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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수 탄생의 의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성탄절은 우리 고유의 명절도 아니고 국경일도 아니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관공서의 공휴일로 정했던 것을 정부수립 후인 1949년에 정식공휴일로 지정했다. 당시 국민들 중에 기독교인의 수가 5%도 안 된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무리한 처사였다.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와의 형평성 논란 끝에 1975년에는 석가탄신일도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수탄신일과 석가탄신일이 함께 공휴일인 나라가 되었다.2021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수는 개신교(20%)와 천주교(8%)를 합해 28%라고 한다. 국민의 70% 이상이 기독교인이 아니고, 불교신자도 11%라고 하니 어느 쪽도 국가를 대표할 만한 종교라고는 할 수가 없다. 불교의 경우 현재의 신자 수는 적으나 오랜 세월 국교였던 역사가 있으니 양대 종교로서의 균형이 크게 기운 것은 아닐 터이다. 아무튼 그 어느 쪽 신자도 아닌 사람들도 성탄절이나 석탄일을 공휴일로 정한 것에는 별로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성탄절이 기왕에 국가적 축제일로 지정이 됐으니, 비신자라도 한 번쯤은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수는 싯다르타, 공자, 소크라테스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릴 만큼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세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배적이었고, 지금도 25억의 신자들을 가진 세계 제1의 종교다. 예수는 기독교인들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자 성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만큼 인문학적 교양을 위해서라도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예수가 어떤 인물인지는 기독교 신약성서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예수의 행적에 대해 보고들은 바를 기록한 것을 4복음서라 한다. 그 중에서 마가복음서는 35쪽 분량으로 주로 예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다. 예수 사후 베드로와 동행하면서 그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으로 보인다. 예수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산상수훈으로 일컫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를 읽으면 예수의 핵심 사상을 알 수가 있다. 여기까지가 최소한의 상식이고, 관심이 가는 사람은 다른 부분도 읽어보면 될 것이다.연말과 성탄절을 앞두고 조금은 들뜨고 한편으론 어수선한 분위기다. 얼마 전 이태원참사의 충격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고 경제사정도 좋지를 않아 마냥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에 따라 성탄절을 맞으면 될 테지만,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도 올해는 예수의 탄생이 이 시대에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태원참사가 주는 교훈도 그렇고, 무슨 명절이든 축제든 우선은 그 의미부터 새겨보는 것이 문화인다운 태도라는 생각이다. 예수가 전 인류의 스승이듯 성탄절도 기독교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라는 것이 공휴일로 정한 취지일 것이다. 이번 성탄절은 국민 모두가 좀 차분하게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2022-12-22

민노총의 정체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 자본가는 생산원가의 절감을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고, 노동자는 여유롭고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하여 보다 나은 근로 조건을 원한다. 그래서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에는 임금수준, 노동시간, 노동강도, 노동조건 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마찰과 대립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갑의 위치에 있는 고용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단결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성된 것이 노동조합이고, 국가에서도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같은 권리를 법제화 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좌파계열 운동가들과 조선공산당 박헌영 등의 후원으로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우파계열로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을 명예총재로 하고 유진산, 전진한, 김두한 등을 중심으로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대한노총)가 출범했다.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는 좌파 불법화에 따라 1950년 강제해산 당했으나 대한노총은 1960년까지 존속했다. 5·16 이후 군사정권은 노동조합 모두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대한노총 역시 강제해산 되었다가 산별노조 정책에 따라 한국노총이란 이름으로 재결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995년 11월 11일에 창립했다. 창립 당시에는 비합법 조직이었으나 1997년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합법적인 조직이 됐다. 그러나 민노총의 그간 행적은 순수한 노조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라고 강령에도 밝혔듯이 노동운동보다는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폐지, 국정원 해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는 등 정치세력으로서의 활동에 치중해왔다.민노총을 이끌고 있는 주체가 경기동부연합 출신이라는 점도 그들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말해준다. 경기동부연합은 1980년대 중반 형성된 NL(민족해방파)계열 중에서도 북한 주체사상을 가장 신봉하는 친북단체이다. 이 조직의 핵심 세력은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가 해체된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 출신이고, 2013년 내란음모사건으로 징역 8년 형을 받고 복역한 전 통합진보당국회의원 이석기가 그 위원장이었다. 민노총 홈페이지에는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중앙위원회에서 보낸 문서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내용인즉, “미국과 남조선의 윤석열보수집권세력은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종 명목의 침략전쟁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놓고 있으며 이제 얼마 후에는 북침을 겨냥한 대규모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는 내외 반통일세력의 이러한 대결망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이 모든 정황들이 민노총의 정체를 드러내는 게 아니고 뭔가.바람직한 노동운동이란 기업의 발전과 융성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복리를 극대화하는 것일 터이다. 기업과 나라를 궁지로 몰아넣는 불법파업을 근절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들을 위하는 일이다.

