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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균형과 느림

균형이란 뭘까.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상태일까, 아니면 어느 것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알맞음일까. 우리는 균형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좋은 의미를 붙인다. 균형 잡힌 식사, 균형 잡힌 사고, 균형 잡힌 삶. 그 말 속에는 늘 안정과 성숙이 함께 따라온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과 삶을 적절히 나누며, 타인의 말에도 쉽게 치우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떠올릴 때 우리는 어쩐지 안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겠구나, 중심이 단단하겠구나 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백과도 닮아있다. 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정리하는 사람, 삶의 여러 영역을 적절히 나누어 관리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영리하게 선을 긋는 사람. 그런 모습은 완성형에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중심이 정확히 잡혀 있어서 어떤 외부의 힘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같은 모습을 요구한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기울어질까, 왜 감정이 먼저 앞설까, 왜 한쪽으로 치우쳤다가 뒤늦게 후회할까 하고선 자주 자책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가만히 서 있으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열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발끝에 힘을 주고 무게를 조금 옮기고 손잡이를 더 단단히 붙잡는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히 서 있는 것 같지만, 몸은 계속해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그 작은 움직임 덕분에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다. 균형은 가만히 버티는 힘이 아니라, 흔들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몸을 옮기는 능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유난히 느려지는 편이다. 이리저리 재보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상상하고,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사실 그동안 나는 고민이 드는 순간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편이었다. 고민을 하는 시간은 늘 답답하고 두려움이 들었기에 빨리 결론을 내린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서둘러 내린 선택은 종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찜찜함, 다른 가능성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오래 뒤따랐다. 크게 후회를 한 뒤로는, 반대로 며칠을 두고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감정이 가장 크게 요동칠 때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고 하루쯤 지나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속 급급함이 조금씩 내려갔다. 처음에는 확신처럼 느껴졌던 감정이 사실은 불안이었음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당장 피하고 싶었던 선택이 오히려 필요한 방향임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나는 여전히 느려지고, 그 과정은 여전히 괴롭지만, 잠시 멈추어 이 상황 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보는 시간이 결국 나를 덜 후회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단지 결정을 늦게 내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오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균형을 이상적인 상태로 그려놓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 있고, 감정도 일도 관계도 정돈된 모습을 원한다. 그러니 조금만 삶이 한쪽으로 기울어져도 쉽게 불안해진다. 일이 바빠지면 ‘나는 지금 너무 일에 치우친 건 아닐까’ 걱정하고,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나’ 하며 초조해진다. 완벽하게 반듯한 상태를 상상해두었기 때문에 그 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완벽히 정지된 화면이 아니다. 매일 다른 변수가 생기고, 감정의 온도도 달라지고, 우리의 에너지도 일정하지 않다.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건 속에서 완벽한 균형을 기대하는 일은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인 바람일지도 모른다. 균형이란 결국 매일 조금씩 방향을 고치며 살아가기 위한 열렬한 몸짓이라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옮기는 일, 한쪽으로 치우쳤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 빠르게 결론을 내리기보다 잠시 멈춰 서는 선택. 그것은 완벽함의 증명이 아니라, 흔들림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균형 잡힌 사람으로 보이는 이들도 아마 매일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방향을 수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균형은 단단히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기보단,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다. 오늘도 나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겠지만, 그 대신 조금 더 오래 서 있기 위해 천천히 몸을 조정할 것이다. 그리고 그 느린 조정이 결국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 /윤여진(시인)

2026-03-04

‘호락호락’도 락이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신사역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중 광고판에 호랑이 캐릭터와 함께 이런 문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강의가 끝나고 왜인지 모를 실의에 빠져 있는 때였다. ‘쓸데없이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누가 누굴 가르친담. 내가 괜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몇 년간 나를 짓누르는 무력감에 무거운 짐이 어깨와 등에 더해진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 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출처가 궁금해서 알아보니 이미 밈으로 돌아다니던 문장을 가수 태연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 화제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귀여운 호랑이 캐릭터와 그 말이 무슨 관계가 있고 또 무엇을 광고하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이미지와 문장은 내게 분명하게 남았고, 스스로 약간의 동력이라도 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광고와 무관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실 나는, 제법 호락호락한 편인 것 같다. 부탁을 받으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나쁜 말로 되받아치지 못한다. 외양이라도 좀 강해지고 싶은데 그건 태생적인 부분이라 어쩔 수가 없다. 키와 덩치가 그닥 크지 않은데 얼굴도 동그래서 좀 만만하게 생겼다. 심지어 목소리도 낮고 음성의 크기 또한 크지 않다. 전반적으로 별다른 포스가 없다. 스스로 위축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어디에서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바로 쭈구리가 된다. 사람과 닿는 것도 무서워서 지하철이나 버스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면 있는 힘껏 몸을 말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잘 안 된다. 언제나 내가 제일 약하고 볼품없어 보인다. 이런 나지만 의외로 오프라인에서 하는 것들을 즐긴다. 특히 콘서트. 아무래도 좌석을 선호하지만 스탠딩도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 일어서서 뛰면서 함께 해야 더 즐거운 공연도 있다. 락이 그렇다. 엊그제 일본 록(J-Rock) 밴드 원오크락(ONE OK ROCK) 내한 콘서트를 보러 친구들과 잠실실내체육관에 갔다. 전부터 좋아하던 밴드라 기대가 됐다. 동시에 걱정도 됐다. 노래가 하나도 쉬운 게 없는데 이게 다 라이브가 되는 건가? 공연장 음향 상태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나… 밖에 오랜만에 나왔는데 사람들 속에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양가적인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원오크락은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등장했다. 그리고 오프닝 첫 곡으로 ‘Puppets Can‘t Control You’를 했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직전의 걱정이나 고민은 모두 기우라는 걸 알았다. 전율이 일었다. 두 번째 곡으로 한 건 ‘The Beginning’. 두 곡만으로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아올랐다.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앞이나 옆에서 종종 작은 나의 영역에 침범해서 리듬에 몸을 맡겼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 순간 나는 누구든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저 원오크락의 음악 안에 빠져 노는데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쯤 더 해도 좋았을 테지만 모두가 예상했을 앵콜곡 ‘We Are’를 마지막으로 공연은 끝났다. 친구들은 나와 같은 감정이 되었는지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보컬은 말할 것도 없이 끝내줬고, 악기들 또한 합과 움직임이 엄청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결속력 같은 게 보이는 듯했다. 나도 저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깐이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리 쉽게 바뀔 수 없다. 인간은 나약하고 나는 더 나약하다. 공연장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치이고 자꾸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보면서 호락호락이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원오크락이 준 에너지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호락호락. 하지만 호락호락도 락이 아닐까. 아니야. 확신을 갖자. 내가 설령 호락호락한 사람이라고 해도, 락처럼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심지어 락이 두 번이나 있는걸. 그래서 작지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호락호락도 락이다. 가방을 안고 대중교통을 조용히 타고 있는 내 이어폰에서는 늘 락이 나오고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의 전투력은 이미 최고치에 달했다. 싫은 소리를 들어도 또 별말 못하겠지만 뭐 어떤가. 내 안에서는 다시 내가 짱이 되었다. 정말 강해지지는 못할지라도 너무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호락호락한 정도라면, 딱 괜찮을 것 같다. /구현우(시인)

2026-03-04

동시에 하는 일

26년 새해를 맞은 지도 벌써 한 달이 더 흘렀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달아나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속기사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나는 손재주 없는 아이였다. 뜨개질, 바느질, 요리, 기계 수리 등 손을 이용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것을 예쁘게 만들어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가정 시간 수행평가 때마다 나는 늘 낮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 시간과 미술 시간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에 최악은 겨우 면한 정도랄까. 흔히들 손재주 하면 공예와 관련된 조형 능력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손재주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조형 능력뿐 아니라 기술적 숙련도를 요구하는 정밀 수리, 수술을 비롯한 전문 의료 능력, 그리고 예술적 퍼포먼스 분야이다. 다행히 나는 예술적 퍼포먼스의 한 분야인 타이핑에선 소소한 재능을 보였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반에서 제일 타자가 빠른 아이였고, 지금은 타이핑을 통해 글을 쓰는 일을 하니 내게도 어느 정도의 손재주가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속기사 자격증을 금세 취득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을 안고 학원에 등록했다. 내 자신감은 수업 첫 시간부터 처참히 무너졌다. 속기사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키보드는 자음-모음-받침을 순서대로 입력하지만, 속기사 키보드는 이 모든 걸 동시에 입력해야만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누를 수 있는 자판이 철저히 구분되어 있으며 지정된 손가락 위치에 맞는 자판을 눌러야 한다.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말이다. 처음엔―물론 지금도―손가락의 위치를 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이전까지 배운 것을 모조리 잊고 새로 시작하는 건 꽤나 혹독한 일이었다. 머리로 외우고, 눈으로 보고, 손을 움직이는 모든 게 별개의 일처럼 느껴졌다. 3개월 정도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학원 선생님은 1년간 매일 연습해도 합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왼손으로는 자음만, 오른손으로는 모음만 눌러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모든 걸 동시에 눌러야 한다는 건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이 더 유리하겠네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요.” 어느 날 나는 선생님께 그렇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글쎄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예요. 저만 해도 멀티가 안 되는 편인데, 타이핑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거든요.” 그런가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내려다보았다. 마음과 의욕을 따라오지 못하고 뒤처지는 손이 야속했다. 나를 격려하듯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한 선생님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완벽하게 할 수가 없죠. 타자를 동시에 치는 게 처음이시잖아요. 지금 중요한 건 손가락에 힘을 빼는 거예요. 타자 치실 때 손이 바짝 올라가 있어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몸에 힘이 실리고, 힘이 실리면 오타를 내기가 쉬워져요.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손한테 익숙해질 시간을 주세요. 그럼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저절로 움직일 거예요.” 나는 어쩐지 정곡에 찔린 기분으로 가만히 타자기만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것,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 모두 나의 유구한 특성이었다. 처음 하는 일도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잘하고 싶은 욕심은 늘 내 안에 있었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내 손가락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유독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뼈마디가 하얗게 보였다. 그게 꼭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느껴졌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나 자신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된 낯선 존재의 이빨. 익숙해질 시간, 그런 걸 내게 준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직장에 다니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을 가꾸는 데 바빴다. 내심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나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기도 했다. 간혹 힘든 순간이 닥치더라도, 모두 다 이렇게 살 텐데 나만 엄살 피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모른 척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여러 명 몫의 삶을 사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오직 흑건으로만 이루어진 피아노 같은 타자기 앞에 앉아 나는 힘 빼는 법을 생각한다. “하지만 손에 힘을 너무 빼면, 자판을 누를 수가 없어요. 힘 주기와 힘 빼기 사이에서 적절한 강도를 곧 찾게 되실 거예요.” 선생님의 말처럼, 언젠간 나만의 강도를 찾아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를 찾기 위해 지금은 ‘완벽할 수 없음’과 ‘완벽하지 않아도 됨’의 상태를 받아들이도록 노력 중이다. /양수빈(소설가)

