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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훌륭한 노인 되기

조금 불쾌한 일이 있었다. 프로듀싱 하고 있는 음원이 있어서 처음 가 보는 스튜디오에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사장님께 주차를 문의드렸고, 사장님은 건물 앞에 공간이 비어있다면 주차를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건물 앞에는 내 차가 겨우 들어갈 만 한 협소한 공간이 있었고 나는 여러 번 차를 왔다 갔다 하며 힘겹게 주차를 마쳤다. 그런데 내 차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노인은 다가와 짜증스럽게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왜 여기다가 차를 대, 차 빼(요).” 내가 ‘요’라는 글자를 괄호 안에 넣은 이유는 그 ‘요’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퉁명스러운 말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스튜디오 사장님이 여기 대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는 세입자고, 내가 건물주요. 빨리 차 빼(요).” 건물주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짜증났고 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명령조의 말도 짜증났는데 거기에 노인은 다시 왔다 갔다 하며 차를 빼고 있는 내게 혼잣말을 가장한 훈계와 재촉을 뱉어대고 있었다.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고 돌아와 여전히 거기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선생님께서 건물주건 하느님이건 내가 반말과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으니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내 뒤통수를 향해 노인은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 댔는데 굳이 귀기울여 듣지는 않았고, 해프닝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아마 그 노인은 내가 스튜디오를 떠난 뒤 스튜디오 사장님을 찾아가 내 이야기를 하며 버르장머리니 싹수니 하는 말을 꺼내며 욕을 해댔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장유유서’라는 말이 존재하고 연장자에 대한 공경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많은 연장자들이 공경을 복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공경이라 함은 존경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공손한 태도일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존경하기 힘든 언행 앞에서마저 깍듯이 대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공경이라는 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좀 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면 상대의 무례마저 너그러이 품어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은 되지 못한다. 내가 갖고 있는 아량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베풀 것들을 아끼고 아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처지이다. 하필 그런 내가 예의 없는 노인을 만났고, 노인 입장에서는 하필 간장종지 정도의 그릇을 가진 나를 만나는 바람에 서로가 그 날의 상당부분을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여러모로 못난 구석이 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먼저 와서 나보다 먼저 삶을 일구고 산 사람들을 공경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일군 세상이 비록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어쨌거나 그곳에서 내가 자랐고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 속에서 가르침을 얻으며 부족하게나마 성장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급적이면 앞선 세대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그런 마음들이 가치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태도를 받아내기가 비교적 쉬운 나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영웅이 되어야 하고 산업역군이 되어야 하며 거기다 고매한 인품과 현재의 훌륭한 사회적 지위까지 갖추어야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 나라에서는 아주 약간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 아니 그저 무례하지 않게 대하는 것 정도로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만 배웠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훌륭한 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배워본 적이 없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말은 있는데 착하고 건강하게 잘 늙으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대를 상향시키는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쨌거나 사회는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평균수명은 늘어나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아마 인생의 순간순간 좋은 인간인 상태를 유지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6-29

좋은 사람들

당신은 당신을 기꺼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흔한 수사적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것. 그것으로 충분할까? 더 적극적인 선의는 대체 무엇일까? 이렇듯 막상 좋은 사람의 기준을 정하려면 막막해진다. ‘좋음’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보려는 순간, 자신을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신은 머리에 뿔이 돋았거나 사악한 웃음을 짓는 만화 속 악당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혹은 등 뒤로 욕망을 감춘 음흉한 얼굴, 삐딱하게 구부러진 자세 같은 것들을 조합하며 어디서 본 듯한 악인의 상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매일 마주치는 동료 모습 속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는 날이 생긴다. 점심 메뉴를 독단적으로 정하는 직장 상사에게서 ‘사실은 이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재밌는 것은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일도 꽤 어렵다는 점이다. 타인을 선악의 기준에 두는 것보다 나 자신을 그 안에 놓는 것이 훨씬 더 껄끄럽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고 상황과 입장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서사와 당위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므로, 나 자신을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유보되고 만다. 미국 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는 이러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 ‘로드’는 문명이 붕괴한 세계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남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을 그린다. 실제로 매카시에게는 늦은 나이에 낳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아홉 살이던 해 그는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호텔 방에서 아이는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순간 그가 본 세계는 폐허였다. 치솟는 불길에 모든 것이 전소된 세상과 자신의 옆에서 잠든 아들. 소설 ‘로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내부에서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불’이다. 그들이 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추위와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불은 실제로도 생존의 수단이다. 동시에 이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는 남자의 말은 단순한 생존 의지를 넘어서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념에 가깝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약탈하며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을 마주할 때면 남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내 일은 널 지키는 거야. 하나님이 나한테 시킨 일이야. 너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죽일 거야.” 그러자 소년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러한 질문에 남자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사람들이야.” 소년에게 남자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증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소년은 계속 질문한다. 이유는 하나다.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다. 선함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끔찍한 소식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선언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하고 냉소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먹구름에 가려져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건 각자의 마음속에 남은 작은 불이다. 그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야. 그것은 불을 최초로 발견한 인간이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을지도 모를, 인류가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최후의 주문인지도 모른다. 분노와 단죄가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를 잠식하는 시대에 그 말은 더 이상 증명되지 않는 가치이며 동시에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은 기꺼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당신을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렵지만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 않은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안희연, ‘불이 있었다’)”라는 시인의 문장처럼. /문은강(소설가)

2025-06-29

어떤 탈선의 추억

대부분 낚시인들이 그렇듯 나도 아버지께 낚시를 배웠다. 아버지와의 낚시는 내 유년의 가장 큰 행복이었으나, 그것은 IMF 사태로 부서졌다. 사업 망한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는 행상이 되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뵙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낚시는 흘러간 추억이 되고 말았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문득 낚시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낚시터로 향했다. 책가방 대신 낚시 가방을 메고 교복 입은 학생들을 피해 터벅터벅 걸었다. 사당역에서 777번을 탔다. “학생이요”라고 안 하고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요금통에 넣었다. 수원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는 화성 봉담읍 해병대사령부까지 왔다. 도로변에는 애기똥풀이 가득 피어 있고, 화물차 매연 아지랑이 너머로 휴가 나가는 군인들이 신나 보였다. ‘화성’ 하면 사람들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내게는 ‘탈선의 추억’이 깃든 도시다. 아버지와 이따금 찾던 낚시터, 먼저 매점부터 들렀다. 혼자 왔느냐는 관리인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장료 만이천 원을 냈다. 돌아갈 차비 말고는 한 푼도 없었으므로 빵 한 개조차 살 수 없었다. 낚싯대를 부채꼴로 펼쳐 놓고 내 키만큼 찌를 맞춰 채비를 던졌다. 아버지께 배운 낚시 방법들을 몸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한 주 전 내린 장맛비 때문인지 수심이 깊어 찌가 자꾸만 가라앉았다. 찌고무를 30센티미터쯤 올리자 그제야 어느 정도 수심이 맞았다. 저 물에 빠지면 나도 머리끝까지 잠기겠지, 그러면 나도 세상도 다 사라질 텐데… 낭만적 우울은 그 나이 때 감기 같은 것이었다. 붉은 노을을 되비추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저 속에는 온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밥 먹던 저녁의 웃음소리가, 온갖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고 아버지가 있지는 않을까? 교복 대신 조숙한 쓸쓸함을 입고 찌를 바라보는 동안 산새 소리,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 트럭들이 지나가는 소리, 저쪽 저수지 건너에서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는 소리가 귓가에 글썽거리며 저녁이 왔다. 수면 위로 어둠이 내려앉자 야광찌 불빛들이 어릴 적 내 방 천장에 붙여놓았던 형광별 스티커처럼 반짝였다. 모기가 성가시게 굴어도, 이른 열대야가 목덜미에 땀을 흐르게 해도 그저 물과 하늘 사이의 허공만 바라보았다. 때때로 멍해질 때마다 찌가 올라오는 바람에, 붕어 몇 마리 놓치고는 씩씩, 욕이나 내뱉으면서 밤낚시는 깊어졌다. 옆자리에서 어른들 몇이 술판을 벌였다. 한 아저씨가 “이리 와서 소주 한 잔 해요”하며 손짓했다. 하루 종일 굶어 배가 고팠다. 가스버너에 올린 코펠 속에서 라면이 끓고 있고, 신문지 위에는 편육과 치킨이 펼쳐져 있었다. 맛있는 냄새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스무 살이에요” 거짓말을 하고는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종이컵에 소주를 받아 마셨다. 허겁지겁 라면을 집어 먹었다.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불콰하게 취해 자리로 돌아와 떡밥을 새로 갈아 던졌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캄캄한 물을 바라보니 입질은 없는데 야광찌 불이 춤을 췄다. 꼭 빠가사리나 메기가 찌를 끌고 난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나는 돌아갈 곳이 없는데, 만이천원짜리 결석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할까?’ 지쳐버린 내 그림자가 나를 붙잡고는 어디로도 못 가게 하는 밤이었다. 술을 마신 탓인지 가슴 속에 불덩이가 얹힌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스운 것은, 밤 깊은 저수지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소주에 취해서는 한숨 푹푹 쉬며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른 일이다. 나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는 것을 딱 한 번 봤는데, 내가 어릴 때 할머니 환갑잔치에서 아버지가 부른 노래가 ‘울고 넘는 박달재’다.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치고 싶었던 질풍노도의 밤, 그러지 못하고 나지막이 노래를 중얼거린 것은 “밤낚시 할 때는 절대 조용해야 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잠깐 졸았더니 아침이었다. 나는 지금도 낚시를 할 때면 ‘울고 넘는 박달재’를 흥얼거리곤 한다. /이병철(시인)