2022-12-15

억새의 겨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겨울 들녘에는 억새가 주인이다. 생기를 다 소진한 마른 억새들이 겨울 들판을 지킨다. 수시로 바람이 불고, 고니나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 찾아오고, 눈이 내릴 때도 있지만 이 들녘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붙박이인 억새다. 날마다 들길을 걷는 나도 이 겨울공화국의 일원이고 억새와도 친하다. 억새가 나를 친구로 여기는지는 몰라도, 겨울들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이웃이고 동무다. 나의 겨울에는 억새가 있다.억새는 참 억센 풀이다. 초본식물 중에 억새보다 억센 풀을 본 적이 없다. 솜털이 붙은 조그만 씨앗이 바람이 날아와 정착을 하면 그 땅은 억새의 영토가 된다. 서슬 퍼런 잎은 맨손으로 잡으면 베이기 일쑤고, 해묵은 뿌리는 삽이나 괭이로도 캐내기가 쉽지 않다. 번식력도 강하고 결속력도 강해서 무리를 지어 산야의 일대를 장악하고 이삭이 피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흔하디흔한 들풀이지만, 그 기백과 결기를 헤아리자면 내가 너무 왜소해진다.“그윽한 향기나 고아한 자태를, 탐스러운 열매를 꿈꾸지 않는다/ 누구의 식욕이나 호사취미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도 않다/ 이 땅 들녘이나 산자락에 뿌리박고 지천으로 자라는 풀이지만/ 누구의 발길에 함부로 밟히거나 어느 손아귀에 쉽사리 뽑히지도 않는다/ 혹한의 계절에도 뿌리째 얼어 죽지는 않아/ 여름 한 철 다시 시퍼런 서슬로 뻗쳐올라/ 탱탱한 욕망의 이삭을 밀어 올린다” -졸시 ‘억새’일부우리는 백의민족이었다. 사대부나 관리들 말고는 모두가 물들이지 않은 흰 옷을 입었다. 조선말에 다녀간 선교사들이 찍은 흑백사진을 보면 실감을 하게 된다. 늦가을에 하얗게 무리지어 핀 억새는 우리민족을 떠올리게 한다. 그 희고 푸근한 빛이 감싸고 있는 억센 기질이 닮았다. 뿌리 뽑히지 않고 이어온 오천년 역사와,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것이 바로 억새의 기질이었다.늦가을에 하얗게 부푼 억새의 이삭은 꽃이 아니다. 억새꽃은 출수할 때 잠시 피었다가 수정을 하고는 이내 진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이삭이다. 다들 꽃이라 해서 꽃으로 굳어가는 분위기지만, 실상을 아는 나로서는 그렇게 묻어가고 싶지가 않다. 뭐라고 부를까, 생각을 해봐도 우리말 중에는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민들레 홀씨’니 ‘억새꽃’이니 하는 말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나만큼 그들을 잘 알고 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을 이런 시로나 대신한다.“억새에는 새가 있다/ 억새, 하고 부르면/ 바람 찬 들녘에 새들이 모여 섰다/ 바람의 유전자를 가져도/ 날지는 못하는 새// 뿌리가 없어 바람은 억새를 키우고/ 날개가 없어 억새는 바람을 품는다/ 새처럼 깃털이 있다/ 억새의 씨앗에는// 바람이 방목하는 겨울 들녘의 억새들/ 마른기침 서걱대며 모가지 길게 빼고/ 바람이 데려간 자식들 안부를 묻고 있다” -졸시 ‘바람과 억새’이 겨울이 너무 시리고 쓸쓸한 사람은 저 들녘의 억새를 만나러 가자. 다 비우고 삭풍을 맞는 억새의 전언을 듣자.

2022-12-08

유언비어, 청담동 술판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 2022년 7월 20일 01시에서 03시 사이, 서울 청담동의 모 술집에서 김앤장로펌의 변호사 30여 명과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장관,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총재 등이 모여 술판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첼로 반주에 맞추어 ‘동백아가씨’ 노래를 불렀고, 한동훈 장관은 윤도현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반주를 한 첼로연주자는 경비원들의 통제로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도 할 수가 없었다.# 위의 스토리는 그 술집에서 첼로를 연주한 채아라는 여성이 당일 02시 59분에 남자친구에게 한 전화의 내용이다. 그 통화를 녹음한 남자친구는 ‘더탐사’라는 유튜브에 제보를 했다. 그것을 또 누가 더불어민주당에 제보를 해서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10월 24일 국회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을 불러놓고 통화녹음을 공개하면서 사실이냐고 물었다.# 한동훈 장관은 장관직을 걸겠다면서 강력 부인했지만, ‘더탐사’ 유튜브가 연일 의혹을 부풀리는 방송을 하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 가세에다 다른 언론매체들이 베껴서 쓰거나 방영을 하는 바람에 일파만파 국내외로 퍼져나갔다. 일단은 육하원칙을 갖춘 위의 통화내용에 대해 절대로 아닐 거라고 확신을 한 국민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다수는 반신반의 했을 것이고, 틀림이 없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11월 23일 첼로 반주자 채아라는 여성이 서초경찰서에 출두해서 당시 남자친구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 거짓이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 시간에 남자친구에게는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거짓말로 둘러댄 거라는 얘기다. 온 국민을 의혹의 늪에 빠트린 사건이 허무하게 끝나는 결말이었다. 그러면 폭로라는 미명으로 모함과 음해에 가담했던 자들은 ‘아니면 말고’ 한 마디로 깨끗이 손을 씻을 수 있는 일인가. 하기야 아직도 그 여성이 경찰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해서 거짓 자백을 한 거라고 믿는 자들이 없지 않지만.# 23년 동안 한겨레신문 기자였고, 청와대 대변인 경력에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인 김의겸 의원이 과연 ‘청담동 술판’을 사실이라고 믿었을까. 국감장에서 발설하기 전에 최소한의 사실 확인만 했더라도, 아니 자신의 청와대 근무 경험으로 미루어도 대통령이 심야에 그런 술판을 벌였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는 일이다. 더구나 바로 그날 한·가봉 정성회담이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 접견이 있으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앞둔 대통령이 새벽 3시까지 술집에서 술판을 벌였을 거라고 믿는다면 어찌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의혹을 제기하고 부풀린 자들은 아무도 팩트체크(fact-checking)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혹을 부풀리기 위한 구실을 찾는 데만 혈안이었다. 그들은 옛날 윤지오 사건 때처럼 채아라는 여성이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아주 사라져서 기껏 부풀려 놓은 의혹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허황된 기대는 꺼지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모함하고 음해한 책임을 질 일만 남았다.

2022-12-01

죽음에 대한 예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나라의 연간 사망자수는 30만을 넘는다. 그 중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경우도 3천명 가까이 되고, 자살 사망자는 1만3천명을 넘어 하루 평균 36명꼴이라 한다.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는 828명이고 살인사건의 희생자 수도 300명이 넘는다. 그러니까 노령이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한,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만도 연간 4천명 이상이라는 통계다.신(神)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 죽음 앞에서도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누구나 예외 없이 결국에는 죽는다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사회학적인 측면에서는 죽음에도 천차만별 종류가 있고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예수처럼 인류를 위해 희생한 거룩한 죽음이 있는가 하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그 벌로 처형되는 죽음도 있다. 그것은 물론 죽음이라는 생물학적 현상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죽음 직전까지의 삶에 대한 평가인 것이다.동서를 막론하고 죽음 앞에서는 경건하게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고 정서다. 유가(儒家)에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식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로 삼는데, 그 중 절반인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는 죽음에 관한 것이다. 삶과 죽음을 같은 비율로 본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서양에도 죽음을 상기시키는 ‘메멘토모리’란 말이 있지만, 죽음을 우리의 삶 속에 끌어들여 내면화하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함의를 갖는 일이라 할 것이다.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많은 죽음이 발생한 참사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게 마련이다. 2014년의 세월호사건이 그렇고, 지난 10월의 이태원사건이 그렇다. 개별적으로 볼 때는 다른 사고사와 다르지 않지만, 대형 참사에는 분명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반드시 책임소재의 규명과 시정대책이 따라야 한다. 며칠을 애도의 기간으로 정하여 국민 모두가 조의를 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대형 참사가 인재(人災)일 경우에는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신속히 수행되어야 한다, 세월호사건의 경우, 여객선에 대한 관계기관의 철저한 감시감독과 사고발생시의 매뉴얼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제도화하고 수시로 점검을 해야 한다. 이태원의 참사는 그 경위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는 장소에 대한 사전 점검과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유사시에 차질이 없도록 대비하면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는 일이다.죽음에 대한 예의는 곧 인간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예의의 기본은 절도(節度)다.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쳐서도 무례가 된다. 행여 죽음을 왜곡하거나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무례를 넘어 망자를 모욕하는 악행이다. 유족들의 아픔과 슬픔이야 한이 없겠지만, 제3자들이 나서서 난리를 치는 것은 예의가 아닐뿐더러 저의가 의심스러운 일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초의를 표했으면 더 이상은 관여를 말고 잊는 것이 예의다. 무례하게 날뛰는 자들이 많아서 하는 말이다.