2026-02-25

텅 빈 거리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한 때 저녁마다 붐비던 번화가가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늘어선 식당과 술집들.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따금 찾던 그 도시가 내가 사는 곳이 되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가뜩이나 날이 추운데 주말에도 거리는 한산해서 바람이 더 차게 느껴질 지경이다. 나야 단지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 정도를 받지만 거기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훨씬 더 무거울 것이라 짐작한다. 자영업자에게 모든 순간은 비용이나 다름없을 텐데 비어있는 테이블들을 보면 도무지 힘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동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의 번화가에 나가봐도 실상은 마찬가지이다. 신촌의 상권이 무너진지는 오래됐다. 골목골목을 가득 메우던 인파들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종로도 그렇고 명동도 심각하다. 어느 날 홍대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은 이제 홍대나 강남도 옛날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어딜 가도 사람이 없어요.” 성수동, 연남동, 한남동처럼 새로 떠올라 성장한 곳들도 있지만 그 규모는 눈으로 보기에도 침체된 곳들보다 압도적으로 작다. 대구의 동성로, 광주의 충장로, 전주 객사. 도시를 대표하던 거리들이 비어가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거리에 사람이 없는 것은 체감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느덧 원로급이 된 그룹 신화의 멤버 앤디가 앳된 얼굴로 시트콤 ‘논스톱’에서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로 시작하던 유행어를 이야기하던 게 2002년 쯤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 반등하기도 했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긴 하지만 체감적으로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져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인 격차는 자꾸만 벌어지고 취업은 점점 힘들어지며 임금은 별로 안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반면, 물가는 무섭게 오른다. 2005년, 대학 새내기 때 가게에서 소주 한 병 값은 2500원에서 3000원 정도였다. 지금은 5000원에서 6000원 정도 하니까 두 배 정도 오른 셈이다. 그동안 평균 임금은 80% 정도 상승했으니 사실 그에 비하면 소주 값이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계산기를 들고 소주를 마시지는 않는다.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감각은 숫자 밖에 존재한다. 평균 임금이 그만큼 오른 것은 고소득층의 임금 상승이 주된 요인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평균이 올랐다고 내 월급이 오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소주 값만 지나치게 오른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명백하다. 2년 남짓한 시간동안 모임이 통제되고 모두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제한이 풀리고 나서 유동인구의 수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긴 했지만 그것이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 사라진 회식과 모임이 부활하지 않게 된 경우들이 많다. 그때 갓 스물이 되었던 젊은이들은 이제 소비력을 갖추게 되었을 텐데 한창 모여야 할 시기에 통제받은 경험은 이후에도 그들을 이전 세대들보다 만남에 소극적인 세대로 만들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만큼 술을 마시지도 않고 모이지도 않는다. 당장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흥청망청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약간의 우려를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술을 먹으며 쌓은 관계는 단지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고 카톡으로 이모티콘을 보내며 쌓은 관계와는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파트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낯선 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에 섞여 거리의 풍경에 녹아드는 일은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뭐가 더 낫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모습의 관계와 다양한 종류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자영업자들의 생활이 위태로워지고 사랑스런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도 걱정이다. 공간은 곧 경험이고 경험들이 모여 삶을 이룬다. 다양한 공간들을 지켜내는 이들이 바로 자영업자들이고, 그런 곳들이 유지되려면 결국 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자꾸 얼어붙기만 하는 황량한 거리에서 자영업자들은 끝없이 한숨을 내뿜을 뿐이다. 아무리 추워도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봄이 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티다 보면 온다던 봄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텅 빈 거리에 봄이 오긴 오는 것일까. 날은 많이 풀렸는데 말이다. /강백수(시인)

2026-02-25

아침, 한 잔의 균형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커피를 내린다. 전기포트에 물을 올려두고, 끓는 동안 원두를 간다. 분쇄되는 소리 사이로 스며 나오는 향이 잠을 서서히 밀어낸다. 물이 다 끓으면 종이 필터를 적셔 특유의 냄새를 씻어내고, 동시에 드리퍼를 데워 온도를 맞춘다. 그 다음은 분쇄된 가루 위에 조심스럽게 첫 물을 붓는다. 약 30~40초 동안 커피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며 기다린다. 이후에는 너무 빠르지도, 지나치게 머뭇거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원을 그리듯 물줄기를 붓는다. 한 잔이 완성되기까지는 대략 5분 남짓.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5분여간은 커피에 시선을 떼지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바쁜 아침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마음의 작은 여유를 가져다준다. 물론 평일의 대부분 아침은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신다. 가격도 합리적이고 기다리는 시간도 짧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사마시는 커피만으로도 하루의 카페인은 충분히 채워진다. 하지만 쉽게 구매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혀끝에 남는 맛도, 깊이 있는 향의 결도 없이 금세 사라진다. 마신 뒤에는 단지 카페인이 몸을 깨웠다는 사실뿐. 커피가 카페인을 채우기 위한 음료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붙잡지는 않는다. 드립커피는 조금 다르다. 맛이 각기 다른 원두를 구비해놓으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원두를 선택할 수 있다. 산뜻한 산미가 필요한 날에는 꽃이나 과일 같은 밝은 향의 원두를, 마음이 가라앉은 날에는 초콜릿이나 견과류 맛이 나는 묵직한 풍미의 원두를 선택한다. 원두 봉투를 여는 순간 퍼지는 향, 손에 잡히는 원두의 촉감, 분쇄되는 소리, 혀에 층층이 감기는 맛까지도 그날의 컨디션과 맞물린다. 그리고 내가 고른 원두에 맞춰 분쇄도를 조정하고, 물의 온도와 붓는 속도를 가늠한다. 같은 커피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보여준다는 것도 드립의 큰 매력이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약간 번거롭지만, 그만큼 날씨와 나의 기분과 그날의 온도에 맞춰진 정성스런 한 잔이 된다. 드립의 기본은 단순하다. 물을 서두르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커피 가루 전체를 골고루 적셔주면 된다. 한 부분에만 물이 오래 머물면 과하게 추출되고, 닿지 못한 부분은 충분히 맛을 내지 못하게 된다. 균일함이 균형을 만들기에,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선 너무 빠르거나 또는 너무 느리게 물을 붓는 것이 아닌, 고르게 스며든 적당한 시간에서 나온다. 또 중요한 점은 한곳에만 물을 붓지 않는 것이다. 원을 그리듯 천천히 움직이며 전체를 살핀다. 커피가루 하나하나에 고르게 물을 머금게 해주어야 원두 본질의 향이 살아난다. 균형은 어떤 한곳에만 치우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고른 관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드립의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날씨와 습도, 물의 온도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추출해도 오늘은 또 다른 맛의 결과가 나온다. 그날의 원두와 공기, 나의 감각에 맞춰 균형을 찾아야 하고 완벽한 레시피가 있다기보다, 매번 다른 답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우리는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나 역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떠올리며 마음이 앞서 달려갈 때가 많다. 충분히 했음에도 조금 더 하려다 스스로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드립 커피를 내리며 생각한다. 한곳에만 물을 붓지 않듯, 하루의 힘도 한 방향에만 쏟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균형은 급함이 아니라 고른 분배에서 생긴다. 요즘의 나는 아침의 몇 분을 드립 커피를 내리는 방식으로 보낸다. 단순히 카페인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천천히 물을 붓는 동안만큼은 하루의 속도를 내가 정하고 싶어서다. 향이 피어오르고, 잔에 커피가 차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의 균형을 점검한다. 한 잔의 커피가 하루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지만 시작의 온도는 바꿀 수 있다. 내가 고른 원두와 내가 조절한 물줄기로 완성된 한 잔은, 누군가의 손을 거친 완성품과는 다른 의미를 남긴다.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아침, 나를 돌보려는 작은 시선에서 비롯될 뿐. 천천히, 그리고 고르게. 원두 드립을 내리는 아침의 몇 분이 하루를 더 건강히 지탱하게 한다. /윤여진(시인)