2025-06-15

러브 이즈 본

초여름으로 향해 가는 계절,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주 미약한 우울감을 함께 느끼는데, 그럴 때엔 초록으로 물든 강변을 약간의 땀이 날 때 까지 빠르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얇고 부드러운 여름 잠옷으로 환복을 한 뒤, 냉장고 앞에 선다. 오늘을 위해 약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과 마트 직원의 추천을 받은 프랑스산 치즈를 사왔기 때문. 주황빛으로 저무는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선 자연풍을 맞으며 와인을 따면 묵은 고민이 씻겨가듯 기분이 나아진다. 치즈와 햄도 먹기 좋게 그릇에 놓은 뒤 계절이 바뀔 때에 생각 나는 영화, <스타이즈본>을 튼다. 외모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 엘리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만, 노래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낮에는 식당 주방에 일하고 밤엔 공연을 하던 와중, 우연히 톱스타 잭슨 메인을 만난다. 남주인공 잭슨 메인은 당시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알린 유명 가수이지만, 어쩐지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길거리를 방황한다. 그런 잭슨은 앨리가 일하는 바에서 우연히 방문하고, 앨리를 만나 점차 사랑이 깊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동시에 앨리는 잭슨을 만나면서 유명한 가수로 데뷔하여 점차 성공하지만 오히려 앨리와는 반대로 잭슨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예술가적 고뇌 속에서 점차 병들어 가며, 영화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타이즈본>은 국내에서 2018년 10월쯤 개봉했으며, 나는 그때 실연에 대한 고뇌로 하루하루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때였다. 사랑은 대체 언제 돌보아야 하는지, 돌봄과 동시에 어느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크기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몰랐고, 그 정답을 알고 싶었기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하지만 점차 외로운 의문 속에 빠졌고, 그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날도 무작정 걷다 영화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우연히 스타이즈본을 관람하게 되었다. 목이 탄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해진 채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사랑과 동반되는 온갖 상처와 허무함, 조급함과 괴로움, 상대보다 내가 더 우선시되는 알량함과 이기적임 같은 수많은 감정을 모조리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결국 상황이 최악으로 악화된다. 잭슨의 추모 현장에서 앨리는 잭슨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결국 이야기를 끝내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쩐지 눈물이 났다. 허탈감이 몸을 감싸며, 결국 사랑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 소진될 때 까지 가쁘게 걸었던 그날의 기억이, 실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랑은 연인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다. 미련과 집착에서부터 멀리 벗어날 지라도, 이따금 한 번씩 수면 아래서 떠오른다. 멍하니 누워 있을 때, 소란스럽던 공간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적막에 잠길 때, 무언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에 종종 그 시기의 내가 생각난다. 지난 인연과 시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아니다. 처음 겪었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맞았던 그 때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스타 이즈 본>은 사랑 이야기다. 앨리와 잭슨은 비록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앨리는 영화의 막바지에서 잭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금 처음부터 보지만, 앨리는 이야기 끝 너머에서 잭슨을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끝은 계속해서 비참할 수 있지만 우린 늘 애써 노력한다. 애써 고민하고, 애써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애써 표현하고 존중한다. 그 애씀이 내게 더 많은 감정의 풍요를 가져다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며 결국 더 행복해지게 한다. 사랑이 죽어가는 만큼, 내게도 하루하루 수많은 사랑이 태어난다. 나날이 깊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동생과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편안함과 존경과 애정 같은 감정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하며 많은 것을 체화하고 있다. 동시에 이미 종지부를 내린 사랑들도 많이 생각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무언가 시작하기도 전에 저물었던 수많은 아쉬움의 형태들. 이따금 생각하며 사랑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므로 외려 감사하다. 어찌됐든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윤여진(시인)

2025-06-15

정면 돌파!

요즘 이상할 정도로 자주 중얼거린다. 정면 돌파! 마침표로 끝나선 안 된다. 느낌표까지 꼭 넣어야 제맛이다. 단호한 어조로 짧고 굵게, 주먹까지 쥐고 흔들어주면 훨씬 좋다. ‘정면’과 ‘돌파’를 연달아 발음하면 한층 더 씩씩해진 기분이 든다. 장애물을 격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태권 소녀의 앙다문 입술이 생각난달까. 물론 나는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발만 동동 구르는 쪽에 더 가깝지만. 뭐, 엄밀히 말하면 돌파해야만 하는 대단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답신이 껄끄러워 뒤로 미뤄놓았던 메일이나 옷장 한편에 수북하게 쌓인 옷가지처럼, 별일 아닌데 왠지 자꾸만 피하게 되는 일들. 은근히 마음의 짐이 되는 청구서며 세금 처리, 원고 마감까지… 물론 고작 이 정도를 앞에 두고 돌파를 운운하는 것이 퍽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나약한 인간의 조악한 외침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오늘도 외친다. 정면 돌파! 어쩌면 미루는 방식은 내가 가장 능숙하게 익힌 생존 기술일지도 모른다. ‘안 읽음’으로 표시된 채 쌓여가는 메시지, 몇 번이고 넘기며 무시하는 아침 알람, 내일의 내가 처리해 줄 것이라는 허울로 덮어둔 일들. 때때로 나를 마주하는 일은 거대한 벽을 넘는 것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간단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정면 돌파는 불편하다. 가끔은 낯 뜨겁기까지 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대 한가운데에 나 혼자 덜컥 올라선 장면처럼 느껴진다. 어설픈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만 하는 심정이랄까.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믿겠다는 선언인데 나는 나 자신을 누구보다 신뢰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고서 몸을 웅크리는 쪽이 훨씬 편하다. 아직 아니야. 더 완벽한 때가 올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조른 적이 있었다. 울고 떼쓰고 길거리에 드러눕기 신공까지 펼쳤건만, 끝내 등록은 하지 못했다. 아마 엄마는 태권도가 여자아이가 하기에 과격한 운동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나는 도복을 입고 놀이터를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질투와 시기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유년에 힘차게 뛰어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워. 술자리에서 푸념처럼 늘어놓던 말에 언젠가 한 친구가 너무나도 맑고 천진한 얼굴로 답을 내어놓았다. 지금부터라도 배우면 되잖아?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겐 어떤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작년 새해 목표에 태권도 학원 등록하기도 슬쩍 넣어두었다. 물론 미루고 미루다 해가 바뀌어 버렸지만. 이따금 녹슨 관절을 이끌고 스트레칭하며 변명한다.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이제 뼈도 잘 안 붙어. 암, 그렇고말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목소리는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 같다. 언제나 그럴듯한 도피처를 만들어낸다. 내가 뭔가를 피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면 육상경기 도중 허들이 무서워 되돌아서는 선수를 떠올려 본다. 연습이 부족해 허들을 넘지 못하는 것은 괜찮다. 경기 도중 허들을 피하는 것이 더 문제다. 그런 면에서 정면 돌파는 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회피하지 않겠다는 자세에 가깝다. 나는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측면을 노리거나 슬쩍 방향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가성비와 효율성을 따지는 세상에서 정면으로만 돌진하는 태도는 오히려 바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순간은 외면하면 얼굴을 바꿔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타협의 영역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세련된 기술이다. 나 자신을 덜 다치게 하고 타인을 더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 또한 이해한다.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며 나와 주변을 돌보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러나저러나 발은 한 번 디뎌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본다. 거기가 푹신한 잔디밭이든 낭떠러지든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주먹을 쥐고 외쳐보는 것이다. 그래,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 쉼표 뒤에는 느낌표. 느낌표 뒤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쁘지 않을 것이다. 부딪치고 깨지고 산산이 부서진 모양 또한 나름의 멋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에. /문은강(소설가)