2022-11-24

금수강산(錦繡江山)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북쪽에서 내려온 단풍의 불길이 한반도 동남쪽을 태우고 있다. 그 불길이 다 소진되기 전에 단풍구경을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산길 초입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서 오색의 향연 속으로 들어갔다. 키 큰 관목들의 단풍이 가을볕을 역광으로 형형색색 찬란한 스테인드그라스가 되어 있었다. 한 점 그늘도 없는 열락의 성소(聖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감격에 울컥 뜨거워지는 마음이었다.우리나라를 흔히들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산천경계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봄에는 연두색 바탕에다 온갖 꽃들을 수놓고, 가을은 그야말로 오색이 찬란한 비단폭이다. 여름의 녹음과 겨울 설경도 색감으로는 단조롭지만 그 무게와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런 천혜의 자연이 모국인 것만으로도 어찌 크나큰 은총이고 다행이 아닌가.오륙십 년 전만 해도 금수강산이란 말이 무색하게 헐벗은 산이 많았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일제의 침탈, 6·25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과 함께 강산도 초토화 되어 있었다. 목재와 땔감을 위한 남벌로 민둥산이 되어 비가 오면 사태가 나고 가물면 강이 말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녹화·사방사업은 그야말로 앞을 내다본 치산치수였다. 그 덕택으로 대한민국은 다시 화려한 금수강산을 회복했다. 그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수 십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그 산림녹화사업과 새마을사업이, 경제개발사업들이 얼마나 선경지명이 있는 위대한 업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참으로 안타깝게도 삼천리금수강산이란 말은 아직 성립이 안 된다. 한반도의 반쪽이 민둥산인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몰래 찍어온 북한의 시골풍경에는 산에 나무가 거의 없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 역시 헐벗고 굶주린 모습이었다. 산천이 헐벗으면 백성들도 헐벗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김일성 일가가 대를 이어 이 땅과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악상이다.금수강산을 훼손하고 민심을 피폐케 하는 세력들이 대한민국에도 많다는 사실은 통탄을 넘어 공포스러운 일이다. 태양광발전이니 풍력발전이니 하는 것으로 국토를 파괴하는 행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치와 산업과 교육과 언론과 법조와 문화와 심지어 종교까지 장악한, 소위 종북좌파들이 나라를 패망의 길로 끌고 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국이다. 사악하고 파렴치한 모함과 패륜의 선전선동으로 민심과 민생을 피폐하게 하는 것은 결국 북한처럼 강산도 다시 헐벗게 하려는 수작에 다름 아닐 터이다.전직 대통령이 기르던 개를 버려서 비정한 인성의 일단을 드러내더니, 이번에는 신부(神父)라는 자들이 순방 중인 대통령의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보통사람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좌경화가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과 성직자란 자들의 인성이 그럴진대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오죽하겠는가. 삼천리금수강산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해서 각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숙고할 때이다.

2022-11-17

밀지 마라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한 대비가 있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공영방송에서조차 주의나 경고는커녕 오히려 부추겼다고 하니, 결국 일어날 사고가 일어난 셈이었다. 이번 참사의 특징은 위급상황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연장 같은 곳에 화재나 테러가 발생했다거나, 운동경기장에서 흥분한 관중들의 집단소요사태로 생긴 인명사고와는 다른 것이다. 그냥 놀러 나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이 막혀 난 사고다. 다급한 사정이 아닌 만큼 길이 막히면 멈추어서 기다리거나 다른 곳으로 돌아서 가면 그만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앞의 사람들이 백 수십 명이나 압사를 했다는 것은, 뒤로부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밀어붙이는 힘이 작용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다.한 마디로, 뒤에서 밀었기 때문이 일어난 사고였다. 고의로 밀었건, 장난삼아 밀었건, 별 생각 없이 밀었건, 민다는 행위들이 합쳐져서 대형 참사를 빚은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몰려 길이 막혔을 때는 절대로 뒤에서 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설령 위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아니 위급한 상황일수록 더더욱 밀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좁은 골목일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으로 화재나 지진의 대피요령과 함께 필히 학교 교육과목에도 넣어야 할 것이다.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군중심리가 발동하기 마련이다.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자제력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언동에 휩쓸리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서 유래된 것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반면 나치의 파시즘 같은 엄청난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요즘은 SNS의 획기적인 발달로 실시간 비대면으로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새로운 양상의 군중심리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최소한의 신분노출도 필요 없는 익명성과 실시간 다중소통이 가능한 파급력으로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주동력이 된 것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어느 분야건 군중심리를 이용하지 않고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다.핼로윈이라는 남의 나라 풍습을 좇아 젊은이들이 몰려든 것도 군중심리의 하나일 것이고,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다 군중심리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예상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 지자체나 경찰 당국의 역할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계속 소를 먹이려면 외양간부터 고쳐야 한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이고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시대현실에 맞는 공중질서의식을 학교 교육에서부터 길러야 한다. 군중심리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심도 있는 연구도 요구되는 현실이다. 교육을 통해서든 언론매체를 통해서든 사람이 운집한 곳에서는 절대로 남을 밀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쯤은 갖게 해야 선진국이다.