2026-02-18

소파 옮기기

카페에 홀로 앉아 종일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이었다.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홀짝이다 보니 해가 떨어져 있었다. 깜빡이는 커서와 눈을 맞추며 괜한 스트레스만 받은 셈이었다. 우중충한 밤이었다. 아주 많은 미세먼지가 섞여 마치 지점토로 수차례 까만 바닥을 문지른 듯한 밤이었다. 목이 칼칼하고 눈도 따가운 느낌이었다. 얼른 돌아가야지. 그때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너, 우리 집으로 좀 와. 오라고 하면 나는 오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유가 궁금했다. 뽀글이(누나네 반려견. 작은 푸들이다.) 밥을 주고 챙겨달란 일이 아니면 굳이 자기 집으로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뽀글이가 밥을 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누나는 뜸들이지 않고 이유를 말했다. 본가로 소파를 옮겨야 하는데 제법 무거우니 와서 도우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기존에 쓰던 소파는 버리고 누나네가 쓰던 소파를 사용하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 정도야 쉽지. 갈게. 누나네는 본가에서 백 미터 내외 거리로 사실상 앞 단지에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말은 바로 이 두 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저 멀리 1층 입구에서 소파를 앞에 두고 매형, 누나, 서후(조카.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하는 초등학생이다.)가 같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걸 1층까지 내렸으면 이제 별로 어려운 건 없는 거 아닌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가까이서 보니 소파는 예상보다 더 거대했다. 나무로 된 그것은, 소파라기보단 호수 공원에 놓인 거대한 나무 벤치를 뽑아서 가져온 것 같은 형상이었다. 일단 들어올리자. 나와 매형이 소파를 앞과 뒤에서 들고 양옆에서 서후와 누나가 들었다. 들어올리자마자 알았다. 이건 사람이 손으로 편하게 옮기라고 만든 게 아니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거기에 두고 계속 쓰는 거다. 내 집 이사 문제로 들었던 침대 프레임이나 장롱도 이거보단 덜 무거웠다. 갑자기 약간 진심이 되었다. 서후도 저렇게 힘을 보태는데 삼촌이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사람이 나무 소파를 한 걸음씩 조심조심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둘. 하나-둘. 혹시라도 턱에 발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 신중히 움직였다. 조깅하는 동네 주민이 우리를 굉장히 흥미로운 눈으로 보며 지나갔다. 뭔가 이벤트를 발견한 것처럼 반응했다. 속으로 나도 이걸 왜 손으로 옮기고 있지 싶었으나 그렇다고 용달을 부르기엔 너무 가까운 것 같고 그랬다. 평소에 오갈 때는 딱히 오르막 경사가 크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그날은 유독 그 오르막이 언덕처럼 느껴졌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여 소파를 내려놓았을 때 도대체 이걸 1층까지 어떻게 갖고 내려온 거냐며 물었다. 그러자 서후가 자랑스럽게 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수레를 보여주었다. 매형이 거기에 소파를 세로로 얹어서 끌고 내려왔다고 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위험하기에 거기선 수레로 옮길 수가 없으니 들기로 결심하여 나를 부른 것이었다. 다시 천천히 옮기다가 한 사람씩 눈이 마주치곤 불쑥 웃음이 터졌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꼭 이런 장면을 본 것 같았다. 두 시트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온갖 어지러운 사건들 속에서도 지속되는 가족애, 공동체 내에서의 특별한 친밀감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이여도 가까이 있다고 느끼기란 어렵다. 식탁에 모두 함께 앉아 밥을 자주 먹기도 쉽지 않다. 다른 누구의 문제는 아니고 밤낮이 자주 바뀌는 나 때문이다. 다 같이 눈을 맞출 일도 별로 없다. 그러나, 소파를 안쪽으로 두고 나란히 들었으니 우리 모두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소파 하나를 같이 들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계속 킥킥댔다. 그만 웃겨, 힘 빠져. 멈추지 않는 웃음의 이유를 그냥 수레를 들고 흥얼거리고 있던 서후 탓으로 돌렸다. 기어이 모두의 힘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그리고 현관 중문에서 작은 난관은 있었지만 그래도 소파는 본가 거실에 무사히 옮겨졌다. 각자도생의 시대라 그런지 나도 남도 선을 넘길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의 울타리 안에서 스스로를 지킬 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혼자 살아간 적은 없다. 세상과 주변의 영향과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혼자서는 소파 하나를 들어올릴 수도 없다. 한쪽이 기울면 다른 한 사람이 받쳐주는 일.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시시콜콜한 농담을 우리가 나눌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서후의 등을 토닥이며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우리가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소파 하나를 옮겼을 뿐이지만. /구현우(시인)

2026-02-18

카르마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온도 차이로 인해 베란다 창문에 물방울이 맺힌다. 물방울이 맺힌 걸 보고 결로를 걱정하여 창문을 연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곰팡이가 파고들 틈을 없앤다. 그러다 찬 바람이 너무 세다고 느껴지면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다시 물방울이 맺히면…. 이 모든 일들이 연쇄적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습도가 높아져 물방울이 생기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나, 창문을 여닫는 건 나의 선택이다. 창문을 너무 오래 열어두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열지 않고 닫아두면 곰팡이가 생길 것이다.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불러온다. 산스크리트어 KARMA에서 유래된 ‘카르마’는 ‘행위’, ‘업(業)’을 뜻하는 말이다. 선한 행동은 선한 결과를, 악한 행동은 악한 결과를 낳는다는 ‘업보’로도 읽힌다. 우리는 누군가 곤경에 빠진 것을 보면 업보를 맞았다고 이야기하고,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을 땐 좋은 업보가 돌아왔다고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카르마라는 문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행하다’라는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무슨 일을 행한다, 무엇과 작용한다. 이 말에는 어떤 도덕적 평가도 없다. 애초에 선악의 기준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카르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업보’의 뜻처럼, ‘무엇을 잘못해서 무슨 일을 당했는가’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묻는 질문인 셈이다. 여태 나는 선택 하나에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결과가 따라붙는다고 생각했다.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날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 카르마의 법칙은 내 생각과 달리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 아니었다. 카르마는 긴 시간 속에서 천천히 삶을 바꾼다. 선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바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악한 행동이 곧장 나쁜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축적되듯 쌓이고 쌓여 이윽고 거대한 삶을 만들어낸다. 최근 나는 별자리 운세를 보는 일에 꽤나 몰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오늘의 내 별자리 순위를 찾아보고, 그 옆에 달린 코멘트를 꼼꼼히 읽었다. 그날의 행운의 색과 물건이 무엇인지도 확인했다. 어제 1등이었던 내 별자리는 오늘 꼴찌가 되어 있기도 했다. 언젠가 내 별자리가 1등을 했던 날, 나는 나에게 이미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들떴다. 코멘트에는 ‘빛나는 성취가 있을 거예요’라고 적혀 있었다. 빛나는 성취라니, 듣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말이었다. 나는 행운의 색에 맞춰 옷을 입고, 물건을 챙겼다. 그리고 종일 빛나는 성취를 기다렸다. 자정을 넘긴 후에야 나는 기다리는 일을 포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빛나는 성취는커녕 기분 좋은 연락 하나 없던 날이었다. 다시는 별자리 운세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침대에 누웠다가 문득 무언갈 깨달았다. 카르마. 성취란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려왔던 사람에게 약간의 운까지 따라주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취였다. 오늘 하루 나는 성취를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은 채로 성취가 알아서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그날 나의 카르마는 작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극적인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카르마가 작용한다고 믿지만, 실은 반복되는 삶의 태도가 카르마 그 자체인 건 아닐까?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여태 어떻게 살아왔는가? 어떤 선택이 나를 지금의 삶으로 이끌었는가. 삶이 나를 이끌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지금의 삶을 만들어낸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이런 깨달음을 얻기에 적절한 곳이 있다. 오전 아홉 시 삼십 분, 필라테스 기구 리포머 위에 누운 내 머릿속은 온통 카르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비뼈를 조였다 풀고, 척추를 펼쳤다 다시 모으고, 가슴을 끌어올렸다 내리라는 선생님의 지도 목소리를 들으며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다. 구부정한 자세로 휴대폰을 보던 나, 다리를 꼬고 몇 시간씩 앉아 있던 나, 목을 있는 힘껏 빼낸 채 컴퓨터를 하던 나. 그 모든 순간의 내가 지금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만들어냈음을 깨달으며, 온몸의 뼈와 근육을 재조립하는 ‘카르마’를 행한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더 바른 자세를 취할 것이다.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하고 싶어서. 그리하여 끝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 위해 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험난한 동작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양수빈(소설가)

2026-02-11

적당한 만큼 ‘혼자 있기’

