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천천히 입을 연다

등록일 2026-06-04 09:53 게재일 2026-06-04 16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자의가 아닌 요인으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언스플래쉬

올해 5월은 내게 힘든 달이었다. 첫 주부터 지독한 목감기에 걸린 탓이었다. 목감기야 살면서 몇 번쯤은 겪어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번 감기는 유독 증상이 심했다. 발작하듯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새벽에도 몇 번씩 잠에서 깼고, 목구멍 안쪽이 따가워 목캔디를 달고 살았다. 

 

가장 문제가 된 건 목소리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완벽하게 나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목소리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목이 나가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는, 흡사 베놈과 다스베이더를 연상시켰다. 그 목소리가 무려 2주 넘게 이어지다가, 3주째가 됐을 무렵에는 반 정도 회복되었다. 한 달이 넘은 지금은, 원래 목소리의 95퍼센트 정도를 되찾았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시나요?” “말을 꼭 해야 하는 직업인가요?” 나는 첫 번째 질문에선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가, 두 번째 질문에선 자신 있게 고개를 내저었다. “당분간은 말을 아껴주세요. 그래야 호전될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말을 참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려 한 달이나 갈 줄은 몰랐지만…

 

자의가 아닌 요인으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가장 증상이 심했던 첫 주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상대방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전부 취소했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목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자체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히스테릭해졌다. 카페나 식당에 가도 주문하기가 힘들었고, 불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 너무나 당연해서 한 번도 소중하게 여겨본 적 없던 일이 힘들어지자, 굉장한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목에 좋다는 프로폴리스 사탕과 도라지배즙을 챙겨 먹고, 밤마다 가습기를 틀어놓은 채 잠을 청해 보았지만 목소리는 나를 약 올리듯 주변만 빙빙 맴돌 뿐이었다.

 

원한 적 없던 묵언 수행을 이어가는 동안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평소 얼마큼의 생각을 거친 후에 말을 꺼낼까? 

 

나는 침묵을 견디는 게 어려운 사람이다. 특히 어색한 사람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일 때면 대화가 끊기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서둘러 말을 꺼내곤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채 다듬을 틈도 없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뱉은 말들, 별 의미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그 말들이 하나씩 떠올라 후회가 밀려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말,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던 말들.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수없이 다짐해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매번 비슷한 고랑으로 흘러 들어갔다.

 

목소리를 잃은 지 3주쯤 됐을 무렵, 혼자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깜빡하고 이어폰을 두고 나온 탓에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책을 펼쳤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집중력이 계속 무너졌다. 카페 안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단 1분의 침묵도 없이, 대화 주제는 수없이 바뀌었고 웃음소리와 감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물론 카페에서 대화하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한 건, 빽빽한 말 틈 사이 불편하고 불쾌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말이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귓가에 꽂혔다. 아마 본인들은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 누군가를 경악에 빠뜨릴 만한 말을 해왔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Second alt text
양수빈 소설가

소설을 쓰다 보면 유독 자주 쓰게 되는 표현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은 ‘천천히 말했다’가 그것이다. 시끄러운 카페 안에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그동안 그 문장을 적으면서, 천천히 입을 여는 인물들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헤아리고 있었을까?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는 말하기, 내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도록 돕는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게 질문을 던졌던 의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꼭 말해야 하나요?” 평소라면 벌컥 말을 쏟아냈을 순간,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연다.
/양수빈 (소설가)

2030, 우리가 만난 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