2025-06-08

빠른 생일의 비애

나는 1987년 2월 18일에 태어났다. 2월 18일이라는 날짜를 생일로 갖는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몇 년이 흘러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취학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1일에 다 같이 한 살을 먹는 세는 나이를 흔히 사용하는데, 초등학교의 입학 대상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3월 1일부터 2월 29일까지를 한 학년으로 정의하는 3월 학기제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교육부는 학기의 시작인 3월 1일을 기준으로 만 6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취학통지서를 발송했다. 그러다보니 3월부터 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세는 나이로 8세에 학교에 입학을 하고, 1월부터 2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7세에 입학을 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2009년에 해소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쨌거나 1987년에 태어난 나는 1986년에 태어난 형, 누나들과 동창이 된 것이다. 내가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나로서도 1993년에 입학하는 것보다 1994년에 입학하는 편이 더 행복했을 것이 분명했다. 성인이 된 지금이야 몇 달 일찍 태어나고 늦게 태어나고 하는 문제가 신체적인 차이로 나타나지 않지만, 빠르게 성장할 시기인 만 6세 아이들에게 몇 달은 어마어마한 신체적 차이를 발생시키는 기간일 수 있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1993년 입학 어린이들 중 막내 축에 들에 되었다. 1986년 3월에 태어난 친구들과는 11개월이나 차이가 났으니 당연히 그들보다 키도 작고 머리도 덜 여물었을 터였다. 실제로 나는 지금 내 나이 대 남성의 평균 신장을 아주 조금 넘는 키를 가지고 있지만 초등학교때는 내내 스무 명 남짓한 남학생 중 키 순서로 3번에서 6번 사이를 왔다 갔다 했으니 상당히 왜소한 편이었다. 가장 늦게 태어난 아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키가 작다고 걱정할 이유는 없었는데 학교를 한 해 일찍 가는 바람에 키 걱정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선택할 수 있었다면 1994년에 입학해서 1987년 생 중 맏이 노릇을 하는 것이 학교생활에 있어 여러모로 유리했을 것이 분명하다. 어릴 때 겪었던 성장 속도의 문제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해결이 되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가끔씩 느끼곤 했었던 소외감이었다. 비록 한 살이 어리지만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동창들과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 나이 이야기가 나올 때 나만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을 꺼내 놓으면 누군가는 나더러 왜 자기한테 형이라고 부르지 않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입춘마저 지나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부여되는 12간지, 다시 말해 띠는 입춘을 기준으로 한다. 1987년 1,2월에 태어났더라도 입춘이었던 2월 4일 이전에 태어난 친구들은 1986년생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호랑이띠가 된다. 그러나 2월 중에서도 뒤쪽에 해당하는 18일에 태어난 나는 그 호랑이들 사이에서 홀로 토끼로 지내야만 했다. 하필 또 호랑이랑 토끼였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학교 다닐 때야 ‘몇 살이야?’보다 ‘몇 학년이야?’를 물어보니 문제가 적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위아래를 가리기 위해 꼭 ‘몇 년 생이십니까?’ 혹은 ‘몇 살이십니까?’를 묻게 되니 간혹 난감해진다. 2025년 현재 세는나이로 1986년생은 마흔 살이고 1987년생은 서른아홉 살이다. 사실대로 1987년생, 서른아홉 살이라고 하면 ‘기어이 삼십 대에 붙어 있으려고 한 살을 깎느냐’고 핀잔을 주는 이들과 굳이 나에게 형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1986년생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1986년생 마흔 살이라고 하면 나중에 내가 1987년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치사하게 나이를 속였다’며 파렴치한으로 몰리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족보가 꼬인다며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빠른 87년생입니다’고 하면 굳이 ‘빠른’을 챙겨먹으려고 한다고 비웃는 이가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는 내가 서른아홉이어도 상관없고 마흔 살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지 일관성 있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 가서는 서른아홉으로 살고 어디 가서는 마흔으로 사는 것은 내가 피곤해서 싫다. 차라리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 “당신은 1987년생이니 이제부터 1986년생을 만나거든 형님, 누님으로 대하세요.”, 혹은 “당신은 오늘부터 1986년생과 다름없이 마흔 살로 살아야 합니다.” 하고 말이다. /강백수(시인)

2025-06-08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했다/ 먼 옛날 먼 바다에 누가 빠져죽을 때 태어난 파도가/ 그제야 발치에 닿기 시작했다// 너는 뭐라 말을 하는데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했다/ 서로 등을 돌린 채 잠이 들었던 밤에/ 진작에 닿았어야 했을 말들은 여정을 떠났다// 숨막힐듯 느리고 낮게 말이 기어오는 동안/ 등과 등의 간격은 은근하게 멀어지고/ 그 사이로 낯선 바람이 불었다// (중략) 한참을 멍하다가 한 시절이 지나다가/ 그제야 나는 문득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각 먼 바다에는 또 누가 빠져 죽고/ 어느 별은 유서를 쓰고 있었다” -(강백수, ‘레이턴시’, 시집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문학수첩, 2020) 레이턴시(latency)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생기기까지의 시간, 흔히 ‘지연속도’라고 일컬어지는 통신용어다. 주로 음향 녹음 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 실제 소리의 발화보다 녹음이 늦게 되거나 영상 송출 과정에서 비디오 화면과 음향 싱크가 맞지 않는 것을 레이턴시라고 한다. 시인인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인 강백수에게 레이턴시는 무척 익숙한 현상일 테다. 위 시에서 시인은 레이턴시를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라는 천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사실 수억 광년 전에 소멸한 별들의 잔상이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빛나는 현재적 광채 같이 보여도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빛일 뿐이다.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에 빛이 은하계에서 지구까지 아득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는 영원처럼 캄캄한 레이턴시가 늘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세계의 물상들에도 레이턴시가 작용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은 과거의 모습이다. 가까이 있는 물상의 경우 레이턴시의 시차가 매우 짧을 뿐이다. 다시,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에 불과하다. 현재를 구성하는 불행의 요소들, 지금, 여기에 작용하는 온갖 불평등과 부조리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기성의 관습일 뿐이다. 강백수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해요.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의 절망은 곧 사라질 허깨비라고, 그러니 쫄지 마, 주눅 들지 마, 위의 시가 수록된 시집 제목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하”자고!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 미티는 일상을 벗어나는 어떤 모험도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LIFE’ 잡지사의 사진인화기사로 일하는 그는 표지 사진으로 쓰일 필름이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필름을 찾으러 그린란드로 날아간다. 그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애 가장 특별한 모험에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세상은 그런 그의 순정한 노력과 열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이미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곧 회사에서 쫓겨날 월터가 출장 가방을 들고 달려가는 동안 영화는 라이프지 과년호들, 공항 전광판 문구와 활주로 표지 등을 통해 인상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대선이 열리는 초여름에 이 시를 다시 읽는다.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따르라고 굴종을 강요하면서, 후속 세대가 정형화된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면 바로 길을 폐쇄해버리는 기성세대의 지독한 탐욕으로 인해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계층의 양극화와 청년 세대의 절망이 극에 달한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다. 제 자식에겐 아프지 말라고 하면서 남의 자식에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자들의 천 마디 ‘명언’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쓰러지고 소리 내어 울며, 그럼에도 일어나서 바보처럼 웃고 키스하고 다시 노래하는 시인의 시야말로 격의 없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우리와 무관한 어제로부터 비롯된 오늘의 우울과 학습된 패배감에 함몰되는 대신 너와 나, 우리,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면서 키스를 하자고, 주어진 순간들을 그저 살아내자고,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병철(시인)

