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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광주라는 ‘지금 시간’

어느덧 다시 오월이다. 1980년 오월에 일어난 일을 누구도 말할 수 없던 시절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이성복, ‘그날’)던 무통의 기억을 날카롭게 갈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아픈 숨골을 쑤셔댄다. 입이 있지만 침묵함으로써 혀를 썩혔던 죄의식을 기형도는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은유했다. 며칠 전 포항 ‘책방 수북’에서 열린 장석남 시인의 북토크에서 시인은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 오월 광주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운 공포의 기록이라 말했다. “찌르레기 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던 시인에게 오월은 여전히 “유골함을 받아 안듯 오는, 봄”(장석남, ‘서울, 2023 봄’)이다. 문학은 오래전 그 일에 관하여 스스로를 ‘입 속의 검은 잎’이라 정죄했지만 그래도 문학만큼 진실된 목소리도 없다. 지금까지 문학은 왜곡된 기록을 생생한 기억으로 바꾸고 또 개인들의 기억을 공동체적 기록으로 바꾸면서 바늘의 역할을 해왔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은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는데, 간병인은 3분마다 한 번씩 주삿바늘로 수술 부위를 찌른다. 그래야만 신경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통각이 진실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가 4.3을, 5.18을,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문학은 계속 바늘이 돼야 한다. 4.3과 보도연맹학살사건, 그리고 5.18 등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재현하는 한강의 소설 작업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목젖과 옆구리가 총검에 절개되고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시신의 묘사는 끔찍하지만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입힌다. 그리고 그때 단순히 ‘기록’된 과거로서 문헌과 통계와 명단에만 박제돼 있던 ‘기억’이 비로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감각에 생동하기 시작한다. 한강의 문학은 망각이라는 두터운 무덤 아래서부터 진실을 끌어올려, 겉땅에 오른 그가 비와 바람과 햇살로 흙에 파묻힌 얼굴을 씻고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에게 역사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 사라지는 장면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강렬한 의미로 멈춘 정지화면들의 연속이다. 그 정지화면이 바로 ‘지금 시간(Jetztzeit)’이다. 스크린에 상영되던 영화가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화면 속 인물의 표정과 빛의 질감과 배경의 아주 작은 소품까지 모든 게 더 생생히, 자세히,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때 영화에는 이전과 다른 의미가 나타나게 된다. 영화처럼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어느 특정한 순간이 새로운 의미를 갖고 멈추었으나 생동하며 우리에게 온다. 교과서에서 무심히 보고 넘겼던 4.3과 5.18을 소설로 읽고 나니 1948년과 1980년에 죽어간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지금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흘러간 역사를 다시 보게 하고, 오늘에 어제를 겹쳐 새롭게 살게 하는 신비한 시간 체험이다. 한 온라인쇼핑몰에서 전두환의 얼굴과 “THE SOUTH FACE”라는 영어 문구가 프린팅된 가방을 판매해 논란이 됐다. 5.18 기념재단의 항의로 판매가 중단됐는데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는 “지겹다”, “시체 팔이 그만해라”라는 비아냥과 함께 전두환을 칭송하거나 광주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 걸 만들어 파는 이와 그걸 옹호하며 학살자를 찬양하는 이들이 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역겹다. 악은 평범해서 언제 어디에나 악마가 널려 있다. 지난 수십 년 그러했듯 악마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신나게 왜곡하고 은폐하고 조롱하며 낄낄대겠지만, 상관없다. 그 악마들이 무의미한 생을 멍청하고 한심하게 흘려보낼 동안 문학을 읽는 젊은 독자들은 글자 하나 하나를 바늘 삼아 스스로를 찌르면서 ‘지금 시간’을 체험하는, 깨어 있는 의식이자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지난주 수업에서 학생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독후감을 발표하고 듣는 서로가 서로의 바늘이 되었다. 한 학생이 외쳤다. “어떻게 그런 가방을 만들어 팔 수가 있어요?”라고. ‘소년이 온다’에서 도청 앞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는 것에 분노하며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항의전화를 건 ‘은숙’처럼. /이병철(시인)

2025-05-18

저녁 퇴근길에 생각한 것

요즘 회사를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는 대신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다. 이직하면서 회사가 집 근처로 아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집과 회사 사이에는 도림천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높은 건물 없이 푸르른 하늘이 잘 보이고, 나무나 풀이 많아서 초여름의 연두를 눈에 실컷 담을 수 있어 좋다. 하루 온종일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보면서 업무를 하나씩 해치우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에 갇혀 있었다면 자연 속에서 걸을 때는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무념무상 상태로 걸을 수 있다. 왼쪽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지면에 내딛으며 발바닥의 감각, 힘이 들어가는 발목과 허벅지, 허리와 배에 중심을 잘 잡고선 걷는 명상에 빠져 들다보면 하루에 시달렸던 온갖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자유롭게 삼십여분 정도를 걸으면 익숙한 동네가 나온다. 대학교를 졸업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서울로 상경했을 때부터 쭉 살고 있는 작은 동네, 이곳의 초입부터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불필요한 힘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날이 좋은 날이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쉬워서 근처를 배회한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 아이 유모차를 끌다 꽃을 따는 내 또래의 젊은 여자를 본다. 그 광경이 너무나 평화로워서 어느 꿈결 속에 앉아 있는 듯 하고, 나는 실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든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이 극에 다다를 때쯤 기다렸다는 듯이 잡념이 따라온다. 하루 중 상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 말을 들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건 왜 그랬던 것인지, 업무를 내가 잘해내고 있는 건지, 실수가 있었다면 그 실수를 왜 했던 것인지 차례대로 온갖 생각이 따라 붙어 생각에 빠져 들기 바쁘다. 대체로 유쾌하지 않은 불편한 생각들이고 나는 또 울상이 되어 또 피곤해진 채로 어깨를 한껏 안쪽으로 말게 된다. 그럴수록 사람은 왜 현재의 행복에 안주하지 못하는지 생각한다. 동시에 행복이란 무엇인지도. 이토록 평화롭다가도 왜 불행의 편에 고개를 향하는지. 단순한 일도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 생각하는 나의 피곤한 성격 때문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휙휙 젓다가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은 다시금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편에 서서 마음을 앞서 걱정 한다기보단.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것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집에 돌아가는 집이 있다는 것, 이사간 집은 하루 온종일 햇빛이 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해의 밝기와 세기를 누려볼 수 있다는 것, 동생과 함께 건강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은 지 한 달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도와주는 선생님이 있고, 나는 전보다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의 방향과 힘이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정도라는 점과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큰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가 아주 어릴 적 번개가 심하게 치던 날에, 창문 가까이 위태롭게 앉아 있던 어린 나를 엄마는 발견했다고 한다. 잠시 화장실을 갔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어린 나는 창문가에 붙어 있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발견하고선 황급히 낚아채어 거실 한가운데서 품에 안고 한참을 있었다고 했다. 어린 너는 참 겁도 없었다면서 나를 나무라는 엄마는 지금도 아주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낸다. 실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렸고 그 이야기를 엄마의 입에서만 들은 것뿐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어떤 확신을 느꼈다. 이따금씩 자꾸만 삶에 혼자 있는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 그 품과 손아귀의 힘을 기억할 것이라고.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면 목에 커다란 체리 씨앗이 걸린 듯이 막막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나는 이런 나의 연약함이 정말 싫었지만 이젠 이것을 말할 수 있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이젠 안도한다. 사랑은 멀지 않고 이렇게 내 몸 속에 있다. 생각만 해도 느낄 수 있고 걸을 땐 자연스레 떠올리고 그럴 땐 주체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상대가 있다. 전화를 끊고선 내 곁에 이루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다시 씩씩한 모습을 한 나를 꺼낼 수 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루하루를, 일년을, 몇 년을 살다보면 나는 좀 더 사랑의 언어를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5-18