2022-11-10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우리의 미래는 물론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가질 때 우리나라 미래는 밝을 것이다. 반대로 왜곡되고 편협한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대부분 좌경화되었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43주기 추도식에서 낭독한 김소연 변호사의 추도사는 그런 현실을 적시하고 있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저희 세대에게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습니다. 386 운동권들이 차지한 전교조와 학원가 강사들의 재미있는 역사 수업 사이사이에 뿌려지는 충격적인 단어들은 감성이 충만한 사춘기 학생들에게 매우 자극적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극과 충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세뇌된 이미지가 뇌리에 깊이 박혀 대한민국 국민들을 먹여 살린 ‘영웅 박정희’를, 국민들을 핍박한 ‘악마’로 각인시켜왔던 것입니다”김 변호사는 1981년생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에 태어난 40대 초반이다. 그의 추도사를 들어보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그 중에서도 40대들이 왜 그토록 좌편향적인지를 알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6·25전쟁의 참화나 새마을운동 따위는 아득한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렸고, 반면 386운동권들은 세련되고, 똑똑하고, 요즘 말로 굉장히 힙한, 젊은 삼촌·이모들 같았기에 더욱 친근하고 닮고 싶었던 거라고 했다.“386 운동권 세대의 ‘민주화 운동’은 마치 영웅의 일화 같았고, 폭력과 억압, 최루탄을 뚫고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는 모습은, 과장되고 미화되어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세대들은 경험해본 적도 없는 최루탄 냄새가 마치 나는 듯했고, 영화 속 동료가 군홧발에 짓밟혀 죽어 나갈 때는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함께 도피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직접 경험했던 로맨틱한 추억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그러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거리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얼마나 한심스러웠겠는가. 그 노인네들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열사의 나라 건설현장에서, 서독의 탄광에서, 베트남 전쟁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대가로 최빈국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것을, “태어나 보니 잘 사는 나라였다”는 세대가 어찌 알 것인가. 오늘날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그렇게 비하하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늙은이들이 피땀으로 심은 나무의 열매라는 것을.그러나 김소연 변호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일말의 안도와 기대를 갖게 한다. “여전히 30년이 넘도록 스무 살 캠퍼스 낭만과 최루탄의 향기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인, 우리 선배 386 운동권 일부는 정치권에 남아 철 지난 이념선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희 MZ세대가, 이들을, 이 불쌍한 386들을, 스스로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오고 해방될 수 있도록,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2-11-03

색깔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통혁당사건’으로 복역한 신영복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사석에서 한 얘기가 아니라, 각국 정상급 인사들과 북한의 김여정 일행이 참석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사상적 일단을 세계만방에 천명한 셈이었다. 통혁당(통일혁명당)의 지도이념은 주체사상이며,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이 목적이었다. ‘반정부 및 반미 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 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는 이유로 검거된 당원들 중 북한에 가서 로동당에 가입한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사형에 처하고 신영복 등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위의 사건이 다시 소환된 것은 이번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였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종북주사파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대답한 데서 비롯되었다. 김문수 위원장은 과거 노동운동을 한 경력이 있어서 신영복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했다.‘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해 (중략)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 통일혁명당 기관지 ‘혁명전선’에 실린 이 글을 보면 김 위원장이 왜 문 전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라고 했는지 이해하게 된다.좌파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곧잘 색깔론이라고 매도한다.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다고 ‘종북몰이’를 하느냐는 것이다. 좌파가 아닌 사람들 중에도 그들의 말에 동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종북 주사파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하다 전향한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金日成 原典(김일성 경전)’을 읽으며 북한 주도 통일 실현을 목표로 활동했다. 그들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그 때의 주사파들이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인물들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들의 행보를 보면 지금도 사상적으로 완전히 전향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겉으로는 내세우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궁극적 지향점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체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소위 ‘운동권’시절에 불태웠던 체제전복의 꿈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철저한 활동으로 좌경화된 사회일반의 의식전환을 위한 범국가적 혁신이 이 시대의 주요 당면과제이다.

2022-10-27

음미(吟味)하는 삶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세상과 인생에는 음미해볼 만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애호가들은 한 잔의 차나 와인을 두고도 많은 것을 음미해낸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다르다. 눈으로는 빛깔을 보고 코로 향기를 맡으며 한 모금씩 머금어 천천히 삼키면서 맛을 음미한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깊고 미세한 맛과 향까지를 감지해 낸다고 한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오감만을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인 식견이나 미학적 감성까지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볼 줄 알아야 느낄 수도 있다는 이치다.음미할 거리로 가장 좋은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다. 자연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고 무궁무진한 신비가 아닌가. 풀꽃 한 송이 벌레 한 마리에서부터 바람과 구름과 해, 달, 별 어느 것에도 무한한 경이와 감동을 음미할 수가 있다. 생존의 절대적인 조건인 자연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살만한 것이 된다. 특히나 이렇게 눈부신 가을날에는 삼라만상이 찬란한 광휘에 휩싸여 있다. 이럴 때는 무얼 음미하고 말 것도 없이 그냥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 있으면 된다. 어떤 미망의 그늘도 없는 환희의 생명이면 되는 것이다.아무리 맛나고 질 좋은 음식이라도 허겁지겁 먹어서는 그 진미를 충분히 느낄 수가 없다. 반대로 거칠고 맛없는 음식도 천천히 씹으면서 음미해보면 나름의 맛이 나기도 한다. 부질없는 욕심에 쫓겨 허둥지둥 살다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음미할 겨를이 없게 된다. 혹자는 욕망의 성취로 얻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만끽하는 거야말로 제대로 음미하는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품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런 욕망을 쫓는 사람들에게 안주(安住)가 있겠는가. 더 높고 더 큰 것을 쫓아가기 바빠서 차분히 음미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가장 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란 사실을 곧잘 잊고 산다. 세상에 공기처럼 흔한 게 없지만 우리 목숨을 부지하는데 공기보다 소중한 것도 없지 않은가. 값나가는 귀중품일수록 없어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지만, 공기나 물처럼 흔한 것일수록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라는 걸 잊곤 하는 것이다. 들판에 지천으로 자라는 잡초들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주역이라는 것, 우리 생명이 필요로 하는 건 한 수레의 보화가 아니라 한잔의 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사코 한눈을 파는 게 인심이다.영적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오직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걷는 것만으로도 종교적 깨달음에 이른다고 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붙잡혀 현재를 놓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음미하는 삶으로 바꾸고 싶다. 관찰이나 집중보다는 음미라는 말이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지 않는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은 객관이나 추상일 수가 없으므로. 음미든 집중이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을 열어 놓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 많이 가질수록 그 무게에 눌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위태로운 게 세상의 이치다. 이미 주어진 것만으로도 벅차고 넘칠 수 있는 것이 음미하는 삶이다.