2025-06-01

적당한 크기의 사랑

최근 물고기를 키우게 됐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영상을 보게 되었고, 점점 영상 속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언젠가 물고기를 키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 근처에서 물고기를 파는 가게를 발견하였고, 나는 그곳에 입장하자마자 홀린 듯이 암수 한 쌍의 구피 두 마리를 구입하게 됐다. 초보자들이 가장 키우기 쉽다는 알비노 구피는 암컷 약 6cm, 수컷 약 3cm로 가늘고 긴 몸통을 가졌다. 수컷은 몸통이 화려한 푸른색을 띠고 있고, 암컷은 수컷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밝은 개나리 색을 띠고 있어 구분이 쉽고, 관상용으로도 훌륭하다. 처음엔 단순히 물고기 두 마리와 어항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단 두 마리를 키울 뿐인데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물고기들이 지낼 충분한 넓이와 높이의 어항, 자동 히터기, 온도계, 여과기, 수질 정화제, 필터, 조명 등이 꼭 필요했고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어항을 놓은 공간은 물고기 들을 위한 용품으로 가득 마련되어 있었다. 이 작은 존재들은 참 신기하다. 25cm 남짓한 작은 크기의 어항이 자신들이 살던 바닷속으로 생각하며 유유자적 헤엄친다. 열대어이기 때문에 온도는 늘 26도로 맞춰주어야 하고 적당한 빛의 세기와 필요한 만큼의 산소도 챙겨주어야 한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더니 어느덧 암컷의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다. 수컷의 배지느러미를 통해 교미를 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단 한 번의 교미 만으로도 암컷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다. 한 달에 한 번씩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굉장히 강하지만, 현재 어항 속 남아있는 새끼들은 다섯 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자신이 낳은 새끼를 몰라보고 먹이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새끼를 모조리 먹어 치우기에, 애써 작은 치어통에 치어들을 분리해 놓아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물고기들을 보살피다 보며 어느덧 작은 어항 속 세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확장되어 있다. 두 마리의 구피와 한 인간이 이룬 어항 속 세계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인간처럼 눈을 깜빡이지 않고도 하루 온종일 까만 눈을 부릅 뜬채로 헤엄치는데, 그 모습이 기이하면서도 무언가 평화로운 마음이 들게끔 한다. 밥은 하루에 한 번, 출근 전에 전용 스쿱으로 작게 한 스푼을 떠서 수면 위로 뿌린다. 밥이 수면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면 기다렸다는 듯 주둥이를 빠르게 휘저으며 밥을 먹는다. 수면 위의 먹이가 어항 아래 깔아둔 투명한 돌 조각 사이사이에 가라앉게 되면, 물고기들은 돌 속을 파고들며 남은 먹이를 찾기 시작한다. 온 몸을 사용해서 먹이를 먹는 동안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의 돌덩어리가 들썩이고, 저런 작은 몸집을 가진 생명체가 아주 바쁘게 움직일 수 있단 사실에 감탄하며 출근을 잊을 정도로 멍하니 보게 된다. 먹이를 주는 날을 까먹었다거나 집을 며칠 비울 때면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매시간 구피들이 사는 물을 들여다보고, 온도계를 체크하고, 먹이를 조절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도는 26도로 잘 맞춰져 있는지, 먹이는 손톱의 흰 반달부분 만큼만, 아주 작은 크기의 치어들을 잡아먹지 않았는지 체크한다. 그렇게 익숙히 사랑을 돌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비슷한 사랑의 크기를 주는 것, 너무 과하면 상대가 괴로워하고, 너무 부족하다면 미동도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드는 무력감을 보여주는 작은 물고기들처럼. 이유를 알 수 없어 사랑이 괴롭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이 덥거나 추운건지, 공기가 나쁜 건지, 또는 괜찮은 건지, 배가 부른 건지, 고픈 건지도 모르게 그저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탈이 나곤 했던 날들이. 마음 속 돌멩이를 들추는 수많은 밤들 사이에서 나는 잠 못드는 아이처럼 난처하게 울먹였지만 이젠 적당한 크기의 사랑을 잊지 않고 주어야 하는 때를 안다. 몇 종의 물고기가 어항을 떠났고, 또 새로운 생물들이 채워지고 있다. 적당한 정도의 관심과 사랑. 어렵지만 나날이 배우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6-01

자동차 키 실종 사건

이것은 지난주에 벌어진 사건이다. 비공식 사건기록, 일명 ‘차 키 실종 사건’. 출근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자동차 키를 찾아 거실을 헤매는 중이었다. 차 키를 책상 위에 올려둔 사실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다. 위증할 이유도 없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어다니는 모습은 흡사 나의 반려견 보리의 포즈와 비슷했다. 고개를 숙이고 코끝을 들이밀며 테이블 밑, 가방 안, 옷더미 속을 거의 킁킁대다시피 하며 뒤지던 찰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네 짓이야?” 나는 기억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보리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러나 보리의 눈빛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무고한 존재라는 걸 기억하라!’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함을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존재론적 혼란에 가깝다. 그 순간 나는 차 키도, 존엄도 잃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차 키는 이불 밑에서 발견되었다. 도대체 왜 거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쿨쿨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차 키를 손에 쥐고 다시 누운 것도 아닐 텐데.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바로 인간이라는 종의 불가사의인 것이다. 비단 차 키만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꽤 중요한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해야 할 일을 깜빡하고, 약속을 놓치고, 심지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어째서 그러한 말을 했는지조차 잊는다. 기억은 언제나 정교하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 기억을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 건 사실상 착각에 가깝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 안에는 기억을 지우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이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분명 열심히 들었던 내용이 하루만 지나도 흐릿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4시간 이내에 학습한 정보의 70%가 사라진다는 망각 곡선은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지워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그러니 ‘내 머리는 왜 이리 좋지 않은가?’ 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뇌가 만든 아주 정교한 생존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찾는 행위나,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외출하는 일, 눈앞의 사람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민망한 웃음으로 위기를 넘기는 순간 같은 행위를 뇌의 합리적 메커니즘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종종 엉뚱한 일을 벌이는 우리 뇌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삶의 허점을 덮는 건 어쩐지 위험해 보인다. 마치 사고를 쳐도 당당한 사춘기 자녀를 보는 기분. 형편없는 시험 성적을 보고서 “왜 열심히 암기하지 않았느냐”고 혼내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쏘아붙이는 것이다. “이건 제 문제가 아닙니다. 저의 뇌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라고요.” 문제는 이러한 영역이 아니다. ‘실종 사건’의 본질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잦다.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놓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어떤 마음들. 그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한탄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허술하게 다루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주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 존재는 기억을 기록하고 감정을 박제하기 위해 애쓴다.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문장을 쓰는 일도 분투의 과정 중 하나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고민하는 나를 보고 보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손에 쥐지 못할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군. 참으로 안타까운 존재로다….’ 그렇다. 이토록 애처로운 노력 덕분에 우리는 사라지는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더 붙잡을 수 있고 흐릿한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차 키를 아무 곳에나 두는 나의 뇌를 더는 탓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이것은 정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보리의 은밀한 소행일지도 모르니. 내가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은 건 녀석의 쫑긋거리는 귀와 움찔대는 작은 콧구멍,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 같은 것. 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아는 것보다 이 장면을 자주 떠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것이 바로 차 키 실종 사건을 해결하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문은강(소설가)

2025-05-25

통통족의 패션, 그리고 스페셜리스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아주 신경 써서 옷을 입는 편이라는 사실. 실제로 옷을 잘 입거나 못 입거나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내 딴에는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뚱뚱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옷 태가 안 나서 그렇지,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여서 그렇지, 나름 옷을 구입하는 과정부터 매칭 하는 과정까지 허투루 하지 않는 편이다. 이십대 때는 패션 매거진도 정기구독해서 꼬박꼬박 챙겨 봤고, 요즘도 여러 쇼핑몰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을 살피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내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패션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채널들은 모델 같은 핏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적어도 표준 정도의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기에 다소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들에게 어울리는 옷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저들이 추천하는 브랜드에 내 사이즈가 없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도 그 중에 나 같은 체형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나마 유용한 채널이 종종 있기는 한데, 그 중에 하나가 어느 배우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통통한 체구를 가진 그는 우리 같은 체형을 가진 이들을 ‘통통족’이라고 칭하며 우리에게 유용한 패션 정보를 제공한다. 얼마 전, 그 채널의 콘텐츠들을 탐독하다가 재미난 기획 하나를 발견했다. 통통하거나 그 이상의 체형을 가진 패셔니스타 두 명을 초대하여 세 남자가 자신들의 패션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획이었다. 내용 중에는 다른 유튜버들이 통통족 남성들에게 패션 지식을 설파하는 콘텐츠들에 대해 실제 통통족들이 의견을 내는 코너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재미난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되었다. 많은 패션 유튜버들이 통통족들을 위한 패션 조언을 할 때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바로 ‘뚱뚱하지 않게 보이기’였다. 이를테면 몸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두운 컬러를 선택한다거나, 세로로 된 줄무늬 옷을 입는다거나, 셔츠의 윗 단추를 몇 개 풀어 목을 길어보이게 하는 것 등. 그런데 이들은 여기에 대해 다른 의견들을 냈다. 꼭 뚱뚱하지 않게 보이는 것만이 멋이 아니라는 것이다. 뚱뚱해 보이건 말건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고, 예쁘지 않으면 세로 줄무늬 옷을 기피하기도 하고,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워 단정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뚱뚱하지 않게 보이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예쁜 옷을 예쁘게 입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안 뚱뚱하면 좋겠지만, 당장 뚱뚱한 것을 어쩌겠나.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해서 예쁜 옷을 입지 못하고 칙칙하고 일관된 것들만 선택해야 한다면 센스 있는 패션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차라리 자신의 단점은 시원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장점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옷을 입는 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빠른 발이 장점인 축구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대신 그는 몸싸움이 약하다. 그래서 체중을 비약적으로 불려서 보통 수준의 몸싸움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빨랐던 발 역시 보통 수준이 된다면 감독이 그를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필요한 만큼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더불어 자신의 빠른 발을 살려 단점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닐까? 반대로 홈런을 펑펑 때리는 거대한 체구의 야구선수가 있다. 그는 발이 느려서 도루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그가 체중을 확 줄이고 리그 평균 수준의 주력을 갖게 된다면? 홈런을 때리던 그 힘을 잃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지만 특출난 점도 없는 선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과연 긍정적인 일일까? 한 때 모두에게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갖춘 제네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페셜리스트도 필요한 시대이다. 부족한 점은 또 새로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극복하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물론 단점도 극복하고 장점도 개발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중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무엇을 앞세워야 할 것인가? 나는 당연히 장점을 개발하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해서 다른 장점들을 챙기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강백수(시인)

2025-05-25

광주라는 ‘지금 시간’