아침 여섯 시 반에서 일곱 시 사이에 일어난다. 아내의 출근을 배웅하고 세 살 아들 밥을 먹인다.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려다주고 15분 정도 차를 달린다. 작업실에 도착해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홉 시 반. 그때부터 오후 세시 반까지,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일은 혼자일 때만 가능하다. 이 여섯 시간이 없다면 나는 시인도 될 수 없고 싱어송라이터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내게는 혼자 있는 이 여섯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 결혼 전에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었고 프리랜서 예술인이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TV를 보는 시간 뿐 만 아니라 일 하는 시간에도 대부분 혼자였으므로 ’혼자’는 내게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고 써도 써도 줄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었다. 그러다 같이 사는 사람이 생기고, 아기가 태어나며 나는 전혀 다른 삶을 맞이하게 되었다. 문득 ‘혼자’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지방처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어느 밤, 아기가 잠든 사이 아내와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 빔 벤더스 감독)를 봤다. 도쿄에 홀로 사는 중년 남성 ‘히라야마’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낸다. 그의 직업은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혼자 사는 집에서 매일 같은 시간 눈을 뜨면 작업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차에 오르면 익숙한 손길로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향한다. 성실하게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같은 공원 같은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잠시 필름카메라로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을 찍는다. 일을 마치면 한산한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서 가볍게 술 한 잔을 마신다. 깜깜해진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펴고 작은 등 아래에서 오래된 소설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나날이 매일 반복된다. 그 단조롭고 고요한 일상이 우리 부부에게는 아주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좋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영화를 보는데 히라야마의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그의 조카가 기별도 없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조카는 며칠 동안 그의 집과 일터에 함께 머물며 그의 모든 일상을 함께 하다 떠난다. 혼자였지만 충만했던 그의 일상에 뜻밖의 빈자리와 어긋남이 생긴다. 다시 일상의 평온함을 되찾으며 마무리되는 이야기의 끝에는 주인공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웃음이었는지 울음이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시 혼자가 되어 원래의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 기쁜 것이었을까 슬픈 것이었을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혼자’가 우리에게 필수적인 영양소라면 그것의 적당량이라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결핍된 상태만큼이나 그것이 과잉된 상태도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의 적당량은 얼마 만큼일까. 아마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이 어떤 시기를 관통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일상과 그 안에서 갖게 되는 마음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물론 그 적당량을 찾더라도 딱 그만큼의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출근해서 또 거기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집에 돌아가서는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그들에게 ‘혼자’는 언제나 그리운 단어일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눈을 뜨고 혼자 밥을 차려 먹으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을 궁금해 하거나 안부를 묻는 이가 좀처럼 없는 사람들, 적막 속에서 고독과 싸우며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혼자’가 지긋지긋하고 가슴 아픈 단어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적당량의 ‘혼자’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관심과 이해다. 세상에는 사람에 치여서 정신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고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가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너무 오래 혼자 있도록 두지 않는 것은 모두 그의 삶을 구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자주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적당한 만큼 혼자인가를 질문하며, 때로는 자신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물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눠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기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강백수(시인)

2026-02-11

나의 30대는

최근 유튜브에서 에픽하이의 영상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한 콘텐츠였고, 에픽하이 멤버들이 질문을 던지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형식이었다. 대화 도중 타블로는 게스트에게 “40대에서 30대를 돌아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는 말을 꺼냈다. 다소 의외라는 듯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는 곧이어 “그때는 정말 건강했고, 지금보다 훨씬 어렸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도 30대에 들어선지 2년이 흘렀다. 올해 32살인 나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나이를 말하거나 약 봉투에 내 나이 만 31세라는 숫자가 찍혀있을 때마다 흠칫 놀란다. 아주 어린 날, 내게 알파벳을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이 34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숫자가 정말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되려면 34살쯤은 되어야 하는구나 생각했고, 선생님의 오른손목에 걸린 금시계나 반짝이는 높은 구두를 보며 어른의 삶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하고 몰래 동경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제 34살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30대가 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통장이 더 두둑할 줄 알았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아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줄 알았고, 자차도 멋지게 끌면서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도 멋지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 반대에 가까워서 생각보다 서른이란 별 볼 것이 없는 것 같다가도 실은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의 능력치에 한참 못미치는 것은 아닌지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서른이 의미 없거나 초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여태껏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월세를 내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왔다. 전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자리 잡기 위해 접시를 닦고 음식을 나르고 청소를 하며 버텼던 시간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노력의 형태들은 아직도 내게 너무나 선명하고 소중하다. 30대에서 20대를 돌아보니 20대에는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직장도, 직무 경력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내 의사를 표시하는 것도, 불안을 다루는 방법도 모두 다 서툴렀다. 그래서 하루 빨리 내가 더 성숙해져서 모든 것이 안정화되었음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담 40대가 되어서 30대를 돌아보면 어떨까? 나도 가수 타블로의 말처럼 40대가 되어보니 30대가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 30대 초반인 나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훗날 40대가 되어 30대를 돌아볼 때 “그때 참 좋았지, 정말 씩씩했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주어진 30대라는 나이를 잘 살아내야만 한다. 확실히 20대에 비해서 나는 조금 더 성숙해졌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달라졌다. 예전에는 의사표현이 분명하지 않아 타인에게 이끌려 다니기 일쑤였고, 악의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휘둘리거나 손해 보기 바빴다. 이제는 내 안의 기준이 비교적 명확해져 사람을 대하는 일에 조금 더 익숙해졌고, 좋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표현할 줄 알게 된 것도 기쁘다. 지난 여름 함께 시를 쓰던 언니를 만났다. 언니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나와 10살 넘게 차이나는 언니는 지금 내 나이가 한참 반짝인다며, 어떤 도전이든 응원한다고 말했다. 언니가 건넨 다정한 말이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언니 말대로 늦은 것은 없다. 너무 늦은 애정도, 너무 늦은 후회도, 도전도, 열정도 너무 늦은 것은 없다. 동시에 30대에 무조건 이루어야 하는 목표도 행복이라는 강박도 없다. 법륜스님은 인생에는 해야 하는 게 없고 안 해야 되는 것도 따로 없다고 말한다. ‘뭘 해야 한다’ 이전에 내가 현재 어떤 상태 있는지 알아차리는 자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각 이후 선택만이 있을 뿐. 그러니 요즘은 조금 천천히 살아보려 한다. 불안해지면 억지로 앞서가려 하기보다 지금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완벽한 30대를 만들기보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30대를 살아내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모으면 언젠가 돌아본 내 30대가 분명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조급함 대신 오늘의 속도를 믿어보려 한다. 크고 화려한 성취보다, 작지만 단단한 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윤여진(시인)

2026-02-04

그래도 아날로그...

여러모로 나는 참 느린 아이였다. 걸음걸이,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에 홀로 가득한 백지, 말하는 속도까지 참 느렸다.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아도 절대 뛰지 않았다고 하니 부모님은 정말이지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나는 모든 면에 있어서 느렸다. 유행하는 장난감이나 인기 있는 드라마와 영화 등에 딱히 열광하지 않았다. 계속 열광하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 장난감의 열기가 제법 식었을 때 비교적 싸게 구매해서 놀곤 했다. 드라마도 나중에 재방송으로 보다가 뒤늦게야 푹 빠져드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어떤 신념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단, 그냥 느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대부분의 신문물과 낯선 사이다. SNS는 특히 내게는 너무 빠르다. 눈으로 단어 하나를 파악하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조금 더 멈춰 있다고 싶은데, 계속 밀물이 밀려드는 것만 같다. 그렇게 세상 참 빠르다란 생각을 하면서 근처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이 집 가까이에 있는 게 좋다. 도시에 맛집들이 많아서 좋다. 맞다. 모순이다. 내가 느린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그럼 뭘까. 아날로그가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을 사랑하는 걸까.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전자책(e-book)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싫어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크게 시도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책의 크기, 무겁거나 가벼운 책 각각의 무게, 새 책이나 헌책에 밴 특유의 냄새, 표지부터 만져지는 질감, 펼쳤을 때 양손에 들어오는 페이지의 감각. 공교롭게도 그런 것들을 빼놓고 나는 책을 잘 읽지 못한다. 지인이 쥐어준 리더기로 시집이나 소설집을 한 권은 읽어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자꾸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리더기로 이북을 읽는 게 좋아지면 진짜 편할 것 같은데. 가방을 무겁게 만들지 않고도 어디에서나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몇 번쯤 더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커피잔 옆에 단정하게 책이 놓여 있는 게 좋다. 손끝으로 좋아하는 구절이 나오는 페이지 모서리를 접는 게 좋다. 그러다 잘못 접어서 접은 부분이 살짝 비뚤어지는 것도 좋고, 다시 접다가 접은 흔적이 두어 개 정도 남는 것도 좋다. 종종 느끼지만 나는 텍스트 그 자체를 사랑하기보단 책이 지닌 물성과 그 안의 텍스트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노래를 검색만 하면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한 곡에 몰입하는 힘이 조금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 1절만 듣고도 음 내 취향이 아니군, 하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별로 수고를 들이지 않고 몇 단계의 검색만 거치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뭘까. 배고플 때 먹은 에이스 과자 하나가 고급 베이커리의 다쿠아즈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까. 아직도 나는 어릴 때 침대 옆 탁상에 놓여 있던 커다란 검은 라디오 하나를 기억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근 10년간 그 라디오를 머리맡에 두고 잤다. 물론 심야 라디오를 켜고 자는 일이 많았지만, 내가 유독 아끼고 많이 들은 건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였다. 나는 중학생이 된 다음에도 아이돌, 연예인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를 자주 틀고 잤지만 특별히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다가 너무 심심해서 누나와 함께 휴게소에서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구매했을 뿐이었다. 하나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가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 하나는 신화의 ‘너의 결혼식’이 타이틀로 수록된 앨범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 두 앨범을 내내 들었다. 가사에 담긴 뜻은 전혀 몰랐다. 누나한테 “왜 아틀란티스야?”, “영화 ‘졸업’에서 생기는 일이 뭐야?”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누나도 잘은 모른다고 했다. 지금처럼 많은 곡을 자유롭게 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심심하거나 잠들기 전에 두 카세트테이프를 번갈아 틀곤 했다. A면과 B면을 계속 돌려가며 수록곡들의 음과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들었다. 그때 나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화자가 되어 웃거나 울었다. 되감기를 하며 한 곡에 빠져 흥얼거리던 기억.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날로그적으로만 살아갈 자신은 없지만 아날로그 감성은 계속 곁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는 자주 아틀란티스 소녀와 너의 결혼식을 듣는다. 그 노래를 사랑하는 것도 있지만 그 노래를 들었던 그 시절을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구현우(시인)

