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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쓰고 싶지 않아

등록일 2026-04-29 15:32 게재일 2026-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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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밤의 생활이 계속된다는 게 무섭다./챗GPT

대부분 나의 작업은 해가 진 이후에 이뤄진다. 어둠 속에서 조명을 켜고 모니터의 빛과 함께 밤을 이겨내곤 한다. 어떻게든 마감을 끝낸 뒤 창밖을 보면 먼동이 트며 세상이 눈을 뜨고 있다. 모두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나는 잠에 든다.

내가 밤에 일한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역시 새벽 감성으로 쓰나 봐!”한다. 어떤 의미로는 보편적인 작가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나도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 정말로 나는 밤에 일하고 싶지 않다. 피곤하기도 하고, 새벽 감성 또는 밤이 주는 영감이란 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 뇌도 일하기 싫은 시간일 텐데 머리도 안 돌아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내가 헛것을 본 거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단순하다. 낮에 시작하더라도 해가 지기 전까지 끝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은 할 수 없어도 정해진 패턴이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오랫동안 그 패턴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작품 하나를 쓰고 나서도 부족한 면이 자꾸 보여서 붙잡고 있기 일쑤다. 나를 옭아매는 지독한 강박으로부터 나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그런 밤 생활의 영향이 몸으로 오는 것 같다. 피부에 자꾸 트러블이 난다.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머리가 무겁다. 물리적인 피해가 커지기 시작하자 내 안에서 비상 신호가 울렸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이렇게 살다간 골로 갈 거야. 더군다나 몸이 아프니 마음까지 아프다. 마감 하나를 끝내도 내부에 쌓인 우울감과 피로감이 사라지지를 않는다. 정말 이대로는 곤란하다.

가벼운 것부터 실천해 보기로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기 전에 눈을 뜨는 것. 그리고 암막 커튼을 걷는 것.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빛을 차단해 왔다면 이제는 빛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때다. 다음은 씻고 컴퓨터 앞에 앉지 말고 바로 나갈 것. 이른 시간에 카페든 도서관이든 작업실이든 향해야 한다. 나의 방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방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 감각을 제법 잃어버린다. 오후 두 시든 새벽 두 시든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시간이 흐를 따름이다. 그걸 바꾸려면 방법은 하나다. 빛이 있는 다른 세계로 가야 한다.

실용적인 일이 바로 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빛 사이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꽤 중요하다고 느낀다. 당장 뭐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스스로 환기가 되는 기분이다. 밤에는 잠들어야 하니 커피 대신 따뜻한 카모마일 차를 마신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문서로 한 번 정리하고 나면 하루의 윤곽이 조금은 보인다. 다음날의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치 일을 빨리 끝낸다고 해서 다음날 일을 미리 건드리는 건 에너지의 과용이 될 수 있다. 내일도 같은 에너지로 해낼 수 있단 보장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만큼만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다. 이때 쓰는 것은 작품이 아니다. 일종의 가벼운 스케치 혹은 크로키에 불과하다. 문장을 정돈하지 않는다. 단어를 고르지 않는다. 그랬다간 생각이 감속하고 만다. 거의 무용한 것들로 페이지가 채워지더라도 그렇게 한다.

폴 발레리의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작품을 결코 완성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시점에서 포기하는 것뿐이다.” 그 말대로 나는 포기하는 법을 익히기로 한다. 이게 더 좋은 대안은 아니었을까? 이런 고민은 내일로 미룬다. 생각이 많아지면 다시 잠들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집착하고 있는 그 작품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오늘 완성될 운명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포기한다. 펜을 내려놓고 모니터를 꺼야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의 노력은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 여러 마감이 하루에 겹친 탓이다. 낮에 시작했지만 저녁에 전부 끝낼 수는 없었고 다음 낮을 보고서야 마감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것도 변명이다. 미리 시간 배분을 해서 우선순위대로 착착 처리하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낮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났어. 나 자신에게 이런 변명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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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우 시인

밤의 생활이 계속된다는 게 무섭다. 무섭게도 이 칼럼 또한 밤에 쓰고 있다. 칼럼을 끝낸 후에는 바로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다. 자고 일어나서 하고 싶지만 마감이… 마감이 아침까지다. 지금 잠들면 그 일을 해낼 수가 없다. 내일까지만 이렇게 하고 모레에는 다시 낮에 일해야지. 아마도 이 계획은 또 금방 실패할 것이다. 작심삼일이어도 좋다. 밤과 내가 친해지지 않을 때까지 이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낮의 빛이 언젠가 나를 지켜줄 거라 믿으면서.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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