2022-10-20

표현의 자유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고등부 금상을 받은 ‘윤석열차’란 작품이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당 작품을 시상한 것은 정치 편향적’이란 이유로 ‘엄중경고’를 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일었다.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의 운전석에는 김건희 여사가 앉았고, 객실 창밖으로 법복을 입고 칼을 쳐든 검사들이 상체를 내밀고 있다. 기찻길 뒤로는 부서져가는 건물들이 보이고 열차 앞에는 노인, 아동, 군인, 여성들이 열차를 피해 도망치고 있다. 그림의 내용인즉,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들을 동원하여 국민들을 무차별 탄압하는데 그것을 김건희 여사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우파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사실에 근거한 풍자가 아니라 좌파들의 사악한 모함의 프레임을 대변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다른 작품보다 스토리, 연출, 창의성,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심사의원들의 판정 이유라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다.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헌법 제22조 1항)와 문화적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갖는다.(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 제4조)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헌법 제21조 4항)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헌법 제37조2항)표현의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형법 307조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형법 제311조에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도 있다.위 사건의 경우 해당 학생의 예술적 재능은 인정할지라도, 아직 미성년인 학생들이 기성사회의 왜곡되고 편향된 정치적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혐오나 증오의 정서를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악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 신장이란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나 사회가 온전하지 않을 때는 최소한의 자유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실상에 대한 인식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기타 자유(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는 그것을 강제할 권력을 필요로 하며, 그 권력이 바로 국가다. 국가는 법과 경찰이라는 모습으로 그 질서를 강제하고, 그 질서를 방해하는 것은 범죄라 칭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자유의 수호자인 국가에 복종하는 순종적인 시민만이 자유로운 인간이며, 거역하는 이는 무법자라는 역설이 탄생한다.”독일의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의 말이다.

2022-10-13

비분강개(悲憤慷慨)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內戰) 중이다. 북쪽의 김정은 세습독재체제와의 대결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남한 내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들과의 전쟁이다. 물론 무력으로 적을 살상하는 전쟁은 아니다. 언론매체를 이용한 선전선동이나 집단시위 등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여론전이다. 그 여론전의 목표는 선거의 승리로 정권을 잡고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는데 있다. 일견해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정치행위로 보이지만, 그 한쪽이 나라의 체제를 부정하는 집단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이제 가까스로 자유우파가 정권을 잡긴 했지만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법원과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 핵심적인 기구의 요직에 좌파정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가 하면 정부조직에조차 좌파정권이 ‘알박기’해놓은 인물들이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매체까지 좌파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치명적이다. 여론전의 주무기가 언론인데,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은 핵폭탄급 위력을 가진다. 언론이 편파, 왜곡, 조작하면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가 똑똑히 보아온 바이다.내전 장기화의 결말은 망국이다. 전쟁은 어느 한쪽이 확실히 이겨야 끝이 난다. 지유우파가 승리하면 자유대한민국은 존속할 것이고, 종북 좌파가 이기면 자유민주주의체제는 붕괴의 길을 갈 것이다. 전쟁판에 중도가 설 자리는 없다. 방관자의 무책임한 태도나 회색분자들의 양비론 따위는 발붙일 곳이 없다는 것이다. 원하든 싫어하든 승리한 세력의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체제전복을 꾀하는 반역의 무리들로부터 국가를 수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윤석열 정권이 가진 것이라고는 수사권 완전박탈을 앞두고 한동훈 법무장관이 고군분투하는 검찰권뿐이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지난 정권 불법·비리의 정점을 향해 수사의 칼날이 다가가자 좌파세력들은 발작적으로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그들의 유전자엔 잘못의 반성이나 패배의 승복이란 없다.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이 좌파들의 전략이다.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침소봉대하기 위해 혈안이고,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적반하장으로 뒤집어씌우기가 먹힌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여론전을 이기기 위해서는 중도를 얼마나 끌어오느냐가 관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좌파들의 불의와 비리, 무능과 후안무치를 낱낱이 파헤쳐 폭로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의 실체를 확실히 알아야 중도가 돌아설 터이니.온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북핵의 위협과 경제난국에 대처해도 모자랄 판에 내란으로 국력을 소진하다니, 나라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비분강개를 금할 수가 없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천우신조가 아닐 수 없다. 우국충정을 가진 국민들이 모두 나서서 나라를 구할 때이다.

2022-10-06

코스모스 가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초가을 들녘에 코스모스 꽃이 한창이다. 철없이 서둘러 핀 것도 있었지만 지금부터가 제철이다. 누기 일부러 심고 가꾼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고 자라 꽃피운 야생화다. 요즘은 하도 예초기로 자르거나 제초제를 쳐대는 바람에 들판 한가운데는 논둑에 풀이 자랄 새가 없는데, 용케도 살아남아 꽃을 피웠으니 더 반가운 일이다. 물론 코스모스 혼자서 초가을을 펼치는 역할을 맡은 건 아니다. 이삭이 팬 억새도 있고 쇠어가는 쑥대와 망초도 있다. 도랑가의 여뀌와 물옥잠도 한 몫을 한다. 그것들의 배경으로 높푸른 하늘과 누렇게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이 있어 한 폭의 초가을 풍경을 완성한다.코스모스 꽃이 곱게 핀 초가을 들길을 걸으면서 나는 한 이름 꽃다발을 받아 안은 기분이다. 사람들은 특별히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표시로 꽃다발을 선사하지 않는가. 그것을 받아든 사람은 물론 존경받고 대접 받았다는 생각에 흐뭇하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이 가을 들녘 한복판에서 나는 뿌듯한 행복감과 존재감을 느낀다. 높푸른 하늘과 황금빛 들판, 온갖 풀꽃들이 나를 둘러싸고 환영하고 축복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림없는 소리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다는데 구태여 누가 말리는가.‘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있지만, 대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건 더없이 마음 편한 일이다. 혼자서 아등바등 할 것 없이 자연의 섭리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소외감으로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자연의 품에서 위안과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사람의 의지나 욕심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이다. 그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어리석은 일이고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이것은 결코 무기력한 비관주의가 아니다. 자연에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법이 없다.이 가을, 삼라만상이 모두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데 유독 사람들만 정처가 없는 것 같다. 한 떨기 풀꽃이나 벌레 한 마리, 단풍잎 하나에 비해 나는 과연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가. 사람을 사람에게 물어서는 정확한 답을 들을 수가 없을 터이다. 자연에서 멀어진 만큼 핑계와 구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가을 들판 한가운데서 높푸른 하늘과 풀꽃들에게 물어보는 나가 참 나일 것이다.반성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반성의 주체인 자아조차 상실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돈이든 권세든 탐욕을 쫓아가다 자신을 잃어버린 군상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특히나 정치꾼들은 거의 예외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비열하고 파렴치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일말의 자존감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자신을 거짓과 사악의 구렁텅이에 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은 함부로 처신하지 않는다. 불의나 탐욕에 빠져들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자신을 더럽히고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가을 들길의 코스모스가 일러준다. 너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이니 반드시 제몫을 해야 되는 거라고.