수염 기를 권리, 수염 안 기를 권리

나는 수염을 기른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어느 정도 길어지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니 정확히 말하면 마냥 기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완전히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0년에 나온 EP의 커버에는 수염이 없고 2013년에 나온 1집 앨범의 커버에는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이 있으니 그 사이 언제쯤부터 십 년 넘는 세월동안 수염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수염을 민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 쯤은 수염을 다듬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염을 밀어야 했고, 어느 기간 동안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수염을 밀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뵙던 날도 수염을 밀었다. 그런 날들을 제외하고 수염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심지어 내 결혼식장에서도. 예술인이라는 직업의 고충이야 많지만 특권은 드문데, 그 몇 안되는 특권 중에 하나가 수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 없이 누리고 싶었다. 수염은 당연히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탈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 없이도 부족하지 않게 수염이 난다. 이 역시 내가 누려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커보이게 하는 기능도 있고, 옷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나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요즘 ‘추구미’라는 말이 유행인데, 나의 추구미는 수염을 빼 놓고 상상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나는 정말로 나의 수염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별로 이성에게 인기가 없지만 다행히 나의 아내는 나의 수염을 존중해준다. 이 존중이라는 것이 내게는 참 중요한 것이다. 싫어한다고 밀어버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좋아해서 기르라고 떠밀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의 수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모든 이들이 다른 사람의 수염에 대해서 이러한 존중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기르건 말건 신경이나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수염에 대한 박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각종 참견은 물론이고 더럽다느니 게을러보인다느니 하는 혐오적인 발언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수염 기른 사람은 정말 더럽고 게으를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수염을 모두 제거하는 면도보다 일정한 모양과 길이를 유지하는 수염 관리가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관리를 해야 하므로 더럽거나 게으르다는 것은 분명 편견이다. 실제로 더럽고 게으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수염에 대한 박해는 단정치 못하고 불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남성 중 수염 없는 남성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단군할아버지도,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도, 말 목 자른 김유신장군도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 분들을 두고도 불량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굳이 역사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대 다른 국가를 향해서만 시선을 돌려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직자나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수염을 허용하지 않는 풍토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밴스 부통령부터 멋드러진 수염을 기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체육부(스포츠청)장관 무로후시 고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염 미는 문화가 서구권을 통해서, 혹은 주변국가를 통해서 양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허용되는 것이 우리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수염에 대한 박해, 차별, 탄압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공직자에게 존재하는 품위유지의 의무를 수염과 연관 짓지 않기를 부탁한다. 기업에서 수염 기른 사람에게 눈치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 수염이 있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위생이 중요한 업장에서 수염의 유무가 아니라 청결하게 관리되었는가의 여부를 체크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 ‘수염 안 기를 권리’가 생겨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수염 기를 권리’, ‘수염 기르고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5-11

사랑과 글쓰기, 기억과 해석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필립 빌랭이 실제 연인 사이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학 시절,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매료되어 팬레터를 보낸 것을 계기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에르노가 쉰넷, 빌랭이 스물넷이던 시절의 일이다. 필립 빌랭은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포옹’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에르노는 같은 관계를 ‘젊은 남자’라는 작품으로 다시 써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시선으로 쓴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언어로―그러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기록한 문학적 대화다. 내가 필립 빌랭의 ‘포옹’을 처음 읽은 건, 열다섯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전학생 신분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나름 우등생 소리를 들었지만, 새 학교에서 나는 어설프고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다들 나의 진가를 몰라주고 있다. 모두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내게 조언을 건네는 문학 선생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도서관 책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나를 건드려줄 문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랑스 문학 코너는 언제나 사람이 적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곤 했다. ‘포옹’은 매우 얇았다. 완독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지에서 설명하듯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소설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은 확실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에 관한 글쓰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너머 작가가 끊임없이 발화하고자 했던 것.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선명한 욕망.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삼십 대를 지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니 에르노에 관한 글을 준비하다가 자연스럽게 필립 빌랭의 ‘포옹’을 펼쳐 들었고 순간 열다섯 어느 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세계를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은 이 책은 어설프고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대목은 나의 미숙함과 똑 닮아 있어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젊은 남자’에서 말한다. 그와의 관계는 단지 열정의 시간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과 조우하는 계기였다고. 그녀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권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가 천착해 온 주제―여성의 몸, 욕망, 권력에 관한 문제―가 짧은 기록 속에서도 집요하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포옹’에서 보이는 감정의 분출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영역이며 어떤 면에서는 모종의 쓸쓸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열다섯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젊은 남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과거의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때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이제는 언어의 테두리 안에 천천히 포착된다. 세상과의 불화, 분투, 질투와 수치…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시선. 자연스레 재해석되는 세계. 그러니까 결국 하나의 사건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점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해석의 집합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고 그 변화 자체가 또 하나의 진실이 된다. 모든 사건은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연쇄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텍스트 그 자체로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해석이 얼마나 복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자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바라본다는 것. 내가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렌즈가 흐려지고 선명해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활자를 읽어가는 경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랑과 글쓰기는 여전히 내 삶에서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 /문은강(소설가)

2025-05-11

시를 쓰세요?

최근 새로운 곳에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공통적으로 모두가 나의 이력을 신기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우선 전국에 몇 없는 문예창작학과를 대학에서 전공했다는 점도 그렇고, 특히나 시를 중심으로 4년간 공부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신기한 듯 했다. 그러다 누군가 시를 아직도 쓰냐는 질문을 했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게, 무언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를 쓰는가? 집에 돌아가는 내내 나는 물음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간혹 무언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기도 하고 일기도 매일 쓰곤 하지만, 그건 시의 형태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무엇이지? 내가 쓰는 게 시가 아니라면, 간혹 내 이름 앞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때의 나는 무엇이지? 생각하다 곤란해져버렸다. 급작스레 가까워졌던 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지인은 신춘문예를 어떻게 하면 등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다고, 아마 운이 아닐까요? 하는 나의 물음이 조금 성의없어 보였던 탓인지 그 사람은 그 이후 조금 심드렁해 보였다. 그러던 내게 급작스레 시인은 시집을 내야만 시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말을 건네왔고 나는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후 그 지인에게는 충분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이후의 나는 부끄럽게도, 신춘문예 등단 이력을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기한 이력은 나도 모르게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고, 눈을 반짝이며 나의 이력과 전공에 관한 질문을 들을수록 나는 더 미궁에 빠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물음 속에서 시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드러났으면 좋겠는 마음이 동시에 들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음은 물어보는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기 때문이고, 나는 시집 출판을 한 적 없기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척 과분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면, 나는 조금 괴로울 것 같다. 시인이 되고 싶어 애써왔던 시간이 있었고, 문학이라는 세계에 합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왜이렇게 탐탁치 않은 채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걸까.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한다. 그 이후의 시간은 대부분 쇼파와 한몸이 되어 불만이 많은 채로 뒹굴다 잠이 든다. 그리고 하루의 반복, 점점 탈출 할 수 없는 미로를 떠도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은 조금 과분한 걸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며칠 내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시인인지, 아닌지 두 가지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낯선 사람에게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통하는 부분이 많고 성격 또한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그때 내가 진지하게 했던 고민을 털어 놨다. 그 분은 골똘히 생각하다, 그냥 단순해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단순함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명쾌해졌다. 어디에나 무례한 사람은 있다. 무례한 말에는 인상을 쓰고, 너무 혼자 모든 일을 떠안지 않고, 타인의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너무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그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강박적인 피로에서 벗어나 본질만을 꿰뚫으면 된다. 본질은 언제나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함에 속해 있고, 단순해진다는 것은 불필요함을 제거하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숨함이 복잡함 보다 더 어렵다, 단순하게 만들려면 생각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불필요한 구성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만 제품이나 시스템에 진정한 영혼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함은 게으르거나 부주의하지 않다. 본질에 집중하여 하나를 정확히 꿰뚫는 것, 어쩌면 시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게 살다보면, 나 결국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2025-04-27

수국을 기다리며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저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 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중략)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저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득 나 자신에게 “내 삶은 나의 것인가?”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데 늘 불안하다.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실패일까 봐서. 아니 그것이 성공이라 하더라도 그 성공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서. 좋은 회사, 큰 집, 고급승용차, 명품… 남들이 다 선망하니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게 좋다고들 하니까 나도 그냥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욕망은 내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것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고독한 군중’을 쓴 데이비드 리스먼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행동하는 ‘타자지향형’ 인간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긴다. 처음엔 “내가 좋아서” 올린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 타자가 원하는 걸 맞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짜 ‘나’는 점점 지워져간다. 세상에서 내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을 때 이원하의 시를 읽는다. 화자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혼자’는 고독의 상태이므로 ‘제주’는 유배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배지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인 것에 비해 시인의 제주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장소다. 그러나 “화가의 기질을 가”진데다가 “얇고 연약”한 감수성을 지닌 화자는 타자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라는 혼잣말은 남들과 비슷한, 보편적 인간이 되지 못해 고독해진 “웃기고 이상한 사람”의 자기고백이다. 그럼에도 화자는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존재성을 유지한 채 타자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사회 집단에 속하기 위해 자신의 개성과 취향, 생각을 포기하고 타인과 비슷하게 스스로를 맞춰가는 대신 “나의 정체는 끝이 없”음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저에게 바짝 다가오세요”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이 건강하고 활달한 소통의 방법론은 개인을 획일화되고 일률적인 틀에 종속시키려는 제도 사회와 타인들의 욕망을 무력화한다. 고독을 견디기 힘들 때면 보편적이고 평범한 교류 사회인 ‘김포’로 도망가거나 그곳을 훔치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라고 이내 마음을 고치는 순간,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진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지만,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을 버릴 수 없다는 유쾌한 태도가 동력이 되어, ‘제주’라는 ‘혼자’의 장소에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움트게 하는 것이다. 남들이 욕망하는 걸 똑같이 욕망하며 비슷하게 살려고 하는 대신 “웃기고 이상한 사람”이 되길 선택할 때 “나의 정체는 끝이 없”다. 타인에 의해 무엇으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 개성적 삶이 되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파도가 밀어 오는 수국 향기 맡으러 제주 종달리에 가고 싶어진다. 아니다. 이른 봄 테라스에 수국 묘목을 심었는데 그동안 작은 변화도 없이 고요하던 나무에 어느새 초록잎이 돋아났다. 초여름이면 꽃을 볼 수 있으리라. 우리 집 테라스에도 곧 수국이 만발할 테니 꽃을 기다리며,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살아야겠다. /이병철(시인)

