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한껏 만개한 올해 봄날 나는 새로운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측하지 못한 일로 첫 자취방에서 쫓겨나듯 나오고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첫 자취방은 작은 두 개의 베란다를 포함한 집 구조상 어려움이 있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새로 구한 집은 그와 달리 도화지 같아서 좋았다. 전체적으로 새하얗고, 모난 데 없이 네모난 형태였다.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색감이었다. 무슨 색에 무슨 색을 더하는 게 좋을지보단 무슨 색을 빼야 좋을지 생각했다. 언젠가 내 뜻대로 집을 꾸민다면 가능한 많은 색을 쓰지 않으리라. 늘 이것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텅 빈 방의 벽지 색 그대로 하얀색이 메인이 되었으면 했다. 거기에 검은색을 살짝만 더하고 싶었다.
슬쩍 동네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고개를 저으며 나를 말렸다. 블랙 앤 화이트가 멀리서 보기엔 예뻐 보여도 가까이서 매일 보면 우울해지기 좋다, 흰색 가구가 청소하기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느냐, 금방 심심해질 것이다, 이런 말들과 함께.
나의 마음은 그래도 완고했다. 누구의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우울해진다고? 여기서 더 우울해질 수는 없어 괜찮아. 청소가 번거로워? 매일 청소하면 되는 거잖아.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되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망해도 직접 하나하나 해보고 망해야 했다. 그래야 후회를 해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본가에 살면서부터 나는 내가 미니멀리스트라는 것을 알았다. 눈에 닿는 책상이나 선반에 무언가를 꽉 채워두는 것이 싫었다. 아기자기한 물건들로 공간을 채워두기보다 벽에 시계 하나 걸어두지 않을 정도로 휑뎅그렁한 게 내 취향이었다. 삶의 여백을, 방이라는 공간 안에서는 넉넉히 두고 싶었다.
‘오늘의 집’에서 원하는 가구를 하나하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청소기부터 침대 프레임, 매트리스, 소파, 테이블, 선반, 암막 커튼까지. 신중하게 사이즈를 재고 모양을 봤다. 그 모든 게 마음에 들더라도 원하는 색이 없을 경우엔 장바구니에 담지 않았다.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너무 비슷한 화이트로만 채우면 그건 또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소파는 화이트를 살짝 어지럽힌 듯한 아이보리로, 암막 커튼은 벽지를 크게 해치지 않는 베이지로.
난관은 의외로 그런 눈에 띄는 것들이 아니었다. 예쁜 쓰레기통을 샀지만 거기에 끼울 종량제 봉투가 주황색이어서 별로였다. 이때는 종량제 봉투 대란이 일어났던 때라 다른 색을 어떻게 구할 수도 없었다. 모두 비슷한 톤으로 맞췄더니 쓰레기통 틈으로 삐죽 튀어나온 주황이 너무나도 눈에 띄었다. 방법을 모색했다. 적당한 크기의 반투명한 봉투를 사서 쓰레기통에 끼웠다. 쓰레기가 다 차면 그때 종량제 봉투에 담아 꾹꾹 눌러 버릴 셈이었다. 실행하고 보니 그건 제법 좋은 선택이었다. 방 안에서 나보다 더 존재감을 발휘하던 주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부족할 것 없이 채우고 나니 이번엔 조명이 문제였다. 형광등의 흰빛이 과하게 쨍하게 느껴졌다. 날씨와 기분과 상황에 따라 조명의 색과 밝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두 개의 장스탠드 조명과 한 개의 테이블 조명을 샀다. 형광등을 켤 일이 없도록. 세 개의 조명을 나란히 켜자 그제야 은은함이라는 것이 생겼다.
무엇보다 나는 거실에 있는 소파가 마음에 든다. 거기 누워 오후의 한때를 멍하니 보내고 있다 보면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잠시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고요한 세상에 놓인 것 같고, 내일 어떤 일이 있어도 상관이 없는 상태가 된다.
나의 로망은 소파이건만 소파가 아니라 식탁을 둬야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제미나이와 챗지피티에게도 자문을 구해 보았는데 둘 다 자취방에는 소파보다 식탁을 두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충분히 큰 아파트 거실이면 모를까, 작디작은 내 거실에는 괜한 사치라는 것이었다. 침대가 있는데 소파가 왜 필요하냐고, 식탁이 없으면 밥 먹기 불편하다고도 했다. 거기서 또 오기가 발동했다. “작은 테이블이 있으니 밥은 바닥에 앉아서 먹으면 되잖아? 난 다른 건 몰라도 소파는 포기할 수 없어!”
소파에 눕는 것과 침대에 눕는 건 다르다. 침대는 수면이고 소파는 휴식이다. 식탁이 없어서 불편하지 않냐고 하면 이렇게 답하곤 한다. 전혀. 내가 원하는 유유자적함은 오직 소파 위에서만 가능하다. 타인과 AI의 말 모두 듣지 않길 잘했다. 나의 로망은 내 안에 있을 뿐이다.
집 꾸미기는 원래 끝이 없는 것일까? 요즘엔 멀쩡히 움직이는 마우스도 가구에 맞춰 바꾸고 싶어진다. 분명 욕심이다. 마우스를 바꾸면 또 다른 물건도 바꾸고 싶어질 것이다. 어떻게 해도 이 집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래도 조금은, 조금만 더, 이 집이 나도 온전히 그리지 못했던 나의 이상향에 가까워지길 바라고 있다.
/구현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