2026-02-04

진짜 두려운 것

어느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건조기였다. 전날 저녁, 건조기를 돌려놓고는 잠들어버린 것이다. 며칠 치의 수건이 겹겹이 몸을 포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수건을 꺼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건조기가 있는 베란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밤새 꼭꼭 닫아두었던 베란다 창문을 열고 건조기를 열었다. 건조기 깊숙이 상체를 밀어 넣고 건조된 수건 뭉치를 품에 안던 때였다. 오른발에 무언가 밟혔다. 바삭. 말 그대로 바삭한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서 감자칩을 먹은 적이 있었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잠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불 꺼진 베란다는 어두웠고, 나는 손에 든 수건을 우선 거실 소파 위로 옮겨두었다. 그러곤 베란다 불을 켰다. 그곳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게 있었다. ‘공포’라는 단어에는 ‘두려울 공(恐)’과 ‘두려워할 포(怖)’라는 한자가 쓰였다. 말 그대로 두려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공포라는 뜻인데, 두려운 것이 두 배가 될 때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두려운 것과 두려운 것. 평소에 나는 겁이 별로 없는 편이다. 공포나 고어 영화도 잘 보고 무서운 놀이기구도 즐겨 탄다. 높은 곳도 겁내지 않는다. 이런 내가 두려워하는 건 두 가지인데, 바로 어둠과 벌레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목격했다. 하나, 내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바퀴벌레. 둘, 그 바퀴벌레를 어둠 속에서 내가 밟았다는 사실. 나는 곧장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바퀴벌레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반쯤 울먹이며 화장실에서 발을 깨끗이 닦고, 살충제로 바퀴벌레를 익사시켰다. 겨우겨우 사체까지 치우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완전히 탈진한 채 소파에 누워 세스코 무료 상담을 검색했다. 가장 이른 날짜로 방문 신청을 하곤 며칠간 베란다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그날의 충격과 공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나는 이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최근에 겪은 일 중 가장 끔찍한 일인데, 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도 친구 한 명에게 바퀴벌레 이야기를 꺼내려던 참이었다. 우리는 추운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뜨끈한 샤부샤부를 먹기로 했다. 식사하는 동안엔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있었던 근황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는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계획 중이었다. 친구의 애인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카페로 자리를 옮긴 뒤 우리는 결혼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은 어디에 구하기로 했어? 음료를 마시며 가볍게 던진 질문에 친구가 잠시 머뭇거렸다.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괜히 민감한 주제를 던졌나 고민하던 찰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같이 집을 보러 다녔는데, 오빠가 나는 바퀴벌레 나오는 집만 아니면 돼, 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 친구가 유리잔에 꽂힌 빨대를 한참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오빠는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거든. 우리 집은 바퀴벌레가 종종 나오곤 했는데 오빠한테 말하면 아마 기겁할걸. 자기는 집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대.” 친구가 빨대를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이럴 때 조금 무서운 것 같아.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다르다는 게.”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 또한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독립하기 전까지 나는 집에서 바퀴벌레를 비롯한 벌레를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여름엔 음식물 쓰레기통 근처에서 날파리가 들끓고 몰래 침투한 모기가 가족들을 괴롭혔지만 그건 거의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므로 제외하고). 그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사는 집에선 당연히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바퀴벌레가 징그러운 해충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평생 겪은 적 없는 미지를 앞으로 수없이 맞닥뜨려야 한다는 막막함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든 건 아닐까. 내가 진짜 두려워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진 순간이었다. “나도 그랬는데, 살면 또 살아지더라.” 나는 친구를 위로하듯 말했다. 친구가 빙긋 웃었다. “그렇겠지? 그리고 바퀴벌레쯤이야 내가 잡으면 되니까.” 나는 친구에게 세스코 정기 구독료에 대해 알려주고, 친구는 바퀴벌레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약을 소개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어두웠다. 나는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으며 걸었다. 살면 또 살아지더라. 친구에게 건넨 말이 부드럽게 몸을 돌려 내게 다가오는 걸 느끼며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양수빈(소설가)

2026-01-28

글쓰기를 권함

나의 여덟 번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까운 사람들부터 천천히 내 신간이 나왔다고 소문을 내야 한다. 주변에 책 나왔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 준다. 처음에는 머쓱했는데 이제는 그냥 싱긋 웃는다. 누군가 자기 일을 하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어 놓는 모든 일들은 사실 모두 칭찬받을 만 한 일이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사람들, 흙 밖에 없는 땅에서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 맛있는 스파게티나 떡볶이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 칭찬받아 마땅하다. 신간 소식을 전하는 내게 질문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 먼저 자기도 언젠가 책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책을 낼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일단 글을 쓰라고 말한다. 책을 채우는 기본적인 내용물은 결국 글이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 중 실제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책은 낼 수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내 생각에 글을 잘 쓰는 방법과 운동을 잘 하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은 결국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 한다. 약간의 재능을 타고 나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운동이란 것은 그것을 많이 해 보지 않으면 도저히 잘할 수 없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잘 쓰려면 글을 많이 써야 한다. 글쓰기도 운동도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그것을 잘 하기 위한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한다. 꼭 어디 발표하거나, 책을 내거나,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러닝 열풍에 힘입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황영조나 이봉주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 중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조금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이다. 나는 생활 속의 글쓰기 역시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흩어져있는 생각을 모아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쉽게 잘 정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내가 하고 있었던 생각이 구체화되고 또렷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했던 어떤 생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사람의 행동은 결국 생각의 산물이다. 생각이 정돈되면 확신이 생기고 행동에도 체계가 생긴다. 생각이 다양해지면 행동의 반경도 넓어진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또한 글쓰기는 휘발되고 마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저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은 점점 더 소중해진다. 그런데 그것들이 허망하게 잊혀지고 마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다. 우리가 경험한 것과 그 안에서 품은 감정들을 짧게나마 글로 남기고 머리와 가슴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을 보다 촘촘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장황하고 거창하게 써 내려간 대단한 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몇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수필도 좋고, 솔직한 마음을 담아 몇 줄의 시를 써 보는 것도 좋다. 그것도 조금 막막하다면 몇 단어의 메모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해보면 아주 글을 쓰지 않고 쓰는 삶이라는 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지지 않았는가. 인터넷 기사에 쓰는 댓글도 글이고 SNS에 휙 던져놓는 몇 마디도 글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글이고 업무를 위해 주고받는 이메일도 모두 글이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이왕 쓰는 것 잘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 비결을 조금 공개하도록 하겠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문장을 구사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글이건 일단 써 보고 요즘 널리 사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교정·교열을 요청한다. 그러면 맞춤법 오류와 비문 같은 것들을 수정한 새로운 문장을 내어 놓을 것이다. 기존에 쓴 문장과 수정된 문장을 비교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좋은 글은 좋은 글감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좋은 글감을 찾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지면이 부족하다. 강백수의 신간 《뭘 쓸까》에 상세히 적어두었으니 참고하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백수(시인)

2026-01-28

물건을 버리는 일

옷장 앞에서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15년 넘게 입어 낡고 헤진 검정 패딩을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엄마 손을 잡고 지금은 구도심이 되어버린 시내에 나가 고민 없이 산 옷이었다. 입자마자 몸에 꼭 맞는 듯했고 두터운 두께 탓에 몸이 두 세배는 더 커 보이던, 투박하지만 무늬 하나 없이 깔끔한 검정 패딩이었다. 나는 그것을 고등학교 교복 위에 입었고 대학교에 가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이후 직장에서까지 꾸준히도 입었다. 나는 물건도, 옷도 잘 사지 않는 편이다. 새로운 옷을 사는 데에 피로감을 느낄뿐더러 어떤 스타일이 내게 잘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타일 이랄 게 없는 깔끔하고 기본적인 옷을 주로 입는다. 무난한 기본 티셔츠나 바지를 발견한다면 색상별로 두 장씩 구비해 두곤 한다. 그리곤 옷을 더 이상 입지 못할 때까지 수선하다 결국 더는 입지 못할 때에 버린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혀를 내두르고 엄마는 내 옷장을 볼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다양하게 구비해놓기란 늘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그래서 옷의 개수도 자연스레 적다. 사계절을 모두 합쳐도 일반적인 옷장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다. 하지만 비슷비슷하게 정리된 옷들은 편안하고, 매일 아침 옷을 고를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에 좋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가볍게 옷을 입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하루를 한결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달까. 처음부터 옷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기심 많던 직장인 초년생이던 시절, 형편에 맞춰 여러 저렴한 옷을 사 입었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거나 유행이 지나버리거나, 혹은 원단이 너무 저렴해 금세 보풀이 일고 망가지는 경험을 반복했다. 결국 몇 번 입지도 못한 채 옷을 버릴 때마다, 낭비에 대한 허무함과 소비 습관에 대한 실망감이 들었고, 더는 이러지 말자고 마음먹게 됐다. 또 신중한 성격 탓에 옷뿐만 아니라 물건을 살 때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고르게 된다. 무언가 필요하면 가격과 상세 페이지, 제품 후기 등을 여러 번 읽고 난 후, 장바구니에 며칠씩 담아두었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느껴질 때쯤 구매한다. 그렇게 고른 물건일수록 후회가 적고 잘 골랐다는 뿌듯함과 기쁨에 더 오래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또 다시 맞이하는 겨울의 계절. 날이 추워지면 나는 익숙한 검정 패딩을 꺼내 입고선 잔뜩 움츠린다. 비록 보온성은 많이 떨어졌지만 15번의 겨울이라는 그 많은 시간을 함께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옷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다. 지퍼 부분은 이미 고장 나서 잘 잠기지 않고 벗어두면 안쓰러울 정도로 축 저진 모양새지만 유난스럽지 않고 과시 하지도 않는, 내가 추구하는 삶과 꼭 닮았기에 애정이 간다.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유행에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기본에 충실한 내 옷. 내 몸에 꼭 맞는 오래된 물건들은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묵묵히 굳건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오래된 물건은 조금 안쓰러운 구석이 있다. 15년 넘은 검은 패딩은 걸을 때마다 안감 속 솜털이 빠져 나오고, 10대 때부터 머리맡에 두고 있는 토끼 봉제 인형은 이곳저곳 꿰맨 자국과 거뭇한 얼룩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쓰임의 실용성은 잃고 숨만 겨우 붙은 채 명분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물건들을 쉽게 놓아주지 못한다. 오래된 물건에 애정이 쌓일수록 버리는 일에는 더 서툴러지는 것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정리해야 할 때면 오랜 시간 망설이고, 결국 물건이 초라해질 때까지 붙잡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쓰임의 본질을 잃은 물건들은 생명을 잃은 식물과 닮았다. 오래된 물건들은 대개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보기에 측은해지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오랜 시간 곁에 머물러 있어 당연히 여겨지지만 실은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오래된 물건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잠시 멈춰 진지한 이별 의식을 치른다. 그러고 나면 그 물건의 존재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해진다. 이미 내 손을 떠나보냈지만 기억으로 남아 내 곁을 머무는 물건들이. 물건을 버리는 일은 아직도 녹록치 않지만 어쩌면 오랜 물건과 잘 이별하는 것이 삶에서 필요한 한 과정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요즘의 겨울은 그런 이별들로 채워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6-01-21