2025-04-27

각자의 바다, 하나의 배

그리스 신화 중 ‘아르고호 원정대’의 서사를 좋아한다. 황금 양모를 찾아 나선 이아손과 그를 따르는 항해자들이 같은 배에 오르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개성 강한 영웅이 등장한다. 펠레우스,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멀리서 볼 땐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꽤 엉망이다. 리더는 불확실하고 멤버는 오버 스펙이며 계약서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배는 바다로 나간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를까? 악의 반대편에서 싸우고 모두가 물러날 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나서며 인류 전체를 끌어안는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영웅이라는 칭호는 꽤 부담스럽다. 위험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타인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힘과 용기를 가져야만 하니까. 누군가 내게 그런 책임을 부여한다면 최선을 다해 거절할 것이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소시민의 삶이 편안해서요. 아무래도 칼보다 장바구니가 더 익숙하거든요. 공동체는 영웅 하나의 힘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아르고호에서 헤라클레스가 이탈한 장면을 봐도 그렇다. 항해 중 그의 절친한 친구인 힐라스가 요정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헤라클레스는 주저 없이 배에서 내리고 친구를 찾겠다며 아르고호로 돌아오지 않는다. 신보다 인기 많다던 스타 영웅이 하차했지만, 이야기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항해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다른 쪽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보다 더 중요한 어떤 감정을 선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든 자신만의 이유로 배를 빠져나갈 수 있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를 건너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배에 탄 것에 가깝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힘을 합치던 신화 속 원정대와는 다르다. 각기 다른 목적지와 출발선을 가진 채 아주 거대한 배 위에 함께 올라타 있는 것이다. 개인을 둘러싼 우주는 다채롭다. 누군가의 우주는 회사와 집 두 행성 사이만을 맴돌고 누군가는 주거 비용이 중력보다 무겁다고 느낀다.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이 빅뱅처럼 터지기도 한다. 자신만의 궤도를 돌고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그들의 바다는 같지 않고 물살도 다르다. 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성적 지향,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 노동의 형태와 일의 윤리. 모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다.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이의 경험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세분된 바다를 유영한다. 물길이 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각자만의 바다를 건넌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에 있다. 다양성은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때로는 그 다양함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도 같은 항로를 지나지 않기에 공감은 더욱 어렵다. 타인의 고통이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고 누군가의 외침은 나를 향한 언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너도 나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느라 바쁘니까. 힘들고 숨이 턱 끝까지 차니까. 그 깊이와 위태로움은 서로에게 설명되지 않는 질감의 것이다. 방향을 잃은 항해에는 등불을 켜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는 장바구니를 든 소시민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각자의 고단함을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흩어지는 순간 다시 모일 수 있는 힘을 기억하는 사람 정도면 영웅의 자질이 충분하다. 잠깐의 기다림과 안부 묻기, 당신을 이해한다는 속삭임 같은 것. 그 작고 조용한 목소리가 우리가 함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의 바다를 인정하면서도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함께 상상해보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황금양모까지는 아니더라도 퇴근길 버스 자리에 앉는 행운 정도는 손에 쥐게 될 지도 모르니. 아니, 꼭 뭔가를 쥐지 않아도 괜찮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캔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모험은 즐거워질 테니까. 참 고생하십니다. 내일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 정도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라면, 함께 항해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동료가 아닐까. /문은강(소설가)

2025-04-20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서 좋겠다고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하나 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서 좋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벌어먹고 사는 건 실로 축복이라 생각한다. 최근 보고 있는 OTT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이 그렇게도 되고 싶어 했던 시인. 나는 그게 되어 글밥을 먹고 있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일 또한 밥벌이에 보탬이 되니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갓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잡고 싶은 오해가 하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는 오해.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해야 하는 하기 싫은 일들이 무척 많다. 우선 이 예술이라는 업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게 되기까지 해야 했던 다른 일들이 참 많았다. 사무보조, 주방 보조, 홀 서빙, 야구장 스태프, 텔레마케팅, 배달, 편의점, 전단지, 과외교사, 학원 강사. 퍼뜩 떠오르는 일만 이 정도. 남들보다 특별히 고생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 두어 가지를 가슴에 품고 살다 보니 일정하게 한 직장에서 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좋아하는 일로 벌어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운 좋게 글 쓰는 일과 노래하는 일로 사치는 부리지 못하더라도 아껴 쓰면 먹고 살 돈 정도를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나가야 했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몰랐다. 예술가로 산다는 일 안에는 예술을 창작하는 일 말고 다른 수많은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청탁 받은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투고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각종 공모에 응모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노래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도 내게 찾아오는 고마운 무대들 외에도 누군가가 먼저 그 자리를 선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를 직접 찾아 치열하게 차지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온갖 문화재단과 지자체 사이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정보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 또는 강연이나 공연을 하기 위해서 처리해야 하는 행정적 처리들도 있다. 사전에 여러 장의 서류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이후에 돈을 받기 위해서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소속사가 있던 시절에는 이런 업무들을 처리해 주는 이들이 있었지만 혼자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지금은 다소 번거롭더라도 혼자서 여러 행정처리들을 해내야 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세무업무까지 혼자서 다 해내야 했다. 이 일도 사업이라면 사업인지라 다양한 곳에서 경비가 발생하고 이를 제대로 기록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하이라이트는 기획서와 제안서, 그리고 각종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일이다. 예술업이란 필연적으로 기업이나 국가기관과도 관계를 맺음으로서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이다. 여러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지원사업에 도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매년 초마다 취업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소개서, 기획안 등을 준비해야 하고 그것들이 통과되면 면접에도 응해야 한다. 보름 사이 양복을 빼입고 면접장 대기실에 앉아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린 일만 네 번 있었다. 사실 타인에게 선택받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 일을 선택한 것도 있었는데, 이 일 역시 그런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 외에 함께 작품을 만들 인력을 섭외하는 일, 스스로를 홍보하고 마케팅하기 위해 SNS나 유튜브를 운영하고 보도자료를 쓰는 일, 다양한 대인관계를 쌓는 소위 ‘영업’이라고 하는 일, 날짜가 되어도 도무지 입금을 해주지 않는 클라이언트에게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촉을 하는 일, 강연이나 공연을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까지.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마치 수면 위 모습은 우아하지만 물속에서는 쉴 새 없이 물갈퀴 달린 양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나를 비롯한 예술인들도 수많은 자잘한 업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비록 사람들은 우리가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두고 노트북으로 고생하게 원고를 쓰거나,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악보를 앞에 두고 기타를 튕기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무엇도 거저 먹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 예술인들도 예외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강백수(시인)

