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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니, 덕분에 행복했던 10년

등록일 2025-08-10 18:10 게재일 2025-08-1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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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그에게 폭포 같은 박수가 쏟아지던…/챗gpt

2014년 5월 14일, 한국 축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던 선수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것은 내 또래의 축구 팬들에게는 몹시 허탈한 소식이었다. 주말 밤마다 우리에게 치킨과 맥주를 준비하게 만들었고 가슴을 설렘으로 부풀게 만들었던 일상의 행복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어린 선수, 손흥민이 바로 다음 해에 프리미어리그의 또다른 명문구단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박지성이 입단했던 2005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구단이었다. 그러나 2015년의 토트넘 홋스퍼는 분명 명문구단이었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나마 손흥민이 입단 하면서부터 등번호 7번을 받았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7번이 어떤 숫자인가.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라울 곤잘레스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번호이며 팀의 키플레이어라는 상징이 아닌가. 한국 선수가 세계 최강의 구단에서 웨인 루니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같은 선수들의 핵심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비록 세계 최강을 넘보는 팀은 아니었을지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에서 한국 선수가 그야말로 주인공 역할을 하며 뛰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가슴을 벅차게 하기엔 충분했다.

손흥민은 몇 경기 만에 자신이 왜 토트넘 홋스퍼의 7번인지를 증명하며 팀의 중심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짜릿하고 행복한 주말 밤을 매주 선사해주였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모습과 왼발과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대포알처럼 꽂는 슈팅은 우리 세대에게는 한국인이 저럴 수가 있나 싶은 생소한 모습이었고, 어른들에게는 그 옛날 차범근의 활약을 떠올리게 하는 반가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주말 밤마다 머나먼 나라의 경기장을 보며 치킨과 맥주를 시켜두고 한 주 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특권을 자그마치 십 년이나 더 누릴 수 있었다. 손흥민이라는 선수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히 마법같았던 순간 몇 개가 떠오른다. 하나는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아름다웠던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푸스카스상을 그가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프리미어리그 번리 전에서 70미터를 질주하며 상대 선수 6명을 추풍낙엽처럼 제쳐내고 골망을 흔드는 장면은 잠시나마 그에게 축구의 신이라도 강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2022년의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2골을 몰아치며 리그 공동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될 수 있다니. 포효하는 그를 보며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장면은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이었다. 지난 10년간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무관이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였다. 그러나 올해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침시키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인이 주장완장을 차고 유럽 메이저 대회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 역시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감동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의 허리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감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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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손흥민은 그에게 폭포 같은 박수가 쏟아지던 바로 그 시기에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언론들과 선수들은 지난 10년간 보여준 토트넘 홋스퍼에 대한 그의 헌신을 인정하고 전설에 걸맞는 예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LA. 새로이 떠오르는 리그에서 그는 또 다시 마법과 같은 플레이들을 보여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다음 월드컵의 개최지이다. 미리 적응해서 대한민국 대표님에서 활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라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국가대표님의 주장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국가대표팀에서의 환상적이었던 순간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토트넘 홋스퍼와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력이 마무리 되었을 뿐이지 국가대표 손흥민, 축구선수 손흥민으로서는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 얼마든지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동안 함께 웃고 울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는 말을 한 사람의 팬으로서 전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리그에서 또 다른 전설을 써내려가길 기대한다는 말 또한 적어본다.


/강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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