어느덧 다시 오월이다. 1980년 오월에 일어난 일을 누구도 말할 수 없던 시절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이성복, ‘그날’)던 무통의 기억을 날카롭게 갈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아픈 숨골을 쑤셔댄다. 입이 있지만 침묵함으로써 혀를 썩혔던 죄의식을 기형도는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은유했다. 며칠 전 포항 ‘책방 수북’에서 열린 장석남 시인의 북토크에서 시인은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 오월 광주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운 공포의 기록이라 말했다. “찌르레기 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던 시인에게 오월은 여전히 “유골함을 받아 안듯 오는, 봄”(장석남, ‘서울, 2023 봄’)이다. 문학은 오래전 그 일에 관하여 스스로를 ‘입 속의 검은 잎’이라 정죄했지만 그래도 문학만큼 진실된 목소리도 없다. 지금까지 문학은 왜곡된 기록을 생생한 기억으로 바꾸고 또 개인들의 기억을 공동체적 기록으로 바꾸면서 바늘의 역할을 해왔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은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는데, 간병인은 3분마다 한 번씩 주삿바늘로 수술 부위를 찌른다. 그래야만 신경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통각이 진실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가 4.3을, 5.18을,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문학은 계속 바늘이 돼야 한다. 4.3과 보도연맹학살사건, 그리고 5.18 등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재현하는 한강의 소설 작업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목젖과 옆구리가 총검에 절개되고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시신의 묘사는 끔찍하지만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입힌다. 그리고 그때 단순히 ‘기록’된 과거로서 문헌과 통계와 명단에만 박제돼 있던 ‘기억’이 비로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감각에 생동하기 시작한다. 한강의 문학은 망각이라는 두터운 무덤 아래서부터 진실을 끌어올려, 겉땅에 오른 그가 비와 바람과 햇살로 흙에 파묻힌 얼굴을 씻고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에게 역사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 사라지는 장면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강렬한 의미로 멈춘 정지화면들의 연속이다. 그 정지화면이 바로 ‘지금 시간(Jetztzeit)’이다. 스크린에 상영되던 영화가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화면 속 인물의 표정과 빛의 질감과 배경의 아주 작은 소품까지 모든 게 더 생생히, 자세히,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때 영화에는 이전과 다른 의미가 나타나게 된다. 영화처럼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어느 특정한 순간이 새로운 의미를 갖고 멈추었으나 생동하며 우리에게 온다. 교과서에서 무심히 보고 넘겼던 4.3과 5.18을 소설로 읽고 나니 1948년과 1980년에 죽어간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지금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흘러간 역사를 다시 보게 하고, 오늘에 어제를 겹쳐 새롭게 살게 하는 신비한 시간 체험이다. 한 온라인쇼핑몰에서 전두환의 얼굴과 “THE SOUTH FACE”라는 영어 문구가 프린팅된 가방을 판매해 논란이 됐다. 5.18 기념재단의 항의로 판매가 중단됐는데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는 “지겹다”, “시체 팔이 그만해라”라는 비아냥과 함께 전두환을 칭송하거나 광주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 걸 만들어 파는 이와 그걸 옹호하며 학살자를 찬양하는 이들이 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역겹다. 악은 평범해서 언제 어디에나 악마가 널려 있다. 지난 수십 년 그러했듯 악마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신나게 왜곡하고 은폐하고 조롱하며 낄낄대겠지만, 상관없다. 그 악마들이 무의미한 생을 멍청하고 한심하게 흘려보낼 동안 문학을 읽는 젊은 독자들은 글자 하나 하나를 바늘 삼아 스스로를 찌르면서 ‘지금 시간’을 체험하는, 깨어 있는 의식이자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지난주 수업에서 학생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독후감을 발표하고 듣는 서로가 서로의 바늘이 되었다. 한 학생이 외쳤다. “어떻게 그런 가방을 만들어 팔 수가 있어요?”라고. ‘소년이 온다’에서 도청 앞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는 것에 분노하며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항의전화를 건 ‘은숙’처럼. /이병철(시인)

2025-05-18

저녁 퇴근길에 생각한 것

요즘 회사를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는 대신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다. 이직하면서 회사가 집 근처로 아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집과 회사 사이에는 도림천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높은 건물 없이 푸르른 하늘이 잘 보이고, 나무나 풀이 많아서 초여름의 연두를 눈에 실컷 담을 수 있어 좋다. 하루 온종일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보면서 업무를 하나씩 해치우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에 갇혀 있었다면 자연 속에서 걸을 때는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무념무상 상태로 걸을 수 있다. 왼쪽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지면에 내딛으며 발바닥의 감각, 힘이 들어가는 발목과 허벅지, 허리와 배에 중심을 잘 잡고선 걷는 명상에 빠져 들다보면 하루에 시달렸던 온갖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자유롭게 삼십여분 정도를 걸으면 익숙한 동네가 나온다. 대학교를 졸업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서울로 상경했을 때부터 쭉 살고 있는 작은 동네, 이곳의 초입부터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불필요한 힘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날이 좋은 날이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쉬워서 근처를 배회한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 아이 유모차를 끌다 꽃을 따는 내 또래의 젊은 여자를 본다. 그 광경이 너무나 평화로워서 어느 꿈결 속에 앉아 있는 듯 하고, 나는 실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든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이 극에 다다를 때쯤 기다렸다는 듯이 잡념이 따라온다. 하루 중 상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 말을 들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건 왜 그랬던 것인지, 업무를 내가 잘해내고 있는 건지, 실수가 있었다면 그 실수를 왜 했던 것인지 차례대로 온갖 생각이 따라 붙어 생각에 빠져 들기 바쁘다. 대체로 유쾌하지 않은 불편한 생각들이고 나는 또 울상이 되어 또 피곤해진 채로 어깨를 한껏 안쪽으로 말게 된다. 그럴수록 사람은 왜 현재의 행복에 안주하지 못하는지 생각한다. 동시에 행복이란 무엇인지도. 이토록 평화롭다가도 왜 불행의 편에 고개를 향하는지. 단순한 일도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 생각하는 나의 피곤한 성격 때문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휙휙 젓다가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은 다시금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편에 서서 마음을 앞서 걱정 한다기보단.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것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집에 돌아가는 집이 있다는 것, 이사간 집은 하루 온종일 햇빛이 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해의 밝기와 세기를 누려볼 수 있다는 것, 동생과 함께 건강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은 지 한 달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도와주는 선생님이 있고, 나는 전보다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의 방향과 힘이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정도라는 점과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큰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가 아주 어릴 적 번개가 심하게 치던 날에, 창문 가까이 위태롭게 앉아 있던 어린 나를 엄마는 발견했다고 한다. 잠시 화장실을 갔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어린 나는 창문가에 붙어 있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발견하고선 황급히 낚아채어 거실 한가운데서 품에 안고 한참을 있었다고 했다. 어린 너는 참 겁도 없었다면서 나를 나무라는 엄마는 지금도 아주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낸다. 실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렸고 그 이야기를 엄마의 입에서만 들은 것뿐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어떤 확신을 느꼈다. 이따금씩 자꾸만 삶에 혼자 있는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 그 품과 손아귀의 힘을 기억할 것이라고.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면 목에 커다란 체리 씨앗이 걸린 듯이 막막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나는 이런 나의 연약함이 정말 싫었지만 이젠 이것을 말할 수 있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이젠 안도한다. 사랑은 멀지 않고 이렇게 내 몸 속에 있다. 생각만 해도 느낄 수 있고 걸을 땐 자연스레 떠올리고 그럴 땐 주체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상대가 있다. 전화를 끊고선 내 곁에 이루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다시 씩씩한 모습을 한 나를 꺼낼 수 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루하루를, 일년을, 몇 년을 살다보면 나는 좀 더 사랑의 언어를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5-18

