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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이즈 본

등록일 2025-06-15 18:23 게재일 2025-06-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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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언스플래쉬

초여름으로 향해 가는 계절,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주 미약한 우울감을 함께 느끼는데, 그럴 때엔 초록으로 물든 강변을 약간의 땀이 날 때 까지 빠르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얇고 부드러운 여름 잠옷으로 환복을 한 뒤, 냉장고 앞에 선다. 오늘을 위해 약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과 마트 직원의 추천을 받은 프랑스산 치즈를 사왔기 때문.

주황빛으로 저무는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선 자연풍을 맞으며 와인을 따면 묵은 고민이 씻겨가듯 기분이 나아진다. 치즈와 햄도 먹기 좋게 그릇에 놓은 뒤 계절이 바뀔 때에 생각 나는 영화, <스타이즈본>을 튼다.

외모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 엘리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만, 노래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낮에는 식당 주방에 일하고 밤엔 공연을 하던 와중, 우연히 톱스타 잭슨 메인을 만난다. 남주인공 잭슨 메인은 당시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알린 유명 가수이지만, 어쩐지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길거리를 방황한다. 그런 잭슨은 앨리가 일하는 바에서 우연히 방문하고, 앨리를 만나 점차 사랑이 깊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동시에 앨리는 잭슨을 만나면서 유명한 가수로 데뷔하여 점차 성공하지만 오히려 앨리와는 반대로 잭슨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예술가적 고뇌 속에서 점차 병들어 가며, 영화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타이즈본>은 국내에서 2018년 10월쯤 개봉했으며, 나는 그때 실연에 대한 고뇌로 하루하루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때였다. 사랑은 대체 언제 돌보아야 하는지, 돌봄과 동시에 어느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크기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몰랐고, 그 정답을 알고 싶었기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하지만 점차 외로운 의문 속에 빠졌고, 그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날도 무작정 걷다 영화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우연히 스타이즈본을 관람하게 되었다. 목이 탄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해진 채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사랑과 동반되는 온갖 상처와 허무함, 조급함과 괴로움, 상대보다 내가 더 우선시되는 알량함과 이기적임 같은 수많은 감정을 모조리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결국 상황이 최악으로 악화된다. 잭슨의 추모 현장에서 앨리는 잭슨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결국 이야기를 끝내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쩐지 눈물이 났다. 허탈감이 몸을 감싸며, 결국 사랑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 소진될 때 까지 가쁘게 걸었던 그날의 기억이, 실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랑은 연인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다. 미련과 집착에서부터 멀리 벗어날 지라도, 이따금 한 번씩 수면 아래서 떠오른다. 멍하니 누워 있을 때, 소란스럽던 공간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적막에 잠길 때, 무언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에 종종 그 시기의 내가 생각난다. 지난 인연과 시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아니다. 처음 겪었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맞았던 그 때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스타 이즈 본>은 사랑 이야기다. 앨리와 잭슨은 비록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앨리는 영화의 막바지에서 잭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금 처음부터 보지만, 앨리는 이야기 끝 너머에서 잭슨을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끝은 계속해서 비참할 수 있지만 우린 늘 애써 노력한다. 애써 고민하고, 애써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애써 표현하고 존중한다. 그 애씀이 내게 더 많은 감정의 풍요를 가져다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며 결국 더 행복해지게 한다.

Second alt text사랑이 죽어가는 만큼, 내게도 하루하루 수많은 사랑이 태어난다. 나날이 깊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동생과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편안함과 존경과 애정 같은 감정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하며 많은 것을 체화하고 있다. 

 

동시에 이미 종지부를 내린 사랑들도 많이 생각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무언가 시작하기도 전에 저물었던 수많은 아쉬움의 형태들. 이따금 생각하며 사랑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므로 외려 감사하다. 어찌됐든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윤여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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