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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등록일 2023-07-13 19:48 게재일 2023-07-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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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시조문학회 동인들이 경북 청도로 문학기행을 갔다. 청도는 시조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조문단에 명망이 있는 이호우·이영도 오누이의 생가가 있는 곳이고, 유명 시조시인들의 시비(詩碑)를 세워 시조공원도 조성해 놓은 데다 현재 시조문단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민병도 시인이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한 때문이다.

청도 출신 이영도 시인에 대해서는 좀 각별한 기억이 있다. 사춘기 시절에 읽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서간집에서 받은 인상이 그것이다. 1967년, 당시 문단의 중견인 유치환 시인이 교통사고로 타계하자, 연인이었던 이영도 시인은 그간에 받은 연서의 일부를 추려 책으로 내었다. 그 서간집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문단 안팎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유치환 시인이 이영도 시인에게 20여 년 동안 무려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일찍 남편을 여의고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이영도 시인에 비해 유치환 시인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이 세간에 물의를 빚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해서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맺는 유치환 시인의 연가는 연애감성에 눈뜰 무렵의 사춘기 소년에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이었다. 뒤를 잇는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도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한갓 스캔들에 머물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 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유치환이 세상을 뜨고 난 후에 쓴 ‘탑 3’이란 제목의 이 시는 그들의 사랑을 누구도 섣불리 흠집을 내지 못하도록 단단한 돌로 굳혀 놓았다.

내가 남자이고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유치환 시인보다 이영도 시인의 시편들에 더 마음이 갔다. 물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마음에 새겨졌던 여인상이어서 노년에 접어든 지금도 그의 시조를 읽으면 왠지 모를 아픔 같은 것이 일곤 한다. 누가 그랬던가, 그리움이 다 소진 되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고. 철학자 김형석 선생이 98세의 나이에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이번의 청도기행은 그런 그리움의 일단을 더듬어보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영도 시인의 연시(戀詩)는 일세를 풍미했던 황진이 시조의 계보를 잇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 환경과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격조 있는 여성성의 한 경지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칫 세간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릴 스캔들의 주인공일 수도 있었던 그들을 남다른 여성상으로 우뚝 세운 것은 시의 힘이었다. 시가 있었기에 세인들의 비난과 폄훼의 시선을 바꾸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 소리 내 소리// 세월(歲月)은 덧이 없어도/ 한결같은 나의 정(情)” - 이영도 시조‘황혼에 서서’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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