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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모두에게

등록일 2026-05-20 15:33 게재일 2026-05-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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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최종 목적도 생존인 것이고…/챗GPT

최근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챙겨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있다. 제목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OTT에 보일 때마다 뭐 저런 제목이 다 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감명깊게 봤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본을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워낙 문학적인 작품들을 써 온 작가라는 것을 알기에 그 독특한 제목을 여러 번 곱씹게 되었다. 소리 내어 발음을 해볼수록 절묘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 속 인물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로 항상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직업은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일이다. 때때로 나태해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직업으로 여기고 산 십 수 년을 돌이켜보면 나름 치열하게 이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한편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단지 생활을 유지하는 것만 해내기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뭔가 업적을 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피어났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남루하지 않은 옷을 입고 맛집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며 남들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당장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던 때에도 그런 종류의 욕망과 조급함에 머리를 싸매곤 했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조금 힘들다. 자꾸만 스치는 수치심 때문이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인물의 모습이 마냥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이들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행패를 부리는 장면 가운데 어느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분노를 품었고, 지금도 가끔 마음속에서나마 그렇게 못나게 굴기도 한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나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가치 있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나아가 인류를 위해 희생하거나 그 안의 모든 이들의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이들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야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모두가 그 정도로까지 위대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하루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소박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 방식과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조금씩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사정으로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 모두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위대한 인간도, 아무 것도 안 하던 어느 시절의 나 같은 인간도 그냥 지구를 뒤덮은 수많은 생물 중에 하나일 뿐이다. 다른 종의 생물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발명되지 않았지만 만약에 그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을 수 있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상상해본다. 아마도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고 되물을 것 같다. 모든 생물에게 생존은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로 목적이다.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는 있어도 무엇을 위해 사는 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인간의 최종 목적도 생존인 것이고, 살아있는 모두가 매일매일 그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와 더불어 어떤 가치까지 창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목표를 초과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것이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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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시인

만약에 누군가가 직업을 갖고 살아간다면 어떤 식으로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것을 직업이라 부를 수는 없다. 직업이 없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의 대상이 된다면 그 또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딱히 사랑을 주고받는 이가 한 명도 떠오르지 않더라도 괜찮다. 

 

편의점에서 콜라 한 캔을 사는 행위도, 집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행위도 누군가에게 일거리를 주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삶도 크고 작고를 떠나 가치가 있는 삶이다. 그 모든 것에 하나도 해당이 안되고 도저히 그런 가치는 내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우리의 목표는 살아있음 그 자체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울 필요는 없다. 
/강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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