수염 기를 권리, 수염 안 기를 권리

나는 수염을 기른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어느 정도 길어지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니 정확히 말하면 마냥 기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완전히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0년에 나온 EP의 커버에는 수염이 없고 2013년에 나온 1집 앨범의 커버에는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이 있으니 그 사이 언제쯤부터 십 년 넘는 세월동안 수염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수염을 민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 쯤은 수염을 다듬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염을 밀어야 했고, 어느 기간 동안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수염을 밀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뵙던 날도 수염을 밀었다. 그런 날들을 제외하고 수염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심지어 내 결혼식장에서도. 예술인이라는 직업의 고충이야 많지만 특권은 드문데, 그 몇 안되는 특권 중에 하나가 수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 없이 누리고 싶었다. 수염은 당연히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탈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 없이도 부족하지 않게 수염이 난다. 이 역시 내가 누려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커보이게 하는 기능도 있고, 옷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나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요즘 ‘추구미’라는 말이 유행인데, 나의 추구미는 수염을 빼 놓고 상상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나는 정말로 나의 수염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별로 이성에게 인기가 없지만 다행히 나의 아내는 나의 수염을 존중해준다. 이 존중이라는 것이 내게는 참 중요한 것이다. 싫어한다고 밀어버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좋아해서 기르라고 떠밀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의 수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모든 이들이 다른 사람의 수염에 대해서 이러한 존중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기르건 말건 신경이나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수염에 대한 박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각종 참견은 물론이고 더럽다느니 게을러보인다느니 하는 혐오적인 발언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수염 기른 사람은 정말 더럽고 게으를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수염을 모두 제거하는 면도보다 일정한 모양과 길이를 유지하는 수염 관리가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관리를 해야 하므로 더럽거나 게으르다는 것은 분명 편견이다. 실제로 더럽고 게으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수염에 대한 박해는 단정치 못하고 불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남성 중 수염 없는 남성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단군할아버지도,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도, 말 목 자른 김유신장군도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 분들을 두고도 불량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굳이 역사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대 다른 국가를 향해서만 시선을 돌려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직자나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수염을 허용하지 않는 풍토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밴스 부통령부터 멋드러진 수염을 기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체육부(스포츠청)장관 무로후시 고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염 미는 문화가 서구권을 통해서, 혹은 주변국가를 통해서 양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허용되는 것이 우리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수염에 대한 박해, 차별, 탄압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공직자에게 존재하는 품위유지의 의무를 수염과 연관 짓지 않기를 부탁한다. 기업에서 수염 기른 사람에게 눈치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 수염이 있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위생이 중요한 업장에서 수염의 유무가 아니라 청결하게 관리되었는가의 여부를 체크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 ‘수염 안 기를 권리’가 생겨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수염 기를 권리’, ‘수염 기르고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5-11

사랑과 글쓰기, 기억과 해석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필립 빌랭이 실제 연인 사이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학 시절,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매료되어 팬레터를 보낸 것을 계기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에르노가 쉰넷, 빌랭이 스물넷이던 시절의 일이다. 필립 빌랭은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포옹’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에르노는 같은 관계를 ‘젊은 남자’라는 작품으로 다시 써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시선으로 쓴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언어로―그러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기록한 문학적 대화다. 내가 필립 빌랭의 ‘포옹’을 처음 읽은 건, 열다섯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전학생 신분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나름 우등생 소리를 들었지만, 새 학교에서 나는 어설프고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다들 나의 진가를 몰라주고 있다. 모두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내게 조언을 건네는 문학 선생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도서관 책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나를 건드려줄 문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랑스 문학 코너는 언제나 사람이 적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곤 했다. ‘포옹’은 매우 얇았다. 완독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지에서 설명하듯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소설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은 확실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에 관한 글쓰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너머 작가가 끊임없이 발화하고자 했던 것.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선명한 욕망.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삼십 대를 지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니 에르노에 관한 글을 준비하다가 자연스럽게 필립 빌랭의 ‘포옹’을 펼쳐 들었고 순간 열다섯 어느 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세계를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은 이 책은 어설프고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대목은 나의 미숙함과 똑 닮아 있어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젊은 남자’에서 말한다. 그와의 관계는 단지 열정의 시간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과 조우하는 계기였다고. 그녀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권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가 천착해 온 주제―여성의 몸, 욕망, 권력에 관한 문제―가 짧은 기록 속에서도 집요하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포옹’에서 보이는 감정의 분출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영역이며 어떤 면에서는 모종의 쓸쓸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열다섯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젊은 남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과거의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때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이제는 언어의 테두리 안에 천천히 포착된다. 세상과의 불화, 분투, 질투와 수치…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시선. 자연스레 재해석되는 세계. 그러니까 결국 하나의 사건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점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해석의 집합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고 그 변화 자체가 또 하나의 진실이 된다. 모든 사건은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연쇄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텍스트 그 자체로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해석이 얼마나 복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자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바라본다는 것. 내가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렌즈가 흐려지고 선명해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활자를 읽어가는 경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랑과 글쓰기는 여전히 내 삶에서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 /문은강(소설가)

2025-05-11

시를 쓰세요?

최근 새로운 곳에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공통적으로 모두가 나의 이력을 신기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우선 전국에 몇 없는 문예창작학과를 대학에서 전공했다는 점도 그렇고, 특히나 시를 중심으로 4년간 공부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신기한 듯 했다. 그러다 누군가 시를 아직도 쓰냐는 질문을 했고,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게, 무언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를 쓰는가? 집에 돌아가는 내내 나는 물음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간혹 무언가 떠오르면 메모장에 적기도 하고 일기도 매일 쓰곤 하지만, 그건 시의 형태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무엇이지? 내가 쓰는 게 시가 아니라면, 간혹 내 이름 앞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때의 나는 무엇이지? 생각하다 곤란해져버렸다. 급작스레 가까워졌던 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지인은 신춘문예를 어떻게 하면 등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다고, 아마 운이 아닐까요? 하는 나의 물음이 조금 성의없어 보였던 탓인지 그 사람은 그 이후 조금 심드렁해 보였다. 그러던 내게 급작스레 시인은 시집을 내야만 시인이라 불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말을 건네왔고 나는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후 그 지인에게는 충분한 사과를 받았지만 그 이후의 나는 부끄럽게도, 신춘문예 등단 이력을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신기한 이력은 나도 모르게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고, 눈을 반짝이며 나의 이력과 전공에 관한 질문을 들을수록 나는 더 미궁에 빠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물음 속에서 시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드러났으면 좋겠는 마음이 동시에 들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음은 물어보는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기 때문이고, 나는 시집 출판을 한 적 없기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척 과분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면, 나는 조금 괴로울 것 같다. 시인이 되고 싶어 애써왔던 시간이 있었고, 문학이라는 세계에 합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왜이렇게 탐탁치 않은 채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걸까.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한다. 그 이후의 시간은 대부분 쇼파와 한몸이 되어 불만이 많은 채로 뒹굴다 잠이 든다. 그리고 하루의 반복, 점점 탈출 할 수 없는 미로를 떠도는 기분이 든다. 이런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은 조금 과분한 걸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며칠 내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시인인지, 아닌지 두 가지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낯선 사람에게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을 털어놓았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통하는 부분이 많고 성격 또한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그때 내가 진지하게 했던 고민을 털어 놨다. 그 분은 골똘히 생각하다, 그냥 단순해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단순함에 대해 생각하다 결국 명쾌해졌다. 어디에나 무례한 사람은 있다. 무례한 말에는 인상을 쓰고, 너무 혼자 모든 일을 떠안지 않고, 타인의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너무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그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강박적인 피로에서 벗어나 본질만을 꿰뚫으면 된다. 본질은 언제나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함에 속해 있고, 단순해진다는 것은 불필요함을 제거하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숨함이 복잡함 보다 더 어렵다, 단순하게 만들려면 생각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불필요한 구성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만 제품이나 시스템에 진정한 영혼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단순함은 게으르거나 부주의하지 않다. 본질에 집중하여 하나를 정확히 꿰뚫는 것, 어쩌면 시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게 살다보면, 나 결국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시인)

2025-04-27

수국을 기다리며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유월의 제주/ 종달리에 핀 수국이 살이 찌면/ 그리고 밤이 오면/ 수국 한 알을 따서/ 착즙기에 넣고 즙을 짜서 마실 거예요/ 수국의 즙 같은 말투를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 매일 수국을 감시합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혼자 살면서 저를 빼곡히 알게 되었어요/ 화가의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매일 큰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래서 애인이 없나 봐요// 나의 정체는 끝이 없어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을 볼 때면/ (중략) //매일 김포로 도망가는 상상을 해요/ 김포를 훔치는 상상을 해요/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 저는 제주에 사는 웃기고 이상한 사람입니다/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죠/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요/ 현상 수배범이라면 살기 힘든 곳이죠/ 웃음소리 때문에 바로 눈에 뜨일 테니깐요”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득 나 자신에게 “내 삶은 나의 것인가?”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데 늘 불안하다.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실패일까 봐서. 아니 그것이 성공이라 하더라도 그 성공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서. 좋은 회사, 큰 집, 고급승용차, 명품… 남들이 다 선망하니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게 좋다고들 하니까 나도 그냥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욕망은 내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것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고독한 군중’을 쓴 데이비드 리스먼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행동하는 ‘타자지향형’ 인간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사진이나 영상을 올린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긴다. 처음엔 “내가 좋아서” 올린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 타자가 원하는 걸 맞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짜 ‘나’는 점점 지워져간다. 세상에서 내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을 때 이원하의 시를 읽는다. 화자는 “제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 ‘혼자’는 고독의 상태이므로 ‘제주’는 유배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배지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인 것에 비해 시인의 제주는 “제주에 온 많은 여행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장소다. 그러나 “화가의 기질을 가”진데다가 “얇고 연약”한 감수성을 지닌 화자는 타자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래서 애인이 없나봐요”라는 혼잣말은 남들과 비슷한, 보편적 인간이 되지 못해 고독해진 “웃기고 이상한 사람”의 자기고백이다. 그럼에도 화자는 “남을 웃기기도 하고 혼자서 웃기도 많이 웃”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존재성을 유지한 채 타자와의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사회 집단에 속하기 위해 자신의 개성과 취향, 생각을 포기하고 타인과 비슷하게 스스로를 맞춰가는 대신 “나의 정체는 끝이 없”음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며 “저에게 바짝 다가오세요”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이 건강하고 활달한 소통의 방법론은 개인을 획일화되고 일률적인 틀에 종속시키려는 제도 사회와 타인들의 욕망을 무력화한다. 고독을 견디기 힘들 때면 보편적이고 평범한 교류 사회인 ‘김포’로 도망가거나 그곳을 훔치는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훔치진 않을 거예요”라고 이내 마음을 고치는 순간, “제주에는 웃을 일이 참 많아”진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지만,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을 버릴 수 없다는 유쾌한 태도가 동력이 되어, ‘제주’라는 ‘혼자’의 장소에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움트게 하는 것이다. 남들이 욕망하는 걸 똑같이 욕망하며 비슷하게 살려고 하는 대신 “웃기고 이상한 사람”이 되길 선택할 때 “나의 정체는 끝이 없”다. 타인에 의해 무엇으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 개성적 삶이 되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파도가 밀어 오는 수국 향기 맡으러 제주 종달리에 가고 싶어진다. 아니다. 이른 봄 테라스에 수국 묘목을 심었는데 그동안 작은 변화도 없이 고요하던 나무에 어느새 초록잎이 돋아났다. 초여름이면 꽃을 볼 수 있으리라. 우리 집 테라스에도 곧 수국이 만발할 테니 꽃을 기다리며, 나를 지키며, 나답게 살아야겠다. /이병철(시인)

