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복합지형인데다 사계절이 뚜렷하기 때문에 바람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봄날 남쪽에서 불어오는 온화한 바람은 만물을 소생케 하고 여름엔 열풍이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쯤 천지를 뒤흔드는 태풍이 불기도 하고 겨울의 삭풍은 온 땅을 동토로 만들어 버린다. 오랜 세월 농경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그런 바람은 우리의 삶과 정서에 깊숙이 배어들어 민족적 기질이 되고 다채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우리말에는 바람에 빗댄 말들이 많다. 신바람에서부터 한 때 유행하던 춤바람, 치맛바람이 있는가 하면, 바람맞다, 바람 넣다, 바람 타다, 바람 들다, 바람 잡다 등 여러 의미로도 쓰인다. 그 중에서도 신바람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질과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표현을 넘어 한민족의 공동체적이고 역동적인 성격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상생활, 일, 놀이, 축제 등에서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이를 통해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는 낙관적인 태도를 내포하기도 한다.
매스컴이 발달된 현대에는 바람이 ‘여론’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각종 언론이 주도하는 여론은 때로 강력한 바람이 되어 사회나 국가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특히 모바일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론의 바람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거나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진광풍이 전역을 휩쓸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바람이다. 바람이 불면 대부분 민초들은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눕기 마련이다. 그래야 꺾이거나 뿌리 뽑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바람에 합세하기도 한다. 그것은 거대한 세력의 일원이라는 뿌듯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정치적 바람은 항상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센 맞바람에 부딪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바람은 공기가 이동하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따뜻한 공기는 가벼워져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는 무거워져 하강하는데, 이로 인해 고기압 지역과 저기압 지역이 형성된다. 공기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바람이 발생하는데, 기압의 차이가 클수록 바람의 세기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기간 바람이 불고 나면 차츰 기압차가 줄어들어 바람이 멎기 마련이다.
정치적 바람은 자연현상과는 달리 저절로 소멸되지는 않는다. 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고기압권을 형성해서 맞바람을 쳐야 기세를 꺾고 막을 수가 있다. 비상계엄 선포를 빌미로 재빨리 고기압권을 형성한 왼쪽바람이 일시에 전국을 강타한 것이 작금의 사태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오른쪽 세력도 만만치가 않다. 양대 바람이 서로 부딪쳐 일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국민들이 어느 편에 더 많이 가담하는가에 따라 바람의 향방이 달라지고 그 결과는 선거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