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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듯 무례한 사람들

등록일 2026-04-22 15:32 게재일 2026-04-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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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보기에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면…/ 챗GPT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줬다. 처음 만난 그는 내게 만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엄청 무섭게 생기셨네요” 라고 했다. 그런 말에는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네, 제가 좀 무섭게 생겼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떠는 것도 좀 우습고, “무섭게 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 후에도 내 외모에 대해 몇 마디 더 했고 나는 그와 어떤 관계도 맺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이 얼굴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처음 보는 상대의 외모가 어떻네 이야기 하는 것이 교양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한다. 그는 초면에 내게 자신의 교양 없음을 드러낸 것이고 나는 그것을 통해 그의 영리하지 못함을 감지했다. 나 역시 마냥 영리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말을 섞고 관계를 쌓는 일은 재미없고 피곤한 일이다.

숨 쉬듯 무례한 사람들이 참 많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 되는 말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말한 ‘얼평’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는 다소 거칠어 보일 수도 있는 외모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은 무례한 일을 별로 안 당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로 섬세해 보이지 않는 탓인지, 누군가의 악평, 비난, 놀림에 무신경할 것 같아 보이는 탓인지 자기가 그렇게 말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해서 오히려 더 쉽게 그런 말들을 한다. 얼굴이 크다, 뚱뚱하다, 깡패 같다 등등. 별 콤플렉스가 없고 무신경하기도 해서 다행이긴 한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곤 한다. ‘내가 그런 것에 민감하고 상처 받는 사람이었다면 어쩌려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가까운 내 친구들이야 그런 말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도 있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 성격을 완전히 파악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말들은 대단히 위험하고 부주의한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종류의 무례함으로는 ‘오지랖’이 있다. 두 돌이 되지 않은 아들과 길을 나서면 별 소리를 다 듣는다. 최근에는 놀이터에서 모르는 할머니들한테 호통을 몇 번 들었다. 아들은 아직 위험한 것과 안전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가끔 위험한 것을 만지려고 떼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아들을 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한다. 그런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잘 걷고 뛰는 애를 안고 다닌다고 소리까지 치며 나무라는 할머니들을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만 세 분 만났다. 자기들이 키워주지도 않을 둘째를 낳으라는 말과, ‘딸 하나는 있어야지’와 같은 말은 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그렇군요! 둘째를 낳아야겠습니다! 반드시 딸을 낳아야겠군요!”라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도치 않게 ‘오지라퍼’들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이 하는 말들을 충고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충고는 할 만한 사람이 들을 만한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이가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듣는 이가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는 이는 듣는 이에게 진심어린 애정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듣는 이가 하는 이를 존중하는 마음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요건이 갖추어져도 어디까지나 충고는 할 수 있는 것이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안 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더 많다. 

 

타인이 보기에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면 본인도 그것이 문제임을 진작에 깨닫고 있을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개선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개선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굳이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 내가 몸져 누울 것 같은 상황이라면 세 가지는 자문하고 충고를 했으면 좋겠다. 즉각적으로 개선 가능한 문제인가? 듣는 이의 기분을 충분히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을 골랐는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내 기분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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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시인

소통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하는 시대다. 그러나 무례와 불필요한 오지랖을 소통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고, 그것이 설령 소통이라 할지라도 그런 방식으로 소통을 하느니 차라리 불통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롭지 않을까. 조상들이 놀라운 통찰을 담아 남긴 한 문장으로 이 글을 맺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강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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