망의 나라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강력한 국가가 되었다. 미국 시사전문지 US뉴스월드리포트가 지난 달 31일에 발표한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에서 한국이 6위를 차지한 것이다. 지도자,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강력한 국제동맹, 강력한 군사력, 수출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것으로,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작년보다 두 단계 오른 성적이다.대한민국 현대사에 윤석열 정권의 출범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소위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좌파정권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더이상 연장되지 못하게 막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과 0.73% 차이였지만, 지난 대선의 승리는 나라의 운명이 걸린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하지만 아직은 반쪽짜리 혁명에 불과하다. 절대다수의 국회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에다 언론과 사법부 등을 장악한 전 정권 관련 세력들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대한민국은 태생적으로 반공을 기반으로 한 나라다. 이승만 대통령의 투철한 반공정신이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도 반공을 국시로 한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비정상적인 집단인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반공정신의 해이가 얼마나 위험한 사태를 초래하는 지는 문재인 좌파 정권 5년 동안 뼈저리게 실감을 했다. 반공의 기반 위에 세워진 나라는 종북좌파들이 득세하면 그 체제와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식을 갖지 못한 국민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개발독재로 불리는 밀어붙이기식 경제정책의 추진과정에 부작용이 없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저항도 민주화운동이란 이름으로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 문제는 반독재 민주화라는 명분 속에 친북용공세력이 스며든 것이다. 더이상 민주화운동의 명분이 없어진 지금에 와서는 그 좌파세력이 정치권력이 되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체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당면한 국가적 난국을 타개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좌경화된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고 명실상부 세계 굴지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 그 과정의 최우선 과제는 주사파와 같은 오열의 척결이다. 모조리 색출해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국민 대다수가 반공정신으로 무장해서 그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절박한 호소에도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코웃음 치는 국민이 상당수인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혁명이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정당하지도 못했고 성공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 작년의 대선에서 과반수 국민들이 내린 평가다. 좌경화된 나라를 바로잡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완수해야 할 혁명과업이다. 부디 새로운 희망의 나라로 순항하길 바란다.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