코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요즘 조향이 유행이래요. 알고 계셨어요?” 한 출판사 편집자 선생님이 통화 중에 내게 물었다. “아뇨. 처음 들어요.” 정말 몰랐다. 변변한 취미 생활 없이 쉬는 날엔 그저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는 내겐 생소한 얘기였다. 조향, 그러니까 천연의 향과 인공적인 향 어떤 것이든 섞어서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나만의 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동네의 아담한 카페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을 맡으며 나는 향과 관련한 온갖 기억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글씨만 읽었는데 후각이 먼저 작동한 건 ‘향수’가 처음이었다. 결말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이름인 그루누이를 입에 담으면 코에 무엇이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향은 이름에도 묻어 있는 걸까. 나에게 짙게 남은 향은 초등학교 옆 시장의 골목 초입에 있던 꽃집에서 늘 나오는 그 향이었다. 장미, 백일홍, 프리지아, 안개꽃 등이 공기 중에 마구 섞여 코끝을 찌르곤 했다. 강렬함이라고 한다면 꽃집 바로 근처의 분식집에서 우리를 유혹하던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 냄새를 말해야겠으나, 이상하게 아주 멀리서도 맡아지는 건 꽃집의 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을 꽃집이 아닌 시장의 향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또 얼마 후에는 동네의 향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유달리 공사장이 많고 아이들이 갈 곳이라고는 문방구 외에는 딱히 없던 그 동네가, 꽃집의 향으로 내 안에 남게 된 것이다. 기묘하게도 비슷한 꽃들이 있는 꽃집이라도 그 꽃집과 향이 같지 않다. 그 향을 단지 장미 향이라거나 안개꽃 향이라고 부를 순 없다. 장미 21.6%, 튤립 16.3%, 안개꽃 15.2%, 거베라 11.5%, 수국 8.9%…. 내 안에는 이런 식으로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꽃집의 향을 다시 오롯이 맡는 것은 불가능할 일일 텐데, 지금도 가끔, 어느 꽃집을 지나다 맡게 되는 향기가 기억 속의 그 꽃집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향과 관련한 직접적인 에피소드는 따로 있다. 친구의 생일이나 지인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자주 향을 선물하곤 했다. 향수, 향초, 디퓨저, 인센스, 핸드 크림과 같은 것들. 좋은 향으로 그때를 기억하라거나 더 좋은 일상이 되길 바란다는 등의 멋진 이유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이유까지는 없었다. 우선 가격이 괜찮았다. 오 만원 내외로도 충분히 있어 보이는 게 가능했다. 포장지까지 더하면 제법 예뻤다. 또 부피가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너무 큰 선물은 방에 두는 일만으로도 짐이 될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꽤 오래 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고기는 한 번 먹으면 사라지지만 향수나 디퓨저는 단번에 사라지지 않으니까. 특별하지는 않아도 센스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일에 수많은 향수를 선물 받기 전까진. 그러니까 향을 선물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단 것이다. 모두가 향수와 디퓨저를 나쁘지 않은 선물로 여겼기 때문에, 서로서로 기념일에 향만 주고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단순히 BEST가 붙은 향이나 ‘이런 숲속의 나무 향을 싫어할 리는 없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향을 고르곤 했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다. 향이야말로 취향이 아주 크게 나뉘는 장르라는 것을. 우드 계열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개인의 취향은 또 디테일하게 다르다는 것을. 당신 혹은 당신들에게 제대로 향을 선물하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나는 코가 지닌 감각을 아주 단순하게만 사용해왔다. 상쾌하다, 맑다, 맵다, 시리다, 구리다, 아리다, 이런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든 물의 색이 단순한 파랑이 아니듯 집 앞 나무의 향 또한 하나가 아니다. 해가 떠 있는가 달이 떠 있는가에 따라, 겨울인지 봄인지에 따라, 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도 좋겠다. 단순히 모든 바닷가에서 전해지는 바다 냄새와 짭짤한 공기를 좋아했다기보단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에 앉아서 바라보는 일몰과 은은히 날아드는 밥 짓는 냄새, 새들이 날갯짓하며 떨어뜨리는 구름의 일부, 식어가는 캔맥주의 향이 한데 섞인 바다 냄새를 특별히 좋아했다. 마음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하는데, 코끝으로는 조금 맡을 수 있는 것 같다. 가끔 어떤 향은 좋다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향 하나가 잊고 있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때로는 슬픔 때문에 코끝이 찡한 게 아니라 코끝이 찡해서 슬픔이 오는 걸지도 모른다. /구현우(시인)

2026-01-21

더 좋은 미래

본가 아파트 단지 내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있는데 때가 되면 여의도나 석촌호수 부럽지 않을 만큼 꽃잎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벚꽃 보러 멀리 안 가도 되겠다. 그냥 집 앞에 돗자리 깔고 벚꽃 구경하면 되지, 뭐. 우리 가족은 그런 말을 하며―실제로도 벚꽃 개화 시즌에 맞춰 피크닉을 한 적은 없다―바람에 흩날리는 분홍 꽃잎들을 지켜보곤 했다. 벚꽃이 마음에 든 건 우리 가족뿐만이 아닌 듯했다. 벚꽃 개화가 절정에 이르는 시기면, 단지 곳곳에서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치원 가방을 멘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나무 아래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댔다. 아이들이 그만 찍겠다며 투정을 부릴 때까지 계속. 그래서인지 그 집에 사는 동안 내게 봄은 아이들을 보는 계절로 인식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내가 아이들을 주시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꽃잎이 사방에 뿌려진 봄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이다. 다른 강아지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집 강아지는 이따금 길가의 꽃잎을 주워 먹는다. 집안의 화분들엔 관심도 없으면서 밖에만 나가면 코를 들이밀고 입을 벌려 꼭꼭 씹다가 퉤 뱉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봄에는 마음이 들뜨는 걸까? 그래서 안 하던 짓도 하고 싶어지는 걸까. 여름, 가을, 겨울에도 꽃은 있지만 봄꽃이 아니면 뜯지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니 희한한 일이다. 강아지가 봄바람에 코를 씰룩이는 것처럼, 아이들도 봄에는 유독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 대부분은 강아지를 보는 순간 스위치 켜진 장난감처럼 눈을 번뜩이며 다가온다. 강아지다! 외치는 것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강아지를 만지려고 겁 없이 작은 손을 뻗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난다. 그럴 때 보호자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강아지 귀엽지? 만지고 와도 돼, 하고 멋대로 지시하는 보호자와 강아지 귀엽지? 그래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하고 제지하는 보호자. 반려인으로서는 당연히 후자의 경우를 선호하고 또 지지한다. 그런데 몇 해 전, 전혀 예상 못 한 세 번째 유형의 보호자를 만났다. 정확히 그를 만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의 엄마였다. 이른 점심을 먹고 강아지와 산책을 다녀온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서너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와 아이 엄마가 옆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강아지를 본 아이는 대번에 흥분해선 자기 엄마의 팔을 잡아당기며 강아지, 강아지,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이 엄마가 몹시도 엄격한 얼굴로 크리스, 엄마가 영어로 말해야 한댔지? 강아지가 아니라 퍼피라고 해야지,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다른 곳을 보는 척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이도 엄마도 한국인임이 분명해 보였다. 스피크 잉글리시. 올웨이즈 스피크 잉글리시. 아이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가 따라 할 때까지 퍼피, 퍼피, 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말이 없자, 급기야 아이의 손을 낚아채더니 손바닥에 퍼피 스펠링을 하나하나 그리기까지 했다. Puppy, puppy. 결국 아이가 더듬더듬 퍼피, 하고 말하자 아이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멀어지는 두 사람 사이로 리멤버, 크리스. 스피크 잉글리시, 하고 단호히 되뇌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날 이후로도 엄마는 종종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애한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친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하며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웃음이 거두어진 자리에 남은, 딱딱하게 굳어가던 그 얼굴이. 강아지든 퍼피든 뭐가 중요할까. 애가 그렇게 웃는데, 그렇게 환하게 웃었는데.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엄마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후로 몇 번의 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날의 이야기를 잊었다가 떠올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이런 때이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무시하고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날의 아이 엄마도 아이의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그토록 단호했던 거겠지. 그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을 테니까. 옆에서 아이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요하게 미래를 보고 있던 거겠지. 그렇지만 강아지든 퍼피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지금 얼마나 환하게 웃는가, 얼마나 기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일 테니까.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미래가 아닌 더 중요한 지금을 보고 싶다. /양수빈(소설가)