2022-09-29

혼란정국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정국(政局)이 매우 혼란스럽다. 경제계는 물가와 금리, 환율이 모두 상승하는 ‘3고 현상’으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늪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정치권에서는 최소한의 양심이나 이성도 팽개친 무리들의 난동과 패악질로 국력낭비를 가중하고 있다. 여당은 대표란 젊은이가 끊임없는 해당행위로 징계를 당하고도 오히려 당과 대통령에 대해 비난과 악담을 일삼고 있고. 야당은 전과 4범에다가 온갖 비리의 혐의와 의혹으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을 대표로 뽑아 놓고 그를 수호(?)하기 위해 마치 자폭테러꾼들을 방불케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정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을 가르게 될 기로에 서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왜 동족을 살상하는 무리들의 침략으로 누란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우리는 종북 좌파들의 민낯이 과연 어떠한지를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무엇보다 민주화투쟁 전력을 구국의 훈장처럼 달고 살지만, 막상 그들의 목표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였다. 좌파정권이 집권하는 동안 나라 전반에서 자행된 독단과 전횡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특히나 그들 정권을 지지한다는 패거리들은 중공의 홍위병들을 연상케 했다. 몽둥이나 죽창 대신 문자폭탄 같은 디지털 무기와 온갖 악의적인 선전선동이 다를 뿐이었다.다음으로 드러난 것은 좌파들의 무능이었다. 그들에게 능한 것은 오로지 투쟁뿐이었다. 누구든 일단 적으로 간주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해를 가하는 능력(?)은 자타가 공인을 하는 터이다. 훼방하고 때려 부수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것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원전건설을 파기하고 4대강 보를 파괴할 궁리나 했지 새롭게 무얼 만들어낸 능력은 없는 자들이었다.가장 심각한 것은 반지성과 도덕적 파탄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에는 반성이나 성찰이란 없다. 마치 무오류성의 신이나 된 것처럼 저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상대가 하면 적패지만 내가 하면 정의요 혁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를 못한다.정국이 혼란할수록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바로미터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선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택일의 문제이지 화합이나 공조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대세력들을 압도하거나 배격하는 것 말고는 길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우파 세력과 지지층을 넓혀나가는 게 필수다. 우선은 정권이 제몫을 해야겠지만, 애국심과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헌신적이 노력이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다. 좌파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 대신 자유우파 유튜버들이 밤낮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2022-09-22

이재명 구하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영화다. 라이언 일병은 4형제 중 막내인데, 위로 세 형들이 모두 참전을 했다가 전사했다. 이를 알게 된 육군참모총장이 그 막내아들만이라도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행방을 알 수 없는 라이언 일병을 구출해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그 임무를 맡은 밀러 대위와 7명의 대원들이 벌이는 활약상이 영화의 줄거리다. 마침내 라이언 일병을 구출하지만, 그 작전을 수행한 대원들은 밀러 대위를 포함해 여섯 명이 죽고 두 명만 살아남는다. 이 영화는 웅장한 규모와 실감나는 전투장면이 압권이지만, 한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섯 명이 희생되었다는 측면에선 생각의 여지가 많다.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이재명 대표를 구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물론 위의 영화에 나오는 라이언 일병과 이재명 대표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네 아들이 모두 전쟁에 나가서 세 아들이 죽은 노모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정신에 대한 경의와도 ‘이재명 구하기’는 거리가 멀다. 구태여 공통점을 찾자면 그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다는 걸 들 수가 있겠다.민주당의 ‘이재명 구하기’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여당시절부터 수사팀을 해체하고 정권에 추종하는 검사들로 교체하는가 하면 검찰총장의 옷을 벗게 하고, 꼼수와 편법을 써서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래놓고 이재명을 대선후보로 밀었다가 낙선을 하자 대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주고 당 대표를 시키더니 당헌까지 개정하는 등 3중 4중으로 ‘방탄조끼’를 입혔다. 그래도 검경의 수사가 계속되자 ‘김건희 특검법’을 들고 나와 맞불을 놓고, 심지어는 법무장관과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 일련의 과정이 하도 기상천외해서 대한민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일이 아닐 수 없다.라이언 일병은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뛰어들었지만 이재명 대표는 온갖 비리의 의혹에 둘러싸여 있다. 허위사실공표(선거법위반)로 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대장동과 백현동 개발특혜 의혹, 성남 FC 의혹 등 지금 수사 중인 사건만도 십여 개나 된다. 그야말로 항우장사도 어쩔 수 없는 사면초가여서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무사히(?) 구출할 가망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영화에선 라이언 일병을 구출하려다가 여섯 명의 대원이 죽었지만, 겹겹으로 둘러싼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끝내 이재명도 구하지 못한 채 엄청난 희생만 치르게 될 것이란 얘기다. 오로지 진영논리에 눈이 멀어 애당초 부당하고 승산도 없는 일에 올인 하다가 명분도 실리도 잃고 치명상만 입게 될 것이 빤히 보인다.밀러 대위는 죽으면서 라이언 일병에게 가치 있게 살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했다. 그래야 자신과 대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력투쟁을 하고서도 이재명을 구하지 못한 민주당에게는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재명은 이제라도 국회의원직과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성실하게 검찰의 수사에 임하는 것이 그나마 당과 자신을 위한 최선이 될 것이다.