2025-04-20

시는 맛있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시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어린 애순이는 ‘개점복’이라는 시로 백일장에 입상한다. “허구안날 점복 점복/ 태풍 와도 점복 점복/ 딸보다도 점복 점복/ 꼬루룩 들어가면 빨리나 나오지/ 어째 까무룩 소식이 없소/ 점복 못봐 안나오나/ 숨이 딸려 못 나오나/ 똘내미 속 다 타두룩/ 내 어망 속 태우는/ 고놈의 개점복/ 점복 팔아 버는 백 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허리 아픈 울 어망/ 콜록대는 울 어망/ 백 환에 하루씩만/ 어망 쉬게 하고 싶네”(오애순, ‘개점복’). 목숨 걸고 물질하는 엄마를 걱정하는 감동적인 시다. 1967년 문학소녀 애순이가 교복을 입고 ‘창작과 비평’ 창간호(1966. 1)와 ‘현대문학’ 과월호를 읽는 장면은 문학사적 고증을 잘 해냈다. 무엇보다 ‘폭싹 속았수다’는 험하고 가파른 생을 산 애순이 노년에 쓴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선배 시인이 고모네 아파트에 갔다가 반상회 자리에 불려갔는데 아파트 동 하나에 사는 주민들이 전부 시인이라며 명함을 내밀더란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적혀 있고, 신춘문예 경쟁률은 1000대 1 수준이다. 이토록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회에서 온갖 혐오가 넘쳐흐르는 건 의아하다. 시가 정서적 액세서리나 팬시 상품 정도로만 가볍게 소비될 뿐 대중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지는 않아서일까.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영향일까. 그래도 여전히 시의 생산자와 소비자들 사이 신뢰할 수 있는 거래의 지표는 서정성이다. 서정의 본질은 조화와 화해, 그리고 합일이므로 시를 사랑하는 사회엔 미움과 시기, 차별과 소외가 점점 줄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맛집을 판가름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벽면에 시가 붙어 있거나 걸려 있거나 새겨 있거나 갈겨져 있다면 그 집은 ‘찐맛집’이다. 시인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시 옹호론’을 펼치는 게 아니라 경험상 진짜 그렇다. 윤동주의 ‘서시’나 기형도의 ‘빈 집’, 이형기의 ‘낙화’ 같은 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름난 유명 시인의 시 말고 대표메뉴 음식을 찬양하는 시나 식당에 바치는 헌시가 있으면 제대로 된 맛집이다. 수업을 마친 월요일 저녁마다 안양중앙시장의 허름한 순대국집인 ‘대구식당’엘 간다. 거기 거울에 ‘나그네 온달’이라는 한 방랑시인이 쓴 시 ‘골라서 먹는 순대국집’이 붙어 있다. “안양중앙시장/ 중앙통로와 4번 출입구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순대국만 전문으로 하는 나란한 여러집 중 한 집 대구식당/ 상호는 대구식당인데 대구는 없고/ 1번 머리고기만/ 2번 머리고기와 내장/ 3번 머리고기와 순대/ 4번 머리고기에 내장과 순대 등의 맞춤식으로/ 구성을 취향대로 골라서 주문하는 특별한 메뉴판이 있는 딱 한 집/ (중략) 땀 흘려 일하고 보충하는 막걸리엔 필수요 자동인 콤비 순대국/ 시민들의 정서와 애환이 녹아 있고/ 고객 중심 맞춤식으로 배려 깊은 아지매의 풋풋한 정이 배인/ 노가다나 주당들의 단골집 대구식당” 당장이라도 들어가 앉아 순대국에 막걸리를 시키고 싶어지지 않은가? 이 시는 문학적 과장이 아니라 리얼리즘 그 자체다.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에서 30년 가까이 장사하는 ‘아내의 밥상’에는 주인인 유미화 씨가 쓴 십여 편의 시가 식당 안팎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메뉴인 꼬막비빔밥을 소재로 한 ‘꼬비’는 소리내 읽으면 입안에 참기름 밴 양념장의 매콤함과 통통 쫄깃한 꼬막살의 식감이 느껴진다. “오동통 살이 오른 청정지역 벌교 꼬막/ 펄펄 끓는 뜨건 물에 멍울지게 살짝 삶아/ 속살을 발라낸 후 목욕재계 시킨 후에/ 새콤달콤 양념장에 싱싱야채 함께 섞어/ 참기름 깨소금도 솔솔 뿌려 버무린 후/ 양푼에 담아내어 윤기 잘잘 쌀밥 함께/ 쓱싹쓱싹 비벼주니 맛깔난 그 모습에/ 눈이 먼저 달려가서 시장기를 유혹하네/ 입안에서 꼴깍꼴깍 군침돌며 침 삼키는/ 예쁘면서 맛도 좋은 네 이름이 꼬비렸다” 시의 맨 밑에는 “꼬비는 우리집 메뉴”라는 각주가 달려 있다. 음식 냄새와 함께 사람 냄새도 물씬 풍기는 시, 한 식탁에 여럿이 둘러앉아 꼬막비빔밥 먹고 싶게 하는 시다. 서정시의 원리인 조화와 합일 그 자체다. 이런 시가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천년의 보금자리” 어쩌고 하는 천박한 시보다 천배 만배 낫다. 정현종 시인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라고 노래했던가. 그 문장을 나는 “맛집에는 시가 있다/ 그 시를 먹고 싶다”로 바꿔본다. 시가 있는 식당에서 음식은 시가 되고, 시는 맛있다.

2025-04-13

시작하는 마음

비 내리는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비 때문인지 아직 다 피지 못한 벚꽃 나무의 꽃잎들이 거리에 지저분하게 내려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다가도 미처 다 피지 못한 잎들이 떨어져, 온몸으로 밟히고 있단 사실이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대체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두 시간 여를 넘게 같은 곳을 빙빙 돌았다. 집에 가면 이삿짐을 마저 싸야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려야 하고, 겨울 이불 두 세트를 세탁하고 건조를 시켜야 하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물들을 모조리 먹거나 또는 처리해야만 했다. 몸은 걷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집에서 처리해야할 목록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고, 결국 몸과 마음 모두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결국 집에 오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이사는 너무 갑작스럽게 정해졌다. 그간 9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혼자 살면서 이곳은 살긴 좋지만 월세가 부담스럽고 또 너무 좁아서 답답하다는 불만을 달고 살았다. 내 이야기를 일년 반 째 듣던 막내 동생이 그럼 같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동거 제안을 했고, 정말 우연히도 조금 더 넓은 집을 보게 되어 한순간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이삿날을 잡아두고 잠깐 잊고 살았더니, 어느새 나는 내일인 일요일 오전에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있던 터라, 급작스런 변화에 이 모든 것이 정말 꿈이거나 엔딩을 앞둔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이사하는 곳도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오분도 걸리지 않는 건물이고, 결국 이 동네에 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어딘가 아주 머나먼 곳에서 리셋을 앞두고 있는 것만 같다. 새로운 시작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크다. 또다시 마음이 흔들려 방황할 때면 인스타그램을 켜서 아이패드 드로잉 작가인 여유재순님의 그림을 본다. 거의 매일 올라오는 그녀의 그림은 투박하다. 나는 그림을 잘 볼 줄 모르지만, 따스한 색감과 깔끔한 구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준다. 그녀가 주로 그리는 그림은 꽃과 식물, 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여유재순 작가님의 나이는 92세. 친구들은 모두 노인정에 가서 시간을 보낼 때에 자신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코로나 때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자 작가님은 무작정 아이패드를 사고, 유튜브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펜을 들고 선을 긋는 것도 못했지만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아 따라 그리고, 유튜브로 강의를 들으며 모르는 것은 메모를 하며 하나씩 배웠다. 그 그림을 본 손녀딸이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든 것인데, 벌써 여유재순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은 1705개의 그림 게시물을 발행하였고, 9만 팔로워나 모여 있다. 작가님은 현재까지도 그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꿈을 그린다. 동시에 아주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20대에서 30대로, 나이를 먹으며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는 일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닐지,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만 하며 현실과 타협했을 때 그녀는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그러한 불안감은 내 안의 가능성을 잠재우는 소모적인 요소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아주 늦은 나이에도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배움을 지속했다. 당시 반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집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컴퓨터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꼭 배워야 하겠다고 대답하며 끝까지 수업을 들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넌 바보짓을 퍽도 잘한다’라고 말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통해 배움을 지속한다. 또한 처음은 누구나 잘 알 수 없는 거기에 부끄러움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부끄러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면 그 기쁨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나는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점차 돌려보며,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현재 새로운 시작 앞에서 걱정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비춰졌다. 그러면서 시작 앞에서 두려울지라도, 언제고 그저 시작하면 되는 것임을, 단순함에서 오는 용기와 지혜 앞에서 나는 무수한 위로를 받았다.

2025-04-13

희망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했다. 멈춰 있던 제도가 다시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이 사회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더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 발화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감각할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온 주체였다. 광장에서, 일상에서, 제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정 또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여전히 오래된 피로와 불신이 남아있다. 법적 판단이 우리 앞에 놓인 모든 불안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신뢰는 단번에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다. 신발끈을 꽉 묶고, 앞으로 다가올 다음 장을 펼쳐야 한다. 그것은 글을 쓰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언제나 도입부에선 망설임이 먼저 떠오른다. 막상 쓰기 시작한 서술도 자꾸 지우게 된다. 적확한 표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과 언어 사이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본격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까지는 무수한 시행 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만큼은 다르다. 마침표가 가까워졌다는 확신은 이전에 쌓아 올린 문장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무언가를 끝냈다는 안도와 함께 해방되는 듯한 감정이 따라온다. 우리는 오늘의 장면을 마지막처럼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정말 마침표를 찍어도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누구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겨우 첫 문장을 넘긴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막막한 것은 당연하다.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은 구체적인 상상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사회를 떠올리는 바람.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태도다. 상상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은 증명되었다. 그것은 낙관이 아니라 일종의 증거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제도의 권위가 아니라 결국 시민의 손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해왔다. 추운 날 광장에서 함성을 보탰고 조용한 일상에서도 무게를 견뎠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말 없는 연대 안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내왔다. 실망과 피로가 반복되며 어떤 희망에도 쉽게 기대지 않는 태도가 굳은살처럼 마음에 자리잡을 때도 있었다. 그것은 냉소였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태도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회복을 다시 배워야 한다. 들끓는 다음은 이성의 테두리에 담아내고 무뎌진 감정은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상처는 질문이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의문을 쏟아냈다. 사유가 공론의 언어로 이어지고 제도로 연결될 때 희망은 지속된다. 정치가 제때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반복되는 피로 속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민이 쓴 문장을 정치가 지워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욕망이 우리의 언어를 가로채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대통령이 헌재 판결로 물러난 것은 우리 헌정사에서 두 번째다. 그 숫자의 무게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단 한 번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코 가벼운 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숫자는 우리가 마주한 실패의 수가 아니다. 쉽지 않은 세상을 쉽지 않게 바꿔 가는 시민이 존재해 왔다는 증거다. 법이 움직이기 전 움직인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떤 결론도 쉽게 믿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문장은 계속하여 번복되어 왔고 너무 자주 진실이 지연되어 왔다. 가끔은 말보다 침묵이 더 정직하다고 믿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써 내려갈 것이다. 그것은 환호도 단죄도 아니라고. 결국 일상의 지속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단어를 놓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의 다음 장면이 희망의 형태를 띠고 있기를 바란다. 바꿀 수 있다. 바로 이 첫 문장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은 언제나 이러한 문장들 위에서 시작되었다.

