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녘에는 억새가 주인이다. 생기를 다 소진한 마른 억새들이 겨울 들판을 지킨다. 수시로 바람이 불고, 고니나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이 찾아오고, 눈이 내릴 때도 있지만 이 들녘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붙박이인 억새다. 날마다 들길을 걷는 나도 이 겨울공화국의 일원이고 억새와도 친하다. 억새가 나를 친구로 여기는지는 몰라도, 겨울들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이웃이고 동무다. 나의 겨울에는 억새가 있다.
억새는 참 억센 풀이다. 초본식물 중에 억새보다 억센 풀을 본 적이 없다. 솜털이 붙은 조그만 씨앗이 바람이 날아와 정착을 하면 그 땅은 억새의 영토가 된다. 서슬 퍼런 잎은 맨손으로 잡으면 베이기 일쑤고, 해묵은 뿌리는 삽이나 괭이로도 캐내기가 쉽지 않다. 번식력도 강하고 결속력도 강해서 무리를 지어 산야의 일대를 장악하고 이삭이 피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흔하디흔한 들풀이지만, 그 기백과 결기를 헤아리자면 내가 너무 왜소해진다.
“그윽한 향기나 고아한 자태를, 탐스러운 열매를 꿈꾸지 않는다/ 누구의 식욕이나 호사취미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도 않다/ 이 땅 들녘이나 산자락에 뿌리박고 지천으로 자라는 풀이지만/ 누구의 발길에 함부로 밟히거나 어느 손아귀에 쉽사리 뽑히지도 않는다/ 혹한의 계절에도 뿌리째 얼어 죽지는 않아/ 여름 한 철 다시 시퍼런 서슬로 뻗쳐올라/ 탱탱한 욕망의 이삭을 밀어 올린다” -졸시 ‘억새’일부
우리는 백의민족이었다. 사대부나 관리들 말고는 모두가 물들이지 않은 흰 옷을 입었다. 조선말에 다녀간 선교사들이 찍은 흑백사진을 보면 실감을 하게 된다. 늦가을에 하얗게 무리지어 핀 억새는 우리민족을 떠올리게 한다. 그 희고 푸근한 빛이 감싸고 있는 억센 기질이 닮았다. 뿌리 뽑히지 않고 이어온 오천년 역사와,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것이 바로 억새의 기질이었다.
늦가을에 하얗게 부푼 억새의 이삭은 꽃이 아니다. 억새꽃은 출수할 때 잠시 피었다가 수정을 하고는 이내 진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이삭이다. 다들 꽃이라 해서 꽃으로 굳어가는 분위기지만, 실상을 아는 나로서는 그렇게 묻어가고 싶지가 않다. 뭐라고 부를까, 생각을 해봐도 우리말 중에는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민들레 홀씨’니 ‘억새꽃’이니 하는 말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나만큼 그들을 잘 알고 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미안함을 이런 시로나 대신한다.
“억새에는 새가 있다/ 억새, 하고 부르면/ 바람 찬 들녘에 새들이 모여 섰다/ 바람의 유전자를 가져도/ 날지는 못하는 새// 뿌리가 없어 바람은 억새를 키우고/ 날개가 없어 억새는 바람을 품는다/ 새처럼 깃털이 있다/ 억새의 씨앗에는// 바람이 방목하는 겨울 들녘의 억새들/ 마른기침 서걱대며 모가지 길게 빼고/ 바람이 데려간 자식들 안부를 묻고 있다” -졸시 ‘바람과 억새’
이 겨울이 너무 시리고 쓸쓸한 사람은 저 들녘의 억새를 만나러 가자. 다 비우고 삭풍을 맞는 억새의 전언을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