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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할수록 쉬워진다

등록일 2021-07-05 19:25 게재일 2021-07-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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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이 잘못인 것조차 잊어버리는 건 큰 문제다. /pixabay

좋아하는 연예인 한 명이 프로포폴 불법 투약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과거 마약류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었던 연예인이라 실망이 컸다. 실망감이 더욱 큰 이유는 그의 불법약물 투여가 한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상습적이었다는 것이다. 처음 한 두 번은 몰라도 언젠가부터는 별다른 죄의식 없이 범죄를 행했을 것이다. 과거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지탄받고 있는 쌍둥이 배구선수에 대한 비판의 날이 더욱 날카로운 이유도 그들의 학교 폭력 행위가 한두 번 실수가 아니라 상습적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흉기까지 들고 언어폭력을 가했을 만큼 죄질이 나빴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소한 폭력행위에 익숙해지다보니 점점 더 가혹한 학교폭력을 저지르게 되었을 것이다.

얼마 전 예전에 친했던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거의 십 년 만의 기별이었다. 참 좋아했던 형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백수야, 잘 지내? 형이 통 연락도 못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형, 이래저래 사느라 저도 연락 못드려서 죄송해요. 형은 잘 지내세요?”

“응 잘 지내고 있었는데 최근에 일이 좀 있었어. 설명하자면 좀 긴데...”

그때 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의 다음 말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혹시 너 돈 가진 것 좀 있니? 일이십 만원이라도 좀 빌려줄래?”

멀쩡히 회사 잘 다닌다고 들었던 형이 돈 일이십 만원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십 년이나 연락하지 않은 내게 연락이 왔다는 것도 놀라웠다. 매달 따박따박 월급 받으며 살았던 사람이 무슨 사정이 있어 일이십 만원이 없단 말인가. 그리고 나에게까지 연락을 했다면 도대체 자기 주변에서는 돈을 얼마나 꾸고 다닌 것일까. 그때 그 형의 기질 하나가 떠올랐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해도, 당구장에서 당구를 쳐도 형은 꼭 1, 2만원씩 내기 하기를 좋아했다. 섣부른 추측이지만, 이 모든 정황들을 봤을 때 형은 이런 기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했을 때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은 도박에 손을 댔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1, 2만원 내기를 하다가 어느 날 문득 더 큰 내기가 하고 싶었겠지. 아마 한두 번 재미를 봤을 거다. 그러나 도박이란 다 잃어야 끝나는 게임. 깨달았을 땐 너무 늦어있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그 형이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패가망신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합법을 넘어 처음 불법의 영역에 닿았을 때는 형도 아마 손이 떨렸을 거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 잘못은 하면 할수록 쉬워져서 나중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동반하지 않게 된다.

습관이 된 잘못. 내게도 경험이 있다. 예전에 한 일간지에 격주로 음식과 관련된 내용의 에세이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 첫 화에서 나는 나름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에 대해서 썼다. 대학시절 잠시 고시원에 살 때 공용 냉장고에서 남의 반찬을 조금씩 훔쳐서 라면에 넣어보다가, 콩나물 무침을 넣었더니 라면이 맛있더라는 내용이었다. 남의 것 훔친 이야기를 남들 다 보는 일간지 칼럼에 쓸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엔 내 반찬에 다른 사람들이 손을 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가 나서 그랬었다. 나도 아껴먹던, 할머니가 싸주신 장조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유력한 용의자라 생각했던 사람 반찬통에서 어묵볶음을 훔쳐 먹었다. 그때는 행여 누가 볼세라 가슴 졸이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번 그렇게 먹고 나니 그게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그 다음부터는 남의 반찬통에서 반찬을 집어먹는 일이 쉬워지고 말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린 나머지 나는 그것을 농담의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스스로 대중매체에 그 이야기를 써내고 만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다음 날 포털이 난리가 났다. 하필 그 글이 양대 유명 포털의 메인에 올랐고, 양 사 합쳐 천 개가 넘는 비난 댓글이 달렸다. 그날 맞닥뜨렸던 이루 말할 수 없는 당혹감과 두려움은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반성이 되어 기억에 남아있다. 잘못이 잘못인 것조차 잊어버리다니, 정말이지 멍청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번 쯤 괜찮겠지 생각하는데, 그것이 한 번으로 안 끝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고 과대평가다. 한 번 할 때는 어려웠던 잘못이 두 번째에는 쉬워지고,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지며, 결국에는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된다.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오명을 뒤집어썼을 때는 이미 늦다. 애초에 잘못이다 싶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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