2022-09-15

나의 이웃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폭염과 가뭄을 지나온 풀들이 가을의 초입에 서 있다. 날마다 이 들판에 나와 거닐면서 나도 그들과 함께 여름을 지나왔다. 망초와 고들빼기는 벌써 제철을 마감하고 달맞이꽃도 줄기 끝에 남은 꽃을 마저 피우고 있다. 그들에게 이 가을은 한 생의 마지막 계절이겠다. 다른 풀들에 비해 대가 무른 코스모스가 가뭄을 많이 탔다. 이번 가을에는 제대로 꽃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을 했는데,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려 지금은 제법 생기를 회복한 상태다. 노랗게 벼 익은 들판을 배경으로 코스모스와 억새가 피어있는 풍경이 좋아서 다른 풀들보다 마음이 더 간다. 도깨비바늘은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미국쑥부쟁이는 외래종인데도 토종 쑥부쟁이보다 이 땅에 더 잘 적응을 했다. 타국에서 한국 농촌으로 시집 와 억척스럽게 사는 여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쑥대와 명아주, 강아지풀도 쇠어가면서 가을 문턱을 넘고 있다.벼들이 고개를 숙인다. 이삭이 영글수록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속이 차고도 겸손한 사람을 일러 고개 숙인 벼이삭에 비유한다. 딱 맞는 말이다. 빈 쭉정이들이 오히려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 설쳐대는 세상이 아닌가. 조와 수수, 기장도 알이 차면 고개를 숙인다. 밀레의 그림 ‘만종’의 부부처럼 고개 숙인 자세에는 경건함이 감돈다.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연에 경전 아닌 것이 없다. 흔하디흔한 들풀일수록 더 강인한 생명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이대로 가면 이 들판 벼농사는 풍년이겠지만 아직은 모른다. 작년 가을에는 태풍이 없었지만 비가 너무 자주 와서 쓰러진 벼가 많았다. 같은 품종이라면 이삭이 실한 벼일수록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 쉽다. 소출이 적어도 키가 낮고 이삭이 작은 품종을 선택할 것인가는 농부의 판단에 달렸다. 누운 벼가 물에 잠겨 추수를 포기한 논도 더러 있었다. 거센 비바람 앞에서는 오히려 못난 벼가 잘 견딘다.메뚜기들이 날거나 뛰는 게 더러 눈에 띈다. 옛날 같으면 이맘때쯤 들길을 가면 가마솥에 콩 볶듯 메뚜기들이 튀었는데 지금은 드물게 눈에 띌 정도다. 농약과 제초제 때문에 살아남은 메뚜기들이 많지 않은 것이다. 개체수가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크기도 작아졌다. 메뚜기만큼이나 흔하던 개구리도 어쩌다가 보이고, 물방개 소금쟁이 물장군 같은 물벌레들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미꾸라지도 없어졌다. 벼들만 풍년인 들판은 사람들에게만 풍요롭게 보일 뿐이다. 부지런한 농부일수록 생태계엔 더 적이다. 논둑의 풀이라도 그냥 두면 좋으련만 수시로 제초제를 쳐대는 바람에 풀벌레들이 깃들 곳이 없어졌다.날마다 들길을 걷는 것이 일과의 하나인 나에게는 들녘의 풀들이 이웃이고 그들의 안부가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바람과 구름과 비와 햇볕을 한 이불처럼 같이 덮고 사는 사이다. 가뭄에 풀들이 시들어 가면 나도 목이 타서 비를 기다리게 된다. 현대를 살면서 인간사회의 사정에도 무관심 할 수가 없지만, 내 삶의 본령은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도 가지고 있다. 여름 가고 가을이 온다.

2022-09-01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좌파정권의 연장을 막았다는 사실이 역사적 의의를 갖기 때문에 그렇다. 윤 대통령은 등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역대 여느 검찰총장들처럼 자신을 발탁한 정권에 고분고분 충성을 했으면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지금쯤 변호사 개업이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문재인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무슨 대단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이라기보다는 부당한 일에는 적당히 타협하거나 굴종하지 못하는 성품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추미애와 박범계 두 법무장관들의 지나치게 상식을 벗어난 처사가 그를 일약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켰다. 그로 인해 야당의 대권주자가 되고 대통령까지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은 국민들이 불러내고 선택을 한 것이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사’란 애국가 가사처럼 어떤 보이지 않은 손이 우리나라의 명운에 관여하는 게 아닐까하는 느낌마저 드는 건 왜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고 좌파세력이 재집권 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회복할 수 없는 와해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반공은커녕 군기무사를 해체하고 국정원의 대공기능을 폐지해서 북조선 노동당 연락소 역할이나 하게 만들어버린 좌파정권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후안무치한 선전선동과 퍼주기 표퓰리즘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교란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됐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 70년사는 반공(反共)의 역사였다. 해방공간에서 좌우 양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은 공산당(남로당)과 한국민주당이었고, 여운형이 이끄는 중도좌파의 조선인민당과 김구 등 상해 임시정부 계열의 한독당 같은 중도우파 정당도 있었다. 그러나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 일당이 38선 이북을 장악하고 신속하게 공산주의체제를 정비하자, 남쪽에서도 치열한 대립 끝에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서울시민 77%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자유대한민국의 탄생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취임 100여 일이 지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 안팎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좌파 세력들로부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민심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터이다. 심지어는 보수우파정당을 표방하는 지금의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제대로 된 반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드물 정도니 나라 전체가 좌경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미친북을 외치는 주사파들보다도 친미반공을 부르짖는 애국우파들을 더 백안시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위대한 업적이 아니다. 좌경화로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 지난 정권이 파괴하고 훼손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정체성을 정상화 하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당면과제요 역사적 사명임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란다. 지지율에 연연하고 인기 있는 대통령이 되어보겠다는 계산이 앞서면 오히려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 70년 역사를 살아온 초야의 범부가 드리는 충언이다.

