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골목에 접시꽃이 피었다. 소박한 이름과는 달리 무척 화사하고 탐스러운 꽃이다. 중국이 원산이라고 하나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기르거나 자생해서 토종식물이나 다름이 없다. 야생화로 불리지도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어서 귀한 대접을 받는 화초도 아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좋아했다는 매(梅), 난(蘭), 국(菊)이나 연꽃, 모란 같은 품격(?) 있는 꽃의 반열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서민적인 꽃으로 보기에는 너무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마치 무슨 파수꾼인 양 담이 낮은 골목을 지키고 서 있는 꽃이다.
촉규화, 덕두화, 접중화, 일일화, 단오금 등의 이름을 두고 언제부터 접시꽃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한자어와 친하지 않은 백성들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알록달록 고운 색깔의 그 접시는 사발과 대접, 보시기, 종지 따위가 고작인 서민들의 밥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자나 백자와 같이 사대부들의 밥상에 올리기에도 격이 맞을 것 같지가 않다. 사대부들은 체면 때문에 감추고 백성들은 고된 삶에 억눌렸던 원초적인 정념 같은 꽃에다 빗댄 접시이니 어디엔들 맞겠는가?
키가 크고 꽃대가 튼실한 접시꽃은 울타리나 담장을 따라 많이 심었다. 한번 심으면 그 다음부터는 저절로 번식을 하니 일일이 돌봐줄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도 관상용 꽃으로서의 역할은 더할 나위가 없다. 마을 골목에 피어 있는 접시꽃의 그 화사한 모습은 누구나 날마다 볼 수가 있어서 고달프고 팍팍한 일상에 한 줌 향기와 온기를 불어넣는다고나 할까. 이제는 뭐든지 숨기거나 억눌러 감추는 세상이 아니다. 취향에 따라 누구든 형형색색의 접시를 일상의 식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다. 고매한 품격이나 야한 것을 따지는 세상도 아니다.
시골마을 곳곳에 쌓인 저리도 고운 접시들이 뭉클한 감회로 다가온다. 보리밥 한 덩이에 된장 한 종지, 상추나 풋고추가 고작이었던 우리네 일상의 밥상 말고, 저 고운 접시의 용도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시꽃 보면 사무치는 그리움 같은 것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이 유월에는 저 알록달록한 접시에다 온갖 것을 담아보자. 잊혀 진 것들, 잃어버린 것들, 외면하고 하찮게 여긴 것들, 세월의 먼지를 털고 편견과 망집의 더께를 떼어내고 알뜰하게, 소꿉놀이처럼 담아보자. 그러라고 접시꽃이 피었다.
오랜 세월 우리는 밥그릇 하나 챙기기에도 너무 벅찬 삶이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집기들도 뚫어지고 깨어지면 때우고 붙여 쓰는 형편에 곱고 예쁜 접시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생활이 각박하다고 마음까지 삭막한 것은 아니었다. 장독대 둘레에 채송화나 봉선화를 심을 줄 알았고 울타리나 사립문 옆에 접시꽃을 심기도 했다. 그래서 들며나며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마음 한 편에 작으나마 마르지 않는 정서의 샘을 간직할 수 있었다.
먹고 살 만해진 지금도 밥그릇 때문에 울고 웃고 걸핏하면 부모형제도 저버리는 패륜의 시절에, 접시꽃이 피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고. 인생을 담을 그릇이 어찌 밥그릇뿐이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