2025-04-06

노래는 늙지 않는다

어느 가을날, 한 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작사 클래스를 함께 개발하고 운영해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해 주셨다.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지역의 문화재단이니만큼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을 텐데, 어째서 그들이 아니라 타지역에 사는 나에게 그러한 제안을 건네는 것인지. 재단 직원은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노인들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남들이 마다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나는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두 가지 정도가 떠올랐는데 첫 번째는 세대차이로 인한 소통의 문제였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문제였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소통의 문제는 내가 우리 할머니와 오랜 시간 같이 살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진행하면 수업의 회차는 늘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강의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재단의 제안을 수락했고, 총 16주에 걸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첫 시간, 수강생들을 처음 만나며 느낀 점은 생각보다 젊다는 것이었다. 나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리 할머니처럼 등이 굽고 머리가 새하얀 분들을 생각했는데, 딱 우리 아버지 연배인 65세부터 75세 사이의 분들이 주로 모여 주셨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따지고 보면 노인으로 분류가 될 연세이신데 내가 그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많게는 80대 초반의 수강생도 계셨는데, 옷차림도 세련되고 활력도 넘치셔서 전혀 그 연배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려온 노인의 이미지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노인은 과거 우리가 생각하던, 맥없이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전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새로 만난 노인 수강생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차근차근 노래를 만들어갔다. 개강 전에는 사실 선생님들께서 어떤 이야기를 가져오실지에 대해서 큰 기대가 없었다. 대부분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거나 무색무취한 일상의 나열일 뿐이겠지. 그런데 그것 역시 나의 오산이었다. 선생님들이 가져 오신 이야기들은 그들의 삶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한 선생님은 자신의 이상형 배우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사로 만들어 오셨다. 또 어떤 선생님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다시 한 번 헌신적으로 사랑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시기도 했다. 노래를 만들던 시기가 가을이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노래하신 선생님들도 있었다.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열망이다. 노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이고 남성인 이 분들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청춘들에게 뒤지지 않는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젊은 나로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 들려주신 선생님들도 있었다. 사별한 남편에게 건네고 싶은 말들을 적어 내려간 노래는 내가 쓴 어떤 이별이야기보다도 절절했고 한편으로 뜨거웠다. 어떤 선생님은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자신이 경험했던 전쟁의 참혹함을 떠올리셨다. 그리고 지금 한가로이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평화로움에 감사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드셨다. 수많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지 않는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노래가 되었다.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이다. 노인 복지는 아주 중요한 이슈이다. 나는 노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노인들을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기고 있다. 아무런 동력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사회가 떠안아야 하는 비용으로 취급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난 노인들은 여전히 젊은이들 못지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젊은이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분들이었다. 아직 맡을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있는 분들이다. 나는 사회가 이런 분들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서로에게 배우자는 취지에서였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에게 가르칠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 내가 만난 노인들은 가르치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어떤가.

2025-04-06

마음의 여유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는 쫀득 쿠키, 작년 말부터 유행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10-20대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디저트다. SNS를 통해 처음 알려진 쫀득 쿠키의 처음은 대만에서의 누가 쿠키가 원조다. 기존 누가 쿠키는 바삭하고 짭짤한 크래커 사이에 진득한 누가가 들어가 있다면, 약간 변형된 쫀득 쿠키는 버터를 녹인 마시멜로우에 탈지분유와 각종 과자 토핑을 넣어 굳힌 쿠키로, 마시멜로우의 달달함과 떡을 씹는 듯한 쫀득한 식감이 특징이다. 유튜브 채널에 쫀득 쿠키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가장 높은 조회수는 3240만회를 기록하고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도 1398만의 도달수를 기록할 정도로 현재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인기에 힘입어 각종 편의점에서도 ‘쫀득’이란 키워드가 들어간 각 종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어, 과거 한정된 곳에서만 구할 수 있던 쫀득 쿠키였지만 이제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어졌다. 인기 있는 디저트라면 꼭 입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처음 쫀득쿠키를 각 종 카페나 인터넷 판매처에서 사서 먹었었다. 지금은 사서 먹는 대신 직접 만드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다행히 쫀득쿠키는 별다른 베이킹 기술이나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만드는 방법 또한 정말 쉬워서, 이제는 습관처럼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있다. 만드는 방법은 요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아주 쉽다. 우선 프라이팬에 무염버터 50-60g을 약불로 녹인다. 버터가 다 녹았을 쯤엔 마시멜로우 200g를 넣어 녹은 버터와 함께 섞는다. 이때 마시멜로우가 너무 클 경우 열에 잘 녹지 않고 탈 수 있기 때문에 큰 마시멜로우를 작게 썰어 넣는 것이 중요하다. 주걱을 이용해서 마시멜로우를 으깨는 느낌으로 살살 휘젓다 보면 오 분 이내로 힘없이 녹게 된다. 이때 프라이팬에 눌러 붙거나 마시멜로우가 타지 않게 약불에서 잘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마시멜로우가 약간의 갈색 빛을 돌며 반죽처럼 녹았을 쯤, 탈지분유나 시판용 우유 가루, 또는 녹차 가루나 요거트 가루를 넣어 달콤함을 더한다. 탈지분유를 넣지 않고도 만들 수 있지만, 가루를 넣어 만들면 분유의 달콤한 향과 함께 더 부드러운 식감이 완성되기 때문에 약간이라도 넣는 것을 더 추천한다. 가루가 다 섞였을 쯤엔 손질해둔 건조 과일이나 각종 과자를 넣고선 잘 섞어준다. 특별히 정해진 재료가 없어 집에 있는 과자나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넣어도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마시멜로우 양과 토핑의 양이 1:1인 비율이 제일 맛이 좋다. 마시멜로우 양이 많을 경우 너무 달고 느끼해질 수 있고, 토핑의 양이 많을 경우엔 씹는 식감이 과해서 오히려 맛을 헤친다. 이제 다 완성이 되었다. 덩어리진 마시멜로우를 사각형 틀에 넣고 모양을 잡아 냉장고에 그대로 두 시간을 넣어둔다. 두 시간 후 꺼내어 칼이나 가위로 한 입에 먹기 편하게 자르면 끝이 난다. 넣는 재료와 자르는 크기에 따라 양은 달라지지만, 3-4인분의 양이 만들어진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SNS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맛은 쿠키크림 맛이 나는 비스킷과 동결 건조된 딸기를 넣어 만든 딸기쿠키앤크림 맛이나, 녹차 가루와 초코볼을 넣어 만든 녹차초코맛, 또는 황치즈 가루나 치즈 과자를 잘게 부숴 넣은 치즈맛 등등 다양한 레시피가 공유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를 넣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단 점과 전자레인지로도 쉽게 만들 수 있단 점, 또한 껌이나 떡을 씹는 듯한 쫀득하면서도 말랑한 독특한 식감 덕에 더욱 인기를 얻는 듯하다. 요즘의 나는 쉬는 날이면 여유롭게 주방에 앉아 큰 공을 들이지 않고도 쫀득 쿠키를 만든다.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면 일주일은 기본으로 먹기 때문에 매번 새로를 재료를 넣어 만들어 저장해두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내가 만든 쿠키는 시중에 파는 것보다 크기가 일정하지도 않고, 모양도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재료를 아낌없이 넣었던 탓에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맛은 훨씬 좋다. 겉모습도 완벽하면 더욱 좋을테지만, 어쩐지 모난 곳 없이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든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게 아닌, 자르면 자를수록 토핑으로 가득 찬 쫀득 쿠키의 모양처럼, 내실을 견고히 하는 나의 모습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 생각하면서 요즘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2025-03-30