2022-08-25

이재명과 이준석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가장 많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두 사람이 이준석과 이재명이다. 이준석은 여당의 대표로 있다가 징계를 받아 당원권이 정지된 상태이고, 이재명은 제1야당의 대표 경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중이다.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라는 직책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전체 민의를 대표하는 자리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둘러싼 온갖 논란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민심의 현주소가 되는 것이다.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쳐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인 이재명에게는 전과4범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무고 및 공무원자격사칭,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 공용건물손상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공직선거법위반 중 어느 하나도 대의명분이 있는 죄목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혐의나 의혹을 받고 수사 중인 비리들은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대장동과 백현동의 개발특혜 의혹, 성남FC후원금 뇌물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경기도청법인카드 유용 의혹, 경기주택도시공사 합숙소 비선캠프 전용 의혹 등은 막대한 돈이 오가거나 심각한 공권력남용의 소지가 있는 것들이다.여당 대표인 이준석이 당윤리위원회에서 6개월 당원권정지의 징계를 받은 것은 성상납사건 무마를 위한 증거인멸교사를 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공소시효나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서 그 정도의 물의를 일으킨 것만으로도 당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준석은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을 당권투쟁의 희생양인 양 호도하고 당과 대통령까지 싸잡아 온갖 악담을 퍼붓는 등 반발을 계속하고 있다.이재명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을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부터는 양양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누구 못지않게 많은 것을 누린 그가 가난한 소년공이니 천박한 가계니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가당치가 않다. 이준석의 경우 대학까지는 최샹급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보통의 청년들이 고시원에서 머릴 싸매고 공무원시험 공부를 할 나이에 정당의 최고위원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당 대표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상식을 너무 벗어난 무리수였다. 순전히 요행으로 벼락출세를 한 것이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정치가 컴퓨터게임과 다른 것은 올바른 인성에다 국민과 국가에 봉사한다는 소명의식까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두 사람의 성장과정은 많이 다르지만 철저히 이기적이라는 그 인성에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매스컴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그들의 행적 중에 나라와 국민을 위한 소명의식이나 헌신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현란한 말재간이든 과감한 표퓰리즘이든 오로지 자신의 영달에만 목적이 있다는 걸 모르는 국민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판은 모리배들의 난장판이고 그로 인해 민심은 부박하고 지리멸렬해졌다. 이재명과 이준석 두 사람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조만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계퇴출로 새로운 계기가 열리길 바란다.

2022-08-18

대통령 발목잡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지 석 달이 지났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정하고 청와대를 개방한 것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정책을 철폐한 것과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기울어진 외교·안보·법치를 정상화 하겠다는 의지와 행보를 보여준 것이 그간의 대표적인 업적이었다. 일견 당연한 일을 한 것 같지만 지난 좌파정권의 정책노선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한 나라에선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지난 정권이 잘 보여주었다. 야권 좌파세력들의 필사적인 윤 대통령 발목잡기는 충분히 예견한 일이었다.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할 수만 있으면 탄핵을 해서라도 끌어내리고 정권을 되찾고 싶은 것이 저들의 염원일 터이다.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위해서는 사사건건 어떤 시비와 훼방과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는 것이 저들의 생리고 전략이라는 건 익히 보아온 바다. 소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온갖 비리·범죄에 연루된 인물을 당대표로 뽑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걸 보아도 법치나 정치도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집단임을 알 수가 있다.정권이 바뀌었으나 지난 정권의 잔존세력들이 곳곳에 포진하여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나 좌파노조가 장악한 언론매체의 발목잡기는 여간 심각한 장애가 아니다. 전 정권에서는 어용 편파방송을 일삼던 공영방송까지 현 정권에 대해서는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안달이다. 하나의 흠결이 열 가지 장점을 상쇄하는 것이 소문에 대한 민심이다. 매스컴이 기본적으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파급효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실만을 보도한다고 할지라도 긍정젹인 사실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사실만을 다룬다면 그게 바로 악의적인 편파보도라는 걸 대다수 민심은 눈치를 채지를 못 한다.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여권 내부에서도 온갖 분탕질로 발목잡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여당의 대표가 나서서 이토록 해당행위와 정권의 발목을 잡은 것은 유래가 없는 일이다. 제1야당이나 여당의 대표쯤 되는 인물이라면 마땅히 나라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소명의식이나 책임감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소인배로는 그 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라와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오로지 당권 다툼에만 혈안이 되거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해 어디에 줄을 댈지 눈치 보기에 급급한 여당 국회의원들도 결국 대통령 발목잡기에 한 몫을 하는 것이다.윤 대통령은 아직 정치판이나 언론의 생리에 익숙하지 못하다. 통치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행위고 정치적 파급력을 갖는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대통령의 소신이나 감정은 반드시 정치적 여과를 거쳐서 표출되어야 한다. 올바른 소신과 철학을 갖는 것만으로는 정치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어떻게 관철하느냐 까지가 정치적 역량이다.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발목에 기름칠이라도 해서 붙잡으려는 손들을 매끄럽게 빠져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2022-08-11

정보화시대와 노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지금 노년에 이른 사람들은 농경사회와 산업화시대를 거쳐 왔다. 195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전체인구의 7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는 가난한 농업국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산업사회로 전환이 시작되었다. 어릴 때 소 먹이고 꼴 베던 소년들이 성장해서는 산업의 역군이 되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정보화시대의 노년으로 살게 된 것이다.농경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상당한 대접을 받았다. 오랜 세월 쌓아온 농사의 경험과 기술은 젊은이들이 마땅히 배우고 따라야 할 삶의 지혜요 가치였다. 산업사회에 들어서도 한동안은 연륜에 따른 경험과 기술이 생산현장의 지표가 되고 권위가 되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업무가 자동화, 분업화, 디지털화 되면서 단순히 연륜에 따른 노하우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첨단기술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젊은이들의 순발력과 적응력이 빛을 발하기 마련이었다.이래저래 오늘날의 노년은 상실감과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는 세대다. 평균수명이 길어져서 노령인구가 급증하는 시대에는 노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한 사회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정보화시대가 잎이요 꽃이라면 농경시대는 뿌리요, 산업시대는 줄기에 해당한다. 뿌리와 줄기가 없는 꽃과 잎이 없을진대, 이 시대를 활짝 꽃피우기 위해서는 노령인구가 근간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꼰대니 뭐니 거치적거리는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뿌리와 줄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초등학교 동기들의 카톡방에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메시지가 뜬다. 대부분 옮겨온 것들이지만 거기에는 노년의 삶에 대한 온갖 유익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인생경영의 지혜도 담겨있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나 꼭 필요한 생활정보도 있다. 누군가 정성껏 만들었을 동영상들은 언어메시지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음악과 그림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도 한다. 평소에 독서를 하지 않던 친구들도 날마다 카톡 메시지를 읽는 것으로 독서의 생활화를 대신하는 셈이다.온갖 정보들이 범람하는 정보화시대는 세대 간의 격차를 더 벌리고 노년을 더 소외할 것으로 예견 했지만 사실은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무한정의 정보들을 잘만 이용하면 노년을 보다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길도 열려있는 것이다. 대다수 노년세대가 안고 있는 충분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아쉬움을 풀 수 있는 여건도 마련이 된 셈이다. 공부란 학교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종교, 철학, 역사, 예술 어느 분야든 유명 강사들로부터 무상으로 강의를 들을 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평생교육의 장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기왕의 연륜에다 인문학적 지식까지 보탠다면 시대와 나라의 근간이요 중심축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국가적 혼란과 갈등을 정리할 건강한 상식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