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는 물론 라디오도 없는 마을에서는 이웃 마을의 소식도 누가 와서 직접 전해주어야 알았다. 재 너머로 시집보낸 딸의 안부를 장날 그 마을에서 온 장꾼들에게 물었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자질구레한 여성용품을 파는 방물장수들이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 말고는 자연에서 보고 듣는 것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었다.
시골 동네에도 라디오가 들어오면서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기계 상자 속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수시로 나라 안팎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더 신기한 것은 남인수나 고복수, 황금심 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좀 규모가 큰 면소재지 같은 곳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유선으로 중계하는 업자도 생겨났다. 라디오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달마다 약간의 돈을 내고 유선방송업자가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서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방송하는‘금주의 인기가요’를 들으며 가사를 받아 적기에 열중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미자, 최희준, 배호, 남진, 나훈아, 문주란이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다.
1960년대부터 KBS, MBC 같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설되면서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한 것은 그야말로 인류사적인 사건이었다. 1972년 4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여로’를 보기 위해 국민 대다수가 그 시간에 모든 일정을 잠시 중단했다는 에피소드도 방송사에 남을 일이었다. 목소리로만 듣던 노래를 가수들이 직접 텔레비전에 나와서 부르는 걸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참으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1981년부터는 컬러텔레비젼이 나와서 모든 것을 더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교환 전화가 다이얼 전화로 바뀌면서 공중전화도 생기고 전화기 보급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여러 날 걸려 편지로나 전할 수 있었던 사연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이 되었다.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도 나와서 전화기를 떠나 있는 사람에게도 급한 용무가 있으면 신호를 보낼 수가 있었다. 1980년대에는 드디어 휴대전화기가 출시되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2010년대에는 다기능의 스마트폰이 등장해 인터넷 검색과 금융거래, 사진기 등이 한손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실로 개벽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우리세대는 위의 모든 과정을 몸소 겪어온 대한민국 정보통신사(史)의 산 증인들인 셈이다. 지금은 주로 동기회나 동호인, 종교단체 등의 단체카톡방에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유튜브를 통해서도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챗GPT까지 등장해서 무한정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니,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오싹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과는 천양지차의 금석지감이지만, 온갖 세상을 골고루 겪어본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달력을 보니 22일이 ‘정보통신의 날’이어서 잠시 지난 일들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