노탄, 파 드 되

봄이 더딘 발걸음을 옮기던 3월 초순의 주말, 경기도 여주에 바람 쐬러 다녀왔다. 논문 쓰고 새학기 강의노트 준비하는 동안 방학이 끝나버린 아쉬움을 개강 첫주의 나들이로 달래볼 심산이었다. 목덜미로 내려앉는 따스한 햇살이 꽤나 살갑게 굴었다. 그래서 코트를 벗고 가벼이 걸었다. 투명하기만 한 대기도 그 두께가 확실히 한겨울보다 얇아진 듯 보였다. 여주 산북면의 ‘수연목서’는 사진과 건축 전문 책방 겸 카페다. 문학, 철학, 미술 등 인문예술에 관한 책들도 사진집, 건축서적과 함께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수잔 손택이나 발터 벤야민의 두꺼운 벽돌책들, 전집이라고 해도 될 만한 한강 작가의 콜렉션을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 속에 숭고한 빛의 탑이 세워지는 기분이었다. 2층 전시공간에 사진작가 필립 퍼킨스의 ‘노탄’전이 마련돼 있어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둔 채 전시장 문을 열었다. 사진에 문외한인 내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이다. ‘노탄(notan)’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대상을 표현하는 일본 미술양식으로 우리말 ‘농담(濃淡)’과 같은 개념이다. 1935년생인 필립 퍼킨스가 생애 마지막 사진 작업으로 이 노탄에 천착한 것은 기나긴 도정의 끝에서 비로소 한 깨우침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길 위에 쌓인 눈과 녹은 눈의 대비, 숲 그늘과 양지의 대립 혹은 공존, 낙엽을 한 데 모아 밀어놓음으로 생겨난 정원의 오솔길과 그림자의 퇴적, 달빛의 농(濃)과 담(淡) 등을 보는 사이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의 절반이 구름에 가렸다. 그 순간 벽면의 한 작품 설명문에 눈길이 멈췄다. 필립 퍼키스가 지향하는 노탄의 미학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었다. “노탄은 음양의 원리처럼 주제와 배경 중 어느 것도 우세하지 않은 일본의 디자인 개념이다. 검은색이 흰색보다 중요하지 않고 흰색은 검은색보다 중요하지 않다. 교토에 있는 갈퀴 모양의 정원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정원의 무언가가 다른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부각되면 그 정원은 실패한 것이다. 발레를 볼 때, 특히 파 드 되에서, 두 무용수의 몸과 몸 사이의 모양은 각자의 몸 자체의 모양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조화와 균형에 관한 이야기다. 검은색과 흰색은 서로 중요하고 또 서로 중요하지 않다. 정원의 나무와 돌과 물통과 널브러진 빗자루와 웃자란 풀 중 홀로 돋보이는 것은 없다. 없어야 한다. 정원은 오직 정원이지 분수대나 꽃나무를 위한 배경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정원에는 빛과 어둠, 바람과 고요, 상승과 하강, 움직임과 멈춤, 삶과 죽음이 있고 그 모든 대비 사이엔 이름 붙일 수 없는 또 다른 국면들이 있다. 마침 겨울과 봄 사이의 이 계절을 나는 언젠가 ‘겨우봄’이라고 부른 적 있다. ‘파 드 되(pas de deux)’는 발레에서 여성과 남성 무용수가 함께 추는 춤이다. 두 무용수의 몸과 몸 사이의 모양은 각자의 몸 자체의 모양만큼 중요하다는 말은 얼마나 뭉클한가. 그러고 보니 몸과 몸의 사이를 들여다본 기억이 없다. 왼손과 오른손을 어찌 잘 맞대면 하트 모양의 작은 허공이 생기고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면서도 우리는 왜 사이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걸까. 세상엔 옳고 그름, 선과 악, 미와 추, 본질과 비본질, 남자와 여자, 냉정과 열정, 왼손과 오른손, 나와 너만 있지 않다. 이항대립은 단조로우면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불확실과 우연, 망설임과 은유, 모호한 고백과 불투명한 사랑, 이쪽이나 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마음 들의 파 드 되는 공허나 허무가 아니다. 탄생과 죽음 두 사건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단 1초도 무의미하지 않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여주 신륵사에 가니 아직 잎이 하나도 돋지 않은 풀과 나무의 침묵 덕분에 남한강 윤슬이 발밑까지 흘러오는 듯 금빛 밀물의 생생한 카페트를 일주문 안에 펼쳤다. 600년 된 은행나무를 보는데 커다란 두 목본경 사이에 관세음보살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두 굵은 나무줄기가 만드는 파 드 되의 빈곳에 썩은 고목이 보살이 되어 은행나무를 소원나무로 바꿔 놓았다. 구름과 새가 이따금 지나가는 나무 사이, 600년 동안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을 그 사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남한강 윤슬도 거기 이따금 반짝이길래 나는 강변으로 내려가 물과 빛이 만드는 노탄인지 파 드 되인지 물과 물 사이의 빛, 빛과 빛 사이의 물 앞에 섰다. 그런데 물과 빛에게는 사이가 없고 무엇이 물이고 빛인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흘러감과 밀려옴이 구별되지 않았다. 문득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가 어떻게인지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2025-03-30

사랑했던 ‘토끼굴’을 떠나보내며

나는 어떤 시절을 어느 장소로 기억하기도 한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시간은 빨간 벽돌건물과 그 외벽을 타고 올라가던 담쟁이덩굴이 있던 고등학교 교정으로 기억한다. 그 다음 몇 년은 취하고 휘청이다 토하고 소리치던 대학교 앞 술집 골목으로 기억하고, 또 어떤 시절은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 나던 어느 지하 공연장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아마 꽤 긴 시간, 그러니까 2012년 봄부터 약 십 년 동안의 시절은 내게 ‘토끼굴’이라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토끼굴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술을 주로 팔았다는 이유로 ‘바’라고 하자니 분명 누군가는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고, 때로는 재즈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라이브 연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그곳을 말이다. 토끼굴은 2012년 초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해 5월. 토끼굴의 사장 수진이 누나와 서로 인사를 나누다, 나는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던 기억이 난다. 누나는 그때부터 마지막까지 토끼굴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서로를 존중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말이 시인이고 싱어송라이터이지 시집 한 권, 정규앨범 한 장 없었던 내게 예술 하는 친구는 언제든 환영이라며 언제든 놀러오라던 그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부터 토끼굴은 내게 단골집을 넘어서 집이었고 학교였고 놀이터였다. 토끼굴에는 크고 멋진 바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언제 가도 거기에는 수진이 누나와 정겨운 얼굴 몇몇은 꼭 있었다. 모르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자주 있었는데 그들 역시 예술가이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예술을 모르더라도 최소한 예술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쉽게 말을 트고 친해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술과 인간에 대한 존중조차 없는 사람은 수진이 누나가 반드시 쫓아내곤 했으니까. 거기서 만난 멋진 사람들 하나 하나가 다 삶의 교과서였고, 누나와 그들이 걸어둔 플레이리스트도 내겐 음악 교재였다. 언젠가 내가 드디어 끝내주는 노래를 한 곡 썼다며 달려가 거기 있던 기타를 부여잡고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방금 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바로 지금까지 내 대표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타임머신’이었다. 첫 책이 나왔을 때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달려갔던 곳도 토끼굴이었다. 출간일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을 토끼굴의 책꽂이에 꽂아두는 대신 축하주를 얻어먹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만큼 내게 특별했던 공간이었던 토끼굴은 시간이 지나 은근히 입소문을 타게 되었고, 모두에게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가수 강산에 형님 앞에서 타임머신을 부르고 칭찬을 받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던 일, 술에 잔뜩 취해 형은 진짜 최고라고 내가 술 한 잔 사야겠다고 기어이 하림 형님에게 술을 사고 나중에 다시 만나 훨씬 비싼 답례주를 얻어먹었던 일, 장기하 형님과 시에 대해 이야기 했던 마법같은 일들이 모두 토끼굴에서 일어났다. 어느 밤엔가는 해외 뮤지션인 Damien Rice가 술을 마시다 가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토끼굴에 놀러 온 Rachael Yamagata가 연주를 한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10년 정도 화려하게 빛나던 토끼굴의 불빛은 2022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꺼지게 되었다. 영업을 종료한 후 수진이 누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치되었던 그 공간을 뒤늦게 정리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며칠 전에 받았다. 누나는 내게 기타를 가져가라고 했다. 오래 전 술값이 없던 어느 날 공짜 술을 얻어먹기 미안해서 토끼굴에 내가 기증했던 그 기타. 거기 머물면서 수많은 뮤지션들과 노래하던 그 기타를 돌려받게 된 것이다. 누나는 기타 뿐 만 아니라 몇몇 음향장비, 그리고 개봉하지 않은 술들까지 선물해주었다. 짐을 챙기면서 횡재했다는 기분보다 정말로 토끼굴과 이별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 그리고 어딘가로 여행을 가서도 항상 괜찮은 바를 검색하곤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공간은 없다. 사실 나는 오랫동안 또 다른 토끼굴을 찾고 있지만 토끼굴 같은 곳은 토끼굴 밖에 없었고 이제 그곳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있고 그런 장소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이 글은 내가 사랑했던,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장소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다. 더 오래, 잘 기억하기 위해 몇 자 적어보았다. 참 많이 고마웠다.

