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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록일 2023-08-03 17:16 게재일 2023-08-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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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다. 호박잎이 축축 늘어지고 뿌리가 얕은 풀들은 말라간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척박한 땅의 풀들부터 말라 죽고 말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열악한 생활환경의 사람들이 기상이변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이 여름에도 에어컨이 없는 골방에서 더위를 견디고 있는 노약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여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런 희망의 이정표이기나 한 듯 저만치 입추와 말복이 다가오고 있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희망의 밧줄처럼 붙잡게 되는 말 중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이 있다. 유대인들의 신앙교육서인 ‘미드라시’에 나오는 이야기가 어원이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반지 세공사에게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다 내가 전쟁에 이겨서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게 하며,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고 지시하였다. 이에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으나, 새겨 넣을 마땅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것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좋은 상황에서도 교만하지 않을 경구로 삼은 다윗왕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주로 역경에 처한 사람들이 위안으로 삼는 말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많이 나아졌는데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비관하고 좌절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스스로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절망적 상황도 또한 지나갈 것이란 말이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될까.

얼마 전에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가 자기가 가르치던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교사의 꿈을 이루었을 터인데, 불과 두 해도 되지 않아 목숨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박할 압박과 고통이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교육 현장에, 시간이 흐른다고 지나갈 일회성이 아닌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병폐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상황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게 마련이라는 의미로는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도 있다.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이 말은 과학적 진리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양자물리학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은 비었다(空)고 한다. 물질의 기본요소인 원자의 경우 알갱이의 존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규명이다. 그것은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상통하는 말이다. 존재의 주체인 나(我)라고 내세울 본질이 없다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세상에 고정불변이란 없다는 말이고, 절망이든 고통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도 절망의 굴레를 벗고 죽음을 받아들일 여지는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세상에 대한 보다 깊고 넒은 통찰력과 굳센 삶의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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