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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른다

등록일 2023-03-23 19:40 게재일 2023-03-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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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을 거슬러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다. 그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지금 우리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있다. 중국과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웃나라다. 중국과는 오랜 세월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종주국의 관계였고, 일본에게는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도 중국은 우리나라가 과거 속국이었음을 말하고, 일본은 침략과 수탈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약소국이 아니다. 지도자,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강력한 국제동맹, 강력한 군사력, 수출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도 못 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세게 굴지의 경제대국 일본의 선진기술을 베끼고 배우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드디어 일본을 따라잡고, 반도체산업과 휴대전화기 같은 일부 품목에서는 오히려 추월하는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아직도 전체적인 경제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산업이나 문화 전반에 걸쳐 당당하게 어깨를 견줄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은 지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을 공유하는 이웃 나라다.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지 20년 만인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2월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주권의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국교정상화가 실현되었다. 반대 진영의 극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면서 강행을 한 것은 우리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양국 간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도부터 1975년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은 농림·수산업·광고업·과학기술개발·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서비스 부문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미진하게 남아있던 앙금의 대부분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중에 오브치 게이조 총리와의 공동선언을 통하여 상당부분 해소가 되었다.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한 것이다. 역사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불구대천의 적국이었던 나라들도 필요에 따라서는 손을 잡는 게 역사다. 북중러 공조와 북핵의 위협 앞에 한미일의 공동대처는 당면한 필요조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한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다시금 정상화의 물꼬가 트였다. 더도 덜도 말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가치와 정신만 되살리면 서로의 국익에 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매국이니 굴욕외교니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퇴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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