2025-04-27

각자의 바다, 하나의 배

그리스 신화 중 ‘아르고호 원정대’의 서사를 좋아한다. 황금 양모를 찾아 나선 이아손과 그를 따르는 항해자들이 같은 배에 오르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개성 강한 영웅이 등장한다. 펠레우스,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멀리서 볼 땐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꽤 엉망이다. 리더는 불확실하고 멤버는 오버 스펙이며 계약서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배는 바다로 나간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를까? 악의 반대편에서 싸우고 모두가 물러날 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나서며 인류 전체를 끌어안는 사람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영웅이라는 칭호는 꽤 부담스럽다. 위험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타인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힘과 용기를 가져야만 하니까. 누군가 내게 그런 책임을 부여한다면 최선을 다해 거절할 것이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소시민의 삶이 편안해서요. 아무래도 칼보다 장바구니가 더 익숙하거든요. 공동체는 영웅 하나의 힘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를 젓는 사람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아르고호에서 헤라클레스가 이탈한 장면을 봐도 그렇다. 항해 중 그의 절친한 친구인 힐라스가 요정들에게 납치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헤라클레스는 주저 없이 배에서 내리고 친구를 찾겠다며 아르고호로 돌아오지 않는다. 신보다 인기 많다던 스타 영웅이 하차했지만, 이야기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항해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다른 쪽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보다 더 중요한 어떤 감정을 선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든 자신만의 이유로 배를 빠져나갈 수 있는 세상. 우리는 그런 사회를 건너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배에 탄 것에 가깝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힘을 합치던 신화 속 원정대와는 다르다. 각기 다른 목적지와 출발선을 가진 채 아주 거대한 배 위에 함께 올라타 있는 것이다. 개인을 둘러싼 우주는 다채롭다. 누군가의 우주는 회사와 집 두 행성 사이만을 맴돌고 누군가는 주거 비용이 중력보다 무겁다고 느낀다.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이 빅뱅처럼 터지기도 한다. 자신만의 궤도를 돌고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그들의 바다는 같지 않고 물살도 다르다. 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성적 지향,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 노동의 형태와 일의 윤리. 모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다.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이의 경험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세분된 바다를 유영한다. 물길이 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각자만의 바다를 건넌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 것에 있다. 다양성은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때로는 그 다양함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누구도 같은 항로를 지나지 않기에 공감은 더욱 어렵다. 타인의 고통이 심각한 문제로 느껴지지 않고 누군가의 외침은 나를 향한 언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너도 나도 각자의 길을 걸어가느라 바쁘니까. 힘들고 숨이 턱 끝까지 차니까. 그 깊이와 위태로움은 서로에게 설명되지 않는 질감의 것이다. 방향을 잃은 항해에는 등불을 켜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는 장바구니를 든 소시민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각자의 고단함을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흩어지는 순간 다시 모일 수 있는 힘을 기억하는 사람 정도면 영웅의 자질이 충분하다. 잠깐의 기다림과 안부 묻기, 당신을 이해한다는 속삭임 같은 것. 그 작고 조용한 목소리가 우리가 함께 있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의 바다를 인정하면서도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함께 상상해보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황금양모까지는 아니더라도 퇴근길 버스 자리에 앉는 행운 정도는 손에 쥐게 될 지도 모르니. 아니, 꼭 뭔가를 쥐지 않아도 괜찮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캔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모험은 즐거워질 테니까. 참 고생하십니다. 내일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 정도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라면, 함께 항해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동료가 아닐까. /문은강(소설가)

2025-04-20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서 좋겠다고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하나 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서 좋겠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벌어먹고 사는 건 실로 축복이라 생각한다. 최근 보고 있는 OTT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이 그렇게도 되고 싶어 했던 시인. 나는 그게 되어 글밥을 먹고 있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일 또한 밥벌이에 보탬이 되니 그야말로 요즘 말로 하면 ‘갓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잡고 싶은 오해가 하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다는 오해.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해내기 위해 해야 하는 하기 싫은 일들이 무척 많다. 우선 이 예술이라는 업종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게 되기까지 해야 했던 다른 일들이 참 많았다. 사무보조, 주방 보조, 홀 서빙, 야구장 스태프, 텔레마케팅, 배달, 편의점, 전단지, 과외교사, 학원 강사. 퍼뜩 떠오르는 일만 이 정도. 남들보다 특별히 고생하고 산 것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 두어 가지를 가슴에 품고 살다 보니 일정하게 한 직장에서 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좋아하는 일로 벌어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운 좋게 글 쓰는 일과 노래하는 일로 사치는 부리지 못하더라도 아껴 쓰면 먹고 살 돈 정도를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나가야 했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몰랐다. 예술가로 산다는 일 안에는 예술을 창작하는 일 말고 다른 수많은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청탁 받은 원고를 쓰기도 하지만 투고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각종 공모에 응모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노래로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도 내게 찾아오는 고마운 무대들 외에도 누군가가 먼저 그 자리를 선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를 직접 찾아 치열하게 차지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온갖 문화재단과 지자체 사이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정보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엔 알지 못했다.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 또는 강연이나 공연을 하기 위해서 처리해야 하는 행정적 처리들도 있다. 사전에 여러 장의 서류를 요구하는 곳도 있고, 이후에 돈을 받기 위해서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소속사가 있던 시절에는 이런 업무들을 처리해 주는 이들이 있었지만 혼자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지금은 다소 번거롭더라도 혼자서 여러 행정처리들을 해내야 한다. 가까운 과거에는 세무업무까지 혼자서 다 해내야 했다. 이 일도 사업이라면 사업인지라 다양한 곳에서 경비가 발생하고 이를 제대로 기록하고 신고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하이라이트는 기획서와 제안서, 그리고 각종 지원사업을 신청하기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일이다. 예술업이란 필연적으로 기업이나 국가기관과도 관계를 맺음으로서 이어나갈 수 있는 일이다. 여러 사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지원사업에 도전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매년 초마다 취업준비생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소개서, 기획안 등을 준비해야 하고 그것들이 통과되면 면접에도 응해야 한다. 보름 사이 양복을 빼입고 면접장 대기실에 앉아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린 일만 네 번 있었다. 사실 타인에게 선택받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 일을 선택한 것도 있었는데, 이 일 역시 그런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 외에 함께 작품을 만들 인력을 섭외하는 일, 스스로를 홍보하고 마케팅하기 위해 SNS나 유튜브를 운영하고 보도자료를 쓰는 일, 다양한 대인관계를 쌓는 소위 ‘영업’이라고 하는 일, 날짜가 되어도 도무지 입금을 해주지 않는 클라이언트에게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촉을 하는 일, 강연이나 공연을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까지.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마치 수면 위 모습은 우아하지만 물속에서는 쉴 새 없이 물갈퀴 달린 양발을 휘젓는 백조처럼, 나를 비롯한 예술인들도 수많은 자잘한 업무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비록 사람들은 우리가 카페에서 커피를 시켜두고 노트북으로 고생하게 원고를 쓰거나,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악보를 앞에 두고 기타를 튕기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무엇도 거저 먹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 예술인들도 예외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강백수(시인)