2026-01-14

영포티 말고 ‘굿포티’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단지 달력을 바꾸어 다는 것 말고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만 나이 보다는 우리식 세는 나이가 익숙하다. 그런 식으로 따져 보면 경북매일의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의 독자님들께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다. 2020년,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른 네 살이었기에 마흔 살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일도 없었고 그때까지 이 연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이런 제목의 연재를 맡게 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나는 금세 마흔 살이 되었다. 서른아홉이 마흔이 되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다. 인생을 나보다 오래 살아온 선배들은 마흔도 충분히 젊고 심지어 어린 나이라 이야기 해주시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청춘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청년이라는 단어 역시 여러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정책에서 다양하게 규정되지만 마흔은 거기 속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부분에 있어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실 그런 것들보다 마흔 살에 접어든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 바로 요즘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 문화다. 영포티(Young Forty)는 사십대 남성에 대한 조롱을 마주할 때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단어다. 원래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나 패션, 취향 면에서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사십대를 일컫는 긍정적인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어 보이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20대 감각을 무리하게 흉내 내는 사십대 남성을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울리지 않는 스트리트 패션으로 무장한 채 이십대-삼십대 초반 여성에게 추근대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곤 한다. 밈으로 많이 돌고 있는 영포티 패션에 대한 조롱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이키, 스투시 같은 브랜드는 지금의 사십대가 이십대 때부터 선호하던 것들이다. 이제와 젊은 척 하려고 입는 게 아니라 원래 입던 것을 입는 것이고, 또 어떤 것은 젊을 때 돈이 없어서 못 입던 것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에야 구매할 수 있게 되어 입는 것이다. 그다지 조롱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하는 영포티의 행동방식에 대해서는 딱히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직도 자기가 어린 줄 알고 이삼십대 노는 데 끼어들어서 젊은 척 하고 돈 자랑 하고 어린 이성의 환심을 사려 하는 사십대는 나도 종종 목격하고 있다. 그런 것에 대한 조롱은 마냥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굳이 영포티 대열에 합류하지 말자는 것이다. 영-하지는 않아도 자기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아가는 ‘굿포티’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굳이 어떤 것을 사십대 다운 것이라고 정의하고 꼭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이삼십대를 거치며 새롭게 알게 된 것,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나는 마흔 살을 맞아 굿포티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새해 다짐을 해 보았다. 먼저 하루하루 좋은 루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의 생활을 무절제하게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컨트롤하는 노하우의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다음으로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대하기. 이제는 종종 사회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과 어떤 관계를 쌓아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비록 우리의 인생 선배들은 간혹 우리에게 무례하곤 했을지라도 나는 지금부터라도 나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들에게 예의를 갖추겠다고 다짐했다. 말을 절제하는 것도 필요해졌다. 지저분하거나 거친 말들로부터 이제는 멀어질 것이며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는 일도 자제할 생각이다. 그 외에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 많지만 말을 절제해야 하므로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조롱받는 영포티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태까지 살아온 내 삶이 조롱받을 만큼 하찮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살아온 삶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삶도 잘 살아가야 한다. 영포티 말고, 굿포티로 살아갈 내 또래들을 응원한다. /강백수(시인)

2026-01-14

흑백요리사, 일상을 플레이팅하는 방식

현재 가장 핫한 예능을 꼽으라면 넷플릭스에서 독점 스트리밍 중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가 아닐까. 시즌 1에 더없이 몰입했던 나이기에 시즌 2 또한 공개 당일부터 기대감을 갖고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요리 계급 전쟁’이므로 백수저와 흑수저의 대립 구도가 큰 테마라고 할 수 있다. 20명의 백수저와 80명의 흑수저가 참가하는데, 1라운드에는 이 20명의 백수저와 2라운드에서 붙을 20명의 흑수저를 선정한다. 80명의 셰프들이 동시에 요리를 시작하며 펼쳐지는 광경은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화려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백수저들은 본래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반면 흑수저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닉네임을 써야 한다. 오직 결승에 진출하는 순간에만 흑수저인 자신의 이름을 공개할 수 있다. 나폴리 맛피아, 장사천재 조사장, 요리하는 돌아이, 중식 여신, 급식 대가, 고기 깡패 등 닉네임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셰프들이 첫 시즌부터 넘쳐났다. 닉네임이 찰떡같고 재밌기도 해서인지 모든 셰프들의 이름이 알려진 지금에도 권성준 셰프는 “나폴리 맛피자”(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맛피아’를 잘못 부른 것)라고 심심찮게 불리고 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권성준이라는 석 자만으로는 연결하기 어려웠을 “나폴리”라는 지명이 쉽게 연결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명명(命名)의 힘이다. 시즌 2에도 눈길을 끄는 흑수저의 닉네임이 많다. 뉴욕에 간 돼지곰탕, 바비큐연구소장, 아기 맹수, 중식 마녀, 요리괴물, 술 빚는 윤주모 등 닉네임만으로도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다. 그중 칼마카세라는 일식 셰프가 있다. 요리하는데 쓰는 “칼”과 코스의 재료, 종류, 요리 방식을 모두 셰프에게 일임하는 일을 뜻하는 “오마카세”를 합친 닉네임처럼, 그는 칼을 유려하게 잘 다룬다. 주어진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 주특기를 활용해 ‘칼맛 나는 오마카세 코스 4품’을 만들었다. 무를 얇게 썰어 오이를 만 오이매실마키, 마를 아주 얇게 썰어 겉보기엔 소면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마소면, 금태구이, 금태 찹쌀밥 이렇게 네 가지 요리를 멋지게 완성했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에게 칼마카세는 맛보는 순서를 설명했다. 금태구이를 먼저 먹고, 금태 찹쌀밥, 오이매실마키, 마소면 순서로 맛보기를 권했다. 처음에 간이 세고 식사가 되는 금태로 먼저 주고, 입가심을 한 뒤에 마지막에 마소면으로 끝내는 것이 그의 구성이자 구상이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가진 바를 최대한 강하게 보여줘야 하는 경합인 만큼, 임팩트를 먼저 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식사 순서가 강한 것부터 이뤄지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뒤의 음식들이 묻히는 효과를 주고 만 것 같았다. 안성재 심사위원은 순서에 대한 의문을 표하며 보류를 주었다. 뒤이어 찾아온 백종원 심사위원 또한 왜 처음부터 기름진 것으로 시작하는지 물어보았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결과에 대해서는 여기 쓰지 않겠으나, 그의 첫 심사 결과가 보류인 것은 결코 맛 때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보며 나는 밴드 공연 전에 친구들과 고민하던 시간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여섯 곡인데, 순서를 어떻게 하지? 첫 곡은 무조건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멤버의 공통된 의견이었으나, 디테일한 순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첫 곡부터 세 번째 곡까지 빠르고 빵빵 터지는 곡이 이어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누군가 아니다, 그럼 여섯 번째 곡이 나올 때쯤엔 너무 축축 처지게 된다, 강한 곡들 사이에 미디엄 템포나 발라드를 넣어서 완급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는 얘기를 꺼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눴지만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지. 다 해보자! 우리는 여섯 곡으로 배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 안에서 합주하고, 또 합주했다. 그러다 공연 직전에야 중간중간에 완급 조절하는 곡들을 배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공연은 무사히 잘 끝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순서가 정답이었는지 모른다. 더 나은 순서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묘한 씁쓸함만 입속을 맴돌 뿐이다. 순서에 옳음과 그름이 있진 않겠으나 순서와 배치에 따라 이미 있는 것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는 있을 테니까. 결과와 무관하게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모든 요리사를 응원하고 있다. 새롭게 명명되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신비롭고 멋지다.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화면 너머의 요리를 맛본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 또한 나의 하루를 책임지는 요리사로서 허투루 ‘플레이팅’하지 않겠다 마음먹게 된다.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과정이 결과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다만 나의 최선이 중요한 것이므로. /구현우(시인)

