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집에 비슷한 건 이미 있었고, 없어도 당장 불편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꾸 눈이 갔다. 쇼핑앱을 몇 번이고 들어가 후기를 읽고, 색상을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구매 버튼을 눌렀다. 신기한 건 물건이 정말 필요해서라기보다, 사고 있는 그 순간이 왠지 기분을 조금 바꿔주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생각보다 자주 무언가를 사고 싶어했다. 심심할 때도 쇼핑앱을 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괜히 사고 싶은 물건이 늘어났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새로운 게 갖고 싶었고, 뭔가를 기다리는 기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실제로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할 만큼 설렜다. 현관 앞에 놓인 박스를 열 때면 아주 잠깐이지만 하루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꼭 필요할 것 같았던 물건도 며칠 지나면 금세 익숙해졌다. 새로 산 컵은 어느새 평소처럼 식탁 위에 놓여 있었고, 그렇게 갖고 싶었던 옷도 몇 번 입다 보면 특별함이 사라졌다. 그러면 또 다른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계속 새로운 걸 원하게 되는 걸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사고 싶었던 건 물건 자체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행복의 건축’에서 사람이 어떤 대상을 원하는 이유에는 단순한 기능 이상의 감정과 욕망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사람은 물건 자체보다 그 물건이 만들어줄 삶의 분위기와 감정을 함께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컵 하나를 사면서도 전보다 더 여유로운 아침을 상상했고, 새로운 옷을 고르며 조금 더 다른 하루를 기대했다. 물건을 사는 동시에 어떤 새로운 기분을 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은 소비가 너무 쉬워졌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 원하는 걸 바로 살 수 있고, SNS를 켜면 누군가는 계속 새로운 물건을 보여준다. 검색을 딱 한 번만 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서 좋아할 만한 제품을 끝없이 추천한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 새로운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소비는 점점 필요를 채우는 행위라기보다 기분을 환기시키는 방식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괜히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쇼핑앱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무언가를 산다고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새로운 물건 하나쯤 있으면 지금보다 조금은 나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지루하게 반복되던 문장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 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날은 물건보다도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떤 작은 방식으로라도 기분을 바꾸고 싶어진다. 책상 위에 새로운 조명을 올려두거나, 평소엔 사지 않던 향의 향초를 고르거나, 계절이 바뀔 때 괜히 새로운 옷을 사고 싶어지는 이유도 어쩌면 비슷할 것이다. 삶 전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아주 작은 분위기 하나쯤은 바꿔보고 싶은 마음. 소비는 종종 그런 사소한 변화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된다.
물론 대부분의 설렘은 생각보다 빨리 일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를 새로 꺼내 쓰는 일, 마음에 드는 컵에 커피를 따라 마시는 일, 새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일 같은 사소한 변화들은 생각보다 하루의 기분을 많이 바꿔놓는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창한 행복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별것 아닌 작은 기대와 사소한 즐거움들이 반복되면서 하루를 조금씩 견디게 만든다. 내일 도착할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기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무언가를 사고 싶어지는 마음을 꼭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게 됐다. 물론 모든 소비가 합리적일 수는 없겠지만, 사람은 때때로 작은 소비를 통해 반복되는 하루에 새로운 기분을 더하며 살아간다. 별것 아닌 변화처럼 보여도 그런 사소한 설렘들은 일상에 작은 활력을 만들어준다. 결국 그런 작은 설렘과 기대들이 반복되며 각자의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윤여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