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몰아치던 한파도 입춘이 지나자 한결 누그러졌다. 살을 에는 삭풍에 죽은 듯 움츠렸던 개쑥갓과 봄까치꽃이 다시 생기를 띠고 어느새 꽃을 피웠다. 참 대단한 생명력이다. 흔히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나 동백의 고절을 칭송하지만 나는 이런 가냘픈 풀꽃 앞에서 더 숙연해진다. 아마도 태생이 워낙 흙수저라서 그런가 보다. 영하 십 몇 도의 혹한을 맨몸으로 견뎌온 저들에 비한다면 사람이 겪는 웬만한 고통과 좌절쯤은 엄살에 불과한 게 아닌가.
북한을 일러 동토(凍土)라고도 한다. 폭정과 압제의 한파로 자유도 정의도 인권도 다 얼어붙은 땅이라는 뜻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도 해빙의 바람이 불어 두꺼웠던 얼음장이 갈라지고 다시 러시아가 되었지만, 북한은 오히려 얼음의 두께를 더 견고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 얼음장 밑으로도 해빙이 기운이 스며들고 있다고 한다. 장마당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 간에는 암암리에 남한의 가요나 드라마 같은 자유세계의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다가오는 봄의 징조가 아니겠는가.
좌파정권 5년 동안 남한에서도 북풍이 거세게 휘몰아쳤다. 대규모 촛불시위의 여파를 몰아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전 정권의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언론, 법원, 군과 국정원, 헌재와 선관위까지 좌파들 코드인사로 물갈이 하는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거나 감옥으로 갔다. 실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연상케 하는 폭거였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와 갈채를 받으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무능과 파렴치와 비리가 곳곳에서 불거지자 동조하던 국민들도 하나 둘 등을 돌리거나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호언장담하던 장기집권의 꿈은 깨어지고, 다시 우파세력이 정권을 잡자 생사를 건 냉전이 시작되었다. 자고로 좌·우의 대립에는 화합이나 협치가 불가능하디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피터지게 싸워서 어느 한 쪽이 득세를 하면 그 쪽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살벌한 냉전논리가 못 마땅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역사인 걸 어쩌랴.
대선후보였던 이재명이 보결선거에 나가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되면서 냉전의 양상은 점입가경이었다. 파렴치범 전과와 수많은 비리의 혐의·의혹으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을 당의 대표로 선출한 제일야당의 행보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당대표의 개인 비리에 대한 구속수사를 막으려고 당이 나서서 방탄 국회를 잇달아 소집하는 것도 모자라 엉뚱한 구실을 내세워 장외시위까지 벌였다. 일단은 배수진을 치고 총력 저항을 해보는 것이겠지만 그게 얼마나 국민들과 사법부에 먹혀들 것인가.
때마침 조국일가의 입시부정 사건에 대한 공판에서도 유죄판결이 나왔고, 노동계와 종교계 등에 침투해서 반국가 투쟁을 주도하던 간첩들도 검거되는 등 뒤집히고 헝클어진 국가기강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아직은 혼란한 냉전 정국이지만 머지않아 봄이 완연해질 거란 기대를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