2026-01-07

리듬을 찾아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일시 정지 해두었던 노래를 다시금 튼다. 곧이어 새해를 알리는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새해 복’ 노래가 방 안에 울려 펴진다. 밝고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앉아 A4용지를 반으로 나누어 선을 긋는다. 왼쪽 칸엔 2025년도에 이룬 일들, 오른쪽 칸엔 2026년도에 이룰 일을 하나씩 적는다. 작년보다 더 목표는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써내려간다. 종이 위 활자를 손으로 쓸어 보며 인간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이러한 물음에 디즈니 애니메이션 ‘소울’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는 답을 던져 준다. ‘소울’ 속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꿈을 이루려는 순간 사고로 죽게 되어 영혼의 세계로 가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선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구역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의 존재인 ‘22’번을 만나게 된다. 태어나기 전 세상 구역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영혼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자신의 멘토에게 성격과 기질, 흥미를 배우고 마지막으로 스파크를 채우게 되면 비로소 지구로 향해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멘토는 조 가드너가 맡게 되고 22번의 스파크를 발견해야 하는 일종의 강제 임무를 맡게 된다. 22번은 수 천 년 동안 영혼의 세계를 방황하며 지구에 가는 것을 거부한다. 지구로 향하기 위해선 ‘스파크’를 발견해 내야만 했는데, 어떠한 재능이나 목적이 있어야 스파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2번은 자신에게 재능과 특별한 목적이 없음을 깨닫고 아주 오랜기간 태어나길 거부하며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기 불신에 갇히고 만다. 동시에 그의 멘토인 주인공 ‘조 가드너’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표 하나로 22번에게 상처주고 소외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구로 향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무대에 서게 된다. 결국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순간, 그는 일순간 허탈감에 빠진다. 그가 사랑하는 재즈는 인생의 정답이자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이라 믿었건만, 생각 외로 그가 이룬 꿈은 자신의 생각만큼 대단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가슴이 뛰질 않았기 때문이다. 삶은 때때로 인간의 발버둥을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보듯,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게 한 뒤 예상치 못한 텅 빈 공허함을 건넬 때가 있다. 그간의 노력을 보상 받는 듯한 기쁨과 보람은 아주 찰나일 뿐, 해냈다는 안도와 동시에 그 다음을 생각하게 한다. 벌거벗긴 채로 내쫓긴 아이처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누르며 ‘그래서 이젠 어쩌지?’ 묻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나아가다 보면 결국 길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정체성과 삶의 목표, 그것을 이루려는 꿈은 결코 단 하나로 귀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 가드너 역시 성공하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단 목적 하나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해온 것은 무대 위에서의 성공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순간, 뉴욕의 소음과 햇빛 그리고 가을 낙엽 같은 사소한 삶의 풍경들이었음을. 그렇게 자신이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게 될 때에 비로소 삶은 하나의 목적을 넘어, 살아갈 이유와 가치를 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2번은 스파크를 발견해서 지구로 향하게 될까? 그것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적진 않지만, ‘소울’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삶의 가치는 목적 달성에만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삶은 반드시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 명확한 꿈이 있어야만 살아갈 자격이 생기는 무대가 아닌, 그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감각과 순간들’을 누리며 하루하루 소중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임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눈길이 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 좋은 상태에 놓이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 다만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무던해진다면 좋음을 알아차리는 감각은 점점 무던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포착하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심심하고 건조한 삶일는지. 그렇다면 새해엔 닫힌 문을 두드리듯 조심스레 때로는 대담하게 내가 애정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완벽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나로서 살아가려는 감각을 찾을수록 나의 삶은 더욱 다채로운 리듬을 갖게 될 것이다. /윤여진(시인)

2026-01-07

감각 차단술의 함정

이상하게도 나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하고 반갑지도 않은 만남을 자주 겪는 편이었다. 대뜸 팔을 붙잡히거나,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을 마주치거나 사이비 종교인들이 순수한 의도인 척 설문조사를 부탁해 오거나 하는 유쾌하지 않은 만남의 연속. “그냥 무시하면 돼. 대꾸도 하지 말고 눈길도 주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최고야.” 한 친구는 해탈한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나는 그게 잘 안되던데, 내가 말하자 친구는 그것도 기술이야, 연습해야지, 대꾸했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나는 이상한 사람을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을 차단하는 나만의 기술을 연마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건 아니었다. 그저 정면에서 살짝 아래로 시선을 내리깐 채 그곳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구멍에 빠지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말을 걸어오는 낯선 목소리 따위가 아득히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 기술을 익힌 후로는 웬만한 사람들을 손쉽게 차단한 채 지나칠 수 있었다. 한 교육 업체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국가 지원 사업을 통해 온라인 강의를 개설하고 교육을 진행했는데, 중간에 낙오되는 수강생이 없도록 독려하여 강의를 무사히 마무리 짓도록 돕는 것이 나의 주 업무였다. 대부분의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사무실에는 교육팀 직원들뿐이었으나, 예외로 오프라인 강의가 한 번 개설된 적이 있었다. “거기 좀 이상한 사람 있어요.” 어느 날 직원 한 분이 조심스레 말했다. “왜요?” 다른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웬 남자분인데, 목소리도 엄청 크고 강사님한테도 막 시비를 건다네요. 생긴 것도 영…”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무실이 있던 건물은 보안이 좋은 편이었고, 각 층을 지키는 보안 직원들까지 있었다. 그냥 목소리가 좀 괄괄하고 경우 없는 사람인가 보다, 짧게 생각하곤 넘겼다. 마주칠 일 없는 이상한 남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당장 내게 닥친 업무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로부터 며칠 후, 사무실 근처를 서성거리는 검은 인영을 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며칠 전 들었던 ‘이상한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목소리가 크고 강사에게도 시비를 걸 정도로 경우 없는 사람. 생긴 것도 영… 그렇다는 사람. 사무실 앞을 기웃거리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통화하는 척 핸드폰을 볼 옆에 갖다 댔다. 어, 여보세요? 낯부끄러운 연기도 펼쳤다. 그러자 남자는 나를 따라오며 소리를 질러댔다. 깜짝 놀란 나는 감각 차단술을 펼쳤다. 그는 이젠 내게 “야! 야!”라고 소리치며 손을 있는 힘껏 흔들었다. 안 보인다, 안 보여.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피해 무사히 카드키를 찍은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문밖을 내다보니,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붙박인 듯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그 이상한 사람 봤어요, 내가 직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려던 찰나,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중얼거리며 나간 그녀를 막을 새도 없었다. 나는 엉덩이만 들썩이며 그녀가 무사히 사무실 안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몇 분쯤 지났을까, 홀가분한 얼굴을 한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옆자리 직원분이 물었다. “수강생인데 오늘 처음 오는 거라 강의실을 못 찾고 있었대요.” 나는 놀라 되물었다. “그런데 왜 소리를 지르셨대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짧게 대답했다. “청각장애인 분이시더라고요. 손에 노트를 들고 계셨는데, 그거 봐달라고 그러신 거였어요.” 아아, 다들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업무를 이어갔다. 익숙한 타자 소리와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소리를 질렀던 것은 길을 묻기 위함이었고, 손을 흔들며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손에 든 노트를 내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문밖을 조심스레 건너다보았다. 그림자 하나 없이 고요하고 텅 빈 바깥만 보였다. 감각 차단술은 나의 위안이자 보호막이자 안전장치였다.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곤란한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낯선 이에게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다양한 이유로 많은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중에는 정말 무시가 최선인 상황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도움이 간절한 사람도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차단한 것이 정말 ‘이상한 무언가’였는지, 아니면 그저 내 주위를 돌고 있던 세상 그 자체였는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양수빈(소설가)

2025-12-17

중립기어의 필요성

마피아게임이라는 놀이가 있다. 사회자가 참가 인원 중 몇 명을 마피아로 지목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 숨어든다. 선량한 시민들은 회의를 통해 의심 가는 사람을 마피아로 지목하고 투표로 그의 생사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피아를 모두 색출해내면 선량한 시민이 승리하고, 마피아는 잡지 못한 채 선량한 시민만 죽이다 보면 마피아가 승리하는 놀이다. 이 놀이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선량한 시민들이 누군가를 마피아로 지목하면 투표 이전에 최후의 변론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지목된 사람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선량한 시민임을 주장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선량한 시민들의 판단은 반드시 그 변론이 끝난 뒤에 이루어진다. 선량한 시민이 선량한 시민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행여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억울함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 지목된 사람의 주장 또한 귀 기울여 듣는 것. 시민의 선량함은 거기서 나온다. 한 해가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학교폭력, 갑질, 연애스캔들 등등 다양한 이유로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매체들은 보통 톱스타 A씨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거나, 그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그것이 모두 사실인지, 아니면 일부만 사실이거나 아예 사실무근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된다. 그러나 일단 그런 기사가 올라오면 당사자는 대중들의 강력한 비난과 질타를 마주해야 한다. 많은 대중들이 그러한 기사 속 의혹과 제보, 주장 같은 것들을 빠르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물론 정말로 그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기는 하다. 그러나 때로는 최초의 의혹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왜곡된 것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사실을 바로 잡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작성되더라도 의혹을 제기했던 그 기사에 비하면 훨씬 주목을 덜 받게 되곤 한다. 당사자의 억울함이나 손해는 끝내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대중은 다소 섣부르게 의혹과 주장을 받아들이고 비난부터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향해 비난의 스탠스를 취하고 그러한 의도를 담아 댓글 하나 달고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이 별로 심각한 것이라고 인지하지 않는 탓이 있을 것이다. 내가 쓴 몇 마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질 리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하나가 다른 비난을 부르고 또 그것이 다른 비난을 불러 결국 당사자는 눈덩이처럼 커다란 비난을 마주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 탓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글을 다시 게시하거나 자신이 던진 비난의 화살을 거두어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비난은 그대로 거기 남아있게 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는 우리가 누군가가 스캔들에 휘말리고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며 묘한 쾌감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것이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떤 유명인이나, 심지어 별 관심도 없었던 누군가가 그렇게 되는 과정을 보며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던 적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한 경험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사실이기를 바라게 만들고, 또 끝내 그것이 사실이라 믿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끔 요즘 언어로 ‘일단 중립기어 박는다’는 댓글을 마주하면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 말은 아직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중립의 태도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득달같이 달라들어 재빠르게 비난의 화살을 쏘지 않아도 언론이 움직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것이다. 법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면 그 결론을 기다린 뒤에 나의 의견을 정리해도 늦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그 중에는 당연히 당사자의 이야기도 포함된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아니면 억울함을 호소하는지 들어보고 그 이야기의 신빙성을 따져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마피아게임 같은 걸 할 때도 최후의 변론을 할 기회를 주는데,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면 그 정도 시간은 할애할 수 있지 않을까. 죄 지은 모든 이들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기를 바란다.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비난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적절한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억울한 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수천 명의 죄를 밝혀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이기에. /강백수(시인)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