2025-04-20

시는 맛있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시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어린 애순이는 ‘개점복’이라는 시로 백일장에 입상한다. “허구안날 점복 점복/ 태풍 와도 점복 점복/ 딸보다도 점복 점복/ 꼬루룩 들어가면 빨리나 나오지/ 어째 까무룩 소식이 없소/ 점복 못봐 안나오나/ 숨이 딸려 못 나오나/ 똘내미 속 다 타두룩/ 내 어망 속 태우는/ 고놈의 개점복/ 점복 팔아 버는 백 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허리 아픈 울 어망/ 콜록대는 울 어망/ 백 환에 하루씩만/ 어망 쉬게 하고 싶네”(오애순, ‘개점복’). 목숨 걸고 물질하는 엄마를 걱정하는 감동적인 시다. 1967년 문학소녀 애순이가 교복을 입고 ‘창작과 비평’ 창간호(1966. 1)와 ‘현대문학’ 과월호를 읽는 장면은 문학사적 고증을 잘 해냈다. 무엇보다 ‘폭싹 속았수다’는 험하고 가파른 생을 산 애순이 노년에 쓴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선배 시인이 고모네 아파트에 갔다가 반상회 자리에 불려갔는데 아파트 동 하나에 사는 주민들이 전부 시인이라며 명함을 내밀더란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시가 적혀 있고, 신춘문예 경쟁률은 1000대 1 수준이다. 이토록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회에서 온갖 혐오가 넘쳐흐르는 건 의아하다. 시가 정서적 액세서리나 팬시 상품 정도로만 가볍게 소비될 뿐 대중들의 의식에 내면화되지는 않아서일까. 파괴적이고 전위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영향일까. 그래도 여전히 시의 생산자와 소비자들 사이 신뢰할 수 있는 거래의 지표는 서정성이다. 서정의 본질은 조화와 화해, 그리고 합일이므로 시를 사랑하는 사회엔 미움과 시기, 차별과 소외가 점점 줄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맛집을 판가름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려 한다. 벽면에 시가 붙어 있거나 걸려 있거나 새겨 있거나 갈겨져 있다면 그 집은 ‘찐맛집’이다. 시인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시 옹호론’을 펼치는 게 아니라 경험상 진짜 그렇다. 윤동주의 ‘서시’나 기형도의 ‘빈 집’, 이형기의 ‘낙화’ 같은 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름난 유명 시인의 시 말고 대표메뉴 음식을 찬양하는 시나 식당에 바치는 헌시가 있으면 제대로 된 맛집이다. 수업을 마친 월요일 저녁마다 안양중앙시장의 허름한 순대국집인 ‘대구식당’엘 간다. 거기 거울에 ‘나그네 온달’이라는 한 방랑시인이 쓴 시 ‘골라서 먹는 순대국집’이 붙어 있다. “안양중앙시장/ 중앙통로와 4번 출입구 교차하는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순대국만 전문으로 하는 나란한 여러집 중 한 집 대구식당/ 상호는 대구식당인데 대구는 없고/ 1번 머리고기만/ 2번 머리고기와 내장/ 3번 머리고기와 순대/ 4번 머리고기에 내장과 순대 등의 맞춤식으로/ 구성을 취향대로 골라서 주문하는 특별한 메뉴판이 있는 딱 한 집/ (중략) 땀 흘려 일하고 보충하는 막걸리엔 필수요 자동인 콤비 순대국/ 시민들의 정서와 애환이 녹아 있고/ 고객 중심 맞춤식으로 배려 깊은 아지매의 풋풋한 정이 배인/ 노가다나 주당들의 단골집 대구식당” 당장이라도 들어가 앉아 순대국에 막걸리를 시키고 싶어지지 않은가? 이 시는 문학적 과장이 아니라 리얼리즘 그 자체다.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에서 30년 가까이 장사하는 ‘아내의 밥상’에는 주인인 유미화 씨가 쓴 십여 편의 시가 식당 안팎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메뉴인 꼬막비빔밥을 소재로 한 ‘꼬비’는 소리내 읽으면 입안에 참기름 밴 양념장의 매콤함과 통통 쫄깃한 꼬막살의 식감이 느껴진다. “오동통 살이 오른 청정지역 벌교 꼬막/ 펄펄 끓는 뜨건 물에 멍울지게 살짝 삶아/ 속살을 발라낸 후 목욕재계 시킨 후에/ 새콤달콤 양념장에 싱싱야채 함께 섞어/ 참기름 깨소금도 솔솔 뿌려 버무린 후/ 양푼에 담아내어 윤기 잘잘 쌀밥 함께/ 쓱싹쓱싹 비벼주니 맛깔난 그 모습에/ 눈이 먼저 달려가서 시장기를 유혹하네/ 입안에서 꼴깍꼴깍 군침돌며 침 삼키는/ 예쁘면서 맛도 좋은 네 이름이 꼬비렸다” 시의 맨 밑에는 “꼬비는 우리집 메뉴”라는 각주가 달려 있다. 음식 냄새와 함께 사람 냄새도 물씬 풍기는 시, 한 식탁에 여럿이 둘러앉아 꼬막비빔밥 먹고 싶게 하는 시다. 서정시의 원리인 조화와 합일 그 자체다. 이런 시가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천년의 보금자리” 어쩌고 하는 천박한 시보다 천배 만배 낫다. 정현종 시인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섬’)라고 노래했던가. 그 문장을 나는 “맛집에는 시가 있다/ 그 시를 먹고 싶다”로 바꿔본다. 시가 있는 식당에서 음식은 시가 되고, 시는 맛있다.

2025-04-13

시작하는 마음

비 내리는 토요일 오전,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산책했다. 비 때문인지 아직 다 피지 못한 벚꽃 나무의 꽃잎들이 거리에 지저분하게 내려 앉아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다가도 미처 다 피지 못한 잎들이 떨어져, 온몸으로 밟히고 있단 사실이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대체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두 시간 여를 넘게 같은 곳을 빙빙 돌았다. 집에 가면 이삿짐을 마저 싸야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버려야 하고, 겨울 이불 두 세트를 세탁하고 건조를 시켜야 하며, 냉장고에 있는 음식물들을 모조리 먹거나 또는 처리해야만 했다. 몸은 걷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집에서 처리해야할 목록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고, 결국 몸과 마음 모두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결국 집에 오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이사는 너무 갑작스럽게 정해졌다. 그간 9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혼자 살면서 이곳은 살긴 좋지만 월세가 부담스럽고 또 너무 좁아서 답답하다는 불만을 달고 살았다. 내 이야기를 일년 반 째 듣던 막내 동생이 그럼 같이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동거 제안을 했고, 정말 우연히도 조금 더 넓은 집을 보게 되어 한순간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이삿날을 잡아두고 잠깐 잊고 살았더니, 어느새 나는 내일인 일요일 오전에 이사를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있던 터라, 급작스런 변화에 이 모든 것이 정말 꿈이거나 엔딩을 앞둔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이사하는 곳도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오분도 걸리지 않는 건물이고, 결국 이 동네에 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어딘가 아주 머나먼 곳에서 리셋을 앞두고 있는 것만 같다. 새로운 시작은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이 크다. 또다시 마음이 흔들려 방황할 때면 인스타그램을 켜서 아이패드 드로잉 작가인 여유재순님의 그림을 본다. 거의 매일 올라오는 그녀의 그림은 투박하다. 나는 그림을 잘 볼 줄 모르지만, 따스한 색감과 깔끔한 구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준다. 그녀가 주로 그리는 그림은 꽃과 식물, 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여유재순 작가님의 나이는 92세. 친구들은 모두 노인정에 가서 시간을 보낼 때에 자신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코로나 때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자 작가님은 무작정 아이패드를 사고, 유튜브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펜을 들고 선을 긋는 것도 못했지만 인터넷에서 그림을 찾아 따라 그리고, 유튜브로 강의를 들으며 모르는 것은 메모를 하며 하나씩 배웠다. 그 그림을 본 손녀딸이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든 것인데, 벌써 여유재순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은 1705개의 그림 게시물을 발행하였고, 9만 팔로워나 모여 있다. 작가님은 현재까지도 그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꿈을 그린다. 동시에 아주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20대에서 30대로, 나이를 먹으며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고 도전하는 일이 두려웠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닐지, 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만 하며 현실과 타협했을 때 그녀는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그러한 불안감은 내 안의 가능성을 잠재우는 소모적인 요소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아주 늦은 나이에도 컴퓨터 학원에 다니며 배움을 지속했다. 당시 반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배움의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집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컴퓨터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꼭 배워야 하겠다고 대답하며 끝까지 수업을 들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넌 바보짓을 퍽도 잘한다’라고 말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통해 배움을 지속한다. 또한 처음은 누구나 잘 알 수 없는 거기에 부끄러움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부끄러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면 그 기쁨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나는 작가님의 인터뷰 영상을 점차 돌려보며,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으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현재 새로운 시작 앞에서 걱정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비춰졌다. 그러면서 시작 앞에서 두려울지라도, 언제고 그저 시작하면 되는 것임을, 단순함에서 오는 용기와 지혜 앞에서 나는 무수한 위로를 받았다.

202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