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무던히 애썼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혹시라도 불편해하지 않을까 신경 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필요하다면 내 쪽을 조금 희생하는 것도 배려라고 믿었고, 그렇게 해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순간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배려를 했는데 돌아오는 상황은 오히려 내가 기분이 상하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었지만,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결국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정작 나 자신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조차 나를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서 타인을 더 배려하려 했던 건 모순에 가까웠다. 그 이후로는 대화에서도, 관계에서도 한 발짝 물러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감정 이입을 하거나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지키려 했다. 그러자 오히려 대화가 더 편해졌고 관계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거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나를 먼저 소모하는 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생각과 연달아 두 번째로는, 나를 좀 더 아끼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배가 고플때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간편한 음식들을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직접 만들어 먹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더라도 내가 식재료를 고르고, 어떤 재료들이 들어가는지 눈으로 확인하며 먹을거리를 만든다. 직접 요리를 한다는건 단순히 식사를 한다기보다 나를 위해 한 끼를 공들여 준비하는 감각에 가깝다.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도 더 들지만 그만큼 나를 대하는 태도는 훨씬 정성스러워졌다. 몸은 여전히 피로할 때가 많지만,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대하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세 번째는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에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피티를 받으며 배웠던 동작들을 떠올리고, 어느 부위에 힘을 줘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씩 짚어가며 반복한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만 바라보며 같은 동작을 이어가는 순간, 흐릿했던 내가 다시 또렷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루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아닌 시간이나 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지나가는데, 운동하는 동안만큼은 그 모든 것에서 잠시 벗어난다. 몸의 변화는 크게 눈에 띄지 않더라도, 기력이나 컨디션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분명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는 감각이 가장 크게 남는다. 결국 운동은 단순히 몸을 위해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흐트러진 나를 다시 붙잡아주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자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기분이 좋거나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걸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게도 그렇고,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좋은 감정을 말로 꺼내는 순간 그 기억은 훨씬 선명해진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나를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좋은 일이 생기면 괜히 들뜬 마음을 눌렀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일부러 들뜨지 않으려 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현재의 감정을 줄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젠 좋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걸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것들에도 더 자주 반응하게 된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 지나가는 풍경, 계절의 흐름 같은 것들이 예전보다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런 장면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말로 꺼내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 마치 하나의 장면을 여러 개의 렌즈로 바라보는 것처럼, 이전보다 더 다양한 감정과 순간들이 쌓이고 있다.
요즘 내가 자주 하게 되는 생각들은 거창하지 않다. 다만 그 생각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더 잘 돌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고, 그 변화가 크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윤여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