2025-03-23

빚진 마음

인터넷을 켜는 일이 이렇게 피로한 줄 몰랐다. 나는 단지 쉬고 싶을 뿐이었다. 언어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쏙 빠진 끝에 숨을 고르기 위해 화면을 열었는데, 쏟아지는 뉴스가 밀물처럼 덮쳤다.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추락, 누군가의 분노. 정치는 혼란스럽고 범죄는 쉴 틈이 없다. 이 모든 일이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젠 지겹다고 혀를 찰 법도 한데, 번번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뉴스를 읽다 보면 슬픔보다 피로가 먼저 찾아올 때도 잦다. 하나하나가 고통의 파편처럼 느껴지지만 낯설지 않은 충격이다. 언제나 고통은 타인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것은 멀리서 벌어지는 국지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보이지 않는 구조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이어져 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 앞에서 어떠한 빚을 느낀다. 누군가 내게 책임을 강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 정말 책임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무관하지 않은 일. 어쩌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고요가 누군가의 침묵과 상처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예소연 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는 이런 부분을 매만진다. 이야기는 친구의 실종 사건을 접한 이들이 그를 찾아 나서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대학 시절 캄보디아 프놈펜이 있는 바울 학교에서 봉사 단원으로 만나 친해진 사이다. 세 명의 친구는 타국에서 생활하며 도움이라는 명목 아래의 타자성을 느낀다. 나아가 함께 있는 행위 자체가 반드시 이해나 연대와 같지는 않다는 사실, 삶의 조건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은 때때로 끝까지 공유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자신이 보았던 것들과 끝내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을 되짚기 시작한다. 이러한 질문은 그들을 다시 움직이게 한다. 지나갔다고 여겼던 슬픔은 어딘가에 남아 있으며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부채로 삶에 스며 있었다. 소설은 바로 그 잔류하는 감정의 흔적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소설 속 인물들이 인터넷 뉴스로 세월호 참사를 접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이 비극적인 소식에 참담함을 느끼는 이들 앞에서 캄보디아 학생은 꺼뻑섬에서 벌어진 압사 사건에 관해 말한다. 물축제에서 너무 많은 인파로 사람들이 다리에 끼여 죽은 사건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애도를 공유하려는 순간, 한 친구가 말한다.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 소설이 은밀하게 건드리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무수한 고통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에 경계를 둔다. 어떤 죽음은 우리를 멈춰 세우고 어느 죽음은 스쳐 지나간다. 나와 얼마나 가까운지, 얼마나 자극적인지, 또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에 따라 경중을 나누게 된다.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을 알아주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매일 벌어지는 사건에 일일이 응답하기는커녕 바라보는 일조차 때로는 벅차다. 우리 일상은 그 자체만으로 숨 가쁘고 삶을 꾸려가는 일만으로 충분히 위태롭다. 인터넷을 종료하고 눈앞에 까만 화면이 떠오른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라면 얼마나 편할까. 뉴스 기사의 마침표를 보고도 나는 끝내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기억하는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다는 생각 때문일까.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라도 응답하자는 다짐. 그것은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무에 가깝다. 인간으로 최소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이자 바라보는 일부터 출발하는 작고 조용한 윤리. 정말 두려운 것은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지는 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 반복에 익숙해진 마음이다. 고통 앞에서 더 이상 멈추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윤리적 위험 속에 있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연인에게 말한 것처럼. “가장 끔찍한 게 뭔 줄 알아? 그건, 사람의 마음을 찢어놓는 게 아니라-마음은 찢어지라고 있는 것이니까-돌로 만들어버린다는 거야.” 숨을 고르고 멈춰 선다. 스쳐 지나가는 고통 앞에, 너무 늦게 도착한 슬픔 앞에, 끝까지 닿을 수 없는 고통일지라도 잠시 머무는 일 정도는 가능하니까. 그렇게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응시가 빚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안고서.

2025-03-23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재밌게 봤다. 제주도 말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가수 아이유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배우 이지은의 1인2역이 눈길을 끄는데 특히 소녀가장으로 식모살이하면서도 문학소녀의 꿈을 잃지 않는 오애순을 핍진하게 표현해냈다. 생선집 아들인 광식(박보검)과 애순의 패가망신을 겁내지 않는 ‘요망진’ 로맨스가 가슴을 뛰게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극 초반에 등장하는 애순 엄마 전광례(염혜란)의 눈물겨운 모정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부모의 빚까지 떠안았다. 결혼하고서는 해녀 물질하면서 남편 병수발까지 했다. 남편 죽고서 얻은 새서방은 방구석에 누워만 있는 백수건달이라 밥이라도 안 굶기려고 딸내미를 시어머니 집에 더부살이 보냈다. 억척스럽고 강인한 엄마 광례는 언제까지나 애순의 곁을 지켜줄 것 같았지만 애순이 10살 되던 해에 물질해서 얻은 숨병(감압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예감한 광례가 애순의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이면서 말한다. “두고 봐라. 요 꽃물 빠질 즈음 되면 산 사람은 또 잊고 살아져. 살면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 이 대목에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광례는 신산하고 박복한 삶을 산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직 자식만 생각하며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의 사랑이 ‘제주 해녀’라는 특별한 지역적 문화와 더해져 더 큰 감동으로 밀려왔다. 살면서 만난 여러 사람 중 제주도의 송협 형은 참 각별하다. 낚시로 맺은 인연이 이제는 거의 가족이 됐다. 가족보다 더 자주 통화하고 제주나 내가 사는 안양에서 며칠씩 동숙한다. 내게 “살다가 힘들면 제주 와라”라고 말해주는 이 형 덕분에 세상살이가 아무리 괴롭혀도 나는 끄떡없다. 나에게는 제주라는 피난처가, 거기서 온 맘으로 나를 맞아줄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제주에 가고 싶고, 형이 그립고, 형네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언젠가 형이 들려준 어머니 이야기야말로 드라마다. 1945년 제주 안덕면 사계리에서 7남매 맏딸로 태어난 김이선 삼춘은 초등학교를 그만 두고 밭일, 가게일, 동생들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물질을 배워 열여섯 살에 해녀가 되어서는 형제섬 근처에서 미역을 캐고, 매년 2월부터 8월까지 강원도로 ‘바깥물질’을 다녔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님 밭 사드리고, 돌아가실 때 입혀드릴 수의도 사고, 동생들 옷과 신발을 샀다. 스무 살에 결혼해 쌍둥이 딸을 낳자마자 시어머니께 맡기고 또 바깥물질을 나갔다. 집안 어른이 춥게 물질하지 말라며 일본에서 구한 고무옷을 보내줬는데 전통 해녀옷인 ‘물소중이’를 입은 다른 해녀들이 질투해 못 입게 했다. 그래서 일부러 더 바깥물질을 다녔다. 그렇게 두 해 강원도에 다녀와서 보니 사계 해녀들도 전부 고무옷을 입고 있었단다. 닻줄에 발이 걸려 죽을 뻔했다. 물질하다가 시체를 본 적도 있다. 겁이 나도 물질은 그만 둘 수 없었다. 뱃속에서 이미 죽은 아이를 사산하기도 했다. 아이를 잃고 일주일만에 바다에 나갔다. 친정아버지가 “너 경허당 죽는다”고 해도 도무지 말릴 수 없었다. 바다에 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다른 해녀들이 미역과 소라를 캐서 나오는 걸 보면 저절로 바다에 뛰어들게 됐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몸을 혹사한 결과 양쪽 무릎을 수술하고, 물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뇌선(진통제)을 하루에 한 번 꼭 먹게 됐지만 젊어서나 지금이나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0년 동안 병수발 했다. 물질만으로는 살림이 되지 않아 장사도 했다. 생선, 미역, 톳 등 안 팔아본 게 없다. 낚싯배도 했다. 남편이 떠나고서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낚시 손님들을 태우고 가파도, 마라도로 직접 배를 몰았다. 그렇게 물질하고 장사하고 낚싯배 몰면서 집안 빚을 다 갚고 아이들 공부도 시켰다. 어머니의 일생이 드라마 속 광례처럼 파란만장하다. 어느 겨울 형과 함께 어머니가 담요 덮고 앉아 계신 집에 갔더니 귤을 잔뜩 꺼내주셨다. 현무암처럼 전복 껍데기처럼 거친 손에서 뭉클한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운 사람과 그리운 바다를 만나러 봄날 제주에 간다. 험한 생의 파도를 넘어 이제 잔잔한 물가에서 볕을 쬐고 계시는 어머니께 “폭싹 속았수다” 말씀드려야겠다.

