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란 말은 객관적 사실로서의 역사와 그것을 토대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를 포함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물론 후자이다. 역사가들은 문서나 기록, 증언 같은 사료를 기반으로 사실을 추론하고 재구성하여 역사로 남기지만 그것에는 집필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정사(正史)로 인정된 역사라 할지라도 새로운 사료의 발견으로 뒤집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혼란과 격동의 역사였다. 육백 년을 이어온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의 식민통치, 해방과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거쳐 4·19 혁명에다 5·16 군사정변, 5·18 광주사태 등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잇달았다. 그리고 그 역사는 대부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관련된 이해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 상태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좌·우로 편을 갈라 갈등하고 대립하는 상태라 어느 편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비록 사실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대립하고 있는 한 쪽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만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분명 역사의 왜곡이고 오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로 5·18 광주사태는 43주년이 된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조문에까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의 의견도 적지 않다. 지난 정권은 특별법까지 제정해서 5·18 광주사태를 일단락 지우려 했지만 불신과 반발의 여론도 적지가 않아서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남기고 있다. 역사적 평가는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으로 섣불리 속단하고 규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불행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에 대한 어떤 언로도 강제로 봉쇄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위헌의 소지가 있는 특별법은 폐지가 되어야 하고, 유공자들의 명단과 당시의 행적도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국민들로부터 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증하는 길이다. 한편으로는 무기를 탈취하고 교도소를 습격하는 등의 폭력을 선동하고 주동한 자들을 색출하여 그 의도와 목적의 진의도 밝혀야 한다. 고정간첩과 같은 불순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지도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
민주화란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특정지역이나 특정인들의 전유물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일방적으로 여론몰이를 해온 측면이 없지 않은 광주사태의 평가는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지역적, 정파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배제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오로지 객관적이고 엄정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론을 분열하는 의혹을 불식하고 광주사태가 진정한 의미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되는 길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학자 E.H.카의 말도 새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