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운 곳에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공통적으로 모두가 나의 이력을 신기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우선 전국에 몇 없는 문예창작학과를 대학에서 전공했다는 점도 그렇고, 특히나 시를 중심으로 4년간 공부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신기한 듯 했다. 그러다 누군가 시를 아직도 쓰냐는 질문을 했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게, 무언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를 쓰는가? 집에 돌아가는 내내 나는 물음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간혹 무언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기도 하고 일기도 매일 쓰곤 하지만, 그건 시의 형태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무엇이지? 내가 쓰는 게 시가 아니라면, 간혹 내 이름 앞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때의 나는 무엇이지? 생각하다 곤란해져버렸다. 급작스레 가까워졌던 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지인은 신춘문예를 어떻게 하면 등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다고, 아마 운이 아닐까요? 하는 나의 물음이 조금 성의없어 보였던 탓인지 그 사람은 그 이후 조금 심드렁해 보였다. 그러던 내게 급작스레 시인은 시집을 내야만 시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말을 건네왔고 나는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후 그 지인에게는 충분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이후의 나는 부끄럽게도, 신춘문예 등단 이력을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기한 이력은 나도 모르게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고, 눈을 반짝이며 나의 이력과 전공에 관한 질문을 들을수록 나는 더 미궁에 빠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물음 속에서 시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드러났으면 좋겠는 마음이 동시에 들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음은 물어보는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기 때문이고, 나는 시집 출판을 한 적 없기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척 과분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면, 나는 조금 괴로울 것 같다. 시인이 되고 싶어 애써왔던 시간이 있었고, 문학이라는 세계에 합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왜이렇게 탐탁치 않은 채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걸까.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한다. 그 이후의 시간은 대부분 쇼파와 한몸이 되어 불만이 많은 채로 뒹굴다 잠이 든다. 그리고 하루의 반복, 점점 탈출 할 수 없는 미로를 떠도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은 조금 과분한 걸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며칠 내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시인인지, 아닌지 두 가지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낯선 사람에게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통하는 부분이 많고 성격 또한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그때 내가 진지하게 했던 고민을 털어 놨다. 그 분은 골똘히 생각하다, 그냥 단순해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단순함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명쾌해졌다. 어디에나 무례한 사람은 있다. 무례한 말에는 인상을 쓰고, 너무 혼자 모든 일을 떠안지 않고, 타인의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너무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그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강박적인 피로에서 벗어나 본질만을 꿰뚫으면 된다. 본질은 언제나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함에 속해 있고, 단순해진다는 것은 불필요함을 제거하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숨함이 복잡함 보다 더 어렵다, 단순하게 만들려면 생각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불필요한 구성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만 제품이나 시스템에 진정한 영혼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함은 게으르거나 부주의하지 않다. 본질에 집중하여 하나를 정확히 꿰뚫는 것, 어쩌면 시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게 살다보면, 나 결국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