2025-03-16

덧없음의 위로

나의 삶의 주인공은 ‘나’지만, 언제나 그럴듯하게 멋진 것만은 아니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미스터 초밥왕’에서는 주인공 쇼타 옆을 지키는 ‘오바타 신고’라는 인물이 있다. 신고의 별명은 ‘신코’로, 새끼 전어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이른 봄에 나오는 새끼 전어를 ‘신코’라 부르는데, 아직 제몫을 못하는 견습이라는 뜻으로 미성숙하고 불완전 하다는 뜻에서 붙었다. 오바타 신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름보다는 ‘신코’로 불린다. 주인공 쇼타와는 동년배이자 쇼타와 같이 일하는 오오토리 초밥에선 쇼타보다 반년 더 일찍 들어온 선배이지만, 어쩐지 주인공다운 쇼타의 엄청난 활약에 묻혀 오히려 비교당하고 계속해서 혼나며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한 채, 오오토리 초밥에서 야반도주하여 건설 현장에 일하게 된다. 뭐 어쨌거나 쇼타의 도움으로 다시 초밥 장인의 꿈을 되찾은 신코는 다시금 오오토리 초밥으로 돌아오지만 만화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하루하루 눈부시게 성장하는 쇼타와는 달리, 신코는 완벽한 주연처럼 쇼타의 활약에 ‘굉장해! 정말 굉장해! 쇼타’와 같은 대사만 날릴 뿐이다.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건, 어디서나 주연보단 조연에 가까운 인물이다. 주인공의 활약을 돕고, 주인공의 서사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어딘가 급조한 듯한 ‘신코’ 같은 캐릭터와 같달까. 어디서나 주인공처럼 주목 받는 게 부담스럽고, 실은 주목 받을 만큼의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도,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도 아님을 객관적으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을 조금 달리 해서 영화 ‘트루먼쇼’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는 가짜 세트장에서 조작된 삶을 살고 있단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지고, 죽은 아버지를 길거리에서 만나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자신의 모습이 생중계되는 알 수 없는 일들을 겪는다. 그러다 첫사랑 실비아가 모든 것이 쇼라는 사실을 트루먼에게 남기고 사라지게 되고, 트루먼은 그 말을 쫓고 쫓아 결국 자신의 30년간의 일상이 모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TV쇼였단 것을 알게 된다. ‘트루먼 쇼’라는 이름의 이 쇼는 트루먼 버뱅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현재까지 모든 일상을 촬영해 전 세계에 생중하는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고,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결국 그는 세트장을 떠나 피지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물론 이 쇼를 제작한 총 책임자이자 트루먼의 삶을 조종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이 스튜디오를 떠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 공작을 펼친다. 하지만 트루먼은 이미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고 리스크를 겪더라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행한다. 모두 나를 속이고 있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세상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결국 나아가는 것이다. 이전에 트루먼쇼를 볼 때에는 트루먼이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루먼처럼 용기 있게 알에서 깨어나는 새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트루먼처럼 섬을 떠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할 만큼의 의지와 용기가 없는 사람임을, 최근에 결국 깨닫고 말았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나는 근래에 새롭게 도전한 모든 것들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론적으로는 많은 실패를 남겼다. 그 실패 앞에서 지나치게 무력했다. 트루먼처럼 물 공포증을 이겨낸 채 다리를 건너 스튜디오 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음, 그렇지 못하다. 마치 미스터 초밥왕처럼 주인공 옆의 그림자처럼 자연스레 깔리는 ‘신코’처럼, 나의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그렇다. 나는 트루먼처럼 모든 것이 연출된 가짜 세상을 뛰어나갈 용기도, 결단도, 현명한 지혜도 없다. 그저 이 세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도 못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임을 안다. 실패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며 불편한 쾌락과 조롱을 하더라도 나는 나의 삶을 산다. 내가 현재 살아가고, 느끼고, 만나고, 해쳐나가고, 견디고 있는 이 모습만큼은 아직까지 내게 진짜이고 진실된 순간이라 믿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가짜 세상을 깨지 못하고 이 속에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이 모든 것이 결국 다 덧없는가? 글쎄,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인간이라면 우선은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 수밖엔 없다. 그 허무함과 덧없음에게서 나는 이상한 위로를 얻는다.

2025-03-16

학교에서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들

최근 몇 년간 나의 인생은 큰 폭으로 두 번 변화했다. 2022년 결혼을 하며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었고 2024년 아들이 태어나며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사건들은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누군가가 가정을 짊어지고 이끌어간다는 뜻인 가장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며 아내와 내가 서로의 보호자가 된 것과 아들을 만나며 내가 그의 보호자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내가 몸이 아플 때 일시적으로 나는 아내를 책임져야 하고 아들이 자립하기까지의 오랜 세월동안 나는 많은 부분에서 그를 챙겨야만 한다. 다른 이를 책임지고 챙길 때 나는 나 자신만을 건사하는 때보다 더 꼼꼼해지고 야무져져야하는데, 나는 아직도 여러 방면에서 서툴기만 하다는 게 속상할 때가 있다. 요 며칠은 아들이 기관지염으로 고생을 했다. 새벽 내내 콧물을 줄줄 흘리고 기침으로 고생을 하는 작은 존재를 앞에 두고 병원 문이 여는 아침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받았고 대학을 거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공부도 했건만 그러면 뭐하나, 정작 삶에서 필요한 중요한 지식과 지혜는 갖추지 못한 헛똑똑이에 불과한 것을. 그러나 이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내게 아이를 기르는 방법과 누군가를 간호하는 방법 같은 걸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세상에는 미분과 적분, 직유법과 은유법, to 부정사와 동명사 같은 것보다 더 필요한 지식들이 많은데 정작 그런 것들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입시 교육에 밀려 가볍게 지나치게 되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육아 상식은 누구나 조금씩은 알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육아 상식을 가르친다면 살면서 그것을 써먹을 확률은 미분과 적분을 배워 써먹을 확률보다는 분명히 높을 것이다. 부모가 되지 않더라도 부모가 된 다른 사람과 자라나는 어린 존재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생아는 몇 시간 마다 먹여야 하는지. 아기가 우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각각의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야해 하는지를 미리 배워 알고 있었더라면 시행착오는 훨씬 줄었을 것이고, 부모와 아기 모두 고생을 덜 해도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기초적인 의학 교육이 정규교육에 포함된다면 누군가를 보호하거나 간호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어떤 증상이 생겼을 때 적어도 그것이 심각한 상황인지 가볍게 넘겨도 되는 상황인지는 빠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구급법이야 가끔 학교에서 배우기도 했던 것 같지만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밖에도 손발목이 삐었을 때 뜨거운 찜질을 해야 하는지 차가운 찜질을 해야 하는지, 함께 복용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운 약은 어떤 것이 있는지, 평상시와 감기가 걸렸을 시에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각각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정도는 학교에서 비중있게 가르쳐준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자동차의 대략적인 구조와 간단한 정비 기술 같은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자동차 경고등의 종류와 해당 상황에서 어떤 조치들을 할 수 있는지. 엔진오일을 비롯한 소모품들은 어느 정도 주기로 갈면 되는지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불의의 사고나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가 고장날 때마다 정비업체에서 부르는 가격을 의심하고 때로는 뒤늦게 배신감을 느끼곤 하는 일들도 많이 줄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기초적인 법률 상식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면 어떨까. 지갑이나 휴대폰을 주워서 돌려주는 이에게 어느 정도의 사례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을 해서 직장생활을 할 때 어떠한 법률을 통해 어떤 부분을 보호받으며 일할 수 있는 것인지, 이사를 갈 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교과과정을 통해 교육한다면 사회의 질서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밖에 기본적인 가사노동 스킬이라거나, 연애를 할 때의 에티켓이라거나,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예절 같은 실용적인 것들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공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이전에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2025-03-09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하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지만…. /언스플래쉬 작법 수업을 할 때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주어를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 일인칭은 필연적으로 ‘나’일 수밖에 없으므로 불필요한 단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한다’는 말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듯하다. 하나 마나 한 표현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단조롭고 식상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식상함이야말로 이 문장의 본질이기도 하다. 내가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칼럼을 쓸 때다. 세상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시각을 명확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라? 경북매일신문에 신설되는 코너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에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던가. 첫 번째 글을 송고하며 덜덜 떨던 기억이 선연하다. 어느덧 나는 ‘20’에서 ‘30’으로 넘어왔고 눈빛이 조금 흐리멍덩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던 나는 어디로 갔나. 원고 쓰는 일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좋게 보면 여유가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진 셈이다. 특히 요즘 그와 같은 권태로움이 커지고 있는데, 어쩐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 몇 년째 함께하는 필진이 정말이지 대단해 보인다. 아니,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아있단 말이야?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비척비척 노트북 전원을 켜 슬픈 리듬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썼나 들춰 보기도 한다. 매우 수치스러운 작업이다. 손가락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후루룩 읽어도 탁 걸리는 몇몇 문장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꽤 기특한 부분도 보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물론 그러한 마음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 글 역시 나의 부끄러움이 될 것을 알지만, 뭐, 별 수 없지. 내가 차곡차곡 써 온 글을 바라보노라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한때 나는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이 꼭 점진적인 상승의 구조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은 하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성취와 소유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나’를 찾는 과정에 관해 무수한 철학자들이 한 마디씩 내어놓지 않았던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장자는 사회적 규범이나 외부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의 발견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지금처럼 살 것인가 자문하도록 했고, 라캉은 자아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 오인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현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광장에 모일 필요 없는 세상이다. 훌륭한 사상은 도처에 범람하며 우리는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토록 좋은 말을 우격다짐으로 뱃속에 넣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건 왜일까?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 그 괴리가 클수록 ‘나’라는 사람은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다. 예쁘지도 않고 어느 때엔 천박하기까지 하다. 두피를 벅벅 긁으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문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의 순간이 하나의 깨달음이다. 그렇게 쌓인 고민이야말로 ‘30’으로 가뿐히 넘어온 내가 얻은 값진 흔적이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포기했다. 하루를 정성껏 닦는 정도로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느슨한 분투 속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을 글로 적고 번번이 미궁에 빠진다. 이전에는 혼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눈물 콧물 쏟아내며 발을 굴렀다면 이젠 바닥에 벌러덩 누워 하늘이나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무엇보다 나는 단 한 번의 마감도 펑크내지 않은, 성실한 노동자가 아니던가!

202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